폴더관리
폴더명
스크랩
  • [어떤 디자인 오피스] CA조경기술사사무소 시간과 사람, 도시 사이를 연결하는 장소를 디자인하다
    우리의 시간들 CA의 흔적들 2003년 12월 1일 혹독하게 추운 날, 13명의 사람들이 강남 어느 건물 4층에 모였다. 일부는 학교를 바로 졸업하거나 가르치는 일을 하다 오고, 일부는 다른 설계사무소에서, 또 일부는 설계와 전혀 관계없는 회사에 다니다 왔다. CA조경기술사사무소(CA Landscape Design Office)(이하 CA)의 처음은 일반적인 설계사무실의 고루한 루틴보다는 새로운 설계 접근을 원하는 진보적 사고의 사람들 13명으로 시작됐다. 그로부터 CA는 한국의 조경 분야에서 가장 독창적이고 선도적이며, 때로는 실험적인 접근을 주저하지 않는 최고의 조경설계사무소의 하나로 성장해 왔다. 우리가 추구하는 독창성은 펜타 철학(Penta Philosophy)이란 기치 아래 철학이 뚜렷하고 소신 있는 설계 전략으로 발전하고 응용되어 왔다. CA는 건축이나 토목 등 인접 분야와 수동적이 아닌 대등하고 수평적인 소통의 설계를 통해 결과적으로 더 강하고 좋은 설계를 하는 스튜디오로 알려져 있다. 상당수의 저명한 건축설계사무소 및 스튜디오와 협업을 했거나 현재 하고 있다. 20년 가까운 세월 동안 CA가 이룬 성과는 매우 많다. 몇 개만 열거해 보면, 청계천 복원의 총괄 조경가 수행, 건축설계사무소 KPF와 같이 작업한 세운상가 국제설계공모(2006) 당선, 무주 태권도공원 턴키설계공모(2007) 당선, 건축가 마크 맥Marc Mac과 같이 작업한 판교 월든힐스 아파트 단지 국제설계공모(2008) 당선, 진천 국가대표 제2선수촌 턴키설계공모(2010), 새로운 광화문광장 국제설계공모(2019) 당선 등 다 언급하기가 쉽지 않다. 공동주택에 집중하는 한국의 특수한 상황 속에서, 주거 프로젝트에서도 탁월한 성과를 보이고 있다. 2017년 완공된 반포 아크로리버파크는 현재까지 한국 아파트 조경 중 가장 잘된 설계라는 평을 듣고 있다. 보다 참신하고, 보다 창의적이며, 보다 뜨거운 열정으로 프로젝트를 보고자 하는 우리의 노력은 앞으로도 계속될 예정이다. (7,250일차 진양교) 플러스 알파를 묻다 2003년 12월 1일 CA가 시작되는 날은 겨울이었지만, 개성 넘치는 13명의 열정이 함께 모여 있어서 그런지 그리 춥진 않았다. 보다 진지하고 치열했으며, 때론 고단하면서 즐거웠던 나날들이 어느덧 7,250일을 길고도 짧게 채워왔다. 이제는 플러스 알파를 고민해 본다. 대상지에 어울리는 그럴듯한 이름이 무엇인가를 고민하는 것보다, 또한 이제는 희미해진 장소성을 억지로 캐내고 만들어 내는 작업보다, 오늘날 이곳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가장 유용한 행태를 담아내는 공간의 본질을 바탕으로 더 절제되고, 더 낯선 환경을 연출하는 것이 디자인이라 생각한다. (7,250일차 정문정) CA의 어제와 오늘 2003년 창립 멤버로 시작했고, 잠시 해외에 머물다 다시 돌아왔다. 내 기억 속의 CA는 한마디로 정의내리기 어려운 다양한 모습을 가지고 있었다. 멋진 CA의 모습도 있었지만, 부족했던 CA의 모습도 많았다. 그렇다면 지금은 어떨까. 그 이야기를 몇몇 경험자들이 아닌 모두에게 들어보고 싶었다. 그런 생각으로 준비했다. 지금의 CA는 어떤 모습일까. (5,060일차 조용준) CA 어게인 개인적인 일로 두 번 CA를 떠났다가 지금은 세 번째 CA에서 지내고 있다. 그 때문인지 간혹 이런 질문을 받는다. 왜 다시 CA냐 묻는다면 답은 간단하다. CA에 있을 때 편안하고 하는 일에 자부심과 즐거움을 느끼기 때문이다. CA가 나라는 사람을 잘 알고 감사하게도 기회를 주는 곳이기 때문이다. 그 바탕에는 늘 사람이 있었다. 각자의 자리를 무게감 있게 지키며 언제나 밝은 얼굴로 맞이해주는 곳, 그 안에서 깊이 있는 디자인 탐구와 자유로운 토론이 가능한, 사람이 중심이 되는 그런 곳이다. (3,676일차 소진) 치열한 고민의 시간 2021년 여름 래미안 원베일리 수주전에 뛰어들어 당선되었다. 설계 기간 동안 시행사와 발주처를 설득하기 위해 팀원들과 공간에 대한 치열한 고민을 하면서 여러 시행착오를 겪었던 기억이 난다. 최근 준공된 모습을 보니 설계하면서 고민했던 시간과 노력을 보상받은 것 같아 뿌듯했다. 설계에서부터 시공까지 모든 과정을 경험하며 결과물을 볼 수 있어서 이번 프로젝트가 더 인상 깊다. (1,910일차 권범영) 즐거운 일상 즐거운 일이 매일 있다. 보기만 해도 웃음이 나는 옆자리 동료와의 수다도, 적지 않은 시간 함께하며 남은 사진 속 순간들도, 다 즐겁다. 그렇지만 가장 즐거운 순간은 나 자신이 제대로 쓰임 받고 있다고 느낄 때다. 내가 잘할 수 있는 일을 하고 그 결과로 우리 팀과 회사가 성장하는 데 기여했다고 느낄 때, 행복감이 찾아온다. (1,619일차 이주영) 공간의 감동 몇 년을 노력한 새로운 광화문광장 프로젝트가 끝나고, 처음으로 아내와 아이를 데리고 현장으로 갔다. 아내에게는 많은 에피소드와 현장 뒷이야기들을 풀어놓았고, 갓 돌이 지난 아이와 물놀이를 하며 그동안 못했던 아빠 노릇을 했다. 