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지방이다.
빠르게 변화하는 대한민국에서 조경의 블루오션은 무엇일까? 외국 생활을 마치고 귀국한 첫해, 이 화두를 붙잡고 전국 각지를 꽤나 돌아다닌 것 같다. 그 결과 새로운 공간에 대한 관찰은 사뭇 기대 이상의 성과를 보여주었다. 곳곳에서 스스로 성장해 온 여러 선구자들에게서 해답의 실마리를 얻었다. 대담함을 요구하는 시대다. 공간에 대한 전혀 다른 시각을 가지고 새롭고 과감한 실천을 벌여 온 개척자들을 통해 새로운 조경 여정의 힌트를 얻었다. 조경의 본질은 결국 새로운 공간 창조이기 때문이다.
라이프스타일은 산업 구조에 따라 변화한다. 기존의 조경 업역이 신도시 개발과 대규모 단지 조성, 신규 건축과 인프라 구축이라는 성장 시대의 라이프스타일에 동반해 성장해 왔다면, 이제 성숙과 축소의 사회에서 그 설 자리를 잃고 있음은 대개가 인정하는 사실이다. 지금의 화두는 재생과 재발견이다. 우리는 스스로의 가치를 인정해야 하며, 그동안 이루어 온 도시적 인프라를 긍정적으로 재해석해야 할 입장에 놓여 있다. 곧이어 닥쳐올 시대에는 더 이상 완전히 뜯어고칠 돈도, 처음부터 다시 시작할 여유도 없어질 것이다. 있는 것을 받아들이고 개선하는 수밖에 없다. 기존을 인정하고 다만 조금 더 나은 방식으로 바꾸는 과정의 새로움은 결국 긍정에서 나온다.
조경 설계가 단지 디자인 언어의 변용이나 시류에 편승한 스타일의 수정에 머무른다면 판의 확장은 불가능할 것이다. 우리는 새로운 판을 짜야 하고, 그 확장은 어느 한 분야의 성장이 아니라 전체 조경 산업 생태계를 두고 고민했을 때 가능하다. 이제 계획과 설계는 시공과 관리와 제품에서 거꾸로 영감을 얻어야 한다. 경관과 휴식이라는 용도의 하향식 분배에서 벗어나고 우리 분야가 품지 못했던 영역을 흡수해 조경 스스로가 보편적 의제를 선도하고 새롭게 정의해 나가야만 살아남을 수 있다. 비단 나만의 위기감일까. 생명공학과 유기농, 디스플레이와 영상 산업, 3D 프린팅과 업사이클링, 탄소 저감과 지구 온난화, 도시재생과 사회 복지, 빗물 관리와 대안 에너지, 도시농업과 첨단 작물, 문화재와 예술 등 기존 조경에서 양념에 그쳤거나 간접적 부산물에 불과했던 주제들을 이제 중심으로 초대할 필요가 있다. 이노베이션의 결합이 아닌 이노베이션 자체가 디자인의 대상이 되어야 하는 시기다.
미래지향적 주제를 새로운 국토적 스케일로 조명해야 희망이 있다면, 서울 공화국이라는 좁아터진 부지로는 턱없이 부족하다. 타성에 젖은 대상지와 방법론의 반복에서 벗어나려면 대한민국 조경은 수도권의 울타리를 벗어나야 한다는 것이 나의 주장이다. 스타일이 아닌 디자인이 시도되어야 하고, 그러기 위해서는 공간의 이용에 대한 시각 자체가 바뀌어야 한다.
조경의 공간이라고 생각하지 못했던 공간을 탐사하기로 한다. 따라서 이 인터뷰 연재물은 정형화된 공간을 조성하기 위한 자본이나 정책의 흐름에 관심을 두지 않는다. 정답을 정해놓고 누가 더 그럴 듯하게 포장하는가에 대한 문제는 더 이상 영감을 줄 수 없다. 새로운 공간을 향한 인물 개인의 의지, 그것이 산업 구조를 혁신하는 핵심적 에너지다. 우리나라 곳곳에서 이미 그런 새로운 융합이 일어나고 있다. 이론이 채 따라가기도 전에 그러한 실험이 이미 행동주의자들에 의해 실현되고 있는 것이다. 거창한 예상과 추측에 비하면 그 성과가 대단치 않아 보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것이 바로 이 시리즈의 주제다.
