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리창 너머 일요일의 게으른 햇살이 따사롭다. 다음 달이면 저 폴딩도어도 모두 열어젖히고 야외 테이블을 놓겠지. 자전거를 타는 사람들이 한가롭게 보인다(아 부럽다). 내가 이 카페 창가 테이블에 앉아있다는 것은, 『환경과조경』 5월호 모든 원고의 편집과 디자인이 끝나고 마지막 원고, 그러니까 이 지면만 남았다는 뜻이다. 이번 호에도 주옥같은(!) 기사가 많다. 하나하나 떠올려보면 이번 호도 결국은 무사히 마무리되었구나 하는 안도감이 밀려온다.
빅데이터, 착시를 넘어 탐색을
“제가 잘 모르는 분야여서요.” 이번 호 특집, ‘빅데이터와 도시’ 기획을 위해 수차례 반복한 말이다. 이해가 덜 되었다면 주제를 바꿔야하는 것이 아닌가 생각하기를 역시 수차례. ‘빅데이터와 도시’를 기획 중이라고 하면 사람들의 반응은 두 가지로 나뉘었다. 우선, “재밌겠는데”. 지난해부터 편집부는 ‘빅데이터’와 ‘도시’를 키워드로 특집을 해보자는 대화를 종종 나눠왔다. 4차 산업혁명 운운하는 최근의 트렌드에 조응하면서도 디자인의 지평을 넓혀 줄 기획이라는 ‘막연한’ 기대와 호감이 있었다. (이 달의 어려움은 이 ‘막연한’ 기대에서 비롯되었다) 사람들의 또 다른 반응은, “빅데이터? 이미 한참 회자된, 식상한 이야기 아니야?” 내지는 “어느 어느 매체에서 많이 다루고 있지 않아?”였다. 시의성이 중요한 잡지의 속성상 새로운 소식이나 남다른 통찰을 제시하지 못한다면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그런데 이상하지 않은가? ‘빅데이터’라는 키워드는 익숙하지만 막상 이러한 개념이 녹아든 국내 환경 설계 사례나 전문가를 찾기는 쉽지 않았다. 그러다 우연히 컴퓨터공학 관련 학회의 웹 사이트에 들어가게 되었는데, 올해 학술대회 초대의 글이 딱 우리에게 하는 말처럼 보였다.
“작년까지만 해도 어디를 가나 사물인터넷에 대한 관심이 들끓었습니다. 사물간의 네트워크 활성화가 마치 살아있는 생물의 신경 네트워크처럼 진화하는 미래를 그리며 모두들 흥분하고 곧 재편되는 시장 질서에 촉각을 곤두세웠더랍니다. 그 전해에는 빅데이터에 대해 같은 일을 우리는 했었고요. 하나의 기술적 이슈가 너무 거세게 타오르면서 실존적 전망과 구체적 상황에 대한 착시 현상을 일으키기도 하는 일들을 매년 우리는 느끼고 … 올해는 뭐였었나요. 아마 인공지능과 로봇으로 한참 뜨거웠었고 아직까지도 그렇지 않나 싶습니다. 물론 기술에 대해 민감하게 대응하고 전략을 만들고 시장을 선점하는 일은 중요한 일입니다. … 그러나 기술에 대한 이슈가 뜨거울수록 기술과 공존하는 실존의 리듬과 온도를 조율하는 일이 중요합니다. 조율의 권리와 책임에 대한 유연하고도 적합한 태도를 만들어가는 일은 화려한 슬로건이 아니라 차분하고도 엄격한 지적 훈련을 통해 가능합니다. … 급하게 뜨거워지고 급하게 식는 기술과의 공존의 온도를 적절히 조율하는 일은 언제나 인간인 우리의 일이기 때문입니다.”
