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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경과조경 201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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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디토리얼] 그들이 설계하는 법, 2014~2018
간단한 퀴즈 하나. 2014년 리뉴얼 이후 가장 오래 이어가고 있는 『환경과조경』의 연재 꼭지는 무엇일까요? 많은 독자가 쉽게 정답을 맞히셨을 것 같습니다. 그렇습니다, ‘그들이 설계하는 법’입니다. 청명한 가을의 한복판을 가로지르며 출간된 이번 10월호에는 ‘그들이 설계하는 법’의 마지막 주자가 연재를 시작합니다. HLD의 이호영, 이해인 소장입니다. 열독률이 가장 높았던 연재물 중 하나인 ‘그들이 설계하는 법’은 이호영+이해인 소장 편을 끝으로 올 12월호에 5년간의 긴 항해를 마칩니다. 리뉴얼 첫해인 2014년 1월부터 세 달간 ‘그들이 설계하는 법’의 첫 주자를 맡아 준 조경가는 디자인 스튜디오 로사이의 박승진(309~311호) 소장이었습니다. 이어서 스튜디오 101(연재 당시 지드앤파트너스)의 김현민(312~314호), 스튜디오 테라/서울시립대학교 조경학과의 김아연(315~317호), 수퍼매스 스튜디오의 차태욱(318~319호) 소장이 ‘그들이 설계하는 법’에 동참해 자신의 설계 태도와 작업 방식에 대한 다채롭고 폭넓은 이야기를 들려주었습니다. 2015년에는 오피스박김의 박윤진+김정윤(321~323호), 디자인 로직의 오형석(324~326호), 쿠토노톡의 조리나(327~329호), 조경작업소 울의 김연금(330~332호) 소장이 특유의 개성 넘치는 작업을 선보이며 그 이면 의 사연을 공개했습니다. 네 명의 조경가가 2016년의 ‘그들이 설계하는 법’을 이어갔습니다. 오피스 오브 어반 터레인즈/서울대학교 환경대학원의 서예례(333~335호), 가원조경설계사무소의 안세헌(336호), CA조경기술사사무소/홍익대학교 건축도시대학원의 진양교(339~341호), 조경설계사무소 엘의 박준서(342~344호) 소장이 그간의 설계 작업을 통해 전개해 온 실험과 도전의 시선을 보여주었습니다. 2017년에는 아뜰리에나무의 이수학(345~347호), 세계수프로젝트/자연감각의 백종현(348~350호), 스튜디오 MRDO의 전진현(351~353호), 조경디자인 린의 이재연(354~356호) 소장이 작업 과정에서 연마해 온 고유의 사고와 접근 방법을 지면에 담았습니다. 5년째인 올해에는 랩 D+H의 최영준(357~359호), 조경설계 호원의 김호윤(361~362호), 스튜디오 오픈니스의 최재혁(363~365호) 소장이 설계를 대하는 다양한 태도와 관점을 펼치며 토론의 장을 열었습니다. 그리고 이번 호부터 세 달간 이어질 HLD 이호영+이해인(366~368호) 소장의 연재를 끝으로 ‘그들이 설계하는 법’은 대단원의 막을 내립니다. 편집자이지만 동시에 한 명의 독자로서, 벌써 아쉬운 마음 가득합니다. 모처럼 과월호 수십 권을 쌓아놓고 스무 명 넘는 조경가가 5년간 쏟아낸 다층다각의 이야기를 다시 펼쳐봅니다. 누구에게 원고를 청탁할 것인가를 두고 벌였던 편집부 내의 격론, 섭외 과정의 삼고초려와 많은 에피소드, 교정과 교열 과정에서 진행된 필자들과의 긴장감 넘치는 토론, 여러 독자의 흥미진진한 피드백이 시간 여행을 하듯 다시 떠오릅니다. 한 달에 한 편만 읽다가 스무 명 조경가의 설계하는 법을 모아서 한 번에 읽으니 그야말로 ‘시너지 효과’라는 말의 뜻을 실감하게 됩니다. 편집자의 ‘근자감’일까요? 내년에는 더 잘 추스르고 다듬어서 한 권의 책으로 엮어 볼까 하는 생각도 듭니다. 편집자로서 자평하자면, ‘그들이 설계하는 법’의 가장 큰 성과는 동시대 한국의 조경가들이 자신의 작업 과정과 산물 그리고 그 이면의 생각에 대해 직접 글을 쓰고 독자와 소통할 장을 열었다는 점입니다. 5년간 참여한 조경가 중 몇몇은 평소에 다양한 지면에 다채로운 형식의 글을 발표해 온 경우도 있지만, 대부분의 경우는 글을 통해 독자와 대화한경우가 드뭅니다. ‘그들이 설계하는 법’ 연재는 그들 스스로 설계 사유와 작업 성과의 일면을 정리하는 기회이자, 동료 조경가와 학생들에게 자극과 토론의 소재를 낳는 계기가 되었을 것입니다. 그들이 자신의 글로 자신의 설계 여정을 기록한 것 자체만으로도 조경가 개인은 물론 한국 현대 조경은 의미 있는 아카이빙을 한 셈입니다. ‘그들이 설계하는 법’에 부여할 수 있는 또 하나의 의미는, 이 지면이 지금 이곳에서 성장하고 있는 젊은 조경가들을 적어도 조경계 내부에 적극적으로 노출시키는 장이었다는 점입니다. 5년간 지면을 이어간 스무 명 필자 중 50대 이상의 중견 조경가가 일곱 명이었지만, 나머지 다수는 30대와 40대의 소장 조경가였습니다. 자신의 오피스를 열고 독립한 지 1~2년 남짓한 신예 조경가에게도 원고를부탁했습니다. 변화의 촉매가 필요하다는 판단 때문이었습니다. 거창한 변화를 말하는 게 아닙니다. 한국 현대 조경의 역사가 45년을 넘어서고 있지만, 아직, 지금 이곳에서는 조경가를 찾기 쉽지 않습니다. 분야 형성의 초창기와 성장기를 겪으며 많은 선배 조경가들이 분투해 왔음에도 한국의 조경은 전문 직능으로서도, 학문 분과로서도 뚜렷한 정체성을 세우지 못한 형편입니다. 영역을 빼앗기고 있다는 불안감과 영토를 넓혀야 한다는 피로감, 이 이중의 집단 우울증을 겪고 있기도 합니다. 우리 사회가 보편적으로 승인하는 전문가professional로서의 조경가, 늦었지만 우선 조경계 내부에서라도 스스로 만들어가야 합니다. ‘그들이 설계하는 법’이 의 미 있는 변화의 계기가 되었기를 바랍니다. 2014년 1월, “조경 문화 발전소”를 꿈꾸며 새 출발을 선언한 『환경과조경』은 지난 5년간 “한국 조경의 문화적 성숙을 이끄는 공론장”, “조경 담론과 비평을 생산하고 나누는 사회적 소통장”, “세계적 동시대성과 지역성을 수용하고 발굴하는 전진 기지”를 지향해 왔습니다. ‘그들이 설계하는 법’은 『환경과조경』의 새 비전을 실험하고 구체화하는 가장 전략적인 지면이었습니다. 바쁜 시간을 쪼개 자료를 갈무리하고 원고를 보내 준 ‘그들’에게 깊이 감사드립니다. 즐겨 읽고 다양한 피드백을 보내 준 여러 독자에게도 감사드립니다. 원고를 꼭 받고 싶었으나 끝내 고사한 그들, 그리고 마땅히 초대해야 했으나 이른바 ‘균형론’이나 ‘안배론’에 귀 기울이느라 순서를 미루고만 많은 그들은 내년에 새롭게 문을 열 후속 지면을 통해 초대할까 합니다.
폴드 차일드후드
‘폴드 차일드후드(The Fold’s Childhood)’는 스위스 제네바 메르앵(Meyrin)지역의 부딘(Boudines)거리에 길게 놓인 조형적 특징이 두드러진 공간이다. 부딘 초등학교(Ecole de Boudines)북동쪽에 자리한 사각형 부지는 역동적으로 굽이치는 지형이 더해지면서 흥미로운 외부 공간으로 변모했다. 이 독특한 땅의 형태는 프랑스와 스위스 국경에 위치한 쥐라 산맥(Jura massif)(혹은 쥐라 습곡)의 지형에서 영감을 받은 것이다. 예술과 조경 폴드 차일드후드는 일종의 예술 작품이다. 차도에 쓰이던 평범한 아스팔트를 활용해 일상적 장소에 독특한 공간을 구현했다. 녹지와 건물, 조경과 건축 사이에 놓인 이 작품은 공공 공간에서 예술이 갖는 지위와 예술로서의 조경에 관한 질문을 던진다. 조경가가 디자인한 예술 작품을 조경가의 전문성을 드러내는 작업물로 볼 수 있는지 함축적으로 묻는다. 조경가는 예술가인가? ...(중략)... * 환경과조경 366호(2018년 10월호) 수록본 일부 Landscape Architect Gilles Brusset(Paysarchitectures) ConstructionJacquet Paysage Client Fonds d’art contemporain de la ville de Meyrin Location Meyrin, Switzerland Cost 220,000 CHF Area2,250m2 Design2014 Completion2017 PhotographsGilles brusset, Binocle, Laurent Barlier, Pierre-Yves Brunaud 질 브뤼셋(Gilles Brusset)은 공공 공간의 예술화를 지향한다. 그에게 물리적 공간은 하나의 거대한 조형물이며, 대상지는 미완의 예술 작품이다. 파리 벨빌 건축학교와 베르사이유 국립건축학교를 졸업했으며 시설물, 조경, 건축, 도시계획 등 폭넓은 분야에서 차별화된 공간을 구현하고 있다. 주요 작품으로는 아이티 프랑스 대사관 앞의 에트알레 드 테르(Etoile De Terre, 2018), 프랑스 클리시의 빈터에 설치된 트랑슈 드빌(Tranches De Ville, 2013) 등이 있다.
