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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생각, 새로운 공간] 홍정완 상화원 원장
서해의 비원, 보령 상화원
  • 환경과조경 2017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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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 어떤 이가 만든 비밀의 정원이 있다. 처음엔 그저 홀로 즐기기 위해 시작됐지만, 어느덧 20여 년이 지난 지금 이곳은 누구나 찾아가 쉬며 누릴 수 있는 곳이 되었다. 정원의 둘레를 휘감는 1km 넘는 지붕 회랑을 만든 수고로움이 그것을 단적으로 말해준다. 섬을 찾는 평범한 보통 사람들이 보다 근사하고 편안하게 정원을 즐길 수 있도록 만든 것이다. 고된 시간과 예사롭지 않은 신념 없이는 불가능한 프로젝트다. 게다가 급히 완성할 목적으로 효율성만 추구하지도 않았다. 원래 살던 죽도 주민의 발자국이 겹쳐져 생긴 오솔길을 따라 오르면 오르는 대로, 내리면 내리는 대로, 틀어지면 틀어지는 대로, 땅의 흐름과 박자를 맞추며 천천히 조급하지 않게 지었기에 3년 넘게 걸렸다고 한다. 도중에 만나는 나무는 하나라도 베는 일없이 곁을 돌아가거나, 아예 회랑 바닥과 천정에 구멍을 내는 식으로 품어버렸다.

 

조화를 숭상한다는 이름에 걸맞은 회랑이다. 그러기에 상화원은 비단 아름다운 풍광뿐만 아니라 시간의 가치를 느낄 수 있는 곳이고 뜻과 의지의 소중함을 느낄 수 있는 곳이다. 언뜻 단순해 보이는 경치를 가진 이곳을 많은 사람들이 찾고 감정적으로 진한 무언가를 느끼며 또 존경스런 마음으로 거니는 것은 바로 그런 이유 때문일 것이다. 급조된 것만 성행하는 우리 사회에서 뭔가 다른 내면의 성숙과 정직한 부지런함이 느껴지기 때문일 것이다.

 

상화원에는 복원된 아홉 채의 한옥이 있는데, 특히 행랑채들이 두드러진다. 『한옥의 섬』이란 책에도 표현되었듯, 행랑이란 여러 사람이 드나들며 대화를 나눌 수 있어서 사랑채보다 훨씬 자유롭게 열린 공간이다. 상화원 자체가 하나의 푸근한 행랑채와 무척 잘 어울린다는 느낌을 준다. 상화원의 시설은 과하지 않고 약간 부족하게 비어있는 듯한 인상을 주면서 필요한 것을 간소하게 갖추어 놓았다. 카페나 식당이 없고, 식사는 외부에 있는 음식점을 이용하도록 권하고 있다. 비지터 센터에 해당하는 의곡당에서 간단한 커피와 차를 제공하고 있으며, 한옥 복원 지역 내의 한옥은 모두 개방되어 있어 들어가면 셀프서비스로 차를 마시며 쉴 수 있도록 하고 있다. 회랑길에는 무인 생수 판매대가 있어 물을 사먹을 수 있는 정도다.

 

산과 계곡에서 시끌벅적 배불리 먹고 마시고 취하는 우리네 풍조에 대한 주인장의 사뭇 정갈한 대안인 듯하다. 대신 해변독서실, 해변연못, 조각정원, 해송의 숲, 하늘정원 등 책과 예술, 물과 생명, 하늘과 바다처럼 보다 비물질적이고 정신적인 측면에서 섬을 즐기라는 메시지를 뚜렷이 읽을 수 있다.

 

