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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경과조경 2023년 0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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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매거진 가격 9,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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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디토리얼] 한국 조경, 아카이브 프로젝트를 시작할 때다
한국 조경 50년 역사의 여운을 짙게 남긴 채 2022년이 저물었습니다. 지난 연말 선유도공원에서 열린 ‘리:퍼블릭 랜드스케이프: 한국 조경 50년 기념전+IFLA 한국 개최 성과전’은 폭설과 강추위에도 불구하고 큰 호응을 얻었습니다. 전시회장을 찾은 조경가들은 제58차 세계조경가대회IFLA의 기조 강연, 스페셜 세션, 라운드테이블, 학생 공모전과 학생샤레트 등을 다시 만나 뜨거웠던 광주의 사흘을 기억할 수 있었다고 입을 모았습니다. 특히 학생들과 젊은 조경인들은 기둥 형식으로 전시한 한국 현대 조경 대표작 50선, 서가에 눕혀 전시한 한국 조경 도서 100선, 바닥에 연도별로 펼쳐 전시한 50년사의 주요 사건에 큰 관심을 보였습니다. 기성세대에게는 너무나 익숙하고 당연한 작품, 도서, 사건이 젊은 세대에게는 생경하지만 경이로운 역사로 다가온 것입니다. 그러나 50년사의 궤적과 흔적이 낯설면서도 신선하다는 반응은 곧 우리 조경계가 그간 자료의 수집과 저장, 체계적 기록에 소홀했다는 점을 반증하기도 합니다. 전시회에서 만난 한 조경사 연구자는 “한국 조경의 분더카머(Wunderkammer)를 만난 것 같다”는 흥미로운 평을 했습니다. ‘분더카머’는 르네상스기에 유럽에서 유행한, 귀족과 학자들이 자신의 저택에 진귀한 사물을 수집해 진열한 공간입니다. 현대 박물관의 전신에 해당하지만 주로 소유자의 취향을 반영하고 극화한다는 점에서 박물관과 다릅니다. 그가 말한 분더카머는 독특한 역사와 기억의 진열을 뜻하는 것이겠지만, 동시에 흔적의 파편적 집합체를 의미하는 비유이기도 한 셈입니다. 지난 50년간 한국 조경은 도시와 경관, 지역과 환경, 삶과 문화의 틀과 꼴을 직조하며 발전을 거듭했지만, 자료의 저장과 성과의 기록에는 관심을 기울이지 못했습니다. 그동안 『현대한국조경작품집 1963-1992』(1992), 『한국의 조경 1972-2002: 한국조경학회 창립 30주년 기념집』(2002), 『Park_Scape: 한국의 공원』(2006), 『한국조경의 도입과 발전 그리고 비전: 한국조경백서 1972-2008』(2008), 『한국조경학회 창립 40주년 기념집』(2012), 『환경과조경』 통권 400호(2021년 8월호)를 비롯한 여러 기록물이 백서, 자료집, 작품집 형식으로 출간됐지만, 종합과 체계라는 기준에서 보면 불충분한 점이 적지 않습니다. 이러한 난맥을 지난해 『한국 조경 50년을 읽는 열다섯 가지 시선』(2022)을 편집하는 과정에서도마주쳤습니다. 책의 지향점은 한국 조경사 50년의 담론과 작품을 기록하고 해석하는 데 있었지만, ‘기록’의 측면만 놓고 보자면 아쉬움이 적지 않게 남습니다. 조경 50년사의 방대한 자료를 수집해 체계적 아카이브를 구축하는 일은 다음 50년을 설계하는 토양이 될 기초 작업이지만, 책의 범위를 벗어날 수밖에 없었습니다. 아카이브는 대상과 사건의 진위를 보여주는 가장 일차적인 자료이자 그 기록물의 저장소입니다. “기록의 집적물인 아카이브는 우리의 모습을 객관적으로 바라보게 하고 다양한 해석을 가능하게” 합니다. “진정성에 기반을 둔 두터운 스토리텔링을 구축할 수 있는 토대이며, 과거와 미래와 소통할 수 있는 매개체로서도 힘을” 지닙니다(박희성, 『환경과조경』 2020년 3월호). 이러한 기록과 저장의 힘을 실험한 시도였다는 점에서 지난 연말의 기념전은 의미를 획득합니다. 이제 한 걸음 더 나아갈 때입니다. 잔치는 아직 끝나지 않았습니다. 다음 50년, 한국 조경의 시선으로 도시와 경관을 둘러싼 글로벌 이슈를 대면하고 창의적 해법을 마련해가기 위한 필요 조건은 지난 50년의 성과, 작품, 제도, 교육, 인물을 촘촘히 기록하고 면밀히 저장하는 체계적 아카이브입니다. 여기저기 흩어져 소실되고 있는 자료와 데이터를 통합적으로 수집, 정리, 공유, 소통하는 범 조경계 차원의 기획 프로젝트를 시작할 때입니다. 새해를 시작하며 『환경과조경』의 편집도 “한국 조경의 어제와 오늘을 기록하고 내일을 설계하는” 아카이브에 비중을 둘 것임을 약속드립니다. 2023년을 열며 ‘제5회 젊은 조경가’ 수상자인 최윤석(그람디자인 소장)을 특집으로 다룹니다. 에세이 “종합관계기술”에 담은 설계 철학, “여섯 가지 빌드업”으로 구성한 작업 성과, 김모아 기자의 인터뷰, 조혜령과 유청오의 에세이 등으로 꾸린 특집 지면에서 공간과 개인의 삶을 잇는 최윤석의 도전을 만날 수 있습니다. 유영수(인천대학교 도시건축학과 교수)의 격월 연재 ‘제도가 만든 도시’가 시작됩니다. 도시의 공간적 형태와 현상에 작동하는 제도의 양상을 다각적 차원에서 묻고 살필 것입니다. 설계 작업과 설계사무소 경영의 다채로운 뒷이야기를 담는 ‘어떤 디자인 오피스’의 올해 첫 순서는 ‘바이런’입니다. [email protected]
[풍경 감각] 먼지 쌓인 책
2020년 겨울, 『식물 문답』의 마지막 부분을 쓰면서 쓸쓸한 풍경을 상상했다. 잘 팔리지 않아 서점 한 구석에서 먼지가 뽀얗게 쌓인 책, 악성 재고로 분류돼 쓰레기 처리장으로 보내지는 모습, 멀쩡한 새 책을 빨아들이는 파쇄기의 새까만 입. 글을 쓰고 그림을 그려 출간을 준비하는 일은 즐거웠지만, 원고를 보내고 나면 이런 일들이 기다리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멈추기 어려웠다. 책의 마지막 꼭지 ‘좋은 시절이 끝날 때’는 이 생각들을 뿌리치려고 쓴 글이다. 책이 크게 실패해도 괜찮기를 바라는 마음 혹은 다짐을 담았다. 위안이 됐던 걸까. 이후로 쓸쓸한 풍경을 떠올리지는 않았지만, 조금 부끄러웠다. 독자가 아니라 나를 위한 글을 책으로 냈다는 생각이 들어서. 이 글을 기억에 남는 부분으로 꼽는 독자를 만나면 지금도 얼굴이 뜨거워진다. 여전히 어떤 걱정이 생기면 내게 필요한 이야기를 노트에 적거나 그려 둔다. 그렇게 노트를 채운 뒤 책장 한구석에 꽂아두고 잊어버린다. 먼지가 뽀얗게 쌓이도록. 언젠가 노트 한 권을 꺼내 먼지를 후 불어내고, ‘나를 위해서라면 좀 어때. 이 이야기가 누군가에게 닿을 수 있다면’이라고 적을 수 있기를. 조현진은 조경학을 전공한 일러스트레이터다. 2017년과 2018년 서울정원박람회, 국립수목원 연구 간행물 『고택과 어우러진 삶이 담긴 정원』, 정동극장 공연 ‘궁:장녹수전’ 등의 일러스트를 작업했고, 식물학 그림책 『식물 문답』을 출판했다. 홍릉 근처 작은 방에서 식물을 키우고 그림을 그린다. [email protected]
조경가 최윤석
종합관계기술 _ 최윤석 여섯 가지 빌드업 _ 최윤석 공간과 개개인의 삶을 빚는 조경가 _ 김모아 사건의 지평선 너머로 _ 조혜령 편견 없는 공간의 무한함 _ 유청오 “최정상의 조경가보다 보통의 조경가가 되고 싶었다.” 담백하지만 가볍지 않은 수상 소감에 진중한 분위기를 잘 못 견딘다는 최윤석의 말이 떠올라 웃음이 났다. 최윤석의 작품을 보면 어쩐지 느긋하게 머물고 싶어지고, 어떤 형상을 만드는 디자인 철학보다 설계를 어떤 마음으로 대하고 있는지 그 태도가 궁금해진다. 그의 디자인은 세심하지만, 이는 도면 속선과 수치로 기록되는 것이 아니다. 다정함을 닮은 최윤석의 세심함은 사람들을 관찰하는 시선, 나무를 향해 관심을 보이는 이에게 건네는 말, 사람과 자연의 관계에 대한 오랜 고민에서 드러난다. 그의 세심함은 현장에서 끈질긴 인내심으로 탈바꿈한다. 예상치 못한 변수를 통제하기보다 그 변화에 유연하게 대처한다. 과정에는 늘 현장의 사람들이 있다. 때로는 시공 반장과 전문 작업자가 자신의 설계안보다 더 나은 결과물을 만들어 주었다고 웃는다. 세상의 만물은 서로 관계를 맺고 있다고 생각하는 최윤석은 조경이 사람들에게 공간을 넘어 콘텐츠와 이야깃거리로 가닿기를 바란다. 정원과 공원에서 출발한 그의 작업이 전시 기획, 동화책, 가드닝 프로그램까지 스펙트럼을 넓히게 된 이유다. 조경가이자 아버지로서의 일상을 담은 글, 다채로운 작업물, 오랜 시간 함께해온 동료들이 바라본 그의 모습과 인터뷰를 통해 조경가 최윤석의 면면을 살펴보자. 진행 김모아, 금민수, 이수민 디자인 팽선민 자료제공 최윤석
종합관계기술
“그림은 거들 뿐”(『환경과조경』 2021년 7월호, ‘그들이 설계하는 법’)이란 글로 당돌한 나의 설계에 대해 이야기를 풀어내며 졸필임을 만천하에 드러냈는데 또다시 설계 철학을 이야기하자니 벌써 두려워지기 시작한다. 26년 전 조경학과에 입학한 후 들은 첫 전공 과목은 조경학개론이었다. 첫 수업에서 교수가 사람 인人 자를 칠판에 쓰고는 조경이란 무엇인지 인자한 미소로 설명했지만 자세한 내용은 가물가물하다. 아침 9시 수업인 데다가 전날의 음주 여파로 제정신이 아닌 신입생이었기 때문이다. 『조경학개론』 첫 장에 쓰인 ‘종합과학예술’이란 단어의 정확한 의미를 지금까지도 이해하지 못했지만 여전히 이 일에 종사하고 있다. 종합과학예술에서 ‘종합’이 모든 것을 포괄한다는 접두어라는 건 알겠는데, ‘조경은 과학이 맞나, 예술이 맞나’ 한 번쯤 깊게 고민하기보다 그저 그렇대 하고 지나치기 일쑤였다. 하지만 조경 설계 실무를 해오면서 머릿속을 채운 여러 설계 철학 키워드 중 가장 우선적으로 떠오르는 것은 ‘과학’보다는 ‘관계’다. 융복합 시대에서 상황, 대상 등 서로 다른 성질의 모든 것은 연결되어 있고 서로 관계를 맺고 있다. 발견의 시작 일의 특성상 대상지는 선택 대상이라기보다는 주어지는 편이다. 모든 아이디어나 콘셉트는 하늘에서 뚝 떨어지지 않는다. 주어진 대상지에서 무언가를 발견하기를 기대하면서 유심히 살펴보고 관찰함으로써 설계가 시작된다. 그런 시간을 보내다 보면 어떤 상황, 그 시기의 이슈를 발견해 대상지와의 관계에 대입해보면서 일의 실마리를 찾게 된다. 물론 담당자와의 대화에서도 발견하기도 한다. 그러한 발견은 디자인의 이유가 된다. 순수 예술은 어떨지 몰라도 조경 디자인에는 늘 이유가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게 평면이든, 입면이든, 재료든 세세한 부분엔 늘 이유가 있다. 그런 것들은 모두 어떤 관계성에서 나온다. 쉽고 명쾌함 지하실에서 무모하게 그람디자인을 출발했던 2008년은 나의 부족한 역량을 직접 마주하기 시작한 시기이기도 하다. 대형 설계 회사들이 주요 프로젝트로 아파트, 대형 공원 설계를 다룰 때 우리의 일거리는 녹지 정비 사업이나 어린이 공원 리모델링 등 작은 규모의 설계 용역이 대부분이었다. 이전 회사에서 진행했던 프로젝트에서는 디자인 이념이나 트렌드를 파악하는 것이 필수였다. 하지만 주민 참여 예산 제도로 열리는 사업 등 소규모 사업 설계를 대하면서 이런 것이 필수인가 의구심을 갖기 시작했다. 동사무소에서 열리는 공원 리모델링 주민설명회에 필요한 건 계획안을 쉽고 명쾌한 내용으로 풀어 주민들을 이해시키고 실사용자인 주민들과 교감을 나누는 일이다. 그러던 중 ‘한글글자마당 조성 아이디어 현상공모’(2011)에 당선된 게고무적이었다. 한글로 조합 가능한 11,172자를 어떻게 체계적으로 나열할 것인가 하는 문제는 쉽고 명쾌한 아이디어가 중요하다고 보는 나의 가치관과 잘 맞아떨어졌다. 한글 자체는 과학적 체계를 갖추고 있다. 한글의 창제 원리와 첫소리, 가운뎃소리, 끝소리로 구성된 조합 원리를 살펴보니 누구나 이해하기 쉽다는 점이 새삼 놀랍게 다가왔다. 글자를 구성하는 조합 원리와 규칙을 모든 글자를 나열하는 방법으로 풀어낼 수 있었다. 심사위원 모두 잘 아는 한글에 대한 시각적 조형성에 염두를 둔 배치보다 쉽고 명쾌한 방식을 제안한 우리의 배치에 높은 점수를 주었다. 자연과의 관계 ‘슈필라움(spielraum)’은 ‘놀이(spiel)’와 ‘공간(raum)’을 합친 단어로, 한국어로하면 ‘놀이방’이다. 그냥 노는 공간이 아니다. 내가 행위의 주체가 될 수 있는 공간, 자신의 창조성을 발휘할 수 있는 공간, 새로운 것을 생각할수 있고 생산할 수 있는 오롯이 자신만을 위한 공간을 의미한다. 그곳에서 지친 심신을 충전하고 자신 본연의 모습으로 돌아갈 수 있다. 정원 현장이나 농장이 나에겐 그런 곳이다. 몇 해 전부터 친구와 이것저것 해보는 농장을 꾸리고 있다. 일주일의 과도한 스트레스를 스스로 덜어내고자 매주 주말이면 늘 농장을 찾게된다. 울창한 숲과 풍부한 자연이 있는 곳이 아닌 허허벌판의 농장이지만 누구 하나 간섭하는 이 없고 오롯이 내가 하고 싶은 정원 활동을 하는 시간이다. 여러 가지 공구를 써보기도 하고 딱딱해진 땅을 파내기도 하고 단단히 뿌리 박힌 잡초를 뽑아내는 등 땀과 근력을 필요로 하는 작업들을 한다. 친구와 같은 작업을 함께 하기도 하고 작업 배분이나 계획 없이 각자 하고자 하는 일을 흩어져 하기도 한다. 정식 계약을 하고 근무 시간이 정해진 노동이라고 생각하지 않기에 지루한 시간이 빨리 흘러갔으면 하는 마음은 없다. 흔히 말하는 노동요나 라디오를 틀어 놓지도 않는다. 길가를 지나는 적당한 인기척과 차량 소음만 있을 뿐이다. 오늘은 이걸 해볼까 하다가 싫증이 나면 저걸 해보기도 하고, 그러다 누가 시키지도 않은 정원 식물을 가꾸거나 아무 상관없는 무언가를 괜히 열심히 하기도 한다. 한 번의 사계절을 겪으면서 나무와 풀을 바라보는 것도 좋지만 천천히 변화하는 날씨와 그에 따른 흙의 변화감과 촉감들을 느끼는 순간들이 위안을 준다. 근본적으로 이곳은 정원용 식물을 키우는 데 목적을 두고 있다. 본격적으로 삽목이나 채종(파종)을 통해 증식 시켜 보고픈 식물들, 현장을 꽉 채우고도 남아서 온 식물들, 보식과 교체로 뽑혀온 식물들, 정원 유지·관리를 하다가 꽃이 진 모습을 못 견뎌하는 클라이언트에게 버려질 위기에서 구출된 식물들이 있다. 거의 아사 직전의 식물이 몇 개월 후 회복하는 모습, 일 년 만에 키와 덩치를 불리는 모습을 보는 것이 계절의 변화를 느끼는 것 못지않게 재미있다. 그래서인지 책상으로 돌아와 설계에 임하면 완벽함, 완성도에 대한 조급함이나 압박감이 덜해진다. 자연이 스스로 회복하는 시간, 사람이 자연 현상을 인지하고 관계하는 활동 시간의 중요함을 생각하기 때문이다. 자연과의 관계성에 대한 고민은 자연 현상에 관한 생각으로 구체화 된다. 직접 만난 적은 없지만 정영선 선생이 한 강의에서 한 말이 자연을 대하는 관점에 대한 좋은 지침이 되어주기도 했다. “한 포기의 연꽃을 심는 것도 연꽃을 보는 것이 아니라 연잎에 떨어지는 빗방울 소리를 듣기 위해서 한다. 대나무를 심는다면 대나무에 스치는 바람 소리를 듣기 위함이다. 소나무를 심는 것은 소나무에 비치는 달 그림자를 보기 위함이다.” 사람과 사람 그래도 이 일은 다 사람이 하는 일이고, 사람과 관계하는 작업물이다. 설계 내용에서도 그렇고 과정에서도 사람이라는 키워드가 유독 중요하게 머릿속을 차지하고 있다. 사람들이 애용할 장소를 만드는 관점이 우선 자리한다. 언제부터인가 답사를 가면 그곳에 있는 사람들을 관찰한다. 뙤약볕이 내리쬐는 공간에 시원한 그늘을 만들어주는 것만으로도 우리의 소임을 충분히 해낸 것이라고 생각한다. 아름다움보다 더 나음을 생각하다보면 사람에 대한 관심이 빠질 수 없다. 나를 조경가로 성장케 해준 것도 귀한 인연들이다. 상사부터 선배, 친구, 동생이 지금의 나를 만들어 주었다. 옆에서 지켜본 그들의 일하는 자세, 술자리 잡담에서 튀어나온 말 모두가 나의 관점에 좋은 영향을 주었다. 지금까지 진행해 온 모든 프로젝트는 혼자만의 생각과 행동으로 만든 결과물이 아니다. 그람디자인과 정원사친구들뿐 아니라 그 외 프로젝트에도 늘 누군가와 함께 하고 있었고, 경우에 따라서 조력자의 역할만으로도 보람찬 성취감을 맛본 경험도 많다. 늘 많은 이에게 고마움을 느끼고 있다. 내가 사람 간의 관계를 중요하게 여긴다고 해서 늘 착한(?) 사람은 아니다. 이상한 갑질과 불합리함에 흥분하는 불같은 성격과 자존심이 장착되어 있다. 하지만 벤치 클리어링 상황일 때 먼저 뛰쳐나가는 걸 말리는 역할을 해줄 사람들도 항상 곁에 있다. 지금 와서 생각해보니 조경학개론 수업의 사람 인 자는 아마도 지금의 생각을 형성해준 암시의 단어가 된 것 같아 소름이 돋는다. 최윤석은 경희대학교에서 환경조경디자인을 전공했다. 선진엔지니어링 종합건축사사무소 조경레저부에서 실무를 익히고 2008년 그람디자인을 설립했다. 아이디어와 디자인에서 누구나 이해하기 쉬운 명쾌함을 추구한다. 2012년부터 활동을 시작한 정원사친구들(gardening friends)은 정원 문화와 관련한 다양한 작업을 통해 창의적이고 감성적인 장소 만들기를 추구하는 집단이다. 조경 설계도 하고 정원 시공도 하며, 조경가로서 어떤 장소나 소재의 가치를 발견해서 돋보이게 만드는 것에 관심이 많다.