네이메헌 어반 리버파크
유럽 북서부에 위치한 네덜란드는 삼각주가 발달된 국가로, 전 국토의 25%가 해수면보다 낮아 많은 홍수를 겪어온 곳이다. 지난 천여 년 동안 네덜란드는 높고 견고한 제방을 쌓아 홍수를 막으려 노력해 왔다. 하지만 급격한 기후 변화로 인해 하천의 유량이 증가했으며, 이로 인해 하천 범람이 빈번하게 일어날 것으로 예상된다.1995년 발생한 대홍수 이후 네이메헌 시(Nijmegen Municipality)는 중앙 정부의 주도 하에 ‘룸 포 더 리버(Room for the River)’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목표는 하천 주변에 많은 여유 공간을 확보해 하천의 수위가 갑작스럽게 높아지더라도 늘어난 유량을 안전하게 처리할 수 있는 시스템을 구축하는 것이다. 네덜란드의 강변과 해안가에 30개 이상의 공간을 마련했는데, 각 공간은 인접 지역의 삶의 질 또한 향상할 수 있도록 기획되었다. 네이메헌 어반 리버파크(Urban Riverpark Nijmegen)는 룸 포 더 리버 프로젝트 중 가장 복잡한 프로그램이다. 콘셉트는 크게 세 가지다. 첫 번째 콘셉트인 ‘만들기’는 건축, 건설, 파내기 또는 들어올리기 등 물리적 요소를 말한다. 두 번째 ‘성장하기’는 자연과 인공 환경이 어떻게 발전하여 미래의 경관을 구축하게 되는지를 보여준다. 마지막 ‘물의 움직임’은 계절의 변화에 따른 강의 수위 변화를 다룬다. ...(중략)... * 환경과조경 366호(2018년 10월호) 수록본 일부 Team Coordinating Architect & Landscape Design: H+N+S Landscape Architects Bridge Architects: Zwarts & Jansma Architects, Ney-Poulissen Architects & Engineers, NEXT Architects Landscape Architect: Trafique ContractorDura Vermeer, Ploegam ClientNijmegen Municipality & project office Room for the River Location Nijmegen, Gelderland, The Netherlands Area 120ha Cost 126,000,000 Design 2006~2015 Construction2012~2016 Completion2016 Photographs H+N+S Landscape Architects, Jan Daanen, Jeroen Bosch, Jennie Burgers, Johan Roerink, Rutger Hollander, Siebe Swart, Thea van den Heuvel / DAPh H+N+S 랜드스케이프 아키텍츠(H+N+S Landscape Architects)는 도시설계, 비전 계획, 연구 등을 조화롭게 수행하는 조경 사무소다. 다양한 규모의 야외 공간을 혁신적인 아이디어로 설계하고 있으며 정원부터 경관, 제방, 하천 시스템에 이르기까지 여러 대상을 전문적으로 다룬다.
에르 강 재자연화
스위스 제네바의 에르Aire강 유역은 과거 농지로 사용된 지역으로 19세기 후반 운하로 개발됐다. 2001년 제네바 주는 운하를 철거하고 강의 원래 모습을 복원하기 위한 공모전을 개최했다. 공모는 하천 환경의 자연적 개선을 강조하며 생태적 성격을 부각했는데, 이는 자연과 인간 문화가 서로 정반대에 놓여 있다는 점을 전제했다. 수퍼포지션스(Superpositions)는 운하를 없애는 대신 강이 우회하여 흐를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하고, 이를 기존의 운하와 결합하는 새로운 대안을 제시했다. 보존된 운하는 강의 변화를 명확히 이해하게 하는 기준 역할을 하게 됐다. 다이아몬드 패턴의 수로 강은 자유롭게 흐르기 때문에 고정된 형태의 하천을 설계하는 것은 무의미한 일이었다. 강이 안정적 형태를 갖추도록 새로운 강바닥의 적절한 크기를 정하고, 하천 수위를 수용할 수 있는 범람원 부지를 강 주변에서 확보했다. 하천 형성을 촉진하고자 부지의 표토를 걷어내고 다이몬드 패턴의 수로를 조성하여 물이 다양한 경로로 흐르게 했다. 마름모꼴 섬들의 크기는 본래곡류의 유량을 수용할 수 있는 크기로 계획됐다. 이로써 땅과 강의 흐름 사이에 자유로운 상호 작용이 일어나고, 물의 흐름이 강의 형태를 결정하게 되었다. ...(중략)... * 환경과조경 366호(2018년 10월호) 수록본 일부 Team Superpositions Architects: Atelier Descombes Rampini,Georges Descombes Engineer: B+C Ingenieurs, ZS Ingenieurs Civils Biology: Biotec Client Furesø Boligselskab Republique et Canton deGeneve(State of Geneva) Location Geneva, Switzerland Length 5km Area 50ha Construction Phase 1: 2002~2006 Phase 2: 2009~2011 Phase 3: 2012~2015 Phase 4: ongoing Photographs Superpositions, Fabio Chironi 스위스 제네바에 근거지를 둔 아틀리에 드콤브 람피니(Atelier Descombes Rampini, ADR)는 줄리앵 드콤브(Julien Descombes)와 마르코 람피니(Marco Rampini)가 2000년에 설립한 설계사무소다. 자연 및 도시 계획 프로젝트뿐만 아니라 지역 개발에 관한 대규모 프로젝트에도 참여하고 있다. 하나의 프로젝트는 사람과 경관의 관계에 대한 질문이자 설계가의 열망과 직관을 구체화할 기회라고 믿으며, 새로운 도시 문화 형성에 기여하고 있다. 수퍼포지션스(Superpositions)는 에르 강 복원 프로젝트를 위해 ADR을 주축으로 결성된 팀으로 설계, 시공, 생태 전문 기업으로 구성되어 있다.
한강예술공원
서울 한복판을 가로지르는 한강은 도시민에게 조금 특별한 휴식 공간이다. 물놀이나 카누 타기 등 한강의 ‘물’을 적극적으로 즐기는 방법도 있지만, 강바람이나 잔잔히 진동하는 물결, 빽빽한 빌딩 숲을 배경으로 펼쳐진 탁 트인 전망은 그 자체로 복잡한 일상을 잊게 한다. 지난 2016년 시작되어 성공을 거둔 ‘서울 밤도깨비 야시장’이 여의도 한강공원과 반포 한강공원에서 확장되어 열리며 밤의 경관도 점점 풍성해지고 있다. 2018년 한강이 또 다른 변신을 시도했다. 지난 9월 서울시 한강사업본부는 2017년 5월 추진한 시범 사업에 이어 이촌 한강공원과 여의도 한강공원에 37개의 공공 예술 작품을 설치해 ‘한강예술공원 조성 사업’을 마쳤다. 한강예술공원 조성 사업은 ‘한강자연성 회복 및 관광자원화 계획’의 일환으로 다양한 공공 예술 작품으로 쉼터를 조성하는 프로젝트다. 앉고 눕고 만져볼 수 있는 예술 작품으로 시민들이 문화·예술을 좀 더 친근하게 경험하게 하고, 한강이 지닌 가치를 재발견하는 데 목표를 두고 있다. 또한 이를 통해 한강이 편의를 위한 기능 중심의 공간이라는 이미지에서 탈피하고자 했다. 국내 30팀, 해외 7팀이 참여해 한강을 예술적이고 여유로운 쉼의 장소로 꾸몄다. 작가는 관련 분야 전문가로 구성된 선정위원회에 의해 선정되었는데, 한강이라는 장소적 특성에 주안점을 두고 심사가 이루어졌다....(중략)... 여행자 정원Garden of Voyager유화수 써클Circles김민애 뿌리벤치Root Bench이용주 밤 무지개Night Rainbow허수빈 사색적 허공Meditation Void박기원 플레이스케이프Playscape와이크래프트보츠YCRAFTBOATS 리버파빌리온-온더리버River Pavilion-on the River루크 제람Luke Jerram · HLD * 환경과조경 366호(2018년 10월호) 수록본 일부
강동구청 청사
강동구청 청사 프로젝트는 건물의 전면을 가로막던 주차장과 경찰서의 담장을 허물고 지역 주민과 공감하는 열린 청사를 만들고자 시작되었다. 청사는 네모난땅에 놓인 두 개의 박스형 건물로, 일반적인 공공 기관의 건물이 그러하듯 형태나 입면이 두드러지지 않은 모던하고 기능적인 건축물이었다. 2018년 봄 기존 건물과 크게 다르지 않은 형태로 리모델링되었고, 입면에태양광 패널이 더해지면서 친환경적 건물로 바뀌었다. 부지는 섬처럼 단절된 곳이었다. 건물과 주변 도시 공간이 만나는 경계에 주차장이 놓여 있어 청사 이용자들은 차를 피해 곡예 하듯 청사로 진입했다. 청사 옥외 공간의 권위주의적 이미지를 탈피하고 사람들이 쉽게 이용할 수 있는 친근한 공간을 만드는 것에 초점을 맞췄다. 또한 태양광 패널을 설치한 건물의 이미지와 부합하도록 친환경적 옥외 공간을 조성하는 데에도 주안점을 두었다. 외부 공간은 모두가 함께 이용하고 가꾸는 장소라는 개념을 담아 ‘뜰’이라는 주제를 도출했다. 열린뜰을 비워진 공간으로 만들어 지역 주민의 다양한 활동을 수용하고 자발적 프로그램이 운영되도록 했으며, 도시의 변화에 유연하게 대처할 수 있게 했다. 도시로 열어 주기 부지의 경계(턱)를 없애 주변 보도와 열린뜰을 같은 레벨로 만들었다. 경계를 모호하게 함으로써 공간이 확장되는 효과를 주고 청사로의 진입을 자연스럽게 유도했다. 넓은 잔디밭인 열린뜰은 사계절 내내 다양한 주민 이벤트가 열리는 곳으로, 월드컵 같은 축제 기간에 활용될 수 있는 공동의 마당이다. 또한 강동구민 누구나 전시를 할 수 있는 갤러리가든과 지나는 사람이 잠시 쉬어 갈 수 있는 쉼터정원을 조성했다. 본관과 제2청사 사이의 쉼터정원에 세운 벽체는 구청의 장소성과 과거의 흔적(구 성내지구대)을 보여 준다. 청사로 진입하는 주 보행 동선을 따라 대왕참나무를 열식하여 축과 연속성을 강조했으며, 내후성 강한 적색 강판으로 만든 작은 오브제로 시선을 한곳으로 유도했다. 주변에는 자작나무, 상록성 초본을 식재해 강한 대비 효과를 주었다. ...(중략)... * 환경과조경 366호(2018년 10월호) 수록본 일부 총괄 장종수(기술사사무소 렛) 설계 모데라토(김경희), 기술사사무소 렛(정동진, 이희진, 양다빈, 박채연) 기본 계획 강동구청 푸른도시과, 장종수 공사 감독 서울시설공단 조경 시공 소예이엔씨(서경석), 성진조경(김성찬) 옥상 시공 수림종합조경(정미순), 티움(김일정) 협력 시공 씨토포스(최신현), 우리꽃(박공영), 예건(노영일) 위치 서울시 강동구 성내로 25 강동구청(구 강동경찰서 성내지구대 부지 포함) 대지 면적11,592.8m2 조경 면적9,530m2(녹지 2,580m2) 옥상 면적1,340m2(녹지 1,090m2) 설계 기간2016. 3. ~ 2017. 5. 공사 기간2017. 6. ~ 2018. 7. 준공2018. 7. 사진 기술사사무소 렛 기술사사무소 렛(LET)은 조경설계사무소와 에코플랜연구센터 그리고 경관계획연구소로 구성되며, 생태 및 경관에 초점을 맞춘 합리적인 대안을 제시하고 자연과 사람이 하나되어 살아가는 터를 만들고자 노력한다. 장종수는 서울시립대학교에서 조경을 전공했고 동대학원에서 조경학 석사, 환경생태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쌍용엔지니어링과 토문을 거쳐 현재는 기술사사무소 렛의 대표를 맡고 있으며 한국조경학회 이사, 인천광역시 도시공원 심의위원, 송파구 정책자문위원, 강동구청 공공조경가 등을 역임하고 있다.
