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계 철학이나 설계 방법론이 아닌 현실적 대응에 대해
당신의 설계 철학은 무엇입니까? 당신의 설계 방법론에는 어떤 게 있습니까? 설계를 직업으로 삼은 이들의 인터뷰에 자주 등장하는 질문이다. 나의 설계 철학은 무엇일까? 그놈의 철학이란 단어가 머릿속을 어지럽힌다. 주입식으로 교육받은 어린 시절, 철학 과목을 통해 칸트와 데카르트를 배웠다. 철학책에 나오는 고뇌의 산물일 것 같은 단어와 뭔가 있어 보여야 하는 글이 철학이라면, 나에겐 설계 철학이 없다. 고심에 가득 찬 멋진 설계 산물이 없어서 일지도 모르겠다. 녹록지 않은 작업 현실 속에서 현장과 설계, 설계와 현장을 일대일로 대응시키며 지금까지 달려왔다. 모든 현장이 같을 수 없기 때문에 모든 설계가 다를 수밖에 없다는 현실에 충실히 직면하며.
설계는 현장을 바탕으로 존재한다고 생각한다. 실현 가능해야 한다고 믿고 있다. 모든 설계 현장에 직접 가서 조사해야 설계가 완성된다고 주장할 수는 없겠지만, 허락하는 한 무조건 현장에 가서 봐야 좋은 설계가 나온다는 건 누구나 아는 상식이다. 현장이 가진 문제가 설계의 단초이고 그 문제의 해결이 설계의 시작이다. 현장에 설계의 답이 있으니 현장에서 답을 찾는 작업을 게을리하지 않는다. 설계의 반은 현장에서 이루어지는 것 같다. 그래서 현장 답사를 가면 먼저 문제점을찾고 그 땅의 가능성을 발견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래도 ‘하늘을 나는 고래’와 같은, 머릿속을 말랑말랑하게 떠도는 상상의 즐거움만은 간직한 채 말이다.
나의 설계 방법론은 무엇일까? 모로 가도 서울만 가면 된다. 이 문장은 수단이나 방법이 어찌 되었든 목적만 이루면 된다는 뜻일 것이다. 부정의 의미일까, 정말 목적만 이루면 아무런 상관없다는 긍정의 말일까. 아마 정도(正道)를 벗어나 교묘한 행위로 목적을 이루려는 처세에 능한 사람들에 대한 일침일 것이다. 그런데 나는 어릴 적부터 좀 엉뚱하게 해석해 왔다. 모로 가는 것을 돌아간다고 생각을 했다. ‘돌아가면서 이것저것 더 많은 것을 보며 가는 것이 더 좋지 않나?’라고 말이다.
이 속담이야말로 설계 방법론을 설명하는 데 적당한 것 같다. 설계에 정답이 없다는 말을 주문처럼 하곤 한다. 서울 가는 길이 하나만 있을까? 우리가 하는 설계에 정도라는 게 있을까? 그럼 대체 설계의 정도는 뭐지? 길로 치자면 상행 고속도로 같은 걸까? 그럼 우리는 고속도로만 이용하는 설계를 해야 하는 걸까? 교통 방송에서 흘러나온다. “지금은 막힌 곳이 없어 서울까지 두 시간이면 충분히 도착합니다.” 문제는 이 두 시간이다. 두 시간 안에 서울에 도착해야 하기 때문에 가장 빠른 길인 고속도로를 모두가 이용하는 것이다. 그리하여 서울 가는 길에 보이는 것이 모두에게 똑같다. 설계하는 시간이 충분히 주어지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 빠른 손놀림(?)과 신속한 판단으로 설계를 진행해야 납품 일정을 맞출 수 있다. 그러면 어찌하란 말인가? 스스로 답변해 본다. 제 시간에 도착할 수 있는 서울 가는 많은 샛길을 찾아두자. 더 많은 다른 풍경을 보면서 갈 수 있는 자기만의 샛길을 만들어 보자. 운전만 할 줄 알면 길이 아닌 곳으로 가보는 것도 좋지 않을까?
