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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우수작: A Thousand City Plateaus 잠실종합운동장 일대 도시재생 구상 국제공모
    잠실종합운동장 도시재생 구상을 통해 문화와 일상의 이벤트를 담는 새로운 그릇과 같은 ‘도시 고원City Plateaus’을 만들고자 한다. 도시 고원은 길과 광장을 관통하며 도시 플랫폼을 창조하고 잠실 주경기장, 새로운 프로그램, 경관을 엮는 거대한 지도를 만든다. 도시 연결적 지형Urban Connective Topology 현재의 잠실종합운동장 지구는 시설이 노후화되었음은 물론 코엑스 지역 및 한강 변과 단절되어 도시의 활력이 떨어진 섬과 같은 장소가 되었다. 삼성역 코엑스 지역과 탄천 지역, 잠실종합운동장 지역, 한강 워터프런트 공원을 동시에 연결하는 도시적 지형을 재구축하고자 한다. 끊어지지 않는 하나의 수평적 고원을 구성하여 스포츠, 문화, 컨벤션, 엔터테인먼트의 복합 공간연속체를 구성한다. 도시를 가로지르는 일관된 어휘의 도시 개발 방식을 실현하기 위해 기존의 개발 방식을 버리고 인간이 산책할 수 있는 수평적인 도시를 만들필요가 있다. 도시 고원의 거대한 모뉴먼트는 가장 수평적이고도 지속적인 방식의 도시 개발을 실현할 것이다. 삼성 코엑스 지역에서부터 한강 변에 이르는 다양한 프로그램을 담아내는 수평적인 매트로서의 도시를 재현하려 한다. 뿌리 구조의 인본 도시Rhizomorphous Human City 현대 도시의 데카르트적인 도시 개념은 도로와 고층 빌딩으로 이루어진 인간과 단절된 공간 구조와 스케일을 만들었다. ‘천 개의 도시 고원’은 과거의 근대적 도시 문법을 오늘날의 요구에 대응하는 이동적, 대안적, 일탈적인 영역을 만들어내는 유연한 문법의 도시를 구성해 내는 데 의의가 있다. 잠실종합운동장 도시재생을 통해서 도시의 도로, 보행로, 건축, 조경 등을 구분하지 않는 수평적 틀의 리좀적 인간 도시 구조를 구성하려 한다. 기존의 도시 구조를 변형하여 경관, 건축, 길, 광장, 공간 프로그램을 구분 없이 담아내는 시스템으로서 통합체와 같은 대지를 구성한다.
    • 조한결 / 운생동건축사사무소 + 동해종합기술공사 / 2015년11월 / 331
  • 잠실종합운동장 일대 도시재생 구상 국제공모 International Ideas Competition for Urban Regeneration of the Jamsil Sports Complex in Seoul
    설계공모 경과 및 심사평 9월 4일 서울시는 ‘잠실종합운동장 일대 도시재생 구상 국제공모’의 결과를 발표했다. 시는 지난 해 4월 ‘코엑스~잠실종합운동장 일대 종합발전계획’을 수립ㆍ발표한 이후, 올림픽대로 지하화 등 이 일대의 여건 변화를 다각도로 검토하고 있으며, 두 차례에 걸친 시민 아이디어 공모, 이번 국제공모 등을 진행했다. 서울시는 이번 국제공모의 결과를 반영해 올해 말까지 국제교류 복합지구의 마스터플랜을 수립한다는 계획이다. 다음은 잠실종합운동장 일대 도시재생 구상 국제공모의 심사평 전문이다. 