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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디토리얼] 도그마
  • 환경과조경 201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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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도 폐기되어 방치된 지 16년 만에 복합문화공간으로 변신을 꿈꾸며 진행된 ‘마포석유비축기지의 재생 및 공원화 사업을 위한 국제설계경기’가 막을 내렸다. 그 진행 과정과 수상작들을 보면서 일종의 도그마dogma라고도 할 수 있을 두 가지 쟁점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는다.

참가 자격 문제가 그 하나다. 경쟁 끝에 선정된 당선작과 여러 수상작의 설계 개념과 해법보다 오히려 작품 외적인 문제가 논란이 되고 있는 상황이 안타깝다. ‘환경’과 ‘재생’을 주제로 한 이 공모전은 “시민들에게 다양한 문화적 활동을 제공할 수 있는 공원 조성을 목표”로 삼았음에도, 국내외를 막론하고 유사한 사례를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폐쇄적인 참가 자격 조건을 내걸었다. 대표자를 “건축사 면허를 소지하고 … 건축사사무소의 등록을 필한 자”로 규정했을 뿐만 아니라 “공동 응모 시 응모자 모두 상기 자격을 갖추어야” 한다고 제한한 것이다.

이와 같은 제한은 “푸른 도시, 건강한 도시, 매력적인 도시”를 지향하고 있는 서울시의 정책 방향에 역행하는 태도가 아닐 수 없다. 다양한 전문분야의 협력과 융합이라는 시대정신에도 어긋난다. 이러한 극단적 폐쇄성의 원인이 서울시를 대리하여 공모를 전담 운영한 기관의 건축 교조주의dogmatism나 근본주의fundamentalism에 있다고 믿고 싶지는 않다. 진행 과정상의 단순한 실수이거나 서울시의 행정적 무관심에서 비롯된 일이기를 바랄 뿐이다. 결과적으로 조경가는 설계 크레디트에 정식으로 이름을 올리지 못했지만, 『환경과조경』은 그들의 역할을 기록하기 위해 수상작에 참여한 조경가의 이름을 본문에 포함시켰다(지면 관계상 수록하지 못한 가작 수상작에도 유승종, 정욱주, 최혜영 등의 조경가가 참여했음을, 이곳에서나마 밝혀둔다). 마포석유비축기지 공모전을 두고 함께 생각해 볼 또 다른 도그마는 산업 유산을 재활용하는 최근의 설계에서 드러나는 단선적 경향에 관한 것이다. 잘 알려진 바와 같이, 기능을 다한 공장, 항만, 창고, 철로 등의 산업시설을 재활용하여 공원, 미술관, 복합문화시설로 전환하는 프로젝트가 20세기 후반 이후 줄을 이었고, 이러한 재활용이 주변 지역과 도시를 재생시키는 촉매가 된 성공 사례도 속속 탄생했다. 뒤스부르크-노르트 공원을 벤치마킹한 선유도공원이 국내 포스트-인더스트리얼 공원의 서막을 열었고, 콘크리트와 녹슨 철과 새로운 식물이 동거하는 선유도공원의 생경하면서도 숭고한 sublime 미감이 서울숲공원의 정수장 구역과 서서울호수공원 등 여러 공간에 그대로 이식되었다. 이제 공장이나 산업시설에 문화나 유산이라는 말을 대입하는 것이 전혀 어색하지 않다. 오히려 공업시설의 구조물, 흔적과 잔해, 재료와 물성을 그대로 남기고 적극적으로 재활용하는 것이 반드시 지켜야만 하는 일종의 설계 ‘규범’으로 작동하고 있기까지 하다. 그러한 규범이 절대 어겨서는 안 되는 도그마로 치닫거나, 아니면 단순히 표피적인 이미지로 소비되면서 하나의 유행으로 복제되는 경우도 적지 않다.

