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양 정원에 대한 이야기는 으레 이상 경관, 혹은 낙원에 대한 관념을 표출하는 장소로서의 정원으로 시작한다. 에덴동산Garden of Eden, 혹은 ‘아가’서에서 등장한 상징적 정원 등을 언급하며 이러한 정원을 구현하기위한 사람들의 노력이 정원의 역사라고 한다. 하지만 한편으로 정원은 혼란의 시기를 맞이할 때마다 일종의 도피처가 되었고, 동경과 상상, 적극적 실천의 대상이 되었다. ‘중세의 정원’이라고 하면 수도원 정원이 머릿속에 먼저 떠오를 테지만 16세기 후반 프랑스에 살던한 프로테스탄트가 꿈꾼 ‘피난처로서의 정원’도 흥미로운 사례가 될 수 있다.
신교와 구교 간의 종교 갈등과 국내외 전쟁, 경제 위기로 전 유럽이 어려움을 겪어 ‘철의 세기Iron Century’라고 평가되는 이 시기, 수십 년간 종교전쟁(1562~98)이 벌어진 프랑스에서는 프로테스탄트 박해가 극에 달했다(‘여왕 마고La Reine Margot’에서 수만 명의 개신교도가 학살당한 성 바르톨로메오 축일의 학살 장면의 예를 보자). 제1차 종교전쟁이 끝난 직후 한시적 평화의 시대 어느 날, 베르나르 팔리시Bernard Palissy라는 위그노(프랑스의 칼뱅파 교도)도공이자, 저술가, 측량가, 유리 화공, 그로토 제작인이 보르도의 감옥에서 석방되었다. 자유의 몸이 되어 가족과 교우들이 있는 생트Saintes로 돌아온 그는 강변을 거닐다가 소녀들이 ‘시편’ 104장에 곡을 붙인 노래를 부르는 것을 듣게 되었다. 풍요로운 자연 속에서 조물주의 신성한 힘을 발견하고 이를 찬미하는 성경구절에서 영감을 받은 그는 종교 박해를 피할 수 있는 도피처로서의 정원을 구상했고 이를 저서에 상세히 남겼다.
『르세트 베리타블』
팔리시는 1563년 출판한 『르세트 베리타블Recepte véritable(진정한 처방)』1의 두 번째 부분에서 정원 설계와 배치를 이야기했다. 그는 헌정문에서 “모든 프랑스인의 재산과 덕행을 늘리고자 이 책에 포함된 여러 비밀을 드러내어” 그를 석방시키는데 힘을 써준 모후 카트린느 드 메디시스Catherine de Médicis2에게 보은하는 것이 이 책의 목적이라고 밝혔는데, “하느님이 나에게 기꺼이 나누어준 달란트를 땅속에 숨겨두고 싶지 않다”고 하는 대목에서 프로테스탄트적 노동관이 나타난다. 즉 자연에 나타난 신의 신비를 해석하고 드러내는 것이 자신의 임무라고 본 것이다. 제도화된 교회를 지배하던 엄격한 위계질서로부터 자유를 추구하는 칼뱅파에 속한 위그노의 독실한 교인이던 그는 자신의 작업 방식과 사고방식이 신의 창조적인 성격과 교감할 진정한 통로를 재현한다고 보았다. 팔리시는 자신을 “그리스인도, 히브리인도, 시인도, 수사학자도 아닌 제대로 배우지 못한 보잘 것 없는 장인”이라고 지칭하고 지식인의 언어인 라틴어가 아니라 프랑스어로 책을 썼다. 이론적 학문보다 실천적 지식을 중시하는 그의 근대적 태도가 드러난다.
지상 낙원을 제외하면
이 세상에 없을 매우 아름다운 정원
팔리시는 “지상 낙원을 제외하면 이 세상에 없을 매우 아름다운 정원을 만들겠다”며 정원의 최고의 특징이 아름다움임을 언명한다. 이는 식재보다는 대상지와 구조, 그리고 무엇보다도 그가 ‘카비네cabinets’라고 부르는 구조물을 통해 나타난다. 그가 이상적이라고 본 ‘즐거움의 정원’에서는 실용성보다는 미적 요소가 강조되며 이는 신의 피조물에 대한 찬미가 된다. 그러나 이때의 즐거움은 세속적인 즐거움이 아니고 성경 말씀에 따라 다시 만들어진 근원적 순수함으로의 회귀를 의미한다. 『르세트 베리타블』은 그의 이상적 정원에 대해 같은 구절을 반복하며 장황할 만큼 설명하고 있지만 삽화가 전혀 없어 이해에 어려움을 주기도 한다.
그가 묘사한 정원은 산이나 높은 은둔지 아래의 평야에 위치한다. 북쪽과 서쪽은 바람을 막아주는 산으로 둘러싸여 사방으로 위요되어 있다. 산에서 내려오는 물이 정원을 가로지르며 정원 곳곳에 있는 분수에 물을 댄다. 그는 이런 안락한 곳을 발견하면 “이제껏 사람들이 비슷한 것도 본 적이 없는 아주 창의적인 정원을 설계하여 구성할 것”이라고 한다. 그는 ‘시편’ 104장을 토대로 정원을 조성해 사람들이 정원에서 그 말씀을 겸손히 묵상하며 신이 만든 모든 경이로움을 예찬하기를 꿈꿨다.
황주영은 이화여자대학교에서 불문학과 영문학을 공부하고, 미술사학과에서 풍경화와 정원에 대한 연구로 석사 학위를 받았다. 이후 서울대학교 협동과정 조경학전공에서 19세기 후반 도시 공원의 모더니티에 대한 연구로 박사 학위를 받았다. 미술과 조경의 경계 사이를 넘나들며 문화사적 관점에서 정원과 공원을 보는 일에 관심이 많고, 관련된 책 몇 권을 함께 쓰고 옮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