공모 및 심사 과정 이번 공모의 주된 목적은 서울시에서 구상하는 잠실종합운동장 일대에 대한 종합 마스터플랜에 반영할 참신하고 다양한 아이디어 콘셉트를 받고자 하는 것이다. 공모는 2015년 5월 7일 공고하고, 8월 12일까지 약 3개월여 동안 진행되었다. 최초 참가등록은 698개 팀이었고, 최종 제출된 작품은 98개였다. 작품은 총 23개 국가에서 제출되었으며, 국내 44개 팀, 국외 54개 팀이 제출해 국외의 관심과 참여가 많았다. 심사 기준은 실제 구상 계획에 반영할 것이므로 창의성(40점)과 경제성(30점)을 중시했고, 기타 공공성(15점), 국제성(15점)으로 배분되었다. 심사는 9월 1일과 2일, 이틀간 진행되었다. 첫 번째 날 심사는 오전에 공모 개요와 심사 기준에 대해서 논의하고 심사위원 전원이 잠실종합운동장 일대 사이트를 방문하였고, 오후에 1차 예비심사를 진행했다. 1차 심사는 심사위원들이 작품을 살펴본 후 탈락시킬 작품을 투표하는 방식으로 진행했고, 위원들의 투표 후에 내용에 대한 토론을 거쳐서 1차 예비심사를 통과할 40개의 작품을 선정했다.두 번째 날 2차 본 심사에서는 40개 작품을 대상으로 심사위원들이 작품의 내용을 다시 살펴보고 투표한 후 투표 결과에 대한 토론을 거쳐서 16개의 작품을 선정했다. 이어서 우수작 3점을 선정하기 위한 투표를 실시하고, 상위 작품에 대해서는 한 작품씩 장·단점을 토론하고 의견을 조율하는 과정을 거쳐서 우수작 3점을 만장일치로 선정했다. 이어서 남은 작품을 대상으로 가작 후보에 대한 투표를 다시 실시하고, 이 결과를 종합하여 가작 5점을 선정했다. 우수작 A Thousand City Plateaus 천 개의 도시 고원 운생동건축사사무소 + 동해종합기술공사 우수작 Jamsil Ludens Park 잠실 루덴스 파크 종합건축사사무소 건원 우수작 SynchroniCity 싱크로니시티 우규승(Kyu Sung Woo Architects) + Vital Albuquerque(Kyu Sung Woo Architects) + 장광엽(다인건축) + Oswald Nagler(Oswald Nagler Consultant) + Paul Cattaneo(Kyu Sung Woo Architects) 가작 e[X] Sports City e[X] 스포츠 시티 Richard Plunz, Seiyong Kim, Viren Brahmbhatt(Columbia University) + 민승렬(한빛건축) + 손상혁(DH Asset) 가작 JAMS[H]ILLS JAMS[H]ILLS Caramel architeckten zt-gesellschaft m.b.h 가작 Polyculture 폴리컬처 Junkyeu Song, Blake Smith, Nnaemeka Mozie, Junyang Tang(POLYMASS) 가작 Seoul Culti-polis 서울 컬티폴리스 플래닝코리아 가작 Seoul EGG 서울 에그 나우동인건축사사무소 + 유승종(livescape 조경) + 양우현(중앙대학교 건축학부) + 한광야(동국대학교 건축공학부) + 김주석(이토플랜)
    • 김정은 / 2015년11월 / 331
  • [칼럼] 녹색 강박증 Column: Obsession with the Green