여섯 가지 빌드업
01. 디자인 빌드 종종 오해 아닌 오해를 받는 경우가 있는데, 우리는 설계한 것을 시공도 하는 것일 뿐 시공에 잔뼈가 굵은 전문가가 아니다. 우리의 주력은 디자인이다. 관여하는 모든 프로젝트의 시공에 참여할 수는 없지만 디자인 빌드를 추구하는 이유가 있다. 결국 설계는 공간의 현실화가 목적인데 도면이나 시방서 등 의사 전달 수단을 치밀하고 세밀하게 만드는 데 한계를 느낄 때가 많다. 새로운 무엇인가를 구현하고자 할 때 도면의 표현에 지나치게 고민하느니 핵심만 표현하고 실제 현장에서 직접 보고 조치하는 것이 효율적이라고 본다. 모든 일에는 변수가 존재하고, 이에 대한 대응이 신속하게 이뤄지지 못할 가능성에 대한 우려 때문이다. 디자인 빌드를 하면 설계자와 시공자가 양방향의 소통을 신속하고 원활하게 진행할 수 있고, 두 실무자가 현장에서 만나서 고민할 때 좋은 응용력이 발휘되기도 한다. 땅을 비롯해 조경의 소재들은 자연물이라 페이퍼 워크가 아무리 철저해도 예상을 빗나가는 경우가 많다. 마지막으로 비용의 문제다. 새로운 아이디어의 구현에 있어 외주 견적을 받아보면 항상 예상 범위를 넘어선다. 그렇게 비싸다고? 그럴 바에 직접 해보겠다는 반발심이 고생길로 인도한다. 물론 경우에 따라 외주가 훨씬 경제적인 상황도 분명 존재하기에 이를 조절하는 과정까지 아우르는 것이 디자인 빌드다. 궁극적으로 우리가 어떤 빈틈을 채워내지 못하는 부족함에서 비롯된 것이다. 모든 것이 불완전, 불확실하기 때문이다. 2022 생활밀착형 숲 실외정원 최근 생활밀착형 숲 실외정원 인천 송도지역 2개소를 완료했다. 사전에 측량하고 설계를 진행하였으나 시공에서 설계가 변경되는 일이 너무나도 많이 발생했다. 전반적으로 치밀하지 못한 설계가 주된 원인이겠지만, 시공 단계에서 더 나은 방안들이 나왔다. 겨울이 오기 전에 공사를 급하게 마무리해야 하는 탓도 있었지만, 설계 단계에서 자재의 수급 여부를 미리 검토하지 못한 점과 발주처, 지자체, 감리단(시어머니 3인방)의 지나친 걱정과 의견으로 인해 추가적인 일거리가 자꾸 생긴다. 이때부터는 설계 도면은 잠시 제쳐두고 예산에 변동이 생기느냐 혹은 설계 의도에 부합하냐만이 중요해진다. 디자인을 크게 흔들지 않는 범위에서의 실행 방식을 고민한다. 디자인 빌드의 장점은 이때부터 드러나기 시작한다고 생각한다. 결국은 실체를 만드는 것이 최종 목적지이기 때문이다 닻미술관 때로는 도면화 자체가 불가능한 디자인 빌드 작업도 존재한다. 작은 미술관 건물을 지으면서 발생한 거대한 암석들을 정원 요소로 재배치하는 임무를 맡았을 때 막연하게만 느껴졌다. 사실 어떤 그림이 될지 모르고 일단 시작했다. 어떻게든 이 수많은 돌을 잘 골라내서 이리저리 잘 굴려 최대한 자연스럽게 즉흥적으로 배치하는 과정에서 그 풍경이 점차 그려짐을 동시에 알게 됐다. 현장에 머물면서 땀 흘리는 육체적 경험은 설계자의 업무를 넘어 시공자와 관리자 그리고 이용자의 관점을 세세하게 고려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시시각각 변하는 현장은 계획 과정과 달리 순발력과 창의적 감각을 키울 기회를 제공한다. 02. 무너진 경계 디자인 빌드 방식의 의지는 성과물에 관한 책임감 때문이기도 하다. 설계에서 시공까지 이어지는 과정에서 이전에 경험하지 않은 생소한 업종의 일도 하게 된다. 우리뿐 아니라 대부분 조경가가 경험하고 있고, 업의 경계가 무너지면서 이러한 양상은 가속화되는 듯하다. 이전에 설계만을 주된 업무로 생각할 때는 나의 업이 아님을 규정짓고 모른 척하는 경우가 많았다. 전체를 완성하기 위해 여러 가지 업무를 조율하면서부터는 ‘이런 것도 해야 해?’ 하는 반발심과 ‘이런 것도 하자!’라는 적극성이 공존한다. 학교나 실무에서 쌓고 배운 것들이 아닌 전혀 익숙하지 않은 작업들은 하나의 작품을 만드는 과정에서 끊임없이 치밀하게 생각하는 근육을 만들어준다. 덧붙여 매너리즘에 빠질 틈을 주지 않아서 소위 말하는 ‘탈조경’을 방지해주는 느낌이 들 때도 있다. 서울식물원 기획전시 운영 서울식물원 개장 시점에 맞춰 작업한 기획전시(2018년 식물탐험대, 2019년 식물극장)는 기존 시설 공간에 부가되는 장식적 요소로서의 개입에서 더 나아가 소프트웨어라는 콘텐츠의 개입으로 설정했다. 물론 디테일한 전시 요소들을 설치하였지만 테마에 따른 스토리를 개발하거나 가이드북 발간, 투어 프로그램 진행 등 이전에 조경 업무로 인식하지 않는 부분까지 업무의 범위가 확장 됐다. 2021 광주디자인비엔날레 ‘식물극장’ 짧은 준비 시간이 주어지는 전시 연출은 생소하지만, 도전 정신을 갖게 하는 경험이다. 2021년 광주디자인비엔날레에 조경진 교수(서울대학교 환경대학원)의 협업 요청으로 참가했다. 전시는 4차 산업혁명, 융합, 신기술 속에 존재하는 인간의 본성을 들여다보는 아날로그적 감성을 조명하는 취지로 진행됐으며, 우리는 ‘식물극장’으로 참여했다. 코로나19, 기후변화, 경제 위기 등 휘몰아치며 불확실하게 다가오는 미래를 대비하며 오랜 세월 정원과 식물이 사회에서 맡았던 역할과 기능을 통해서 문제 해결의 실마리를 들려주고자 했다. 우리가 경계 없이 진행한 작업을 소개하자면 다음과 같다. 일단 원거리에 있는 오프라인의 정원 식재는 기본이었고, 그 모습을 영상으로 담아 전시장에 영상을 투사했다. 촬영감독을 섭외하고 영상 장비를 구매해 영상 연출도 시도했다. 식물극장이라는 글자도 미래적인 분위기를 낼 수 있도록 폰트 디자이너에게 의뢰해 디자인했다. 일상에서 식물을 직접 키워 먹는 생태 소비의 생활 방식을 이야기하는 식물공장은 첨단 장비가 아닌 로우테크 기술로 구현해 스팀펑크 스타일의 분위기가 나도록 연출했다. 공대 출신의 친구와 함께 농장에서 이것저것을 주워 정말 로우테크 기술로 구현했다. 조성부터 철거까지 우여곡절이 많았지만 마무리하고 나서는 이런 이벤트도 우리가 할 수 있다는 걸 깨달았다. 앞으로 더욱더 문화는 뒤섞이고 통합되는 무경계의 시대가 될 것이라 느꼈다. 새로운 도전이 계속될 것이라는 예감이 들었고, 이러한 새로운 도전의 경험 덕분에 이후 프로젝트에서 동화 창작을 시도할 수 있었다. 03. 스토리텔링 공간에 이야기를 부여하는 것. 모두가 중요하다고 말해왔고 우리도 여러 가지 시도를 했었다. 하지만 그간 스토리텔링은 계획안을 그럴싸하게 만드는 요소이자 형식적인 표현으로 받아들여졌던 것 같다. 계획 단계에서 흥미를 못 끌었는지 정작 실시설계 단계에서는 무시되기 일쑤였다. 그러던 중 어린이정원을 맡으면서 스토리텔링에 대해 좀 더 깊은 고민을 시작하게 됐다. 최근 5년간 디자인하고 조성까지 마친 어린이정원 시리즈는 정원이라는 대상을 하드웨어에 한정 짓는 사고방식에서 벗어나 소프트웨어를 더하는 것의 중요함을 일깨워 주었다. 2018년 서울숲 어린이정원에서는 캐릭터와 상상의 공간이라는 설정과 힌트의 요소만 부여했다면 그 이후의 광릉과 서울식물원 어린이정원에서는 좀 더 적극적으로 이야기를 더했다. 첫 접근으로 그 지역이 가진 전설이나 유래 등을 살펴보았지만 시대 정서와 안 맞는 경우가 있었고, 슬픈 내용이거나 심지어 아이들이 이해하기엔 무서운 내용들도 있었다. 결정적으로 일단 재미가 없었다. 급기야 아이들을 위한 뭔가 흥미로운 이야기를 지어내기로 결심했다. 일단 아이들에겐 재밌으면 그만이니까. 도깨비와 요정들의 숲정원 처음 이곳을 마주했을 때 확실하게 느낀 것은 교목을 따로 심을 필요가 없어 보인다는 점이었다. 오랜 세월 동안 만들어진 숲의 모습이 바로 광릉의 정체성이다. 이러한 숲의 특징을 여실히 드러 내고 강조하는 공간을 구현하고자 하였다. 숲 내부가 아이들이 흥미로운 이야기를 따라 탐험할 수 있는 장소로 거듭나기를 바랐다. 이를 위해 동화를 창작했다. 동화에는 독갑이 아저씨(사실은 도깨비)와 광이와 릉이라는 인물이 등장하며, 의인화된 숲의 요정들도 있다. 숲이 시원한 이유가 궁금했던 주인공 광이와 릉이가 도깨비 부채의 실체를 확인하기 위해 모험을 떠나며 이야기가 펼쳐진다. 창작된 동화(소프트웨어)와 조성된 정원(하드웨어)의 싱크로율을 높이기 위해 두 작업을 동시에 병행했다. 이야기를 구상하다 필요한 요소가 있으면 설계에 반영하고 설계상 드러내고 싶은 요소가 있으면 이야기에 담았다. 일러스트 작가를 섭외해 창작된 동화와 현장을 보여주고 그려냄으로써 아이들에게 좀 더 친근한 콘텐츠가 되도록 만들었다. 동화책의 설정에 따른 공간 구현으로 아이들에게 흥미로움을 제공하는 장소 특정형 스토리텔링을 시도했다. 제작된 동화책과 정원에서 즐길 거리가 되는 워크북을 어린이날 방문한 아이들에게 배포해 특별한 장소로 인식하게 했다. 오래된 숲 안의 거대한 나무들에 둘러싸여 있어서 도심과는 다른 신비로운 공간처럼 느껴진다는 점이 나무들을 의인화한 도깨비가 살고 있다는 설정을 가능케 했다. 대상지 내에는 이식될 기약이 없이 가식된 소나무들이 공간을 가로 막고 있었다. 국립수목원 내부의 더 깊숙한 곳에 있는 전나무처럼 거대한 크기가 아니라 못내 아쉬웠지만, 이 정도 크기의 나무를 의인화했을 때 아이들의 흥미를 끌기 좋고, 신비의 숲으로 들어가기 위한 좁은 길을 만들어주는 효과를 낼 수 있다고 혼자서 정신승리(?)를 했다. 광릉숲을 둘러보다가 간벌되거나 태풍 피해로 쓰러진 통나무에 주목하게 됐다. 그대로의 숲의 자연을 표현하기에 최적인 오브제이자 시설물이 될 가능성이 엿보였다. 기존 놀이 시설물은 공산품이지만 통나무는 자연의 놀이 시설물이자 허점투성이를 고스란히 노출해 자연적인 속성을 그대로 보여준다. 나이테가 보이고 옹이도 있고, 개미가 파먹은 부분도 있고, 그늘이 드리워지는 부분은 이끼가 잔뜩 끼기도 하고, 부러진 부분은 흰 속살이 드러나기도 한다. 통나무를 옮기다 굴착기가 낸 흠집을 호랑이나 곰이 할퀸 자국으로 묘사하며 아이들에게 설명하면 재미있을 것 같았다. 무엇보다 통나무가 숲을 탐험하는 길(로그 트레일)이 되어주는 것이 이 디자인의 핵심이었다. 작은 식물원 마을 그리고 꼬마 식물탐험대 식물이 자리한 정원이 동화적 이야기를 만나 자연에 대한 아이들의 관심과 애정을 느끼게 해주는 방식은 다음 해에도 이어진다. 코로나19로 개장이 늦어지면서 2년여 가까이 공을 들였고, 덕분에 광릉에 대한 만족도가 높은 편이었다. 속편에 대한 기대감과 부담감도 점점 커졌다. 프로젝트를 함께 준비하는 서울그린트러스트로부터 2022년도는 어린이날 100주년이라 오픈 행사를 성대하게 치를 것이란 이야기까지 듣게 된다. 이번 대상지는 서울식물원이었다. 서울식물원에는 아이들을 위한 공간이 많이 마련되었지만, 어린이 눈높이에 맞춰 식물원 본연의 목적인 다양한 식물들을 관찰하고 즐길 수 있는 공간으로 보기에는 아쉬움이 좀 있었다. 그래서 아이들을 위한 작은 식물원을 구상했다. 미니어처 형태의 요정 마을에는 원래 작은 식물과 이제 갓 뿌리를 내리고 성장을 시작한 묘목들을 배치했다. 아이들이 식물탐험대가 되어 마을 곳곳의 식물들을 살펴보게 하는 것이 설계의 목표였다. 광릉 프로젝트처럼 정원의 평면적 계획과 함께 이야기를 동시에 구상하기 시작하였다. 팀원들과 여러 가지 아이디어를 검토해보다가 결국 찾아낸 것은 작은 수목원 마을에 어울리는 독특한 세계관(유니버스)의 설정이다. 마을의 각 구역은 뿌리, 줄기, 잎, 꽃, 열매 등 식물의 구성 요소의 특징을 보여주고, 각 구역에는 활동하는 요정들이 있다. 이 모든 구역을 하나의 얼개가 있는 이야기처럼 구성하고자 했다. 동화 같은 식물 세상의 이야기가 어우러진 정원은 아이들에게 단순한 식물의 관찰을 넘어 식물의 유기적 관계성에 관심을 가지게 하고 가꿈의 정성과 시간의 중요성을 알게 해주는 내용으로 마무리된다. 일러스트 작가가 그린 동화책을 제작하고 정원의 전체 지도를 담은 1인용 돗자리로도 만들어 어린이날 다양한 이벤트에 참여하는 시민과 아이들에게 정원과 더불어 또 하나의 선물로 선사했다. 평면적으로 구역을 나눌 때 어떤 구성 요소로 아이들의 동선 흐름을 이어가게 만들지를 중요하게 생각하며 접근했다. 스케치에서 보이는 형태적 표현보다 어떤 내용을 담을 것인가에 대한 고민의 시간이 더 중요했다. 작은 공간이라도 생각할 거리, 이야깃거리를 던져주는 흥미로운 장소가 되기를 바랐다. 마을의 특색에 따라 그 집에 살고 있는 요정들도 각각의 직업이 있다. 그 직업들을 상상하며 모든 집에 간판을 달았다. 짜임새가 있는 진짜 마을의 모습처럼 인식하기를 바라는 마음도 있지만, 우리가 타깃으로 보는 유치원생 정도의 어린이들은 한창 한글을 읽어내려 하는 때이기 때문이다. *환경과조경417호(2023년 1월호)수록본 일부
인터뷰: 공간과 개개인의 삶을 빚는 조경
디자인하는 엔지니어 -수상 축하드립니다. 주변 반응은 어떤가요. “‘네가 젊냐?’라는 말을 제일 많이 들었어요. 나이가 딱 만 45세거든요.젊은 조경가 지원 조건 중 하나가 만 45세 이하의 조경가이니, 경계에서 받은 셈이죠. 가까운 친구들이 많이 축하해줬고, 소식이 뜸했던 사람들의 연락을 받기도 했어요. 『환경과조경』 표지 보고 연락하더라고요.” -사진을 열심히 찍은 보람이 있네요. 수상 소식을 듣고 새로운 클라이언트가 찾아오진 않았나요. “아쉽게도 아직은 없습니다.” -남기준 편집장이 수상 소식을 전했을 때, 엄청 놀랐다고 들었어요. “누가 절 추천했다는 걸 몰랐던 터라 놀랐어요. 이전에 지원했다가 떨어지기도 했고, 매년 수상자 발표 소식을 보면서 수상 자격에 대한 생각이 약간 모호해졌었거든요. 전 전통적인 조경 설계를 주로 하는 사람도 아니고, 시공과 정원 일을 많이 하는 편이라 젊은 조경가와는 결이 안 맞을 수도 있겠다고 짐작했어요. 그래서 당황스러우면서도 쑥스러웠죠.” -인터뷰를 준비하며 2020년에 제출한 지원서를 다시 읽어봤어요. 자기소개서에 인상적인 문구가 있더군요. ‘디자인하는 엔지니어’. 스스로를표현한 문구인데, 디자인하는 엔지니어는 일반적인 디자이너, 일반적인엔지니어와 무엇이 다른가요. “다르다기보다 순차적인 단계라고 봐요. 설계 초반에 콘셉트를 잡고 초벌 그림을 그리고 형상을 만드는 게 디자이너라면, 이를 구체화하고 현실로 구현할 수 있는 가능성을 높이는 게 엔지니어죠. 조경 설계의 기본 구상, 기본계획 단계에서 디자이너적 역량이 중요한 만큼 시공을 위한 실시설계 단계를 뒷받침하는 엔지니어적 역량도 중요해요. 그런데 현재는 디자이너와 엔지니어 사이에 괴리감이 좀 있어요. 설계 후 시공을 맡기면 이건 그림일 뿐이고 시공할 수 없다는 말 들어본 적 있을 거에요. 그런데 또 시공에만 초점을 맞추다보면 창의적인 아이디어를 반영하기어려워지기도 해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디자인 단계에서 실시설계와 실제 건설 공사를 염두에 두고 설계를 풀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래야 현실적으로 구현하기가 용이해지고, 효과적인 창의가 돼죠. 기술에 관심을 갖고, 또 염두에 두고 디자인 작업을 하기를 바랍니다.” -언제부터 조경가를 꿈꿨나요. “사실 조경이 뭔지 잘 모르고 조경학과에 입학했어요. 원래는 건축에관심이 많았고, 수능을 본 후에 건축학과, 선박공학과, 조경학과에 지원했죠. 그중 선박공학과와 조경학과에 합격했고요.” -원래 공학 쪽에 관심이 많았나 보네요. “그렇지는 않아요. 본래 수치를 칼같이 다루는 것보다는 말랑말랑하고시각적인 부분에 집중하는 걸 훨씬 좋아했어요. 아기자기하고 공예적으로 만드는 데도 관심이 있었고요. 공대는 조금 삭막할 것도 같았고, 학교 캠퍼스나 분위기가 마음에 들어서 조경학과에 입학했습니다.” -그럼 조경을 업으로 삼아야겠다는 확신을 언제 했나요? “운 좋게 학교를 다니며 ‘밝바치’라는 조경 동아리 활동을 했어요. 학교 수업에서 배울 수 없는 것들을 얻었죠. 답사도 즐거웠고 술 마시고 놀러 다니는 재미에 더 즐겁게 활동했어요. 