상화원의 또 하나 우수한 점은 한국적 미를 표방한 정원임을 강조하면서도 한옥과 전통 정원의 공식에 얽매이지 않고 스스로의 판단을 바탕으로 부지 상황에 맞는 배치를 융통성 있게 전개한 점, 그리고 실제 이용 측면에서 실용성을 중시한 점이다. 전국 각지에서 값비싼 세금으로 조성된 진정성(authenticity) 없는 재현 한옥 시설이 문을 걸어 잠근 채 비바람을 맞으며 낡아가는 가운데, 상화원은 한옥의 보존과 재사용에 대한 탁월한 선례를 제시하고 있다. 유물로서의 한옥이 아니라 현대의 라이프스타일에 부합하는 한옥의 복원. 오래된 원 재료의 소중함을 자각하고 이건과 복원이라는 힘들고 의미 있고 비싼 길을 택해 세워진 소중한 한옥이라 더욱 더 철저한 보존과 갖가지 금지 목록이 나열될 법하지만, 상화원을 만든 분은 이래도 되나 싶을 만큼 과감하게 사람들의 손길과 발길이 마음 가는 대로 드나들도록 한옥을 열어두었다. 그만큼 관람객들을 믿는다는 뜻이겠다. 관람객 또한 그런 의중을 알기에 경우 있는 사람이라면 사뭇 몸가짐을 살피며 고맙게 이용할 것이다. 그런 한옥에는 그저 얼마간 앉아만 있어도 좋다. 수백 년 세월의 때가 묻은 대청마루에서 옥빛 남쪽 바다를 바라보며 마시는 차 한 잔의 감동은 결코 소박하지 않다. 캐나다산 소나무로 새로 지은 한옥이나 콘크리트 건물로는 대체할 수 없는 감동이다. 섬의 원주민들이 일구던 계단식 밭에 심겨진 한옥들이라 흡사 지중해의 해안 마을과 같은 느낌을 주기도 한다. 현대 주거의 특징이라 할 수 있는 바다를 바라보는 워터프런트 조망과 고전적 한옥이 합쳐진 느낌이 묘하다. 먼 길을 이사 온 한옥들이지만, 여기 상화원에서 제대로 된 고향을 찾은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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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옥과 바다라는 언뜻 생소한 결합을 통해 방지와 정자라는 기존 한국 정원의 틀을 넘어서고 있다. (사진제공: 상화원)

 

전국의 많은 한옥이 거주자의 노령화와 관리 비용 및 수리의 난항으로 인해 사라져 가고 있다. 목재와 기와처럼 쉽게 구하기 힘든 재료, 기술자의 부족 등 한옥을 고쳐가며 사는 일에는 상당한 고충이 따른다. 교통이 불편한 산간벽지일수록 사정은 더하다. 이런 상황에서 한옥을 적절히 관리하고 실용적 목적으로 사용할 수 있는 장소에 집결시켜 보존하고 활용하는 것은 매우 현실적인 대책이다. 한국적인 것이 무엇인가 또는 한국 정원의 특징이 무엇인가에 대한 이론적이고 소모적인 논쟁을 상화원은 현실에서 명쾌히 해결하고 있다. 김치와 된장 맛을 아는 사람이 만든 정원은 한국 정원이 되지 않을 수 없다는 자신감과 자기 확신을 상화원에서 느낄 수 있다. 이건 중국식이네, 저건 일본풍이네 하는 분류는 더 이상 논쟁의 가치가 없다. 아무리 다양한 문화적 힌트를 섞어놓았다 할지라도 한국 정원이라는 아이덴티티가 손상된 느낌이 전혀 없다. 오히려 상화원이라는 한국 정원은 우리가 그동안 해외에서 보고 배운 다양한 문화를 흡수하고 소화해 적극적으로 표현했다는 인상을 준다. 어떤 이가 편협한 순수주의에 갇혀 그러한 절충적 요소를 배제하는 것만이 한국 정원의 진수라 주장한다면 그것은 자가당착에 불과할 것이다.

 