    재독 철학자 한병철은 그의 베스트셀러 『피로사회』에서 성과주의에 매몰된 현대 사회를 비판하면서, 긍정성의 과잉으로 인한 대표적인 질병으로 우울증, 주의력결핍 과잉행동장애, 경계성 성격장애 등을 꼽았다. 이러한 질병들은 과거 시대의 질병처럼 박테리아적이거나 바이러스적이지 않고 신경증적인 질병이라고 말한다. 현대 사회의 특징인 과잉 생산, 과잉 가동, 과잉 커뮤니케이션이 긍정성의 폭력을 낳았고, 이러한 유형의 폭력은 적대적인 상황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관용적이고 평화로운 사회에서 내밀하게 확산되기 때문에 바이러스성 폭력처럼 눈에 잘 띄지도 않는다고 한다. 짧은 에세이의 내용이 다소 무거워서 그 뜻을 잘 헤아렸는지 자신이 없지만, 무엇인가를 잘 해보려는 요즘 긍정적인 행동들이 오히려 과장되고 과잉의 양상으로 나타나면서 그것이 또 하나의 스트레스로 작용하는 것을 간간히 목격하면서, ‘피로사회’라는 개념으로 성과 주의 사회를 비판하는 그의 견해에 공감하게 된다. “강박장애는 불안장애의 하나로서, 반복적이고 원하지 않는 강박적 사고와 강박적 행동을 특징으로 하는 정신 질환이다. 잦은 손 씻기, 숫자 세기, 확인하기, 청소하기 등과 같은 행동을 반복적으로 함으로써 강박적 사고를 막거나 그 생각을 머리에서 지우려고 하는 경우가 흔하다. 그러나 이런 행동은 일시적인 편안함을 제공할 뿐 결과적으로 불안을증가시킨다.” 강박증이라는 병리적인 현상이 과거 농경 사회에서부터 존재했던 질병인지 혹은 근대 산업 사회를 거치면서 새롭게 등장한 것인지 잘 알 수는 없다. 그러나 주변의 많은 사람들이 강박증으로 인해 고민하고 있는 것은 확실한 것 같다. 그런데 문제는 자신이 이 증세를 앓고 있다고 생각하지 못하고 오히려 더 과잉 행동을 일삼는 경우다. 어쩌면 한병철의 지적대로 강박증도 현대 사회의 병리적인 현상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오세훈 시장의 ‘서울시’ 시절이 생각난다. 이명박시장의 ‘청계천’이 대중의 히트를 친직후라서 그런지 모든 행정에 ‘디자인’이라는 단어가 강박처럼 들어갔다. 조직이 만들어졌고, 대단한 ‘용역’이 발주되었다. 디자인을 문화적으로 차근차근 성숙시키기 이전에 홍보를 위한 전략으로 삼았다. 디자인이라는 말이 빠지면 마치 갑자기 구닥다리 꼰대가 되는 것 마냥 모든 종류의 미디어는 디자인이라는 화두를 쏟아내고 있었다. 지금도 논란이 되고 있는 한강의 세빛둥둥섬과 동대문의 DDP(동대문디자인플라자)는 그러한 ‘디자인 행정’의 대표적인 결과물들이다. 당시 모 교수는 ‘디자인’이라는 말 자체에 신경이 날카로워지는 현상을 ‘디자인 피로증’이라고 일갈하기도 했다. 아무리 의도가 좋다고 해도 그것이 과잉이 되면 사회구성원들은 피곤해지는 것이다. 하물며 진정성 없이 성과 위주로 추진되는 사업에어떤 행복과 가치가 담겨질 수 있을까. 요즘 서울시를 비롯하여 수도권, 지방의 많은 지자체에서 ‘조경’ 혹은 ‘정원’이라는 화두가 대세다. 수 많은 조경 관련 공모전이 성행하고, 박람회도 문전성시를 이루고 있다. 불과 몇 년 만에 분위기가 반전된 듯하다. 설계사무소나 일선 현장의 작업 여건과 경영 환경은 별반 나아진 것이 없는데, 외형적인 분위기만 봐서는 이미 조경 선진국의 대열에 오른 느낌이다. 