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시대의 정원
요즘 ‘정원 시대’가 다시 돌아온 것 같다는 말들을 한다. 시대가 다시 정원을 원하기 시작했다는 의미다. 최근에 읽은 어느 정원 책에서 그런 취지로 쓴 듯이 보이는 부분을 인용하면서 이야기를 시작할까 한다. “언제부터인가 다시 정원에 대한 관심이 커지고 정원을 바라보는 시선도 조금씩 달라지기 시작했다. 21세기에 접어들면서 공공의 장소에 정원의 성장과정을 적용한 개념이 등장하게 된 것은 어쩌면 잃어버린 정체성에 대한 고민의 결과일 것이다. 정원을 가꾸는 즐거움이 가득했던 정원의 시대에서 공공성이 강조된 조경의 시대로 넘어오면서 우리는 직접 가꾸는 즐거움, 즉 정원의 정체성을 잊고 살았다. 18세기 이후 역사의 주인공이 지배층에서 시민계급으로 점차 바뀌게 되면서 사적인 정원에 대한 관심은 공적인 공간을 다루는 공원으로 옮겨갔고, 공공의 선을 추구하는 제도와 공공공간이 만들어지기 시작했다. 가장 사적인 공간이었던 정원이 공원으로 탈바꿈한 것도, 조경을 태동시켰던 정원이 점차 주변부로 내몰리게 되었던 것도 그 즈음부터였을 것이다.”1
정원이 화두가 되고 있는 이즈음 너도나도 ‘정원’을 이야기하고 있다. 진정 정원을 필요로 하는 시대가 온 것이다. 그래서 이제 정원의 논의에서 제일 먼저 챙겨봐야 할 것은 그간의 정원 관련 연구와 실무를 종합적으로 점검해 보는 일이다. 시각에 따라서 많은 성과가 있었다고 판단할 수도 있고 혹은 성과가 미미했다고 볼 수도 있을 것이다. 만약 전자라면 지금까지의 성과를 바탕으로 정원의 시대를 맞으면 되겠지만, 후자의 경우로 지난 세월 동안 정원의 성과가 별반 없었다면 어떻게 되는 것일까?
그간 정원 관련 업적을 손에 꼽히는 대로 요약해보면 해외에 조성된 한국 정원들, 간간이 잡지에 소개된 정원들, 그리고 학회지에 실린 정원 관련 연구 논문들이 있을 것이다. 여기에 학회를 중심으로 진행된 해외 단체 답사에서 이루어졌던 정원 답사까지 포함하더라도 정원 관련 일 거의 모두가 전통 정원의 범주에 들고 현대 정원에 관한 실적은 거의 전무하다 싶을 만큼 미미했다.
따라서 정원학의 새로운 지평을 논의하는 일이 전통정원 연구를 보다 지속적으로 전개하자는 취지에서 비롯된 것이라면, 정원학의 가능성을 논의하는 것 자체가 새삼스러운 일일 수 있다. 혹은 그간 못해온 현대정원을 시작하자는 취지의 암중모색이라고 한다면 앞으로 해야 할 일이 산더미다. 어느 경우든 정원학의 가능성 논의에는 현재 사회적으로 이슈가 되고 있는 정원에 관한 관심사가 그 중심에 놓여있다. 만일 그 의견에 공감한다면 우리에게는 현재 사회적으로 널리 일기시작한 ‘정원’에 관한 담론이 필요하다. 과연 그 정원은 어떤 정원일까?
전통 정원과 현대 정원
세계의 정원, 역사적 개관
고대부터 전개되어 온 정원의 역사를 짚어보면 세계의 정원이 언제 어떻게 꽃피웠고 어떤 사회적 인식과 함께 전개되어갔는지 그 내력을 한 눈에 들여다 볼 수 있다. 앞서 잠시 인용했던 글은 정원의 역사를 일괄하며 사회적으로 정원이 가지고 있던 가치와 기능의 부침을 이야기한 것이지만 동시에 조경학의 태동 배경을 이야기한 것이기도 하다. 즉 역사적 흐름 속에서 보자면 정원과 공원(조경)은 사적인 공간과 공적인 공간에 관한 사회적 경향에 따라 서로 상반된 관계에서 전개되었다.
고대 정원 이래로 어느 시대 어느 지역을 막론하고 정원은 사회적 요인에 따라 전개되었다. 1970년대, 우리 사회에 조경학이 태동한 것도 어떤 필연적인 사회적 요인을 계기로 이루어졌다. 그래서 우리에게 필요한 정원학을 사회적 요인과의 관계에서 논의해봐야 할지 모른다.
세계 정원의 역사는 몇 단계의 전개 과정으로 나누어 볼 수 있다. 원초적으로 보자면 정원은 외부의 거친환경에 대응해 내부(생활 공간)에 순치된 환경을 만들어 온 결과물이었다. 특히 고대 사회의 정원이 그랬을 것이다. 이 단계를 나쁜 자연 가운데 좋은 자연을 만들어 간 단계, 간략히 줄여서 ‘좋은 자연’의 단계라고 해보자. 이후 중세 사회로 접어들면서 문화적 특징에 의해 종교적 색채가 더해진 이슬람, 기독교, 동아시아의 각 문화권별 정원이 형성되었던 때는 ‘상징 공간화’의 단계라고 명명해 볼 수 있다. 이슬람 정원, 동아시아 정원들은 최근까지 그들의 특성을 그대로 일관되게 유지해 왔다. 그들과는 달리 기독교 문화권의 유럽에서는 근대 이래로 다변화된 사회 구조의 부침에 따라 정원이 여러 양식으로 변화무쌍하게 전개되어 왔다. 상징적 공간화에 더해진 다른 결정 요인이 결부된 양상일 텐데, 르네상스-절대왕권 시대-시민사회 시대등 정치 체제나 사회 구조의 변화에 따른 특징에 주목하여 이를 ‘사회적 요인’의 단계라고 명명해 보면 어떨까 싶다.
정기호는 서울대학교 공과대학 공업교육학과에서 건축을 전공했고, 서울대학교 환경대학원에서 조경학 석사 학위를, 독일 하노버 대학교에서 건축학으로 박사 학위를 받았다. 저서로 『한국정원 답사수첩』(공저, 2008), 『유럽, 정원을 거닐다』(공저, 2013), 『경관, 공간에 남은 삶의 흔적』(2014) 등이 있고, 최근에는 유럽의 유명 문인과 예술가들의 개인정원을 다루는 글을 구상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