설계오우가(設計五友歌)
플러스 펜: 설계하는 사람은 유독 펜에 대한 욕심이 많다. 나도 펜을 좋아해서 많은 펜을 사고 잃어버리고 또 펜이 다 닳으면 다시 사는 과정을 수없이 반복해 왔다. 여러 펜 중에서 아직 애용하고 있는 펜은 M사의 플러스 펜이다. 이제는 유사 펜의 대명사가 된 이 펜은 일단 싸고 선의 굵기를 힘으로 조절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물론 몇 장 그리면 끝이 닳아 뭉툭해져 잉크가 떨어지기 전이라도 펜을 바꿔야 선이 제대로 표현되는 난점이 있기는 하다. 그렇지만 B 계통의 연필만큼은 아니어도 굵기 조절이 자유로운 장점에 익숙하다. 중간에 다른 펜으로 바꾸기도 했지만 플러스 펜의 자유로움을 손이 기억하고 있었다.
노랭이: 노랭이(옐로우 스케치 페이퍼 또는 롤 페이퍼)가 비싸서 신참 때는 흰색 롤 페이퍼만 쓸 수 있었다. 노란색 종이 위에 그리는 고참이 부러웠다. 그 종이에 그리면 그림이 더 멋지게 보이는 것 같았다. 고참들이 퇴근한 후 밤을 새울 때면 슬쩍 고참 자리의 노랭이 위치를 이동시킨다. 베이스에 가볍게 밑그림을 그리고 그 위에 노랭이를 유명 여배우가 밟는 시상식 레드카펫처럼 펼치고 손을 깨끗이 씻는다. 회심에 찬 짧은 의식이다. 종이 안으로 파고들어 갈 듯한 자세로 고쳐 앉고 세심하게 찬찬히 그려간다. 누가 보면 내가 전문가 같아 보이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이 든다. TV 드라마의 어느 장면을 떠올리며 그리고 또 그린다. 컴컴한 사무실 한편 깜빡이는 스탠드 불빛 아래, 밤새 장렬히 전사한 수많은 노랭이 시체가 난지도처럼 수북이 쌓인다. 결과물은 그리 신통치 않지만 쌓인 노랭이 시체만큼 스스로의 만족감도 수북해진다. 물론 아무 종이에나 그려도 설계안이 좋으면 멋지다는 걸 아는 데 그리 긴 시간이 필요하지는 않았다.
지금은 안타깝게도 손으로 그리는 사람이 현격히 줄었다. 캐드에서 바로 설계하는 것을 자랑으로 여긴다는 이야기도 들었다. 캐드 프로그램에서 줌인과 줌아웃을 반복하다 보면 전체적인 스케일 감을 잃어 공간의 스케일이 전혀 다른 결과물이 나오는 엉뚱한 경우가 많이 발생한다. 적당한 스케일의 정지된 출력본을 놓고 자꾸 그려볼 것을 적극 권장한다. 그래야 공간의 규모, 전체적으로 통일된 스케일, 사이트 전체를 보는 힘을 설계 내내 잃지 않는다.
모눈종이: 모눈종이는 디테일을 그릴 때 애용한다. 나는 캐드보다 손 그림에 익숙하다. 모눈종이에 인쇄된 모듈은 곧 스케일의 축소판이다. 정확한 수치를 요구하는 실시 설계에서는 스케일을 맞추어 그려서 바로 전달해 실시 설계 도면을 만들게 할 수 있으니 모눈종이는 없어서는 안 될 중요한 설계의 친구 중 하나다. 선 굵기와 도면의 전체 포맷을 맞추는 것부터가 디자인의 시작이라고 배웠다. 요즘에는 이것까지 강조하면 지나친 참견이 되는 것 같아 내용에만 탈이 없으면 넘
어가는 편이지만.
빵빵이: 일명 ‘빵빵이’라 불렸던 템플릿(template)은 손으로 제도하던 시절 수목을 규격화해 그리는 도구였다. 크고 작은 여러 개의 구멍이 나 있어서 빵빵이라 불렸다. 이 도구를 써서 그릴 때는 주의 사항이 몇 가지가 있었다. 연필(샤프나 홀더)로 그릴 때는 구멍에 홈이 있는 부분이 바닥에 닿게 그리고, 로트링 펜으로 그릴 때는 구멍에 홈이 위로 가게 해서 그려야 잉크가 도면에 묻지 않는다. 펜으로 원 하나를 그리는 건 엄지와 중지를 이용해 손가락 마디로 펜을 거의 한 바퀴 돌리는 신공을 발휘해야 하는 고난도 작업이기도 했다. 원 한 개에 펜 한 바퀴의 신공. 그래야 동그라미 선의 굵기가 일정하게 나오기 때문이다. 이 펜 굴리기는 자를 이용한 제도에서 모든 선을 그을 때 사용되던 비법이다.