이러한 분위기 때문인지 어느 조경전문가는 설익은 ‘조경대세론’을 펼치기까지 한다. 모든 도시 행정을 조경(혹은 정원)의 관점에서 해석하고, 도시 안에서 조경 공간을 극대화해야 하며 그러기 위해서는 예산 확보에 총력을 기울여야 한다는 식이다. 조경가 출신의 국회의원이 나와야 한다는 기대 섞인 주장도 덧붙인다. 그래야 ‘업계’와 ‘분야’가 살아나고 결과적으로 시민들의 행복지수도 수직상승한다는 것이다. 필자도 이십년 넘게 조경분야에서 일하고 있지만 이런 식의 강박이 정당한 것일까. 며칠 전 서울 외곽의 도시공원으로 산행을 가게 되었다. 시민들이 많이 이용하는 등산로인지라 최근에 계단을 보수하고 안전 펜스까지 정비한 모양이다. 그런데 등산로를 따라 나무 그늘에 야생초화를 잔뜩 심어놓았다. 공원의 양지바른 산책로도 아니고 숲이 우거진 등산로에까지 가로수를 심고 야생화를 줄지어 심어야 직성이 풀리는 강박은 애처롭기까지 하다. 그냥 놔두어야 더 좋은 자연을 왜 자꾸 조경이라는 이름으로 덧칠을 해야 하는지 알 수가 없다. 이처럼 조경 사업은 성과주의 사회에서 눈에 보이는 결과를 저렴한 예산으로 치장하는 효과적인 방법이 되었다. 녹색의 치장과 품격 있는 조경 행위는 당연히 구분되어야 할 것인데, 표피적인 것들만 난무한다. 자칫 ‘조경 피로증’이라는 말도 생겨날지 걱정이다. 조경은 근본적으로 치유하는 행위다. 과잉 진료와 과잉 처방은 환자에게 독이 된다. 진료와 처방 이전에 정말 중요한 것은 정서적인 연대감과 존중감이라고 한다. 녹색에 대한 강박은 자연에 대한 존중이라는 조경의 본질을 간과하고 현상에만 집착하는, 그래서 과잉 처방전만남발하고 있는 의료 행위와 다를 바 없다. 모든 것을 자기가 속한 전문 분야의 틀을 통해서만 해석하려는 강박증은 현대 사회의 공통적인 특징이다. 분야는 늘 대결하고 있으며, 이 살벌한 경쟁 구도를 곧바로 자신들의 이익과 연결시킨다. 여유와 관용, 깊이 있는 성찰과 소통은 사라지고 가장 익숙한 세계 속으로 스스로를 유배시킨다. 그리고 그 깊은 유배지에서 그들만의 왕국을 만들고 자신들만의 방식으로 세상에 군림하려고 한다. 그러므로 나는 조경이 최고의 선이고, 어떤 것보다 높은 가치를 가지고 있다는 자신감에 선뜻 동의할 수 없다. 조경이라는 이름으로 세상을 다 품을 수는 없기 때문이다. 화려한 녹색에 가려진 삶의 이면을 살펴야 한다. 비록 한그루의 나무를 포기하더라도 우리 주변에 더 이상 가난하다는 이유로 점심을 굶는 아이들이 있어서는 안 된다. 멋진 공원 몇 개를 만들지 못하더라도 힘없는 서민들의 소중한 주거 공간을 함부로 빼앗아서는 안 된다. 우리는 멋진 조경가이기 이전에 누군가와 마음을 나눠야 하는 평범한 시민이고 이웃이기 때문이다. 박승진은 아직까지 조경 설계라는 마당을 떠난 적이 없으며, 이 마당에 맞닿아 살고 있는 다양한 이웃들에 많은 관심을 가지고 기웃거리고 있다. 조경이라는 특징을 잘 보여줄 수 있는 가치 있고 정교한작업을 늘 꿈꾸지만 그것도 만만치가 않다. 그래도 읽고, 쓰고, 가르치며, 배우는 일상에 감사하고 있다. 1965년 서울생으로, 성균관대학교와 서울대학교 환경대학원에서 조경 디자인을 공부했고, 서울대학교 환경계획연구소, 조경설계 서안에서의 설계 실무를 거쳐,2007년에 디자인 스튜디오 loci를 열었다.
