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의 냉각수
도시화와 근대화를 거치며 세계 주요 도시의 못들은 메워지거나 지하화됐다. 한때 풍부한 하천과 강 덕분에 물의 도시라 불리던 대구 역시 마찬가지였다. 현재 대구의 무더운 여름을 생각하면 아쉬운 일이다. 만약 이 모든 못이 여전히 지표 위에 남아서 달아오른 땅과 대기를 식혀줬다면 어떻게 됐을까. 저수지를 잘 보존해서 물가에 오픈스페이스를 더 만들었다면 어땠을까. 이 두 가지 물음이 설계의 단초가 됐다.
대구의 도시 열섬 지도를 보면서 우리의 질문은 ‘도시의 냉각수로서의 못’이란 아이디어로 이어졌다. 주변 미기후를 분석하며 수성못 서북쪽 모퉁이가 바람골 영향을 받는다는 걸 발견했다. 이곳은 인근 고산골에서 불어오는 시원한 바람이 가장 먼저 도달하며, 남동풍이 부는 여름철에 대상지에서 가장 시원했다. 이를 토대로 가장 시원한 곳에 무대를 계획하고, 겨울철 주된 바람인 서풍을 막아주는 디자인을 고민했다. 또한 지형으로 바람을 끌어들이고 식재를 풍성히 했을 때 3도 이상 더 시원해진다는 시뮬레이션 결과값을 얻었다.
둥지섬과 문화적 짝
새로운 수상공연장은 주변의 산세를 담은 지형과 수면에 수평적인 구조로 이루어지며, 수성못 북서쪽 모퉁이에 위치한다. 이곳은 못의 역사가 시작된 곳이며 여름철 미기후 상 바람이 가장 많이 불어오는 곳이기도 하다. 둥지섬이 신천과 범어천을 징검다리처럼 잇는 수성못의 생태적 허브라면, ‘물 위의 언덕’은 섬과 문화적 짝을 이루며 수면 너머 산을 향해 길고 입체적인 시야를 만들어낸다. 경사와 방향이 다양한 여덟 개 둔덕으로 구성된 물 위의 언덕은 시민들이 여름철 불어오는시원한 바람을 맞으며 기존 제방길을 따라 쉽게 접근할 수 있는 공공 장소로 거듭날 것이다.
언덕들의 지형
기존 제방과 바로 연결된 두 개의 언덕 진입로는 무장애 동선을 위해 제방과 같은 높이에서 시작된다. 언덕의 가장자리는 무장애 보행자 동선 역할을 하며 무대 자체를 더 잘 볼 수 있도록 언덕의 경사도를 8~12%로 했다. 가변형 수변 무대와 주 무대는 10cm의 단차가 있어 물의 효과를 더욱 깊고 극적으로 만든다. 제방으로부터 못을 향해 뻗어나간 지형 끝에 무대가 위치하는데, 이 모습은 주변 산으로부터 내려온 언덕들이 마치 물 위에 뜬 꽃잎처럼 모여 있는 형태로 보이게 한다.
자연과 조화를 꾀하는 객석과 무대
무대는 물 위에 떠 있는 듯한 주 무대와 바로 한 단 아래 가변형 수변 무대로 구성되며 다양한 공연 연출을 할 수 있다. 수성못과 수평으로 놓인 주 무대에서는 주변의 경관을 끌어들임으로써 수변과 산세에 어울리는 무대 디자인 연출이 가능하다. 물과 친밀한 관계를 형성할 수 있는 낮은 높이의 수변 무대와 언덕의 단차는 더 극적인 공연 연출 효과를 자아낸다.
객석은 두 가지 유형으로 디자인했다. 하나는 1,200석의 고정형 객석으로 무대를 정확히 향하고 있다. 다른 유형으로는 탱글우드 뮤직 페스티벌(Tanglewood Music Festival)의 잔디밭 좌석과 같이 음악과 함께 보다 자유로운 쉼을 원하는 시민들을 위한 공원석을 마련했다. 언덕들은 조금씩 다른 경사를 가지고 물과 만나며, 방문객들은 같은 지형 안에서도 앉는 의자에 따라 각기 다른 경관을 감상할 수 있다. 무대를 등지고 앉는다면 보다 위요된 작은 스케일의 휴식을 누리게 되며, 상대적으로 나무가 더 우거진 공원석에 앉으면 원경의 산 경관과 함께 마치 숲속에 있는 듯한 경험을 하게 된다.
친수와 휴식의 공간
기존 수성못에 부족했던 친수의 기회를 마련하고자 했다. 물의 양을 조절할 수 있는 가변형 수변 무대는 수심이 얕아 안전한 물놀이가 가능하며, 이용객이 없을 경우 반사연못으로 활용된다. 물순환 관리 시스템을 통해 관수 비용을 최소화하고 기존 수성못 수체계에 부담을 덜게 했다. 안개 노즐은 여름철 공원의 온도를 낮추고, 2% 구배의 경사진 벤치는 강우 시 배수로가 된다.
또한 잠시 멈춰서 풍경을 즐기며 쉴 수 있게 했다. 자연과 문화를 충분히 즐길 수 있도록 물을 향한 사면 계획과 더불어 친수 식재로 구성한 휴식 공간을 만들었다. 다만 공연 시 무대로의 시선을 가로막지 않게 고정 객석에는 식재를 최소화하고 높은 지하고의 수종을 선택했으며, 시선과 바람의 개방성을 최대한 확보할 수 있는 바람 난간을 디자인했다. 여러 방향으로 꺾인 벤치는 그늘, 햇볕, 바람과 함께 사색에 잠길 수 있는 시간을 제공한다.
물 위의 자연을 받치다
물 위에 떠 있는 것처럼 보이는 구조로 만들기 위해 하이브리드 슬래브 파일 공법을 활용했다. 부유형에 비해 환경성과 시공성이 뛰어나고, 특히 대규모의 공연 중 발생할 수 있는 집중 하중과 같은 특수한 상황에도 견딜 수 있는 안정성이 장점이다. 또한 캔틸레버 경계는 수면과 지형이 최대한 가깝게 만나게 해 언덕이 물에 뜬 것 같은 친밀감을 느끼게 한다. 콘크리트 슬래브는 FRP 재료로 코팅되어 구조를 강화할 뿐만 아니라 수상에서 발생할 수 있는 결로 등을 방지하고 유지·관리를 용이하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