갭 필러Gap Filler는 뉴질랜드 캔터베리 지방을 강타한 대지진으로 파괴된 도시를 시민의 손으로 재건하기 위해 설립된 비영리 시민 단체다. 지진으로 생긴 수많은 공터들이 영구적으로 개발되기 전까지 무작정 비워두는 것이 아니라, 공터를 임시적으로 활성화하고 커뮤니티의 요구에 맞게 사용하는 것이 갭 필러의 목표다.
2010년 9월 4일에 전 도시를 뒤흔든 첫 번째 지진의 여파가 채 가시기도 전인 이듬해 2월 22일에 또 한 번의 파괴가 이 지역을 충격에 빠뜨리면서 갭 필러의 역할과 임무는 빠르게 늘어났다. 설립자 코랄리 윈은 호주 애들레이드Adelaide 출신으로 원래 로스쿨을 다녔다. 그러나 연극과 영화, 미술사를 공부하고 싶어 법학을 그만두고 뉴질랜드 캔터베리 대학교의 문학부로 교환 프로그램을 갔다. 당초 반년을 염두에 둔 계획이었지만, 크라이스트처치의 매력에 빠진 그녀는 호주로 돌아가지 않고 이 도시에 자리를 잡았다. 지진 이전에는 미술관의 파트타임 매니저로, 그 후 아트센터에서 예술가 레지던시 프로그램을 운영하거나 관람객 프로그램을 짜기도 하고, 웹사이트 관리, 마케팅 등 온갖 잡일을 도맡았다고 한다. 각종 페스티벌에서 자원봉사자로 일하기도 하고, 무료 연극단Free Theatre Company에서 실험적 연극에 참여하기도 하였다. 극단에서는 거의 보수를 받지 못했고, 가끔 급여가 지급되면 시간당 200원꼴이었다고 한다.
생활고와 타향 생활에 지쳐 방황하고 있던 코랄리 윈에게 지진은 하나의 커다란 전환점이 되었다. 크라이스트처치 곳곳에서 수천 채의 건물이 붕괴되었는데, 그녀의 집도 예외가 아니었다. 건물이 무너져 벽돌더미로 변하기 직전에 그녀는 가까스로 뒷문을 통해 빠져 나왔다고 한다. 집 뒷마당에 천막을 치고 바비큐 그릴로 음식을 만들며 생활해야 했고, 가졌던 모든 물건을 잃었다. 하지만 그녀는 당시를 회상하며 말한다.
“왠지 모르게 자유스러워진 느낌이었어요. 떠난다는 것, 존재한다는 것, 그리고 많은 물건을 소유하지 않는 다는 사실이 말이에요. 때로는 우리의 물건들이 오히려 우리 삶을 지배하죠. 차 안에 있는 것이 내게 필요한 전부라는 현실을 맞닥뜨리고 나니, 사실 갑자기 신나는 기분이었죠.”
그녀는 목숨은 건졌지만, 첫 번째 지진 후 아트센터에서 해고되었다. 출장 가는 남자친구를 따라간 웰링턴의 거리에서 “I Love Christchurch” 포스터를 보고선참을 수 없어 울음을 터뜨렸다고 한다. 갭 필러의 아이디어는 이렇게 절망적인 상황에서 솟아났다. 실직 후 한 달 반 만이었다. 그녀의 말대로, 모든 것이 부정적이었던 상황에서 갭 필러는 스스로 할 수 있다고 생각한 단 하나의 기회였다. 함께 아이디어를 발전시킨 초기 멤버인 라이언 레이놀즈Ryan Reynolds나 앤드류 저스트Andrew Just와 달리 갭 필러에서 코랄리 윈이 항상 중심적인 역할을 맡은 이유는, 다른 정규직 일을 하고 있던 두 사람과 달리 오직 갭 필러에만 매진했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갭 필러 설립 후 약 1년간 그녀는 무보수로 아침 7시부터 자정까지 거의 매일 일했다. 2011년 8월, 갭 필러는 드디어 크라이스트처치 시청으로부터 5만 달러의 지원금을 받게 되었다. 현재 갭 필러는 6명의 유급 직원으로 운영되고 있다.