  • [에디토리얼] 설계공모의 맥도날드화 배정한 Editorial: The McDonadization of Design Competition
    10월호 마감이 한창이던 9월 중하순, 유럽조경학교협의회ECLAS가 주최한 컨퍼런스에 다녀왔다. 목적지는 머릿속 지도에 위치가 쉽게 그려지지 않는 에스토니아의 타르투였지만, 내심 이 미지의 중세도시보다 더 궁금했던 곳은 경유지로 삼은 러시아의 상트페테르부르크였다. 상트페테르부르크, 이름만 들어도 심장이 두근거리는 도시다. 러시아를 유럽의 제국으로 만들고자 야망에 불탄 표트르 대제의 계획 도시, 발트 해를 향한 연안의 늪지대와 네바 강 하구의 100개 섬을 365개의 다리로 이어 건설한 북쪽의 베니스다. 러시아의 심장 상트페테르부르크는 작곡가 차이콥스키, 극작가 안톤 체호프, 시인 푸슈킨, 대문호 도스토옙스키의 도시이기도 하다. 그뿐인가, 세계 최초로 공산주의 혁명이 성공한 레닌그라드가 아닌가. 굴절 많은 이 역사 도시의 2015년 풍경과 만나기 위해 목적지가 아니었음에도 닷새라는 넉넉한 일정을 잡았다. 낭만과 환상에 부푼 초행길 이방인의 기대와 달리, 표트르의 도시는 피로감과 불안감을 안겨주었다. 우중충한 잿빛 하늘 탓일까, 여느 유럽과는 다른 대규모 계획 도시의 웅장한 스케일 때문일까, 아니면 사회주의 도시 경관의 생경한 질서 탓일까. 일행은 여러 가지 진단을 내려 보았지만, 이틀째 여정이 끝나갈 무렵 시각적 당혹감의 가장 큰 원인은 아마 거리를 뒤덮고 있는 러시아어 알파벳에 있을 것 같다는 데 의견을 같이 했다. 영어 알파벳을 마차에 싣고 가다가 떨어뜨려 뒤죽박죽이 된 문자라는 우스개가 있을 만큼 키릴 문자(러시아어 알파벳)는 형태뿐 아니라 발음에서도 상식을 초월했다. 낯선 글자의 정체를 스마트폰으로 수시로 대조하며 시내를 답사하던 중 우리는 뜻밖의 계기를 통해 긴장감을 풀게 되었다. MaKДoHaлдc라는 해독하기 힘든 간판을 단 매장, 그러나 누가 봐도 맥도날드였다. 늘어나는 뱃살의 주범으로 몰리고 있는 맥도날드이지만, 우리는 낯선 도시에서 M자의 익숙한 간판만 보고서도 무장 해제됐다. 눈앞의 경관이 편안해지기 시작했다. 바로크와 신고전주의 양식이 섞인 건물들의 1층에 서울 못지않게 자주 등장하는 CTAPБAKC KOФE가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스타벅스 커피, 평소처럼 그란데 사이즈의 핫 아메리카노에 샷을 추가해서 들이켰다. 상트페테르부르크의 명소라는 다른 어떤 카페보다 만족스러웠다. 도시를 뒤덮고 있던 먹구름도 순식간에 사라졌다. 독자 여러분도 대부분 비슷한 경험을 하신 적이 있을 것 같다. 낯선 외국 도시에서 낯익은 프랜차이즈 체인점을 마주하면 심지어 고향 사람을 만난 것 같은 반가움을 느낀다. 고민과 두려움이 한 번에 해결된다. 뉴욕의 빅맥은 서울이나 상트페테르부르크의 빅맥과 똑같다. 맛도 의외일리 없고 가격도 당황스러울 가능성이 없다고 믿기 때문에 편안함을 느낀다. 맥도날드는 불확실성으로 가득한 현대도시에서 거의 유일하게 확실성을 보장해 주는 예측 가능한 장소인 셈이다. 우리는 맛도 뻔하고 건강에는 오히려 좋지 않다는 걸 알면서도 자신의 선택이 매우 ‘합리적’이라고 굳게 믿으며 맥도날드를 주저함 없이 선택한다. 