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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angnam-gu Office Building Rooftop Garden
강남구청 본관 옥상공원There seldom are opportunities to see nature in modern people’s daily life. Therefore, a rooftop garden has an important role of a construction of green spaces on a top of a building, an establishment of a space for using by people, a relaxation of heat island effect in urban environment and a construction of green parks to contribute energy-saving. The reason for a construction of a garden on there is too low ratio of surrounded greens around Gangnam-gu Office to provide insufficient outdoor green spaces for residents. With this situation, greens out of the total area were constructed more than 80%. Even if its location is on the roof, it strongly has a functional role such as city green networks through an introduction of various plant species and a preservation of natural ecosystems, has planned an eco-friendly space with water features with swampy lands. A rooftop garden on the main office building of Gangnam-gu office provides many different experience, rest and communication spaces, and, of course, makes to raise an image making: economic values of buildings and social roles as a public institution.사람이 살아가는데 가장 필요한 것 중 하나는 자연이다. 자연은 사람을 숨쉬게 하고, 사람이 먹을 수 있게 하며, 궁국적으로 사람을 살게 한다. 하지만 도시에 사는 현대인들은 일상에서 자연을 볼 수 있는 기회가 그리 많지 않다. 그래서 건물 옥상을 이용하여 녹지를 조성하고, 사람이 이용 가능한 공간을 만들며, 도시 열섬 완화와 에너지 절약에도 기여하는 푸른 공원을 조성하고 있다. 강남구청의 옥상공원도 주변의 녹지율이 현저히 낮고, 지역주민들이 이용할 만한 야외녹지시설이 부족함에 따라 조성되었다.조경설계 및 시공 _ (주)한국도시녹화발주 _ 강남구청위치 _ 서울시 강남구 학동로 426(삼성동 16-1) 강남구청 본관옥상전체면적 _ 1, 799.3㎡옥상녹화면적 _ 1, 477.0㎡준공 _ 2008. 12. 15.사진 및 자료제공 _ (주)한국도시녹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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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66 조리나
도전적이고 실험적인 제안으로 주목받는 젊은 조경가지난 1월『SHIFTboston 아이디어 공모전』에서 한국인 조리나 씨가 Matthew Jull 씨와 함께「What the hell is that?」이라는 작품으로 장려상Honorable Mention을 수상하였다. 조리나 씨는 Wellesley College에서 여성학을 전공하고, Harvard University 디자인대학원에서 조경학을 전공하였다.지난해(2009년) Harvard University 졸업식에서는 최우수상major prize을수상하였으며『메티/레포드가든의국제가든페스티벌(Jardins de Metis International Garden Festival Competition)』에서는“Special Mention”에 선정되는 등 앞으로의 활동이 기대되는 조경가이다. 현재는 네덜란드 로테르담에 거주하고 있고, Maxwan Architects & Urbanist에서 조경가로 활동하고 있으며, Matthew Jull 씨와 함께 개인회사인 “N66”을 시작하였다.
『SHIFTboston 아이디어 공모전』에서 Honorable Mention(장려상)을 수상한 것을 축하드린다. 어떤프로젝트였는지, 그리고 N66팀의 작품 설명과 수상소감을 부탁드린다.
보스턴 활성화와 시민참여도를 높이기 위한 목적으로 열렸던『SHIFTboston 아이디어 공모전』은 보통의 디자인 공모전과는 달리 좀 더 다양하고 신선하며 도발적인 제안을 찾는 공모전이었습니다. 심사위원은 잘 알려진 Morphosis 회사의 2005년 Pritzker Prize 수상자인 Thom Mayne과 건축이론가 겸 라이스대학원Rice University 건축과학장인 Sarah Whiting, 게릴라적 예술 프로젝트로 도시의 변화를 추구하는 Scott Burnham을 포함하여 총 7명이 었구요. 지난 1월 14일에 보스턴에 있는 ICAInstitute for Contemporary Art 미술관에서 수상자를 발표하는 포럼이 열렸는데, 그 자리에 많은 보스턴 정부 관계자들과 사업가, 디자이너들이 참석했습니다. 총 141개 작품이 미국의 16개 주와 세계 14개국에서 들어왔으며, 그 중 대상 1팀, 우수상 2팀, 장려상 1팀이 선정되었습니다.
「What the hell is that?(아니 세상에 이게 뭐야?)」이라는 제목은 보스턴 시청 건물에 대한 여러 가지 반응에서 모티브를 얻은 것입니다. 보스턴 시청 건물은 1960년대 부르탈리즘brutalism의 영향으로 디자인된 건축물로서 대중에 첫 선보였을 때부터 수많은 엇갈린 반응들을 불러일으켰습니다. 그 중에 보스턴 글로브 신문 기자가 쓴“아니 세상에 이게 뭐야?What the hell is that?”라는 글이 있는데, 이를 제목으로 빌려 온 것입니다. 현재 보스턴의 Menino 시장은 시청 건물을 팔고 새롭게 출발하자는 성명을 내 놓았으며, 지난 몇 년 사이 이 건물을 재해석하려는 수많은 디자인 아이디어 프로젝트가 진행되기도 했습니다. 건축역사가들은 오히려 이 건물의 개념과 역사를 고려할 때 충분히 보존할 가치가 있다고 주장하는 등 어느새 시청은 말도 많고 탈도 많은, 시민들 사이에선 점점 멀어진‘미운오리새끼’로 변해버렸습니다.