마포석유비축기지는 1970년대의 두 차례에 걸친오일 쇼크 이후 국가적 차원에서 추진한 석유 비축사업의 결과물이다. 매봉산 자락에 콘크리트와 철제 구조물로 만든 5층 건물 높이의 탱크 다섯 개가 매설되었고 여기에 20여 년간 130만 배럴의 석유가 저장되었던, 한국 현대사의 독특한 산물이다. 새로운 변신을 기획하고 있는 이 땅의 설계에서 ‘재생’과 ‘남기기’가 중심 주제로 검토되어야 하는 것은 당연하다. 그러나 그 방식은 보다 자유롭고 창조적일 필요도 있다. 석유를 저장했던 탱크는 형태와 물성만으로도 강렬한 매력을 지니고 있지만 그렇다고 해서 설계의 다양한 해법을 제한하는 조건인 것은 아니다. 예컨대, 당선작 ‘땅으로부터 읽어낸 시간’은 탱크가 건설되던 당시의 작업 역순으로 그 과정의 기억을 복원하고자 한다. 암반을 뚫고 석유 탱크를 만들던 작업로를 다시 재현하고자 한다. 이 작품에 대해 심사위원회는 “공간의 기억에 주목해 ‘건축의 고고학’을 전개한 작품”이라고 정의하고, “과도한 설계를 자제하면서 이 땅이 지닌 지형의 고유한 잠재력을 최대로 이끌어냄으로써 탱크와 풍경이 하나가 되게 한 작품”이라고 평했다.

심사평처럼 이 작품은 건설 당시의 상황과 조건에 주목하여 설계를 전개했으며 새로운 물리적 개입을 최소화하는 지혜를 발휘한 수작이다. 그러나 그러한 해법이 과연 이 땅과 주변 지역에 어떠한 재생의 효과를 가져 올 수 있는지 상상하기란 쉽지않다. 당선작뿐만 아니라 다른 수상작들도 과연 무엇을 재생하고자 한 것인지 의문을 던져 볼 필요가 있다. 탱크를 최대한 원래의 형태대로 남겨서 다시 쓰는 것과 이미지의 소비나 유행 사이의 경계는 아슬아슬하다.

지난 9월 초, 서울시는 철거가 예정되었던 서울역 고가도로를 “뉴욕의 하이라인처럼 공중 공원으로 바꿔 서울의 명물로 키우기로 했다”고 발표했다. 산업시대의 대표적 산물인 이 고가도로를 “관광 명소로 만들기 위해 원형 구조물을 최대한 보존하여 휴식 공간으로 재생할 계획”이며, “도로 상하부에 ‘환경과 재생’을 주제로 다양한 콘텐츠와 프로그램을 도입”한다고 한다. 10월에 국제설계공모를 통해 연말까지 계획안을 선정하고 내년에는 구체적인 설계안을 발전시켜 2016년 완공을 목표로 한다는 ‘토건시대적’ 스피드의 일정도 내걸었다. 이 프로젝트는 기억과 역사에서 지워질 예정이었던 1970년 대의 구조물을 재활용해 서울에 새로운 명소를 만들어낸다는 의의를 분명히 지니고 있다. 모든 것을 순식간에 지우고 버린 후 다시 빠른 속도로 그리고 만들기를 반복해 왔던 우리 현대사에 대한 반성과 극복이라는 의미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것이 서울의 도시 구조와 형태에, 또 주변 지역의 재생과 재활성화에 어떤 긍정적 영향을 가져 올 것인지에 대한 충분한 검토가 선행되어야할 것이다. 서울시가 발표한 급박한 일정대로 진행된다면, 연장 1km에 가까운 고가도로를 그대로 ‘남겨’ 다시 사용하는 것에만 초점을 둔다면, 이 프로젝트 역시 이미지의 소비이거나 도그마의 추종에 불과할 가능성이 적지 않다. 이번 호의 도시재생 특집에서 여러 필자들이 강조하고 있듯, 과거의 것을 남긴다고 해서 재생과 재활성화의 필요충분조건이 충족되는 것은 아니다. 뉴욕의 하이라인을 모델로 삼았다는 서울역 고가 프로젝트가 여느 시장들의 전시적 대형 사업과 다름없는 정치적 프로젝트가 아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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