이 글을 본 후로는 비단 컴퓨터 분야뿐만 아니라 설계 분야에서도 빅데이터를 비롯한 요즘 회자되는 많은 기술이 일종의 착시 현상을 일으키고 있는 것이 아닐까 생각했다. 그래서 “다 아는 이야기가 아닐까요?”라며 주저하는 필자들에게 좀 더 자신 있게 개인적 경험을 공유해 줄 것을 부탁했다. 독자들의 지적 수준이나 정보력을 의심해서가 아니다. ‘빅데이터’라는 이슈는 (최소한 국내에서는) 여전히 설계 분야와 많은 접점을 찾지 못한 채 유행처럼 소비되고 있다는 생각에서다. 또 빅데이터가 진지한 주제로 충분히 다뤄졌는가 역시 의문이다. 기대했던 대로 필자들의 글에서는 손에 잡히지 않았던 빅데이터를 다루는 일이 구체적이고 생생하게 드러나 있었다. 새로운 통찰을 제시했는가는 독자들이 판단할 일이지만 지금 필요한 것은 구체적 사례를 공유하고 비판적 탐색을 위한 길을 여는 것이 아닐까 싶다.
김 씨, 한강에서 표류하다
개인적으로 이번 호에서 빼놓을 수 없는 기사가 ‘한강예술공원’이다. 4월의 첫 번째 토요일. 내내 쌀쌀하던 날씨가 아주 화창했다. 여의나루역에서 지상으로 올라오니 별생각 없이 입고 나온 봄 코트가 부끄러워졌다. 여의도한강공원을 활보하는 사람들은 하늘하늘한 옷차림으로 완연한 봄을 만끽하고 있었다. 그날은 HLD의 이해인, 이호영 소장이 참여한 바지선 작업, ‘한강의 옛 기억을 담은 미술관’의 아티스트 토크에 참여하기로 했더랬다. 마포대교 동쪽에 정박한 바지선에 우리를 데려다줄 수상택시에 올라탔다. 함께 참석한 S 소장과 수다에 정신이 팔렸는데, 선장님의 분위기가 심상치 않다. 어딘가에 무전기로 핸들이 말을 듣지 않는다는 상황을 아주 담담한(!) 목소리로 전했다. 무전기 저편에서는 곧 새로운 택시를 보내주겠다고 했지만 한강 한가운데에 떠 있는 우리들에게는 꽤 긴 시간이 흐른 것처럼 느껴졌다. 그 사이 우리들은 한강에서 표류하다니 웬일이냐며 택시 승선 전에 예쁘지 않다고 투덜거리며 입은 구명조끼의 사용법을 확인했다. 기다림의 시간이 길어지면서 침묵이 흐르기도 했다. 완전하게 제어되고 있다고 믿었던 대도시 안에서 자연의 힘을 실감했다면 과장일까. 제방과 강변도로로 만들어진 지금 한강의 모습에는 수십 년에 달하는 치수의 역사가 담겨있다. 이제 와서 인간과 강을 갈라놓은 제방과 도로를 비난하지만 일 년에 한번 혹은 몇 년에 한번 씩 휩쓸고 가는 강의 힘을 두려워하고 통제하려고 했던 것도 이해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든다. 기억을 더듬어 보면 매년 수재 의연금을 내던 것이 불과 20~30년 전 일이다. 이제 우리는 어떻게 한강과 만나야 할까.
그날 나는 무사히 바지선을 구경한 뒤 뭍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 그리고 며칠 뒤 은병수 총감독을 인터뷰했다. 처음 보도 자료를 휘휘 넘겨볼 때만 하더라도 조그만 공공예술 작품 몇 개가 한강의 풍경에 큰 영향을 주겠나 싶었다. 그러나 ‘표류’ 사건 이후 만난 은병수 총감독의 이야기에는 감동이 있었다.
“우리는 한강을 계속 개발해왔다. 강변도로를 놓고, 아파트를 짓고, 그를 위해 강을 준설하고 … 그간 한강도 너무 시달렸다. 적어도 우리 사업에서는 한강의 지형을 크게 바꾼다거나 하지 않고 자연에 순응하고자 했다.”
한강예술공원 본 사업을 기대해 본다.
이번 호를 되짚으며 마지막 글을 쓰다 보니 창밖의 해도 기울었다. 옆 자리에서 한숨을 푹푹 쉬며 키보드를 두들기던 남자도 어느새 자리를 떴다. 야호, 나도 마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