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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원 탐독] 다른 세상이 다른 정원을 만든다
  • 환경과조경 2017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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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세기 르네상스 가든 디자인의 전형을 잘 보여주는 빌라 란테(Villa Lante). 연못과 분수에서 이미 당시에 고도로 발달된 과학 기술력을 엿볼 수 있다. 유럽인들의 ‘인위적’이란 말은 ‘자연스러운’의 반대말이라기보다는 인간이 발현시키는 예술이자 과학 기술의 다른 말이었다. 
ⓒ임종기

 

자연스럽다 vs. 인위적이다

 

자로 잰 듯 어김없는 직선과 방사선의 길, 패턴 북을 그대로 옮겨놓은 듯 정교하고 화려한 문양, 한 치의 뻗침도 용서할 수 없는 단정한 나무들의 칼 정렬, 더 이상의 틈도 없이 완벽한 섬세함을 보여주는 조각, 하늘을 뚫고 치솟는 엄청난 물줄기의 분수! 이탈리아, 프랑스, 네덜란드를 아우르는 유럽 정원의 아름다움을 한 마디로 표현한다면 참을 수 없는 존재의 인위성이 아닐까.

잠깐 생각해 보자. 우리나라 사람들이 가장 많이 쓰는 단어 중에 하나가 바로 자연스럽게라는 표현이다. 이 자연스럽게의 반대말로 우리는 인위적으로라는 말을 쓰고, 이 말 속에는 억지로라는 부정적인 의미가 숨어 있기도 하다. 결국 자연스럽게에는 좋다의 착한 이미지가 투영돼 있고 인위적이라는 말 속에는 나쁘다까지는 아니어도 좋은 것은 아니다라는 의미가 들어 있는 셈이다. 그렇다면 유럽인들의 생각도 우리와 같을까? 영어로 인위적임을 뜻하는 ‘artificial’ 안에는 예술(art)’이 숨어 있다. 그래서 그들이 만들어내는 모든 예술품과 행위 그리고 과학 기술이 포함된다. 그들에게는 ‘natural’이 긍정적이고 ‘artificial’이 부정적이라는 잣대가 없다. 여기서 한발짝만 더 나아가면 오히려 인위성이 바로 예술의 기초가 된다. 그것은 기술과 과학의 시작이다.

다시 유럽의 정원으로 돌아가 보자. 그 철저한 인위적 정원을 거닐며 우리나라 사람들은 얼마나 감동을 할까? 유럽의 많은 정원을 지인들과 둘러보았을 때 그들의 입에서 정말 아름답다!”라는 감탄사가 나오는 걸 들은 기억이 거의 없다. 최고의 극찬이라면 그 정성에 대한 답례 정도인 대단하다!” 정도. 그런데 유럽에도 뭔가 다른 정원이 있다.

영국의 시싱허스트 캐슬 가든(Sissinghurst Castle Garden)은 중세 때 지어진 성을 시인 비타 섹빌-웨스트(Vita Sackville-West)1930년대에 사들여 만든 정원이다. 거트루드 지킬(Gertrude Jekyll)과 히드코트 매너(Hidcote Manor)의 로렌스 존스턴(Lawrence Johnston)의 식재 디자인 노하우가 실현된 이 정원에 들어서면 대부분의 한국인은 너무 예쁘다를 연발한다. 넘치도록 풍성하게 심어진 각양각색의 식물이 정리되지 않은 듯 마구 꽃을 피우기 때문이다. 이 정원에서야 드디어 너무 자연스러워서 좋다라는 말이 튀어나온다. 물론 아트 앤드 크래프트(art and craft) 정원이라고 명명되는 이 정원이 우리가 생각하듯 식물을 손도 대지 않고 제멋대로 자라도록 내버려둔 정원이 아니라는 진실이 후에 우리의 뒤통수를 칠지라도 말이다. ...(중략)...

 

환경과조경 345(2017년 1월호수록본 일부

 

오경아는 방송 작가 출신으로 현재는 가든 디자이너로 활동 중이다. 영국 에식스 대학교(The University of Essex) 리틀 칼리지(Writtle College)에서 조경학 석사를 마쳤고, 박사 과정 중에 있다. 『시골의 발견』, 『가든 디자인의 발견』, 『정원의 발견』, 『낯선 정원에서 엄마를 만나다』 외 다수의 저서가 있고, 현재 신문, 잡지 등의 매체에 정원을 인문학적으로 바라보는 칼럼을 집필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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