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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태 또는 애니메이션
  • 환경과조경 1999년 12월
나는‘생태’라는 말이 언제 어떻게 생겨났는지 알고 싶다는 생각을 전부터 품고 있었다. 왜냐하면 말이라는 것은 한참 지나면 그 뜻이 복잡해지거나 헝클어지지만, 생겨난 초기 단계에는바탕이 되고 뿌리가 되는 뜻을 간명하게 담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아직 그 정답을 구하지 못하고 있던 차에, 우연히 중국그림 이론서를 보다가 이 말을 찾아내고, 그 뜻을 새겨 보면서 어원은 아닐지 몰라도 무척 그럴 듯한 생각임을 알게 되었다. 그것은 다름 아니고 중국 청나라 시절의 유명한 화가인 석도(石濤)가 쓴 다음 글에 나오는 말이다. 如空山杳冥無物生態借此疎柳嫩竹 橋梁草閣此借景也 지금과 같은 초겨울, 또는 이른 봄, 온 천지만물이 다 자는 것 같고 다 죽은 것 같은 경관이 어디를 가나 펼쳐져 있는데, 살아있는 꼴, 생태를 알려 주는 어떤 작은 사물이 있다면 그 경관이 살아 있음을 확연하게 느낄 수 있다. 석도는 바로 이런 점에 착안하여 버드나무나 어린 대나무 등이나, 사람이 있음을 암시하는 다리나 초가집 등을 그려 넣음으로써, 즉 어둡고 막막한 가운데 어떤 생태가 있음을 표현함으로써 그림 전체를 살아 있게 하는 기법을‘借景’이라고 하였다. 나는 이것은 주마등이나 만화영화보다 훨씬 더 높고 깊은 차원의 애니메이션이라고 확신한다. 그리고 이것은 생태학의 무정한생태보다 훨씬 더 생태의 진수를 잘 보여주는 것이라고 믿는다. 그래서 나는 조경을 함에 있어 생태를 ‘살아 있는 꼴’로, 그리고 그 생태를 만드는 일을‘애니메이션’이라고 여기게 되었다. 사실 이 생각의 단초는 꽤 오래 전에 생겼는데, 아마도 나 스스로 자각한 것은 1983년 문화재관리국의 정재훈 선생이 의뢰하여 작업했던『소쇄원 복원 및 정비 기본설계』에 참여할 때인 것으로 생각된다. 소쇄원 원주인 양씨 댁에 전해오는 문집을 읽어 가며 소쇄원의 원래 상황을 재현하느라고 한 겨울 시름하는 중에 애니메이션의 원형이라고 볼 수 있는 생각이 떠올랐다. 그래서 양산보 선생이 어릴 적 계곡에서 놀았던 정경, 낙향하여 조원을 하는 정경, 광풍각 아래 너럭바위에서 시를 읊고 차를 드는 정경 등을 상상해 보면서 소쇄원을 살펴보니, 훨씬 더 실감날 뿐 아니라 정감나는 것을 체험하게 되었다. 그 후 대우재단의 연구비를 받아『조선조정원의 원형 연구』를 하면서 전국의 여러 이름난 정원을 찾아가서 비슷한 체험을 하고, 그 연구 성과를 가상현실 속의 정원인 ‘離世園’으로 표현해 보면서 좀 더 구체적인 체험을 나타내 볼 수 있었다. 이러한 작업은 과거에 사람이 살아가던 집과 정원, 그래서 그때는 살아 있던 집이나 정원이었지만, 지금은 사람이 아무도 살지 않고 삶의 흔적만 어슴푸레 남아 있는 집과 정원, 알맹이가 없이 껍질만 남아 있는 집이나 정원, 그래서 속절없이 퇴락하면서 자연 속으로 사라지는 집과 정원에 숨을 불어넣어 되살려 보는 작업이었다. 그 후 학생들과 함께 수원성, 양동 마을 등을 소재로 하여 일종의 픽션을 만들어 보는 작업을 해보면서 그 가능성을 점점 더 확인할 수 있었다.그래서 한 걸음 더 나아가서 묵은 집과 정원을 되살리는 작업뿐아니라, 새로 집과 정원을 만드는 작업에서도 이러한 작업이 가능함 을 실험해 보기로 하였고, 그래서 나온 성과가 바로『원주 토지문학공원』이다. ※ 키워드 : 황기원, 생태, 애니메이션, 토지문학공원 ※ 페이지 : p30~p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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