설계자로서 많은 사람들이 공간을 즐기는 모습을 보는 감동이 있었지만, 그중 한 가족이 되어 느낀 경험이 지금까지 소중하게 자리 잡 았다. (1,587일차 강인화) CA가 CA했다 다양한 특수부대가 서로 미션으로 경합하는 강철부대라는 프로그램이 있다. 거기에 나오는 말 중 특정 부대가 미션 수행을 잘 했을 때, “UDT가 UDT”했다는 말을 한다. 4년간 몸담으며 느낀 건 “CA는 언제나 CA”한다. 그만큼 믿을 만하고 잘한다는 이야기다. (1,380일차 엄성현) 새로운 휴식 시간 어느날 회사에 화분이 늘어난 것을 계기로 각 소별로 한 명씩 나를 포함한 총 세 명의 인원이 화분에 물을 주는 담당을 맡게 되어 새로운 식물 커뮤니티가 생겼다. 식물 키우는 걸 좋아하는 두 명의 친구와 함께 키우다보니 일주일에 한 번 오는 이 시간이 적당한 취미 생활이자 그 주의 새로운 휴식 시간으로 좋은 기억을 남긴다. (1,343일차 정윤석) 사람의 힘, 살아갈 힘 ‘딱 3년만 배우고 돌아가자!’는 굳은 결심으로 상경한 지 어언 4년차. 대리로 입사해 막내 팀장이 된 지금. 체력적, 정신적으로 힘든 날들도 있었지만 동료를 넘어 가족 같은 팀원들 덕분에 힘들지 않게 흘려 보낼 수 있었다. 다양한 사람들이 허물없이 저마다의 생각과 이야기를 나누며 언제든 발 벗고 나서서 나의 일처럼 마음을 써주는 열정 가득한 곳. 내가 오늘도 제자리를 지킬 수 있는 힘이다. (1,313일차 박상희) 점심의 산책 긴 점심시간은 CA의 장점이다. 개인적으로는 점심시간이 길어 산책하는 게 일상이 되었다. 여름에는 시원한 느티나무 길을 왕복하고, 남은 계절에는 재개발 예정인 뚝섬과 성수동 일대를 걷는다. (1,125일차 이상민) CA와의 시작 잠시 쉬는 동안 CA란 회사의 가치관이 궁금했고, 새로운 택지 현장이, 새로운 사람과 조경을 위한 배움이 그리웠다. 그래서 CA에서 입사 제안이 왔을 때, 고민 없이 이민 가방을 준비하고 그렇게 3년간 주말 가족이 되었다. 입사 무렵 태어난 아기가 벌써 내년이면 4세가 되고 나는 두 아이의 엄마가 되었다. 그렇게 엄마로서, 조경가로서 새로운 삶이 시작되었다. (1,081일차 박주희) 그해 여름 약 3년의 시간을 돌이켜 보면, 첫 설계였던 광화문광장이 시공되면서 힘든 순간들에 대한 위로를 받았던 기억이 있다. 그해 여름 KT 현장 식재 공사를 진행하며 느낀 노동의 만족감도 좋은 추억이다. 그리고 가을, 새만금 실시설계 도면을 작성했다. 완성될 그날이 기대된다. (1,006일차 이지현) 팀워크와 커뮤니케이션 1시간 30분이라는 긴 점심시간은 업무 중 나누지 못한 다양한 이야기를 나눌 수 있어 팀워크와 커뮤니케이션에 큰 도움이 된다. 또한 성수동의 다양한 카페 선택지는 매일매일 새로운 공간에서 딱딱하지 않은 즐겁고 편안한 이야기를 나눌 수 있어 좋다. (1,005일차 장시영) 고뇌와 성취 사이 CA에 다니는 것이 솔직히 쉽지는 않다. 자신이 가진 최선의 것을 쥐어짜내 최고를 만들고, 이를 평가 받는다. 또한 생각보다 초라하고 보잘것없는 나를 마주하는 날도 적지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완성된 프로젝트를 마주할 때, 심지어 그 결과가 좋을 때 밀려오는 성취감은 모든 고통을 잊게 한다. (886일차 신원재) 우리의 작업 방식 좋은 사람들과의 다양한 협업이 즐겁다. 인천계양, 고양창릉 같은 대규모의 택지 설계공모는 새로 공모팀을 꾸려 작업했는데, 팀원들과 아이디어를 나누며 같은 호흡으로 달린 기억이 있다. 덕분에 결과와 상관없이 과정까지 즐길 수 있었다. (660일차 오혜지) 디자이너에게 CA는 3D 모델링부터 렌더링까지 모형과 이미지를 구현하기 위한 툴과 기술들, 챗 GPT, 미드저니mid journey와 같은 생성형 AI까지 CA는 뒤쳐지지 않고 발전하며 더욱 창의적이고 멋진 디자인을 위해 새로운 시도를 계속한다. CA는 열정을 가진 디자이너들에게 다양한 배움의 기회를 얻을 수 있는 도전의 장인 것 같다. (542일차 김병철) 디테일과 열정 입사 후 현재까지 본 결과물들은 항상 완성도가 높고 깔끔하게 정돈되어 있다. 이는 작은 디테일 하나하나 놓치지 않는 작업자들의 열정과 집착이 있었기에 가능하다. 처음에는 “이런 것까지 신경 쓴다고?”라고 생각했지만 결과를 보면 그 집착이 전체적 완성도를 높여준다는 걸 이제 안다. (461일차 홍병석) 입사 후 변화 다양한 프로젝트를 수행하고 과감한 시도를 격려하는 분위기 속에서 자유롭고 참신한 피드백을 해주는 팀원들과 함께 일하며, 일상 속 다양한 것에 대한 관심이 더욱 많아졌다. 그래서 여행을 다니며, 새로운 영감을 얻고 메인 콘셉트부터 사소한 디테일까지 놓치지 않으려 한다. (439일차 김성일) 입사 전과 입사 후 입사 전 소문으로 듣던 CA는 야근 많고 선임들이 무서운, 그렇지만 크고 다양한 프로젝트를 경험해 볼 수 있는 회사였다. 실제 입사 후 직접 느낀 CA는 크고 다양한 프로젝트를 경험해 볼 수 있는 회사는 맞지만 야근 많고 선임들이 무서운 회사와는 거리가 멀다. 불필요한 야근을 줄이고 합리적으로 일하며, 때마다 각자의 생일을 챙기고 계절별로 다 같이 소풍을 가는 충분했다. 