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프리카’의 화염이 본격화되기 전인 지난 6월, 대구의 한 평범한 골목이 밤마다 오페라로 물들었다. 슬리퍼 끌고 반바지 입고 나간 동네 길. 그 일상의 환경에서 만난 ‘카르멘’은 그야말로 눈부셨다. 누군가에게는 첫 경험일지도 모를 ‘투우사의 노래’와 ‘하바네라’는 강렬했다. 거리에 앉거나 선 사람들에게 손에 잡힐 듯 가까운 배우들, 모든 자리가 R석이었다. 무대가 된 메타세쿼이아 나무와 주변의 무덤덤한 3층짜리 콘크리트 건물들이 그날따라 그렇게 멋있게 보일 수가 없었다. 게다가 훌륭한 음향 반사판이었다. 차 없는 거리는 하늘로 열린 아레나였다. 화이불치華而不侈, 오페라 축제지만 사치스러움은 느껴지지 않았다. 그날 밤 모인 수백 명의 사람들은 아스팔트에 신문지를 깔고 앉아 ‘카르멘’에 취했고, 우리의 상상은 어느덧 세비야의 골목길을 내달리고 있었다.
방천골목오페라축제는 그야말로 골목의 축제였다. 같은 콘텐츠라도 건물 안에 있던 것을 밖으로 끄집어내면 완전히 다른 이야기가 된다는 사실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사례다. 오페라하우스 건설에 드는 뻑적지근한 비용을 고려하면, 왜 이제껏 골목이 오페라의 무대가 되지 못했을까 오히려 의구심이 들 정도였다. 공연장 하나를 짓는 비용으로 방천골목오페라축제는 수백 년간 열릴 수 있을 것이다. 이탈리아 베로나Verona가 2,000년 전에 지은 원형 경기장을 사용해 매년 도시 인구의 두 배에 달하는 50만 명을 끌어들이고 있는 예나, 미국 매사추세츠의 작은 마을 레녹스Lenox의 탱글우드Tanglewood 잔디밭에서 벌어지는 유명한 클래식 음악 축제를 굳이 들먹이지 않더라도, 한국의 지방 도시 골목 오페라의 사업적 타당성과 미래는 무척 밝아 보였다. ...(중략)...
최이규는 1976년 부산 생으로 뉴욕에서 10여 년간 실무와 실험적 작업을 병행하며 저서 『시티오브뉴욕』을 펴냈고, 북미와 유럽의 공모전에서 수차례 우승했다. UNKNP.com의 공동 창업자로서 뉴욕시립미술관, 센트럴 파크, 소호 및 대구, 두바이, 올랜도, 런던, 위니펙 등에서 개인전 및 공동 전시를 가졌다. 현재 계명대학교 도시학부에 생태조경학전공 교수로 재직하며 울산 원도심 도시재생 총괄코디네이터로 일하고 있다.
* 환경과조경 353호(2017년 9월호) 수록본 일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