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지사의 편집부에는 매달 새 책이 쌓인다. 『환경과조경』은 조경 전문지이니 대개 조경, 원예, 건축, 도시 관련 신간이 보도자료와 함께 도착한다. 그 가운데 새 책 담당기자의 안목 그리고 선배 기자들의 간섭(!)과 추천으로 서너 권의 책이 선정되어 이 달의 ‘새 책’ 꼭지가 꾸려지기 마련이다. 그런데 하루는 색다르게도 인터넷 관련 신간이 눈에 띄었다. 제목은 『텔레코뮤니스트 선언The Telekommunist Manifesto』.1 사실 『공산당선언The Communist Manifesto』의 오마주인 듯한 제목보다는 그 밑의 부제목에 눈이 갔다. “정보시대 공유지 구축을 위한 제안, 카피파레프트와 벤처 코뮤니즘”이 그것이다. ‘공유지’ 그리고 ‘카피파레프트’란 단어에 눈길이 닿은 것이다. 사실 요즘 ‘공유’란 용어가 흔하게 쓰이는 만큼(비슷하게는 ‘공동성’, ‘공유 도시’, ‘공유 경제’ 그리고 ‘공공 공간’에서 ‘셰어하우스’까지) 그 의미가 명확하게 손에 잡히지는 않는다. ‘카피파레프트’는 낯선 단어이기는 해도 카피라이트 혹은 카피레프트와 같이 지적재산권과 관련된 이야기이리라 짐작되었다. 이 문제 역시 설계 분야와 무관하지 않다. 일례로 설계공모에서 저작권은 누구에게 있는가? 상금을 걸고 안을 공모한 발주처에 저작권이 돌아가야 하는 가, 아니면 창작자인 설계자에게 있는가 등은 가늠하기 쉽지 않은 문제다. 이렇게 둘다 ‘올바르게’ 보이기는 하지만 함께 놓기 어려운 두 개념이 만나 무슨 이야기를 할는 지 궁금했다. 그런 연유로 새 책 담당 기자에게 압력을 넣어 책을 먼저 손에 들었다.
『텔레코뮤니스트 선언』은 인터넷 상에서 일어나는 ‘공유’에 관한 통상적 이해를 뒤집는다. 흔히 웹2.0으로 통칭되는 트위터, 페이스북 같은 소셜네트워크 서비스SNS, 유튜브 같은 커뮤니티 공유 사이트의 등장은 과거 콘텐츠의 일방적 수용자를 직접적인 생산자이자 유통자로 참여하게 하면서 수평적 소통과 자유로운 협력을 보장하는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이 책의 저자인 클라이너Dmytri Kleiner는 과연 웹2.0이 새로운 소통과 협력의 모델을 제시하는 혁명적인 모델인가 질문한다. “웹2.0은 공동체가 창출한 가치를 사적으로 포획하는 비즈니스 모델이다.” 일례로 “유튜브의 진정한 가치는 사이트 개발자가 만드는 것이 아니라 유튜브에 비디오를 올리는 사람들이 만든다. 그러나 유튜브가 10억 달러가 넘는 주식으로 구글에 매각될 때 이 비디오를 만든 사람들이 받은 주식은 얼마나 되는가? 아무것도. 전혀. 없다.” 웹2.0 기업들은 자신의 콘텐츠를 생산하고 발행하기 위한 수단이 없는 사용자들의 ‘집단 지성’을 중앙 집중화시켜 공동체가 창출한 가치를 사유화한다는 것이다.
이와 유사한 현상은 실제 물리적 세계인 도시에서도 볼 수 있다. 지리학자인 하비David Harvey는 『반란의 도시Rebel Cities』2에서 도시를 “온갖 유형, 온갖 계급의 사람들이 서로 싫어하고 적대하면서도, 하나로 뒤섞여 끊임없이 변화하고 이동하는 삶을 살아가는 공유재common를 생산하는 장”이라고 정의했다. 그리고 “부동산 개발업자가 활기찬 거리, 다채로운 다문화 생활양식 등 그 지역의 ‘개성’을 부유층에 매각”하는 일종의 젠트리피케이션gentrification 문제를 거론한다. “지역 원주민은 자신들이 만들어낸 공유재를 약탈당할 뿐만 아니라 종종 지대와 부동산세가 치솟는 바람에 쫓겨나기까지 한다.” 때로는 재활성화 정책으로 지역에 근근이 남아 있던 활력이 사라져 공유재 자체가 훼손되는 경우도 있다. 대표적으로 젊고 가난한 예술가들이 모여 만들어낸 뉴욕 소호 지구의 활력은 이 지역의 경제적 가치가 올라가면서 망가져갔다. 그리고 이 활력을 만들어냈던 예술가들은 비싼 임대료를 감당할 수 없어 빠져나가게 된다. 우리 도시에서도 가회동이나 삼청동, 신사동 가로수길에서 이러한 변화를 목도하게 된다.
