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와 자주 일하는 한 건축가는 장소적 맥락과 동떨어진 채 설계가의 자의식이 과하게 드러나는 작업을 매우 싫어한다. 그는 장소의 물리적·비물리적 맥락을 정리해 용도에 맞게 재구성하는 것이 디자인에 적합한 결론이라고 생각한다. 반면, 내가 일하고 있는 JCFOJames Corner Field Operations의 많은 디자이너는 때론 맥락과 연관성이 적더라도 누가 봐도 감탄할 만한—때론 화려한— 공간 디자인을 선호한다. 건축은 도figure고 조경은 지ground라는 특성상 전자는 그만의 것을 드러낼 때가, 후자는 맥락에 기댄 설계 해법이 흔하다는 것을 생각하면, 이러한 현상은 꽤 특이한 경우라고 할 수 있다. 내가 처해 있는 이런 이질적 환경은나의 설계하는 법에 지대한 영향을 끼칠 수밖에 없을 것이다. 단일하고 일관된 방식을 고수함으로써 깊이 있는 영역을 굳혀 나가는 것과 열린 방식을 바탕으로 더 넓은 영역을 탐구해 나가는 것 중 어느 쪽이 바람직한 길인지는 확실치 않지만, 앞에서 언급한 이질성은 나의 방법론을 아직 후자에 머물게 한다.
‘나’의 설계하는 법이라고는 하지만 그것은 오직 나 자신뿐만 아니라 주변의 상황과 사람들에 의해, 조경만이 아닌 미술, 도시, 건축의 영향으로 그 색이 조금씩 다르게 나타나기 마련이다. 이번 글에서는 나에 대한 이야기보다는 주변 사람들과 그들 속 나의 이야기, 조경에 대한 이야기보다는 다른 분야와 함께한 공간 디자인 이야기를 해보려 한다. 다섯 명의 디자이너가 공동 작업했던 ‘세종대로 역사문화공간 설계공모’의 작업 과정(『환경과조경』 2015년 11월호 참고), 그리고 내 주변 디자이너 두 명의 이야기다. 세종대로 공모전은 상하 위계 없는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가 모여 진행한 작업으로, 구체적으로 어느 분야의 전문가가 어떤 방식으로 작업에 참여했는지 보여주기에 적합하다. 다수의 프로젝트에서 나와 공동 작업한 상반된 스타일의 두 디자이너 이야기는 그들 사이의 중간자와도 같은 내 모습을 보여주기에 적당할 것이다. ...(중략)...
전진현은 스튜디오 MRDO(Studio MRDO)를 공동 설립해 조경뿐 아니라 더욱 확장된 영역에서 디자인을 실험·연구하고 있다. 서울대학교 조소과 졸업 후 서울대학교 환경대학원과 하버드 GSD에서 조경학 석사 과정을 마쳤다. GSD 입학 전 신화컨설팅에서 근무했고, 현재 제임스 코너 필드 오퍼레이션스(James Corner Field Operations)에서 조경 디자이너로 일하고 있다. 보더스: DMZ 지하 대중목욕탕(Borders; Korean DMZ Underground bath house Competition), 세종대로 역사문화공간 설계 공모, 서울 도시 디자인 공모전 등 다수의 공모전에 당선되었다. www.studiomrdo.com
* 환경과조경 352호(2017년 8월호) 수록본 일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