전공에도 더 애정을 갖게 됐고요. 워낙에 철이 없어서 조경을 업으로 삼아야겠다는 큰 그림을 그렸다기보다, 졸업하고 나서 바로 취업을 해야겠다는 생각뿐이었어요. 4년 동안 사회생활을 통해 등록금을 환수해야겠다는, 딱 그런 마음으로 취직해서 일했어요. 주어진 대로 일하는 철없는 신입사원이었죠. 그러던 중 다리를 크게 다쳐서 수술을 받고 3개월 정도 입원해서 꼼짝없이 누워 있어야 하는 일이 생겼어요. 그 시간이 계기가 됐죠. 아무것도 할 수 없으니 자연스레 앞으로 뭘 해야 할까 고민하게 됐어요. 할 일이 없어서 닥치는 대로 책을 읽었어요. 전공 관련 서적뿐만 아니라 교양, 소설, 자기 개발서까지. 시야가 넓어지는 느낌이 들더라고요. 앞으로 어떻게 살고, 뭘 해야 할지 인생을 좀 더 구체화하는 시간을 보냈죠.” -엔지니어적 면모를 갖추게 된 건 역시 첫 직장인 종합엔지니어링 회사의 영향이 큰가요? “첫 직장은 엔지니어링 회사가 아니었어요. 조경설계사무소를 일 년 정도 다니다 선진엔지니어링으로 자리를 옮겼죠. 중간에 쉬면서 배낭여행도 다녀왔고요. 처음에 포트폴리오를 제출했는데 연락이 없어서 떨어진 줄 알았어요. 포트폴리오를 되돌려 받기 위해 회사에 방문했다가 인턴부터 시작해보는 게 어떻겠냐는 제안을 받았고, 인턴 생활을 하다가 정직원이 됐죠.” -일반적으로 조경설계가를 꿈꾸는 학생 대부분이 조경설계사무소에 가기를 원하잖아요. 엔지니어링 회사에 입사하면 처음에 무슨 일을 하는지 궁금해할 것 같아요. “그 직원이 잘하는 걸 시키죠. 어떤 툴을 잘 다룬다면 그 툴을 다루는일을 우선 맡길 테고, 졸업 작품이나 논문에서 다룬 주제와 부합하는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면 그 팀에서 일을 하게 되기도 하고요. 제 경우에는 신입사원 시절에 워낙 정신없이 시간을 보냈고 할 수 있는 일은 닥치는 대로 했던 것 같아요. 조경설계사무소와 종합엔지니어링 회사의 가장 큰 차이점은 설계사무소가 설계 프로젝트에 집중적으로 초점을 맞춰 업무를 진행한다면, 종합엔지니어링은 설계 구현을 뒷받침하기 위한 부가 업무도 많았던 걸로 기억해요. 그래서 하루 일과가 굉장히 빡빡한 대신에 출퇴근 시간, 야근 시간도 어느 정도 정해져 있는 편이죠. 돌아보니, 제가 설계사무소와 엔지니어링 회사를 다닐 때는 업무 시간 자체가 굉장히 길었네요. 요새는 여건이 좀 나아졌다고 들었어요. 그람디자인만 해도 야근이 거의 없는 편이고요.” -엔지니어링 회사에 다니는 경험이 시공을 염두에 둔 설계를 할 수 있는조경가가 되는 데 좋은 밑거름이 되겠네요. “엔지니어적 역량이 단순히 시공에 국한된 건 아니에요. 물론 최종 목적지는 시공 결과물이겠지만, 시공에 필요한 전반적인 사항, 예산, 공정, 여러 행정 절차까지도 설계 단계에서 고려할 수 있는 설계자가 되는 걸 뜻합니다. 물론 디자이너도 법적인 사항을 사전에 검토하겠지만, 좀 더 구체적인 전략을 세우는 일은 엔지니어가 하니까요. 설계 실현을 위한포괄적인 사항을 염두에 두고 디자인하는 게 효과적인 설계라고 생각합니다.” -그런 감각을 깨우치는 데 도움이 될 만한 게 뭐가 있을까요. “조경 설계를 할 생각이라면 두루두루 많은 걸 경험하기를 권해요. 우리 회사 직원에게도 늘 하는 이야기예요. 아이디어나 표현력이 중점이 되는 기본 구상이나 설계공모 같은 계획 파트의 업무도 해봐야 하고, 이를 구체화하는 다음 단계인 실시설계 과정도 치열하게 경험해봐야 해요. 예산 때문에 새로운 공법을 고민하는 과정도 좋은 경험이 됩니다. 실제로 시공 현장에서 실시설계 단계에서 도면화한 것들이 다르게 해석되어 더 나은 결과로 나타나는 경우도 있거든요. 이를 두루두루 경험하고 하는 설계와 그렇지 않고 한 설계는 전혀 달라요.” 설계사무소 대표가 되다 -소장님과 처음 연락을 주고받은 계기가 2016년 5월호 특집 ‘설계사무소를 시작한다는 것’이었어요. 2008년이면 소장님이 32살 때죠. 또래에비해 꽤 어린 나이에 창업을 했는데, 두렵지는 않았나요. “당시의 치기 어린 욕심에 벌인 일이기도 했죠. 흔히 그 연차에 갖게 되는 내 디자인을 하고 싶다는 욕망도 강했고, 연봉에 대한 불만도 조금 있었고요. 말 그대로 어린 나이였기 때문에 할 수 있던 도전이었습니다. 하다가 잘 안되면 다시 취직하면 되지 하는 마음이었죠. 만약 지금처럼 40대를 넘긴 나이에 결혼을 해서 자식도 있는 상황이었다면 더욱 치밀하게 준비했을 거예요. 거래처나 수주 대상도 더 꼼꼼히 살폈을 거고요. 당시에는 잘못돼도 금방 회복할 수 있다는 믿음과 모험심이 있었죠.” -사무실을 열면서 이것만큼은 반드시 지킬 거라고 다짐하며 세운 원칙이 있다면요. “이전에 다녔던 회사에서 안 좋다고 느낀 점들이 없는 회사요. 야근이나주말 출근이 없는 회사, 월급이 밀리지 않는 회사.” -원칙이 잘 지켜지고 있나요. “월급은 밀린 적이 없으니 다행입니다. 야근은 거의 안 해요. 어릴 때 철야나 야근을 너무 많이 하니 회의감이 들더라고요. 내가 뭐 때문에 이 일을 하고 있나 하는 생각이 들죠. 다람쥐 쳇바퀴 돌듯 살면 자존감도 낮아지고 자아가 점점 사라지는 느낌까지 들어요. 전 제가 쉬고 싶을 때 못 쉬는 게 너무 불만이었어요. 적어도 내가 오늘은 쉬어야 한다고 느끼면 쉴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실제로 독립 후에 직원들에게 습관적인 야근을 하지 말라고 당부하기도 했고요. 꾸역꾸역 야근한다고 좋은 설계가 나오는 건 아니거든요. 그런데 최근 들어서 야근의 필요성을 느끼기도 해요.” -야근에 대한 생각이 바뀐 이유는 뭔가요. “조금 다른 개념의 야근이에요. 어떤 일의 경우 연속성이 필요하기도 해요. 예를 들면, 창의적인 아이디어 도출을 위해 고민하는 일이요. 완성된 설계안을 도면으로 그린다든지 하는 기술적인 일은 굳이 연속적인 작업이 필요하지 않죠. 하지만 깊이 있는 고민을 하다가 끊기면 어려움이 생겨요. 물론 야근을 강요할 생각은 없어요. 결국 자기 몫이거든요. 굳이 사무실에 앉아서 야근하며 고민할 필요는 없어요. 몸은 사무실을벗어나도 되지만, 생각의 스위치는 꺼놓지 말아야 해요. 퇴근하는 순간 그 스위치를 내려버리면 다시 원점에서 고민을 시작해야 해요. 반면 늘 궁리 중이라는 사실을 잊지 않고 있으면, 주말에 놀러나가서 주변을 구경하다가도 아이디어를 발견할 수 있으니까요.” -그람디자인의 그람은 무게를 재는 단위를 뜻하나요. “초창기 그람디자인을 창업하며 세 명의 대표가 함께 만든 단어예요. 조경설계사무소 명부 같은 게 만들어지면 초반에 위치할 수 있도록 ㄱ으로 시작하는 이름을 짓는 게 최우선 사항이었어요.” -굉장히 전략적인 이름이었네요. “그렇죠. 그람은 인간이 가늠할 수 있는 무게의 최소 단위이기도 해요.보통 설계에서 다루는 단위가 킬로그램이나 톤인데, 그보다 좀 더 디테일하고 아기자기한 부분까지 다루겠다는 의미를 담았어요. 또 일에 경중을 따지지 않겠다는 생각도 있었고요. 사실 진중한 분위기를 잘 견디지 못해서, 가볍게 받아들일 수 있는 이름을 짓고 싶었어요.” -설립 초기에는 대표가 셋이었군요. “5년 정도 세 명의 대표가 함께했고, 지금은 저와 경정환 대표가 함께 이끌고 있습니다.” -사무실 규모는 어떻게 변해왔나요. “현재 직원은 절 포함해서 9명입니다. 구성원은 계속해서 변했고, 규모는 전반적으로 커진 편이에요.” -창업 초기에 공모 작업을 많이 했더라고요. 시간적·자금적 여유가 괜찮았나요? “생각보다 많이 하진 않았어요. 다만 공모의 내용을 살펴보고 우리가자체적으로 소화가 가능한지 판단한 후 부담 없이 접근했던 것 같습니다. 지금도 공모 지침을 보면 제출 분량부터 확인합니다. 신생 회사이니 그람디자인을 알릴 방법을 찾고 싶었고, 공모전 수상이 그 방법 중 하나였죠. 또 공모를 계속 끊임없이 하는 것 자체가 실력 배양에 중요한 역할을 하니까요.” -여러 공모 중에서 ‘한글글자마당 조성 아이디어 현상공모’(2011)가 큰의미를 남긴 것 같습니다. 포트폴리오에서 “디자인 목표는 분명했고 디자인 전략도 명쾌하고 단순했다. 한글이 가진 특징이 고스란히 드러나면 된다. 한글은 누구나 쉽게 이해하고 배우기 쉬운 글자다. 과학적이고 논리적인 한글의 구성 원리는 편리성과 실용성을 담고 있다. 한글의 창제 원리와 철학을 알게 되면서 디자인은 쉽고 명쾌해야 하는 디자인의 관점을 줄곧 견지하게 되었다”고 한 게 기억나요. “설계는 사람들에게 단박에 읽혀야 한다고 생각해요. 길고 장황하거나너무 무겁고 진중하면 이해하기 어렵죠. 배경 지식이 없는 사람에게도 쉽게 설명할 수 있어야 해요. 우리의 클라이언트는 조경 전문가가 아닌 경우가 많을 테니까요. 고차원의 이론과 이념으로 무장한 설계는 그 용어도 모르는 사람에게 매력적이지 않을 뿐더러 설득력도 없는 공간이 될 겁니다. 대중의 마음을 사로잡고 눈길을 끌 수 있는 설계는 직관적이고 쉽게 이해할 수 있는 내용이어야 해요. 그만큼 명쾌해야겠죠. 그래서 콘셉트나 주제를 정리할 때 어려운 용어를 쓰는 걸 경계하는 편이에요. 누구나 읽기 쉽고 어렵지 않게 받아들일 수 있는 설계를 하고 싶어요.” -독립할 때 가장 고민하는 게, 회사 설립 후 무슨 일을 하느냐 일 것 같아요. “제가 운이 좋게도 흐름을 잘 탔어요. 사무소를 열었던 2008년은 4대강 복원 사업이 시작되어 일거리 자체가 많고 설계사무소가 많이 늘어났던 해거든요. 엔지니어링 회사에서 함께 턴키에 참여할 조경설계팀을 찾는 경우도 많았고요. 초반에는 전에 일하던 선진엔지니어링에서 일을 따오기도 했어요. 그람디자인을 열면서 이런 일을 하겠다고 정해놓은 것도 아니었고, 단골 고객도 없었어요. 그래서 설립 초창기에 고민이 많았습니다. 그 와중에 가능성을 찾은 곳이 정원 분야였어요. 앞으로 정원을 설계할 뿐 아니라 디자인 빌드까지 해내는 사무소로 자리 잡아 무언가를 해보자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물론 보통의 조경 설계도 놓치지 않고요. 두 가지 일을 병행하는 과정을 거치며 시간이 흐르다보니 소위 말하는 단골 고객도 생겼어요.” 공공 정원에서 상업성을 꾀하는 법 -주로 하는 일은 정원 설계인가요. “많은 사람이 그람디자인을 정원만 만드는 회사라고 오해 아닌 오해를하더라고요. 회사 업무 전체를 보면, 절반은 조경 설계고 나머지가 정원 관련 프로젝트에요. 특정 시기를 뽑아서 따지면 정원 프로젝트가 압도적으로 많을 때도 있지만, 총 업무량을 따지면 조경 설계와 정원 프로젝트가 균형을 이루고 있습니다. 구성원 역시 설계하는 직원, 정원하는 직원이 분리되어 있지 않아요. 모든 직원이 두 분야의 일을 병행합니다. 솔직히 말하자면, 개인 주택 정원은 저희 사업 분야라고 생각하지 않아요. 주택 정원은 정원의 주인이 직접 만들고 가꿔야 한다고 생각하는 편이거든요. 유지·관리와 정원 문화와 산업 부흥의 측면을 살피면 그 편이 더 장점이 많고요. 되도록 공공 정원을 많이 만들려고 해요.” -정원 설계를 할 때 조경 설계와 달리 어떤 면을 더 살펴야 한다고 생각하나요. “특별히 다른 태도를 취하진 않아요. 결국 조경 설계가 정원 설계를 포괄하는 광범위한 개념이니까요. 조금 다른 면이 있다면, 주택 정원의 경우에는 좀 더 사용자에게 특화된 공간이죠. 규모도 그렇고요. 정원을 이용하게 될 개개인에게 초점을 맞추는 게 중요하죠.” -서울숲과 서울어린이대공원에 꾸준히 어린이를 위한 정원을 만들어왔죠. 대상지 조건이 꽤 비슷한 편이잖아요. 어린이정원을 만들 때 스토리텔링을 중요하게 여긴다고 들었는데, 한계에 부딪치진 않나요? 영감은 어디서 주로 얻나요? “우연치 않게 어린이정원을 만들 기회를 얻었는데, 어느덧 어린이정원 7호 설계 준비를 하고 있네요. 사실 지금 한계에 다다랐어요. 그래서 걱정입니다. 전에는 본격적으로 설계에 돌입하기도 전에 아이디어가 막 떠올랐거든요. 마녀의 집을 만들었으니 이제 한국적인 도깨비를 등장시켜 보자, 답사를 가서 본 미니어처 정원이 인상적이었으니 나도 만들어보자, 미니어처 정원을 만들었으니 거인의 시점에서 정원을 바라보자 하는 식으로요. 끊임없이 변화하려고 노력하고 있는데, 내심 똑같은 주제의 정원을 다른 버전으로 만드는 것도 의미 있지 않나 하는 생각을 하기도 해요. 스토리텔링에 필요한 화두는 평소에 미리 찾아놓는 편이에요. 발굴해놓은 화두를 구체화해서 설계로 풀어내고요. 영감을 채우기 위해서 책, 영화, 유튜브 같은 미디어를 구분 없이 봐요. 특정 분야에 관심을 두고 있다기보다 평소 이곳저곳에 시선을 두면서 아이디어를 얻는 편이죠. 그렇게 얻은 아이디어를 잘 모아놓고요. 모아둔 아이디어를 상황에 맞춰 꺼내 쓰는 방식이죠.” -아이디어 정리에는 어떤 툴을 쓰시나요? “아무 때나 편하게 쓸 수 있는 네이버 메모장을 많이 사용합니다.” -공공 공간에 만드는 어린이정원의 경우 어느 나이대의 아이가 올지 예측할 수 없잖아요. 안전 관련 규정이 굉장히 엄격하기까지 해서 설계가까다로울 것 같습니다. “그 부분이 불만입니다. 관리자나 발주처 입장도 어느 정도 이해하지만,안전 문제에 너무 예민하고 민원이 발생할 수 있는 여지가 생기는 걸 너무 두려워해요. 어린이정원은 어린이 놀이터와는 엄연히 다른 개념인데, 약간 높은 둔덕만 있어도 미끄러져 넘어지거나 아이가 떨어져 다치는 상황을 과도하게 걱정해요. 그나마 다행인 것은 법적으로 놀이터 안전 규정은 있지만 정원 안전 규정은 없다는 점입니다. 아무래도 예산이 한정적인 ‘공공’ ‘정원’이라 발생하는 문제이기도 해요. 귀에 딱지가 붙을 정도로 듣게 되는 말이 저관리 정원입니다.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속으로 무관리/무민원을 말하고 있다고 생각해요. 저관리가 하나의 설계 전략이 될 수도 있죠. 하지만 정원은 기본적으로 계속 관리해야 하고 가꿔야 하고 지속적으로 보수가 되어야 하는 곳이에요. 만약 유지‧관리 예산이 충분하다면 펜스 없이 풍성한 관목을 울타리 삼아 아이들의 안전을 도모할 수도 있고, 화단과 녹지를 더 멋스럽게 만들 수 있거든요. 여유가 없으니 정원 디자인이 밋밋해질 수밖에 없죠. 안전에 관련한 시각이 조금 바뀌어야 한다고 봐요.” -개인적으로, 비가 오면 어린이정원에 사용한 목재가 더욱 짙은 색으로변하는 모습이 매력적이었어요. 목재를 많이 사용하는 것 같은데, 혹시선호하는 소재가 따로 있나요? “늘 강조하는 점인데 가격이 저렴한 소재를 선호해요. 고가의 소재, 희귀한 소재보다 구하기 쉬운 재료가 좋아요. 거창하게 들릴 수도 있는데 친환경적인 부분을 신경 쓰기도 하고요. 재활용할 수 있는 소재에 굉장히 매력을 느껴요. 언젠가는 다른 용도로 쓰일 수 있는 소재를 생각합니다. 대형 건설 현장에서 멀쩡한 자재를 버리는 걸 많이 목격했거든요. 뜯지도 않은 석재 블록을 팔레트 채로 버리기도 하고요. 남은 재료를운송하는 데 드는 비용이 폐기 비용보다 더 드는 경우가 많으니까요. 버려지는 재료를 보며 아깝다는 생각을 많이 했고, 그래서 완성도를 크게 해치지 않는 상황에서는 재활용 가능한 자재를 사용하고 있어요.” -공공 정원 작업이 영리적으로는 괜찮은 편인가요? “물론이죠. 시대적 흐름에서 공공 정원이 중요해지고 있어요. 원래는 톱다운 방식의 관급 발주 정원 사업이 지배적이었는데, 최근에는 민간 기업에서 ESG 경영 차원으로 기부 정원 사업을 많이 진행하고 있어요. 그람디자인의 최근 작업도 대부분 그런 사업들이고요. 물론 사업비가 충분치는 않아요. 그런데 공공 정원 프로젝트 경험이 많이 쌓이다 보니 원가를 절감하는 요령이 생겼어요. 적은 비용과 저렴한 시공 방식으로 최대의 효과를 낼 수 있는 방법을 잘 찾아내죠. 소재를 재활용하는 방식을 추구하는 점이 원가 절감에 도움이 되기도 하고요. 공예적인 작업을 직접 하는 것도 큰 도움이 됩니다. 