그렇다면 공유지·공유재를 생산자들이 자유롭게 활용하는 방법에는 무엇이 있는 가? 클라이너는 ‘또래생산peer production’을 대안으로 제시한다. 이 용어는 하버드 대학교 법대 교수인 요카이 벤클러가 자유소프트웨어와 위키피디아 그리고 유사 작업들이 생산되는 방식을 기술하기 위해 만들었다. 또래생산은 다른 사람들의 소비를 방해하지 않는 ‘비경쟁적인 자산’으로서 공유지를 구축할 뿐만 아니라, 사실상 재생산비용이 들지 않는다. 그렇다면 이렇게 생산한 사용가치를 교환가치로 바꿀 수 있을 까? 바꾸어 말하면 또래생산자들이 자신의 생계유지에 필요한 물질적 필요를 어떻게 확보할 수 있는가의 문제가 발생한다. 이에 클라이너는 독립적인 또래peer들 간에 필요한 물질 자산을 배분하는 시스템인 ‘벤처 코뮤니즘’을 제시한다.
벤처 코뮤니즘이 노동자들의 자기조직화를 위한 새로운 모델이라면, 카피파레프트 copyfarleft는 비물질 재화를 공유지로 가져오기 위한 수단이다. 아이디어에 대한 배타적 권리인 카피라이트는 ‘창작하는 사람들의 땀과 노력을 인정하고 보호하기’ 위한 것이라는 가정에 근거하는데, 클라이너는 사실 이것이 보호하는 것은 창작자가 아니라 창작물을 판매하고 유통하는 기업의 수익이라고 설명한다. 이러한 카피라이트를 비판하며 나온 것이 안티카피라이트anti-copyright나 카피레프트copyleft다. 둘 다 모든 사람들이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는 비-소유의 공유 공간을 창출하기 위한 시도다. 그러나 여전히 기업들은 해당 라이선스를 어기지 않으면서 상업적으로 이용할 수 있다는 문제가 있다. 또한 클라이너는 카피라이트의 대안으로 널리 이용되고 있는 크리에 이티브 커먼즈(CC)에 대해 강하게 비판한다. CC에서 저자는 다른 이용자들의 상업적 이용을 금지할 수 있지만, 그 역시 저자 자신이 상업적 이용의 권리를 보유한 상태이기 때문에 그 저작물은 전혀 공유지에 속한 것으로 간주될 수 없다는 것이다. 따라서 저자는 카피파레프트를 주장하며 상업적 이용에 대한 계급적 제한이라는 새로운 기준을 도입한다. 노동자 소유 기업은 카피파레프트 저작물을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지만 사적 소유 기업의 사용은 제한된다. 카피파레프트는 이러한 기준을 통해 상업적 이용이 아니라, 공유지에 기반하지 않은 사용을 제한하고자 한다.
클라이너가 주장하는 공유의 방식을 실제 물리적 공간에 그대로 대입하기에는 무리가 있겠지만, 다양한 방식으로 공간과 가치를 공유하려는 창작자들에게 의미있는 생각거리를 던져준다. 그리고 이번 호에 실린 ‘리빌드 바이 디자인Rebuild by Design’에서 그런 실마리를 찾게 된다. 필자인 유영수 소장의 말을 다시 옮겨본다. “이 같은 공모과정의 가장 큰 가치는 무엇보다 각 팀들이 단순한 경쟁 구도에서 벗어나 각자가 수행한 지역에 대한 분석과 그로부터 도출한 중요한 아이디어를 다른 모든 이들과 공유함으로써 지역 전체를 위한 더 나은 해법을 찾아내려는 공통의 목적에 기여한다는 점이다. 즉 공모 과정에서 생산된 모든 지적 결과물은 어느 팀에 제한적으로 귀속되는 것이 아니라 공공의 자산으로 활용된다는 의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