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유럽에서 파격적인 방식으로 도시 개발 사업을 진행 중인 사례가 있다. 바로 2014년 11월에 시작된 ‘파리 재창조Réinventer Paris’다. 파리 최초의 여성 시장인 안 이달고Anne Hidalgo와 장루이미시카Jean-Louis Missika 부시장의 주도 하에 파리 시는 시 소유의 크고 작은 유휴 부지에 대한 프로젝트 안을 공개 모집했다.
언뜻 보면 여느 공공 개발 사업과 비슷해 보이지만 여기에는 독특한 게임의 법칙이 있다. 시 소유 토지를 민간에 매각하거나 공공이 직접 사업 주체가 되지 않을 것. 파리 시에 가장 필요한 용도, 혁신적인 건축, 효과적인 운영 방식, 실현 가능한 파이낸싱 전략을 제안하는 팀을 선정할 것. 단, 시의 재원에 의존하지 않을 것. 시는 민간의 주도로 개발 수행이 가능하게끔 여건을 조성하고 커뮤니티를 동참시킬 것. 이러한 룰에 따라 23개의 대상지를 선정했고, 2015년 말까지 개발 안을 접수했다.1 가장 높은 공공 용지 입찰가를 제시한 디벨로퍼에게 땅을 매각하고 개발을 규제하는 소극적인 도시 관리 기법이 아니라, 가장 혁신적인 설계·운영·파이낸싱·커뮤니티 참여 패키지를 고안한 팀에게 개발권을 주고 파리 시는 이 팀을 위한 러닝메이트가 되는 방식이 매우 흥미롭다.
이러한 공모 방식의 연장선에 ‘노들꿈섬 공모’(이하 노들섬 공모)가 있다. 참으로 긴 여정이었다. 2005년 서울시가 노들섬을 매입한 후, ‘노들섬 예술센터 국제 아이디어공모’(2005)부터 ‘노들섬 예술센터 1차 지명초청 설계공모’(2006), 이후 ‘노들섬 공연 예술센터 2차 지명초청 설계공모’(2008), ‘한강예술섬 조성공사 설계용역’(2009), 또 ‘한강예술섬 설립·운영에 관한 조례 제정 및 폐지’(2010), 그리고 조성 사업 보류 결정(2012)에 이르기까지 10여 년에 걸쳐 릴레이식 논의가 진행되었다. 노들섬 총괄계획가 서현 교수에 따르면 3차에 걸친 노들섬 공모는 시의 일방적인 사업 추진관행에 대한 반성과 공모 과정 자체를 혁신하는 데 방점이 찍혀 있다. 그의 말에 따르면 “엘리트가 나서서 어떤 종류의 건축물을 집어넣고 어떤 방식으로 활용하자고 주장한 후, 이를 통해 결과물을 결정하는 것은 구시대적 방식”이다. 그는 모든 가능성이 열려 있는 노들섬을 위한 새로운 공모 방식을 고안하는 데 1년 정도의 시간을 투자했다. 그 신호탄으로 2015년 8월에 마무리된 ‘1차 운영구상 공모’에서 “합리적인 상상력을 통해 노들섬에서 미래 사회의 모습”을 그려보았고, 같은 해 11월 ‘2차 운영계획ㆍ시설구상 공모’에서는 이런 상상력을 어떻게 노들섬 프로그램의 기획과 운영에 적용하느냐는 고민 끝에 어반트랜스포머(대표 김정빈 교수) 팀의 ‘밴드 오브 노들’이 선정되었다. 그리고 마침내 2016년 6월, ‘3차 공간ㆍ시설조성 공모’ 결과가 발표되었다. 이를 통해 선정된 공간 조성 팀은 2차 공모 당선 팀과의 협의를 통해 “어떻게 바둑의 룰을 바둑판 위에 올려놓을까”를 결정하게 된다.
김세훈은 1978년생으로 서울대학교 건축학과를 졸업한 후 하버드 대학교 GSD에서 도시계획학 석사와 박사 학위(DDes)를 받았다. 현재 서울대학교 환경대학원에서 도시설계 이론을 가르치고 스튜디오 수업을 하고 있다. 저서로 『신흥도시 개발 모델』, 『도시형태변화분석방법론노트』, 『도시와 물길(A City and Its Stream)』 등이 있으며, 한국, 중국, 동남아시아의 도시 연구와 설계를 함께 진행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