보통 시설물 업체에 외주를 맡기면 그만큼 시공에 드는 비용도 커지는데, 그 작업을 직접 하니 예산을 절약 할 수 있죠. 공공 정원 일을 많이 하지만 그람디자인은 영리 기업이라는 점을 늘 잊지 않아요. 하지만 노력한 만큼의 정당한 대가를 받기 위해선 끊임없이 비용을 절감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야 해요. 공공 정원에 대한 사회적 공감대가 형성되어 더 많은 예산이 주어진다면 더 좋고요. 그래도 사회 공헌 차원의 프로젝트를 할 수 있다는 게 의미 있고 행운이라고 느껴요. 직원들에게는 큰 수익을 내지 못한다는 점에서 미안하기도 해요.” 식물의 존재감 -전 학창 시절 식재 수업이 참 어려웠어요. 식재 방법을 배운다기보다수목학 수업의 연장선으로 느껴지기도 했고요. 결국 식재에 대해서는하나도 배우지 못하고 졸업한 것 같아요. 정원은 다양한 식물을 다루고배식해야 하는 작업인데 어떻게 공부했나요. “저도 비슷한 고민을 했어요. 식재 설계를 잘 몰랐고, 이전 직장 생활할때도 식물 다룰 일은 거의 없었죠. 관심도 깊지 않았고요. 그람디자인을 차리고 정원 쪽의 일을 하게 되면서 관심이 커졌어요. 평소에도 식물 수종이나 나무의 특징을 유심히 살피게 됐고요. 식재 설계는 작정하고 공부한다기보다 경험을 통해 축적되어서 쌓이는 것 같아요. 이런저런 나무를 심어보고 꾸준히 모니터링하면 비로소 ‘안다고’ 말할 수 있는 수종들이 늘어나요. 결국 관심의 문제에요. 식재 설계는 배식과 조합의 문제죠. 어떤 교목과 관목, 초본이 어울린다는 공식은 없어요. 생육 특징이 맞다면 언제든 새로운 배식 방법을 찾을 수 있다고 봐요. 어떤 식물을 사용하고 싶다면, 그 식물의 생육 특성, 유래, 의미를 잘찾아보는 게 중요해요. 이 부분이 스토리텔링과 연관되기도 하고요. 평소 식물의 의미를 자주 찾아보는 편이에요. 서울숲 설렘정원의 경우, 야외 결혼식을 할 수 있는 공간인데 어렵게 호두나무를 구해 심었어요. 북유럽의 연인들은 호두나무 가지를 장작불에 넣었을 때 불꽃이 탁탁 튀는 정도를 보고 애정의 깊이를 점치는 풍습이 있다고 하더라고요. 이처럼 이야기가 있는 수목을 심었을 때 사람들이 흥미로워 해요. 어린이정원을 소개할 때는 늘 산사나무 이야기를 해요. 해리포터의 지팡이가 산사나무로 만들어졌다고 말하면 다들 관심을 가지고 산사나무를 기억해요. 그 순간 산사나무가 의미 있는 존재감을 가지게 된다고 생각해요. 설계도 중요하지만 조경의 주요 소재인 식물에게 사람들이 다가가게 만드는 과정도 중요해요. 막 사회 초년생이 된 조경가에게 추천하고 싶은 방법은 시공된 조경 현장을 봄, 여름, 가을, 겨울, 사계절 내내 관찰하는 거예요. 일 년이 다 가도록 수목이 성장하고 변하는 모습을 보는 게 큰 도움이 될 겁니다.” -자기소개서에서 디자인 빌드까지 하는 사무소를 차린 이유를 “빠듯한공사비의 문제 등 다양한 이유가 있지만 무엇보다 디테일에 관하여 글과 도면으로 표현하여 전달하는 데 한계가 있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더라고요. 극복하는 방법이 있나요? 시공 도면 그리는 노하우라든지. “저도 발주처가 요구하는 대로 양식에 맞춰 캐드로 도면 그리는 건 똑같아요. 다만 조경의 특성상 도면에 표현할 수 없는 부분이 있어서 아쉬워요. 메타세쿼이아 같이 비교적 정형적인 수형의 수목이 있는가 하면, 진달래처럼 가지가 뻗은 정도나 잎이 벌어진 정도가 저마다 다른 수목이 있죠. 도면으로 이를 표현하기는 어려워요. 물론 식재할 수목을 설계 단계에서 구해와 어떻게 심을지 고민하며 설계하는 방법도 있어요. 실제로 그 방법을 택하는 설계사무소도 있고요. 하지만 그럴 수 없는 경우가 더 많죠. 보통은 예상한 것과 다른 수형의 수목이 현장에 도착해요. 이럴 땐 수목 하나의 위치를 바꾼다고 해결되지 않아요. 옮긴 수목에 맞추어 다른 식물과 수목을 함께 옮겨야 하죠. 그래서 저는 대형 교목 정도만 위치를 특정하고, 아교목과 관목, 지피 초화는 물량만 확정해 도면에 그립니다. 현장에서 시공하며 그 위치를 유연하게 조정하죠. 포장이나 시설물도 현장 여건에 따라 바뀌는 경우가 많아서 세밀하게 그리기보다 큰 맥락을 보여주는 도면 그리기를 선호합니다.” -시공 현장을 24시간 내내 지켜보고 있을 수는 없을 텐데, 작업자에게주는 가이드라인이나 주의사항이 있나요? “오히려 저보다 시공에 능한 전문가가 더 많아요. 그래서 특별한 주의사항을 드리거나 하지는 않습니다. 다만 일부러 나무를 삐뚤게 심어야 하는 경우 같이 특수한 상황일 때만 미리 알려드리죠. 현장을 수시로 점검해야 하는 프로젝트가 있고, 믿고 맡겨도 되는 프로젝트가 있어요. 때에 따라 달라요. 시공 업무를 직원들과 직접 소화하는 경우도 많아요. 작은 공간 포장을 위해서 전문 작업 팀을 부르기는 곤란하니까요.” -직원들이 설계와 시공 업무를 병행하는 걸 힘들어하진 않나요? “고충이 있죠. 설계 작업할 때는 아침 10시에 출근해 6시에 퇴근하는일상을 보내는데, 시공 현장은 아침 7시부터 시작해요. 오후 4시 반에 일이 끝나면 사무실로 돌아와 당장 내일 작업해야 하는 도면을 수정해야 하는 경우도 다반사고요. 생활 패턴이 완전히 달라져요. 작업 모드를 자주 바꾸는 걸 버거워하는 직원이 많아요. 그런데 하다 보면 요령이 생기죠. 나름대로 여유를 찾는 법도 스스로 찾게 되고요. 사무실에서 설계 작업을 한다고 하루 종일 키보드를 두드리고 마우스를 쓰는 게 아닌 것처럼, 현장에 나간다고 내내 삽질을 하는 게 아니니까요. 모드를 빠르게 전환하는 영리한 나만의 루틴을 스스로 찾아나가는 게 중요해요.” 따로 또 같이 -정원사친구들 이야기를 빼놓을 수 없어요. 2018년 5월호 ‘따로 또 같이’ 특집에서 “때에 따라 일시적으로 객원 활동을 하는 이도 있고, 각회사 소속원이 이직이나 퇴사하는 일이 발생하기도” 하지만 “그람디자인과 오랜 경력의 설계와 시공 노하우를 가진 디자인스튜디오 이레(조용철 대표) 그리고 영국 유학 후 대학원에서 정원에 관한 더 깊은 연구를 이어가는 조혜령이 주축”인 그룹이라고 소개했는데, 여전한가요? “가입, 탈퇴의 개념이 있는 건 여전합니다. 그런데 디자인스튜디오 이레가 독립적으로 진행하는 프로젝트의 수가 너무 많아져서 정원사친구들 작업에 참여를 못하고 있는 상황이에요. 일을 자주 함께 못할 뿐이지 여전히 자주 왕래하는 친한 친구 사이입니다.” -그람디자인과 정원사친구들의 지향점은 다른가요? “다르진 않아요. 한 몸으로 보는 게 맞을지도 모르고요. 그람디자인에는 조경 설계를 기반으로 두고 있는 직원이 많아요. 현재 그람디자인의 직원들에 객원 멤버를 더해 정원사친구들을 꾸려가는 상황이에요. 정원 관련 프로젝트, 정원 문화 활동을 정원사친구들이 진행하고 엔지니어링적 설계와 관급 설계, 설계공모를 전반적으로 그람디자인이 진행하죠. 정원사친구들의 프로젝트 특성에 따라 조경 시공 현장 담당 소장이나 농장을 운영하는 친구, 시민정원사가 객원 멤버가 되어 함께 작업하고 일이 끝나면 각자의 생업으로 돌아가는 방식이에요.” -두 그룹의 일을 병행하고 관리하는 게 보통 힘든 일이 아닐 텐데, 그 열정이 부럽습니다. 그런데 그람디자인이 때때로 정원사친구들로 변신한다는 사실을 모르는 사람이 많을 것 같아요. “하고 싶은 일을 하는 거라 힘들진 않아요. 그리고 실제로 그람디자인과정원사친구들의 관계를 잘 모르고 입사하는 직원도 있어요. 조경 설계 일도 하고 정원 시공 일도 해야 된다고 말하면 당황하죠. 조경 설계만 배운 직원이 현장에 나가면, 전문 기능공이 아니기 때문에 시공 작업을 잘 못할 뿐더러 뭘 해야 하는지 전혀 모르거든요. 그래도 늘 현장에 데리고 갑니다. 실제로 하는 일이 없더라도 시공 반장과 전문 작업자가 시공하는 모습을 보기만 해도 도움이 돼요. 할 일이 없으면 옆에 와서 쓰레기라도 줍게 해요. 책상에서 설계만 하고 작업 내역서만 들여다보고 있으면 작업 공정이 실제로 얼마나 걸리는 지 알 수 없어요. 간결한지 복잡한지 현장에서 직접 봐야 알 수 있죠. 어떤 방법을 사용해야 같은 결과물을 더 빠르고 효율적으로 만들어낼 수 있는지, 어떤 순서로 시공하는 게 합리적인지도 체득할 수 있어요. 현장에서 이러한 것들을 본인 것으로 만들기를 바라죠. 설계에도 도움이 돼요. 설계안을 3D 작업으로 만들어보라고 하면 풍성한 나무가 가득한 공간을 만들어놓기 일쑤거든요. 그런데 실제 현장에 가보면 가지치기가 잔뜩 된 앙상한 나무가 심겨지고 있죠. 머릿속 이미지와 완전히 다르게 시공되는 현장을 보며, 내가 상상했던 이미지의 공간이 되려면 6개월은 더 걸리겠구나, 봄이 되면 그 풍경을 볼 수 있겠구나 하면서 현장과 설계의 괴리감을 줄이게 돼요.” -정원사친구들처럼 ‘따로 또 같이’ 협업하는 팀을 꿈꾸는 이들이 늘어나고 있어요. 이런 팀을 꾸리기 전에 반드시 염두에 두어야 하는 부분이 있을까요. “영리를 위한 프로젝트 팀이라는 걸 잊지 말아야 해요. 비용이나 협업방식 등을 사전에 계약 방식으로 명확히 정리해두어야 해요. 비용에 대한 부분을 모호하게 정하지 않은 채로 협업을 진행하다 서로 등을 돌리는 경우를 보기도 했어요. 귀한 시간을 내고 기술력을 투자해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만큼, 누구도 서운하지 않은 결과를 만들고 마무리를 짓는 게 중요해요.” -2021년에 선보인 드포엠 가든과 아테온 정원이 정원사친구들의 작업물이죠? 아파트의 조경 공간의 감성을 보여주는 드포엠 가든, 자동차의콘셉트와 특성을 드러내는 아테온 정원 모두 신선하게 느껴졌어요. “드포엠 가든은 당시 대림에 근무하고 있던 안동혁 소장(HLD)을 통해 협업하게 된 프로젝트에요. 서울식물원 온실에서 선보인 ‘식물극장’ 콘텐츠가 이 프로젝트 수주의 시발점이 되었습니다. 대림의 아파트 브랜드인 ‘e-편한세상’의 조경 공간에서 즐길 수 있는 시적인 경험을 정원으로 구현했어요. 아테온 정원은 서울가드닝클럽의 이가영 대표의 제안으로 진행된 프로젝트입니다. 식재 연출을 함께하자고 정원사친구들에게 손을 내밀었고 모두가 흥미롭게 받아들인 프로젝트였습니다. 사실 그 당시 몇 년 전부터 조경과 무관한 기업이나 단체들이 전시나 홍보의 목적으로 정원과 식물에 주목하기 시작했고 그런 경향을 감지했던 것이 기억납니다. 우리도 운이 좋게 협업을 통해 그러한 경험을 할 수 있었죠.” -클라이언트의 반응은 어땠나요? “클라이언트도 만족했고, 시민과 방문객의 호응도 좋았어요. 확실히 기업에서 만드는 홍보 공간은 정원의 항상성을 만드는 데 신경을 많이 쓰는 편이에요. 조성 공사에서 그친 게 아니라 유지·관리 계약도 체결되어서 작업이 이어져요. 긍정적으로 보고 있습니다.” -이후에 또 비슷한 작업 요청이 들어오지는 않았나요? “정원 관련 프로젝트에서 비슷한 성격의 협업 제안이 지속적으로 오는편입니다. 마켓컬리의 ‘샛별숲 키우기 프로젝트’의 경우는 기후위기에 대응해 탄소 저감을 꾀하는 사회 공헌 프로그램이었어요. 일정 공간에 나무를 심고 숲을 조성해 지구를 위해 작지만 의미 있는 노력을 하는 사업입니다. 현대위아가 ESG 활동으로 펼치는 ‘현대위아초록학교’ 프로젝트를 통해서 특수교육기관에 배리어-프리 정원을 조성하기도 했고요. HLD와 함께 작업한 ‘EV6 언플러그드 그라운드 성수’는 아테온 정원처럼 상업적 홍보가 강한 프로젝트였죠. 전반적인 연출과 디자인 콘셉트는 HLD에서 진행한 상태였고, 식재 연출과 시공을 함께 했어요.” -2015 대한민국 한평정원 디자인전에서 선보인 정원의 주제가 업사이클링이었죠. 2013 순천만국제정원박람회에서는 물의 소중함을 다루었고요. 늘 재활용에 대한 인식을 갖고 있는 것 같아요. 일회성으로 열리는 전시 설치 작업에서도 그 원칙을 지키시나요? “일시적으로 전시하는 정원에서도 충분히 친환경을 모색할 수 있어요.자원을 낭비하지 않고 적절히 잘 수거해 다른 공간에서 충분히 활용할 수 있어요. 대부분의 조경 전시 팀이 그렇게 하고 있고요. 기후위기나 친환경을 거대한 설계 철학의 화두로 생각하고 있는 건 아니에요. 하지만 자원 낭비, 경제적 손실에 대한 관점에서 늘 관심을 두고 있습니다.” 직업이 생활을 잠식하지 않도록 -최근에는 어떤 작업을 하고 있나요? “한국수목원정원관리원의 생활밀착형 정원 프로젝트를 최근에 마무리했고, 오늘은 전 직원이 모두 서울식물원에 크리스마스 정원을 꾸미러 갔습니다.” -어쩐지 2층 사무실의 불이 다 꺼져 있더라고요(그람디자인은 직원들이 일하는2층, 두 대표가 머무는 3층의 두 개 층이다). 크리스마스 정원 전시 작업인가요? “서울식물원 실내의 작은 공간에 겨울 경관을 연출하는 일인데, 크리스마스 장식은 너무 뻔하고 표현이 한정적이라 겨울 풍경을 보여줄 수 있는 실내 화단을 만들고 있어요. 나뭇가지랑 억새를 잔뜩 싣고 가서 장식하고 있을 거예요. 또 내년에는 인연이 계속 이어져서 서울어린이대공원에 새로 어린이정원을 만들 예정입니다. 그린트러스트와 함께 서울식물원 내에 어린이 놀이 공간 조성 준비를 하고 있고요.” -‘설계사무소를 시작한다는 것’ 특집에서 ‘창업 전후로 가장 어려웠던순간’을 묻는 질문에 몇몇 창업 식구들의 퇴사를 꼽았었죠. “나와 함께큰 모험을 택한 이들과 나의 비전을 공유하려 노력했지만 개개인의 비전에는 공감하지 않았던 것 같다”고 했는데, 지금은 직원들과 어떤 방식으로 비전을 나누고 있나요? “아직도 첫 사회생활을 떠올리면 철야, 야근을 너무 많이 하는 과정에서 나는 누구인가 고민하던 제 모습이 생각나요. 그래서 우리 직원들이 조경과 정원에 미쳐있는 사람이 되는 걸 경계합니다. 조경가는 직업일 뿐이에요. 직업 자체가 자신의 모든 생활을 잠식하는 상황을 피하려 합니다. 업에서 행복을 얻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와 상관없이 개인의 행복을 찾는 것도 중요해요. 직원들의 생활과 일상이 모두 만족스러워지는 걸 목표로 하고 있습니다. 비전을 공유하고 시야를 넓히는 가르침을 주기보다는, 자신이 어떤 사람이 되고 싶은지, 어떤 조경가가 되고 싶은지 고민하는 여유를 만들어 주려고 합니다. 현장에 직원들과 함께 나가는 이유도 그 때문이에요. 시간적 여유와 경험을 지속적으로 제공해주면서 자신만의 관점을 만들 수 있는 기회를 주려하고 있고, 어느 정도 잘 진행되고 있지 않나 생각합니다.” -이제 인터뷰를 마무리 지으려고 합니다. 혹, 이런 것 왜 안 물어보지 싶은 건 없었나요? “사무실 위치가 왜 부천인지 안 궁금하세요?” -직주근접을 추구하는 줄 알았는데 다른 이유가 있나요? “처음 조경설계사무소를 차릴 때 많은 사람이 조언했어요. 일을 잘 수주하려면 강남에 있어야 한다고. 그런데 서울에 조경설계사무소가 너무 많았고, 태어나고 자란 곳이 부천인지라 부천의 관과 함께 일을 해보고 싶은 욕심이 있어요. 물론 처음에 이곳에서 기반을 다지고 서울에 사옥을 짓는 꿈을 꾸기도 했죠. 경기도권에 자리 잡은 작은 무명의 사무소 느낌으로 시작했는데, 이제 이곳에 터를 잡은 언덕이 된 기분이에요. 일 잘하는 설계사무소는 당연히 서울에 있을 거라고 생각하잖아요. 서울의 그럴 듯한 위치에 있는 사무소만 일을 잘하는 게 아니다, 지역에 토착하고 섞여 들어가 좋은 프로젝트를 하는 회사가 있다는 걸 보여주겠다는 사명감 같은 게 발휘되고 있기도 하고요. 직원 뽑을 때도 사는 곳과 출퇴근 거리를 중요하게 봅니다. 좀 편한 일상의 상태에서 함께 일을 했으면 하고, 자신이 살고 있는 지역의 일을 하는 게 긍정적인 효과를 내기도 하니까요. 부천에 조경설계사무소가 대여섯 개 정도 있어요. 수가 적다보니 서로 경쟁해야 하는 구도는 아니고 도란도란 이웃처럼 지내고 있습니다. 서울이 아닌 지역의 조경설계사무소에도 그 나름의 매력이 있다는 걸, 지역을 잘 알기 때문에 해낼 수 있는 프로젝트가 있다는 걸 보여주고 싶어요.”
