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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도가 만든 도시] 다양성 그리고 통일성
  • 환경과조경 2023년 11월

‘다양성’은 도시가 도시일 수 있는 중요한 속성으로 많은 도시 연구자가 지속적으로 들여다 본 주제다. 물론 도시의 인구학적 다양성, 그에 기인한 사회문화적 다양성, 도시 경제를 구성하는 산업적 다양성 등 연구자마다 초점을 두고 들여다보는 다양성의 차원도 ‘다양’하다. 그러나 에드워드 글레이저(Edward Glaeser)의 주장(각주 1)으로 종합하자면, 도시의 다양성은 포괄적 의미에서 도시가 사회 그리고 개인에게 제공하는 ‘기회의 폭’이라고 해석할 수 있으며, 도시의 번영을 가져오는 ‘도시적’ 자원이다. 그렇다면 도시에서 공간 환경 차원의 다양성은 어떤 가치와 의미를 가질까? 제도는 도시 공간의 다양성에 어떻게 관여하고 있을까? 이번 글에서는 통일성과 짝을 지어 도시 공간의 다양성을 다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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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1. 송도 신도시와 봉천동의 같은 스케일의 지적도 필지 크기의 다양성은 곧 공간적 활동의 크기와 공간이 변화하는 단위의 다양성이다.

 

 

공간적 다양성의 의미

도시 공간의 다양성, 즉 도시 건조 환경을 구성하는 개별 요소들과 그 집합적 양태의 다양성 또한 마찬가지다. 일차적으로는 다양한 공간 환경은 다양한 도시민의 다양한 도시 활동을 가져올 수 있다. 1960년대 뉴욕 맨해튼과 교외 단독주택지를 비교한 제인 제이콥스(Jane Jacobs)의 주장까지 들먹이지 않아도 단독주택 필지 하나 없이 공동주택 100%에 아파트 단지 상가가 아니면 대형 상가, 쇼핑몰이 전부인 송도 신도시와 저층 주거지와 소규모 아파트 단지가 혼재하고 전철역 앞엔 대형 상가와 골목 시장이 나란히 공존하는 봉천동에서 가능한 공간 경험과 도시 활동의 폭이 같을 수 없다는 것은 누구나 체감한다(그림 1).

 

또한 도시 활동과 공간 환경은 일대일로 대응되는 관계가 아니다. 같은 활동이라도 다른 공간 환경에서 일어난다면 다른 경험이 될 수 있다. 연남동 맛집을 찾는 것과 광화문이나 여의도의 대형 업무 시설 저층부 상업 공간에 있는 분점에서 식사를 하는 것이 개인에게, 그리고 사회적으로 같은 의미일 수 없다. 따라서 공간 환경적 다양성은 한 도시의 문화를 더 두텁게 만들고, 개인이 누리는 경험은 다채로워진다.

 

공간 환경의 다양성은 그 자체로 사회적 다양성의 결과물이기도 하다. 도시 공간은 결국 누군가의 필요를 담고 욕망을 투사하는 장치다. 케빈 린치(Kevin Lynch)는 잘 작동하는 도시 공간의 조건으로 시민들 각각의 공간에 대한 주체성이 보장되는 것, 즉 도시 공간의 구성과 활용 방식을 알고 있고 능동적으로 변화시킬 수 있다고 인식하는 것을 꼽는다.(각주 2) 따라서 공간 환경의 다양성은 해당 사회가 다양한 구성원의 요구를 수용하고 선택을 허용하는 정도를 드러낸다. 이때 개인은 자신의 삶을 위해 도시 공간을 주체적으로 활용할 수 있고, 도시 공동의 자원인 공간의 활용은 극대화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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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2. 애초 일데폰스 세르다의 계획안은 가운데 마당을 두고 블록의 두 면 또는 세 면에 건물을 배치한 형태였으나, 실제는 블록의 가운데 중정을 둘러싸는 형태를 기본으로 다양한 변이를 보여준다. ©Shutterstock/Vuna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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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ikimedia Commons/Ildefons Cerdà i Sunyer

 

 

통일성이 있어야 하는 다양성

왜 다양성을 통일성과 함께 생각해야 할까. 일견 통일성과 다양성이라는 특성을 양립하기 어려운, 상호 대립하는 속성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적어도 공간 환경의 인지에서 통일성의 가치가 작동하는 방식, 다양성의 가치가 작동하는 방식을 고려한다면 이 두 속성은 오히려 양립해야만 서로를 강화하고 드러내는 역설적 관계다.