늦가을임에도 상화원에는 상당히 많은 사람들이 붐비고 있었다. 여름 성수기에는 하루에 약 천여 명이 다녀간다고 한다. 대천과 무창포 해수욕장으로 제법 알려진 보령이라 해도 먼 길을 달려 웬만한 미술관이나 박물관보다 비싼 입장료를 내고 이곳 정원을 보러 오는 사람들이 많다는 사실은 꽤나 인상적이다. 대한민국 국민이 원하는 정원이란 분명한데, 조경을 업으로 삼은 사람들이 오히려 그것을 잘 이해하지 못했던 건 아닐까 하는 상념이 들기도 한다. 이른바 창조적 자본주의의 시대. 국가가 주도하는 거대한 몇몇 제조업의 전국적 파급 효과를 주장하던 시대를 지나 이제 각 지자체가 알아서 살 길을 찾아야 하는 시대다. 상화원은 분명 훌륭한 자원이다. 보령과 충청남도도 상당한 관심을 가지고 도와주려 한 흔적이 있다. 하지만 상화원을 이해하고 상화원의 창조자 홍상화 선생의 뜻을 과연 깊이 이해했을지는 의문스럽다. 개인이 사비를 들여 정성껏 가꾸어 온 섬이 이 정도 수준에 이르렀다면, 공적 영역은 그러한 노력에 맞는 화답을 해야 한다. 그러나 입구에 상화원의 콘셉트와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보물섬이라는 이름의 게이트 구조물을 설치한 것이나, 관에서 조성한 티가 역력한 주차장과 안내도, 화장실 등은 실망스럽기 그지없었다. 상화원 외부의 난잡한 상업 시설과 경관, 도로, 공적 공간은 개탄스럽기까지 하다. 상화원을 조성한 분의 안목에 걸맞은 장기적이고 통합적이며 섬세한 계획과 설계가 뒷받침되었다면 얼마나 근사할까 큰 아쉬움을 남기는 대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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웰컴센터의 역할을 하는 의곡당. 고려 후기 건축으로 추정되는 화성 관아를 이건해 복원했다. (사진제공: 상화원)

 

앞서 지난 달에 밝힌 대로, 이번 인터뷰 시리즈의 축은 두 가지다. 하나는 장소, 다른 하나는 인물. 빼어난 장소는 결코 쉽게 생겨나지 않는 법이다. 한 인물의 착상과 고통이 동반된 실천이 시간에 녹아들어 농축된 산물이다. 따라서 장소의 핵심을 파악하려면 무엇보다 그것을 만든 사람을 알아야 한다. 그래야 피상적 이해를 넘어설 수 있다. 어떤 생각으로 만들었는지가 실제 공간보다 더 흥미로울 가능성도 많다. 설계자의 입장에서 상화원을 둘러보면서 아무도 모르게 서해의 비원을 가꾸어온 홍상화 선생에 대해 사뭇 궁금한 감정이 생겼다. 가우디의 구엘 공원이 연상되기도 했는데, 일견 그로테스크하고 절충적(eclectic)인 스타일 때문일 수도 있고 가우디의 정열이 공명되어서일 수도 있겠다. 어쨌든 이 환상적인 섬을 만든 분은 가우디와 같은 기인의 범주에 포함됨이 분명해 보였다. 사정상 이번 인터뷰에서는 홍상화 선생을 대신해 현재 상화원 원장이자 모 회사인 ㈜한국컴퓨터지주의 대표이사 사장을 맡고 있는 홍정완 씨를 만났다. 바쁜 일정 가운데 시간을 내준 홍정완 대표에게 감사드린다.

 

Q. 상화원 조성의 시작이 궁금하다.

A. 부친이 죽도의 상화원 부지를 구입하신 건 1973년 무렵이다. 그 후 1974년 한국컴퓨터지주를 설립하고 사업에 매진하시면서 섬에 큰 관심을 가지신 것 같지는 않다. 그러다 1988년에 회사 경영 일선에서 물러나시면서 소설가로서 활동하시게 되었는데, 1993~1994년 「조선일보」에 연재된 장편 ‘거품시대’ 집필을 위해 섬에 머무르신 것이 죽도를 정원으로 가꾸는 데 관심을 가지게 된 계기인 듯하다. 별다른 변화가 없었던 섬이 상화원으로 탈바꿈하기 시작한 게 그 무렵이라 하겠다.

 

Q. 초기에는 집필 장소로 쓰려는 소박한 뜻이었던 것 같다.

A. 보령에 연고는 없다. 무창포에 가족의 작은 별장이 있었다. 어렸을 때부터 피서를 오곤 했고, 부친이 섬을 구입하게 된 건 누군가의 부탁에 의해서라고 들었다.

 

Q. 아이러니하게도, 만약 현지인 소유였다면 죽도는 간척지의 일부가 되어 사라졌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방파제 후면 도로 덕분에 섬이 육지에서 매우 가깝다. 접근성 측면에서 유리한 것으로 보인다.