연제 롯데캐슬 앤 데시앙
사계절을 느낄 수 있는 정원 배산, 황령산, 금련산 등 풍부한 녹지에 둘러싸인 연제롯데캐슬 앤 데시앙(Yeonje Lotte Castle & DESIAN)은 연제문화체육공원, 온천천 시민공원, 부산시민공원이 인근에 있어 산책이나 여가를 즐기기 좋은 환경을 갖추고 있다. 이러한 자연환경을 배경으로 사계절의 변화를 생생히 느낄 수 있는 단지를 조성하고자 했다. 단지 외곽을 따라 주동을 연결하는 순환 동선을 계획하고, 안쪽에는 중앙 오픈스페이스를 한 번에 둘러 볼 수 있는 산책로를 조성했다. 순환 동선을 따라 식재된 벚나무와 다정큼나무에서 봄의 향취를 느낄 수 있다. 단지의 동서를 가로지르는 보행로에는 여름에 강렬한 색의 꽃을 피우는 배롱나무와 아가판서스, 남측에는 가을이면 흑자색 열매를 맺는 후박나무와 꽃무릇, 북측에는 겨울에 열매가 붉게 익는 홍가시나무와 수피가 아름다운 사람주나무를 식재해 계절별로 다양한 경관이 연출되도록 했다. 단지를 하나로 연결하는 중앙 오픈스페이스 본래 경사지였던 부지를 정지해 두 개의 단으로 연결했는데, 그 중앙에 최대폭 30m, 연장 300m 규모의 오픈스페이스를 조성했다. 단지 남북을 관통하는 이 대형 녹지는 하나의 축을 형성해 높이가 다른 두 개의 단을 하나의 공간처럼 느껴지게 하고, 입주민에게는 탁 트인 경관을 선사한다. 중앙 오픈스페이스는 미술관카페, 연화숲, 팽나무숲, 홍가시미로원, 수련못, 뷰카페, 스포츠가든, 활동의숲 등 각기 다른 테마를 주제로 한 열 개 공간으로 구성된다. 곳곳에 야외 테이블을 배치하고, 다양한 조형물과 어우러진 초화원을 조성해 공간의 완성도를 높였다. 단지 중앙에 위치한 연화숲은 풍부한 녹음과 석가산, 티하우스가 어우러진 커뮤니티 공간이다. 팽나무, 먼나무, 후박나무, 녹나무 등 다양한 수목을 식재해 숲과 같은 공간을 조성하고, 키 큰 소나무로 높은 주동과 어우러지는 스카이라인을 만들었다. 연못에는 우산 분수, 물이 넓게 퍼지며 흐르는 형태의 석가산, 청량한 물소리를 즐길 수 있는 폭포식 석가산을 두어 다채로운 수경관을 연출했다. ...(중략)... * 환경과조경 366호(2018년 10월호) 수록본 일부 조경 설계 우리엔디자인펌 건축 설계(주)신성ENG건축사사무소 시공 롯데건설(주), 태영건설(주) 시공 감리 청우종합건축사사무소 조경 식재/시설 대동녹지건설 놀이 시설 원앤티에스, 플레이잼 휴게 시설 원앤티에스, 데오스웍스, 세인환경, 드림월드 위치 부산시 연제구 연산동 772번지 일원 대지 면적41,028.40m2 조경 면적16,991.37m2 완공2018. 8.
통영 폐조선소 도시재생 마스터플랜 국제공모
신아조선소는1946년 설립되어 통영의 지역 경제를 견인해 온 대표적 기업이다.하지만 조선업의 침체에 따라2010년 이후 급격히 쇠퇴하기 시작했으며, 2015년11월26일 파산을 맞았다.이로 인해 신아조선소를 비롯해 관련업에 종사하던5천여 명의 근로자가 직장을 잃었고,주민들이 새로운 직장을 찾아 타지로 떠나며 주변 주거지의70%가 공실,공가가 되는 사태에 이르렀다.이는 곧 지역 공동화로 이어졌으며 통영 지역 경제의 침체와 쇠퇴는 현재까지 계속되고 있다.국토교통부는 지난해12월 신아조선소를 포함한 인근 지역을 경제기반형 도시재생 뉴딜사업 대상지로 지정했다. 2018년3월 사업 시행 주체인LH는 신아조선소부지 매입 계약을 체결했고, 7월에는 통영시와‘통영폐조선소 재생사업 기본 협약’을 맺어 본격적으로 사업을 추진하기 시작했다. 공모의 목표는 폐조선소를 관광 자원으로 활용해 앵커시설,휴양 시설,업무 시설,해양 친수 공간,주거 단지가 어우러진 세계적 수변 도시 모델을 제시하는 것이다.당선작인‘통영 캠프 마레’는 통영의 문화적 자원을 발굴해 핵심 콘텐츠로 사용했다.특히 통영의 전통적인 공방을 모티브로 삼아 만든 열두 개의 교육 프로그램으로 경제 재생을 꾀한 점이 높은 평가를 받았다.앞으로LH는 당선팀과의 협상을 통해 설계 범위,일정 등을 확정한 후11월부터 기본 설계에 착수할 계획이다. ...(중략)... 당선작 통영 캠프 마레Tongyeong Camp Mare 포스코에이앤씨+에스엘에이엔지니어링+ Henn GmbH +싸이트플래닝건축사사무소+유신+메타기획컨설팅+딜로이트 안진 + 인우플랜 주최LH 주관국토연구원 방식국제 지명초청 설계공모 초청팀 1.나우동인건축사사무소(대표사) +건축사사무소 커튼홀+이스트아이그룹+동심원조경기술사사무소+디안+경남문화도시콘텐츠개발원+천마기술단 2.삼우종합건축사사무소(대표사) +포스터 앤드 파트너스(Foster + Partners) +한아도시연구소건축사사무소+삼정회계법인+쥬스컴퍼니 3.이든도시건축사사무소(대표사) +엠엠케이플러스(mmk+) +에이치이에이(HEA) +디티제트피에이씨(DTZPAC) +프로젝트 수+교우엔지니어링 4.인토엔지니어링도시건축사사무소(대표사) +김정후(런던 대학교) +디자인그룹오즈건축사사무소+신한종합건축사사무소+얼라이브+엠디엠플러스+인토P&D +이창민·백진(공공협력원) +문화도시연구소+문화다움+박태원(광운대학교) +선민이엔씨+세일종합기술공사 5.정림건축종합건축사사무소(대표사) + KCAP International B.V. +수성엔지니어링+인팩씨지에프+ AECOM Asia Company +빅바이스몰 6.포스코에이앤씨 건축사사무소(대표사) +에스엘에이엔지니어링+ Henn GmbH +싸이트플래닝건축사사무소+유신+메타기획컨설팅+딜로이트 안진회계법인 + 인우플랜 7.혜원까치종합건축사사무소(대표사) + ISA +동해종합기술공사+미래도시환경연구원+조경설계 해인 *환경과조경366호(2018년10월호)수록본 일부 위치경상남도 통영시 도남로195일원(신아조선소) 면적 전체:도시재생 뉴딜사업 구역510천㎡(약15만 평) 중점 설계 구역:구 신아조선소 부지185천㎡ (약56천 평,공유수면 포함) 사업 기간2018~2023 사업비1조1,041억 원 시상 당선작:기본설계권(35억 원 상당) 참여작:지명초청비(각1억 원)
[그들이 설계하는 법] 시작
다 시작이 어렵다. 프로젝트도, 회사도, 연재도. 3년 전 이호영과 이해인이 시작한 뒤, HLD는 2018년 10월 송영민, 박상현, 송주익, 이진선, 신영재, 김주환이 합류한 여덟 명의 그룹으로 성장했다. 3개월간 연재할 ‘그들이 설계하는 법’은 이 여덟 명 모두의 설계 이야기를 담고 있다. 타임라인 프로젝트에 제약이 많은 것이 꼭 나쁜 일은 아니다. 안되는 걸 배제하고 문제를 해결하다 보면, 꼭 새로운 것을 하려던 게 아니더라도 대상지 고유의 설계가 나오기도 한다. 그렇지 않은 프로젝트는 도통 시작하기가 어렵다. 무엇도 될 수 있다 보니 뭘 해도 근본 없이 느껴진다. 또는 이미 직관적으로 결론을 낸 것이라도 다시 논리적으로 설명해야 할 때가 있다. 발주처뿐만 아니라 설계안을 함께 결정하는 팀 또는 스스로에게도 그런 논리를 피력해야 할 때가 있다. 막막한 순간이다. 이럴 때 HLD가 자주 찾는 돌파구 중 하나가 타임라인(timeline)이다. 타임라인은 시간 순서로 사건을 나열한 표 또는 그림이다. 연표라고도 하지만 더 넓은 의미가 함축된 탓에 그냥 타임라인이라고 번역한다. 타임라인을 설계에 활용하는 가장 큰 이유는 새로운 시도에 개연성을 부여해 주기 때문이다. 다음 연재에서 더 자세히 다루겠지만 설계의 독창성은 대상지의 장소성에서 가장 강력하게 기인한다. 우리가 왜 이런 설계를 하는지 당위성을 부여하고 개연성을 보태는 것은, 시대별로 왜 각기 다른 일이 일어났는지 그 역학을 이해하고 어떤 변화 추이가 있었는지 알아낸 뒤 이를 현재에 대입하는 과정이다. 이런 통시적(diachronic)추론을 하는 도구가 타임라인이다. Ecology as Industry 산업으로서의 생태’1의 타임라인을 예로 들어보자. 이 타임라인은 해수면 상승에 따라 바 다 밑으로 가라앉을 위기를 마주한 네덜란드의 강 하구 도시를 향해 그동안 의존해 온 공학적 해법에서 탈 피하고 에너지원과 무역 방식을 바꾸라고 말한다. 앞으로 도시 개발을 어떤 방향으로 할까 물었을 뿐인데, 네덜란드의 정체성과도 같은 공학적 방법을 버리라니 황당하리만큼 과격한 주장이다. 이런 주장이 가능한 것은 두 개의 타임라인 덕분이 다. 첫 번째 ‘Landscape of the Delta History 강 하구 경관의 역사’는 선사 시대부터 현재까지의 네덜란 드 역사를 개간, 농업, 경제, 예술, 인물, 지리 등 다양 한 각도에서 살펴 강 하구 지역의 경관이 이 모든 요 소와 분리될 수 없다는 사실을 이야기한다. 