언젠가 나도 나의 디자인이 담긴 공간을 바라보고 더 자부심 있는 조경가가 되고 싶다. (219일차 조혜진) 새로운 시작 여태껏 경험했던 프로젝트와 달리, CA의 다양한 프로젝트와 열린 아이디어 회의 그리고 완성 후 잘 만들어진 공간이 담긴 사진들은 지쳤던 내게 다시 설계를 시작할 수 있는 큰 원동력이 됐다. 잠깐 동안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진행한 강릉 디오션 259 복합개발사업의 외부 공간 설계는 CA 입사 계기가 되었다. (66일차 이지원) 이직할 결심 조경설계를 시작한 지 10년이 넘었다. 이 일을 하면서 지금까지 세상에 기여한 것은 과연 무엇일까. 이 질문에 명쾌한 대답을 할 수 없었다. 이렇게 미지근하게 살다가 죽을 수 없다고 생각했다. 조경 시류를 이끄는 그 한복판에서 일하고 싶었다. 올여름, 나는 CA의 새 식구가 되었다. (65일차 이설화) 26일차 신입이 본 CA CA 합격 소식을 듣고 너무 기뻤지만 한편으로는 첫 사회생활이 조금 두렵기도 했다. 9월 11일, 두근두근 떨리는 CA 첫 출근 날! 회사는 생각했던 딱딱한 분위기가 전혀 아니었고, 경직된 나에게 모두 밝게 인사해 주었다. 많은 질문에도 차근차근 알려주시고, 화목한 팀 분위기에 입사 일주일 만에 적응했다. (26일차 노영현) 편안한 분위기 여러 가지 장점이 있지만 가장 좋은 점은 자유롭고 편안한 분위기라 생각한다. 처음 입사했을 때도 예상보다 훨씬 편안한 분위기라 놀랐고, 덕분에 아이디어 회의나 질문이 있을 때도 편안하게 의견을 제시하고 피드백 받을 수 있다. (34일차 김예준) 최고의 무대 CA는 조경가에게 최고의 무대라고 생각한다. 대학생 시절부터 CA의 프로젝트들을 보며 설계가로 자라고 싶었다. 열심히 했던 학창 시절의 결과물로 CA에 들어왔다. 설계에 진심인 사람들과 함께 일할 수 있어 감사하고 앞으로 설계 능력을 향상시켜 팀에 좋은 영향력을 미치고 싶다. (35일차 김진원) 2004년 설립된 CA조경기술사사무소는 작은 공간의 설계부터 도시 스케일의 계획에 이르는 국내외의 다양한 프로젝트를 수행해왔다. 창의적인 생각으로 새로운 가치를 추구하며, 공공을 위한 의미 있는 장소를 만들고자 한다. www.cadesign.co.kr
  • [모던스케이프] 미화된 전통, 또 하나의 경관
    광화문 월대(月臺)가 2023년 10월 15일 대중에게 공개됐다. 월대 복원 논의는 1990년부터 추진된 경복궁 복원 사업과 궤를 같이했다. 어느 학예사의 눈썰미로 동구릉 구석에 쌓여 있던 부재가 월대의 것임을 알게 되었고, 호암미술관 희원(熙園)에 있던 서수상(瑞獸像)을 기증받은 운까지 따라, 복원의 진정성 측면에서 큰 힘을 실을 수 있게 되었다. 월대 앞 공간은 경관적으로만 보면 나쁘지 않다. 기존에는 사직로가 광화문에 맞닿아 있어 궁궐 주변이 옹색했다면, 지금은 남북으로 48.7m, 동서로 29.7m에 달하는 월대 덕분에 궁궐 정문 주변에 여유 공간이 확보됐다. 광화문 좌우에 있다가 월대 앞으로 옮겨진 해치상은 어도 앞머리를 장식한 서수와 소맷돌, 월대 좌우의 동자주 등 과 함께 조선 정궁의 정 남문으로서 광화문의 위엄과 품격을 높이는 역할을 했다. 하지만 광화문 월대 복원의 필요성이나 고증의 정확성 등 근원적인 문제를 비판하는 의견도 적지 않다. 예부터 월대는 궁궐 전각 앞에 두는 것이지, 광화문처럼 문 앞에 두는 시설은 아니었다. 예외적으로, 1431년 음력 3월 29일, 예조판서가 중국 사신들이 출입하는 광화문 주변이 누추하고 관리들의 하마처(下馬處)가 마땅치 않음을 이유로 광화문에 월대를 조성할 것을 건의한 바 있었지만, 세종은 바쁜 농사철에 백성들을 동원할 수는 없다며 불허했다. 그리고 수백 년이 지나도록 광화문 앞에는 월대가 없었다. 우리가 옛 사진에서 확인할 수 있는 월대는 1866년 음력 3월 3일(고종 3년)에 완공된 것으로, 대원군의 경복궁 중건 사업과 맞물려 있다. 대원군이 경복궁 중건 사업을 추진한 데는 왕의 권위와 위엄을 회복하기 위한 이유가 있었고 광화문의 월대 조성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하지만 공교롭게도 광화문 월대가 위상을 지킬 수 있었던 시간은 길어야 30년 정도였다. 1897년 고종이 대한제국을 선포하면서 경운궁(지금의 덕수궁)을 정궁으로 공식화했기 때문이다. 이번 복원 사업은 월대의 수명만큼이나 오래 걸렸다. 1923년 부설된 전차 선로만 아니었다면 불필요했을 일련의 논의는 도로망 변경에 따른 교통 문제까지 더하여 당분간은 현재진행형일 것이다. 하지만 월대는 경복궁의 온전한 시설로 자리매김하여 종국에는 국가 권위의 계승을 상징하는 요소로 안착할 것이다. *환경과조경427호(2023년 11월호)수록본 일부 참고문헌 신형준, “光化門 ‘月臺’ 복원자료 찾았다”, 「조선일보」 1996년 8월 9일. 노주석, “광화문 월대는 여전히 미완성”, 「파이낸셜뉴스」 2023년 10월 25일. 박종인, “광화문 월대는 없었다: 가짜역사와 시민 편의”, 「조선일보」 2023년 5월 30일. 그림 출처 그림 1. 박세희, “‘왕건의 상징’ 48m×29m 공간…궁궐행사·백성소통 ‘다중 역할’”, 「문화일보」 2023년 5월 2일. 그림 2. 임소정, “100년 만에 다시 걷는 역사의 길…광화문 월대·현판 오늘 공개”, 「MBC 뉴스」 2023년 10월 15일.