A. 현재 죽도와 육지를 잇는 남포방파제는 간척 사업의 일부로 1980년대에 공사가 시작되었는데, 다행히 죽도를 바다 쪽으로 보존한 채 진행되었다. 방파제 후면 도로가 완료되면서 원래는 뭍에서 한 4.5km 떨어져 있던 섬이 육지와 이어지게 되었고, 본격적으로 정원 조성을 시작할 수 있는 발판이 되었다. 그런데 1997년 IMF 사태로 모든 것이 중단되게 된다. 한때 경제적 이유로 호텔과 대규모 콘도 건설 계획이 추진되었으나 착공 직전 부친이 “이곳은 후손에게 정원의 형태로, 자연 그대로 남겨주어야겠다”고 마음을 바꾸셔서 애초의 정원 계획으로 돌아가 현재 한국식 전통 정원인 ‘상화원’에 이르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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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령산 석재를 이용해 수작업으로 조성된 33개의 해변연못. 물이 부족한 섬에 생태적 풍부함을 더해주는 설계 전략으로도 볼 수 있다. ⓒ최이규


Q. 한국 정원으로서 상화원의 주요 요소는 무엇인가?

A. 상화원 한국 정원 조성의 축은 세 가지로 볼 수 있다. 첫째, 섬의 남쪽 사면, 기존 주민 10여 가구가 거주하던 훼손된 임야에 전국 각지의 전통 한옥을 옮겨와 복원했다. 고려 말기 건축물로 추정되는 경기도 화성 관아였던 ‘의곡당’, 전북 고창군 아산면 구암리 ‘홍씨 가옥’을 비롯해 충남 홍성군 행정리 ‘오흥천씨 가옥’, 충남 청양군 남양면 대봉리 ‘이대청씨 가옥’, 충남 보령시 주산면 야룡리 ‘상씨 가옥’ 등 일부 붕괴됐거나 폐가 직전까지 내몰렸지만 집주인이 사실상 보수·유지를 포기한 한옥들을 사들여 이건 후 복원했다. 의곡당은 발견 당시 화성 시내 재래시장 내의 다방으로 사용되고 있었는데, 훼손이 너무 심했지만 기둥과 대들보가 남아있었기에 300만 원에 매입한 후 옮겨서 복원했다. 손상된 부분의 복원에 쓸 자재를 찾기 위해 강원도 삼척부터 전국 각지를 조사하기도 했다.

 

둘째, 섬의 북측 지역에는 수목 사이로 방갈로를 앉히고 건물 위를 이어 송림을 즐길 수 있는 옥상 정원을 마련했다. 원래 숲이었던 지역이라 나무를 베지 않고 숙박 시설을 만드는 게 매우 힘들었다. 숙박 시설은 상화원이 관광특구로 지정되면서 지켜야 할 의무 사항이다. 나무 사이로 건물을 앉히고 지붕 층을 모두 목재 데크로 이어 하늘정원이 되도록 했다. 현재 방갈로는 25인 이상의 단체에게만 예약을 받고 있지만, 상화원의 모든 관람객이 하늘정원을 통해 전망과 솔숲의 정취를 즐길 수 있도록 배려한 것이다.

 

셋째, 해안가를 따라 돌담을 쌓고 서로 이어진 33개의 연못을 조성했다. 2만 평 남짓한 작은 섬이다 보니 위에서 흘러내려오는 물이 많지 않다. 산 중심에서 흘러온 계류가 차례차례 연못들을 채우고 캐스케이드 형식으로 아래로 흘러가는 구상이었지만, 갈수기에는 인공적으로 물을 공급하고 있다.

 

이 세 곳을 연결하는 것이 회랑이다. 1km가 넘는 지붕 회랑은 세계에서 가장 긴 것이다. 약간의 높낮이 변화가 있어 유모차를 끌 수는 없지만, 섬의 대표적인 풍광과 장소를 하나로 이어주는 대표적 요소로서 상화원의 상징이 되었다.

 

Q. 특별한 외부 전문가의 개입 없이 홍상화 선생이 거의 독자적으로 상화원을 조성해 오신 까닭에 상당히 강한 개성이 곳곳에 배게 된 것 같다. 그래서인지 언뜻 이해하기 힘든 모습들도 있다. 가령 섬 둘레를 따라 해변연못을 조성한 점이 그렇다. 보통 바다를 낀 곳은 바다를 바라보는 조망에 집중하게 되지 않나?

