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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사무 노구치의 모에레누마공원
  • 환경과조경 2003년 11월
 모에레누마로 가는 길 더위가 한창이던 지난 8월, 일본 홋카이도의 삿포로에서 모에레누마(モエレ沼)를 찾아가고 있었다. 약 10년 전, 두근거리는 마음을 달래며 파리의 라빌레트공원(La Villette Park)을 찾아가던 내 모습이 떠올랐다. 빨강색 폴리와 초록색 녹음이 어우러진 감각적인 라빌레트를 보면서 “이것도 공원이구나, 공원을 이렇게도 만들 수 있구나”하며 감탄사를 연발했던 기억이 났다. 그런데 2003년 8월, 지금도 비슷한 설레임 속에서 또 다른 공원을 찾아가고 있다. 왜일까?
  나는 모에레누마공원에 대해 몇 가지의 의문을 가지고 있었다. 왜 공원의 조성기간이 무려 20년이 넘었을까? 60만평(189ha)에 이르는 대규모 평지공원을 왜 시가지 외곽에 만들어야 만 했을까? 이 공원을 디자인한 이사무 노구치(イサム?ノグチ)는 분명 조각가 인데 어떻게 공원을 디자인하게 되었을까? 과연 조각가가 디자인 한 공원은 어떤 모습일까? 세 번째와 네 번째 의문은 본 글의 핵심부이니 뒤로 미루자. 원래 모에레누마는 삿포로의 북동부를 흐르는 토요히라강(豊平川) 지류의 범람원이자 늪지대였다고 한다. 요즘의 우리 상식으로는 당연히 친환경적인 보전을 하여야 할 대상인데도 삿포로시는 이 곳을 쓰레기매립장으로 사용함과 동시에 공원으로 조성하자는 엉뚱한 발상을 한다. 아마 삿포로 북동지역의 새로운 거점공간을 확보하기 위함이었으리라 생각한다.
 1979년부터 매립을 시작하여 1982년부터 공원의 기반공사를 개시하고 270만 톤의 쓰레기가 매립된 1990년부터 본격적으로 공원 조성을 시작한다. 결과적으로 이곳은 삿포로시 Leading Project의 일환으로 삿포로시 환상그린벨트 중 북동부 녹지벨트의 거점으로 계획한 것이다.
 모에레누마공원과 이사무 노구치 내가 알고 있는 이사무 노구치는 세계적인 조각가이다. 일반적으로 조각은 일상생활과는 직접적인 관계를 맺지 못할 경우가 많고, 조각공원이라는 이름으로 기획적인 이벤트나 특정을 목적을 위해 녹지나 공원 속에 조각들이 놓여지는 것이 대부분이다. “그런데 왜 조각가가 공원을 설계하였을까? 그것도 60만평이라는 큰 땅을....”이라는 일련의 의문은 노구치에 대한 몇몇의 평전을 통해 해소할 수 있었다.
 노구치는 1904년 미국 LA에서 미국인 아버지와 일본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나, 1924년 레오나르도 다빈치 스쿨에 입학하여 조각을 배운 후 세계적인 조각가로 활동하게 된다. 이러한 태생에 대한 배경과 어린시절에 대한 그리움을 근거로 하는 “귀속으로의 소망”은 노구치의 예술적 철학이 되었고, 이것이 모에레누마공원의 디자인 배경이 되었다고 할 수 있다. 노구치는 돌과 흙을 통해 여러 가지 모양을 가진 자신의 고향을 찾았던 것 같다. 이 때문에 어떤 평전에서는 노구치는 인생과 일을 떼어 놓고 보아서는 안되며, 그를 과감히 “지구인”이라 칭하고 있다. 원래 지구에는 국가, 국경, 인종의 구별이나 차별, 이데올로기 등이 없고, 인간, 동물, 물고기, 새, 벌레, 식물, 돌, 등 모두가 그것을 거처로 하는 모체이자 인간의 사회, 경제, 그리고 문화활동의 장소이듯이, 그는 평생을 자연과 인간을 하나로 묶는 일에 골몰했던 것 같다. “나의 창작에 대한 정열의 뿌리는 공간과 조각에 사람의 감성을 스며들게 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는 단지 심미적인 목적만이 아니며 환상적 이미지는 더더욱 아닙니다. 그것은 우리의 현실, 즉 일상생활에 어떤 의미를 주고 역할을 제공하기 위함입니다.”
 1986년 10월, 이사무 노구치 이런 예술적 철학을 가지고 있던 노구치는 1988년 봄 우연히 모에레누마를 만나게 된다. 모에레누마공원은 어떻게 보면 60여 년 동안 어린시절을 동경하며 자신이 품고 있던 자연과 조각의 만남을 통한 새로운 Playscape 창조를 위해 모든 것을 쏟은 작품이라 할 수 있다. 마치 곧 다가오는 자신의 죽음을 예견이라도 한 듯이....... 노구치는 1988년 5월부터 7여 개월 동안 작업을 마치고, 한 달 후인 12월에 뉴욕에서 생을 마감한다. 이렇게 모에레누마공원은 노구치의 유작이 되었다.



강 동 진 Kang, Dong Jin
경성대학교 도시공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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