두 번째는 ‘Engineering and De-Engineering 공학적 방식과 탈 공학적 방식’ 그래프로, 제방을 쌓는 것과 지반 침하의 관 계, 에너지 소비와 항구의 비대화, 통수 단면 감소의 관계를 연관 지어 보여 준다. 둑을 쌓고 그 안의 이탄 을 채취하고 물을 빼내는 기존 방식은 지반 침하를 일으켜 안 그래도 낮은 땅을 더 가라앉게 만든다. 결국 더 길고 높은 둑이 필요해진다. 한편 무역으로 점차 비 대해지는 로테르담 항구의 성장을 위해 강 하구에 퇴 적되는 모래가 끊임없이 준설되는데, 이는 하구 지역의 1차 홍수 방어선을 없애는 것과 같다. 이 거대한 항 구 대부분은 오일 탱크가 차지하고 있다. 화석 연료는 유한하고 환경 오염과 기후 변화를 가속한다. 이곳은 해수면 상승뿐 아니라 집중 호우와 도시화로 인한 투수 면적 감소로 강 범람의 위협도 받고 있으니, 화석연료의 이용과 유통을 위해 치르는 이 모든 수고로움에 의문이 제기된다. 이러한 내용을 지반 침하의 기작 을 설명하는 그래프에 중첩하고 모래의 퇴적을 새로운 변수로 넣어 지금까지의 추이를 반전시킬 수 있는 액션—항구와 댐을 부수고 인공 섬을 만들어 삼각주 지형을 회복하는 것—을 해결책으로 제시한다. 늘 하던 방식에 의문을 제기하고 새로운 해결책을 제시할 때, 타임라인은 순발력 있게 논리와 직관을 함께 활용하는 방식으로 유용하다. 물리적 설계의 범주를 벗어나 국제 경제나 무역과 같이 설계와 다소 무관하 다고 여겨지는 부분까지 함께 생각하게 한다는 점에서 도 의미가 있다. HLD가 프로젝트에 타임라인을 활용했 던 몇 가지 경우를 소개하고자 한다. 통영 도시재생 통영 타임라인은 ‘통영 폐조선소 도시재생 마스터플랜 국제공모’2 참가의향서의 첫 페이지에 넣었던 것으로 공모 지침에 대해 우리가 이해한 바를 시각적으로 압축한 것이다. 타임라인의 목표는 우리가 대상지를 충 분히 관심 있게 들여다보았다는 것을 전달하는 것이 절반, 설계 해법의 실마리를 찾는 것이 절반 정도였다. 타임라인을 구성하는 요소들이 앞의 사례만큼 강한 상호 관계를 드러내지는 않는다. 통영 워터프런트 경관을 구성했던 주요 이미지 조각들이 엉겨 붙어 있고 조선소의 영역이 길게 펼쳐져 이를 떠받치고 있는데, 선의 두께가 마치 조선소와 함께한 통영 워터프런트의 흥망성쇠 같다. 과거와 미래에 조금씩 등장하는 물을 제외하고는 모두 흑백으로 표현해 마치 모두 과거의 영화이고 여기에 큰 기대를 거는 건 늦은 일인 듯 한 인상을 준다. 배경으로 배치한 네 개의 지도는 통영 과 항구의 관계를 함축적으로 보여 주고 도시와 항구의 위기가 분리될 수 없음을 드러낸다. 여기까지가 역사를 긍정하지도 부정하지도 않는 중립적인 타임라인 이라면, 그 옆 통계 자료의 높이 치솟는 인구수와 불안해져 가는 인구 피라미드, 다양한 수치는 위기감을 증폭시킨다. 폐조선소 부지를 설계 대상지로만 보는 눈에서 벗어나 이곳에 살거나 몰려드는 사람들에게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고민해 종합적 도시재생 방안을 마련하겠다는 방향성을 내포한다. 타임라인은 방대한 자료 조사와 분석, 시간 순서라는 객관적 요소를 기반으로 하지만, 인과 관계를 추출하 고 가중치를 주는 과정에서 통찰력과 주관적 해석이 관여하고, 전달 과정에서는 주로 시각적 표현이 직관적 이해에 영향을 준다는 점이 흥미롭다. 벅민스터 풀러Buckminster Fuller의 차트처럼 아주 간결 한 정보와 표현법을 가지고도 현 시대의 역동성과 진보의 기운을 전달할 수 있다. 역사상 최고의 통계적 그래픽이라고 칭송받기도 하는 샤를 조제프 미나르 Charles Joseph Minard의 ‘나폴레옹 러시아 행군 지도’ 타임라인3 은 적절히 추상화된 꺾인 직선, 진격과 후퇴 선의 대조, 돌아오는 출발선에서는 정확히 같은 두께 였지만 점차 내려가는 기온과 함께 얇아지는 생존자의 띠로 강한 인상을 남긴다. 한니발의 포에니 전쟁 통계 지도보다 지리적 정보를 많이 생략 또는 왜곡하고 있음에도 더 강한 전달력을 갖는다. 정보를 추출하고 가중치를 부여하는 과정에서 조사를 소홀히 하거나 논증을 게을리하면, 주관이 개입해 논리적 비약으로 이어질 수 있는 단점도 있는 것이 사실이다. 타임라인은 분명 어느 설계에서나 만병통치약처럼 사용할 수 있는 도구가 아니다. 쓸모가 있다 하더라도 제대로 완성하기 위해서는 찾아내고 검증할 것이 많아 늘 시간에 쫓기는 설계 작업에서 차분히 타임라인을 만드는 것은 사치일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설계 초반 작업부터 분야를 아우르는 협업을 통해 장님이 코끼리를 만지는 듯한 분석이 되지 않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다. 타임라인이 제시하는 방향의 개연성만 택할 뿐, 그 외의 타당성은 공시적synchronic 측면에서 대상지를 이해하고 설계를 풀어 나가야 한다. 노들섬 ‘노들꿈섬 공간·시설조성(3차) 설계공모’4 의 경우 운영 프로그램과 운영 주체가 정해진 뒤에 공간 설계공모 가 진행되었다. 따라서 섬 상단부는 지침의 요구 사항 을 어떻게 수용하느냐의 문제인 반면, 섬의 하단부에 는 많은 가능성이 열려 있었다. 노들섬 타임라인에서는 이촌 지구가 너른 모래사장일 때부터 교량 건설을 위한 중지도가 되고, 이후 타원형 의 길쭉한 섬으로 변형되고 남겨진 뒤 새로운 공공 공 간으로서의 쓰임을 고민하게 된 오늘날까지의 변천사 를 ‘땅과 물의 관계’와 이에 따른 ‘공공의 이익’이라는 두 측면에 집중하여 조명했다. 치수와 교통 측면만 강 조하다가 사라지게 된 모래톱 경관을 복원하기 위해 섬 하단부의 단단한 경계를 허물어 노들섬의 문화적, 생태적, 기능적 관계가 유연해져야 한다는 점을 암시 했다. 마스터플랜에서 섬의 상단부에는 동쪽의 노들숲 보전 지역과 서쪽의 음악 관련 운영 프로그램이 대조적으로 양측에 자리한다. 도시적 파사드 너머로는 잔디 마당 이 있어 하단부의 생태 공원으로 연결된다. 유속이 느려지는 섬의 후미에 자리한 생태 공원은 기존의 콘크 리트 호안 일부를 깨고 물이 드나들 수 있는 자연 습지로 조성한다. 유속을 느리게 하는 구조물을 설치해 밤섬처럼 자연 습지 뒤로 모래톱의 성장을 유도한다. 섬 가장자리를 빙 둘러 연결하는 프롬나드는 북서쪽의 자연 호안 영역과 남동쪽 호안의 도시적 영역을 하나로 엮어 준다. 타임라인에서 제시한 땅과 물의 관계는 마스터플랜뿐 아니라 보고서 전반에 별다른 설명 없이 사용한 1950년대 미 군정 지도 중첩 이미지에서도 반복적으로 드러난다. 특히 원래 모래사장이던 수심이 얕은 곳을 중 심으로 얼어붙은 한강 사진은 절묘하게 옛 지도의 모래사장과 겹쳐진다. 보고서를 마치며 이 사진에 설계 제안을 합성해 우리의 제안이 임의적이지 않음을 보여 주는 에필로그 이미지로 사용했다. 창원 대상공원 타임라인을 늘 프로젝트 초반에 만드는 것은 아니다. 창원 대상공원의 타임라인은 마스터플랜이 정리되어 갈 때쯤 공모전 제출을 위해 프로젝트 제목과 부제를 정하는 과정에서 만들어졌다. 창원 도심 내 산지형 녹 지인 대상공원의 비전을 설명하기 위해, 뉴욕의 센트 럴 파크를 연상시켜 즉각적인 이해를 돕는 ‘센트럴 힐 Central Hill’을 제목으로 잡았지만 실제 우리 설계 개념 을 설명하는 제목은 ‘인프라스트럭처로서의 공원Park as Infrastructure’이었다. 이 자체가 생소한 개념은 아니 지만 왜 인프라스트럭처여야 하는지, 여기서 이야기하 는 인프라스트럭처가 무엇인지에 대한 명쾌한 설명이 도입부에 필요했다. 인프라스트럭처라고 하면 도로나 상하수도와 같은 기 반 시설이 먼저 떠오르지만, 넓은 의미에서 인프라스 트럭처란 사회나 어떤 조직의 운영을 위해 필요한 기 본적인 물리적·조직적 구조를 말한다. 대상공원은 도시 개발 과정에서 언덕 지형 덕분에 어쩔 수 없이 남겨진 잉여 공간이었지만, 개발이 진행됨에 따라 언덕 바로 밑까지 들이차게 된 다양한 프로그램은 이곳이 단순히 도심 내 녹색 허파나 뒷산 산책로일 뿐만 아니라 더 많은 가치를 지니기를 요구한다. 숲은 단순히 배경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문화·농업·여가·교육·예 술을 적극적으로 담아냄으로써 창원 시민의 삶의 중심이 된다. 숲 고유의 순기능을 보전하면서도 이러한 사회적 요구에 대응하기 위해서는 도시와 맞닿은 곳마다 그곳의 토지 이용, 지형, 동선의 특징을 반영한 접점을 만들 필요가 있다. 대상공원은 프로그램 연계, 물리적 연결, 경험의 연결이라는 세 가지 측면에서 연결고리를 만들며 도시의 인프라스트럭처가 된다. 