이번 5월호 특집 ‘따로 또 같이, 느슨한 연대를 실천하다’는 어쩌면 『환경과조경』 역사상 가장 빠르고 쉽게, 아주 우연히 기획되어 일사천리로 진행된 특집일 것 같다. 원래는 이 지면에 최근의 디자인 테크놀로지 변화상을 심도 있게 다룰 계획이었다. 조사, 취재, 독서, 토론을 반복하다 벽에 부딪힌 편집부는 디지털 조경계의 ‘최강 덕후’ 나성진 소장을 초대해 조언을 구하던 중 급기야 항로를 돌렸다. 테크놀로지 특집을 위해선 조금 더 공부가 필요함을 깨달았고, 오히려 대안적 연대를 꿈꾸며 새롭게 문패를 내건 그의 오피스 ‘얼라이브어스’의 지향점과 운영 방식에 호기심이 발동했기 때문이다.
얼라이브어스의 경우뿐만 아니라 다양한 형식의 연대를 실험하는 대안 그룹이 젊은 조경인들 사이에서 최근 눈에 띄게 늘어나고 있다. 급박하게 진행된 취재와 섭외에도 불구하고 꽃길사이, 빅바이스몰, 얼라이브어스, 자연감각, 정원사친구들, 조경이상, 팀 동산바치, 하루.순, 이렇게 여덟 그룹이 이번 기획에 흔쾌히 동승해 주었다. 이 그룹들의 성격, 지향, 구성 형식에서 공통분모를 찾기는 쉽지 않다. 그러나 기존의 회사, 기성의 학/협회와 결을 달리하고, 지연이나 학연에 바탕을 둔 집단주의를 경계하며, ‘뭉쳐야 산다’는 구호를 불편해하면서 ‘따로 또 같이’ 연대하는 형태를 모색한다는 점에서는 교집합이 적지 않다.
대안 매체를 꿈꾸고 있는 팟캐스트 ‘꽃길사이’는 13회에 걸친 인터뷰를 방송하며 점차 청취자 수를 늘려가고 있는 프로젝트 그룹이다. 조경, 건축, 도시설계, 커뮤니티 디자인 등 각기 다른 배경을 가지고 있지만 같은 방향을 바라보는 이들이 연대한 ‘빅바이스몰’은 ‘노들꿈섬 운영 공모’와 ‘공원산책’ 시리즈로 이미 이름을 알린 바 있다. “각자 자신이 설정한 비전에 따라 움직이며, 그룹에 개인을 맞추고자 하지 않는다. 각자의 동선은 평행할 수도 있고, 교차할 수도 있다. 상황에 맞게 협력의 방식을 정하고 함께한다”는 빅바이스몰의 연대 방식은 느슨하지만 동시에 관계 지향적이다. 조경과 건축의 수평적 커뮤니케이션에 기반을 두고 학제간 디자인을 실천하고자 하는 ‘얼라이브어스’는 프로젝트 그룹보다는 단일 설계사무소에 가깝지만, 구성원 대부분이 독립 소장인 독특한 파트너십을 실험한다.
세 오피스가 프로젝트에 따라 연합하는 그룹 ‘자연감각’의 활동 영역은 전통적인 조경이다. 그러나 좁은 의미의 설계뿐 아니라 기획, 시공, 운영과 관리, 제품과 서비스 기획으로 범위를 넓혀 단기 성장과 이윤을 추구하는 동시에 지속 가능한 사업 모델을 탐색하고 있다. 기획, 설계, 시공을 나누지 않고 정원 프로젝트를 함께 수행하는 ‘정원사친구들’은 정원박람회 출품을 계기로 결성되었지만 전시는 물론 민간과 공공 프로젝트로도 무대를 넓혀 왔다. 이들은 “둘 이상만 모이면 정원사친구들이라는 이름으로 활동”하며 “일반적인 회사가 더 잘 할 수 있는 일은 하지 않는다.” 2015년과 2017년 국립현대미술관 YAP 프로젝트의 조경을 맡으며 힘을 모은 ‘팀 동산바치’는 말 그대로 프로젝트 그룹이다. 서로 다른 경험과 노하우를 합쳐 단일 오피스가 풀기 힘든 일을 해결하고자 한다.