  • 바람, 풀, 그리고 정원 2023 서울정원박람회 월드컵공원 하늘공원에서, 10월 6일부터 12일까지
    지난 10월 6일부터 12일(상설 전시는 11월 15일까지)까지, 2023 서울정원박람회가 월드컵공원 하늘공원에서 개최됐다. 이번 정원박람회의 주제는 ‘바람, 풀, 그리고 정원’으로, 개최지인 하늘공원의 억새밭을 떠올리게 한다. 같은 주제로 전문가·학생·시민이 조성한 정원을 선보이고, 정원산업전과 정원문화프로그램을 통해 다양한 볼거리와 즐길거리를 선사했다. 억새밭 사이로 초청정원, 전문 정원 작가들이 선보이는 작가정원, 조경에 관심 있는 학생들이 만든 학생정원, 정원을 좋아하는 일반 시민들이 참여한 모아정원, 이벤트 성격의 소규모 정원인 포토가든 등 40개의 정원이 조성됐다. 초청정원은 2022년 서울시 조경상 대상을 수상한 조용준 소장(CA조경기술사사무소)이 만들었다. 올해 작가정원 금상은 ‘자연과의 조우: 기운생동氣韻生動’의 이상수 소장(스튜디오201)이 차지했다. 이상수는 “설계만 거의 15년을 해왔지만 직접 시공을 하는 건 처음이라 어려운 점도 있었다. 하지만 많은 분이 도움을 주어 수상을 할 수 있었다”며 사무실 식구들과 홍광호 소장(리스케이프), 차용준 소장(지오가든), 안성연 소장(피오니홈앤가든)에게 감사의 인사를 전했다. 이번 정원박람회는 하늘공원의 대표 가을 행사인 서울억새축제(10월 14일~20일)와 함께 열려 정원박람회를 잘 모르는 일반 방문객도 정원 문화를 가볍게 체험하고 갈 수 있는 기회를 제공했다. 오세훈 시장은 “서울의 주거 형태 절반 이상이 아파트이기 때문에 시민들에게 녹지, 정원, 풀, 숲 등의 공간은 로망”이라며 “이런 녹지를 시민들이 일상 속에서 접할 수 있도록 도심 곳곳에 더 많이 만들어 나가는 게 시의 사명이다. 서울정원박람회를 서울시의 대표 문화 관광 상품으로 키워 나가겠다”고 강조했다. 시민들에게 다양한 방식의 여가를 선사한 정원박람회의 정원 중 초청정원과 작가정원을 소개한다. 초청정원, 소리의 정원, 조용준 소리의 정원은 억새 군락 속 드러나지 않는 지름 9m의 콘크리트 원판이다. 1.2m 높이로 띄운 원판은 주변을 바라볼 수 있는 전망대 역할을 하고, 쓰레기 산이었던 하늘공원의 자연과 인공의 소리를 담고 있다. 2023년 7, 8월 두 달 동안 채집한 소리를 세 개 주제로 분류해 정리했다. 소리를 탐구하는 것은 또 다른 부분의 자연을 이해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QR코드를 새긴 11개의 반사판을 원판을 따라 배치했다. 원판의 QR코드를 찍거나 앱스토어를 이용하면 ‘소리의 정원’ 애플리케이션을 다운받아 조용준이 채집한 소리를 들을 수 있다. 원판 중심에는 하늘공원에서 자라는 식물들로 만든 25개의 레진 아트 작품을 설치했다. 소리의 정원에 담긴 다양한 하늘공원의 소리는 땅의 과거와 현재를, 인공과 자연을, 정원과 사람을 잇는 매개체가 되어준다. *환경과조경427호(2023년 11월호)수록본 일부
  • 2023 대구정원박람회 파워풀 대구, 정원과 함께하는 미래도시/대구 금호강 하중도에서, 10월 13일부터 10월 17일까지
    금호강의 가을 정취를 느낄 수 있는 2023 대구정원박람회(이하 정원박람회)가 10월 13일부터 5일간 대구 금호강 하중도에서 개최됐다. 이번 정원박람회는 ‘파워풀 대구, 정원과 함께하는 미래도시’를 주제로 시민에게 정원 문화를 소개하고 알리는 시간을 마련해 하중도를 대구의 새로운 명소로 만들고자 했다. 대구시 산림녹지과가 주최한 이번 정원박람회는 대구에서 열리는 첫 번째 정원박람회다. 개최 장소인 금호강 하중도는 강의 퇴적물이 쌓여서 만들어진 섬이다. 원래는 쓰레기가 방치된 버려진 땅이었는데, 유채꽃과 억새, 코스모스 등을 심어 강의 생태계를 복원한 생태 공원으로 거듭났다. 이번 정원박람회는 금호강의 아름다운 수변과 가을의 정취를 느낄 수 있는 코스모스 들판을 배경으로 학생정원 등 다양한 전시정원과 프로그램을 마련해 대구 시민들에게 새로운 즐길 거리를 제 공했다. 정원토크쇼 지난 9월 6일, 정원박람회 개최를 맞이해 사전행사인 정원토크쇼를 경북대학교 글로벌플라자 경하홀에서 진행했다. ‘정원을 가꾸는 마음’이라는 주제로 국내 정원 전문가 3인의 강연을 통해 정원에 대한 경험과 노하우를 시민, 학생들과 공유하는 시간을 가졌다. 김봉찬 대표(더가든), 박원순 실장(국립세종수목원 전시원), 이병철 부사장(보성그룹)이 강연자로 참석했다. 김봉찬 대표는 ‘자연에서 배우는 정원’이라는 주제로 장소의 혼, 습원의 풍경 등 다양한 키워드를 통해 자연이 만들어 내는 경관과 정원 사례를 공유했다. 나무와 나무 사이의 틈이 만들어 내는 분위기, 베케의 400년 된 돌담이 전해주는 감동, 야외 주차장 인근에서 자란 띠가 자연스럽게 바람에 흔들리며 만들어 내는 경관 등 우리가 미처 발견하지 못하고 지나쳤던 신비로운 자연의 경관과 더불어 정원이 가진 의미에 대해서 설명했다. 