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원화 사업임에도 참가 자격을 ‘건축사’로만 제한 ‘마포석유비축기지 재생 및 공원화 사업을 위한 국제설계경기’는 시민들에게 다양한 문화적 활동을 제공할 수 있는 ‘공원’ 조성을 목표로 했다. 대상지 전체를 하나의 ‘열린 공원’으로 조성하는 것이 핵심 목표였으며, 석유비축탱크를 품고 있는 대상지는 도시적·지형적으로 독특한 조건을 가진 땅이다. 때문에 이번 설계경기는 다양한 전문성을 갖춘 여러 전문가들의 참신한 아이디어와 창의적인 접근 방식이 무엇보다 중요했다. 그러나 이번 설계경기는 그 참가 자격을 ‘건축사’로 한정하여 조경가의 공식적인 참여를 배제했다. 이에 본지는 공모전을 주최한 서울시에 참가 자격을 제한한 배경과 이유를 질의했다. 다음은 그에 대한 서울시(도시계획국 공공건축팀)의 답변이다.
참가 자격 관련 질의에 대한 서울시의 회신
“운영위원회에서는 당초 ‘참가 자격’을 다음과 같이 결정하였는데, 그 까닭은 ‘오래된 것은 무조건 철거해왔던 종래의 관습적 태도가 아니라 잃어버린 도시의 기억과 역사를 살려 산업 유산을 재생하고 활용하기 위한 참신한 아이디어와 다양하고 창의적인 설계안을 얻기 위함’이었습니다.
‘당초 자격 요건: 참가자는 단독응모의 경우 한국건축사 혹은 외국건축사이어야 한다. 공동응모의 경우 한국 혹은 외국건축사 1인을 팀의 대표자로 지명하고 나머지 팀원은 4인 이하로 하여 전문분야에 제한 없이 자유롭게 구성할 수 있다. 다만 주최자의 소속 직원, 심사위원 및 운영위원이 소속된 조직의 구성원, 중복으로 응모한 자, 자격 정지 중인 건축사는 참가할 수 없다.’
그러나 ‘참가 자격에 제한을 두지 않을 경우 계약 관계법령에 맞지 않는다’는 기술용역 타당성 심사 결과에 따라 계약부서(재무과) 및 안전행정부 협의를 거치면서 부득이하게 현행법령 규정에 맞도록 공모지침상 참가자격을 변경하여 공고하였습니다. 또한 운영위원회는 ‘본 설계경기의 핵심은 기존 석유탱크의 재생 및 활용’이라고 판단하여 참가자의 대표는 국내외 건축사로 지난 5차 위원회에서 결정했었고, 변경된 참가 자격에서도 DDP와 같은 설계비 폭증 및 계약 관련 분쟁 등을 방지하기 위해 향후 ‘기본 및 실시설계’ 계약시 관련법령에 따라 건축사사무소를 등록한 자를 주계약자로 선정하도록 했습니다. 이 과정에서 대상지와 주변 여건상 공원이 많고 도시계획 변경, 토목 등 다양한 분야와의 연계가 필요하다는 의견에 따라 ‘엔지니어링산업진흥법 시행령’ 규정에 따른 조경기술사 등 다른 전문가들의 참가를 적극 검토하였으나, 참가자의 대표가 국내 건축사사무소를 등록한 자로 한정되고 공동응모는 2개사를 초과할 수 없도록 제한하면서 참가 분야를 전부 명시하는 것은 어려울 뿐만 아니라 계약 시 시비가 발생될 여지가 있고, 컨소시엄 구성에 따른 참여업체가 오히려 지나치게 적어질 우려가 있다는 판단에 따라 참가 자격을 변경하는 실무 과정에서 다른 전문분야가 불가피하게 제한되었습니다. 우리 시는 ‘최근 국제설계경기의 흐름은 각기 다른 전문성을 가진 이들이 적극적인 파트너십을 통해 새로운 해법을 도출해 내는 협력적 작업이 필요하다’는 대부분 전문가들의 견해에 동의하며 본 설계경기에도 적용하려 하였으나, 위와 같은 제도상 문제 등으로 인하여 다양한 분야에 참여기회를 제공하지 못한 것을 아쉽게 여기고 있습니다.