A. 해변연못에 상당한 비용과 노력이 든 게 사실이다. 보령은 예로부터 벼루를 만드는 오석으로 유명한데, 여기서 채석된 돌을 섬으로 옮긴 후 사람이 일일이 맞춰 쌓아가며 연못을 만들었다. 인력과 시간이 많이 들었다. 부친은 정원 내에서 볼 수 있는 작은 연못이 꼭 필요하다고 생각하셨던 것 같다. 각 연못에 서로 다른 수생 생물의 고유한 특성을 담아내기 위한 의도도 있다. 약간의 종교적 의미도 있다. 천주교 신자인 부친은 예수가 살았던 33년을 상징해 서른세 곳의 연못을 조성한 것이다. 실용적인 의도는 없다고 본다. 순전히 미학적인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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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km가 넘는 상화원의 회랑은 기존 한국 정원의 점적 요소를 극복하고 현대 오픈스페이스의 특징인 선형성을 적극 도입한다. 걷기라는 능동적이고 사색적인 휴식 행위를 통해 경관 경험을 극대화한다. ⓒ최이규

 

Q. 인력으로 오랜 기간에 걸쳐 만들어서인지 연못 돌담의 손맛이 참 좋다. 바다를 향한 큰 경치와 동시에 갖가지 작은 풀과 햇빛이 어우러지는 아기자기한 연못이 있어 자칫 삭막해질 수 있는 해안가에 생명의 풍부함이 더해진 듯하다. 섬이란 원래 물이 부족한 곳이기 마련인데 물이 흐르는 개울이 있어 풍성하고 안락한 느낌을 주지 않나 짐작된다. 그 연못을 따라 회랑이 이어진다. 섬을 둘러서 조성된 회랑은 편하게 한 바퀴 일주를 할 수 있게 하는 멋진 설계다.

A. 원래 섬 주민들이 다니면서 자연스럽게 난 길을 따라 만든 것이다. 날씨가 궂은 날 하이힐을 신고도 섬 전체를 둘러볼 수 있다. 회랑은 섬 둘레를 포괄하는 동시에 주요 시설인 한옥 지구와 빌라 단지를 연결해주는 네트워크 역할을 한다. 회랑을 따라가다 보면 곳곳에서 해변연못과 개울을 만날 수 있으며, 바닷가 쪽으로 이어지는 해변 테라스로 내려가면 암반과 파도를 마주할 수 있다. 회랑에 설치된 벤치와 앉음벽은 낙조를 즐기기에 최적의 장소다.

 

부분적으로 만들어졌던 걸 모두 이은 것은 2013년 3월이다. 조성하는 데 3년이 걸렸다. 유지도 쉽지 않다. 상화원의 회랑은 근본적으로 설계도에 따른 공사가 힘들다. 다양하고 미세하게 변화하는 현장 여건 때문이다. 길이 오르락내리락 함에 따라 적당한 구배와 적절한 폭의 계단이 필요하며, 기존 수목을 옮기지 않고 피하거나 회랑 바닥과 천장에 구멍을 내어 나무를 품을 수 있게 만들었다. 그때그때 상황에 반응해서 부친이 고집스럽게 직접 나서 공사를 돌보셨다. 장소에 따라 그 자리에서 결정할 일이 많다. 혹시 한옥 지구 사이로 배치된 회랑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는가? 주변 한옥과 이질적이지는 않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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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이규


Q. 일단 회랑의 일관성이라는 측면에서 긍정적이다. 각기 다른 지방에서 모인 다른 시기의 한옥들이 한 곳에 밀집하면서, 금방 눈에 띄지는 않지만 규모나 스타일이 사뭇 달라서 전체적으로 절충적 성격을 띠는 게 사실이다. 그러기에 섬을 둘러싸는 회랑이 한옥촌을 따라 이어지면서 통일감을 주는 것도 좋다고 본다. 아스팔트 싱글은 사실 가장 미국적인 재료 중 하나인데, 패턴과 색의 사용에 따라 시각적 효과에 큰 차이가 난다. 회랑의 느낌이 무겁지 않고 흐르는 느낌을 주는 점은 큰 장점이다.