김봉찬 대표는 “정원이 자리할 땅과 하늘을 어떻게 더 신비롭게 느껴지게 할 것인지 고민하는 태도가 정원을 조성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좋은 정원을 만들고자 한다면, 다른 사람이 만든 정원을 보러 다니는 것에서 그치지 말고 내가 지닌 땅이 최고가 되게 노력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박원순 실장은 ‘정원의 발견: 상상 그 이상의 정원’을 주제로 에덴동산, 자연주의, 픽처레스크 등 세계 정원의 역사와 흐름을 살펴보고 다양한 정원 연출법을 소개했다. ‘화들짝 나비가 돼 꽃을 만난다’라는 주제로 전 세계 나비를 볼 수 있는 나비 정원, 해수면이 높아지고 바다 온도가 높아지는 현상을 표현한 바다 정원 등 국립세종수목원에서 연출한 전시정원에 대해 설명했다. 박원순 실장은 정원을 조성할 때 어느 요소 하나에 초점을 맞추기보단, 정원을 통해 다양한 문화를 만드는 것의 중요성을 말했다. 이병철 부사장은 ‘정원의 해석’을 주제로 정원의 예술성에 주목했다. 부차트 가든(Butchart Garden), 스토우 가든(Stowe Garden), 솔라시도 등을 소개하며 각 정원의 예술성과 특징에서 비롯되는 정원의 매력에 대해서 이야기했다. 나아가 정원이 주목받는 현상에 대해서 말하며 정원의 다양한 매력을 더욱 널리 알리려면 다양한 분야와의 협업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강연 후 청중과 소통하는 시간을 가졌다. 정원박람회 시민정원 및 학생정원 참가자를 비롯해 정원에 관심이 많은 시민이 참석한 만큼 정원 조성에 대한 질문이 많았다. 강연자들은 정원 분야 선배로서 조언을 건넸다. 이병철 부사장은 남의 정원을 따라 만드는 것보다 나만의 정원 만들기의 필요성을 강조했고, 김봉찬 대표는 성급한 접근 대신 꾸준한 작업의 필요성을 강조하며 성실하게 작업을 이어 나갈 수 있는 끈기의 중요성을 말했다. 박원순 실장은 무리하지 말고 작은 구역이라도 가꾸며 정원에 대한 취향과 지식을 쌓는 것이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환경과조경427호(2023년 11월호)수록본 일부
  • 정영선, 2023 제프리 젤리코 상 수상 제59차 IFLA 세계조경가대회, 스웨덴 스톡홀름에서
    지난 9월 28일, 스웨덴 스톡홀름과 케냐 나이로비에서 제59차 IFLA 세계조경가대회가 개최됐다. 같은 날 스톡홀름에서 열린 시상식에서 한국의 조경가 정영선이 제프리 젤리코 상(IFLA Sir Geoffrey Jellicoe Award 2023)을 수상했다. 제프리 젤리코 상은 조경계획과 설계, 관리, 교육 등 조경 전 분야를 대상으로 세계적 수준의 업적을 선보이거나 활동을 펼친 조경가에게 수여하는 상이다. 2005년 피터 워커(Peter Walker)를 시작으로 2009년 버나드라수스(Bernard Lassus), 2011년 코넬리아 한 오버랜더(Cornelia Hahn Oberlander)까지 4년마다 한 명의 수상자를 선정했고, 그 다음해부터는 매년 한 명의 수상자를 뽑고 있다. 올해 심사위원단과 IFLA 의장은 “정영선은 조경 분야에 상당한 기여를 하고 탁월한 업적을 이룬 전문가이며 서양에서 유래된 낯선 개념의 조경을 한국적 상황에 맞게 번역해냈다. 또한 청계천 복원, 선유도공원 등의 프로젝트를 통해 자연과 도시의 조화를 추구하고, 건조 환경에 자연의 과정을 통합하며, 과거 산업 유산을 지우기보다 새로운 디자인의 일부로 만드는 세계적 트렌드를 예측해 한국 조경의 새로운 지평을 열었다. 이러한 작업에서 오늘날 조경 분야의 주요 관심사인 회복탄력성과 지속가능성에 대한 고민을 읽어낼 수 있다. 정영선의 작품은 세계적 영향을 끼쳤고 조경이라는 직업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고 평가했다. 정영선의 탁월한 설계 능력과 시적 감성, 50여 년간 쌓아온 전문성이 수상에 큰 영향을 미쳤다. *환경과조경427호(2023년 11월호)수록본 일부
  • [기웃거리는 편집자] 7번 국도의 꿈
    10년 안에 가장 하고 싶은 것이 하나 있다면 바로 ‘7번 국도 종주’다. 강원도 고성부터 부산까지 이어지는 7번 국도 위를 날렵한 이름과 다르게 귀여운 생김새를 자랑하는 오토바이 ‘슈퍼커브’로 누비고 싶다. 무면허 뚜벅이의 작은 소망이라고 할까. 사실이런 소망을 갖게 된 건 순전히 동해에 대한 추억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눈 뜨면 모든 세상이 논과 밭, 산으로 둘러싸인 시골에서 오래 살아서 그런지, 바다는 내게 오랜동경이자 미지의 세계와 같았다. 이러한 미지의 세계에 처음 발을 디뎠던 곳이 동해였다. 오래된 탓에 가족과 함께 처음 갔던 동해의 그 해변 이름은 흐릿하지만, 첫 바다를 봤던 순간의 감각은 여전히 선명하다. 조금 도톰한 카디건을 꺼내 입고 싶은 볕이 따사로운 가을 오후, 적막한 몽돌해변의 반짝 거리는 몽돌과 찰싹거리며 부딪히는 파도, 어떤 미사여구 대신 아름답다는 문장을 발음할 수밖에 없는 드넓은 바다 앞에서 가족과 함께 도란도란 얘기를 나누었던 풍경. 그 풍경이 유년 시절의 기억 속에 인처럼 박혀있다. 종주를 계획한 건 다시금 동해의 풍경을 담고 싶은 마음에서 비롯됐지만, 사실 일종의 임장이다. 