OMA의 Matthew Jull과 같이 구상한 저희 작품은 이런 시청건물을 건축적인 입장에서 해석하거나 물질적으로 개조하기 보다는 이를 바라보는 시선perception을 변화시키려는데 목적을 두고 새로운 연상association, 모사replication, 상징iconography, 정보information 관계를 통해 현재의 정부 건물을 대중문화와 융합시키고자 하는 것이 취지였습니다. 이런‘새 단장’캠페인을 통해 일상 생활에 쉽게 스며들 수 있는 미니어처 시청 상품이나 시청 건물에 관한 재밌는 정보가 담긴 거리의 빌보드 혹은 그래피티, 패션 디자이너들이 만든 시청 귀걸이나 시청 반지, 보스턴 유명 인사들이 참여하는 광고 캠페인을 개발하고, 건물에 관한 새로운 유행, 이야깃거리를 제공함으로써 비록 밉지만 그다지 밉지 않은, 오히려 발랄하고 활기찬, 또 는 메인 이미지가 보여주듯 젊은 여성이 핸드백 안에 소장하고 다닐 만큼 값어치 있고 독특하거나 꼭 필요한 존재가 되도록 시청 이미지의 변신을 도화시키려 한 것이 주된 아이디어였습니다. 1960년대의 첫반응,“ 아니 세상에 이게 뭐야?” 라는 것에 대한 재해석이기도 했죠. 아주 재미있게 준비했던 공모전이었는데, 어찌보면 건축과 여성학, 마케팅과 문화비평을 섞어 놓은 듯 한 작품이었습니다. 수상 후에 SHIFTboston팀에서 저희 작품 아이디어를 보스턴에 실제로 적용시키고 싶다는 제의가 들어와 현재 추진 중에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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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 푸른도시국 최광빈 국장
도시녹화사업, 문화를 담아내는 소프트웨어에 주력할 터“공원녹지를 조성해 시민들에게 행복감을 주는 일에 보람을 느끼고 있습니다. 공직생활은 베푸는 마음으로 즐기면서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이번 인터뷰에서 가장 기억 에 남는 말이었다. 30년 동안 그가 지녀온 마인드가 빛을 발했다. 생활권 녹지 330만㎡ 확충, 도심공원녹화사업 등으로 서울시를 그린시티 서울로 변화시키는 데에 주도적인 역할을 했던 그가 서울시 푸른도시국 국장으로 발탁된 것이다. 공원에 가시적인 시설물을 담기보다는 시민들의 문화를 담고자 했던 최광빈 국장이 앞으로 꾸려갈 서울시 공원녹지조성정책, 추진전략들을 들어보았다.서울 푸른도시국 국장이 되신 것 축하드립니다. 소감과 앞으로의 포부를 말씀해 주신다면.과장하다가 국장되어서 좋은 것은 독방을 쓴다는 것인데(웃음), 어떤 한 섹터씩을 담당하다가 총괄해야 되는 입장에 서니까 좀 더 신중해지고, 또 결정력을 갖고 시장님께 건의해야하는 최종적인 자리에 있다 보니까 심적인 부담도 커집니다. 공원과장과 조경과장을 각각 두 번씩 했기 때문에 돌아가는 일들의 얼개를 대강은 알지만, 최종적으로 비전과 방향을 제시하다보니 더 많은 고민을 하게 되는 것 같습니다. 앞으로 사업을 시행하면서 내세울 원칙이 있다면 공원은 만드는 것만이 중요한 게 아니라 만들고 나서가 매우 중요하다는 것 입니다. 공원에는 여러 가지 시스템이 있는데, 공원의 외피적인 것을 관리하는 하드웨어가 있고, 편의 및 서비스, 문화시설을 다루는 소프트웨어가 있습니다. 현재는 북서울 꿈의 숲을 계기로 소프트웨어에 대한 고찰을 해 나가려 하고 있습니다. 수행해 오신 사업 성과들 중 몇 가지만 말씀해 주신다면. 과거에는 사람들의 문화, 삶 등을 담아야 하는 소프트웨어가 단순했죠. 이에 대해 조금 후회스러운 점도 있습니다. 제가 여의도공원사업을 처음 시작했을 때만 해는 공원의 하드웨어에 좀 더 주력을 했었습니다. 화장실에 음악을 틀어주고, 여자화장실에는 아기보호의자를 처음으로 수입하여 엄마가 아닌 아이의 입장에서 보려고 노력하기도 했었습니다. 그리고 어느 정도 성공을 거두었습니다. 월드컵경기장이나 서울숲에서도 마찬가지로 좋은 성과를 얻었는데, 제일 풀리지 않는 숙제가 서비스부분이었습니다. 예를 들어 식음을 판매하는 일반사업자들이 수익을 빨리 창출해내려고 서비스에는 전혀 신경을 쓰지 않는 것도 실패한 사례 중 하나였습니다. 그런데, 작년(2009년) 10월에 개장한 북서울 꿈의 숲의 경우에는 서비스부문에서 성공을 한 사례입니다. 문화시설이 부족한 강북시민의 삶의 질을 향상시키고자 계획했던 공연장 및 콘서트홀 조성과 그에 맞는 서비스에 대한 고민을 하던 차에 브랜치branch 개념의 극장을 갖길 원했던 세종문화회관과 접촉하게 되었습니다. 우리는 문화시설이 부족한 강북권을 위해 장기적으로 질 높은 공연과 서비스를 제공한다면 수익을 재생산할 수 있을 거란 설득을 하였고, 그리하여 세종문화회관과 함께 시민들에게 질 좋은 공연하면서 서비스면에서도 강남권 못지않게 제공하였습니다. 이로 인해 시민들은 심성관리도 하게 되고 문화적인 마인드도 갖게 되었습니다. 나무를 구경하거나 운동만을 했던 과거의 공원개념과 달리 이런 것들이 선진문화가 갖게 되는 공원의 복합성인 것 같습니다. 이렇게 발판을 만들어 놓음으로써 서비스 퀄리티quality 즉, 소프트웨어에 대한 돌파구를 찾게 된 것 같습니다. 다른 사업으로는 동네뒷산공원화가 있습니다. 마을에서 방치해두었던 쓰레기 더미 공간을 공원화 하는데 공원용지보상과 더불어 동네사람들이 쉴 수 있도록 쉼터와 정자, 등산로 등을 조성하는 사업이었습니다. 그런데 좋은 공원시설이나 고급포장만이 능사는 아니었습니다. 관의 입장에서는 동네 어르신들이 소일거리로 자투리 공간을 일구는 일이 무단경작이지만, 어르신들에게는 수요가 있는 공간이었습니다. 하여 1년 단위로 한 평 남짓한 공간을 분양하여 주민들이 참여하도록 하고, 휴게정자에 허브를 심어 주민들이 허브냄새를 맡거나 만지면서 자연과 접촉하도록 해 자연스럽게 주민들이 커뮤니티를 형성하도록 하였습니다.학교공원화사업은 신내초등학교 내에 나무를 심는 아주 단순한 의도로 처음 시작했었습니다. 학교 내에 나무를 추가로 심고, 학교 담장을 허물어 놀이시설, 경계화단을 조성하는 사업이었습니다. 그러나 담장을 허무는 데는 학교 측의 반대가 있었고, 학교담장이나 아파트 경계담장 등이 도시경관을 해치고 있음을 설명하고 학교담장을 헐어 쉼터나 생태연못 등을 만들거나 필요하다면 놀이시설을 만들어 줄 것을 제의하고 나서 동의를 받을 수 있었어요. 지금은 폐쇄적이었던 처음과 달리 서로 해달라며 지원하고 있습니다. 보통 이런 사업들은 지역주민설명회를 통해 시민들의 의견들을 듣는데, 입을 맞추어 하는 얘기는 담장을 허물고 녹지가 조성됨으로써 아파트의 부가가치가 올랐다는 겁니다. 사람들에게도 이제는 닫고 살기보다는 열고 살자는 문화가 형성된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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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 박사 원병오 교수
평생을 새와 함께 해온 한국 조류학의 산 증인, 피상적 생태복원에 쓴 소리한국 조류학의 살아있는 증인새 박사 원병오 교수. 그는 오직 새에 대한 남다른 사랑과 열정으로 6·25 전쟁의 폐허 속에 황무지나 다름없던 우리나라 조류학의 학문적 토대를 마련한 장본인이자 발전시켜온 한국 최고의 조류학자이다. 흔히 새 박사라 하면 방송활동으로 잘 알려진 윤무부 교수를 떠올리지만 윤교수를 비롯한 국내 조류학계를 이끌고 있는 학자 대부분이 원병오 교수의 제자들이니 ‘한국 조류학의 아버지’란 평가가 가히 어색하지 않다.그가 조류학자가 된 것은 우리나라 최초의 동물학자이자 김일성대학 생물학부장 및 북한 생물학연구소장을 역임하면서 북한의 조류 연구를 집대성한 아버지 원홍구 박사의 영향 때문으로, 어려서부터 아버지와 함께 산과 들을 누비며 새를 관찰한 것이 오늘날 그가 세계적으로 저명한 조류학자가 된 원동력이다. 조류를 공부하기 위해 원산농대 축산학과를 졸업했으나 6·25 전쟁으로 연구를 계속하지 못하고 뜻하지 않게 부모와 헤어진 후 남으로 내려왔다. 이후 1956년 지인들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오로지 새를 연구하겠다는 일념 하나로 농림부 중앙임업시험장(현 홍릉수목원)에 들어가 한국의 조류와 포유류에 대한 본격적인 표본 수집과 분포 및 생태 등에 대한 조사연구 등을 시작했고, 몇 해 뒤 이를 종합해 일본 홋카이도대학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이 과정에서 1963년 그가 조류의 이동경로를 연구하기 위해 다리에 링을 달아 서울에서 날려 보낸 북방쇠찌르레기를 2년 뒤 북에 있는 아버지가 발견함으로써 남북의 부자 조류학자가 15년 만에 생사를 확인한 일화는 이미 잘 알려진 사실. 이후 50여 년 동안 경희대에서 교직 및 연구생활을 하며 50여 종의 새로운 새를 발견했고, 철새 100여 종의 이동경로와 계절적 분포를 새로 밝혀내 보고했으며, 160여 편의 논문 및 20여 권의 저서를 저술했으니, 그를 두고 어찌 한국 조류학의 살아있는 증인이라 부르지 않을 수 있을까.