잘 알려지지 않은 텍사스의 중소 도시 포트워스(Fort Worth)에는 무척이나 아름다운미술관이 있다. 루이스 칸(Louis Kahn)이 설계한 킴벨 미술관(Kimbell Art Museum). 초대 관장 리차드 브라운(Richard Fargo Brown)은 미술관을 설계할 때 흥미로운 몇 가지 전제 조건을 제시했는데, 가장 핵심적이고 눈에 띄는 조건은 자연광의 사용이었다(“Natural light should play a vital part”). 16개의 볼트 구조로 이루어진 폭과 높이 각각 6m의 아늑하고 편안한 인체 스케일의 관람 공간이 상층부의 대부분을 차지하며 전시실을 따스한 은빛 태양광으로 채운다. 렘브란트나 터너 같은 작품들이 곡선형 천장으로부터 쏟아지는 섬세한 산란광 아래에서 더욱 신비한 빛을 뿜어낸다. 킴벨은 미술 작품의 관람에 있어 자연광이 얼마나 중요한지 보여주는 대표적 사례다. 태양광이 표현해낼 수 있는 색의 섬세함과 자연스러움은 3파장, 5파장 인공조명과는 비교가 되지 않는다.
이렇게 소중한 빛을 어두운 지하나 실내 깊숙한 공간으로 끌어온 이가 부산 기업 ‘선포탈’의 한태곤 대표다. 부산대학교 건축공학과를 졸업하고 같은 과 대학원에서 건축시공 전공으로 석사 학위를, 영국 레딩 대학교(University of Reading)에서 건설관리 전공으로 석사 학위를 받은 그는 영국 유학 시절 경험했던 자연광 도입 기법에 자극을 받아 독자적 기술 개발에 매진해 왔다. 선포탈의 기술이 킴벨과 같은 기존의 패시브 방식과 다른 점은 태양광을 모아 응축한 다음 100m 이상 전달할 수 있다는 데 있다. 선포탈은 특히 그 과정에서 자외선, 적외선, 가시광선 등으로 이루어진 풀 스펙트럼을 유지하는데 탁월한 기술을 보유하고 있다. 자연광을 통해 지금까지 방치되던 열악하고 어두침침한 도시의 구석들을 고품질의 공간으로 환하게 밝힐 수 있는 가능성을 연 것이다.
선포탈의 기술력은 해외에서도 인정을 받아 세계 최초의 본격적 지하 공원인 뉴욕 로우라인(Lowline) 프로젝트에 공식 협력사로 참여하게 되었다. 맨해튼 로어 이스트 사이드의 방치된 전차 터미널을 자연광 기술을 이용해 녹색이 넘쳐나는 휴식처로 만들려는 야심찬 계획에서 선포탈이 중심 역할을 맡고 있는 것이다. 70여 년간 닫혀있던 지하 공간이 햇빛을 받아 살아나게 되며, 과거의 갖가지 건축적 디테일이나 구조, 장식물도 온전히 그 모습을 드러내게 된다. ...(중략)...
* 환경과조경 345호(2017년 1월호) 수록본 일부
최이규는 1976년 부산 생으로 뉴욕에서 10여 년간 실무와 실험적 작업을 병행하며 저서 『시티오브뉴욕』을 펴냈고, 북미와 유럽의 공모전에서 수차례 우승했다. UNKNP.com의 공동창업자로서 뉴욕시립미술관, 센트럴 파크, 소호 및 대구, 두바이, 올랜도, 런던, 위니펙 등에서 개인전 및 공동 전시를 가졌다. 현재 계명대학교 도시학부에 생태조경학전공 교수로 재직하며 울산 원도심 도시재생 총괄코디네이터로 일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