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시퀀스부터 예사 영화가 아님을 감지할 수 있다. 에드워드 호퍼 그림처럼 환한 빛이 내리쪼이는 텅 빈 거리, 따뜻한 색감의 벽면, 펄럭이는 작은 깃발, 화면 안으로 차 한 대가 미끄러지듯 들어온다. 기다렸다는 듯 멀리서 파란색 차 한 대가 다른 길로 돌아서 천천히 다가온다. 파란색 차가 건물 뒤로 사라지는 동안 담배를 물고 차에서 내린 여자는 벽에 잠시 서서 담뱃불을 끄고 건물 입구로 향한다. 문 앞에서 열쇠를 꺼내는 순간 복면을 한 두 남자가 나타나 그녀 머리에 총을 겨눈다. 롱테이크로 느릿하게 움직이던 화면 안으로 두 명의 복면강도가 훅 하고 들어오는 순간, 이거 뭐지? 범죄 영화인가?
요약하자면 형제가 은행을 터는 범죄 영화이자 텍사스를 배경으로 하는 현대 서부 영화다. 왜 그들은 강도가 되었을까. 둘 중 키가 큰 동생은 복면으로도 가려지지 않는 선하고 아름다운 눈동자를 가졌다(얼굴도 보기 전에 반하다니, 드문 일이다). 거침없는 형 태너(밴 포스터 분)와 달리 겁에 질린 듯 커다란 눈동자를 굴리는 동생 터비(크리스 파인 분)는 이 강도 행각 전체를 설계한 자다. 태너는 아버지를 싸움 끝에 총으로 쏘아 죽인 죄로 10년 동안 복역한 후 출소했다. 그 사이 어머니는 병들어 세상을 떠나고, 유일한 재산인 농장을 동생인 터비에게 물려주었지만 저당 잡힌 은행으로 바로 며칠 후 소유권이 넘어간다. 이 와중에 농장에서 유전이 발견되었다. 막노동으로 살아가는 터비는 이혼한 후 양육비를 보내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며 두 아들을 만난 지 1년이 넘었다. 어떻게든 만기일 전에 은행 대출금을 갚아야 한다. 영화의 원제는 ‘Hell or High Water’다. 무슨 일이 닥치든 해낸다는 의미다. 터비가 며칠 안에 합법적으로 돈을 마련할 방법은 사실상 없다. “나의 부모님, 조부모님 모두 가난했다. 가난은 전염병과 같아서 주변 사람 모두에게 옮아간다. 내 자식에게만은 절대 물려주지 않겠다.” 터비의 고백은 차라리 처연하다(무얼 해도 잘생긴 등장인물에게 한결같이 마음을 뺏기다니, 흔한 일이다). ...(중략)...
* 환경과조경 345호(2017년 1월호) 수록본 일부
서영애는 조경을 전공했고, 일하고 공부하고 가르치고 있다. 홍상수의 신작 ‘당신자신과 당신의 것’을 보면서 등장인물보다 연남동과 경의선숲길에 더 눈길이 갔다. 오래된 골목과 새로운 공원, 그리고 그 사이를 메우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돋보이는 영화다.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은 어떻게 새로운 이야기를 만들어 가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