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7월 8일, 서울역사박물관에서는 ‘보행자를 위한 도시, 정책 현안과 과제’라는 주제의 포럼이 열렸다. 2013년 서울시에서 발표한 ‘보행친화도시 서울 비전’의 10대 사업의 일환으로 ‘생활권 보행자 우선도로 시범사업’과 ‘아마존 사업’이 추진되고 있는 상황에서, 건축도시공간연구소AURI가 보행자 관련 법제 개선 방안, 각 사업의 기획 취지와 의의, 실질적인 개선 효과 등을 공유하고 사업 추진 과정에서 불거진 문제점을 점검해 보고자 자리를 만든 것이다.
‘아마존’ 프로젝트
첫 번째 주제 발표에서 다뤄진 ‘아마존amazone’은 그 아마존amazon이 아니다. 현재 시범 사업이 시행 중인‘아이들이 마음껏 다닐 수 있는 존zone’의 약자로, 그 성격은 어린이보호구역과 유사하다. ‘아동 교통사고 및 범죄 예방 그리고 쾌적한 보행 환경의 조성’이라는 목표는 같지만, 어린이보호구역이 학교 근처의 도로에 국한된다면, 이 프로젝트는 주변 공원은 물론이고 학원에 이르기까지 아이들의 행동반경 전체를 포괄한다. 발표자 심한별 연구원(서울대학교 공학연구소)은 “보행자 우선 환경을 조성하려는 적극적 시도였고, 실제로 효과가 있었다는 점에 의미가 있다”고 했다. 그러나 어린이 보행 환경이라는 쉽지 않은 대상을 다루었다는 점과, 그동안의 접근법과는 다른 시도였기에 학부모의 반발로 인해 사업 진행이 어려웠다는 점도 토로했다.
덧붙여서 “프로그램의 필요성에 대한 지역 사회의 인식이 널리 확산된다면 사업 확장에 도움이 될 것”이라며 사업 취지의 적극적인 홍보와 제도화의 필요성을 제기했다.
한국판 ‘보차공존도로’ 도입
두 번째 주제 발표는 ‘보행자우선도로 시범사업 추진현황과 과제’였다. ‘보차공존도로shared street’란 현재 시행 중인 ‘보행자우선도로’의 도입 배경이 된 시스템으로서 물리적인 공간 분리나 특정 시설물, 교통 규제에 의존하지 않고 다양한 도로 이용 주체간의 자율적인 배려와 상호 작용에 의해 작동하는 도로 운영 체제를 말한다. 남궁지희 연구원(AURI 공간문화정책연구본부)은 보차분리 방식의 한계점을 지적하며 보행자우선도로의 설계 목표와 전략을 설명했다. 남궁 연구원은 “물리적 시설과 투입 비용을 최소화하고, 접근성을 포기하지 않으면서도 안전한 보행 공간을 확보할 수 있다”며, 이를 위해 국내 도로 상황에 적합한 설계 기법 개발과 보행자의 우선권을 보장하는 제도적 근거 마련이 수반되어야 한다는 점을 당부했다.
현실성 없는 ‘도로교통법’
김지엽 교수(아주대학교 건축학과)는 ‘보행자 관련 법제 현황과 개선 방향’에 대해 발표했다. 김 교수는 ‘도로교통법’ 제8조와 제10조를 예로 들며 “현행 도로교통법과 관련 판례는 보행자의 안전이나 권리보다는 차량의 통행 및 운전자 보호에 치우쳐 있다”고 지적했다. 또한 “이렇게 자동차 위주로 구성된 법 체계는 국민 대다수를 범법자로 만들고 있다”며 현실성 없는 법률의 개정을 촉구했다. 아울러 해외 사례를 바탕으로 “보행자와 자동차가 공존할 수 있는 법 제도를 갖춰야 하며, 보행자의 안전과 편의를 우선적으로 고려해야 한다”고 역설했다.
주제 발표에 이어 진행된 토론은 박소현 교수(서울대학교 건축학과)가 좌장을 맡은 가운데, 이병민 사무관(국토교통부 도시정책과), 이원목 과장(서울시 보행자전거과), 김종식 팀장(성북구 교통행정과), 김중효 선임연구원(도로교통공단 교통공학연구실), 오성훈 본부장(AURI 공간문화정책연구본부)이 참여하여, 보행도시를 둘러싼 다양한 의견을 개진하였다. 현재까지의 성과에 대한 진단과 경험에서 우러나온 시행 상의 어려움도 주목을 끌었지만, 그보다는 김종식 팀장의 한 마디가 더 진한 여운을 남겼다. 김 팀장은 “이 자리에 와야 할 사람들이 오지 않았다. 선생님, 학부모님 그리고 경찰 관계자가 같이 얘기를 나누어야 하는데, 정작 제일 중요한 분들이 오지 않았다”며 정책과 사업을 추진하는 발주처와 전문가만의 토론회는 반쪽이 될 수밖에 없음을 지적했다. 좌장을 맡았던 박소현 교수의 말처럼 1년 후에 이런 자리가 다시 만들어 진다면, 양쪽 모두의 토론다운 토론을 듣게 될 수 있을까. 적어도 이번 토론에서는 어린이, 임산부, 노인 등 누구보다 ‘보행권’을 보장 받아야 하는 사람들의 목소리는 직접 들을 수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