아래의 타임라인은 주어진 대상지의 형태 외에 어떠한 물리적 형태도 직접적으로 암시하고 있지 않다. 집라 인을 탄 사람이나 날아가는 새의 이미지가 개념적이고감성적인 것임에 반해, 이와 같은 통찰에서 파생되어 나온 프로그램, 물리적 연결, 경험 동선은 대상지에 실 재하는 맥락에 기반을 둔 것이고 마스터플랜에 그대로 드러난다. 타임라인만큼 심오하지는 않더라도, 관습적 설계에서 벗어나 ‘그다음은 뭐?’라는 질문에 답을 찾기 위해 프 로젝트를 시작할 때 사례 연구를 통한 트렌드 분석을 많이 한다. 참고 이미지를 찾거나 스케일 비교를 하는 것 외에, 사례를 시간 순서로 엮어 그 변천 과정을 추 론하거나, 유형별로 분류해 제3의 유형을 찾아내거나, 오늘날의 현안이 무엇인지 찾아낸다. A기업 R&D 센터 중국의 건설 자재 제조 기업인 야샤YASHA의 본사를 설계할 때는 발주자의 요구 사항이 구체적이지 않아 앞으로 한 발 내딛기가 어려웠다가, 효과적으로 사례 를 유형별로 분류한 덕에 빠르게 진전된 적이 있다. 기업 본사 캠퍼스 디자인의 기능은 여러 가지다. 그중 특히 기업의 가치를 외부에 표현하는 방식을 유형별로 정리했다. 기업이 추구하는 바(예: 로레알의 아름다움)를 상 징하거나 기업 브랜드 이미지의 가장 강력한 요소(아디 다스의 세 개의 띠, 신발 끈)를 ‘부서 간 협력’이라는 기업의 운영 방침과 연계해서 동선으로 활용한 사례 등 은유, 환유, 상징 등 다양한 기법이 있다. IBM과 같은 IT 기업의 경우 회로에서 연상되는 모습이 표착되기도 하는데, 두 사례 모두 형태 자체보다는 그런 형태가 가 진 특성을 자기 나름의 목적—선 체계 개선, 사회적 공간 형성 등—에 맞게 활용한 점이 재미있다. 5년이 흐른 뒤, 위의 다양한 유형은 모두 이전 방식을 보여 주는 사례가 되었다. 기존 사례에서는 ‘상징’이나 ‘브랜드 표현’이 중요했다면, 2018년에 제안하는 본사 캠퍼스의 디자인에서는 인튜잇이나 구글 캠퍼스 비전에서 엿볼 수 있는 것처럼 기업들이 자기 만족적으로 홈페이지에 걸어둔 기업 정신이 아니라 기업 구성원이 만든 하나의 공동체 또는 사회로서의 기업 문화를 드 러내거나 양성하려고 한다. 또 로고를 드러내기보다는 임직원에게 주어지는 혜택을 늘리고 드러내는 데 중점 을 두고 있다. 임직원에게 제공하는 복지의 종류와 수 준에 따라 회사가 얼마나 미래 지향적이고 진취적인지 드러나기 때문일 것이다. A 기업 R&D 센터를 디자인하면서 이러한 트렌드를 설계 목표의 중심에 뒀다. 라이언 뮬리닉스Ryan Mullenix와 존 메디나John Medina는 설계가 어떻게 사람의 생물학적·경험적 측면에 영향을 주어 이용자의 편 안함과 생산성을 극대화할 수 있는지 논하면서, 미래의 오피스에서 조직과 구성원의 건강을 위해 꼭 필요 한 점을 다음과 같은 다섯 가지로 정리했다. 1. 조용히 하기-브레인스토밍을 제외하고keep it down-unless brainstorming, 2. 녹음 증가go green, 3. 시각적 휴식 제공seek visual relief, 4. 움직이기get a move on, 5. 생각하며 먹기eat to think. HLD는 이를 다시 1. 자연으로의 접근성access to nature, 2. 선택의 유연함과 결정력flexibility & control, 3. 생산적 놀이positive distraction, 4. 건강과 복지health & wellbeing, 5. 시각적 휴식visual relief으로 재정의해서 A 기업 R&D 센터의 다양한 오픈스페이스에 적용했다. 여주관광단지 수목원 수목원을 어떻게 설계할까 하는 고민도 시대별로 변하는 사회적 요구, 기능, 형태에 대한 이야기에서 시작했다. 구체적인 기획 없이 나온 공간 설계공모에서 하나 마나 한 지역적 맥락 분석과 숙제하듯 채워내는 현황 분석은 대폭 줄였다. 제안서 분량의 2% 정도밖에 차지하지 않지만 기존에 있던 수목원과는 다른 방향을 제시하겠다는 운을 띄우기는 충분했다. 제안서의 첫머리 에 쓴 글을 소개한다. 역사적 고찰: 이탈리아의 약초 정원에서 기원하는 수목원은 사회적으로 중시되는 가치에 따라 그 기능을 달리했고 형태 또한 이에 따라 변화해 왔다. 17세기에는 세계 각국을 탐험하며 획득한 이국적 수종 수집 및 보관을 위한 공간이었고, 주로 초본류를 위한 정원이나 온실 중심이었다. 식물분류학을 중심으로 숲과 식 물에 대한 과학적 연구 및 식물 종 다양성 보존의 기능이 강화되면서 학명이나 종, 속에 따른 배치가 시도되었다. 18세기 이후에는 대중이 이용하는 오픈스 페이스로서의 기능이 강화되어 플레저 가든pleasure garden 기능을 중심으로 전 세계적으로 공원 형태의 수목원이 많이 조성되었다. 현대에는 생태 및 지속 가 능성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다시 수목원의 연구 기능이 중시되고 특히 교육 및 전시 프로그램이 강화 되면서 이를 위한 건축물이 강조되었다. 오늘날 수목 원에는 이런 다양한 기능을 고루 담되 차별화를 위해다양화를 시도하고 있다. 내일의 수목원은 어떤 가치, 어떤 기능을 담아야 할까? 수목원을 단순히 성공적인 관광지로 계획하는 것을 넘어 시대적으로 사회에 필요한 공간으로 만들겠다는 점을 말하고자 했다. 다음은 장 줄리앙Jean Jullien의 삽화와 함께 소통 없이 점점 고립되어가는 개인주의 사회에서 자연과의 교감이 중요하다는 점, 그리고 늘 보던 ‘힐링 산업’ 팔기로는 해결되지 않는다는 점을 지적한 내용이다. 현대 사회 진단: 어느 사회나 점점 개인화되는 경향을 우려했지만 지금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현대 사회는 IT 기술 발달로 인해 전에 없던 속도로 개인화가 진행 중이다. 각자 고립되어 소통하지 못하는 사회에서는 개인이 도구화되기 쉽고, 필요에 의해서만 서로 의존하는 사회에서는 개인이 느끼는 외로움이 커질 수밖에 없다. 공동체가 와해된 사회에서는 외로움 같은 스트레스를 해결하기 위한 힐링이 해법이 되기보다는 산업이 되고, 갖가지 힐링 상품은 곧 유행에 따라 식상해 진다. 이제 지친 도시민에게 자연을 가까이 가져다 주는 것이 해결책이 되던 시대는 지났다. 오지로의 여행도 쉬워진 요즘에는 자연에의 접근성이나 자연 환경의 퀄리티 자체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자연이 주는 감성과 감각을 느끼고 잘 소통하는 것이 중요하다. 자연이 중요하다는 교육이나 캠페인도, 형형색색의 꽃과 조명도 충분하지 않다. 자연과의 교감이 어렵지 않고 더 재미있을 수는 없을까? 체험한다면서 이것저것 번거롭게 하는 유행도 곧 지나 갈 것이다. A 기업 R&D 센터 프로젝트와 마찬가지로, 디자인을 통해 감성적, 감각적 측면에서 유의미한 변 화를 가져올 수 있다는 생각을 바탕으로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상상력: 타임라인이 논리적 형태를 빌린 직관이라면 그 반대 선상에 스토리텔링이라는 감성적이고 감각적 인 접근이 있다. ‘감각을 일깨우는 수목원’이라 하여 자칫 미각, 후각, 시각, 청각, 촉각을 하나씩 활용한다 는 클리셰로 빠지기 쉬운데, 이는 숲에서 열리는 요가 클래스, 수목원에서 재배한 블루베리 잼만큼 따분한 이야기 아닌가. 그래서 여주관광단지 수목원 제안에서 는 논리적 전개보다는 개인적 경험, 사소한 관찰, 상세 한 상상력을 대폭 활용했다.숲 속 디스틸러distillery 에서 나만의 레이블을 만들고, 밀리건의 집에 들어가 뱀의 껍질을 엿볼 수 있는 ‘오림’의 이야기가 어떻게 탄생했는지는 ‘전개’를 다룰 다음 연재에서 이야기하려 한다(첫 회). 각주 1. 이해인·박경탁·신수민 공동 작업, ‘Ecology as Industry’, Delta Competition 우승작, 2010. 2. HLD·이노션·SWA(SF office)·일신건축·평화엔지니어링· 삼일회계법인·이재경(홍익대학교) 공동 작업, 통영 폐조선소 도시재생 마스터플랜 국제공모 참가의향서, 2018. 3. 대니얼 로젠버그(Daniel Rosenberg)·앤서니 그래프턴 (Anthony Grafton), 김형규 역, 『시간 지도의 탄생: 고대에서 현대까지 연표의 진화와 역사』, 현실문화연구, 2013. 4. HLD·일신건축·유은정·정승영·Mingyu Yin 공동 작업, ‘Nodeul, un-plugged’, 노들꿈섬 공간·시설조성(3차) 설계공모 가작, 2016. HLD는 이호영과 이해인이 설립한 조경설계사무소로, 광범위한 분석과 접근 방법을 통해 대상지의 공간적 가치를 향상시키고 그 장소를 사용하는 사람들에게 인문·사회적으로 긍정적 변화를 끼칠 수 있는 핵심적 해법을 제공한다. 이호영은 고려대학교에서 원예학을, 서울대학교 환경대학원과 펜실베이니아 대학교에서 조경학을 전공했으며, 조경설계서안, 미국 에이컴(AECOM), 오피스 ma(office ma)에서 조경과 도시설계 프로젝트를 수행했다. 이해인은 서울대학교와 UC 버클리(UC Berkeley)에서 도시계획을 공부하고 하버드 GSD에서 조경 설계 석사 학위를 받았으며, 미국 에이컴과 파퓰러스(POPULOUS)의 샌프란시스코 지사에서 다양한 조경 프로젝트를 수행했다. www.hldgroup.net