A. 아스팔트 싱글을 사용한 건 물론 비용 측면 때문이다. 또 염분이 많은 해안 지역이기 때문에 내구성도 좋고 설치 면에서 상당히 간단하다는 장점도 있다. 계획했던 회랑의 길이가 상당하기 때문에 기와나 초가를 썼다면 공사 기간도 연장 됐을 것이고, 정기적인 수리에 많은 비용과 에너지가 소요됐을 것이다. 지적하신 대로 부분적으로 회랑의 지붕 색상이 밝은 갈색 톤이라 한옥 지붕에 비해 튀는 면이 있는데, 시간이 지남에 따라 점차 톤다운 되면서 나아지리라 예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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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이규

 

Q. 자연스럽게 이끼라도 끼게 되면 멋질 것 같다. 섬 북서쪽의 빌라(방갈로)에는

모던한 스타일을 택했는데?

A. 빌라의 건축적 스타일에 대해서는 호불호가 갈린다고 본다. 모양이 비행선 같다는 사람도 있다(웃음). 하지만 1990년대 당시 빌라 계획에서 주안점을 둔 것은 그곳 솔숲에 있던 나무들을 해치지 않고 건물을 배치한다는 생각이었다. 1층 평면이 2층에 비해 작은 것도 최대한 지면에 대한 훼손을 줄이겠다는 의도다. 숙박을 최대한 많이 받을 수 있도록 효율적인 평면이 나와야 했기에 쉽지는 않았다. 각각의 유닛은 실내 계단으로 이어진 복층 구조이며, 숲과 해변연못, 바다를 향한 전망을 위해 통창을 채용했다. 기본적인 숙식 시설 외에 옥상으로 통하는 원형 계단이 특징이고, 낮에는 선탠을 즐기고 밤에는 별을 감상할 수 있는 유리방과 노천탕을 갖추고 있다.

 

부친은 빌라 또한 숙박객만을 위한 배타적 공간으로 두지 않고, 20여 동의 옥상을 데크로 이음으로써 일반 방문객도 경치와 분위기를 즐길 수 있는 하늘정원을 배려했다. 옥상에 큰 면적의 데크를 설치하는 건 습기 배출 등 여러 면에서 어려운 작업이고 건물에 무리를 줄 수 있다. 하지만 빌라 지구 또한 개방하고 나눈다는 취지가 더 중요했다.

 

관광특구로 지정 받고 나서 호텔과 리조트를 짓겠다는 투자자가 나서기도 했다. 하지만 대규모 호텔이 들어설 경우 건물뿐만 아니라 소방도로, 수로 등 부대시설로 인해 숲의 훼손이 불가피하다. 때문에 어느 정도 추진을 하다가 비전문적이긴 하지만 우리가 원하는 방향으로 스스로 공사를 하자는 쪽으로 수정하게 되었다.

 

부친이 스스로 계획했던 대로 나무를 최대한 해치지 않는 쪽으로 진행되었다. 땅에 닿는 면적을 최대한 줄이도록 설계했고, 건물도 2층으로 제한해 숲 속에 옹기종기 모여 있는 형상이다. 외부에서는 거의 눈에 띄지 않는다. 경우에 따라 나무가 건물의 가운데를 관통하며 서 있는 경우도 있다. 자연을 최대한 해치지 않는다는 의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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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제공: 상화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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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제공: 상화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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훼손이 심한 한옥을 이건해 복원하는 힘든 과정은 상화원 한국 정원의 진정성을 더해준다. 그 와중에도 재치와 익살을 잊지 않았다. (사진제공: 상화원)

 

Q. 대기업이 관행적인 평면에 따라 만들었다면 현재와 같은 소박한 맛은 없었을 것이다. 그건 그렇고, 섬과 한옥, 언뜻 어울리지 않는 조합이다. 과정 자체도 매우 까다로웠을 것이다. 차량 접근도 쉽지 않았을 것이며, 경사지이고, 한정된 부지에 상당한 수의 한옥을 복원하는 것도.

A. 한옥 이건이 가장 힘들었다. 입구의 정자 의곡당을 포함해 총 9채. 2002년에서 2004년 사이에 전국의 쓰러져가는 한옥들을 구입해 섬에 보관했다. 하나하나 분리하고 번호를 매겨 보관하던 한옥 자재를 이용해 2009에서 2012년 사이에 복원 작업을 했다. 대목부터 시작해 전문가들의 정성이 상당했다. 상당 부분 소실되고 허물어진 가옥들이었기에 매입 비용은 300만~1,000만 원 정도였지만, 이건 비용은 2~4억 원대에 달했다. 사진을 보시면 알겠지만, 구입 당시 한옥은 훼손이 매우 심한 상태였다.

