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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지의 ‘사건’을 ‘기념’하는 우리의 자세

기념記念의 사전적 정의는 ‘어떤 뜻 깊은 일이나 훌륭한 인물 등을 오래도록 잊지아니하고 마음에 간직하는 것’으로, 의식에서 도로 생각해내는 기억記憶과는 의미가 다르다. 기념과 기억은 이야기narrative의 차이로도 구별할 수 있다. 보다 고전적인 입장에서, 기억은 주체에 의해 환기되는 사유화 된 이야기지만 기념은 일어난 사실에 대한 일종의 집합적 기억으로 어느 정도의 객관성과 보편성을 가진다. 기억에는 시간의 간극이 발생하면 할수록 많은 인식의 차이와 내용이 존재할 수 있지만 기념에는 사회적 합의에 의한 공공의 메시지가 들어있다.

지난 10월 초에 당선작을 발표한 동학농민혁명 기념공원 설계공모는 동학농민혁명의 위상을 기념성으로 제고한다는 분명한 방향을 가진 공원 공모전이었다.

설계 지침서에는 동학농민혁명을 “봉건제도를 개혁하고 일제의 침략으로부터 국권을 수호하기 위한 운동”이자 “우리나라 역사상 최초로 민중의 자각에 의한 전국적 농민 항쟁”으로 정의한다. “한국 민족민주운동의 시발점”이라고 평가하면서 동학농민혁명의 발발 배경과 참여자, 그리고 그 영향의 의의가 언급된다.

소설가 황석영은 동학농민혁명을 배경으로 쓴 소설 『여울물 소리』에서 여주인공여옥을 통해, 세상을 바꾸고자 했던 여러 이야기꾼의 삶을 보여주는 것으로 혁명에 가담한 민초들의 희망과 좌절을 전달했다. 그는 책의 말미에 이 혁명을 두고 “엄격한 신분제도로 유지되는 유교적 세상에서 ‘사람이 하늘이다’라는 놀랄 만한 선언을 한 동학의 출현은 그야말로 하늘이 놀라고 땅이 뒤집히는 사건”이라고 설명한다.

새로 조성될 동학농민혁명 기념공원은 동학농민혁명의 정신을 기념할 수 있어야함은 물론, 훼손된 지형과 진부하다고 생각하는 기존의 시설에 대한 대책을 마련해야 했다. 또 동학농민혁명의 정신을 구현하고 전파할 수 있는 거점이 되기 위해 공원에는 기념 공간과 교육 시설, 연구 시설이 필요했고, 그밖에 각 시설을 고려한 동선 정리, 도로 계획, 배수에 대한 대책, 이용자 수용에 대한 대비 프로그램 계획 등이 요구되었다.


동학농민혁명과 황토현黃土峴

설계 대상지는 약 10만 평 규모로, 동학농민혁명 당시 농민군이 관군과 대항해 첫 승리를 거둔 황토현 전적지가 포함되어 있다. 기념 공간에 역사적으로 중요한 사건이 일어난 장소가 있다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대지에 새겨진 기록만으로도 강력한 메시지를 전달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아쉽게도 황토현 전적지는 논밭으로 개간되면서 많은 교란과 변형이 일어났다. 이 장소의 기념비적 가치를 어떻게 회복시켜야 할지, 중요한 과제가 제시되었다.

황토현의 역사적 가치에 주목하면서 공모전에서 수상한 네 작품이 어떻게 동학농민혁명의 기념성을 풀어내었는지 들여다보면, 기념 공간을 대하는 그들의 상이한접근 방법을 잘 이해할 수 있다.

 

 

박희성은 서울대학교에서 ‘당·송대 산수원림’에 관한 연구로 박사 학위를 받았다. 저서로는 『원림, 경계 없는 자연』이 있으며 전근대 동아시아 도성과 원림, 근대기 동아시아 각국 조경의 영향 관계를 관심 있게 살피고 있다. 현재는 서울시립대학교 서울학연구소 연구교수로 재직하면서 동아시아 수도(capital)를 연구하고 있다. 서울 한양도성(Seoul City Wall) 세계유산 등재 신청서 작업에도 참여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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