 

예를 들어 첫 연재에도 나왔던 에익심플레(Exiample)라 불리는 바르셀로나의 격자형 신시가지는 크기와 높이가 일정하고 정사각형을 모치기 한 형태의 블록이 시가지 구역의 전체 형상에 관계없이 기계적으로 배열되어 전체 도시 경관을 지배한다. 하지만 동시에 각 블록은 오히려 다양한 변이를 보여준다. 모퉁이의 입면, 가로에서 보이는 중정의 형태, 블록을 구성하는 건물의 분절 등 어느 하나도 같지 않다. 통일된 외곽선 안에서 시가지가 만들어진 이후 지금까지 수많은 개별적인 선택들이 누적된 결과라 하겠다. 그리고 그 과정은 어떤 것을 지키고 어디까지 허용할 것인가에 관한 바르셀로나의 합의이기도 하다.

 

일데폰스 세르다(Ildefons Cerda)의 계획안에서 보듯 블록 내 건물의 배치까지 완전히 통일된 모습으로 지어지고 그 모습이 시간이 지나도 강력한 통제로 고정되었다면 지금처럼 역동적이고 사람들의 삶이 느껴지는 흥미로운 도시 경관은 아니었을 것이다(그림 2). 이때 격자형 조직의 강력한 통일성은 각 블록의 차이, 즉 다양성을 인지하는 기준점이 되며 다양성은 통일성을 배경으로 부각된다.

 

반대로 다양성을 구성하는 통일성도 있다. 예를 들어 좁은 골목길 철공소 사이사이에 힙한 식당들이 위치한 문래동, 도시형 한옥이 밀집한 북촌, 한강변으로 판상형 아파트들이 도열한 압구정동, 원룸 골목이 즐비한 신림동 고시촌 등은 각 지역 내 필지와 도로, 건축물 등 물리적 요소와 그 배열의 유사성이 높고, 이와 결합된 특유의 공간 활동이 밀집하여 반복된다. 도시 안에서 구분되는 영역들은 이러한 내적 통일성이 강할수록 더 분명하게 드러나고, 서로 다른 정체성을 갖는 장소들 각각은 그 도시 전체의 다양성을 구성한다.

 

이렇게 통일성이 있어야 다양성이 드러나는 역설은 하나의 공간 대상에 통일성과 다양성은 중첩되어 작동하되 통일성과 다양성이 인지되는 공간 범위는 다르기 때문이다.3 따라서 통일성과 다양성은 양자가 동일선상의 양끝을 향하는 속성이 아니다.

 

 

환경과조경 427(2023년 11월호수록본 일부 


**각주 정리

1. 에드워드 글레이저, 이진원 역, 『도시의 승리』, 해냄, 2011.

2. 현실적으로 모두가 광장의 형태와 시설물을 바꾸는 등 직접적으로 행동할 수는 없다. 중요한 것은 도시 공간에 대해 목소리를 낼 수 있으며 그것을 반영하는 시스템이 있다는 것이고, 이를 구성원이 신뢰한다는 것이다.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의 지하철 시위는 우리에게 그러한 시스템도, 신뢰도 없다는 증거일 것이다. Kevin Lynch, Larice, Macdonald ed., “Dimensions of Performance”, The Urban Design Reader , Routledge, 2007.

3. 김세훈은 『도시에서 도시를 찾다』(2017)에서 ‘지역 내 다양성’과 다른 ‘지역 간 다양성’으로 설명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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