원색 한국식물도감: 제대 후 대학에 복학할 때 그동안 원 없이 놀았으니 이제 제대로 전공 공부를 해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녹색 비닐 표지의 『원색 한국 식물도감』을 구입했다. 그러나 이 책은 자생 식물 위주로 구성되어 있어서 식재 설계 수업의 수종과는 거리가 멀었다. 하여, 책꽂이 구석에 존재감 없이 처박혔다. 졸업 후 설계사무실에 극적으로 취업한 나는 1990년대 초 어느 여름 강원도 산골의 리조트 프로젝트를 담당하게 된다. 이때 다시 이 식물도감을 꺼내게 되었다. 설계와 시공을 함께 하게 된 필자는 당시 사무실 수장인 정영선 선생을 통해 현장의 어마어마한 자연 자원을 접하고 주로 대상지의 자생 식물을 이용해 시공을 하게 된다. 어느 게 잡초이고 어느 게 활용 가능한 수종인지 구별할 능력이 없는 난감한 상황. 집에서 세 시간 반 걸리는 현장행 버스에서 식물도감을 책 읽듯 읽었다.
도감은 무릇 재미있는 책이 아니다. 처음에는 읽는 것 조차 힘들었지만, 현장에서 식물을 채취하고 도감에서 찾아보며 계속 도감을 읽어가자 점점 현장 식물에 친숙해졌다. 마침내 도감을 외우는 것이 아니라 채집 식물을 보고 도감에서 금방 찾아내는 단계까지 다다랐다. 수십, 수백 번 반복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식물 이름과 특성을 파악하게 되었다. 표지가 닳고 떨어져 투명 테이프로 몇 번이나 붙였다. 이런 과정을 이 프로젝트 이후에도 여러 번 반복했다. 식물과 친해져 식재 설계가 두렵지 않게 되었다. 사실 조경 설계를 할 때 식재 설계가 가장 어려운 것은 여러 독자나 나나 마찬가지다. 30년 가까이 조경 설계를 했으면서도 식재 설계가 아직도 가장 어렵다.
지금은 친구에서 빠진 담배. 예전에는 정말 많이 피웠다. 전자담배로 바꾼 요즘, 숨 쉬듯 연기를 생산하며 일을 하고 있기는 하다. 이제 담배는 설계를 더 오래 하기 위해서는 피해야 할 친구가 되어버렸다. 그저 추억 속의 설계 친구 중 하나로 기억하고자 한다. 나를 잘 아는 사람들은 이 글을 보며 좀 의아해 할지도 모르겠다. 오우가에서 왜 술이 빠졌냐고. 술은 친구가 아니다. 사랑이다.
작은 공간을 탐하다
#1 한 의뢰인이 우리 회사가 진행 중인 프로젝트를 인터넷으로 보고 알음알음 찾아 전화를 걸었다. 5만여 평의 수목원을 조성하고 싶다는 제안이었다. 그 후로 7년째 네 번의 사이트 변경과 콘셉트 변경, 수많은 보고를 통해 비로소 마스터플랜이 최종 결정되었다. 이제야 구체적인 투자비의 윤곽이 잡히고 설계가 실현되려 하는 프로젝트다.
#2 의뢰인이 너무 신경 쓰지 말고, 쉽고 간단하게 이것저것만 넣고 끝내 달라는 요구를 할 때도 있다. 한편으로는 아쉽지만 설계 전문 회사이니만큼 조금은 다른 콘셉트를 넣고 디자인에 쏟는 시간을 최소화해 속전속결로 끝을 내는 경우도 많다. 대지 조성과 건물 신축을 하고 준공 마지막에 조경 공사가 들어가니 어떤 경우는 까맣게 잊고 있는 프로젝트도 있다. 어느 날 갑자기 ◯◯현장이라며 전화가 오고 그때서야 이런 설계를 한 적이 있던가 자문하기도 한다. 고민을 많이 하지 않은 설계 대상지는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
#3 본인이 거주할 주택을 지으려는데 정원이 있으면 좋겠다고 한다. 현장에 가보니 골조는 거의 다 완성되었고 작은 마당과 작은 중정이 있는 개인 주택이다. 건축주는 아파트에 살다가 정원을 가지고 싶어 그간 모은 돈을 털어 집을 지었다고 한다. 자금이 부족하니 예산 안에서 최대한 멋지게 부탁한다고 한다. 건축주는 이미 본인의 정원을 그리고 있었다. 두세 차례 협의를 통해 정원의 방향을 잡는다. 그리고 3주 후 건축주는 그토록 그리던 정원을 갖게 되었다고 몇 번이나 감사의 인사를 한다.