조경, 생태보단 개발위주로 보여이런 그가 무슨 이유에서인지 “조경업자에게 환경조성사업을 맡기는 촌극이 더 이상 있어서는 안되겠다”라는 의미심장한 말을 던졌다. 그의 책 『자연생태계의 복원과 관리 - 조류서식지 조성과 복원을 중심으로』발간과 관련된 인터뷰 발언 중 하나인 이 말은 어쩌면 조경계 전체의 분노를 살 수도 있는 메가톤급 발언이기에 그 이유가 궁금했다. 조심스레 이야기를 꺼내 들어본즉 과거 서해안 간척지 조성사업에 관여한 적이 있었는데, 당시 기본계획을 맡았던 조경분야를 보고 느낀 점을 그대로 이야기 한 것이란다. “예전 ○○방조제에 들려보고 깜작 놀란적이 있어. 조경학과 ○○○ 교수가 해 놓은 것이라는데, 파괴된 생물서식지를 조성해도 모자란 곳에 기념공간이니, 여가관광지를 만들어 놓고……, 대체 그게 무엇이란 말이야…”라며 지금껏 차분하게 인터뷰에 응하던 그의 목소리에 힘이 들어갔다.사실 원병오 교수가 이 책을 펴낸 것도 위의 안타까움과 무관하지 않다. 그는 “근래까지 아시아 지역에서는 자연 생태계 조류의 관리 및 보호에 관한 안내서나 전문적인 서적이 거의 없어. 한국과 일본, 중국 및 동남아 국가에서는 전공자도 드물지. 그래서 그동안 내가 학교에서 강의한 내용과 이 분야에서 앞서 있는 미국과 영국의 자료들을 모아 엮어서 낸 거야”라고 책을 소개했다. 그러면서 그동안 조류의 도래지 복원사업을 설계하는 과정에 수년간 기초조사에 참여하면서 미국, 영국, 네덜란드, 프랑스, 캐나다, 일본 등 세계 각국의 연구기관과 복원사업현장을 방문하며 외국학자, 정책담당자, 실무책임자와 만나 많은 내용을 직접 배우고 확인한 사실을 강조했다.
개발 막을 수 없다면 대체서식지 마련해야또 각종 개발사업들로 인해 생물서식지가 점차 줄어들고 있는 현실에 대해 묻자 새만금 사업이나 한강 하구의 파주, 김포 일대의 신도시처럼 인간이 살아가면서 생기는 개발사업들을 막을 수는 없지만, 그러한 경우 반드시 대체 서식지를 마련해야 함을 이야기했다. 특히 한강 하구의 경우 이미 하구둑이 조성된 우리나라의 다른 주요 강들과 달리 분단이라는 현실로 인해 자연상태를 유지하고 있는 마지막 보루와 같은 곳이므로 반드시 생물들이 살아갈만한 대체장소를 마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단순히 마련하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실제로 서식가능한 환경으로 조성해주는 것이 올바른 방법이라고 말한다. “미국이나 영국에는 실제 사례가 많아. 그 방법을 모르거나 의문이 간다면 실제로 가서 눈으로 보고 배우고 이야기 해야지”라며 ‘눈 가리고 아웅’식의 방편 마련보다는 실효를 거둘 수 있는 방법을 체득하라고 일러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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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 박사 원병오 교수
평생을 새와 함께 해온 한국 조류학의 산 증인, 피상적 생태복원에 쓴 소리한국 조류학의 살아있는 증인새 박사 원병오 교수. 그는 오직 새에 대한 남다른 사랑과 열정으로 6·25 전쟁의 폐허 속에 황무지나 다름없던 우리나라 조류학의 학문적 토대를 마련한 장본인이자 발전시켜온 한국 최고의 조류학자이다. 흔히 새 박사라 하면 방송활동으로 잘 알려진 윤무부 교수를 떠올리지만 윤교수를 비롯한 국내 조류학계를 이끌고 있는 학자 대부분이 원병오 교수의 제자들이니 ‘한국 조류학의 아버지’란 평가가 가히 어색하지 않다.그가 조류학자가 된 것은 우리나라 최초의 동물학자이자 김일성대학 생물학부장 및 북한 생물학연구소장을 역임하면서 북한의 조류 연구를 집대성한 아버지 원홍구 박사의 영향 때문으로, 어려서부터 아버지와 함께 산과 들을 누비며 새를 관찰한 것이 오늘날 그가 세계적으로 저명한 조류학자가 된 원동력이다. 조류를 공부하기 위해 원산농대 축산학과를 졸업했으나 6·25 전쟁으로 연구를 계속하지 못하고 뜻하지 않게 부모와 헤어진 후 남으로 내려왔다. 이후 1956년 지인들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오로지 새를 연구하겠다는 일념 하나로 농림부 중앙임업시험장(현 홍릉수목원)에 들어가 한국의 조류와 포유류에 대한 본격적인 표본 수집과 분포 및 생태 등에 대한 조사연구 등을 시작했고, 몇 해 뒤 이를 종합해 일본 홋카이도대학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이 과정에서 1963년 그가 조류의 이동경로를 연구하기 위해 다리에 링을 달아 서울에서 날려 보낸 북방쇠찌르레기를 2년 뒤 북에 있는 아버지가 발견함으로써 남북의 부자 조류학자가 15년 만에 생사를 확인한 일화는 이미 잘 알려진 사실. 이후 50여 년 동안 경희대에서 교직 및 연구생활을 하며 50여 종의 새로운 새를 발견했고, 철새 100여 종의 이동경로와 계절적 분포를 새로 밝혀내 보고했으며, 160여 편의 논문 및 20여 권의 저서를 저술했으니, 그를 두고 어찌 한국 조류학의 살아있는 증인이라 부르지 않을 수 있을까.