사건의 지평선 너머로
최윤석은 스스로 변방의 설계가라 소개한다. 20년 남짓 경력의 조경설계사무소 대표에게 으레 연상되는 이미지를 기대하긴 무리다. 그의 운동화에는 늘 진흙이 묻어 있고 1톤 트럭에는 세탁한 티셔츠 여분이 준비되어 있다. 현장에서 궂은일도 마다하지 않는다. 미팅 시간 목전에 윗옷만 갈아입고 워커 차림으로 회의 장소로 이동하기 일쑤다. 이게 다 먹고 살자고 하는 일이라며 SNS에 이따금 피로를 호소한다. 현장과 사무실 업무가 동시에 벅차게 굴러갈 때가 많지만 치밀한 계획가 타입인 그의 성격 덕분에 오늘도 구멍은 나지 않았다. 처음 만난 건 2012년이다. 영국에서 갓 돌아와 조용철(디자인스튜디오 이레)과 함께 찾은 부천의 작은 사무실은 마치 개척교회 같았다. 최윤석은 창업한 지 5년이 되었다며 회사를 소개했다. 중소형 공원 리모델링이나 녹지 정비 설계를 주로 하지만 정원 분야에도 관심이 많다며 2013 순천만국제정원박람회 이야기를 꺼내기 시작했다. 그는 의심과 호기심이 섞인 복잡한 표정으로 함께 정원을 만들어 보자고 제안했다. 그렇게 우리의 파트너십은 시작됐고 10년간 다양한 정원 활동을 함께 해왔다. 지금은 사무실 리모델링으로 없어졌지만, 그때 필자의 눈에 들어온 현판이 아직도 뇌리를 스친다. ‘시작은 미약하였으나 끝은 창대하리라.’ 그는 그렇게 10년 후 젊은 조경가가 되었다. 우리는 ‘정원사친구들’(『환경과조경』 2018년 5월호 특집 ‘따로 또 같이’)이라는 형태로 협업했다. 2013년 순천을 시작으로 전국에 부는 정원박람회 정원 공모와 사업은 우리의 먹거리(?)가 됐다. 최윤석은 당시 ‘디자인 빌드 그룹’이라는 새로운 플랫폼 형태를 기안하고 실천한 초창기 조경가였다. 이러한 작업 형태는 그의 디자인 방식에서 필연적으로 발현된 것이다. “그림은 거들 뿐”(『환경과조경』 2021년 7월호 ‘그들이 설계하는 법’)을 읽어보면 알 수 있듯이 그가 콘셉트와 아이디어를 풀어내는 방식은 매우 서사적인 동시에 페이퍼와 현장을 넘나든다. 조성 이전의 현장에서 최대한의 가능성을 읽어내고 다양한 장면의 상상을 즐긴다. 실제로 최윤석이 구 상한 제안의 최초 버전 파일을 열어보면 영화나 드라마의 시놉시스처럼 공간 안에 펼쳐질 장면이 그려진다. 그는 틈틈이 텍스트로 기록하며 아이디어를 빌드업하는 편인데, 이동하는 차 안 등의 잉여 시간이나 업무이외의 시간에도 스위치를 끄지 않고 그때그때 떠오르는 생각들의 파편을 공유한다. 전문가의 독선적(?) 드로잉을 통해 공간이 개선될 수 있다고 믿지 않으며 주변의 다양한 인적·물리적 자원을 사업 과정 속에 수시로 침투시킨다. 마스터플랜, 삽도와 같은 정태적인 이미지보다 사업을 통해 기대하는 장소 경험의 힘을 믿고 이용자와의 공감을 중요하게 생각하기 때문일 것이다. 이러한 공감은 장소의 경험을 더욱 풍부하게 하며, 운영·관리 단계에서 더욱 창발적인 아이디어를 기대할 수 있게 된다. 서울그린트러스트와의 어린이정원, 인덱스 정원 시리즈 사업은 그의 공간 내러티브를 엿볼 수 있는 대표적인 프로젝트다. *환경과조경417호(2023년 1월호)수록본 일부 조혜령은 정원이 갖는 문화적·사회적 가치를 믿으며 이론과 실무의 경계를 탐색하는 조경가다. 2012년부터 2022년까지 10년간 정원사친구들에서 다양한 프로젝트를 최윤석과 함께 하며 2021년 제11회 대한민국 조경대상 한국조경학회장상, 2022년 조경의날 산림청장상을 수상했다. 2021 IFLA 아태지역 조경상(ASIA-PAC Landscape Architecture Awards)에서 e편한세상 갤러리 드포엠 가든으로 가작을 수상했다.
편견 없는 공간의 무한함
최윤석과는 작품 때문에 처음 만났던 것으로 기억한다. 지인을 통한 촬영 의뢰가 다반사라 현장을 서성이다 서로 어색하게 인사를 했던 게 첫 만남이었다. 깊고 진한 계절이 스치고 지날 때라 그런가, 낯설었다. 변하는 풍경 사이에 선 검고 큰 덩치가 인상에 남았다. 첫 기억은 선입견을 남겼다. 몰랐다. 그렇게 섬세한 사람이라는 것을. 에세이 필자로 추천 받았을 때 한참을 고민하다 그의 작품을 이야기하는 것이 낫겠다고 생각했다. 이 글은 어쩌면 그의 작품 감상기일지도 모르겠다. 가끔 아주 먼 옛 일이 떠올라 잠시 생각에 잠길 때가 있다. 최윤석의 최근 작품은 어린이정원이 많은데, 그의 정원에 가면 문득 추억들이 떠오른다. 오밀조밀한 공간에서는 크고 작은 이야기들이 곳곳에서 튀어오른다. 보물찾기하듯 조심스레 둘러보면 작은 시선(키 작은 초화와 작은 정원 요소들, 때로는 어린아이)이 어딘가로 향하고 있다. 무심코 눈짓이 가리키는 곳을 함께 바라보면 또 다른 시선을 발견하게 된다. 검고 큰 덩치에서 나왔을 것이라고 짐작하기 힘든 곳곳의 아기자기함에 감탄하다가 사람의 외적 요소만 보고 함부로 판단하지 말라는 어른들의 충고가 떠올라 도리질한다. 생각의 가장자리에서 줄타기를 하는 것이 조경 설계라면, 울타리를 벗어나 세상 밖으로 탄생시키는 몸짓이 현장의 풍경이 아닐까. 그래픽으로 짐작할 수 없는 여러 일들이 현장에서 펼쳐진다. 그는 말보다 실행을 선호하고, 추상보다 현장을 좋아한다. 그래서일까 최윤석은 사무실보다 현장에서 더 눈에 띈다. 굳이 약속을 잡지 않아도 현장에 가면 한 구석에서 웅크리고 무언가를 뚝딱이며 집중하고 있다. 그의 주변은 시간이 멈춘 듯 보인다. 시간은 변화무쌍하다. 형태를 지닌 것 마냥 흐릿했다가 또렷했다가 멀미가 날 정도다. 그람디자인의 작품들과 함께한 기간이 수년 흘렸다. 시간은 기억과 닮아서 선택적으로 다가온다. 한편 조경 공간에서 시간은 재빠르게 지나가기도, 한없이 느리게 지나가기도 한다. 나도 그와 친구들(정원사친구들)이 만들어낸 공간 안에서 기억을 공유해왔다. 새겨진 기억은 수없는 갈래로 나뉘고 알 수 없는 간극으로 남아 회상하게 한다. 이끼부터 휘어진 버들가지까지 무성해지면 공간은 한 편의 이야기가 된다. 시간이 형태를 잘게 쪼개져 포개어진 듯 놓여, 같지만 또 다른 공간을 만들어낸다. 공간이 만들어낸 기억도 하나의 장소가 되어 어른이 된 자신을 거울처럼 비춘다. 그와 정원사친구들이 만들어낸 작품 안에는 이야기가 있다. 이는 억지로 짜낸 구성이 아니라 사람을 고려하면서 만들어낸 구성이다. 누가 무엇을 볼 것인지 생각할 뿐 아니라 무엇을 경험할지를 고민하는 것 같다. *환경과조경417호(2023년 1월호)수록본 일부 유청오는 경관과 사람을 카메라에 담는 데 힘쓰고 있는 본지 전속 사진작가다. 2014년 7월호부터 『환경과조경』에 ‘유청오의 이 한컷’을 연재해오고 있다.
언더라인
브릭켈 백야드(Brickell Backyard)는 마이애미에서 밀집도가 가장 높은 지역에 위치한 고가 철로 하부 공간을 활용한 선형 공원이다. 언더라인(The Underline)의 첫 번째 설계 구간인 브릭켈 백야드는 자생 식물 정원, 보행자 및 자전거도로, 공공 예술 공간, 다양한 프로그램을 통해 앞으로 언더라인이 어떤 분위기의 공간으로 변해갈지 예고한다. 지역 사회의 참여 초기 프레임워크 계획의 일환으로, JCFO(James Corner Field Operations)와 언더라인 친구들(Friends of The Underline)은 마이애미 지역 주민들의 참여를 바탕으로 프로젝트 목표를 도출했다. 토론, 커뮤니티 게시판, 설문조사, 지도 그리기 등을 통해 언더라인의 테마, 용도, 비전을 모색했다. 일관성이 있으면서도 역동적 경험을 제공하는 특징적인 구역을 만들어 지역 사회의 필요에 부응하고자 했다. 이 같은 참여 과정을 거쳐 리버(River) 방, 체육 공간, 산책로, 오얼라이트(Oolite) 방 등 일련의 ‘방’을 구성했다. 이를 통해 휴식, 커뮤니티, 피트니스, 공연, 예술, 통근을 위한 장소를 제공하고자 했다. 브릭켈 백야드의 방 모두를 위한 포용적인 공공 공간으로 설계된 언더라인은 휴식과 레크리에이션 사이의 균형을 꾀하며, 레크리에이션을 위한 활기찬 공간과 다양한 프로그램을 지원하는 공간으로 구분된다. 버스 및 트롤리(Trolley) 정류장과 통근자를 위한 자전거 주차장이 있는 산책로는 커뮤니티 중심 장소로 설계됐다. 무대, 광장, 운동 기구를 갖추고 있으며, 언더라인 친구들이 주최하는 요가 수업, 뮤지컬, 댄스 공연, 가족 참여 프로그램 등 문화 행사가 펼쳐진다. 산책로 북쪽에는 야외 피트니스 수업과 프로그램을 진행할 수 있는 체육 공간이 있다. 농구장이나 축구장이 아닌 다기능 운동 공간을 만들어 다양한 커뮤니티 활동을 할 수 있는 시설을 갖추도록 했다. 언더라인 친구들은 이 공간에서 일 년 내내 건강과 웰빙 프로그램을 무료로 제공한다. 북쪽에 자리한 리버 방은 마이애미 강을 조망하고 오얼라이트 산호석에 앉아 휴식할 수 있는 공간으로, 지역 주민과 애완동물을 위한 장소다. 오얼라이트 방에는 정원이 줄지어 있고 기존 오얼라이트 지형 내부에 보행 및 자전거도로를 만들었다. 토양과 기후에 부합하는 식재 전략을 세웠다. 가뭄에 대한 회복탄력성을 높일 수 있고 나비에게 서식지를 제공할 수 있는 플로리다 남부 지방의 토종 및 자생 식물 식재에 초점을 두었다. 플로리다 소철, 플로리다 블러드베리 등 브릭켈 백야드에 식재된 식물들의 번성으로 멸종 위기에 처한 남부 플로리다 고유종인 아탈라(Atala) 나비를 비롯한 다양한 나비들이 목격되고 있다. 마이애미의 열대 기후에 맞춰 세부 요소를 세심하게 설계했다. 모든 하드스케이프(hardscape)에 밝은 색상의 자재를 사용했는데, 특히 자전거도로를 포장한 아스팔트를 밝은 색상의 마감재로 코팅해 열 흡수를 감소시켰다. 큰 규모의 식재 공간과 고가 철로로 만들어진 그늘 덕에 더운 날에도 쾌적한 환경을 제공할 수 있다. 효과적인 우수 관리를 위해 지표수가 식재 구역으로 흐를 수 있도록 정밀하게 지형의 높낮이를 조절했다. 안전하고 복합적인 통로 조성 대상지는 미국 전역에서 자전거 타기와 걸어 다니기에 위험한 지역 중 하나인 마이애미–데이드 카운티(Miami-Dade County)에 위치하고 있다. 따라서 신호등, 횡단보도가 갖춰진 안전한 교차로를 설계하는 것이 중요하다. 전용 통로를 마련하고 다양한 이동 속도에 대응할 수 있는 계획 수립을 병행해야 한다. 별도의 보행자 도로와 자전거도로를 갖춰야 하는 만큼 다양한 교통수단 간의충돌이 최소화되도록 설계했다. 철로 기둥 사이에 자전거도로를 배치해 공원에 있는 버스 및 트롤리 정류장과 자전거가 부딪히지 않도록 했다. 통로의 기하학적 구조를 통해 시야를 확보하고 교차로와 수직으로 만나도록 했다. 언더라인은 마이애미–데이드 카운티의 교통 시스템과 연결되는 보행자 및 자전거도로를 통해 마이애미 도심지와 인접 지역을 연결한다. 항상 자동차 중심이었던 도시에서 이런 변화는 새로운 전환을 의미한다. 지역을 대표하는 선도적 사례인 이 프로젝트는 마이애미 전역으로 이동성과 지속가능성을 고려한 네트워크를 확산시킬 기반이 되었다. 영향 2021년 2월에 개장한 언더라인은 대체 교통수단과 지역의 주요 시민 활동의 중추로 자리 잡았다. 지역 주민들의 공동체를 육성하고 연결성을 향상시켜 더 건강한 라이프스타일을 북돋는 공간으로 발전했다. 2021년에는 200만 명이 넘는 관광객이 언더라인을 방문했고, 50건 이상의 무료 행사가 진행됐다. 적극적인 자원 봉사와 홍보 프로그램으로 지역 사회의 지원을 받은 언더라인은 번영과 확장을 꾀할 수 있었다. 이런 노력은 마이애미 시내 여러 지역에 공공 보건, 레크리에이션, 도시 숲 조성 등에 지속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다. 번역 안호균 진행 이수민 디자인 팽선민 글 JCFO Project Lead, Landscape Architecture, Urban Design, MasterPlanning JCFO Civil & Traffic Engineering Kimley-Horn Lighting Design HLB Lighting Identity & Wayfinding Order Horticultural Soils James Urban Structural Engineering Optimus Structural Design, LLC Electrical Engineering H. Vidal & Associates Cost Estimating CMS, Inc. Horticultural Advisor Fairchild Tropical Botanic Garden Miami-Dade County Contractor Central Pedrail Location Miami, Florida, United States Area 16.9km Completion 2021 Photograph JCFO, Robin Hill, S am O berter, G esi S chilling for MONOCLE, Miami-Dade County, Here And Now Agency, Friends of The Underline, the Miami Heat, Miami-Dade County JCFO(James Corner Field Operations)는 뉴욕에 기반을 둔 도시 및 조경 설계 전문 디자인 오피스다. 대규모 도시설계나 포스트 인더스트리얼 프로젝트부터 작지만 섬세한 디테일을 요구하는 디자인까지 다양한 규모의 작업을 수행하고 있다. 모든 프로젝트에 있어서 사람과 자연의 생태를 연구하고, 생기 넘치고 역동적인 공공 영역 디자인을 구현하는 데 최선을 다하고 있다. 기후변화, 생태계 파괴, 급속한 도시화의 문제를 창의적으로 해결하고자 다양한 디자인을 선보이고 있다.
원 그린 마일
MVRDV는 스튜디오POD의 건축가들과 협업해 세나파티 바팟 마르흐(Senapati Bapat Marg) 고가도로 아래 버려진 공간을 새롭게 변모시켜 원 그린 마일(One Green Mile)을 완성했다. 콘크리트 기반 시설을 지역 사회를 위한 공공 공간으로 변화시키고자 편의 시설과 녹지 공간을 추가하고 접근성을 개선했으며 지역 사회의 정체성을 보여주는 이미지를 창출해냈다. 원 그린 마일은 지속가능한 도시 개발을 위한 접근 방식과 고밀도의 대도시 내 활용도가 낮은 공공 공간을 이용하는 새로운 모델을 제시하고 있다. 고가도로의 변신 세나파티 바팟 마르흐 고가도로는 뭄바이 중심부를 관통하는 주요 도로다. 길이가 11km에 달하는 이 도로는 상당한 소음과 공해를 유발하고 인접 지역 간의 교류를 방해하는 장벽이다. 뉴클리어스 오피스 파크(Nucleus Office Parks)는 세나파티 바팟 마르흐를 따라 흐르는 1.8km의 거리 경관과 교통 시스템을 개선하고자 했다. 대상지인 뭄바이에 기반을 둔 스튜디오POD가 도시 설계와 마스터플랜을 맡았다. 이 프로젝트의 핵심은 파럴 바우흐(Parel Baug) 고가도로 아래 200m의 공간이다. 스튜디오POD는 이곳의 부족한 녹지와 체육 공간 문제를 해결하고, 고가도로의 부정적 이미지를 해소하는 커뮤니티를 구축하기 위해 MVRDV에게 협업을 요청했다. 스튜디오POD는 초기 아이디어를 제시하고 프로그램을 구상했다. 이후 MVRDV는 구불구불한 파란색 줄무늬를 이용해 공간 내 모든 요소를 활용하면서 이 지역의 정체성을 보여줄 수 있는 설계안을 완성했다. 이로써 즐거우면서도 포괄적인 공간 경험을 제공하는 원 그린 마일의 기본 개념을 정립했다. *환경과조경417호(2023년 1월호)수록본 일부 글 MVRDV Architect MVRDV Founding Partner in Charge Jacob van Rijs Partner Stefan de Koning Design Team Ronald Hoogeveen, Valentina Chiappa Nuñez, JoseManuel Garcia Garcia, Prajakta Gawde Strategy and Development Sruti Thakrar Copyright MVRDV (Winy Maas, Jacob van Rijs, Nathalie de Vries) Partners Masterplan & Urban Design: StudioPOD Co-architect: StudioPOD Lighting Design: Lighting Concepts Public Art: St+Art Landscape Design: Enviroscape, AMS consultants MEP: Arkk Consulting Client Nucleus Office Park Location Mumbai, India Area 1.8km Completion 2022 Photograph Suleiman Merchant MVRDV는 1993년 비니 마스(Winy Maas), 야코프 판레이스(Jacob vanRijs), 나탈리 더프리스(Nathalie de Vries)가 네덜란드 로테르담에 설립한회사다. 전 세계를 무대로 다양한 작업을 통해 도시, 건축, 인테리어, 조경관련 문제에 해결책을 제시하고자 한다. 로테르담, 파리, 상하이에 지사를두고 이해관계자, 다양한 전문가와 함께 리서치를 바탕으로 한 협업을 주로하고 있다. 대표작으로 2000년 하노버 엑스포의 네덜란드 기념관, 암스테르담의 플래그십 매장 크리스탈 하우스와 로이드 호텔, 상하이의 홍차오 오피스 캠퍼스, 로테르담의 디든 빌리지(Didden Village) 옥상 증축, 스페이케니서(Spijkenisse)의 북마운틴 공공 도서관, 서울 강남구의 청하빌딩 등이 있다.