따라서 상기와 같은 문제들이 향후 시행될 설계경기에서는 발생되지 않도록 우리 시에서는 건축정책위원회를 통해 개선방안을 논의하고 있으며, 법령 개정 건의등 후속 조치를 마련할 예정입니다.”
협력적 작업을 중시하는 시대적 흐름에 역행
지난 6월 최종 우승팀을 발표한 ‘리빌드 바이 디자인Rebuild by Design’ 설계공모는 CNN이 선정한 2013년 최고의 아이디어에 이름을 올렸는데, 여러 단계에 걸친 공모 과정과 전문가 집단의 학제 간 협력이 돋보였다는 평을 받고 있다. 특히 도시설계, 건축, 조경, 원예, 해양학, 엔지니어링, 생태, 교육, 그래픽 디자인, 예술, 재정-경제 등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가 참여함으로써 복합적 해결책을 제시할 수 있었다. 최근 국제설계경기의 흐름은, 각기 다른 전문성을 가진 이들이 적극적인 파트너십을 통해 새로운 해법을 도출해내는 협력적 작업을 크게 장려하고 있다. 기본 개념을 도출하는 첫 단계에서부터 여러 전문 분야의 협업이 필요하다는 점에 많은 전문가들이 동의하고 있기 때문이다.
설계공모의 핵심은 ‘공개’ 경쟁
이번 설계경기에 참가한 조경가들은 한결같이, 오일탱크에 대한 건축적 설계 해법이 중요한 대상지였으므로 대표자를 건축사로 한정하는 것은 이해할 수 있지만, ‘공원화 사업’이란 타이틀이 붙은 설계공모임에도 조경가가 공식적으로 공동 참여조차 할 수 없는 상황은 납득이 가지 않는다는 반응을 보였다. 참가 자격에 대해 이의를 제기하는 것이 분야 이기주의나 영역 다툼이 아니냐는 의견도 있지만, 공개경쟁방식으로 진행되는 설계공모에 참가조차 할 수 없도록 자격을 제한한 지침에 이의를 제기하는 것은 그 성격이 다르다. 가장 좋은 안을 뽑기 위해, 다양하고 폭넓은 아이디어를 구하기 위해, 보다 많은 전문가들이 참여할 수 있도록 문호를 개방하고 확대하는 것은 주최 측의 당연한 의무다. 다양한 층위의 안을 폭넓게 받은 후에, 대상지에 가장 적합한 안을 뽑는 것은 심사위원의 몫이자 역량이다. 미리부터 참가를 제한할 하등의 이유가 없다.
박원순 서울시장은 지난 6.4 지방선거 당시 서울역 고가도로를 재활용하여 뉴욕의 하이라인과 같은 공원으로 조성하겠다는 공약을 밝힌 바 있다. 이에 서울시(주무부처 도로관리과)는 서울역 고가도로를 대상으로 국제지명초청공모를 진행하기 위해 설계지침서를 작성하고 있는데, 이 참가 자격에도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마감중인 9월 22일 현재, 공식적인 설계공모 요강이 발표되지 않았다). 한국조경사회는 서울역 고가 프로젝트의 경우, 건축, 조경, 토목구조 3개 분야가 컨소시엄으로 참여하는 것이 합당하다는 의견을 서울시에 전달한 상태다. 또 조경 관련 6개 단체장(한국조경학회, 한국조경사회, 한국환경계획·조성협회, 대한건설협회 조경위원회, 대한전문건설협회 조경공사업협의회, 한국환경조경자재산업협회) 공동 명의로 서울시장 면담도 요청해놓았다. 이 자리에서 이번 설계경기의 참가 자격 제한에 대한 문제 제기를 비롯해서, 다양한 조경 관련 정책 제안, 제도 개선 요구 등이 전달될 것으로 보인다. 이번 논란이 공정한 경쟁의 장이 마련될 수 있는 하나의 계기가 되기를 기대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