조경, 생태보단 개발위주로 보여이런 그가 무슨 이유에서인지 “조경업자에게 환경조성사업을 맡기는 촌극이 더 이상 있어서는 안되겠다”라는 의미심장한 말을 던졌다. 그의 책 『자연생태계의 복원과 관리 - 조류서식지 조성과 복원을 중심으로』발간과 관련된 인터뷰 발언 중 하나인 이 말은 어쩌면 조경계 전체의 분노를 살 수도 있는 메가톤급 발언이기에 그 이유가 궁금했다. 조심스레 이야기를 꺼내 들어본즉 과거 서해안 간척지 조성사업에 관여한 적이 있었는데, 당시 기본계획을 맡았던 조경분야를 보고 느낀 점을 그대로 이야기 한 것이란다. “예전 ○○방조제에 들려보고 깜작 놀란적이 있어. 조경학과 ○○○ 교수가 해 놓은 것이라는데, 파괴된 생물서식지를 조성해도 모자란 곳에 기념공간이니, 여가관광지를 만들어 놓고……, 대체 그게 무엇이란 말이야…”라며 지금껏 차분하게 인터뷰에 응하던 그의 목소리에 힘이 들어갔다.사실 원병오 교수가 이 책을 펴낸 것도 위의 안타까움과 무관하지 않다. 그는 “근래까지 아시아 지역에서는 자연 생태계 조류의 관리 및 보호에 관한 안내서나 전문적인 서적이 거의 없어. 한국과 일본, 중국 및 동남아 국가에서는 전공자도 드물지. 그래서 그동안 내가 학교에서 강의한 내용과 이 분야에서 앞서 있는 미국과 영국의 자료들을 모아 엮어서 낸 거야”라고 책을 소개했다. 그러면서 그동안 조류의 도래지 복원사업을 설계하는 과정에 수년간 기초조사에 참여하면서 미국, 영국, 네덜란드, 프랑스, 캐나다, 일본 등 세계 각국의 연구기관과 복원사업현장을 방문하며 외국학자, 정책담당자, 실무책임자와 만나 많은 내용을 직접 배우고 확인한 사실을 강조했다.
개발 막을 수 없다면 대체서식지 마련해야또 각종 개발사업들로 인해 생물서식지가 점차 줄어들고 있는 현실에 대해 묻자 새만금 사업이나 한강 하구의 파주, 김포 일대의 신도시처럼 인간이 살아가면서 생기는 개발사업들을 막을 수는 없지만, 그러한 경우 반드시 대체 서식지를 마련해야 함을 이야기했다. 특히 한강 하구의 경우 이미 하구둑이 조성된 우리나라의 다른 주요 강들과 달리 분단이라는 현실로 인해 자연상태를 유지하고 있는 마지막 보루와 같은 곳이므로 반드시 생물들이 살아갈만한 대체장소를 마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단순히 마련하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실제로 서식가능한 환경으로 조성해주는 것이 올바른 방법이라고 말한다. “미국이나 영국에는 실제 사례가 많아. 그 방법을 모르거나 의문이 간다면 실제로 가서 눈으로 보고 배우고 이야기 해야지”라며 ‘눈 가리고 아웅’식의 방편 마련보다는 실효를 거둘 수 있는 방법을 체득하라고 일러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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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의 강과 문화 & Waterfront』展
인류의 삶과 문화의 장으로서 도시 수변공간에 대한 진지한 성찰을 담다..세계 4대 문명이 모두 강을 중심으로 발생했으며 역사 속의 수많은 나라들이 물을 차지하기 위해 치열한 영토전쟁을 벌였던 것을 보면 인류의 역사에 있어서 물이 매우 중요한 존재였음을 알 수 있다. 이것은 물이 모든 생명의 근원이자 인간의 삶을 영위하는데 없어서는 안 될 소중한 자원이기 때문인데, 이런 이유로 아주 먼 오래전부터 인류는 물을 찾아 그곳에 정착하고 문화를 형성해왔다. 오늘날 세계 유수의 도시들이 강이나 바다 등 물과 인접한 곳에 자리한 까닭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최근 이러한 수변공간이 다시금 주목받고 있다. 많은 도시들이 수변공간을 도시 재생의 새로운 촉매제로 활용하는 한편, 수변개발을 통해 도시의 브랜드 이미지 및 경쟁력을 높이고자 하는 양상이다. 한강 르네상스와 4대강 사업에서 알 수 있듯 우리나라 역시 수변공간에 대한 관심이 점차 증대되고 있다. 그렇다면 세계의 선진 도시들은 강과 호수, 바다와 같은 수변공간을 어떻게 보존하고 활용하고 있을까?지난 연말 이에 대한 다양한 사례들을 모은 사진전이 열려 눈길을 끌었다. 전시회의 주인공은 바로 진주산업대 조경학과 강호철 교수. “도시의 강과 문화 & Waterfront”를 주제로 한 이 전시회에는 강호철 교수가 지난 15년간 세계 40여 도시들을 직접 발로 뛰면서 촬영한 15만여 장의 사진들 가운데 특별히 엄선한 70여 점이 선을 보였다. 일찍이 강과 바다를 끼고 융성한 문화를 이룩해 온 인류가 강과 바다의 보존과 활용 과정에서 겪은 오랜 시행착오와 경험이 스며있는 지혜로운 모습을 담은 그의 사진들 가운데 일부를 모아 지면에 소개한다. 이 사진들을 통해 최근 활발히 전개되고 있는 수변개발에 있어서 우리가 유의해야 할 것들이 무엇인지, 또 새롭게 얻어야 할 것들은 무엇인지 깊이 생각해보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
사진제공_ 강호철·진주산업대학교 조경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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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 Jara Island International Baggat Art Exhibition