[어떤 디자인 오피스] 바이런
오피스 철학 좋은 디자인보다 좋은 디자인 오피스 설계만 열심히 하다가 설계를 못하게 되는 경우가 종종 있다. 십여 년 전 조경설계사무소를 함께 다녔던 수많은 젊은 조경가 중 지금 현업에 남아있는 숫자가 절반이 안 된다. 당시 조경설계사무소는 밤낮없이 돌아갔다. 야근과 주말 출근이 일상이었지만 조경 설계에 대한 열정과 의욕이 넘치던 시기였고, 나름의 낭만도 있었다. 야근 후 술자리에서도 조경에 대한 대화가 끊이지 않았다. 하지만 3년, 6년마다 찾아오는 고비를 넘기지 못하고 건강 상 이유로, 또는 10년 후에도 야근하고 있을 내 모습이 떠올라서, 안정적인 직장을 찾아서 탈조경설계를 결심하는 경우가 비일비재했다. 조경 설계는 꼭 애증의 대상이어야 할까. 조경 설계로 진로를 정할 때 학생들에게 상당한 용기와 결단이 필요하다는 것을 보면서 재미있게 다닐 수 있는 조경설계사무소를 만들어 보자고 결심했다. 좋은 디자인은 자연스럽게 따라온다는 믿음과 함께. 일보다 일상, 사람보다 사이 조경가의 일상이 재미있었으면 좋겠다. 우리가 주로 설계하는 대상이 일상의 공간이기 때문이다. 특히 휴식하고, 운동하고, 놀고, 체험하는 공간을 설계하기 때문에 조경가의 일상도 같은 선상에 있어야 그런 경험을 잘 설계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하루 중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내는 사무실은 재미난 일들이 벌어질 수 있는 공간이어야 할 것이고, 함께 생활하는 동료들과도 업무 외의 다른 활동을 할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바이런 사무실의 절반은 놀고 쉬고 먹는 공간으로 만들었다. 넓은 소파와 안락의자, 그리고 탁구대는 사무실을 구상할 때 최우선 순위에 있었고, 실제로도 책상보다 탁구대를 먼저 들여놓았다. 점심시간은 수다스럽고 소란스럽다. 이제는 함성과 비명이 자연스럽기도 하다. 졸리면 참지 말고 잠깐이라도 허리 펴고 누워서 잠을 청할 수도 있다. 한 달의 휴식과 건강한 열한 달 10년 동안 설계사무소를 다니면서 이런저런 기회로 한 달 이상의 휴직을 3번 경험했다. 다른 동료들에게 피해가 가는 상황이었지만 쉬느냐 그만 두느냐의 갈림길에서 그만두지 않고 잠시 쉬어갈 수 있게 배려해준 같은 팀 동료들 덕분이었다. 신기하게도 한 달 동안 딴짓을 하고 돌아오면 조경 설계와의 권태기를 극복하고 다시 달달한 관계를 회복했다. 그 덕분에 첫 직장에서 10년 넘게 생활할 수 있던 것 같다. 개업하고 직원들이 하나둘 늘어갈 때 정말 감사했다. 보잘 것 없는 스타트업에 흔쾌히 지원해주고 열심히 작업하는 동료들을 위해 소장으로서 해줄 수 있는 것이 무엇일지 고민하던 중에 문득 한 달 휴가를 떠올리게 됐다. 그때의 좋았던 기억들이 내 인생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명장면이 되었고, 기회를 준 회사에 너무나도 감사했기 때문이다. 우리 회사도 그런 보상을 제공하면 오래 함께 일할 수 있는 원동력이 될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상당히 파격적인 실험이라서 실현 가능성을 걱정했지만, 현재까지는 아무 문제 없이 제도가 유지되고 있다. 한 달의 휴식이 건강한 열한 달을 만들고, 내년을 기대하게 하는 원동력이 되고 있다. 함께하는 작업의 힘 협업의 힘을 믿는 편이다. 한 명의 유능한 디자이너가 단독 작업을 하는 것보다 여러 명의 유능한 디자이너가 협업하면 훨씬 좋은 결과를 만들 가능성이 높아진다. 몇 차례의 경험을 통해 확신을 갖게 되었는데, 동심원조경기술사사무소(이하 동심원조경)에서 경험했던 경의선숲길 프로젝트가 가장 결정적 계기였다. 연트럴파크로 알려진 경의선숲길 연남동 구간의 경우 안계동 대표(동심원조경)의 기본 골격을 바탕으로, 정욱주 교수(서울대학교)가 특화 설계안을 구상해, 동심원조경 실무진이 실시설계로 정리하는 방식의 협업으로 만들어졌다. 바이런을 시작하면서 순차적으로 만들어진 강아람, 이남진, 김영찬, 그리고 김영민의 긴밀한 파트너십은 우리가 가진 가장 큰 강점 중 하나며, 네 명의 리더가 만드는 강력한 시너지는 바이런이 성장하는 원동력이 되고 있다. 회사 간의 협업도 적극적으로 진행한다. 최근 설계공모 당선작은 협업을 통해 만들어졌다. 2021년에 당선된 양천구 목마, 신트리공원 리모델링 설계공모는 스튜디오이공일(이상수 소장)과 공동 출품했고, 2022년의 서남권 보라매공원 테마놀이터 설계공모는 지엘에이디자인(김황순 소장)과 엠엠엠스튜디오(박성준 소장)가 함께 당선작을 만들었다. 사무실은 바이런과 지엘에이디자인, 엠엠엠스튜디오가 함께 사용하고 있는데, 공간 공유를 넘어서 적극적인 협업을 통해 함께 지속적으로 성장하고자 한다. 보라매공원 테마놀이터 작업은 세 회사의 모든 직원이 참여했다. 각자가 아이디어 스케치를 제시하고 각각의 안에 대한 장단점을 분석하여 한 가지 대안으로 발전시켰는데 결과를 넘어서 과정이 매우 흡족했던 작업이었다. 올라운드 플레이어 연구, 기획, 설계공모, 전시, 기본 구상, 기본계획, 기본 및 실시설계, 감리. 바이런이 지난 1년간 수행한 프로젝트의 단계를 나열한 것이다. 현장과 매우 밀접하게 진행되는 감리 업무와 실시설계는 굉장히 괴로운 작업이지만 조경가로서 기본적으로 가져야 할 기본 소양을 갖추는 과정이기 때문에 반드시 수행할 필요가 있다. 재료와 디테일을 고민하면서 현장감을 쌓아나가고 있다. 또한 잘 만들어진 작품은 우리 아이디어의 설득력과 신뢰도를 높이기 위한 결정적 수단이다. 1년에 최소 한 개 작품을 완공 프로젝트로 만드는 것이 우리의 목표다. 기본 구상, 기본계획 등의 작업은 평소에 갖고 있던 문제의식을 바탕으로 자유로운 상상을 더해서 기존에 없던 발전적인 디자인을 이끌어내는 즐거운 작업이다. 도시설계 수준의 분석과 전략 설정을 통해 이슈를 도출하고 전략적 계획안을 만드는 과정을 거치기 때문에 도시와 조경의 상관관계를 깊게 고민하는 좋은 기회가 된다. 심층적인 이론적 고찰을 통해 새로운 방향을 제시하는 연구와 기획 프로젝트도 우리를 성장하게 한다. 우리가 다루는 설계 대상지의 규모나 성격도 다양하다. 전통정원, 마을마당, 옥상정원, 베이커리 카페, 아파트 단지, 근린공원, 문화재 보호구역, 놀이터, 야영장, 자연휴양림, 상징 가로, 교량, 대규모 신도시 택지, 탐방로 등이 우리가 소화하는 장르다. 하루에도 몇 번씩 모드 전환이 필요하지만 편식보다는 잡식이 우리의 숙명이라고 생각한다. 다양한 단계와 분야의 프로젝트를 수행하는 것은 갓 입사한 사원급 직원들에게 상당히 부담스러울 수 있고, 회사 입장에서는 효율이 떨어지는 무모한 시도일 수 있다. 하지만 굉장히 복잡하고 다양한 이해관계를 풀어나가고 공공성과 안전, 경관적 가치, 건강, 경제성 등 여러 가지 이슈를 복합적으로 다루는 조경 설계의 특성을 고려했을 때 다소 느리고 힘들더라도 다양한 경험을 하도록 하는 것이 우리가 지향하는 방식이다. 우리의 프로젝트 구 서울역사 옥상정원 바이런의 첫 작품이다. 여러모로 감사한 프로젝트다. 동심원조경 안계동 대표의 적극적인 추천과 품질 보장을 통해 첫 계약을 할 수 있었고, 발주처인 서울시 중구청도 디자인을 구현해주는 데 힘을 실어줬다. 모듈형 프리캐스트 콘크리트 플랜터를 적용했고, 색상 대비가 강한 벽돌을 사용하여 원형과 평행 패턴이 교차하는 포장 패턴을 구현했다. 기성품 사용을 지양하고, 계단, 포장, 플랜터 등의 기본적인 구조물의 디테일을 중요하게 여기는 바이런의 태도를 처음으로 반영한 공간이다. 서울로7017~서울역사 연결통로 정원 김영민 교수가 바이런에 합류하게 된 결정적 계기가 된 작품이다. 오래된 폐쇄램프 공간을 활용해 서울로7017과 서울역사 옥상정원을 잇는 정원을 조성했다. 본 사업을 추진하기에 앞서 파일럿 프로젝트 성격으로 진행된 사업이었기 때문에, 다소 실험적이더라도 시각적으로 쉽게 인지될 수 있는 방식을 고민했고, 그리드 형태의 대형 구조물을 설치하고 인공 식물을 사용해 공중정원을 조성하는 대안을 채택했다. 실시설계 이후에도 현장에 지속적으로 관여하며 완성도를 높이기 위해 노력했고, 만족할 만한 결과를 이끌어 낼 수 있었다. 국민대학교 명원박물관 전통정원 명원박물관은 국민대학교 후문에 위치한 전통 공간이다. 기존의 전통 공간 주변으로 박물관과 티가든을 신축하면서 방치됐던 녹지 공간을 활용해 품격 있는 전통정원을 조성했다. 제한된 일정과 문화재 심의 등으로 인해 순탄치 않았지만 우여곡절 끝에 지난 여름 공사를 시작했고, 2023년 봄이면 완성된 모습을 볼 수 있다. 기존의 오래된 한옥과 새로 지어진 박물관 사이의 시간적 간극을 연결해주는 요소로서 전통정원의 모습이 기대된다. 공간시공 에이원(안기수 소장)과 스튜디오 천변만화(이양희 대표)와의 협업을 통해 진행되고 있다. 반포대교 하부 그린아트길(반하길) 바이런의 일원이었다가 엠엠엠스튜디오라는 이름으로 독립한 박성준 소장과의 첫 협업 작품으로, 용산으로 들어가는 관문인 반포대교 고가 하부에 조성한 특색 있는 커뮤니티 공간이다. 기존의 고가 하부 공간 활용 사업들이 건축적 접근을 통해 채워졌다면, 이번 사업은 조경을 통한 저비용 고효율의 공간 개선 사례를 만드는 일이었다. 조경만으로 고가 하부 공간 활용의 모범 사례를 만들고자 했고, 경사가 있는 현장 특성을 살려 200m 떨어진 이촌 한강공원에서부터 반하길의 모습이 보이도록 했다. 무단횡단이 빈번하게 발생하는 문제를 해결하고자 하였고, 점토 벽돌로 마감한 아트 폼과 파란 원형 벤치로 조형미를 더했다. 반하길은 도심 내 자투리 땅을 대하는 우리의 자세를 보여주는 공간이다. 보라매공원 테마놀이터 설계공모 2022년을 대표하는 이미지 한 장을 뽑는다면, 보라매공원 테마놀이터 설계공모 패널에 사용한 놀이 활동 유형 다이어그램을 선정하고 싶다. 바이런의 실무진들은 소장의 거칠고 허술한 아이디어를 알아서 잘 딱 깔끔하고 센스 있게 만들어주는 신기한 능력을 갖고 있는데, 그중에서도 단연 돋보였던 작업이었다. 놀이터에 필요한 것은 미끄럼틀, 시소, 그네와 같은 고정된 시설이 아니라 어린이들의 다양한 놀이 활동을 위한 유연한 공간이라는 생각을 전달하기 위한 효과적인 수단으로 잘 활용되고 있다. 우리는 디자인을 고민하는 것 이상으로 디자인을 설명하기 위한 방식에 대해서 깊게 고민한다. 이러한 자세를 이미지에 고스란히 담아냈다. 파리공원 아카이빙 전시 2022년 상반기를 뜨겁게 달구었던 파리공원 작업의 클라이맥스가 되었던 작업이다. 파리공원의 새로운 커뮤니티 공간으로 ‘살롱드파리’가 세워졌고, 파리공원 아카이빙을 주제로 개관 행사의 전시를 준비했다. 역시나 한정된 예산으로 최대한의 효과를 끌어내야 했기 때문에 바이런의 직원들과 서울시립대학교 대학원생들이 기획부터 시공까지 원스톱으로 진행한 프로젝트였다. 모형 제작, 리플릿 디자인, 실내 정원 설치 등 모든 작업을 직접 해야 했기에 힘들었지만, 가장 기억에 남는 작업이 되었고 직원들 간의 끈끈한 동료애가 만들어진 계기가 됐다. [email protected] 조경기술사사무소 바이런(VIRON)은 강아람, 이남진, 김영찬, 그리고 김영민이 이끌고 있다. 좋은 설계는 좋은 회사에서 나온다는 생각으로 설계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모여 함께 성장하는 환경을 만들기 위해 노력한다. www.viron.kr
[제도가 만든 도시] 제도의 한계: 제도는 정당한가?
연재를 시작하며: 제도는 좋은 것일까 나쁜 것일까 필자는 대학에서 건축을 공부하고 대형 건축사사무소가 아닌 이른바 아틀리에 사무실에서 건축 실무를 했다. 서른을 훌쩍 넘겨 도시로 전공을 확장해 공부를 다시 시작하기 전까지, 설득력 있으면서 독창적인 안을 제시하는 것이 십여 년 해왔던 일에서 가장 우선되는 가치였다. 그것은 달리 말해 ‘특수해’를 만드는 것이다. 건축 프로젝트에만 해당하는 것이 아니었다. 역사 지구나 신도시 중심지를 위한 설계, 쇠퇴한 구도심의 도시재생 계획 같은 도시 스케일의 작업에서도 기본적으로 같은 태도를 취했다. 대상 공간의 특수성과 소유자 또는 이용자의 차별적인 요구를 읽어내고 그것을 부각해 디자인의 근거로 삼거나, 혹은 공간을 구성하고 재료를 적용하는 일반적인 방식에서 벗어나 대담한 형태와 새로운 기능 관계를 취하는 등의 접근 방식이다. 그러나 특수해에 해당하는 개별 공간은 도시계획과 각종 법규, 지침이라는 ‘일반해’의 틀 안에서 만들어진다. 어떠한 개별적이고 임의적인 선택이 이루어지더라도 우리 사회가 합의한 도시 공간의 요소들이 갖춰야 할 기능과 미덕을 확보하기 위해 일반해는 필요하다. 더욱이 도시의 모든 건축물과 공간 환경이 소위 ‘디자인’을 통해 특수해로 만들어지는 것은 아니며, 그럴 필요도 없다. 시민 다수가 거주하고 이용하는, 보편적이고 일반적인 필요를 담는, 비슷하고 반복되는 공간 요소들이 도시의 대부분을 차지하기에 최소한의 기준인 일반해의 역할이 중요하다. 그렇다 면 우리의 도시 공간이 만족스럽지 못한 현실은 이 일반해에 그 원인도, 해법도 있는 것 아닐까? 근대 이후 도시계획과 각종 공간의 형태 규제에 대한 비판적 고찰은 스티븐 마셜(Stephen Marshall)이 엮은 『도시 규제와 계획(Urban Coding and Planning)』(2011)1과 에런 벤-조셉(Eran Ben-Joseph)이 쓴 『도시의 규정(The Code of City)』(2005)2을 비롯해 많은 연구자의 이론적 접근과 여러 나라의 방대한 사례를 되짚는 노력으로 발전해왔다. 한국에서도 2010년대 좋은 도시 공간을 만들기 위한 다수의 제도 개선 연구가 수행되었으며, 그 결과는 관련 법 개정과 정책 수립으로 이어지기도 했다.3 격월로 연재할 글을 통해 필자가 이러한 성과에 견줄 개선 방향과 해법을 내고자 하는 것은 아니다. 다만 그러한 연구를 우리 도시의 현실을 사례로 뒷받침하고자 한다. 이 연재는 일반해가 우리 도시의 보편적인 모습―공간적 형태와 그에 결부된 현상―에 어떻게 작동하고 있는지 살펴본다. 그 과정에서 도시의 모습을 구성하는 여러 ‘차원’을 따라 살펴보되 다양한 형식과 위계의 도시 제도와 결부시켜 설명하고자 한다. 여기서 도시계획, 건축 법규처럼 범위가 확정적인 용어를 채택하지 않는 것은 이 연재의 목적이 관련 법제들을 개론적으로 전달하려는 데 있지 않으며,4 몇 가지 법제로 도시의 모습을 설명하는 접근에는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도시 공간을 만드는 질서는 우리가 (모두 동의한 것은 아니지만 적어도) 합의한 ‘사회적 규약’으로서 ‘제도’여야 하기 때문이다. 제도가 만든 도시의 모습 도시를 정의하는 다양한 관점과 표현이 있지만, 도시는 인류가 만든 가장 복잡하고도 복합적이며 수많은 사람이 물리적으로나 비물리적으로 밀도 높게 개입한 공간적 장치라고 한다면 크게 틀리지 않을 것이다. 달리 말해 도시는 지극히 인위적인 공간 현상이다. 건축역사학자 스피로 코스토프(Spiro Kostof)가 이의를 제기한 것처럼,5 비정형적 도시 조직을 가진 옛 도시들을 으레 ‘자연발생적’이라는 말로 설명하고 심지어 도시 형태적 우월성의 근거로 삼는 것은 도시의 본질과 어긋난다. 완만한 곡선을 이루는 길과 그에 이어지는 독특한 형태의 광장으로 유명한 이탈리아 중세 도시 시에나(Siena)도 실은 의도적으로 계획된 디자인을 엄격하게 강제한 결과다. 골목길이 미로처럼 얽혀 일견 혼돈 그 자체인 옛 이슬람 도시들조차도 특유의 종교와 문화에서 기인한 일관된 배치 원칙을 품고 있다.6 즉 도시를 식물의 자생 군락지처럼 지리적 특성이나 기후 조건의 필연적 결과라고 해석하는 것은 도시의 모습을 설명하거나 그 의미를 파악하는 데 충분치 않다. 결국 도시의 모습, 즉 도시 공간의 형태와 거기서 일어나는 공간적 현상은 사람에 의한 의식적 행위의 집합적 질서로 만들어진다는 것이다. 2023년 현재, 서울을 비롯한 대한민국 대도시의 모습을 설명하는 질서는 무엇일까? 그것은 어떻게 작동해 왔을까? 한국전쟁 이후 도시 인구의 급격한 증가와 국가 주도의 경제 개발 등 사회경제적 틀이 가장 근본적인 질서를 구성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이 두 가지 이유라면 그 어떤 것도 용인되었다는 뜻이다. 부동산을 매개로 한 자본 축적의 욕망 또한 우리 도시의 강력한 주형(鑄型)으로서 우선순위를 차지해왔다. 물론 이를 공공의 이익에 반하지 않도록 제한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끊이지 않았다. 이러한 상위의 가치 질서가 실제 도시 공간에 투영되어 구현되는 과정에는 다양한 위계의 법정, 비법정 계획과 수많은 법규와 지침 등으로 구성되는 실행 질서가 작동한다. 이 연재는 한국 도시의 모습을 만든 여러 위계의 질서 중 이 실행 질서에 초점을 맞추며, 이를 ‘제도’라는 용어로 표현하고자 한다. 근대 이후 도시를 만드는 제도는 그 지위 자체로 합리성과 공공성을 추구하는 것으로 가정되어 그 강제력을 인정받는다. 한국의 현대 도시제도 또한 마찬가지다. 그러나 많은 학자와 실무자가 지속적으로 비판해왔고 도시에서 살아가는 사람들 다수가 느껴왔듯, 도시 제도는 완전하지도 의도한 대로 작동하지도 않으며 심지어 예상치 못한 결과를 만든다. 또한 본질적으로 도시 제도는 특수해가 아닌 일반해의 성격이 강하므로 현실의 다양한 상황에 획일적으로 적용될 때 오히려 불합리한 결과를 야기하기도 한다. 경우에 따라서는 공공의 이익과 특정 집단의 이익 사이를 중재하기보다 오락가락한다. 그 와중에 개개인은 수혜와 대가의 계산서에 일관성이 없다고 느낄 수 있다. 이 연재에서는 제도가 만든 도시의 모습에서 특히 이런 점들을 다각적 차원으로 들춰내고자 한다. 이번과 다음 회에서는 그에 앞서 제도에 대한 더 근본적인 질문, 즉 제도는 정당한지 그리고 효율적인지 다룬다. 결론을 내리기보다는 이리저리 헤집는 방식으로. 각주 정리 1. Stephen Marshall ed., Urban Coding and Planning, London: Routledge, 2011. 2. Eran Ben-Joseph, The Code of the City: Standards and the Hidden Language of Place Making , Cambridge: The MIT Press, 2005. 3. 대표적으로 건축공간연구원이 수행한 ‘건축의 품격 향상을 위한 건축물 형태 규제 개선방안 연구’(2011), ‘근린생활환경 향상을 위한 건축물 규제 개선 기본방향 연구’(2012), ‘사람 중심 가로 조성을 위한 도시설계 연구’(2015), ‘장소기반 전략계획을 위한 도시계획체계 개선방안 연구’(2018) 등이 있다. 4. 한국어로 쓰였으나 전공자도 이해하기 어려운 법 조항을 옮기는 것은 최대한 피하려고 한다. 5. Spiro Kostof, The City Shaped: Urban Patterns and Meanings Through History , London: Thames & Hudson, 1991, pp.10, 70~71. 6. Marshall, 앞의 책, p.10. *환경과조경417호(2023년 1월호)수록본 일부 유영수는 서울대학교 건축학과와 동 대학원을 졸업하고 이로재와기오헌에서 건축 실무를 경험했다. 런던 정치경제대학교에서 도시디자인 및 사회과학 석사과정을 마치고 돌아와 건축사사무소를 운영하며 서울대학교 환경대학원에서 박사과정을 병행했다. 현재는인천대학교 도시건축학부에서 법, 제도, 현대 도시 설계 이론, 스튜디오를 가르치고 있다. 건축과 도시를 아우르는 스케일에서 개별적인 공간 현상과 법제 사이의 관계를 연구하고, 계획과 디자인의 역할을 확장하기 위한 이론적 접근을 시도하고 있다.