『맥도날드 그리고 맥도날드화The McDonaldization of Society』(시유시, 2003)의 저자인 사회학자 조지 리처George Ritzer는 현대 사회가 종교처럼 신봉하는 합리성의 이면을 맥도날드로 대표되는 프랜차이즈체인망에서 발견한다. 리처가 통찰하는 ‘맥도날드화’는 “패스트푸드점의 원리가 미국 사회와 그 밖의 세계의 더욱 더 많은 부문을 지배하게 되는 과정”을 의미한다. 맥도날드 모델이 절대적인 영향력을 미치고 있는 건 합리성이라는 신화의 네 가지 매혹적 특성 때문이라고 그는 진단한다. 효율성, 계산 가능성, 예측 가능성, 통제라는 특성이 신뢰를 준다는 것이다. 맥도날드화는 “패스트푸드업뿐만 아니라 교육, 노동, 의료, 여행, 여가, 다이어트, 정치, 가정, 그리고 사회의 거의 모든 부문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그러나 효율과 표준을 앞세운 합리성의 신화는 획일과 몰개성을 낳는다. 도시도, 경관도 마찬가지다. 상트페테르부르크만의 개성과 매력에 불안해하고 맥도날드와 스타벅스의 표준화된 예측 가능성에 안도한 앞의 사례는 합리성의 추구가 비합리성을 연출하는 모순을 예증해 준다. 도시의 다양성, 지역성, 장소성은 발붙일 곳이 없다. 11월호에는 서로 다른 성격의 주목할 만한 공모전세 편을 싣는다. 이번 기획과 편집 과정에서 금년에 실었던 다른 설계공모들을 새삼 들춰보았다. 지난 호까지 잡지에 다룬 열개의 국내 공모, 두 개의 국외 공모를 다시 넘기다보니 엉뚱하게도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만난 맥도날드가 떠올랐다. 아마다수의 독자들은 (서울역 고가처럼 정치적·사회적으로 이슈가 되었던 경우는 예외였겠지만) 설계공모를 다룬 페이지를 빠른 속도로 넘겨버렸을 것 같다. 낯익고 익숙한 이미지, 텍스트, 다이어그램으로 표준화된 작품들에서 적절하게 구운 패티, 얇은 토마토 한 장, 슬라이스 치즈, 약간의 오이 피클로 구성된 맥도날드 햄버거의 예측 가능한 맛을 느꼈다면 지나친 비약일까. 물론 제출작만의 문제는 아니다. 주최자의 의도를 대변하는 설계 지침서는 언제나 예외 없이 공모의 목적을 “ㅇㅇ를 ㅇㅇ할 수 있는 ‘독창적’인아이디어와 디자인을 구한다”고 밝히지만, 말 그대로 독창적인 작업은 당선되기 쉽지 않다. 최근의 설계공모 대부분은 계산 가능하고 예측 가능한 안을 뽑는 합리성의 경쟁 과정이기 때문이다. 표준화와 효율성의 상징 맥도날드를 선택하곤 하는 우리의 일상과 다를 바 없다. 맥도날드화에 비판적 거리를 두며 이번 호의 세 공모전을 꼼꼼히 살펴보시면 어떨까 한다. 기회와 쟁점이 교차하는 땅 잠실종합운동장에 던진 비전과 상상력에서, 근대 서울의 시간과 사건들이 묻힌 옛국세청 자리 작은 공간에 펼친 조경가와 건축가의 협력에서, 막막한 빈 땅에 무언가를 상징해야만 한 세종시의 백지 광장 프로젝트에서 ‘탈맥도날드화’의 일면을 발견하실 수 있기를.
    • 배정한[email protected] / 편집주간, 서울대학교 조경·지역시스템공학부 교수 / 2015년11월 / 3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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