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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디토리얼] 새로운 발견, 쉬운 전달
  • 환경과조경 2017년 5월

빅토리아 시대의 의사 존 스노우John Snow가 만든 ‘런던 콜레라 지도’, 지금도 설계 스튜디오에서 꼭 소개되곤 하는 맵핑mapping의 고전이다. 빅데이터와 각종 첨단 기법으로 무장한 현대 역학epidemiology의 토대가 되었다는 평가를 받기도 한다. 19세기 런던의 상하수도 시스템은 말 그대로 엉망진창이었다. 정화되지 않은 생활 하수가 상수도로 유입되기 일쑤였고, 콜레라를 비롯한 여러 수인성 전염병이 주기적으로 창궐했다. 1854년, 소호를 중심으로 콜레라가 다시 유행한다. 스노우는 발병자와 사망자가 나온 집, 인근의 수도 펌프를 면밀히 조사해 지도에 일일이 표시했다. 이 단순한 맵핑을 통해 놀라운 규칙성이 발견됐다. 브로드 가의 특정한 펌프를 중심으로 콜레라가 돌고 있었던 것이다. 멀리 떨어진 곳의 발병자는 브로드 가의 펌프에서 물을 공수해 먹은 사람이라는 사실도 밝혀내게 된다. 데이터 공간 맵핑을 통한 새로운 발견을 바탕으로 그는 지역 이사회를 설득해 문제의 펌프를 폐쇄하는 성과를 거둔다.

 

그런데 여기서 끝이 아니다. 160년 가까운 시간이 흐른 2013년, 데이터 시각화 전문가 앤디 커크Andy Kirk는 스노우의 맵핑 작업에서 다시 새로운 발견을 한다. 이 지도를 보면 유독 맥주 공장 인근에만 사망자가 없는데, 그는 아무런 데이터가 없는 이곳의 의문을 푼다. 물 대신 직접 만든 맥주를 마셨기 때문에 콜레라에 감염되지 않은 것이다. 스노우가 자신이 수집하고 구축한 데이터 속에서 새로운 발견을 했다면, 커크는 오히려 지도 위의 데이터 공백 지대에서 새로운 발견을 한 셈이다. 

 

이번 호 특집 ‘빅데이터와 도시’를 편집하며 데이터 맵핑의 고전격인 이 런던 이야기가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빅’데이터이든 ‘스몰’데이터이든, 빅데이터의 시각화visualization이든 빅데이터를 이용한 도시 리서치와 디자인이든, 가장 중요한 잠재력은 결국 ‘새로운 발견’이다. 데이터 시각화나 맵핑의 또 다른 가능성은 복잡한 정보를 쉽게 이해하게 해 주는 데 있다.

 

‘복잡한 정보의 쉬운 전달’을 대표하는 고전적 사례는 이번 호 본문(38쪽)에도 실린 ‘1812년 나폴레옹의 러시아 원정 지도’다. 역사상 최고의 인포그래픽이라는 평가를 받기도 하는 이 맵핑은 프랑스 도시공학자 샤를 미나르Charles Joseph Minard의 1869년 작업이다. 나폴레옹 군대가 러시아로 진격했다 퇴각한 과정을 재현한 이 지도를 보면, 42만 명 넘는 규모로 출발한 병력이 러시아에 도착했을 때 이미 25% 이하인 10만 명으로 줄어들었음을 한눈에 알 수 있다. 후퇴는 더 어두운 색으로 나타냈고, 퇴각에 영향을 준 기온과 주요 날짜가 하단에 추가로 맵핑됐다. 나폴레옹 군대는 결국 만 명 정도만 귀환했다. 만 명이라는 숫자가 중요한 게 아니다. 완전히 망했다는 느낌이 한눈에 들어온다. 이 지도는 원정군의 경로, 규모, 위치, 이동 방향, 기온, 날짜, 전투명 등 다층적 정보와 그 양을 동시에 담고 있다. 이 복잡한 정보를 글로 쓰고 표로 정리했다면 아마 대부분은 읽고 이해하기를 포기할 것이다. 미나르 맵핑의 강점은 직관적 표현 방식에 있다. 선의 굵기와 방향으로 복합적 데이터를 전환해 아주 쉽게 전달하고 있는 것이다.