대구 우방랜드, 인천국제공항, 행정중심복합도시 첫마을, 웨이하이포인트 골프 리조트, 하노이 반치 콘도 마스터플랜, 백학관광리조트 등 다수의 마스터플랜과 조경 설계. 내 이력을 대외적으로 소개할 때 전방에 배치하는 프로젝트명이다. 모두 수만 평에서 수백만 평에 이르는 면적을 자랑하는 대규모 프로젝트다. 규모가 회사의 실력을 보여주는 것은 아니지만, 적어도 수행한 프로젝트 규모에 의뢰인들은 신뢰감을 느끼는 모양이다. 저 정도의 규모를 수행했으면 내가 맡기는 프로젝트도 잘 하겠지라는, 일종의 위안을 받나 보다. 설계 사무소를 운영하고 고유 규모를 유지하려면 본인을 위해서도, 그리고 수장을 따르는 직원을 위해서도 대외적으로 널리 알려진 대규모 프로젝트나 사회적 이슈가 되는 프로젝트를 수행할 필요가 있다. 그래야 회사에 대한 애착과 자부심을 더 크게 느끼게 되기 마련이다. 하지만 모든 프로젝트가 그러하지는 못하니 회사 운영을 위한 프로젝트도 생기기 마련이다. 즉 어렵지 않게 진행하고 작업을 끝내서 높은 설계비는 아니어도 회사의 운영을 조금 더 원활하게 하는 프로젝트다.
크고 작은 신경을 많이 쓰며 험난한 과정을 거쳐 설계가 완성된다. 가늠하기 어려운 시간을 기다려야 설계가 실현되는 경우가 많다. 그 사이 시간이 참으로 길다. 어떤 경우는 공사 시기에 수종이 품절되어 수종을 바꾸는 설계 변경을 하자는 연락이 오기도 한다. 중요한 공간, 수종이 바뀌면 분위기가 너무 달라지는데….
정원은 의뢰인과 일대일로 대화하며 풀어간다. 대화 중 의뢰인의 성향을 파악하게 된다. 대화 중간중간 좋아하는 나무며 꽃 이야기를 한다. 정원의 분위기를 어떻게 만들어 갈 것인지 방향을 잡고 온 신경을 곤두세워 내가 알고 있는 꽃 이야기, 어딘가를 여행하며 본 풍경과 감흥, 계절별로 찾아오는 꽃과 단풍과 열매 이야기를 수다 떨듯 늘어놓기도 한다.
어떤 의뢰인은 “난 그거 싫더라. 어디 가면 뭐 있던데 그게 좋더라. 그리고 여기는 뭐 있으면 좋겠고 이거는 꼭 어딘가 들어갔으면 좋겠다”며 본인이 설계를 다 하는 경우도 있다. 의뢰인의 말을 도면에 옮겨 본다. 합리를 반영하고 불합리를 걸러내며 그의 마음에 들 만한 아이디어를 짜서 회심의 일격 기회를 엿본다. 아이디어가 내 맘에도 쏙 드는 경우는 빨리 협의할 날짜가 오기를 손꼽는다. 그렇지 않을 때는 준비하는 시간이 너무 짧다. “이걸 보여주면 깜짝 놀라겠지.” 기대를 안고 만난다. 의뢰인의 반응을 살핀다. “그거 언니네 집에도 비슷하게 했는데, 난 그거 싫더라.” 의뢰인의 한마디로 팔월 어느 더운 날 강아지 혀끝 쳐지듯 축 늘어진다. “이런 비전문가. 이 설계대로 하면 정말 좋아지는데, 가치를 몰라보고, 역시 너무 평범한 사람이야, 그냥 평범하게 해 줘버려?”