 

Q. 그런 수고로운 복원의 과정을 거친 한옥을 박제처럼 보존하려 하지 않고 사람들이 자유롭게 차를 마시고 누구나 이용하는 공간으로 개방한 점이 인상적이다.

A. 관광특구로 지정되고 나서 한동안은 회사와 자회사, 주요 고객들의 연수 장소로만 활용되었다. 기업 고객만을 위한 휴양지였다가 상화원을 대대적으로 개방하게 된 건, 지자체의 요청도 있었지만 결국 부친의 뚜렷한 뜻이었다. 우리만 즐기는 곳이 아니라, 수익이 나지 않더라도 보다 여러 사람이 출입할 수 있고 누릴 수 있는 곳이 되어야 한다는 생각이었다. 부족한 예산은 모 기업인 한국컴퓨터지주가 지원하는 방식이다. 일반인 대상의 개방에 처음에는 우려도 많았다. 그러나 부친이 워낙 의지를 갖고 실행하셨고, 2016년 4월부터 일반에게 개방되었다. 상화원은 지키는 사람이 없다. 방문하는 이가 스스로 돌아보고 차를 만들어 마시고 뒷정리도 알아서 하는 방식이다.

 

한옥을 복원할 때 일화도 많다. 한옥 배치에도 상당히 신경을 쓰셨다. 한 번은 거의 다 지은 한옥을, 옆 건물과 너무 가깝다는 이유로 허물고 위치를 옮겨 다시 지으라고 지시하셔서 내 귀를 의심하기도 했다. 부친은 책 몇 권을 쓰는 것보다 더 많은 애정을 기울인 작품이라고 말씀하신다. 상화원이라는 소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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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랑을 걷다보면 해송과 신우대 사이로 보이는 서해의 낙조가 일품이다. ⓒ최이규

 

Q. 바닷가 비탈 곳곳에 해변독서실이라는 이름으로 책상과 오두막을 설치한 게 이채롭다. 단순히 바다를 바라보는 곳이 아니라서 좋다. 블로그를 보면, 여기서 오래 머물면서 책도 읽고 글도 쓰기를 원하는 사람들이 많다. 독서실이라는 콘셉트가 상당히 친근감을 주는 것 같다.

A. 네 곳의 해변독서실은 상화원에서 해변을 가장 가까이 느낄 수 있는 공간이다. 파도와 바람 소리를 벗 삼아 조용히 책을 읽는 초가지붕 정자들이다. 세월이 더해지면서 사람들이 해변연못과 회랑 근처에 각자의 돌을 쌓는 것을 볼 수 있다. 원래 만들었던 사람과의 교감이라고 말할 수 있다. 아기자기하고 사람들 마음이 어려 있는 모습이다.

 

Q. 기분 좋은 장소에 가면 거기에 무언가 자신의 흔적을 남기고 싶은 사람들의 성향일 것이다. 상화원은 다섯 곳의 노천 해수탕이나 동굴 와인 카페 등 사람들이 좋아할 만한 힐링 장소도 갖추고 있다. 관리에 상당한 비용이 들 것 같다.

A. 현재 죽도상역개발이 관리하고 있다. 현재나 앞으로도 수익을 낼 수 있는 구조는 아니다. 입장료는 유지관리를 하기에도 부족하다. 일반 관람객을 받고 나서부터 필요한 인력이 더 늘었다. 어차피 수익을 낼 수 있는 구조가 아니기 때문에 유지만 가능하게끔 하는 게 목표다. 정원은 시간이 드는 만큼 좋아지는 것이라 믿기 때문이다.

 

현장에서 보셨다시피 상화원은 지금도 계속 공사 중이다. 빌라의 경우에도 처음에는 몇 채만 옥상이 서로 이어져 있었는데, 최근에 모두 이어지게 되었다. 빌라 이용객만 소나무숲 경관을 즐기는 게 아니라 아이들이 안전하게 놀기에도 적당한 장소가 되게 하고 관람객들도 옥상 정원을 통해 함께 즐기게 하자는 의미다.