갭 필러의 중요한 역할은 버려진 도시 공간을 사용하는 데 갖가지 걸림돌을 제거하는 일이다. 법적인 난관과 책임 보험 등 시민들에게 생소한 어려운 절차들을 해결해 줌으로써 아이디어를 샘솟게 하고 현실화되게 돕는다. 갭 필러의 프로젝트가 주장하는 것은, 굳이 큰 예산의 공공 사업이 아니더라도 작은 시민 활동을 통해 실질적으로 사람들의 상처가 치유되고 동시에 도시의 성장 방향이 제시될 수 있다는 사실이다. 그러나 작은 프로젝트라고 모두 쉽게 성공하는 것은 아니다. 어떤 것은 실망스럽기도 하고 기대했던 성과를 보여주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 그러나 코랄리 윈이 말하는 바는, 직접 해 보지 않으면 생각, 짐작, 대화만으로는 어떤 것이 성공하고 어떤 것이 관심을 끌지 알 수 없다는 단순한 진리다. 길을 아는 것과 실제로 걸어보는 것은 엄연히 다르다. 그러기에 실패한 프로젝트 또한 나름대로 충분한 의미를 갖는다. 갭 필러가 효과적인 것은, 이러한 실패가 비교적 적은 자본과 시간 투자로 진행되기 때문에 정부 차원에서 시행되는 커다란 시행착오와 달리 재빨리 실패의 교훈을 흡수하고 더 나은 방향으로 진행할 수 있다는 점 때문이다. 그래서 공공 정책적 측면에서 보면, 갭 필러는 일종의 길잡이 프로젝트로서의 성격도 가진다.
최근 조경 계획과 설계에서 대형 자연 재해와 각종 사회적 재난에 대비한 효과적인 대응책에 대한 논의가 활발하다. 예방도 중요하지만, 많은 경우 재난은 제도적 준비를 무색하게 하는 압도적인 규모로 닥쳐온다. 그중 하나가 지진이다. 한반도는 그간 지진 안전지대로 인식되어 왔지만 상식을 뒤엎는 각종 징후들이 나타나고 있다. 크라이스트처치는 뉴질랜드 남섬의 중심 도시로서, 관광지일 뿐만 아니라 지역 산업과 문화의 구심점이 되어 왔다. 6개월 간격으로 일어난 두 차례의 지진은 도시 전체를 사실상 폐허로 만들었다. 살아남은 상당수 건물 또한 구조적인 문제로 인해 사용이 불가능하게 되었다. 일시에 발생한 대규모의 잔해, 공터, 그리고 충격적인 기억들은 대부분의 젊은이를 떠나게 했고, 일상적 활동을 불가능하게 만들었다. 제한된 인프라와 자본 탓에 복구와 재건은 수 년, 길게는 수십 년이 걸릴 것으로 예상된다. 운 좋게 일자리를 유지하고, 삶터를 지키고자 도시에 남은 이들에게도 광대한 면적의 공터와 폐허 지역은 그날의 아픈 경험을 환기시키는 상처가 되고 있다. 갭 필러는 예술, 조경, 건축적 개입을 통해 사람들 사이에 다시 웃음을 가져오고 새로운 모습의 도시에 대한 희망을 열고 있다.
이 꼭지를 연재하고 있는 인터뷰어 최이규는 1976년 부산 생으로, 그룹한 뉴욕 오피스를 이끌며 10여 차례의 해외 공모전에서 우승했고, 주요 작업을 뉴욕시립미술관 및 소호, 센트럴파크, 두바이, 올랜도, 런던, 위니펙 등지의 갤러리에 전시해 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