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길치의 자질을 타고났다. 방향 감각이 부족하고 길을 걸을 때 주변 지형지물에 전혀 관심이 없다. 완벽한 조건을 갖춘 길치다. 일찍이 그 소질을 깨달은 덕분에 남들보다 먼저 일어나 외출 준비를 하는 버릇을 들였다. 스마트폰이 없던 시절에는 얼마나 분주했는지 모른다. 현장 학습이라도 가게 되면 전날 밤 몇 번이고 가는 길을 예습하고 약도를 뽑아가는 공을 들였다. 예상 소요 시간에 넉넉히 30분을 더해 미리 출발하면 제시간에 맞춰 목적지에 도착할 수 있었다. 노력하면 안 되는 일이 없다던데, 어미에 ‘치’가 붙는 사람들은 예외인 게 분명하다. 여전히 내게 길은 어렵고, 알 수 없고, 궁금하지도 않은 대상이다.
이런 길치가 웨이파인딩(wayfinding) 프로젝트를 다루게 되다니. 인터뷰를 앞두고는 괜히 가슴이 뛰었다. 길 찾기 좋은 환경을 만드는 사람이니 길을 잘 찾는 비결도 알고 있지 않을까, 기대심이 들끓었다. 여느 때처럼 지하철 역사를 빠져나와 길 안내 애플리케이션을 켜고, 내 위치를 알려주는 점에서부터 인터뷰 장소까지 연결된 선에 의지해 열심히 걸었다. 벌써 길 잘 찾는 사람이 된 것 같아 자꾸만 걸음이 빨라지기까지 했다. 그런데 웬걸, 비결은커녕 내가 길치라는 사실만 다시 확인했다. “사람들은 낯선 곳에 방문할 때 지도를 살피며 미리 길을 그려봅니다. 알아보기 쉬운 건물이나 랜드마크 등 거점을 몇 개 선정하고, 이 거점들을 이어 가상의 경로를 그려보는 거죠.” 보통 사람이 길을 찾는 방법이라는데, 그저 낯설기만 한 이야기다. 내게 목적지는 출발지에서 시작된 선이 마무리되는 끝 점이 아니다. 그냥 하나의 독립된 점일 뿐이다. 길 안내 애플리케이션 속 지도를 확대해 건물 이름을 확인하는 일이 1년에 한두 번은 있을까. 나는 건물이나 길 이름 대신 화면 속 내 위치를 알려주는 점에 절절맨다. 오로지 이 점이 애플리케이션이 제시한 동선에서 벗어나는지, 벗어나지 않는지만 확인하는 것이다. 가끔 위치 인식이 잘못되어 동그란 점이 차도 한복판에 놓이면 그대로 굳어 거리 한가운데에 멈추어 선다. 휴대폰을 이리저리 흔들고, 앞뒤로 왔다 갔다 걸음을 옮겨 점의 위치를 제대로 된 곳으로 옮기고 나서야 마음이 놓인다.
어떻게 길이 어디론가로 이어지는 방향으로 보이는 걸까. 내게 길은 건물과 사람과 가로수와 분위기가 만들어내는 거대한 풍경이다. 그늘이 많은 길, 사람이 많아 어깨를 다른 이들과 자주 부딪치게 되는 길, 가을이면 은행 냄새가 고약한 길. 머릿속에 떠오르는 길의 이미지를 나열하다보니 그제야 문제점이 보인다. 사실 이미 이유를 알고 있었다. 내게 길의 방향은 어렵고, 알 수 없고, 궁금하지도 않은 대상이다.
지하철이 멈춰 선 시각, 집으로 향하는 택시에 오를 때면 종종 머리를 아득하게 만드는 질문이 던져진다. “어떻게 갈까요?” 한강의 다리 갯수도 잘 모르는 내가 어떤 다리를 건너, 어떤 도로를 타야 집으로 갈 수 있는지 알 리가 없다. “빠른 길로 가주세요.” 대충 얼버무리고 창밖을 보면 이내 한강과 그 위를 가로지르는 다리의 모습이 펼쳐진다. 택시 기사의 질문에 제대로 답하지 못했으면서도, 다리의 이름들이 궁금하지 않다. 알고 싶은 건, 저 멀리 다리를 수놓은 자동차에 탄 사람들이 왜 지금 도로를 달리는지, 그들도 나와 같이 야근에 시달렸는지, 저편에서는 내가 달리고 있는 도로의 풍경이 어떻게 보이는지다. 어쩌면 세상의 모든 길치는 길의 방향보다 길의 풍경과 그 속에 담긴 사연에 관심이 더 많은 사람인지도 모른다.
그러니 길치를 구박하거나 불쌍히 여겨서는 안 된다. 길치는 남들보다 조금 바쁘게 일어나 조금 여유롭게 걸으며 길에 펼쳐진 이야기들을 즐기는 사람이다. 방향은 몰라도, 걷기에 좋은 길에 대해서는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사람일 수도 있다. 길을 헤매는 게 일상이라 웬만큼 걸어서는 지치지도 않는다. 많이 걸어야 하는 여행을 떠나고 싶다면 동행인으로 나만한 사람이 없다고 자부한다. 마지막으로 놀라운 사실 하나를 덧붙이자면, 우리집에서 길을 제일 잘 찾는 사람이 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