[모던스케이프] 주택 정원의 유행
소설가 이효석(1907~1942)은 ‘낙엽을 태우면서’(1938)에서 낙엽을 타는 냄새가 갓 볶은 커피와 잘 익은 개암이 생각날 정도로 좋다고 했지만, 삼십여 평의 뜰에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가득 쌓이는 낙엽을 긁어모으는 게 여간 성가신 일이 아닐 수 없다며 잔뜩 푸념을 늘어놓았다. 낙엽을 그대로 두었다가는 비에 젖거나 흙 속에 묻혀 지저분해지니 날아 떨어지는 족족 뒷시중 들 듯 치워내야 했으니, 정원 관리가 번거로워도 부지런히 챙겨야 하는 일임을 아는 이들에게는 충분히 공감할 만한 표현이다. 한편으로 벚나무, 능금나무, 단풍나무, 담쟁이의 초록빛이 사라지고 칙칙한 낙엽으로 뒤덮인 상황을 묘사한 글을 읽다 보면, 문득 작가의 정원이 궁금해진다. 교수이자 작가인 이효석이 몸소 가꾸던 정원일 것인데, 이 시절 지식인의 주택 정원은 과연 어땠을까 싶은 것이다. 수필이 발표된 1930년대는 일부 계층에서 주택에 정원을 두는 것이 유행이었다. 주택 정원에 관심을 두고 가꾸기에 열중한 이는 대체로 문학인, 음악인, 교수, 사업가 등이었는데, 이들 중 대부분은 해외 유학 경험이 있었다는 공통점이 있다. 이효석과 함께 구인회(九人會) 동인이었던 소설가 이태준(1904~미상)은 도성 밖 성북동으로 이사하고 ‘나무와 꽃 속에 싸인 초옥草屋’을 꾸몄다. 지금은 수연산방이라는 전통 찻집으로 바뀌었지만, 이태준 생전에는 음악을 전공한 부인 이순옥과 함께 마당 곳곳에 다양한 수종을 심고 가꾸어서 대중 잡지에 정원이 소개될 정도였다. “샛노란 꽃이 산들거리고 파초와 석류나무가 있으며, 담장에는 한련과 봉선화, 다알리아, 씨 없는 개량종 해바라기를 식재했다. 나무를 집 울타리 삼아 뺑 둘렀고 그 아래에는 갓나무, 진달래, 채송화, 백일홍을 가득 심었다. 정원 한편에는 텃밭을 두어 채소를 심었다.” 특히, 부인 이순옥의 화초에 대한 설명은 매우 흥미롭다. “이 다알리아는 일본서 주문해왔는데 보통 다알리아는 꽃이 피면 무거워서 고개를 숙이는데 이것은 그대로 꼿꼿하게 서있다고 해서 사왔어요. 그리고 이 해바라기는 꽃 가운데 씨가 생기지 않고 가운데서부터 꽃잎이 족– 연달아 나와서 여간 이쁜 게 아니라고 합니다. 그래서 프랑스 어떤 유명한 미술가가 이 꽃을 보고 기가 막히게 감탄하고 칭찬을 했다고 해서 사다 심었어요.” 정원에 심기 적절한 원예 품종이 시장에서 거래되고 있었다는 사실도 신선하지만, 정원에 해바라기를 심게 된 이유가 (어쩌면 반 고흐일지도 모르는) 어느 유명한 화가의 해바라기에 대한 감상평 때문이라는 것도 재미있다. 참고문헌 길지혜·박희성, “1920~30년대 한국 주택정원 인식과 정원가꾸기 양상”, 『한국조경학회지』 50(2), 2022, pp.138~148. “나무와 꽃 속에 싸인 초옥, 소설가 이태준씨 댁”, 『신가정』 1933년 6월호. “自然的으로 만든 庭園, 은행가 김연수씨 댁”, 위의 책. “장안의 국제결혼 스윝홈순례 류일한씨”, 『여성』 1937년 11월호. 이효석, ‘낙엽을 태우면서’, 1938. 사진 출처 그림 1. “조선말을 사랑한 선비 작가 이태준”, 「한겨레」 2015년 10월 1일. 그림 2. “나무와 꽃 속에 싸인 초옥, 소설가 이태준씨 댁”, 『신가정』 1933년 6월호, pp.127~129. 그림 3. 『신가정』 1933년 6월호. *환경과조경417호(2023년 1월호)수록본 일부 박희성은 대구가톨릭대학교를 졸업하고 서울대학교 대학원에서 한중 문인정원과 자연미의 관계로 석·박사학위를 받았다. 서울시립대학교 서울학연구소에서 건축과 도시, 역사 연구자들과 학제간 연구를 수행하면서 근현대 조경으로 연구의 범위를 확장했다. 대표 저서로 『원림, 경계없는 자연』이 있으며, 최근에는 도시 공원과 근대 정원 아카이빙, 세계유산 제도와 운영에 관한 일을 하고 있다.
ASLA Best Books of 2022
연말연시 연휴, 역사와 디자인, 환경에 대한 새로운 정보를 알려주고 영감을 불어넣어 줄 책을 탐독해보는 건 어떨까. 좋아하는 조경가에게 줄 완벽한 선물을 찾고 있는 당신에게, 지적 모험심을 자극해줄 책을 찾고 있는 당신에게 미국조경가협회ASLA가 선정한 2022년 최고의 책 열두 권을 소개한다. 1. 미국 어바니스트: 윌리엄 와이트는 어떻게 틀에서벗어난 아이디어로 공공장소를 바꾸었을까 (Richard K. Rein, American Urbanist: HowWilliam H. Whyte’s Unconventional WisdomReshaped Public Life, Island Press, 2022) 주간 뉴스레터 「U.S.1」의 설립자이자 기자인 리처드 레인(Richard K. Rein)이 쓴 이 책은 어바니스트이며 사회학자, 저널리스트, 그리고 공공 공간에서 사람들의 행태를 근접 관찰한 것으로 널리 알려진 윌리엄 와이트(William H. Whyte)의 삶과 아이디어를 조명한다. 와이트의 대표 저서인 『작은 도시 공간의 사회적 삶(The Social Life of Small Urban Spaces)』(2001)과 『도시: 중심의 재발견(City: Rediscovering the Center)』(2009)을 포함해, 그의 여러 저서와 연구는 인간 중심 디자인에 대한 새로운 주목과 공공 공간의 가치에 대한 폭넓은 이해를 가능케 했으며 세대를 거쳐 전 세계 조경가에게 영향을 미쳤다. 2. 비트릭스 패런드: 정원 예술가, 그리고 조경가 (Judith B. Tankard, Beatrix Farrand: GardenArtist, Landscape Architect, The MonacelliPress, 2022) 3. 예술로서의 정원: 덤바턴 오크스의 비트릭스패런드 Thaisa Way, Sahar Coston-Hardy, Garden as Art:Beatrix Farrand at Dumbarton Oaks, DumbartonOaks Research Library and Collection, 2022) 조경사학자 유디트 탠카드(Judith Tankard)가 쓴 『비트릭 스 패런드: 정원 예술가, 그리고 조경가』는 조경가 비트릭스 패런드의 삶을 기록한 전기로, 아름다운 사진을 가득 담고 있다. 같은 인물을 다룬 『예술로서의 정원: 덤바턴 오크스의 비트릭스 패런드』는 워싱턴 DC에 위치한 덤바턴 오크스의 경관·정원 연구 책임자인 테이사 웨이(Thaïsa Way, FASLA 회원)의 저서다. 토마스 볼츠 (Thomas Woltz, FASLA 회원)의 에세이와 사진작가 사하 코스턴하디(Sahar Coston-Hardy)의 사진을 더해, 비트릭스 패런드가 설계한 걸작의 마법 같은 풍경을 보여준다. 4. 정원 너머: 자연 시스템과 결합한 주택 경관 설계 (Dana Davidsen, Beyond the Garden: DesigningHome Landscapes with Natural Systems ,Princeton Architectural Press, 2022) 샌프란시스코 서피스 디자인(Surface Design)의 시니어 조경가이자 전 ASLA 인턴 다나 데이비슨(Dana Davidsen)은 생태 디자인의 발전을 가져온 미국과 영국의 아름다운 도시 경관, 교외 경관, 농촌 지역 주거 경관 18곳을 모아 큐레이션했다. 서문에서 『LAM(Landscape Architecture Magazine)』의 편집자인 티모시 슐러(Timothy A. Schuler)는 이 책이 “오래도록 지속가능하게 설계된 주거지 프로젝트를 통해 어떻게 토지와의 관계를 재설정할 수 있는가”에 대한 물음을 던진다고 설명했다. 5. 포괄적 계획: 21세기를 위한 지속가능하고회복탄력적이며 공평한 커뮤니티 (David Rouse, Rocky Piro, The ComprehensivePlan: Sustainable, Resilient, and EquitableCommunities for the 21st Century, Routledge,2022) “과거의 관행적 계획은 오늘날 우리가 직면한 과제를 해결하기에 부적합하다.” 미국조경가협회 조경가 및 계획가인 데이비드 라우즈(David Rouse), 콜로라도 주 지속가능한 어바니즘 센터의 상임이사이자 덴버 시 전 총괄계획가 로키 파이로(Rocky Piro)의 선언이다. 이 책은 수백 가지의 포괄적 도시계획안을 검토하고, 지속가능성과 회복탄력성 및 형평성에 기반을 둔 새로운 21세기형 계획 모델을 제시한다. 6. 옴스테드 경험하기: 프레드릭 로 옴스테드의 북미 풍경, 계속되는 유산 (The Cultural Landscape Foundation, Experiencing Olmsted: The Enduring Legacy of Frederick Law Olmsted’s North American Landscapes , Timber Press, 2022) 프레드릭 로 옴스테드 탄생 200주년을 맞아, 문화경관재단(TCLF) 이사장 찰스 번바움(Charles Birnbaum, FASLA 회원), ASLA 명예회원이자 조경사학자 알린 레비(Arleyn A. Levee), 역사보존주의자 디나 타세–윈터(Dena Tasse-Winter)가 책을 구성했다. 이 책은 옴스테드와 그의 회사, 그의 뒤를 이은 여러 후임자가 설계한 200곳 이상의 공공·교육·민간 경관을 개괄한다. 지면을 꽉 채운 옴스테드의 계획안과 드로잉을 통해 민주적인 공공 공간에 대한 옴스테드의 비전 뒤에 숨겨진 작업들을 살펴볼 수 있다. *환경과조경417호(2023년 1월호)수록본 일부 손은신은 서울대학교 조경학과에서 학부 및 대학원을 졸업했고, ‘기억 경관’을 주제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현재 건축공간연구원에서 근무하고 있으며, 조경과 건축, 도시의 경계에서 새로운 연구자들을 만나고 외연을 넓히는 일에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한국 조경의 어제를 읽고 미래를 쓰다
지난 12월 16일 선유도공원 이야기관 강연홀에서 『한국 조경 50년을 읽는 열다섯 가지 시선』 북토크가 열렸다. 1부는 강연, 2부는 토크쇼와 청중과의 대화로 진행됐다. 책을 엮은 한국조경학회를 대표해 조경진 교수(서울대학교 환경대학원 환경조경학과)는 오랜 시간 노력해온 필자들의 노고에 대해서 감사 인사를 전하며 ‘한국 조경 50년 기념전’과 ‘IFLA 한국 개최 성과전’이 개최된 선유도공원 이야기관에서 북토크를 하는 것이 무엇보다 의미가 깊다”라고 소회를 밝혔다. 이 책은 한국 현대사의 흐름 속에서 도시와 경관, 지역과 환경, 삶과 문화의 틀과 꼴을 직조해온 조경 50년사의 주요 담론과 작품을 기록하고 해석했다. 중성적 아카이브나 백서보다는 해석적 비평서에 가깝다. 1부에서는 한국 조경의 전반적 지형과 풍경에 대한 해석을 담았으며, 2부에서는 주요 단면에 대한 클로즈업으로서 50년의 역사에서 주요한 주제를 포착하고 설명한다. 3부에서는 조사 결과를 통해 선정된 ‘한국 현대 조경 50’의 작품을 소개한다. 한국 조경 50년의 현재와 미래에 관한 담론을 실제 사례에 녹여 조경을 알고자 하는 학생에게는 조경 담론에 대한 지식을 전달하는 참고서, 조경 산업 종사자에게는 한국 조경과 자신이 나아가야 할 길을 안내하는 안내서, 조경에 관심이 있는 일반인에게는 조경의 아름다움을 소개하는 책이다. 저자와 함께 읽는 한국 조경 1부는 박희성 교수(서울시립대학교 서울학연구소), 임한솔 연구원(서울대학교 환경계획연구소), 남기준 편집장(환경과조경)의 강연으로 이뤄졌다. 박희성 교수는 ‘개발 시대의 조경, 그 결정적 순간들’을 주제로 이야기를 진행했다. 전국토공원화운동, 서울시 공원녹지 확충 5개년 계획, 신도시 건설 등 한국 조경의 주요한 변곡점이 조경에 미친 영향을 살펴봤다. 아울러 정원도시 담론, 오래된 신도시 중앙 공원의 유지 및 관리 등 미래 조경을 위한 과제와 방향성을 제시했다. 이어서 임한솔 연구원이 ‘살아있는 과거, 전통의 재현’에 대해서 발표했다. 한국 조경의 역사에서 전통이 어떤 식으로 전개되었는지를 시대별로 살펴보는 동시에 내적 원리의 재현, 창발적 변용 등 전통을 이용한 설계의 유형에 대해서 소개했다. 임한솔 연구원은 “설계에서 전통은 수동적으로 살아남은 것이 아닌 살아 있는 과거로 해석할 수 있다”고 말하며 설계에 있어서 전통과 한국성에 대한 관심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강연의 마지막 순서로 남기준 편집장이 ‘텍스트로 읽는 한국 조경’을 주제로 50년의 역사를 조경 도서로 조망하며 조경 도서의 가치에 대해 논했다. 고정희 대표(써드스페이스베를린)의 ‘100장면으로 읽는 조경의 역사’를 읽고 2013 순천만국제정원박람회 개최를 결정했다는 순천시장의 일화를 소개하며, 조경 도서는 조경의 역사적 흐름을 읽을 수 있는 동시에 조경가들이 새로운 그림을 그려나갈 수 있도록 만들어주는 바탕이라고 말했다. *환경과조경417호(2023년 1월호)수록본 일부
제25회 올해의 조경인, 제5회 젊은 조경가, 창간 40주년 조경비평상 시상식
12월 16일 선유도공원 이야기관 강연홀에서 본지가 주최한 ‘올해의 조경인·젊은 조경가 시상식’ 및 ‘조경비평상 시상식’이 개최됐다. ‘제25회 올해의 조경인’에는 조경진 교수(서울대학교 환경대학원 환경조경학과)가, ‘제5회 젊은 조경가’에는 최윤석 대표(그람디자인)가 선정됐다. 정평진 대표(스코어러)는 ‘창간 40주년 조경비평상’에서 가작을 수상했다. 시상식이 개최된 선유도공원 이야기관은 ‘한국 조경 50년 기념전’과 ‘IFLA 한국 개최 성과전’이 열리고 있는 곳이기도 하다. 박명권 발행인은 “한국 조경의 중요한 분기점을 기념하는 행사가 열리는 장소에서 시상식을 개최해 더욱 의미가 깊다”며 “이번 수상이 끝이 아니라 한국 조경 분야의 발전을 위한 새로운 도전의 시작이 되길 바란다”고 수상자를 격려했다. 조경진 교수는 한국조경학회 회장으로서 한국조경50 비전플랜을 수립하고, 다양한 포럼과 세미나를 개최해 도시가 직면한 난제의 해결책을 제시하는 데 기여한 공로를 인정받았다. 또한 조경헌장제정특별위원회 위원장으로서 2013년 ‘한국조경헌장’ 제정, 2022년 ‘한국조경헌장’ 개정에 이바지하고, 서울시 공원녹지 총감독으로 활동하며 녹지 환경 개선에 앞장섰을 뿐 아니라 ‘푸른도시 선언 전략계획’ 수립 등 관련 정책을 제안해 조경의 위상 제고에 힘쓴 점이 높게 평가됐다. 조경진은 “한국 조경이 탄생한 지 50년 되는 해에 올해의 조경인으로 선정되어 더욱 기쁘다. 제58차 세계조경가대회의 성공적인 개최가 수상에 가장 큰 영향을 미쳤을 것이다. 모두가 받아야 하는 상을 대표로 받는다는 마음에 미안하다. 앞으로 조경 분야 발전을 위해 더 열심히 활동하라는 의미로 받아들이겠다”고 말했다. 최윤석 대표는 경희대학교 환경조경디자인학과를 졸업하고 선진엔지니어링 종합건축사사무소 등에서 실무를 경험했다. 2008년 그람디자인을 설립해 다양한 유형의 조경 프로젝트를 수행하고, 2012년부터는 정원사친구들을 결성해 색다른 정원 문화 프로젝트를 선보이고 있다. 2021년 개최된 제11회 대한민국 조경대상에서는 산림청장상과 한국조경학회장상을 받았다. 최윤석은 “최정상의 조경가보다는 보통의 조경가가 되고 싶었다”라며 소감을 시작했다. “동료와 합심해서 열심히 달려오다 보니 젊은 조경가 수상이라는 성과를 이룰 수 있었다. 올바르고 모범적인 조경가가 되라는 의미로 생각하고 정진하겠다”며 직원 한 명 한 명의 이름을 부르며 감사를 전했다. *환경과조경417호(2023년 1월호)수록본 일부