부동산을 사기 위해서 현장을 둘러보는 행위인 임장처럼 아름다운 동해를 감상하며 나중에 터를 잡을 곳을 찾아보기 위해서다. 서울처럼 불이 꺼지지 않는 화려한 도시, 한적한 산과 들이 있는 시골도 좋지만, 도시와 시골을 오가며 10여 년 남짓을 살아보니 약간 감흥을 잃었다고 할까. 그래서 시간, 돈, 체력이 허락한다면 눈 뜨면 탁 트인 바닷가가 보이는 도시에서 터를 일구며 살아보고 싶다. 대상지가 있다면 콘셉트가 있어야 하는 법. 만약 바닷가 도시에 나의 공간을 만든다면 1층은 서점, 2층은 작업실 겸 집으로 만들고 싶다. 그래서 가끔 레퍼런스 삼을 만한 공간을 찾아다니기도 한다. 최근 발견한 곳은 평창동에 위치한 일중의 집 보현재(이하 보현재)다. 보현재는 한국을 대표하는 명필, 국필이라 불리는 서예가 김충현을 기리며 그의 생가를 개조해 만든 전시 공간이다. 우리글에 관심과 애정이 컸던 김충현은 일제강점기 시절 한글 서예 교본을 편찬해 한글 서예의 명맥을 이어 나가게 했으며, 한글과 한문을 넘나들며 서예의 조형적 완벽함을 추구했다. 그의 글씨는 궁궐, 미술관 등 다양한 건축물 현판에 사용됐는데, 경복궁 영추문 현판 역시 그의 작품이다. 보현재는 그가 생전에 작업실 겸 생활 공간으로 사용했던 1층과 현재 전시 공간으로 쓰이는 2층으로 구성된다. 글자 하나를 적더라도 그림처럼 의미와 심상을 담았는데, 가령 돌 석 자와 같은 한자를 적을 때도 획의 굵기를 조절해 돌의 거친 질감을 표현했다. 글자 하나에도 정성을 다하는 그가 머물렀던 공간엔 작은 소품부터 시작해 공간 구석구석 그의 정성이 들어가지 않은 곳이 없었다. 궁의 창살 무늬를 좋아했던 그는 1층의 미닫이문 창살을 궁의 창살을 그대로 본 떠 만들고, 북악산이 훤히 보이는 1층 앞의 소박한 뜰과 수석과 수목, 화초 모두 직접 가꾸고 조성했다고 한다. 또한 한옥의 차경처럼 바깥 풍경을 볼 수 있는 창이 참 많았는데, 도자기 등 단아한 소품과 어우러진 창은 담박한 정서를 표현한 한 폭의 수묵화처럼 느껴졌다. 그래서 내 공간을 만들게 된다면 언제든 바다와 주변 풍경을 바라볼 수 있는 창을 많이 내고 싶다. 수목과 수석이 가지런히 놓인 보현재의 뜰처럼 1층 서점 앞뜰에는 그늘을 드리우는 아름드리나무를 심고, 나무 아래에는 의자를 세 개 정도 놓고 싶다. 숲속 오두막에 살았던 미국의 시인 헨리 데이비드 소로가 고독, 우정, 친교의 의미를 담은 의자를 놓았던 것처럼. 최종적으로 나의 공간을 박영석의 말(2023년 10월호)(각주 1)처럼 장소로 만들고 싶다. 내게 첫 바다였던 동해가 추억이 깃든 장소로 다가왔던 것처럼. 나의 소망으로 시작한 공간이 모여드는 이들에게 바다와 함께한 자그마한 추억과 감각을 선사하는 모두의 장소로 거듭나기를 바라본다. 이 꿈이 이면지에 적은 낙서처럼 허무한 몽상에 불과할지, 실현 가능한 계획이 될지는 모르겠지만. 뭔가 대단한 일을 할 거라는 착각 속에 살라는 박찬욱 감독의 말처럼 거창한 계획을 한번 세워본다. 각주 1. 장소는 좀 더 인문학적 측면에서 사람들이 서로 교류할 수 있거나, 형태가 없는데도 자신만의 감각으로 인지되는 곳을 칭하기도 하고요.
  • [편집자가 만난 문장들] 땅에 대한 우리의 태도를 보여주는 게 더 중요하다
    현장 학습을 빙자한 교실 밖 나들이는 대체로 어지러움과 구토로 마무리되곤 했다. 집에 차를 모는 사람이 없어서였는지, 나는 어린 시절부터 차멀미가 심했다. 심할 때는 지하철을 오래 타다가도 구역질이 치밀어 중간에 내리기 일쑤였다. 특히 차량의 시트나 엔진에서 풍기는 냄새에 민감했는데, 학생 여럿을 실어 나르는 버스에는 늘 내가 싫어하는 냄새가 가득했다. 그때 찍은 사진을 보면 관광버스에서 괴로워하던 내 모습이 먼저 떠오른다. 현장 학습을 통해 만난 그 어떤 풍경도 멀미와 잠의 충격을 이기지 못했다는 이야기가 될 수도 있겠다. 물론 모든 답사가 그랬던 것은 아니었다. 산 중턱을 오르다 본 아직 다 자라지 못해 손바닥보다 작은 단풍잎이 겹쳐진 독특한 모양이나 새하얀 눈밭에서 하늘 높을 줄 모르고 위로 죽죽 자라 있던 자작나무 풍경은 사진첩뿐 아니라 아직도 머릿속에서도 선명하다. 그런데 언젠가 봤던 주상절리의 모습이 어땠는지는 흐릿하다. 중문대포해안 주상절리(16쪽)는 아니었지만 대학 졸업반 시절 주상절리를 보러 간 적이 있다. 환공포증이 있는 터라 오래 들여다볼 엄두도 내지 못했는데 어쨌든 신비롭다는 느낌을 받았었다. 단단하게 솟은 육각기둥을 보며 연필심을 초미세 현미경으로 들여다보면 저것과 비슷할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조금 구경하다가 근처 바위에 올라서 단체 사진을 찍었다. 의자가 아닌 어딘가에 엉덩이를 대고 앉아 김밥을 먹었고, 강한 바람에 스러져 도르르 굴러가는 생수통을 줍기 위해 바위 위를 걷다 미끄러질 뻔했다. 내가 무얼 했는지는 잊지 않았는데, 주상절리가 바다와 어떤 모양으로 관계 맺고 있었는지, 어떤 점이 내가 신비롭다고 느끼게 했는지는 희미하다는 걸 깨달았다. 나쁜 기억은 아니었지만 좀 허무해졌다. 누구나 갈 수 있는 장소를 취재하게 될 때면 SNS나 블로그를 통해 방문객의 반응이 어떤지도 함께 살펴보곤 한다. 