 

Q. 정원에 대한 관심, 한옥, 자연 보존, 수집한 조각, 와인 등 다방면에 걸친 홍상화 선생의 관심을 알 수 있다.

A. 워낙 여행을 많이 다니셔서 해외에서 구입하신 것들이 곳곳에 있다. 와인 저장고에서는 지역 특산물인 복분자로 만든 와인을 숙성하는데, 맛이 상당히 괜찮은 편이다.

 

Q. 식재에 관한 전체적 콘셉트가 있다면?

A. 기본적으로 상화원의 모든 수목은 원래 있던 것을 보존한 거다. 한옥을 이건하다가 어느 때인가 향나무를 같이 가져가라 해서 입구 근처에 심었는데, 부친으로부터 꾸지람을 들었다. 인위적인 일본 정원 풍의 향나무는 상화원에 어울리지 않는다는 말씀이셨다. 그만큼 자생하는 식물을 정성껏 돌보는 게 식재 콘셉트다. 너무 귀한 해송이라 하나라도 베지 않으려 노력하셨다. 따로 식재한 것은 없고 모두 원래 있던 것을 보존한 것이다. 다만 한옥지구의 경우에는 한옥을 이건하면서 근처에 있던 나무들도 함께 옮겨와 심었다.

 

회랑을 걷다 보면 곳곳에 콘크리트 펜스가 보일 것이다. 낡고 허물어지기도 해서 실제 쓰임새는 없고 보기에 싫을 수도 있지만, 부친이 섬에 처음 만드신 작업이라 그대로 남겨둔 것이다. 보잘 것 없는 콘크리트 펜스라도 시간이 켜켜이 쌓인, 역사를 볼 수 있는 것들은 그대로 놔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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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제공: 상화원

 

Q. 개방한 지 불과 1년도 되지 않았는데 사람들의 호응이 높다. 11월까지 개방하는데, 실제로 설경이 매우 아름다울 것 같다.

A. 안타깝지만 겨울에는 안전을 고려해서 일반인에게 개방하지 않고 있다. 부지가 넓기 때문에 제한된 인력으로 겨울철 준비와 방문객이 편히 돌아볼 수 있도록 관리하는 데 한계가 있다.

 

Q. 아너 시스템, 양심과 자율에 따른 이용은 우리네 관광 문화의 수준을 높일 수 있는 중요한 가치다. 또 제한된 인원으로 큰 정원의 영역을 유지하기 위한 불가피한 방안일 수도 있다. 보령시나 충청남도의 지원은 없나?

A. 그렇게 이해해 주신다면 고마운 일이다. 보령시가 상하수도, 하수처리장 등 기반 시설에 많은 지원을 해 주었고 감사하게 생각한다. 그런 시설이 없이 자체적으로 처리하려 했다면 많은 문제가 생겼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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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가 홍상화 선생이 써 온 상화원이라는 작품은 한국 정원의 무한한 상상력을 보여준다. (사진제공: 상화원)

 

Q. 상화원 주변으로 상가들이 정비되지 못한 점이 좀 아쉽다. 상화원의 분위기와 어울릴 수 있는 전체적 계획이 세워졌으면 하는 바람이다. 앞으로의 계획은?

A. 상화원이 세계 100대 정원에 오를 수 있도록 발전, 확대시켜 나갈 계획이며, 수준 높은 예술품을 확보해 회랑을 따라 비치해 나갈 것이다. 또 복원된 한옥을 본격적인 정주를 위한 공간으로 개조하기 위해 화장실과 욕실 등 필요한 시설을 어떻게 갖추느냐는 앞으로 현명하게 해결해 가야 할 숙제다.

 

최이규는 1976년 부산 생으로 뉴욕에서 10여 년간 실무와 실험적 작업을 병행하며 저서 『시티오브뉴욕』을 펴냈고, 북미와 유럽의 공모전에서 수차례 우승했다. UNKNP.com의 공동 창업자로서 뉴욕시립미술관, 센트럴 파크, 소호 및 대구, 두바이, 올랜도, 런던, 위니펙 등에서 개인전 및 공동 전시를 가졌다. 현재 계명대학교 도시학부에 생태조경학전공 교수로 재직하며 울산 원도심 도시재생 총괄코디네이터로 일하고 있다.

 

환경과조경 346(2017년 2월호수록본 일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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