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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디토리얼] 공간 문해력
  • 환경과조경 2023년 10월

생태 문해력, 미학적 문해력이라는 표현까지 있듯 요즘 다양한 분야에서 ‘문해력(literacy)’이라는 용어가 쓰인다. 디지털 리터러시나 메디컬 리터러시처럼 번역하지 않고 그냥 리터러시로 쓰는 경우도 많다. 사전은 문해력을 ‘텍스트를 읽고 이해하는 능력’ 정도로 간략하게 정의하지만, 그 의미와 용례는 매우 다양해지고 있다. 사용 매체와 소통 방식, 사회 참여 등을 결정하는 데 관여하는 기본 소양이나 문화적 기술을 뜻하기도 한다. 텍스트의 해독을 넘어 그것을 생성하고 수용하는 모든 능력을 뜻하는 말로 확장되고 있기도 하다.

 

나도 어느 유튜브 강의에서 ‘공간 문해력’을 말한 적이 있다. 대략 이런 내용이었다. “어떤 공간이나 장소에 호감을 느끼는 사람에게 뭐가 왜 좋은지 물으면, 답변에 등장하는 표현이 정말 제한적이에요. 멋있다, 예쁘다, 대박이다 정도죠. 사용하는 어휘가 그것뿐이라는 건 곧 공간 문해력이 낮다는 거죠. 도시의 일상생활에서 좋은 공간을 구별하고 잘 경험할 줄 아는 능력, 즉 공간 문해력이 중요하다고 강조하고 싶습니다. 좋은 공간은 도시의 일상을 풍요롭게 합니다. 하지만 정부나 공공이 다 해주지 않습니다. 우리 스스로 공간을 둘러싼 이슈에 개입하고 참여해야 합니다. 공간 문해력이 필요한 이유입니다. 나는 이 도시를 어떻게 경험하고 감각하는가, 그 장소가 왜 좋은가, 저 경관의 어떤 면이 아름다운가, 그런 환경이 우리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는가. 어렵더라도 자주 생각해보고 구체적으로 표현해보면 공간 문해력을 기를 수 있습니다.”

 

설익은 의미로 공간 문해력 개념을 말했는데, 뜻밖에 많은 피드백이 왔다. 누군가는 “세상을 더 아름답게 살아가게 해주는 능력”이라는 댓글을 달았다. 누군가는 구체적인 의미와 사례를 묻는 이메일을 보내왔다. “‘좋은 공간을 구별하고 경험하는 소양’이라는 뜻 정도로 쓴 말인데, 깊이 있는 연구와 토론을 거친 학술적 개념은 아니”라고 답할 수밖에 없었다. 공간 문해력은 공간이라는 텍스트를 잘 이해하고 해석하는 공간 수용자/경험자의 능력이지만, 그러한 힘은 텍스트의 독해자―즉 공간 수용자/경험자―뿐만 아니라 텍스트 자체―즉 공간 자체―에서도 나온다는 말을 덧붙이고 싶었으나 짐작에 가까운 거친 논리라 숙제로 남기기로 했다.

 

1차 리노베이션을 마친 목동 ‘오목공원’을 개장 첫날 둘러봤다. 설계공모 당선작 ‘도시의 공공 라운지’(디자인 스튜디오 loci)와 똑같이 완공된 점이 무엇보다 반가웠다. 옛 공원의 바탕 위에 산뜻하고 날렵하게 삽입된 ‘회랑 라운지’. 회랑의 넓은 그늘과 넉넉한 의자가 모두를 환대한다. 회랑 위 공중 산책로에 오르면 풍성한 숲과 도시 경관을 조망할 수 있다. 오래된 숲에 간결하게 삽입된 ‘숲 라운지’는 공원의 시간감을 두텁게 한다. 

 

빈 의자를 찾기 어려웠다. 스스로 의자를 옮겨 자신의 라운지를 디자인하고 오래 머물며 가을을 즐기는 사람들. 그들의 이야기를 엿들으며 공원을 산책하다 여러 번 놀랐다. 공원 디자인과 경관을 품평하는 이들이 곳곳에 있는 것 아닌가. 한 노인은 “공원이 현대식이라 사람들이 공원을 다르게 쓴다”고 말한다. 어느 커플은 “회랑 위 산책로 덕분에 공간이 두꺼워졌다”는 평을 나누며 걷는다. 중학생 몇몇은 “예전 공원도 좋았는데 왜 새로 만들어야 했는지” 토론한다. 이날따라 공간 문해력 출중한 사람들만 모였을 리 없다. 평범한 이용자들이 전문가 못지않은 평가를 하며 공원에 머무는 상황, 뭐라고 해석할 수 있을까. 텍스트(공간)의 구성과 형태가 수용자/경험자의 문해력을 높인 게 아닐까. 언젠가 『환경과조경』 지면에서 공간 문해력을 다뤄보기로 마음먹으며 오목공원을 빠져나왔다.

 

그간 서울과 수도권뿐 아니라 다양한 지역 도시의 조경 문화를 지면에 담아달라는 의견이 적지 않았다. 편집위원들과 독자들의 이런 의견을 조금이나마 반영해보고자 이번 호 대구 특집을 기획했다. 특집 ‘대구의 도시 문법, 조경 문화로 읽다’는 대구의 도시 맥락과 경관 특성을 다각적 시선으로 독해한다. 정태영(경북대 교수)은 대구의 공원을, 최이규(계명대 교수)는 골목을, 양진오(대구대 교수)는 원도심을 읽는다. 편집자들이 꾸린 기사 두 편도 함께 엮었다. ‘편집부가 꽂은 대구 책갈피’는 1982년부터 2020년까지 『환경과조경』에 실은 대구 관련 기사를 요약, 소개한다. ‘대구 도시 공간 10선’은 유서 깊은 공원부터 새롭게 떠오르는 복합문화공간까지 주목할 만한 대구의 공간들을 살핀다. 이번 대구 특집을 계기로 본지는 1년에 한두 차례 지역 도시의 공간과 문화, 일상을 탐사하는 지면을 마련해볼 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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