[다른 생각, 새로운 공간] 미래의 공원
수도권매립지는 세계에서 가장 큰 폐기물 처리 시설이다. 향후 공원화 사업이 완료되면 어디에서도 볼 수 없는 초대형 오픈스페이스가 탄생하게 된다. 매립지를 적극적으로 활용한 최초의 사례로는 대구수목원이 있지만, 수도권매립지는 상상력의 한계를 넘어선다. 청라, 영종, 김포 신도시에 둘러싸인 이 어마어마한 땅은 오픈스페이스를 통해 상상할 수 있는 모든 가능성을 실현할 수 있을 정도로 거대하다. 차를 타고 돌아본 수도권매립지의 얼굴은 참 다양했다. 느긋한 오후를 즐기는 골퍼, 산책 나온 시민, 수영장 주차장의 차, 분주하게 식물을 다듬고 있는 정원사, 황량한 황톳빛 차폐막을 뚫고 선 가스 배출관, 아스라이 보이는 청라 신도시의 초고층 건물, 드문드문 흩어진 서해의 섬들. 무엇보다도 문명과 물질과 욕망의 역사가 농축된 이곳이 생태적으로 가장 온전한 보석이라는 아이러니가 초현실주의적 아름다움을 내뿜고 있었다. 인간의 역사를 되돌려가는 자연의 힘이 느껴졌다. 강성칠 수도권매립지관리공사 감사실장(전 문화조경사업처장)은 자연의 힘을 실험하고 있는 조경가다. “수도권매립지 간척 후 생태계 변화 및 생태적 특성을 고려한 관리 방안 연구”라는 조경학 박사 논문을 쓰기도 했다. 조경을 단순히 흉물을 가리고 치장하는 녹화 업무로 한정하지 않고, 문화의 축이자 생태계의 프로세스로 전망하는 전문가가 수도권매립지의 재생을 이끌고 있다는 사실에 안도감이 들었다. 대부분의 조경인에게 수도권매립지는 아직 낯선 땅이다. 그가 바친 젊음, 프런티어로서의 모험심과 기술인으로서의 경륜, 미래지향적 비전이 없었다면 우리는 이커다란 녹색의 감흥과 곧 다가올 창조적 재생의 기회를 영영 잃어버렸을지도 모른다. ...(중략)... * 환경과조경 366호(2018년 10월호) 수록본 일부 최이규는 1976년 부산 생으로 10여 년간 실무와 실험적 작업을 병행하며 저서 『시티오브뉴욕』을 펴냈고, 북미와 유럽의 공모전에서 수차례 우승했다. UNKNP.com의 공동 창업자로서 뉴욕시립미술관, 센트럴 파크, 소호와 대구, 두바이, 올랜도, 런던, 위니펙 등에서 개인전 및 공동 전시를 가졌다. 울산 원도심 도시재생 총괄코디네이터로 일했으며, 현재 계명대학교 도시학부 생태조경학전공 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명사의 정원 생활] 윈스턴 처칠의 정원
윈스턴 처칠, 불멸의 의지와 용기를 지닌 ‘위대한 영국인’ 윈스턴 레너드 스펜서 처칠(Winston Leonard Spencer Churchill)(1874~1965)은 “영국 역사상 최고의 위인”(BBC, 2012)이자 20세기의 가장 위대한 인물로 평가된다. 제2차 세계대전을 승리로 이끌어 나치의 폭압으로부터 유럽을 구한 영웅이면서 전후 세계 평화와 인류 발전의 초석이 된 유럽연합과 국제연합을 주창한 선지자이기도 하다. 그뿐 아니라 소설, 역사서, 수필집 등 총 72권의 책을 저술했고, 총리 재직 중인 1953년에는 자신의 경험을 토대로 『제2차 세계대전』을 써 노벨문학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하지만 어릴 적 처칠은 말썽꾸러기에다 머리가 나빠 아버지에게 “전혀 쓸모없는 놈”으로 낙인찍혔고 바람둥이 어머니에게는 제대로 사랑을 받지 못하고 자랐다. 부유한 명문가의 아들로 태어났으나 반항적 기질에 언어 장애가 있었고, 거기다 공부도 못해 공립 학교에 꼴찌로 겨우 입학할 정도였다. 그러니 명문 대학은 아예 꿈도 못 꾸었고 “목사가 되기에는 성격이 안 좋고 변호사가 되기에는 머리가 나쁘니 군인밖에는 할 수 없을 것”이라고 본 아버지의 권유로 사관 학교에 응시해 삼수 끝에 겨우 들어갔다. 그랬던 그가 오늘날 영국 국민에게 “불굴의 용기와 의지를 지닌 위대한 영국인”으로 칭송받는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젊을 때 쿠바, 인도, 남아공 등의 전쟁터에서 군인이자 종군 기자로 포화 속을 뛰어다니다 포로가 되어 수차례 죽을 고비를 넘기기도 하고 정치가로서 몇 번이나 낙선과 좌절을 맛보기도 하면서, 타고난 의지와 용기를 더욱 강하게 단련했던 것이다. “한 번 치를 때마다 목숨이 한 달씩 줄어드는 것” 같은 선거를 열네 번이나 치렀던 그는 “곤경이 겹친다는 것은 곧 승리할 좋은 기회가 왔다는 증거”라 여기며 역경을 헤쳐나가곤 했다. 정원가 처칠 92세까지 장수한 처칠은 여러 집을 옮겨다니며 살았다. 시골의 한적한 집을 구해 전원생활을 맛보기도 했고 런던시내의 아파트에서 살기도 했다. 정치적으로 입지를 다진 후에는 장관으로서 혹은 수상으로서 관저에 살기도 했다. “인간이 건물을 만들지만, 건물이 다시 인간을 만든다”라고 말하면서 환경을 중요시했던 처칠이니 가족을 위한 집에도 남다른 의미를 부여했음직하다. 그의 생애에서 가장 의미 있는 집을 들자면 단연 블레넘과 차트웰이라 할 수 있다. 전자가 그에게 명문가로서의 자부심과 존재감을 준 곳이라면, 후자는 정서적 유대감과 가족애의 산실이라고 할 수 있다. 짧게 거주하기는 했지만 첫 번째 시골집이었던 룰렌덴도 정원가로서 그의 이력에서 빼놓을 수 없는 곳이다. ...(중략)... * 환경과조경 366호(2018년 10월호) 수록본 일부 성종상은 서울대학교에서 조경을 공부한 이래 줄곧 조경가의 길을 걷고 있으며, 지금은 대학에서 조경을 가르치고 있다. 주요 작품으로는 선유도공원 계획 및 설계, 용산공원 기본구상, 2013 순천만국제정원박람회장 마스터플랜, 천리포수목원 입구정원 설계 등이 있다. 최근에는 한국 풍토 속 장소와 풍경의 의미를 읽어내고 그것을 토대로 풍요롭고 건강한 삶을 위한 조건으로서 조경 공간이 지닌 가능성과 효용을 실현하려 애쓰고 있다.
[이미지 스케이프] 녹차 밭 우주
어둠은 상상력을 자극합니다. 보이지 않는 결핍이 때로는 더 많은 것을 상상하게 하는 아이러니를 만듭니다. 동굴 카페와 녹차 밭으로 유명한 제주도의 한 농장에서 빛을 주제로 하는 LAF(Light Art Festa)를 선보이고 있습니다. 낮 동안에 평온하기만 하던 녹차 밭이 어둠이 내리고 빛이 들어오면 환상적인 야외 전시 공간으로 탈바꿈하는 거지요. 제가 이곳에 도착한 건 해가 지기 한 시간 전쯤이었습니다. 넓은 녹차 밭에 띄엄띄엄 놓인 설치물들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녹색에 대비되는 원색의 설치물이 보기에 좋았고, 멀리 보이는 붉은 노을도 참 멋졌습니다. 자연을 배경으로 하는 야외 전시는 이런 뜻밖의 재미를 느끼게 하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조명은 언제 들어오지? 8시에 전체 점등이 된다는 안내를 듣고 한참 지루한 시간을 보냈습니다. 드디어 8시. 사이렌 소리에 맞춰 전시물에 조명이 들어왔습니다. 와! 감탄사가 여기저기서 흘러나옵니다. 해지기 전에 보던 모습과는 전혀 다른 세상이 펼쳐졌거든요. 하나둘 나타나는 조명 설치 작품에 여기저기 탄성이 나오고, 가족들과 연인들은 추억을 담기 위해 사진 찍느라 바쁩니다. 전체적으로 너무 어두워 사진 찍기는 정말 어려웠습니다만. ..(중략)... * 환경과조경 366호(2018년 10월호) 수록본 일부 주신하는 서울대학교 조경학과를 거쳐 같은 학과 대학원에서 석사와 박사 학위를 받았다. 토문엔지니어링, 가원조경, 도시건축 소도에서 조경과 도시계획 실무를 담당한 바 있으며, 현재 서울여자대학교 원예생명조경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조경 계획과 경관 계획에 학문적 관심을 두고 있다.