특히 주상절리는 인기가 많은 관광지이자 문화재니까 많은 사람의 의견을 볼 수 있을 것 같았다. 예상했던 글들이 있었다. 누군가는 이제 사라져버린 야자수, 종려나무, 주상절리와 관계없는 조형물에 정을 붙였을 수 있으니 불만스러울지도 모른다고. 천연기념물의 본모습과 상관없이 개인의 원 경관은 각기 다를 수 있으니 말이다. 그런데 몇 문장 앞에서는 조금 머뭇거리게 됐다. 큰 나무 한 그루가 없어 땡볕을 걸어야 하고, 음료와 음식을 먹을 만한 장소가 없고, 기념사진을 찍을 만한 명확한 시설물이 없다는 점이 천연기념물과 문화재의 가치를 떨어뜨릴 만한 것인가. 겐부도 공원(58쪽)을 다시 들여다봤다. 바닷가의 절벽인 중문대포해안과 비교하면 겐부도 공원은 강 주변에 놓인 산이라는 특성이 너무 달랐지만 지향점은 비슷했다. 주상절리를 사람들이 제대로 감상할 수 있는 환경을 구축할 것. 포장재의 색을 바꾸고 관람에 시각적 장애물이 될 수 있는 난간이나 부속 건물의 존재를 최소화했다. 케이스-리얼은 주상절리를 감상하는 공간에 스테이지라는 이름을 붙였다. 주상절리라는 주인공을 보기 위해 찾아온 관람객이 무대에 올라선다니 조금 아이러니하지 않나 싶었지만, 무채색의 견고하고 묵직해 보이는 스테이지를 보는 순간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관람객이 오롯이 주상절리를 관찰하는 데만 집중할 수 있도록 만들어놓은 스테이지에 오르면 눈앞에 펼쳐진 경관을 최선을 다해 해석해야만 될 것 같았다. 공들여 잘 만든 스테이지는 관람객을 관찰자가 아닌 주체성을 가진 주인공으로 만든다. 특별한 감상 방법을 제시하지 않았는데도, 그저 대상을 온 힘을 다해 바라볼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해준 것만으로도. 김아연 교수는 여러 철학 용어를 쓴 이유에 대해 "무언가를 주장하는 것보다 땅에 대한 우리의 태도를 보여주는 게 더 중요하다고 생각”(28쪽)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조경가의 태도가 담긴 공간과 분위기는 사람들의 몸가짐을 바꾸어놓기도 한다. 천연기념물과 문화재에 필요한 건, 사람들의 태도를 바꾸어놓는 약간의 덜어냄과 조금의 덧댐이면 충분한 것 같다. 그것만큼 어려운 게 없지만 말이다.
    • 김모아
  • [PRODUCT] 공간의 흐름을 바꾸는 전동형 시스템 퍼걸러, ARES 탁 트인 하늘을 감상할 수 있는 자동화 루프 시스템
    퍼걸러의 기능은 다양하다. 때론 우리에게 그늘을 만들어 주고, 비를 피할 수 있으며, 잠시나마 전망을 즐기며 쉴 수 있는 휴게 공간이기도 하다. 이러한 퍼걸러에서 전망뿐만 아니라 탁 트인 하늘을 바라볼 수 있다면 어떨까. 휴게 시설물 브랜드 ‘엠페오MFEO’는 사람과 공간이 서로 관계를 맺으며 함께하는 삶에 주목하며 하늘을 감상할 수 있는 자동화 루프 시스템 등을 적용해 열린 공간을 디자인한다. 자동화 루프 시스템이 적용된 전동형 시스템 퍼걸러 ‘ARES’는 공간에 새로운 개방감을 더한다. 리모컨과 앱, 벽면 스위치 등으로 통제가 가능한 퍼걸러 루프는 최대 80%까지 개폐가 가능하다. 덕분에 공간 안에서 방해 요소 없이 언제든 탁 트인 하늘을 감상할 수 있다. 견고하고 간결한 디자인도 특징이다. 외부로 보이는 나사와 고정 장치가 없는 깔끔한 디자인을 선보인다. 우수 배수와 바람 저항에 강한 구조와 아웃도어 소재를 사용하여 악천후 등 다양한 기후 환경에 대처할 수 있다. 루프의 루버에서 기둥으로 빗물이 쉽게 배수되도록 했으며, 꼼꼼하고 세밀한 마감으로 하부 공간에 빗물이 새지 않게 했다. 전동형 시스템 퍼걸러는 야경과 조화를 이루는 퍼걸러로 주목받고 있으며, 아파트 단지 특화 디자인으로 활용되며 휴게 시설물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제시하고 있다. 앞으로 ARES의 자동화 루프 시스템은 단절된 휴게 시설물이 가진 폐쇄성을 감소시키고, 나아가 열린 공간의 흐름을 만들어 내는 마중물이 될 것이다. TEL. 02-2659-1772 WEB. www.mfeo.kr
  • [에디토리얼] 공간 문해력
    생태 문해력, 미학적 문해력이라는 표현까지 있듯 요즘 다양한 분야에서 ‘문해력(literacy)’이라는 용어가 쓰인다. 디지털 리터러시나 메디컬 리터러시처럼 번역하지 않고 그냥 리터러시로 쓰는 경우도 많다. 사전은 문해력을 ‘텍스트를 읽고 이해하는 능력’ 정도로 간략하게 정의하지만, 그 의미와 용례는 매우 다양해지고 있다. 사용 매체와 소통 방식, 사회 참여 등을 결정하는 데 관여하는 기본 소양이나 문화적 기술을 뜻하기도 한다. 텍스트의 해독을 넘어 그것을 생성하고 수용하는 모든 능력을 뜻하는 말로 확장되고 있기도 하다. 나도 어느 유튜브 강의에서 ‘공간 문해력’을 말한 적이 있다. 대략 이런 내용이었다. “어떤 공간이나 장소에 호감을 느끼는 사람에게 뭐가 왜 좋은지 물으면, 답변에 등장하는 표현이 정말 제한적이에요. 멋있다, 예쁘다, 대박이다 정도죠. 사용하는 어휘가 그것뿐이라는 건 곧 공간 문해력이 낮다는 거죠. 