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로부터 입춘이나 대보름 전야에는 많은 사람들에게 도움이 되는 착한 일을 꼭 해야 연중 액을 면 한다는 ‘적선공덕積善功德’이 있었다. 상여 머리에서 부르는 향도가香徒歌에 ‘입춘날 절기 좋은 철에 / 헐벗은 이 옷을 주어 구난공덕救難功德하였는가 / 깊은 물에 다리 놓아 월천공덕越川功德하였는가 / 병든 사람 약을 주어 활인공덕活人功德하였는가 / 부처님께 공양드려 염불공덕念佛功德하였는가’ 하는 대목이 있지 않나.
두말할 필요 없이 다리란 모든 사람들에게 골고루 이익을 주기 때문이다. 세계 어디를 가든 그곳의 디자인이 세련된 다리에 먼저 눈길을 주게 된다. 아름답고 역사가 깃든 외국 의 다리들을 볼 때마다 부럽지 않을 수 없다. 파리의 센 강에는 30여 개의 다리가 있어 다리 위만 걸어도 파리의 근현대사가 발끝에 전해진다. 다리란 이용하는 사람에 따라 그 기능을 달리하는 복합적인 공간인 셈이다. 1801년에 만든 퐁데자르 다리는 ‘예술의 다리’로 불리며 명성이 높다. 카뮈, 사르트르, 랭보 등 작가들이 즐겨 찾아 작품을 구상했던 보행자 전용 다리로, 날마다 거리의 화가와 음악가들이 몰려들고 해질 무렵이면 청춘들이 몰려와 밀어를 속삭인다. 붉은색 교량으로 유명한 미국의 금문교는 주위의 경치와 조화를 잘 이루고 있고 짙은 안개와 함께 샌프란시스코의 상징이 됐다.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다리 중 하나로 꼽히는 금문교양단의 공원에는 관광객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호주의 시드니 하면 하버 브리지가 바로 떠오르듯이 경관이 수려한 도시에는 아름다운 교량이 반드시 있다.
우리의 다리들은 격조 있는 전통이 이어지지 않고 단절될 위기에 직면해 있다. 특히 산업화 시대에 급조된 다리들을 보면 아쉽고 민망하다. 단적인 예로 진도대교의 경우 명량대첩이라는 어마어마한 역사가 있는데도 거북선이나 이순신 장군의 이미지가 거의 묻어 있지 않다. 영화 ‘명량’이 화제로 떠올라 더더욱 아쉽기만 하다. 우리에게는 왜 역사와 시와 낭만이 있는, 미학적으로 뛰어난 다리가 드문 것일까. 물론 우리나라의 모든 다리가 다 그런 것은 아니다.
조선시대에 만든 여러 다리는 기능적으로도 뛰어나고 어떤 철학을 느끼게 한다. 지금은 장충단공원으로 옮겨놓은 수표교의 경우에는 단순히 건너가는 기능만 있었던 것이 아니다. 돌난간이 멋들어질뿐만 아니라 교각에는 수량을 재는 눈금까지 새겨져 있는 돌다리다. 자연과 어우러져 무지개다리라고 불리는 승주 선암사 홍교虹橋나 벌교 홍교, 불국사의 백운교와 청운교도 규모는 작지만 외국의 명품 다리와 견주어 뒤지지 않는다. 자연을 거스르지 않고 상생하는 동양 정신이 잘 나타나 있는 가운데 공공 공간으로서 역할을 충실히 했다. 현재 수원화성 내에 존재하는 화홍문 등 수문은 전란에 대비한 방어 시설인 동시에 하천의 범람을 막아 수위를 조절하는 역할을 했다. 주변의 경관과 잘 어울리며 군사적, 토목 기술적인 면에서도 뛰어난 교량 구조물이다. 낙안읍성의 평석교와 광통교는 무병장수의 꿈을 염원하며 대보름에 남녀가 만나는 곳이었고, 남원 광한루의 오작교는 이몽룡과 성춘향의 러브 스토리를 전하고 있다.
웅장한 현대식 다리에 비하면 이런 옛 다리들은 초라하고 볼품이 없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옛 사람들의 지혜와 숨결이 고스란히 담겨 있어 결코 소홀히 대할 수 없다. 우리네 옛 다리에는 역사적인 삶의 흔적과 정신적인 얼이 담겨 있다. 과학성까지 스민 귀중한 문화유산이다. 교량은 당대의 첨단 기술과 조형 감각이 집약된 도시의 아이콘이며, 나아가 기념비적 가치도 지닌다. 그러나 단순히 기능적이고 조형적인 목표만이 전부가 아니다. 시공을 뛰어 넘어 과거와 미래를 연결하는 역사의 통로, 단절된 세대와 지역을 잇는 새로운 소통의 통로가 되어 답답하게 막혀 있는 세상을 시원스럽게 뚫어주기를 바라는 마음 간절하다.
작지만 새로운 시도에서 희망을 볼 수 있어서 다행이다. 김제의 새창이다리(구만경대교)에서는 매년 시낭송회와 전시회가 열리고 있다. 무주의 반딧불축제와 영월의 아리랑제 때는 섶다리가 놓인다. 부산의 영도대교, 진천의 농교, 경북의 무섬다리, 삽교의 삽다리, 봉평효석문화마을의 징검다리 등에서도 크고 작은 이벤트가 열리면서 추억을 덤으로 얹어주고 있다.
전주의 사례도 주목할 만하다. 전주천 다리 밑을 수놓은 700여 장의 타일 그림을 따라 어린이들이 걸어간다. 벽에 걸린 작품 구석구석 눈을 맞추고 입을 맞춘다. 손끝으로 살짝 어루만지고는 작품 앞에서 기념사진을 찍는다. 반 고흐의 해바라기나 신윤복의 미인도를 관람하는 듯한 이런 광경은 요즘 전주천의 어은교 등 여러 다리 밑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풍경이다. 공공미술 프로젝트 ‘얘들아 하늘밥먹자(얘하밥)’에서는 전주천 밑에 타일 벽화를 그렸던 6~7세 아이들이 세상을 바꾸었다. 어르신들의 쉼터로만 사용되던 침침한 다리 밑에 아이들의 밝고 환한 웃음소리가 더해져 여러 세대가 함께하는 새로운 문화가 생겨나고 있다. 되살아난 전주천에 동심이 차곡차곡 쌓이고 있다.
이종근은 전주시 ‘문화의집’ 관장, 한국문화의집협회 부이사장 등을 거쳐 「새전북신문」 문화교육부 부국장으로 일하고 있다. 한국프레스센터, 관훈클럽(신영연구기금), 한국언론진흥재단 등의 기획 출판대상에 6회 선정됐다. 1994년 ‘문예연구’ 신인상을 통해 수필가로 등단했고, 2010년 제1회 대한민국 신화창조 스토리 공모대전(한국콘텐츠진흥원)에서 우수상을 받으면서 다큐멘터리 작가로 데뷔했으며, 2011년 KBS-1 TV를 통해 ‘꽃담의 유혹’ 2부작이 추석 특집물로 방영되기도 했다. 『우리 동네 꽃담』, 『한국의 옛집과 꽃담』, 『이 땅의 다리 산책』 등의 저서를 펴낸 바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