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호의 대상은 ‘걱정 인형’으로 잘 알려져 있는 메리츠화재 사옥의 외부 공간이다. 강남역 사거리의 남동쪽에 위치한 메리츠 타워는 내년이면 준공 10년차가 되는 꽤 오래된 건축물이지만, 의외의 외부 공간이 있다는 점은 많이 알려지지 않았다. 아마 독자들도 사진만 보고서는 외국 프로젝트라고 생각할 수 있을 것이다. 우리가 이곳을 잘 모르는 일차적인 이유는 눈에 잘 띄지 않아서다. 강남대로와 면한 건물 전면에도 약간의 공공 공간이 조성되어 있지만 그곳이 건물 후면 공간의 존재를 암시하지는 않는다. 건물의 측면에서도 접근할 수 있기는 하지만 멀리서 보기에는 막다른 골목처럼 보여서 많은 사람을 끌어들이려는 의도를 가지고 있다고 보기는 힘들다. 메리츠 타워의 로비에 들어서면 거대한 창의 액자 효과를 통해 비로소 후면 공간을 감상할 수 있다. 다소 까다롭게 그 존재를 드러내는 방식은 건물의 후면 진입부에서도 마찬가지로 적용된다. 강남역 상업 지역의 이면도로에서 이 공간으로 진입할 수 있지만 두 팔을 벌려 환영하는 분위기는 아니다. 육중한 담의 크지 않은 문을 통과해야 후면의 외부 공간을 한 눈에 담을 수 있다. 기업에 따라 사옥의 외부 공간을 감상하거나 사진을 찍는 도중 경비원의 압박 수비를 받는 경우도 있지만, 이곳은 비교적 견제 없이 편안하게 이용할 수 있다. 안내판에 흡연이나 요란한 이용에 대한 자제가 당부되어 있는 정도다. 이것이 정교한 의도인지는 설계자의 설명을 듣지 않았으니 정확히 알길은 없다. 하지만 민간이 공공에 제공한 공간이되, 아는 사람들만 조용히 사용하는 정도로 설정된 소극적 분위기를 풍긴다. 열려있으나 비밀스러운 정원이 라고 부를 만하다.
공간 자체의 완성도는 만족스럽다. 공사 비용을 걱정하지 않고 쓴 듯한 고가의 재료가 말끔한 디테일로 시공되어 있고, 메인 뷰는 다소 복잡해 보이지만 잡다하지는 않다. 나무가 땅을 만나는 상식적 방식에서 벗어나 있어서 (대왕참나무 입장에서) 다소 걱정이 되긴 하지만, 공간을 지배하는 스테인리스 스틸과 유리는 세련되어 보이고 건축물과 담에 의한 후면 공간의 위요감도 만족스럽다. 특히 주 재료인 스테인리스 스틸은 외부 공간을 밝고 생기 있게 만들고 있지만, 결코 가벼워 보이지 않게 하는 적절한 선택이다.
캐스케이드cascade 방식의 물 활용은 강남역 이면 도로와의 단차를 극복하고 공간을 생동감 있게 연출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 흘러내리는 물의 양이 적으면 차분하게 보일 텐데 많은 양의 물을 꽤 급한 경사로 쏟아붓다보니 물의 패턴도 역동적으로 보인다. 물의 질감은 건물 내에서도 흥미로운데, 소리가 소거된 상태로 물의 부서짐을 감상할 수 있다. 물에 관한 재미있는 관찰은 외부 공간에서도 이어진다. 캐스케이드 방식의 수경 시설은 후면 공간 전체를 대상으로 큰 물소리를 생산하고 있다. 캐스케이드와 외부 공간을 구획하는 옹벽 사이에 생긴 선큰 공간에는 벤치와 함께 휴게 공간이 조성되어 있다.
정욱주는 이 연재를 위해 작은 모임을 구성하였다. 글쓴이 외에 factory L의 이홍선 소장, KnL 환경디자인 스튜디오의 김용택 소장, 디자인 스튜디오 loci의 박승진 소장 그리고 서울시립대학교의 김아연교수 등 다섯 명의 조경가가 의기투합하였고, 새로운 대상지 선정을 위해 무심코 지나치던 작은 공간들을 세밀한 렌즈로 다시 들여다보고 있는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