도시의 일상생활에서 좋은 공간을 구별하고 잘 경험할 줄 아는 능력, 즉 공간 문해력이 중요하다고 강조하고 싶습니다. 좋은 공간은 도시의 일상을 풍요롭게 합니다. 하지만 정부나 공공이 다 해주지 않습니다. 우리 스스로 공간을 둘러싼 이슈에 개입하고 참여해야 합니다. 공간 문해력이 필요한 이유입니다. 나는 이 도시를 어떻게 경험하고 감각하는가, 그 장소가 왜 좋은가, 저 경관의 어떤 면이 아름다운가, 그런 환경이 우리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는가. 어렵더라도 자주 생각해보고 구체적으로 표현해보면 공간 문해력을 기를 수 있습니다.” 설익은 의미로 공간 문해력 개념을 말했는데, 뜻밖에 많은 피드백이 왔다. 누군가는 “세상을 더 아름답게 살아가게 해주는 능력”이라는 댓글을 달았다. 누군가는 구체적인 의미와 사례를 묻는 이메일을 보내왔다. “‘좋은 공간을 구별하고 경험하는 소양’이라는 뜻 정도로 쓴 말인데, 깊이 있는 연구와 토론을 거친 학술적 개념은 아니”라고 답할 수밖에 없었다. 공간 문해력은 공간이라는 텍스트를 잘 이해하고 해석하는 공간 수용자/경험자의 능력이지만, 그러한 힘은 텍스트의 독해자―즉 공간 수용자/경험자―뿐만 아니라 텍스트 자체―즉 공간 자체―에서도 나온다는 말을 덧붙이고 싶었으나 짐작에 가까운 거친 논리라 숙제로 남기기로 했다. 1차 리노베이션을 마친 목동 ‘오목공원’을 개장 첫날 둘러봤다. 설계공모 당선작 ‘도시의 공공 라운지’(디자인 스튜디오 loci)와 똑같이 완공된 점이 무엇보다 반가웠다. 옛 공원의 바탕 위에 산뜻하고 날렵하게 삽입된 ‘회랑 라운지’. 회랑의 넓은 그늘과 넉넉한 의자가 모두를 환대한다. 회랑 위 공중 산책로에 오르면 풍성한 숲과 도시 경관을 조망할 수 있다. 오래된 숲에 간결하게 삽입된 ‘숲 라운지’는 공원의 시간감을 두텁게 한다. 빈 의자를 찾기 어려웠다. 스스로 의자를 옮겨 자신의 라운지를 디자인하고 오래 머물며 가을을 즐기는 사람들. 그들의 이야기를 엿들으며 공원을 산책하다 여러 번 놀랐다. 공원 디자인과 경관을 품평하는 이들이 곳곳에 있는 것 아닌가. 한 노인은 “공원이 현대식이라 사람들이 공원을 다르게 쓴다”고 말한다. 어느 커플은 “회랑 위 산책로 덕분에 공간이 두꺼워졌다”는 평을 나누며 걷는다. 중학생 몇몇은 “예전 공원도 좋았는데 왜 새로 만들어야 했는지” 토론한다. 이날따라 공간 문해력 출중한 사람들만 모였을 리 없다. 평범한 이용자들이 전문가 못지않은 평가를 하며 공원에 머무는 상황, 뭐라고 해석할 수 있을까. 텍스트(공간)의 구성과 형태가 수용자/경험자의 문해력을 높인 게 아닐까. 언젠가 『환경과조경』 지면에서 공간 문해력을 다뤄보기로 마음먹으며 오목공원을 빠져나왔다. 그간 서울과 수도권뿐 아니라 다양한 지역 도시의 조경 문화를 지면에 담아달라는 의견이 적지 않았다. 편집위원들과 독자들의 이런 의견을 조금이나마 반영해보고자 이번 호 대구 특집을 기획했다. 특집 ‘대구의 도시 문법, 조경 문화로 읽다’는 대구의 도시 맥락과 경관 특성을 다각적 시선으로 독해한다. 정태영(경북대 교수)은 대구의 공원을, 최이규(계명대 교수)는 골목을, 양진오(대구대 교수)는 원도심을 읽는다. 편집자들이 꾸린 기사 두 편도 함께 엮었다. ‘편집부가 꽂은 대구 책갈피’는 1982년부터 2020년까지 『환경과조경』에 실은 대구 관련 기사를 요약, 소개한다. ‘대구 도시 공간 10선’은 유서 깊은 공원부터 새롭게 떠오르는 복합문화공간까지 주목할 만한 대구의 공간들을 살핀다. 이번 대구 특집을 계기로 본지는 1년에 한두 차례 지역 도시의 공간과 문화, 일상을 탐사하는 지면을 마련해볼 참이다.
  • [풍경 감각] 조각 하늘
    빨간 벽돌 다세대주택과 그 사이로 뻗은 전깃줄이 하늘을 여러 조각으로 나누고 있었다. 그곳은 대학교 2학년, 틈새 정원 설계 수업의 대상지였고, 내가 살던 동네였다. 이름은 청량했지만, 시원하게 트인 하늘을 볼 수 없었던 곳. 나무를 심는 대신 전봇대보다 높은 곳에 닿는 공중 계단을 놓아보았다. 손바닥 정도의 공간은 예쁜 것도 없이 빙빙 도는 계단으로 가득 차버렸지만, 그곳에 오르면 하늘을 통째로 볼 수 있을 것 같았다. 잠이 오지 않는 밤이면 빨간 벽돌 속 작은 방에서 나와 골목골목을 돌아 학교 옥상에 올랐다. 시선 저 끝까지 고만고만한 집들이 밀물처럼 들어와 있다. 그 위로 크고 작은 산이 섬처럼 떠 있고, 하늘은 까만 도자기같이 매끄러웠다. 먼 곳의 가로등 불빛은 공기에 일렁거렸는데, 별이 빛나는 것처럼 보이기도 했다. 괜찮아졌다 싶을 때까지 이 풍경을 보고 돌아오곤 했는데, 사실 뭐가 어떻게 괜찮은지는 몰랐다. 귀가 먹먹해지는 걸 모르는 호텔 엘리베이터는 침을 삼키지도 않고 층을 오른다. 모르는 사람들과 루프탑에서 내린다. 맥주를 계산하고 자리에 앉으니, 뜻밖에도 귀뚜라미가 운다. 21층 꼭대기에서 산딸나무와 억새가 살랑인다. 사람들은 작업실 보증금보다 무거운 가방을 끼고 있다. 작업실의 한 달보다 비싼 호텔의 하루를 보내는 사람들일까. 밤하늘을 보며 이상하게도 오래전의 공중 계단을 계속 빙빙 돌고 있다는 생각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