 

이번 5월호의 ‘빅데이터와 도시’는 데이터를 분석하고 시각화하는 최근의 다양한 시도가 도시의 복잡한 현상을 이해하는 데 어떤 통찰을 줄 수 있는가, 또 더 나은 도시 환경을 설계하는 데 어떤 방법과 방향을 제시할 수 있는가라는 물음에서 비롯됐다. 

 

필자 김승범 박사가 말하듯, “도시 빅데이터의 매력은 바로 사람들이 자발적으로 남긴 흔적이라는 점”이며 그것의 “시각화는…직관적 탐색의 훌륭한 도구”다. 복잡하게 얽힌 데이터를 ‘아름답게’ 변환해 전달하는 그의 최근 작업들은 그야말로 아름답다. 황용하 박사는 딥러닝과 환경 계획의 연계 지점에서 펼쳐지고 있는 다양한 시도를 소개하며, 앞날을 예상하기 어려운 상황에서는 활용보다 기본에 초점을 둔 교육이 필요하다고 조언한다. 디자이너 소원영은 도시의 가능성을 발견하기 위해 도시 데이터를 이용 가능한 형태로 전환하는 방법을 다루고, 또 디자이너가 경계해야 할 데이터 시각화의 왜곡, 누락, 편향성 등의 문제를 짚는다. 김충호 박사는 환경 설계 분야에서 빅데이터가 지니는 가능성과 한계를 비판적으로 검토한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빅데이터에 대한 시대적 강요가 아니라, 빅데이터에 대한 비판적이고 자발적인 탐색”이며 “빅데이터보다 더 중요한 것은 우리의 시각과 창의성”이라는 그의 지적에 귀 기울일 필요가 있다. 네 필자가 전하고 있는 빅데이터 기반 도시 리서치와 시각화의 현재와 그 의미를 가늠하는 데 있어서 고전의 교훈, 즉 새로운 발견과 쉬운 전달은 여전히 유효한 기준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우연하게도, 서영애 소장은 호주로 입양된 인도의 미아가 구글 어스로 25년 만에 고향 집을 찾은 실화 ‘라이언’을 이달의 ‘시네마 스케이프’에서 다룬다. “집을 찾은 건 다행이지만, 가만히 앉아서 세상 어디든 볼 수 있게 된 우리가 얼마나 더 행복해졌는지는 아직 잘 모르겠다”는 마지막 문장이 계속 머릿속을 떠다닌다.

 

5월 19일 ‘공원의 재발견’부터 11월 18일 ‘용산공원이라 쓰고, 서울이라 읽는다’까지 총 여덟 차례의 “용산공원 라운드테이블”이 열린다. 국토교통부가 주최하고 한국조경학회와 플레이스온이 주관하는 이번 행사에 본지는 후원 역할을 맡았다. 열린 소통과 공론화에 방점을 두고 있는 용산공원 라운드테이블에 많은 관심과 참여를 부탁드린다.

 

도시학의 혁신을 이끌고 있는 김세훈 교수(서울대학교 환경대학원)의 책 『도시에서 도시를 찾다: 좋은 도시를 바라보는 아홉 개의 렌즈』가 본지의 자매 출판사 ‘도서출판 한숲’에서 출간됐다. 2015년 1월호부터 12월호까지 『환경과조경』에 연재한 “그들이 꿈꾼 도시, 우리가 사는 도시”를 대폭 수정하고 보완한 책이다. 영광스럽게도 이 책의 추천사를 부탁받아, 뒤표지에 짧은 글을 보탰다. “도시는 복잡한 곳, 도시의 삶은 고단한 과업, 도시의 설계와 경영은 난제. 그래서 우리는 역으로 좋은 도시를 꿈꾸고 찾는다. 『도시에서 도시를 찾다』는 많은 도시설계가와 도시학자들이 답을 구하는 데 실패한 질문에 다시 도전한다. 좋은 도시란 무엇인가? 그러나 해법을 구하는 방법이 새롭고 다르다. 이상이나 규범에 매달리지 않는다. 도시라는 변화무쌍한 세계를 읽는 아홉 개의 열린 프레임을 제시한다. 어느 창으로 세계를 볼지, 선택은 우리의 몫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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