바깥미술전지난 1월 30일부터 2월 11일까지 경기도 가평 자라섬 내 중도에서는“화해和諧, 그리고 은유의 숲”이라는 주제로“2010 자라섬 국제 바깥미술전”이 열렸다. 바깥미술전은 자라섬의 자연을 배경으로 작품을 전시하는 자연설치미술전으로서 매년 겨울마다 개최되고 있으며, 1981년 청평면 대성리를 시작으로, 경복궁 국립민속박물관 야외전시장(1997), 제부도 갯벌(1999), 난지도(2002), 북한강(2004) 등을 거쳐 2005년부터 자라섬에서 열리고 있다.올해는 30회를 맞아 동양의 자연주의적 미학담론을 토대로 아시아적 생태미술을 조망하고자 몽골-한국-일본을 잇는 범아시아적 전시를 기획했다. 그래서 바깥미술회 회원의 작품뿐만 아니라, 국내 초청 작가와 몽골, 일본 등 해외 작가들의 작품도 전시되었다.이 전시회는‘수도권 편중’·‘대규모 지향’의 여타 국제전과는 다른 모습이다. 또한 의제의 공동화와 현실에 대한 실천적 긍정적 대안을 실현코자 참여작가 모두가 노력하며, 단순히‘자연 안에 있는 작업’이 아니라 재료, 기후, 지형 등‘자연과 함께 생성되는 예술 작업’을 목표로 하고 있다.이번 전시회에는 총 27개의 작품이 전시되었으며, 전시 주제인“화해和諧, 그리고 은유의 숲”은 다음과 같은 의미를 가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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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화문광장 공공시설물 아이디어 공모전
한글을 주제로 새롭게 디자인되는 광화문 광장서울디자인재단은 지난 1월 22일 ‘광화문광장 공공시설물 아이디어 공모전’에 대한 수상식을 가졌다. 한글을 주제로 한 이번 공모전은 광화문광장 내 세종대왕상 건립을 기념하여 광장의 고유성을 제고하고 디자인 문화도시로 자리매김하고자 광화문광장 내 벤치, 그늘막, 플랜트, 차량 방호용 경계석 등의 공공시설물의 통합디자인화를 목표로 하였다. 심사는 공간의 상징성, 역사성을 강조한 국가상징축으로서의 독창적이고 창의적인 디자인 또는 역사·문화자원 및 광장주변 경관과의 연계성을 고려하고 조선왕조 5백년 역사를 담아 낼 수 있는 디자인을 중점으로 이루어졌으며, 금상, 은상, 동상 2작품, 입선 20작품 총 24작품을 선정하였다. 금상으로 당선된 김동명 씨의 ‘트랜스포머기역[ㄱ]’은 한글의 생성원리 중 자음의 파생과 모음의 조합원리를 조형물에 적용한 작품으로 한글의 특징을 잘 살림과 동시에 광화문광장의 의미를 부각시켜 주었다. 한글이 주는 다양한 디자인을 보여준 이번 공모전의 의의를 찾으면서 본지에서 금상, 은상, 동상 수상작을 자세히 소개한다. -편집자주-1ST트랜스포머기역[ㄱ]_김동명
Design Concept]체계적이며 과학적인 한글의 생성원리한글은 세계가 인정한 최고의 소리문자로서 24개의 자음, 모음의 조합으로 무수한 소리음을 표현할 수 있는 과학적인 문자이다. 이 때문에 초성, 중성, 종성의 조합으로 하나의 음절을 만들어내며, 무려 11,172개의 소리음을 표현할 수 있다.
자음의 파생과 모음의 조합을 형태생성원리로 활용5개의 기본자음(ㄱ,ㄴ,ㅁ,ㅅ,ㅇ)을 바탕으로 파생된 17개의 자음과 3개의 기본모음의 조합으로 생성된 11개의 모음이 생성된다. 이런 자음과 모음의 생성원리를 형태생성원리로 활용하여 광장 내 조형물의 모티브로 활용하였다.2ND한글...광화문광장과 세계가 소통하는 방법_이기승, 이호준, 윤지승
한글의 특성을 활용한 공공시설물을 디자인하여 광화문광장의 상징성을 표현하고사용자들과 교감할 수 있는 ‘열린 광장’을 만들어간다.대한민국의 중심 광화문 광장이 ‘한글’을 연결고리로 세계 시민들과 소통할 것이다.3RDㄴ + ㅏ = ㄴ + ㅓ_김선형, 김호영, 이근수(디자인컴퍼스)
컨셉새로운 문화의 창출이라는 의미를 담고자 한글의 우수한 특성 중 자음과 모음의 ‘조합’을 컨셉으로 하였다. 예를 들어 벤치로 사용될 자음 ‘ㄴ’ 에 모음 ‘ㅏ’를 더하면 광장 안의 작은 커뮤니티 공간이 형성되고 이로써 단순한 공공시설물을 넘어 상징적인 요소로 서의 광장이 된다. 이에 시민들과 광장을 하나로 만들어 주는 디자인을 제안하고자 한다.
디자인 모티브‘ㄴ+ㅓ=ㄴ+ㅏ’를 컨셉으로 한글의 우수한 조합성을 모던하게 디자인3RDMulti:Layer_최광인, 김원근((주)오투앤비)
도시민의 문화와 활동이 한글을 통해 광화문광장으로 유입되어 랜드마크를 조성하고 광화문광장의 감성과 생명력이 도시로 퍼져 현란한 멀티비전과 다양한 행태유발 공간을 창조하는 Multi:Layer
공간의 성격에 맞게 다양한 기능을 고려하여 상황에 맞는 보행공간을 유기적으로 확보할 수 있도록 많은 디자인 행사가 있는 광화문광장의 유동성을 확보하였다.
자료제공_서울디자인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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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amgye Seowon
남계서원 Namgye Seowon which is located in 586, Wonpyeong-lee, Sudong-myeon, Hamyang-gun, Gyeongsangnam-do is 4,810㎡ area. It was given the name “amgye”in the 19th year of King Myeongjong's reign(1566). It is the oldest seowon, the next to Sosuseowon, and it was reconstructed after burning down in the time of war, Jeongyujaeran. Gaeam Kang-Ik, Dongye Jeong-On, and Noigye Yu-HoIn are enshrined in the shrine. The aesthetics of adaption is connected spatially, topographically, and functionally with Jundo-gate, Jeonsacheong, Myeongseongdang, Gyeonpangak, Yangjeongjae, Aeryeonheon, Boinjae, Yeongmaeheon, and Pungyeongru. It was appointed as national historical relics no. 499 in 26th of May, 2009.
남계서원은 경상남도 함양군 수동면 원평리 586번지에 위치하며, 면적은 4,810㎡로 조선조 성리학에 있어 오현의 한 사람인 일두一정여창鄭汝昌을 추모하기 위해 서원건립을 결의한 후,조선 명종 19년(1566) “남계 溪”라는 이름으로 사액서원이 되었다.이후 정유재란 때 소실되었다가 복원하여 개암介庵강익姜翼, 동계桐溪정온鄭蘊, 임계林溪유호인兪好仁 등을 배향하고 있는 국내에서 소수서원 다음으로 오래된 서원으로, 풍영루, 명성당, 양정재, 보인재, 경판각, 애련헌, 영매헌 등이 자연과 인공이 화합하는 순응의 미학을 공간적, 지형적으로 연계시키고 있다. 2009년 5월 26일 사적 제499호로 지정되었다.