조경, 도시설계, 건축 분야 소장 연구자들의 연합체인 ‘하루.순’은 분야의 경계를 가로지르며 도시 문화 콘텐츠를 기획·운영한다는 계획을 가지고 있다. 다른 그룹들과 달리 별도의 공간을 가지고 있다는 점이 특징인데, 지난해 서울도시건축비엔날레가 열렸던 ‘돈의문박물관마을’의 한 건물에 온실 ‘하루’와 문화실험실 ‘순’을 운영하며 시민 참여형 소통 플랫폼을 제공한다. ‘조경이상’은 비즈니스의 색채가 전혀 없는 모임이라는 점에서 앞의 그룹들과 다르다. 뜻을 함께 하는 30, 40대 조경가들이 모여 조경의 현실을 새로운 시선으로 진단하고 조경의 잠재적 역량을 실현할 수 있는 실천적 대안을 모색하고자 한다. 모임 내부의 탐색기를 끝내고 지난 3월부터 전국 ‘순회 특강 시리즈’로 활동을 본격화하기 시작했다.
아쉽게도 이번 지면을 끝내 고사한 그룹으로는 ‘조경모색’이 있다. 이대영(스튜디오 엘), 이상기(조경설계사무소 온), 이진형(조경설계 서안), 장재삼(지드앤파트너스) 소장으로 구성된 이 그룹은 2016년 자신들의 현재를 스스로 읽고 타인과 공유하고자 그룹 이름과 같은 제목의 전시회를 개최했고, 올해는 ‘경청 시간’이라는 강연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다. 지난 3월부터 홀수 달에 열리고 있는 ‘경청 시간’은 현장에서 고군분투하고 있는 청년들을 강연자로 초대한다.
이 ‘따로 또 같이’ 그룹들에 앞서 『봄, 조경 사회 디자인』(2006)을 출간하며 활동을 시작한 ‘조경비평 봄’은 『봄, 디자인 경쟁시대의 조경』(2008), 『공원을 읽다』(2010), 『용산공원』(2013)을 연이어 발표하며 단행본 출판을 통해 지속가능한 비평 환경을 마련하는 데 힘을 쏟았지만, 지난 몇 년간은 소식이 뜸하다. 조경비평 봄이 지향했던 “조경 비평의 실천 환경 구축, 조경 담론의 생산 기지 조성, 조경 이론과 실천의 연결, 조경과 사회의 상호 개입을 위한 네트워크 조직, 조경 비평의 유통과 저장을 위한 매체 실험”을 이어가기 위해서는 비평의 생산뿐 아니라 소통을 가능하게 할 새로운 플랫폼이 요청되는 상황이다.
느슨한 연대의 첫 걸음을 내딛기 시작한 이달 특집의 그룹들이 ‘따로 또 같이’ 조경계를 북적이게 하는 다양한 플랫폼이 되기를 기대한다. 플랫폼은 어떤 시스템이나 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한 토대나 기반 모듈이기도 하지만, 본래는 기차역의 승강장이다. 플랫폼은 많은 사람이 모이고 흩어지는 곳이다. 편하게 모이고 즐겁게 흩어질 수 있어야 정체되지 않는다. 그래야 건강한 플랫폼이다.
5월호와 6월호의 ‘그들이 설계하는 법’에는 김호윤 소장(조경설계 호원)의 이야기가 펼쳐진다. 독자 여러분의 큰 기대와 많은 관심을 부탁드린다.
김정은 편집팀장이 이번 호를 마지막으로 『환경과조경』을 떠나 『SPACE』의 편집장으로 자리를 옮긴다는 아쉬운 소식을 전한다. 『건축인(POAR)』, 『공간(SPACE)』, 『와이드』를 거쳐 2013년 9월 『환경과조경』에 참여한 김정은 박사는 2013년 10월호(306호)부터 2018년 5월호(361호)까지 총 56권의 잡지를 만들며 『환경과조경』의 지면 혁신을 이끌고 문화적 지평을 넓혀 왔다. 그의 기획력과 편집 능력으로 가득한 쉰다섯 권의 과월호를 다시 펼쳐본다. 아쉬움과 막막함을 가슴 깊이 묻으며 그의 새로운 도전에 응원의 박수를 보낸다. 더 다채로운 형식으로 조경의 경계를 폭넓게 넘나들며 『환경과조경』은 물론 독자 여러분과 연대할 것이라 기대한다. 따로 또 같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