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9년부터니까, 15년째 종이책을 만들고 있다. 9년은 잡지와 단행본을 함께 만들었고, 6년은 단행본에만 집중했다. 그 기간 동안 만든 단행본이 대략 80권 남짓이니, 한 해에 5권쯤 편집한 셈이다. 단행본 에디터로서는 적은 양이지만, 절반 이상의 시간을 잡지에 투자했으니 게으름을 피운 수준은 아니다. 에디터로 참여한 첫 번째 단행본은 1999년 8월에 출간된 『현대 한국 조경 우수 작품집』이다. 선배들이 주로 편집했고, 나는 거드는 수준이었다. 양장 제본된 406쪽 분량의 제법 두꺼운 작품집이었는데, 『환경과조경』에 1985년 9월부터 1999년 6월까지 실린 근작, 수상작 중에서 대표작을 골라 내용을 꾸렸다. 특이했던 점은 책에 실린 주요 이미지와 『환경과조경』 총 목차, 조경 관련 분야 명부, 조경 제품 사양 등이 실려 있는 CD를 부록으로 제작한 일이다. 개인적으로는 『환경과조경』에 15년동안 실렸던 주요 작품들을, 이 책을 편집하면서 압축적으로 들여다 볼 수 있었기 때문에 큰 공부가 되었다.
아, 그리고 잊지 못할 에피소드도 있다. 원래 이 책은 양장(하드커버)이 아니라 무선 제본(소프트커버)을 하려고 했었는데, 인쇄소의 실수로 표지에 문제가 생겨, 인쇄 및 제본이 모두 끝난 후 원래 책 크기에서 1cm 정도를 잘라내고 양장으로 다시 제작했다. 추가 비용을 인쇄소에서 부담했으니 결과적으로는 손해가 없었지만, 당시의 아찔했던 기억은 지금도 후반 작업에 신중을 기하게 하는 좋은 약이 되었다. 그 책을 기점으로 어쩌다가 단행본 담당자가 되어 적지 않은 조경 책을 편집했다. 출판 의뢰가 들어온 경우가 대다수였지만, 연차가 쌓인 후에는 자체 기획도 조금씩 시도했다. 그러면서 자연히 다른 출판사에서 나온 조경 관련 도서를 뒤적이게 되는 경우도 늘어났다. 이 글은 그렇게 만들고 접한 몇 권의 책 이야기다.
초기에는 『한국 조경 설계경기 작품집』(한국조경사회 편), 『골프코스 설계 및 시공』(마이클 허잔 저, 황원 역) 등 주로 출판 의뢰가 들어온 책들을 편집했다. 차례부터 제목까지 전적으로 필자의 의견에 의지했다. 출판기획서도, 에디터의 역할도 머릿속에 없을 때였다. 출력소에서 필름 교정을 볼 때마다, 기도하는 심정으로 ‘제발 큰 잘못은 없기를’ 따위의 주문을 몇 번이나 되뇌고, 불안한 마음에 교정 오케이를 쉽게 내지 못했다. 이때 펴낸 책 중에서 가장 많이 팔린 책은 『신 실내조경학』(이종석·방광자·김순자 저)이다. 올해 초에 여섯 번째 인쇄를 할 정도로, 꾸준히 팔리고 있는 책 중의 하나다. ‘전문 서적은 역시 교재가 갑이다’라는 깨달음(?)을 준 책이기도 하다. 이 시기에 기억에 남는 또 다른 책은 『건강을 부르는 웰빙 가든』이다. 다른 기자가 기획하고 필자도 섭외했는데, 당시 막 뜨기 시작한 ‘웰빙’을 ‘정원’과 접목시켜 개정판까지 펴냈다. 『주택 정원』을 제외하고 처음 펴낸 정원 책으로, 정원 책의 가능성을 어렴풋이나마 맛보게 해주었다. 필자인 이성현 대표는 이후 『정원사용설명서』를 함께 펴냈고, 지금도 올 하반기 출간을 목표로 『건축가의 정원, 정원사의 건축』이란 타이틀의 책을 함께 작업 중이다. 또 한 권을 꼽자면, 『재료의 미학』이 떠오른다. 필자인 황용득 대표가 소장하고 있던 어마어마한 슬라이드 필름도 인상적이었지만, 편집 과정에서 들었던 재료의 물성, 단행본을 통한 자료공유의 필요성, 답사 뒷이야기에 대한 잔상이 꽤 오래남았다(이 책은 후에 『돌, 철 그리고 나무』란 타이틀로 개정증보판이 출간되었다).
에디터로서 각성을 하게 된 책 중의 하나는 『현대 조경 설계의 이론과 쟁점』(배정한 저)이다. 입사 이후 맡았던 연재 원고 중에서 피드백이 가장 많았던 ‘동시대 조경 이론과 설계의 지형’을 한 권의 책으로 묶어낸 것이어서 밖에서 보기에는 평범해 보이는 작업이었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았다. 우선 담당자였던 내가 단행본을 출간하자는 필자의 제의에 난색을 표했다. 연재가 종료된 지 얼마 지나지 않아서 단행본으로 묶어내면 아무래도 판매가 저조할 것 같았다. 그러나 나의 우려는 기우에 지나지 않았다. 올해로 출간 10주년을 맞이한 이 책은 지금까지도 꾸준히 호응을 얻고 있다(현재는 절판 상태인데, 개정판을 낼 계획이다). 대학 시절 읽었던 수 많은 소설집이 문학 계간지에 수록되었던 작품을 묶어서 펴낸 것이었음을 뻔히 알고 있으면서도, 당시에 『현대 조경 설계의 이론과 쟁점』에는 왜 그리 박한 평가를 했는지, 지금도 물음표로 남아 있다. 이 책을 기점으로, 잡지 연재 후에 단행본을 묶어내는 방식의 기획이 조금씩 늘어났다. 그리고 이 책을 편집하면서 본문 표기 원칙, 주석 표기 원칙 등 몇 가지 기준을 뚜렷하게 세울 수 있었고, 디자인과 판형에 대한 감도 조금씩 잡을 수 있었다(그렇다고 크게 나아지진 않았지만). 지금도 여전히 유효한 문제의식을 담고 있는 내용에 대해서는 따로 언급할 필요가 없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