造營_남계서원은 일두一정여창(鄭汝昌, 1450-1504)1 이 세상을 떠난 후 그의 제자들에 의해 명종 14년(1559) 강당, 1561년 사당, 1564년 동재와 서재 그리고 연당을 완성하면서 그 후 1566년 서원 곁의 시내 이름을 따서“남계 溪”2라는 사액을 받았다. 선조 30년(1597) 정유재란으로 소실된 뒤, 선조 38년(1605)에 나촌羅村으로 터를 옮겼다가, 선조 43년(1612) 옛터인 현재의 위치에 다시 옮겨 중건되었다.3 이후 숙종 1년((1675) 동계 정온,(1569~1641)이 서서西序에, 숙종 15년(1689) 강익이 동서東序에 추가 배향되었다. 그리고 별사別祠에는 임계 유호인(1445~1494)과 정홍서가 배향되었다가, 1868년 흥선대원군의 서원철폐령 때 별사는 훼철되었다. 현재는 교육적 기능이 없어지고 제향기능만 남아있으며, 『어정오경백편』·『고려사』등의 책을 소장하고 있다.
立地_남계서원은 연화산(443.2m)을 주산으로 백암산을 안산으로 득수 형국을 이루는 구릉에 위치하여‘신향인좌申向寅坐’‘, 전저후고前低後高’의 경사지에 위치하고 있다. 또한 지형 및 수계적 측면에서는 서원 앞으로는 덕유산에서 발원한 남계천이 흐르며, 안산인 백암산이 사원을 마주보고 있다. 한편 근경으로는 원평마을 일대가, 원경으로는 남계천 너머 개평마을 이차경된다.4 주변 환경으로는 함양 상림, 화림구곡 등이 있다.
空間構成_1)配置形式서원의 공간구성은 홍살문, 하마비, 풍영루 등의 진입공간, 애련헌, 영매헌, 연지 등의 유상공간, 명성당, 양정재, 보인재 등의 강학공간, 내삼문, 사당 등의 제향공간, 고직사 등의 지원공간을 가지는‘전학후묘前學後廟’ 의 배치구조를 보이고 있는 바,5 내용은 다음과 같다. 서원 입구에는 하마비와 홍살문이 위치하고 있으며,6 이를 지나 정문이자 외문인 풍영루를 들어서면 전면에 앞뜰과 중정 마당 전면으로 두 개의 연지가 있으며 강당인 명성당을 마주하게 된다. 또한 강당과 누문사이에는 동재인 양정재와 서재인 보인재가 마당을 사이에 두고 마주보고 있으며,7 보인재 남측에 묘정비각이 있다. 한편 강당 좌측, 고직사 입구 전면에는 제향전날 제관들이 제례물을 올려놓고 품평을 하는 세단으로 된 석조 생단牲壇이, 강당 우측에는 경판각이 있다. 한편 명성당 뒤 가파른 계단을 오르면 내삼문이 있고, 삼문을 들어서면 담장을 둘러 별도의 영역을 마련한 사당이 있으며, 또한 사당 내 전사청이 북향해 위치하고 있다. 전면에는 제향시 사당에 들어가기 전에 손을 씻기 위해 대야를 올려놓는 시설인 관세대와 정료대가 있다.
1‘.우강(右江)함양’의 기틀을 이룬 정여창은 세종 32년(1450년)서원 북서쪽에 위치한 지곡면 개평리에서 태어났다. 이후 함양군수로 있던 김종직에게 글을 배운 후 학자로서의 길을 걷기 시작했으며, 그의 학문은 성리학사에 있어 하나의 큰 자취를 남겨 김굉필, 조광조, 이언적, 이황과 함께 5현으로 문묘에 배향되었다.2.남계(溪)라는 명칭은 수동의 물 수(水)자와 연관되며, 넘칠‘濫’, 계곡‘溪’명칭은 풍수적으로 남계서원이“물 위에 떠있는 연꽃[蓮花浮水形]”을 이루는 장소에 위치하고 있음을 유추하게 한다.3.서원은 조선시대 사회윤리를 보급하고 향촌 질서를 재편성하며 지역공동체를 이끌어간 핵심공간이자 도학을 이상으로 삼던 사림세력들의 관념세계가 반영된 성리학적 이상세계이다. 이에 서원은 대개 특별한 의미를 지닌 곳으로 산수가 뛰어나고 조용한 산기슭이나 계곡 또는 향촌에 입지하였으며, 성격에 따라 절터 또는 퇴락한 사찰을 이용하였다. 더러는 선현의 연고지에 건립되는 경우도 있다. 이는 관학인 성균관이나 향교와 달리 행정적으로 조정의 통제로부터 벗어나 있을 뿐 아니라, 서원 제도에 함유된 유가적 운둔사상 등과도 연계되어 있다고 사료된다.4.남계서원은 주변 자연 경사지형을 거의 그대로 유지하고 있는 느낌을 갖게 되는데, 이는 서원 배치가 풍수사신사의 형세를 반영함은 물론 비산비야(非山非野)의 완경사지 자연지형을 활용한 공간 및 시설배치를 통하여 담 밖의 경관을 효과적으로 차경함에 있다. 즉, 담으로 둘러쳐진 서원영역은 심리적 경계일 뿐 서원 안팎의 자연은 연속성을 갖고 공유되며 통합적 시계구조를 가진다.5.서원은 강학공간과 제향공간의 중심축을 일치시키고, 건물들이 직각과 평행을 이루도록 정연하게 배치하는 것이 일반적이나, 남계서원은 진입공간에서 풍영루까지의 축과 풍영루에서 명성당까지의 축 그리고 다시 강당에서 사당까지의 축이 동일 직선상에 형성되지 않고 각각 1°와 2°씩 우측으로 편향된 별도의 축선 상에 놓여있다. 또한 연지 또한 직교축선상에서 약간 벗어난 부축 상에 놓여있음을 발견할 수 있다.6.풍영루를 지나면 열린 공간이 전개되며 그 너머 동·서재 측면으로 마당이 돌출된 듯 지각된다. 이는 경사진 땅에 건물을 배치하고 적정 규모의 연지를 조성하여 시각적 균형감을 확보하였음을 의미한다.7.남계서원의 강학공간은 중심성이 상하, 좌우대칭 구도로 명확하게 분리되고 있다. 특히 강당건물은 짝수 4칸의 칸수구성이 적용되고 있는데 이는 예제적 원칙이 준용된 것으로 사료된다.
2)空間構成要素식물 _서원의 현존 수목은 서원 조영 당시와는 차이가 있으며, 또한 정확한 고증을 위한 자료 또한 부족한 실정이다. 당시 동·서재 전정의 연지에는 홍백련을 심고 그 주변에 매화와 죽을 심었는데,8 현재는 은행나무 1주와 버드나무 1주가 있으며 주변에는 무궁화, 구상나무 등이 식재되어 있고 지당내는 수련과 창포가 식재되어 있다. 또한 서원 입구와 사당 후면에는 송림이 울창하였다고 전해지는데 지금도 사당 후면에는 소나무 등의 일부 잔존하고 있으며, 사당 입구에는 배롱나무9가 대식되어 있다.
