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도 분명히 기억이 난다. 불과 몇 달 전, 나는 『환경과조경』 면접을 앞두고 친구에게 모의 면접을 부탁했다. 친구는 그럭저럭 무난한 질문을 던졌고 나는 시험공부 하듯 외워둔 ‘모범 답안’으로 어색하게 대답했다. 그런데 마지막 질문, “그렇다면 ‘환경’과 ‘조경’은 어떤 관계에 있나요”에서 말문이 막히고 말았다. 서둘러 백과사전을 뒤졌다. “‘환경’은 인간에게 선험적으로 주어진 생존조건의 총화이며, 인간은 유사 이래로 ‘환경’과의 상호관계를 지속해왔다. 이러한 관계 속에서 인간은 ‘환경’을 의도적으로 변화시켜 왔는데, 이러한 변화의
결과물 혹은 그러한 변화를 일으키는 인간 행위를 광의의 ‘조경’이라고 볼 수 있다. ‘조경’은 아름답고 유용하고 건강한 ‘환경’을 조성하기 위해 인문적·과학적 지식을 응용하여 토지를 계획·설계·시공·관리하는 예술이다.”1 알 듯 모를 듯 어려운 이 문장을 곱씹으며 면접에서 절대 이 질문이 나오지 않기를 바랐다. 결국 면접장에서는 이 질문이 나오지 않았지만 어찌나 열심히 외웠던지 지금까지도 그 답안을 기억하고 있다.
뜬금없이 나의 면접 이야기를 꺼낸 것은 대관령 하늘목장에서 당시 어렵게 느껴졌던 그 질문을 다시 받은 느낌이 들었기 때문이다. 드넓은 초지, 푸르른 하늘, 아스라이 물결치는 능선이 있는 풍경. 총면적 1,100만m2에 이르는 장대한 자연 경관은 그 자체만으로도 사람을 압도한다. ‘선험적으로 주어진’ 자연 환경이 너무 거대하고 강렬해서 이곳에 무엇을 더하거나 뺀다는 것은 자연에 대한 ‘신성모독’이 될 수도 있겠다 싶었다. ‘이곳에 조경이 비집고 들어갈 영역이 있을까’ 몇 달 전 대답하지 못했던 질문을 다시 떠올렸다.
투박함, 꾸밈없이 아름다운
“처음에는 목장의 능선을 따라 세워진 풍력발전기가 시선을 사로잡는데 오랫동안 목장의 풍경을 바라보다 보면 풍력발전기가 오히려 시선에 방해돼요.” 취재를 가는 차 안에서 이수학 소장의 이야기를 들으며 설레는 마음이 커져갔다. 실제로 현장에 도착했을 때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 것은 거대한 풍력발전기였다. 하늘목장은 1단지와 2단지가 양 갈래로 뻗어 나가 ‘V’자 형태를 이룬다. 이 능선 둘레를 따라 100m 높이의 거대한 풍력발전기가 띄엄띄엄 놓여있다. 대관령 일대에만 풍력발전기가 49대 있는데 이 중 29대가 하늘목장에 있다고 한다.2 마치 거대한 설치 미술처럼 연이어 늘어선 풍력발전기에 시선을 빼앗기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런데 이수학 소장의 말처럼 시간이 흐르면서 이 풍경에 익숙해지고 좀 더 구석구석 바라보게 되면서 이 거대한 오브제는 쓸데없는 수식처럼 느껴졌다. 운무가 순식간에 파도처럼 밀려오고 시시각각 색이 변하는 하늘이 목장을 감싸는 이곳에서는 거칠고 투박한 자연만이주인공이었다.
최근 농장 체험, 목장 체험 등 체험 프로그램이 가족 단위 관광객들에게 인기를 끌면서 동화같이 인위적인 모습으로 꾸민 농장과 목장이 늘고 있는데 반해 하늘목장은 지난 40년 동안 가꾸어 온 목장 그대로의 모습이다. 이에 대해 하늘목장의 백승두 사장은 한 일간지와의 인터뷰에서 다음과 같이 말한 바 있다. “외부 사람은 이해가 안 될 겁니다. 하지만 한일시멘트 사람이면 알 수 있습니다. 우리 회사에서 이 목장은 성지와 같은 곳입니다. 선대 회장의 남다른 애정을 알고 있기 때문에 섣불리 개방할 생각을 못했던 것이지요.”3 이수학 소장은 방대한 부지에 비해 부족한 예산과 목장에 대한 이곳 사람들의 남다른 애착 때문에 설계에 고민이 많았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