[시네마 스케이프] 서치
유튜브엔 없는 게 없다.자잘한 생활 상식부터 명사 강연에 이르기까지15분 내외의 짧은 동영상이 내가 원하는 정보뿐 아니라 앞으로 무엇을 궁금해할지도 예측해 준다.귀 얇기 대회가 있다면 대한민국 최고상을 받을 거라는 한 측근의 말대로 매번 구글의 친절한 권유를 뿌리치지 못한다.그렇게 얻은 개인 정보를 활용해 도시를 건설하는 시대다.영어 회화에 도움이 될까 싶어 유튜브에서 미드를 보다가 월드컵 시즌에 축구 영상을 몇 번 찾아 봤더니 영어와 축구가 결합된 영상까지 추천해 준다.기성용과 손흥민의 영국식 영어 발음을 이렇게 진지하게 듣게 될 줄이야. 가까운 미래를 그린 영화‘그녀Her’(2014)에서 주인공은 인공 지능 운영 체계와 소통한다.하드 드라이브 접근을 수락하자0.02초 만에 메일을 포함한 온갖 정보를 분석해서 주인공의 상태와 주변 인물 탐색을 마친다.몇 년 전 이 영화를 볼 때만 해도 신기하게 느껴졌는데 이젠 불가능한 일도 아닌 것 같다.은행 잔고와 쇼핑 품목과 일기장은 비밀 서랍이 아니라 내가 모르는 어느 서버를 떠돌고 있다.그러고 보니 싸이월드에 차곡차곡 모아둔 기억들은 언제 복원될지 궁금하다. 영화‘서치’는 가만히 앉아서도 실종 사건을 파헤칠 수 있다는 것을 보여 준다.노트북,휴대폰,뉴스, CCTV,내비게이션,개인 방송 등 동시대에 동원할 수 있는 온갖 디지털 기기의 화면을 통해 영화가 처음부터 끝까지 전개된다.문자,화상 통화,소셜 미디어처럼 우리가 매일 접하는 장치를 이용해 진실에 도달하는 과정은, ‘미션 임파서블’의 톰 크루즈가 헬리콥터를 손수 운전하면서 벌이는 액션과는 또 다른 긴장감을 불러일으킨다.오히려‘파서블’한 현실감이 더 두렵게 느껴진다. ..(중략)... *환경과조경366호(2018년10월호)수록본 일부 서영애는 조경을 전공했고,일하고 공부하고 가르치고 있다.내가 아는 한20대는 가상의 세계에서 카페를 운영하고 있다.매일 새로운 메뉴를 개발하고 매장을 확장하며 최고급 인테리어와 비싼 화분으로 치장하느라 틈만 나면 태블릿PC를 들여다보고 있다.그렇게 노력한 덕분에 그녀가 속한 리그에서 세계1위를 차지했다.자신의 진짜 방이나 좀 치우면 더 바랄 게 없겠다.
플로팅 아일랜드
지난 5월부터 9월까지 열린 ‘2018 벨기에 브뤼헤 트리엔날레(Triennale Brugge)’에서 건축사사무소 OBBA(이하OBBA)가 한국 건축가로는 처음 초청되어 설치 작품을 선보였다. 이번 트리엔날레의 주제는 리퀴드 시티(liquid city)로, OBBA는 수면 위에서 휴식과 놀이를 즐길 수 있는 파빌리온 ‘플로팅 아일랜드(The Floating Island)’를 조성했다. 알파벳 S 두 개를 이어 놓은 모양의 데크에 흰색 로프를 입체적으로 설치하여 방문객의 호기심을 자극하고 운하 경관에 활기를 더했다. 운하에 일어난 작은 변화 북부의 베네치아라고 불리는 브뤼헤는 중세의 아름다운 구시가지 모습을 잘 간직하고 있어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도시다. 도시를 관통하는 운하는 잘 보존된 건축물과 어우러지면서 브뤼헤 특유의 아름다운 풍경을 만들어 낸다. OBBA는 이 아름다운 풍경에 작은 변화를 일으키고자 했다. ...(중략)... * 환경과조경 366호(2018년 10월호) 수록본 일부
가을을 담은 에버랜드 정원
화가의 손길로 새롭게 태어난듯 변화무쌍한 구름과 맑고 선선한 바람이 좋은 가을엔 여행, 산책, 로맨스, 희망 같은 단어가 떠오른다. 또 가을 하면 빼놓을 수 없는 것이 바로 가을꽃 가득한 정원 나들이다. 날씨로 보나 꽃의 종류로 보나 가을 정원은 봄만큼이나 특별하고 아름답다. 에버랜드는 매년 계절의 변화에 따라 극적인 경관의 변화를 체험할 수 있는 꽃 축제를 기획해 왔다. 그리고 이번 가을 에버랜드는 특별한 변신을 시도했다. ‘가드너의 하우스’ 주변에는 낭만적 분위기의 ‘코티지 가든(Cottage Garden)’을, 하우스의 울타리 바깥쪽에는 아기자기한 ‘키친 가든(Kitchen Garden)’을, 하우스에서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곳엔 초원의 풍경을 담은 ‘메도우 가든(Meadow Garden)’을 조성했다. 많은 사람이 꿈꿔온 정원을 하나로 묶은 종합 선물 세트 같은 에버랜드의 가을 정원은 10월 31일까지 선보일 예정이다. 코티지 가든 영국에서 유래한 코티지 가든은 비정형적 디자인에 전통적인 소재를 사용하고 관상용 식물과 식용 작물을 혼합해 밀도 높게 식재하는 것이 특징이다. 오래 전 초창기의 코티지 가든은 보다 실용적이고 소박했다. 집 주변에는 주로 먹을 수 있는 채소, 허브, 과실수를 심고 꽃은 그다지 많지 않았다. 1870년대에 들어서 코티지 가든은 급격한 산업화를 비판하고 순수 예술가의 손길로 탄생한 자연의 형태를 닮은 예술 작품을 찬양하는 ‘아트 앤 크래프트(Arts and Crafts)’ 운동의 영향으로 새로운 스타일로 거듭났다. ...(중략)... * 환경과조경 366호(2018년 10월호) 수록본 일부 박원순은 삼성물산 에버랜드리조트 식물컨텐츠그룹 연출 파트에서 일하고 있다. 대학교를 졸업한 뒤 직접 정원을 가꾸고 싶다는 열망으로 여미지식물원과 펜실베이니아 롱우드가든에서 가드닝을 공부했다. 지난해 11월에는 롱우드가든 국제정원사 양성 과정에서 경험한 내용을 바탕으로 『나는 가드너입니다』(2017, 민음사)를 펴냈다.
[편집자의 서재] 파도가 바다의 일이라면
동백꽃, 해안가 경사지의 다랑논, 이따금씩 마을을 뒤덮는 해무, 은은하게 밤을 밝히는 내항의 불빛, 부두에 정박한 배에서 울리는 기적 소리, 부두에 줄지어 있는 하역 크레인, 버려진 조선소 공장 단지. 『파도가 바다의 일이라면』에서 그려지는 풍경은 한반도 남단의 항구 도시를 떠오르게 한다. 책 속 주요 배경인 진남은 가상의 항구 도시로, 작가는 한 인터뷰에서 통영을 염두에 두고 이 소설을 썼다고 전했다. 진남은 통영의 옛 이름이기도 하다. “파도가 바다의 일이라면 너를 생각하는 것은 나의 일이었다.” 연인을 향한 고백처럼 들리는 이 문장에는 딸을 떠나보낸 엄마의 절절한 마음이 담겼다. 한적한 바닷가 마을을 배경으로 펼쳐지는 이야기는 생후 6개월 만에 미국으로 보내진 입양아가 친모를 찾기 위해 한국으로 돌아온다는 데서 시작된다. 양어머니의 죽음과 양아버지의 재혼으로 인해 주인공 카밀라는 또 한 번 세상에 홀로 던져진다. 그는 양아버지로부터 유년 시절의 추억이 담긴 여섯 개의 상자를 받는데, 상자에는 주인공이 어렸을 때부터 가지고 있던 온갖 잡다한 물건이 담겨 있었다. 카밀라는 상자 속 물건에 대한 단상을 글로 쓰기 시작하고, 이는 운 좋게 책으로 출간된다. 그의 출판사 에이전트는 책 속 한 장의 사진을 보고 새로운 프로젝트를 제안한다. 에이전트가 주목한 것은 동백꽃 앞에 갓난아이를 안고 서 있는 젊은 여자의 사진이었다. 책을 쓸 당시 카밀라는 사진 속 아이가 자신이라고 짐작했지만, 사진에 담긴 이야기를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몰라 ‘제대로 설명할 수는 없지만, 이 세계가 우리 생각보다 좀 더 괜찮은 곳이라는 사실을 말해주는 사진(1988년경)’이라는 제목만 붙여 놓았었다. 카밀라는 비어 있는 삶의 시작점을 채우기 위해 입양 기록부에 적혀 있던 도시 진남으로 떠난다. 진남에 도착해 친모에 관한 기록을 찾아다니던 그는 생각한 것보다 무겁고 충격적인 진실을 마주한다. 그의 엄마는 17살의 미혼모였으며, 친모가 다녔던 진남 여고의 교장은 학교 뒤편의 열녀비를 자랑스럽게 보여 주며 그런 학생은 없었다고 무언가를 감추기에만 급급하다. 그러던 중 친모의 친구라 주장하는 김미옥의 등장으로 이야기는 새로운 국면을 맞이한다. 카밀라는 김미옥을 통해 엄마의 이름이 정지은이라는 것과 정지은이 딸을 입양 보내고 얼마 안 되어 자살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소설은 입양아의 생모 찾기로 시작해 25년 전의 정지은을 둘러싼 비밀스러운 사건을 하나둘씩 드러내면서,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 일어나는 불가피한 소통의 문제를 이야기한다. 작은 오해가 낳은 비극을 말한다는 점에서 『파도가 바다의 일이라면』은 이언 매큐언의 『속죄』 (문학동네, 2003)와 닮았다. 진남 지역 생활사 박물관인‘바람의 말 아카이브’는 이러한 주제를 직접적으로 드러낸다. 지역의 역사나 자랑거리가 아닌 진남을 떠도는 사소한 풍문, 조선소를 운영하다 몰락한 일가의 사연과 억울하게 죽은 사람의 유품 등을 전시해 놓은 이곳은 사건의 중요한 단서가 집약된 공간이다. 바람의 말 아카이브는 풀리지 않은 오해, 전달되지 못한 이야기를 소설 속 인물과 독자에게 전하면서 엉켜있던 실타래를 풀어간다. “우리는 이제 안다. 이 세상에는 아무리 최선을 다한다고 해도 이룰 수 없는 일들이 수두룩하다는 사실을. 아니, 거의 대부분의 일들이 그렇다는 걸. 그렇다면 꿈꾸었으나 이루지 못한 일들은, 사랑했으나 내 것이 될 수 없었던 것들은 모두 어디로 간 것일까? 바람의 말 아카이브에 그가 수집하고 싶었던 것들이 바로 그런 것들이었다. 일어날 수도 있었던, 하지만 끝내 이뤄지지 않은 일들을 들려주는 이야기들, 사람과 사람 사이의 심연을 건너오지 못하고 먼지처럼 흩어진 고통과 슬픔의 기억들, 어떤 일들이 있었는지 말하지 않고 빛바램과 손때와 상처와 잘못 그은 선 같은 것만 보여줄 뿐인 물건들. 농부가 풍년을 기원하듯이, 두루미가 습지를 찾아가듯이, 이야기는 끝까지 들려지기를 갈망한다.1” 이번 달에 소개되는 ‘통영 폐조선소 도시재생 마스터플랜 국제공모’의 당선작 ‘통영 캠프 마레’가 그리는 신아조선소 부지의 미래는 메이커 시티를 콘셉트로 한 공예·예술 중심의 도시다. 설계안 속 화려하게 단장한 대상지를 보고 있으면 계속되지 못한 꿈과 흩어져버린 과거의 모습이 자꾸만 떠오른다. 새로운 도시가 들어서면 몰락한 폐조선소의 이야기는 어디로 가게 될까? 새롭게 바뀔 통영에 대한 기대와 함께, 설계안에 미처 닿지 못했을지도 모르는 이야기들을 막연히 생각해본다. 각주 1. 김연수, 『파도가 바다의 일이라면』, 문학동네, 2015, pp.252~253.