건조물 _1. 풍영루 _ 이층 누각으로 정면 3칸, 측면 2칸의 겹처마 팔작지붕으로 서원 내의 경물과 동산의 아름다움을 인식하는 동시에 원경으로 멀리 전개되는 산하를 차경하기 위한 경관집점 역할을 하고 있다.2. 명성당 _ 정면 4칸으로, 중앙의 2칸 마루와 양쪽 협실 각 1칸으로 되어있으며, 왼쪽 협실은 거경재居敬齋, 오른쪽 협실은 집의재集義齋이다. 강익이 쓴『남계서원기』에 의하면“강당 이름“명성明誠”은“중용”의 밝으면 성실하다明則誠”는 뜻을 취했고“, 왼쪽 협실을“거경居敬”, 오른쪽 협실을“집의集義”라 한 것은“정자가훈程子家訓”의“경敬에 거해서 이를 궁구한다”는 내용과 맹자의“의義를 모아 산다集義以生”는 뜻에서 취했다고 한다.3. 사당 _ 정면 3칸 규모의 건물로 전면에 툇 칸을 두었으며, 내부에는 정여창을 주벽으로 하여 좌우에 정온과 강익의 위패가 모셔져 있다.4. 양정재, 보인재10 _ 각각 정면 2칸, 측면 1칸 규모인데 각각 1칸은 온돌방이고 1칸은 누마루로, 서재의 경우 증자의‘이우보인以友輔仁’에서 학문수양의 인성론을, 동재의 경우 역경의‘몽이양정蒙以養正’에서 교육의 목적론을 성리학적 가르침 등과 연계하여 건물명에 표상화시켰다.5. 경판각 _ 강학공간에 부속되는 건물로 선현 등의 문집 등을 보관, 판각하여 서적을 펴내는 목판을 보관하는 곳으로 정면 2칸, 측면 1칸의 우진각 지붕이며, 경판을 보호하기 위해 지면의 바닥을 높여 마루를 설치하였고 벽체도 판벽을 하였다.
8.연지에 홍백련을 심었다는 문헌 기록을 통해 유추하여 보건대, 연못에 각각 홍련과 백련을 구분하여 재식한 것은‘홍동백서(紅東白西)’의 개념에 근거해 동쪽은 생명의 근원인 태양이 떠오르는 생명탄생과 관련 있는 홍련을, 서쪽은 음향오행의 상징색인 흰색의 백련을 재식하였을 것으로 추정된다.9.배롱나무는 꽃이 오래간다 하여 목백일홍 또는 자미화라고도 불리는데 수피가 맨들거려 마치 살이 없는 백골과도 같아 보인다는 함의를 담는 식물로 사물의 본질을 추구하였던 조선조 선비들이 선호하였던 성리학의 상징목이다.10.건물구조는 기본적인 온돌과 마루 2칸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이 중 한 칸을 누마루로 할애하고 있다. 동·서재의 마루인 헌(軒)은 순수한‘마루’형식에서 벗어나 지면과 이격된 루(樓)의 형태를 갖춤으로써‘당(堂)’인 마루형식과 차별화되고 있다. 이 중에 방은 땅 위에, 마루는 공중에 떠 있는 상태여서, 하나의 건물 안에 전혀 다른 내용의 장소가 공존하는 형태가 되는 것이다. 또한 명칭도 동재인 양정재의 누마루는 애련헌으로, 서재 보인재의 누마루는 영매헌으로 각각‘연꽃’과‘매화’완상을 통해 격물지치(格物至治)할 수 있는 장소성을 갖는다.
수공간 _연지의 경우 지내로 내려갈 수 있게 자연석의 6단(W 1.5m × L 1.5m) 계단으로 조성되어 있으며 너비 6.35m, 길이 5.5m, 깊이 1.5m(저면 5.8m×5.3m) 규모로 수련과 창포 등이 재식되어 있지만 원래 연꽃을 심어 관상하던 공간이다. 유교에서는 연꽃을 청렴의 상징으로 보았으며, 연꽃의 텅 빈 뿌리와 줄기는 학문의 관통 즉, 학문의 기초에서부터 통달에 이르기까지 대성함을 의미하기도 한다. 또한 진흙탕에서 자라지만 그것에 더럽혀지지 않는 연꽃의 모습을 칭송하여“꽃 가운데 군자花之君子者也”라 하였다.
結_ 본 고는 조선중기 주자가례와 강독의식 같은 당대의‘예제적 틀’을 적용하여 초창기 서원 형식에 있어 중요한 역할을 점유하고 있는 남계서원의 경관건축적 특성을 파악하기 위한 조영실제, 입지·공간구성 중심으로 기술한 바, 주요 내용은 다음과 같다.첫째, 조영은 일두 정여창이 세상을 떠난 후 그의 제자들에 의해 명종 14년(1559) 강당, 사당, 동재와 서재 연지를 완성하면서“남계”라는 사액을 받았고 정유재란으로 소실된 뒤, 선조 43년(1612) 옛터인 현재의 위치에 다시 옮겨 중건 이후 향사의 기능을 수행하였다.둘째, 입지는 연화산을 주산으로 백암산을 안산으로 득수 형국을 이루는 구릉에 위치하고 있으며, 서원 앞으로는 덕유산에서 발원한 남계천이 흐르며, 안산인 백암산이 사원을 마주보고 있으며, 주변 환경으로는 함양 상림, 화림구곡 등이 있다.셋째, 공간구조은 사당, 강당인 명성당 그리고 양정재, 보인재, 풍영루, 묘정비각 등의 건물이 강당을 중앙으로 마루와 양쪽 협실로 배치되어 있는데, 왼쪽 협실은 거경재이고 오른쪽 협실은 집의재이다. 동재인 양정재와 서재인 보인재는 애련헌, 영매헌이 연결되고 중정 마당 전면으로 두 개의 연지가 있는데 전체적 배치형식은 완경사지에‘전학후묘’의 배치구조를 가진다.넷째, 구성요소는 식물과 건조물, 수공간, 점경물 등으로 이루어지는데, 식물의 경우 사당 일원에는 배롱나무, 소나무 군락을 형성하고 있으며, 연지에는 수련과 창포 등이 재식되어 있으며, 건조물의 경우 강학의 기능을 담당하는 명성당, 동·서재, 전사청, 서원의 서비스 기능을 담당하는 고직사 등이 있다. 수공간은 동, 서재 전면부의 연지 등이 있으며, 점경물로는 제향의식의 도구로 사용되었던 정료대 등이 있다.이로 인해 16세기 중반 조영된 강학과 제향의 기능을 담당하던 공간으로서 남계서원은 조선시대의 여타의 서원과 비교하여 주자가례 등의‘예제적 틀’을 적용하여 초창기 서원 형식이 지니는 정형성을 잘 보여주면서 축선의 어긋남을 통해 구성의 변형을 꾀하고 있다. 또한 차경을 이용해 건물과 자연의 연계된 경관구조를 이루며, 구성미가 뛰어남을 파악할 수 있었고, 이러한 경관건축은 해당지역의 지형조건 등의 자연적 요소와 당시의 성리학에 바탕을 둔 사상체계, 정치체계 등의 인문적 요소가 상호 밀접하게 관련된 것으로 사료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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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튜디오 101, 설계를 묻다(14)
