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상지를 방문하기 전에 들었던 첫 번째 궁금증은 ‘왜 용인이었을까’하는 점이다. 백남준은 서울 태생이며 일본, 독일을 거쳐 미국에서 활동한 아티스트였기 때문이다. 백남준 미술관 설립은 일종의 유치전 성격을 띤 사업이었는데 경기도가 가장 발 빠르게 대처해 선점한 것으로 보인다. 백남준은 가장 먼저 적극성을 보인 경기도에 ‘전 세계 미술관 중에서 백남준의 이름을 사용할 수 있는 유일한 미술관’이라는 권리를 부여했다고 한다. ‘전 세계를 무대로 활동한 글로벌한 예술가가 고국으로 선물을 보내면서 특정 장소와의 결부는 고려하지 않았던 것 아닐까’ 생각을 해본다. 백남준아트센터의 본명은 ‘백남준이 오래 사는 집’이었다.
백남준이 생전에 미술관 부지를 확정하고 직접 지은 이름이라고 한다. 이름이 좀 길어서인지 혹은 외국인에게 기억되기 힘들어서인지 고인의 작명은 사라지고 백남준 미술관으로 한동안 불리다 지금은 백남준아트센터가 되었다. 평생을 파격으로 점철한 예술가의 기념 미술관인데 이름이 좀 파격적이어도 되지 않았을까. 그런데 초기의 아이디어 중 받아들여지지 않은 것이 이름 뿐만은 아니다.
정욱주는 이 연재를 위해 작은 모임을 구성했다. 글쓴이 외에 factory L의 이홍선 소장, KnL 환경디자인 스튜디오의 김용택 소장, 디자인 스튜디오 loci의 박승진 소장 그리고 서울시립대학교의 김아연 교수 등 다섯 명의 조경가가 의기투합하였고, 새로운 대상지 선정을 위해 무심코지나치던 작은 공간들을 세밀한 렌즈로 다시 들여다보고 있는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