[CODA] 졸업 작품을 추억하며
바람과 햇살이 잔잔해지는 봄이면 색색의 마커로 꾸민 벽보가 붙었다. 눈길 한 번 두었다 가는 개강 총회 알림 벽보와 달리 전지 크기의 종이 앞에는 한 무리의 사람들이 머무르곤 했는데, 도우미로서 반년의 시간을 함께할 졸업 작품 팀을 정하기 위해서였다. 삼분의 일 지점을 세로로 가르는 선 왼편에는 당시 유행한 영화나 노래의 제목, 지금 쓰면 늙은이 취급을 받을 줄임말 등 각양각색의 팀명이 적혀 있었다. 나름대로 정체성을 표현한 팀도 있었지만, 졸업 작품과 상관없이 웃기려는 의도가 다분한 팀이나 남들도 다 하니 우리도 팀명 하나는 있어야겠다 싶어 적당히 구색을 맞춘 팀이 대부분이었다. 개강 총회 다음날이면 어떤 팀의 홍보 전략이 가장 효과적이었는지 드러났다. 팀명 옆 공란에 가장 많은 이름이 적힌 팀이 승자였다. 이름의 수는 모델링 작업을 도와줄 손길(=밥을 사줘야 할 사람)이 많다는 것을 보여주는 일종의 지표였다. 어쭙잖게 자리 잡은 품앗이 정신으로 도우미끼리 다음엔 내가 도우미가 되어주마 하는 약속을 주고받아, 도우미가 되지 못한 학생들이 불안에 빠지기도 했다. 기껏해야 우드락 자르기나 철사와 스펀지로 나무 모형 만들기 따위의 일을 했지만 꽤 즐거웠고, 이는 대학 생활의 골칫덩이로 손꼽히는 팀플에 대한 몇 안 되는 좋은 기억으로 남았다. 꾸역꾸역 밀려드는 과제를 해결하다 보니 삼 년이라는 시간이 순식간이었다. 졸업 작품은 그간의 설계 스튜디오와는 출발점부터 그 무게가 달랐다. 우선 대상지를 직접 선정해야 했다. 줄곧 타인이 정해준 시간표만 받아들다 갑자기 수강 신청시스템을 맞닥뜨린 신입생이 된 기분을 다시 맛봤다. 우리 팀의 대상지는 회현 제2시민아파트, 각종 예능이나 영화 촬영지로 사용되어 일명 남산시민아파트라 불리며 유명세를 탄 곳이다. 이미 관광객으로 몸살을 앓은 건물 곳곳에 출입과 사진 촬영을 금한다는 안내판이 걸려 있었다. 덕분에 가뜩이나 새가슴인 나는 답사 내내 쫓기는 듯한 기분에 시달려야 했다. 몇 차례의 답사로 조금 익숙해진 뒤에는 경비 아저씨와(박카스 한 박스로) 안면도 트고, 생전 내본 적 없는 용기로 인터뷰를 시도하기도 했다. 그때마다 대상지가 ‘실재’한다는 사실을 생생하게 느꼈다. 그래서 더 어려웠다. 내가 만든 도면 위에 현장에서 만난 사람들이 오가는 모습을 상상하니 선 하나 긋기가 쉽지 않았다. 집에 모셔둔 트레이싱지와 제도용 샤프를 버린 지도 오랜데, 가을이면 졸업 작품을 하던 때가 생각난다. 『환경과조경』이 ‘대한민국 환경조경대전’(이하 환경조경대전)을 공동 주최하며 접수와 심사 준비를 담당하고 있기 때문이다. 접수 문의 전화를 받고 있노라면 졸업 작품을 공모전의 취지에 맞게 마름질하던 내 모습이 떠오른다. 2년 전만 해도 접수 마감 날이면 패널과 모형을 든 학생들이 사무실 문을 두드리곤 했는데, 공모 요강이 바뀌며 그 풍경도 조금 변했다. 지난 2017년, 환경조경대전은 지방에 있는 학생들의 부담을 덜고자 온라인 접수로 출품 방식을 바꾸었다. 패널을 뽑아 폼보드에 붙이고 기차에 올라타는 대신, 마우스 클릭 몇 번이면 작품 접수가 완료된다. 패널보다야 작지만 버스나 지하철에 들고 타기 버겁던 모형(80×50×60cm)은 작품을 소개할 수 있는 영상으로 대체되었다. 최근 빠르게 변하고 있는 설계 환경을 반영해 새로운 설계 매체를 다루게 하려는 의도다. 여러모로 출품 방법을 간소화했으니 접수에 드는 수고로움을 조금은 덜 수 있겠다고 착각을 했다. 저녁 6시, 마감 시간이 가까워져 오면 편집부는 전화기 앞을 떠날 수가 없다. 작품 접수가 완료되었는지 확인하려는 전화 응대에 쉴 틈이 없다. 차가 막힐 일도 길을 잃을 리도 없으니 마감 시간을 여유롭게 앞두고 모든 작품이 접수될 것이라는 기대는 어림도 없는 소리였다. 출품작의 삼분의 일가량이 마감 한 시간 전부터 접수되기 시작했다. 5시 59분에 작품을 보낸 직후, 접수 확인전화를 걸어오는 사람도 있다. 오랜 시간을 쏟아 부은 작품이 무사히 접수되었는지 걱정하는 마음은 이해하지만, 모든 제출 자료가 공모 요강을 따랐는지 검토한 뒤 출품 완료 문자를 보내야 하는 기자들의 마음은 더 타들어 간다. 심사 준비 역시 만만치 않다. 파일 형식으로 작품을 접수한 김에 출력물 대신 노트북으로 심사를 진행해보려 했지만 실패했다. 패널 크기가 가로 90cm, 세로 180cm에 달하니 아무리 커봐야 15인치를 넘지 않는 노트북 모니터로는 설계 내용을 한 번에 파악할 수가 없다. 결국 플로터가 고생이다. 크기를 줄여 출력된 패널들을 벽에 붙이고 있으려니 의아해졌다. 디지털 기술이 날로 발전하는 현재 과연 패널은 작품을 설명하기에 가장 적합한 수단인가. 또 일반적으로 조경 설계공모에서 요구하는 90×180cm, A0, A1 등의 규격은 적당한가. 궁금함에 최근 소개한 해외 설계공모의 지침을 살펴보니, 총 3단계로 진행된 ‘리질리언트 바이 디자인’(『환경과조경』 2018년 7월호 pp.12~57 참조)의 경우 공모 1단계에서 설계 콘셉트를 담은 2~4쪽 분량의 제안서와 창의적이고 혁신적인 비전과 접근법을 다룬 3~5분 정도의 동영상을 요구했다. 참여 팀의 역량을 파악하는 단계이긴 하지만 이를 동영상으로 평가하는 점이 신선하다. ‘영국 홀로코스트 메모리얼 국제설계공모’(『환경과조경』 2018년 3월호 pp.82~89 참조)의 제출물은 A1 크기의 디자인 보드와 모델, 설계 설명서였다. 단, 프로젝트에 대한 접근 방식과 디자인 콘셉트를 보여줄 수 있는 25장 내외의 프리젠테이션 파일을 별도로 제출해야 했다. 패널의 목표는 심사위원 또는 클라이언트에게 작품의 콘셉트와 의도를 사진이나 그림 자료를 통해 효과적으로 보여주는 데 있다. 기술이 계속 발전한다면, 앞으로 우리는 인쇄물보다 전자 기기를 통해 작품을 설명하게 되지 않을까? 그에 따라 공모전에 제출하는 자료 역시 달라져야 하지 않는지 생각해볼 일이다. 이번 환경조경대전 시상식은 10월 말 마포 문화비축기지 T2 전시장에서 진행될 예정이다. ‘대한민국 조경문화제’와 함께 진행되어 풍성한 볼거리를 함께 즐길 수 있으니 많은 참여를 부탁드린다. 전시된 패널과 더불어 상영되는 수상 팀이 제출한 동영상을 감상하며 앞으로 바뀌어 나갈 공모전의 풍경을 그려 보시길, 또 환경조경대전에 제안할 좋은 아이디어가 있다면 언제든 『환경과조경』의 문을 두드려 주시길 바란다.
[PRODUCT] 도심 속 안락한 쉼을 선사하는 ‘그네형 퍼걸러’
조경 시설물, 조합 놀이대, 실내외 운동 기구의 제조·생산부터 공급과 사후 관리까지 진행하는 오리온햄프로orionhampro는 독자적인 노하우와 기술력으로 품질이 좋은 헬스·레저·스포츠 용품을 만드는 데 앞장서 왔다. 운동 시설물을 결합한 퍼걸러형 종합 운동 기구, 목재와 철제의 조화가 돋보이는 디자인 퍼걸러, 자연을 테마로 한 조합 놀이대, 소음 및 동결 현상을 보완한 먼지떨이기 등 야외에서 편리하고 안전하게 이용할 수 있는 다양한 제품을 선보이고 있다. 디자인 퍼걸러에 흔들의자를 결합한 ‘그네형 퍼걸러’는 나뭇잎의 잎맥에서 모티브를 얻어 디자인한 지붕이 특징적이며, 덩굴 식물이 자랄 수 있는 구조물을 더한 친환경적 제품이다. 자외선과 습기에 강한 소재로 제작되어 내구성이 높고 유지·관리도 용이하다. 야외 공간에서 안락하게 쉴 수 있도록 돕는 이 제품을 통해 도심 속에서 여유로운 일상을 보낼 수 있을 것이다. TEL. 02-2602-5750 WEB. www.ehampr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