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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던스케이프] 인물을 기념하는 법
  • 환경과조경 2023년 09월

기념과 숭배의 의례는 인류의 오랜 전통으로, 동상은 그 수단이 되었다. 높은 대좌 위 근엄한 표정을 짓고 있는 인물 동상은 신전이나 교회에 설치되어 복종 혹은 권위를 상징했다. 이때 동상은 신성한 종교와 같아서 낙서 등의 불경스러운 행동은 용납하지 않았다.

 

종교와 동일시될 만큼 신성하게 여겨진 동상은 시민 사회의 태동과 함께 국가 권력의 과시용 혹은 체제를 정당화하기 위한 상징용으로 전환된다. 대표적 예가 프랑스의 마리안느(Marianne) 동상이다. 마리안느는 1789년 프랑스 대혁명 시기에 혁명과 공화정의 가치를 담았던 가상의 여성으로, 도시와 농촌 코뮌 전역에 동상이 확산된 바 있다. 지금은 마리안느 흉상을 설치하지 않은 관공서가 없을 정도니 프랑스의 대표 동상이라 해도 손색이 없다.

 

신생 국가의 경우, 체제의 정당성을 위해 나라에 혁혁한 공을 세운 인물을 동상으로 제작해 이용하기도 한다. 헝가리 부다페스트 회쇠크 테레(Hősök tere, 영웅 광장)는 헝가리 건국 1,000년의 역사와 위대한 인물을 기념하기 위해 1896년에 조성된 곳이다. 광장 중앙의 대천사 가브리엘 동상을 중심으로 좌우에 회랑이 펼쳐지는데, 이곳에 헝가리 건국에 큰 역할을 한 영웅들을 표현한 청동상을 돌기둥과 나란히 세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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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1. 파리 레퓌블리크 광장(Place de la République)의 마리안느 동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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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2. 헝가리 부다페스트 회쇠크 테레의 밀레니엄 기념비

 

 

문화예술 분야에서 특별한 장소를 동상을 이용해 기념하기도 했다. 1862년 조성된 오스트리아 빈 시립공원(Stadtpark)에서는 요한 슈트라우스, 슈베르트, 모차르트, 안톤 브루크너 등 빈의 저명한 예술가 동상을 곳곳에서 만날 수 있다. 

 

근대기에 들어서면서 동상은 때로는 사회의 부조리에 맞선 급진적 메시지를 전달하고, 때로는 국가를 위해 기꺼이 희생한 영웅을 기념하고, 또 한편으로는 문화예술 분야의 천재를 기념하며, 공간과 긴밀하게 연결되어 공간을 압도하는 강렬한 장치로 다채롭게 활용됐다.

 

한국에서는 동상이 1960~1970년대에 집중적으로 건립됐다. 그 중심에는 1966년 8월 11일에 발족한 애국선열조상건립위원회(愛國先烈彫像建立委員會)가 있다. 1964년 서울 한복판에 세워진 37인 선현 석고상의 착색, 결락 등의 문제가 불거진 것이 위원회 발족의 배경이었다.

 

 

환경과조경 425(2023년 9월호수록본 일부 

 

 

 

참고문헌

류기현, “‘애국선열’의 거리 만들기”, 『광화문 앞길 이야기』, 서울역사편찬원, 2021, pp.182~196.

서울특별시 푸른도시정책과, 『공원현황』, 서울시, 2010.

전우용, “서울의 기념인물과 장소의 역사성”, 『서울학연구』 25, 2005, pp.89~122.

정호기, “박정희시대의 ‘동상건립운동’과 애국주의”, 『정신문화연구』 30(1), 2007, pp.335~363.

조은정, “한국 동상조각의 근대이미지”, 『한국근대미술사학』 9, 2001, pp.285~287.

에릭 홉스본 외, 박지향·장문석 역, 『만들어진 전통』, 휴머니스트, 2004.


그림 출처

그림 1~2. 위키피디아

그림 3. 국가기록원

그림 4. 대한뉴스 제468호 장면 캡처, KTV 아카이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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