뭉개진 자존심은 회복되질 않는다. 그래도 고객님이 오케이 할 때까지 다시 심기일전, 다시 그리고 보고 고치고 근사한 CG 장전. “아, 좀 평범한 것 같은데.” 기대 반 걱정 반. “네, 이거 좋네요. 이렇게 되면 정말 예쁜 정원이 되겠네요.” 의뢰인의 반응이 의외로 좋다. “내가 잘못 봤나? 안목이 좀 있으시네?”
과천 한편에 자리한 꽃 시장은 이맘때면 늘 분주하다. 설계에 적용했던 식물의 상태를 살핀다. 이번 정원은 운이 좋다. 공사 기간에 맞게 식물의 상태가 아주 좋다. 가끔 끝물에 걸리거나 그해 식물 재배 상태가 좋지 않아 하는 수 없이 수종을 바꾸는 경우가 허다하다. 메인 식물을 고르고 그해에 새로 나온 수종을 살핀다. 월동 여부를 알아보고 개화 기간, 음지성과 양지성, 군식이 좋을지 독립성이 좋을지, 초장의 길이와 잎 색깔을 살핀다. 설계 도서에 없는 새로운 수종은 그해 시기에 맞아떨어지는 건축주에게는 귀한 선물이 된다. 땅을 갈아 엎고 배수로를 만들고 자연석 공사와 기타 구조물 공사를 마치면 교목 식재로 들어간다. 현장 조사 시 가릴 곳과 트여줄 곳을 현장에서 다시 실측해 식재한다. 관목 식재가 끝나면 계절별 다년생 초화류로 정원을 꾸민다.
작은 것이 아름답다 했는가? 정원을 만들고자 하는 의뢰인은 이미 교목보다는 꽃피는 관목에, 큰 꽃보다는 작은 꽃에, 원색보다는 파스텔 계통의 색에 더 감동한다. 하여 교목이 정원의 경관 틀을 만든다면 관목과 초화는 정원의 감동을 만든다. 내가 관목과 초화에 더욱 신경을 쓰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정원 100평을 기준으로 공사 기간이 약 3주 정도 소요되는 게 일반적이다. 설계부터 시공까지 별다른 차질 없이 진행된다면 한 달에서 두 달 정도면 상상하고 설계하며 꿈꾸던 무형의 형상이 하나둘 형체가 되어 눈앞에 나타나기 시작한다. 그와 동시에 설계하며 생각했던 것의 오류가 바로바로 확인되어 더 나은 방법을 찾게 된다. 시간이 있는 직원은 현장에 나와 식물과 디테일을 배운다. 일부러 각 정원 설계 담당자를 정해 놓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다른 설계하기도 많이 바쁘다는 걸 알지만 본인이 설계한 현장을 바로 볼 수 있다는 장점이 크다.
덩그러니 건축물만 지어진 대지에 풍경을 창조하는 작업. 생활하는 사람 가까이에 자연을 들이는 일. 흙가루 만지며 꽃의 표정을 읽고 제자리를 찾아주는 일. 주택의 안과 밖 풍경을 고려해 머무는 곳에 대한 애정을 듬뿍 안겨주는 일. 늘 미완의 작업이지만 시간이 완성으로 이끌어 간다. 그래서 작은 공간을 만드는 이 일을 사랑한다. 이 작은 공간을 사랑한다.
“모든 시인은 단 한편의 시를 꿈꾼다. 그 한편으로 자신의 생과 이 세계에 완벽하게 종지부를 찍을 수 있는 언어의 구조물을 꿈꾼다. 그러나 시는 그 자체로 결핍이며 미완이다. 시 앞에서 시인은 항상 탄식할 수밖에 없다.” _ 남진우 ‘신성한 숲’ 중에서(첫 회)
이재연은 특별할 것 없는 학벌과 스펙에 그저 풍류를 좀 즐길 줄 아는 이 시대의 평범한 조경쟁이다. 성균관대학교 조경학과를 졸업하고 조경설계 서안에서 17년을 근무한 후 2006년 조경디자인 린(주)을 설립해 현재에 이르렀다. 서안에서 국내외의 크고 작은 프로젝트에 참여하며 정원 공사의 디테일에 매료돼 린을 창립한 후 설계와 ‘정원 공사’를 병행하고 있다. 직접 설계하지 않은 것은 공사하지 않는다는 방침을 가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