[기웃거리는 편집자] 모종삽으로 쓰는 새로운 서사
이순신 장군에게 12척의 배가 있다면, 내게는 12자루의 연필이 있다. 이순신 장군처럼 해치워야 할 적은 없지만, 매달 해치워야 할 원고들이 기다리고 있다. 옛날처럼 원고지에 글을 작성하거나 다듬는 것도 아니지만, 원고의 목록과 해야 할 일, 취재 일정과 마감일을 적거나 사진의 배열 등을 고민할 때 연필을 쓴다. 물론 볼펜을 쓸 때도 있지만, 수정이 많은 경우 연필을 자주 쓴다. 골 넣은 스타 스트라이커도 좋지만, 연장전까지 뛸 수 있는 근성 있는 수비수가 때론 필요하다. 연필에 빠진 이유는 소설 속 장면 때문이었다. 소설 『여름은 오래 그곳에 남아』(2016)의 주인공이 다니는 설계사무소의 직원들은 업무 시작 전 모두 아침마다 연필을 깎는 것으로 하루를 시작한다. 매해 여름쯤 몽당연필이 유리병에 가득 차면 그들은 긴 워크숍을 떠난다. 몽당연필은 그들에게 시간을 헤아리는 일종의 아기자기한 모래시계였다. 그 귀여운 장면이 마음에 각인된 이후부터 마감이 끝나면 연필을 한 자루 두 자루씩 모으기 시작했다. 미국 대통령 링컨은 낙선할 때마다 깔끔하게 이발을 한 후 단정한 옷을 입고 맛있다고 소문난 식당에서 식사를 즐겼다고 한다. 나 역시도 새로운 마음을 다잡기 위해서 만든 일종의 루틴이었다. 매달 마감을 끝냈다는 일종의 성취와 다음 달을 위한 마음을 다잡기 위해서 연필을 사면서 작은 보상을 했던 것 같다. 그렇게 각기 다른 종류 연필로 구성된 12자루로 1타를 만들면서 한 해 한 해를 보냈다. 꾸준히 연필을 모을 수 있었던 것은 자주 갔던 빈티지 문구점 덕분이었다. 힙스터의 성지로 불리는 동네의 중심지와 떨어져 있어 가게가 위치한 골목에는 다소 한적한 분위기가 감돌았다. 시골 학교 교장 선생님 사택처럼 조금 허름하지만 단아한 느낌이 나는 건물의 3층에 자리 잡고 있는데, 그 건물 앞의 단풍나무가 보호수처럼 느껴져서 참 좋았다. 그래서 본래의 문구점 이름 대신 기사식당 간판에서 볼 법한 이름인 ‘단풍나무집’으로 혼자 부르곤 했다. 실명 대신 별명을 부른다는 것은 그만큼 고유한 애정(?)을 담는 행위라고 생각하면서 말이다. 으레 학교 앞에서 아폴로 같은 불량 식품을 팔고 초등학생들이 줄지어서 뽑기를 하는 그런 전형적인 문구점은 아니다. 해외에서 하나하나 손수공수한 빈티지 연필과 문구를 판매했다. 부담스러운 호객 행위를 하지 않고 자신의 할 일에 몰두하던 사장님의 응대가 좋았다. 대신 연필에 관해 물으면 늘 자세히 알려주었다. 어떤 연필 한 자루는 책 한 권 가격에 버금갈 정도로 비쌌지만, 그 연필의 적합한 용도는 무엇이고, 어떤 회사가 만들었는 지, 각인된 이미지는 무엇을 의미하는지 등을 자세히 들을 수 있었다. 내 예산을 초과하는 가격의 연필은 차마 사지 못했지만, 사장님의 열정과 연필에 깃든 서사가 재미있어서 산 연필이 꽤 있었다. 덕분에 매달 연필 고르는 재미로 살았다. 내게 연필의 서사가 중요한 소비의 기준이었던 것처럼 제5회 젊은 조경가로 선정된 최윤석도 서사를 중요하게 생각하는 조경가다. 최정상을 향해 달리는 조경가가 아니라 보통의 조경가가 되기 위해서 노력하는 그는 조금 거칠고 투박할 수 있지만 ‘디자인하는 엔지니어’로서 서사적인 조경이라는 자신만의 장르를 만들고자 노력하는 조경가였다. 남들이 책상에 앉아서 설계에 매달릴 때, 현장에서 몸소 부딪히며 조금 더 구체적인 설계에 치열하게 매달렸다. 무엇이 더 낫다고 감히 판단할 수는 없지만, 그의 치열함이 빚어낸 세월에 대한 보상이 젊은 조경가 수상으로 채워졌기를 바란다. 내게 연필이 그랬던 것처럼. 제3회 LH가든쇼 해외 초청작가 앤디 스터전은 조경의 대중화를 위해서 필요한 것으로 조경 언어의 활성화를 꼽았다. 조경가의 다양한 언어와 그 언어를 기록하는 미디어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한국과 영국은 여건이 다르지만, 최윤석처럼 자신의 스타일과 장르를 개척해나가는 조경가들이 한국에도 더 있으리라 생각한다. 연필을 삽이라 칭했던 김훈 소설가처럼, 나 역시도 연필이란 모종삽을 들고 대기하겠다. 조경의 다양한 언어를 기록하기 위해 받은 메일함을 비워두며 조경의 새로운 서사를 함께 써나갈 조경가를 기다린다. [email protected]
[편집자가 만난 문장들] 종교와 사랑으로 구원되지 않는 사람들은 걷는다
눈 내리는 게 좋으니 아직 어른이 되려면 멀었다고. 새해 목전에 두고 자꾸 어린이로 머물 수 있는 증거를 찾는다. 나이에 걸맞은 행동을 해야 한다는 게 매년 더 부담스러워진다. 그래도 마냥 거짓말은 아니다. 빙판길과 질척하게 녹은 눈은 싫지만, 창밖으로 펼쳐지는 눈 내리는 풍경은 여전히 좋다. 보고 있으면 겨울은 쓸쓸해도 괜찮은 계절이구나, 생각하게 된다. 나뭇가지에 눈을 지고 선 메타세쿼이아가 쭉쭉 뻗은 풍경이 낯설었다. 눈이 내린 선유도공원을 걷는 게 처음이었다. 겨울인데 이렇게 춥지 않아도되나 걱정한 게 무색하게 엄청난 기세로 기온이 내려가더니, 연말을 맞이해 준비한 시상식(124쪽)을 앞두고 눈이 펑펑 내리기 시작했다. 웬만한 눈은 제설차가 다 치워버리는 도시와 달리, 흰색 초원을 넉넉히 남겨둔 공원 풍경이 연말 분위기와 퍽 잘어울렸다. 몸을 움츠리게 만드는 추위에 시상식과 같은 장소에서 열리는 북토크(122~123쪽)에 방문자가 많이 오지 않으면 어쩌나 걱정도 했지만, 예상보다 더 많은 사람이 좌석을 채웠다. 날씨의 영향에서 완전히 자유롭지 못한 행사장 내부가 조금 더 따뜻해진 기분이 들었다. 북토크를 몇 차례 열고 지켜보며 느낀 건, 책 속 이야기보다 글쓴이 자체를 좋아하고 그들과 대화를 원하는 사람들이 훨씬 많다는 점이다. 그렇다보니 청중과의 문답 시간은 오로지 책 속 콘텐츠에 대해 논의하는 시간으로 흐르지 않는다. 이날의 대담도 아슬아슬하게 경계를 달리다가 다시 북토크와 어울리는 궤도로 돌아오기를 반복했다. 불안함을 먹고 자라 조금 빼족해진 질문 두어 개가 마음에 남았다. “융복합 시대에 조경의 먹거리를 다른 분야에 빼앗기고 있는데 어떻게 대처해야 할까요.” “비평 공모가 사라지고 있는데 다시 비평가들을 불러들이기 위해서 무엇이 필요하다고 생각하나요.” “누가 조경 공간을 만드는지는 중요하지 않아요. 누구든 잘하는 사람이 좋은 공간을 만드는 게 중요하죠.” “제대로 된 조경 비평 문화는 아직 없다고 생각해요. 그 문화가 성숙할 수 있도록 지지하는 일을 멈추지 않을 거예요.” 모두가 이미 알고 있을지도 모르는 답변은 마음 한구석을 쓸쓸하게 만들었지만, 한편으로 결국 내가 열심히 잘하면 해결될 일이구나 싶었다. 물론 다수가 열심히 노력하는 데도 불구하고 잘하는 소수만이 살아남는 세상은 조금 슬프겠지만 말이다. 조경 비평의 밑바탕이 마련되려면 조경가들이 자신의 설계 철학과 설계한 공간에 대해 이야기를 많이 할 필요가 있다는 말에는 몰래 고개를 끄덕였다. SNS를 비롯해 목소리를 낼 수 있는 공간은 점점 늘어나는데 조경가의 말들은 점점 줄어든다는 게 이상하다. 물론 에디터인 내가 제 몫을 다 하지 못한 탓일지도 모르지만. 가끔 사무실에 남아 어둑한 창밖을 볼 때면, 이 일은 조경을 좀 더 사랑하는 사람이 하는 게 맞지 않나 싶어 머리가 지끈거린다. 이야깃거리를 찾아 언제 어디든 조경 동네 사람을 찾아 걸음을 옮기는 애정을 가진 사람 말이다. 한숨을 쉬며 인터뷰를 정리하다 “직업 자체가 자신의 모든 생활을 잠식하는 상황을 피하려 합니다.”(66쪽)라는 문장을 위로로 삼았다. 12월은 꼭 반성의 달이 되어버리고 만다. 다짐을 실천하기에 내 심지는 물렁하기 짝이 없고 일년은 너무 짧다. 올해도 크리스마스가 오기 전 마감 끝내기에 실패했다. 이 지면을 채우기 위해 커피를 사러 나섰는데 얼굴에 부딪는 찬바람이 꽤 기분 좋게 느껴졌다. “종교와 사랑으로 구원되지 않는 사람들은 걷는다. 공간은 가끔 사람을 구원한다. 도피처, 은신처로 삼을 만한 곳이 많을수록 도시는 애틋한 곳이 된다.”1 떠올린 문장이 무엇과 닮았나 했더니 제58차 세계조경가대회에서 학생 대표로 발표했던 조담빈(서울대학교 사회학과, 조경학과)의 말이었다. “작은 교정 안에도 애착을 가진 공간이 있었습니다. 일상이 힘들 때마다 달려갔던 곳, 작은 언덕을 바라볼 수 있는 나무 아래의 벤치였습니다. …… 그 벤치가 제 고등학교 졸업의 일등공신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렇게, 어떤 공간은 사람들의 삶을 바꿀 수 있습니다.” 나만의 도피처를 소개 해주고 싶었는데 도무지 떠오르지 않았다. 대신 자신의 삶이 못났다고 생각하며 한 해를 마무리하고 있을 독자에게 창피한 내 이야기가 작은 위안으로 느껴지길 바란다. 사람 사는 건 다 비슷비슷하다고 믿으며. [email protected] 각주 1. 서한나, “현대의 산책”, 「한겨레」 2022년 12월 19일.
[COMPANY] 에프씨코리아랜드
에프씨코리아랜드는 투수성 코르크 바닥 포장재를 개발해 탄소중립 실천에 앞장서고 있는 친환경 기업이다. 수입에 의존하고 있는 코르크 원료를 국산 자원으로 대체하기 위해 다양한 기술을 개발하고 있다. 성세경 대표는 산림청 산하 한국임업진흥원에서 사업비 12억 원을 지원받아 강원대학교와 국산 참나무류의 수피 및 코르크를 이용한 탄성 포장재 개발을 진행 중이다. 현재 에프씨코리아랜드는 투수성 코르크 바닥 포장재 원료인 코르크를 해외에서 수입하고 있다. 이번 연구를 통해 포장재의 원가를 줄이고 국내 목재 산업의 발전에 기여하는 데 큰 성과를 낼 것으로 보인다. 장재혁 기업부설 연구소장은 국산 굴참나무에서 얻은 코르크 칩이 수입산 코르크 칩과 비교해 물성 및 탄소 저장 능력에서 크게 차이가 나지 않는 것을 확인했다. 이후 국산 굴참나무로 만든 코르크로 탄소중립을 실현할 수 있는 재료를 개발하는 데 힘쓰고 있다. 투수성 코르크 바닥 포장재의 효과 에프씨코리아랜드의 투수성 코르크 바닥 포장재에 사용된 코르크는 내부에 탄소가 저장되어 있다. 이로써 온실가스 감축 효과를 내고, 열을 덜 흡수해 여름철 열섬 현상을 완화한다. 기존 포장재와 비교하면 지표면 온도가 약 10℃가량 낮게 측정되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뿐만 아니라 투수성이 우수해 장마철 폭우 피해를 예방할 수 있다. 인체에 무해한 코르크 전용 바인더로 내구성을 강화하는 가공법을 사용했는데, 시간의 흐름에 따른 색의 변화를 억제할 뿐 아니라 가격 경쟁력을 높이는 효과까지 얻었다. 꾸준한 기술 개발로 에프씨코리아랜드는 2018년 한국산림인증KFCC 획득을 시작으로, 한국토지주택공사LH 우수 신기술, KS 제품 인증, 조달청 혁신제품 인증 등을 취득했다. 이러한 기술력은 매출 증대뿐 아니라 산림과학기술 R&D 수행, 해외 수출 판로 개척, 해외 산림 자원 개발 기반을 구축하는 데 큰 도움을 주고 있다. 인간과 자연의 공생을 꿈꾸다 과거 에프씨코리아랜드는 흙 콘크리트 포장을 주요 사업 분야로 다루는 기업이었다. 하지만 지구 환경을 보존하면서 국민 건강 증진에 도움을 줄 수 있는 바닥재에 대해 고민하던 중, 탄성이 있고 탄소를 머금고 있는 코르크 소재를 알게 되었다. 10여 년에 가까운 시간을 코르크 연구에 매진했다. 코르크 포장재가 기존 바닥 포장재에서 방출되는 중금속, 휘발성유기화합물TVOCs, 프탈레이트계 가소제 같은 유해 물질을 덜 방출한다는 점에 주목해 바닥 포장재로 사용하기 시작했다. 현재 공원 산책로, 학교 운동장 및 체육 시설, 어린이 놀이 시설 등 각종 실내외 바닥에 에프씨코리아랜드의 코르크 포장재가 활발히 사용되고 있다. 목재와 탄소중립의 관계 코르크 포장재의 친환경성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목재와 탄소중립의 관계를 이해할 필요가 있다. 우선, 탄소중립이란 이산화탄소 배출량과 흡수량이 서로 균형을 이루게 해 지구 온도가 1.5℃ 이상 상승하지 않도록 기여하는 일이다. 이산화탄소를 흡수한 나무는 산소를 뱉어내고 탄소를 저장하며, 베어져 목재가 되어도 저장된 탄소를 배출하지 않는다. 유엔기후변화협약(UNFCCC, UN Framework Convention on Climate Change)은 2011년에 연 당사국총회COP17에서 벌채한 산림 자원을 원료로 한 수확된 목재 제품(HWP)도 탄소계정(탄소 저장량=이산화탄소 흡수량)에 포함시키기로 합의했으며, 교토의정서도 목재의 수확과 목재 제품의 생산을 탄소 저감 활동으로 권장하고 있다. 강원대학교 공동 연구팀의 연구와 공인 시험 분석 기관의 분석에 따르면, 코르크 바닥 포장재는 1m3 당 약 142kg의 탄소를 저장할 수 있다. 두께 15mm의 코르크 바닥포장재를 학교 운동장에 1,000m2 면적으로 포장할 경우에는 약 2.1톤의 탄소를, 두께 65mm의 코르크 바닥 포장재를 어린이 놀이터에 300m2 면적으로 포장할 경우에는 약 2.7톤의 탄소를 저장할 수 있다. 현재 코르크 바닥 포장재에 많은 기업과 관계 부처가 관심을 표하고 있다. 성세경 대표는 향후 코르크산업협회를 구성해 코르크 원료의 수급망을 구축하고, 가공 및 시공 기술의 공동 개발을 꾀하고 싶다는 포부를 밝혔다. 각종 난제를 여러 기업과 함께 힘을 합쳐 해결하고 새로운 제품군을 개발하는 등 코르크를 통해 탄소중립 실천에 앞장서고 싶다는 입장이다. 글 박형석 자료제공 에프씨코리아랜드(fc4u.co.kr)
[PRODUCT] 펫팸족을 위한 테마파크 놀이터 왈로
반려동물 인구가 천만이 넘어가면서, 애완동물은 이제 가족이나 다름없는 시대가 됐다. 애완동물을 가족처럼 여기는 ‘펫팸족’(펫과 패밀리의 합성어)이 늘어났지만, 반려동물과 함께 할 수 있는 공간이 부족해 아쉬움을 호소하는 견주가 많았다. 이에 예건은 도심 속 공원의 자투리땅을 분리해 손쉽게 개를 위한 놀이터로 바꿀 수 있는 반려견 테마 놀이 시설 ‘왈로(Waalo)’를 개발했다. 왈로는 반려견과 주인이 함께 마음껏 뛰어놀 수 있는 놀이터다. 반려견의 시선으로 보았을 때 마치 집이 옹기종기 모여 있는 마을처럼 보이게 연출했다. 단순한 놀이 시설의 개념을 넘어 원목을 사용하고 유쾌한 색채감을 연출해 주변 경관과 조화를 꾀했다. 운동량이 부족한 실내견과 소심한 성격의 반려견이 사회성을 기를 수 있도록 개의 습성을 체계적으로 분석 및 연구한 자료를 토대로 과학적인 설계를 실시했다. 개의 습성과 육체적 성장을 고려한 놀이 시설에서 반려견은 주인과 함께 훈련이 아닌 놀이를즐길 수 있다. 또한 휴게 시설물을 설치해 견주가 쉴 수 있는 공간을 마련했다. 트와짓&저니브릿지는 일광욕을 할 수 있는 옥상층과 지붕을 타고 오르는 재미를 주는 계단으로 구성한 놀이 시설물이다. 둥둥 떠 있는 구름 속을 탐험하고, 구름 위를 지나는 반려견의 짧은 여정을 연상시키는 디자인이 특징이다. 강아지 벤치는 견주의 편의를 위해 벤치에 앉아 휴식을 취하는 동안 반려견의 목줄을 잠시 묶어둘 수 있도록 디자인했다. TEL. 031-943-6114 WEB. yek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