마무리의 시작1년 넘게 허덕거리며 꾸려오던 연재의 릴레이를 마감할 시간이 왔다. 타고난 글쟁이들이 아닌 탓에 매달 원고 마감이 다가올 즈음엔 으레 필자들 사이에 한숨과 안타까움이 배어있는 문자들이 오고갔다. 뚜렷한 정답 없이 키워드만 던져놓고 시작한 터라 매달 컴퓨터의 하얀 화면이 주는 막막함을 독대하고 앉아있던 기억의 깊이만큼, 이제 손에 꽤 두툼하게 잡히는 과월호 원고뭉치가 주는 부끄러운 기쁨도 느낀다. 연재를 마무리짓는 마지막 글을 위해 지난 열세편의 원고들을 훑어보니, 새삼스럽게 연재 전체의 제목이 “설계를 묻다(bury or question)”였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묻혀져있던 설계에 관한 이야기들을 끄집어내어 묻는" 과정은 엉켜있는 막막함을 노출하고 구조화하는 작업이었다. 프롤로그에서 정욱주 교수는 열두 가지 키워드를 위한 질문들을 쏟아내었다. 연재의 기획과 잘 맞았던 오프닝에 걸맞는 마무리라면……. 에필로그에서는 열두 가지 질문꾸러미에 대한 해답들을 정리해주어야하는걸까라는 의문이 내내 부담으로 다가왔다. 아마 1년이 넘는 시간을 통해 우리들은 질문만을 던졌는지도 모르겠다. 우리의 의도가 교과서적인 해답보다는 설계에 대한 정체모를 답답함과 어려움을 12개의 키워드를 통해 쉽게 들여다 볼 수 있는 틀을 제시하고 질문의 형태로 막연함을 실체화하는데에 있었기 때문이다. 더 솔직하게 말하자면 우리들이 조경설계에 대해 지금까지 느꼈던 여러 과정을 들여다보고 문제를 정의함으로써 스스로의 공부하는 과정을 드러내고 공유한 셈이다.
101은 과목의 위계상 가장 처음 배우는 “입문과정”을 의미한다. 2학년으로 올라가면 201, 202, 3학년이 되면 301, 302…… 이러한 순차적 교과과목 숫자를 제목으로 채택한 이유가 후속편에 대한 암시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지만, 미안하게도 201, 301, 401의 속편들은 설계하는 사람들이 스스로 생산해야하는 텍스트라는 점을 얘기하고 싶다. 아이들이 세계에 호기심을 갖기 시작하면서 하는 일들은 세계에 대한 집요한 관찰과 여과시키지 않은 원초적 질문들이다. 조경설계라는 세계에 호기심을 갖기 시작하면서 중요한 것 역시 우리 주변의 외부환경에 대한 애정어린 관찰과 스스로 질문을 던지는 일이라고 응용한다면, “설계를 묻다”의 마무리 역시 해답꾸러미보다는 또다른 층위로 진화된 질문들이어야 하지는 않을까.
12개의 질문종합세트1년을 염두에 두고 기획한 것이라 당연히 12개의 키워드가 선정되었다. 프롤로그에서 제시했던 키워드들은 필자들의 생각의 진화과정에 맞추어, 재현과 표현이 합쳐지고 소통이 사라지고 프로세스와 설계도구가 추가되면서 조정되었다. 각 키워드를 가지고 1년의 달력을 만들면 각 달마다 어떤 그림과 문구가 좋을까하는 우스운 생각도 든다. 정리하는 의미에서 지난 글들의 제목들을 모아보니 다음과 같다.
개념: 휘발성 개념에서 촉각적 개념으로정체성: 개성, 전통 그리고 한국성형태: 보이지 않는 것도 디자인하는 형태적 상상력프로그램: program is air디테일: 작은 것에 대한 상상이 갖는 큰 힘질감: 재료와 인간과의 교감재현: 드로잉과 상상력, 공간의 삼각관계에 대한 추적리빙시스템: 문화적 산물로서의 생태적 디자인스케일: 조경설계에 있어서의 스케일프로세스: 시간축의 공간화대상지 분석: 대상지라는 텍스트 읽기설계도구: 자유 혹은 구속
열두 가지 화두를 관통하는 공통의 가치나 지향점이 있을까라는 의문이 든다. 필자들 사이의 관점과 생각의 차이는 분명히 존재하지만, 몇 가지 바탕에 깔고 있는 근원적인 가치는 복사한 것만큼 일치하였다. 12개의 글들은 모두 궁극적인 설계의 지향점이 설계도면 그 자체가 아닌 실제로 지어지는 실체적 경관 혹은 공간으로 향해야하며 공간의 진정성은 설계가의 태도로부터 비롯된다는, 어찌보면 뻔한 결론의 열두 가지 버전이다. 언어유희적인 개념이 공간화되지 못하는 세태에 대한 걱정, 자아의 실천적 정체성이 아닌 형태적 모방에 그치기 쉬운 전통과 한국성 논쟁의 허무함에 대한 우려, 평면적 도면 효과와 형태 자체에 집착하는 경향에 대한 경계, 강요되지 않고 자연스럽게 유도되는 공간의 자연스러운 프로그램 연출력에 대한 욕망, 기계적으로 형식화된 디테일이 부르는 문제점들에 대한 지적, 공간의 풍부한 질료성과 느낌, 재료와 사람이 만나는 승화된 관계를 질감을 통해 이해하고자 하는 시도, 현실에 근거한 상상적인 드로잉이 가질 수 있는 폭발적인 힘과 그 재현의 방식이 궁극적으로는 새로운 공간을 만드는 원동력이 될 것이라는 암시, 과학적 이론이 아닌 문화적 실천으로서의 생태적 디자인으로서의 통합적 리빙시스템 개념의 제시, 규모와 스케일에 맞는 새로운 설계실천방식에 대한 고민, 기계적인 단계별 계획이 아닌 조경공간 자체에서 비롯되는 섬세한 시간성의 물화방식으로서의 프로세스, 형식적인 절차가 아닌 설계의 핵심적인 단서를 찾는 조건의 해석과정으로서의 대상지 분석, 그리고 마지막으로 설계가를 구속하는 것이 아니라 해방시킬 수 있는 설계도구의 가능성……. 이 모든 것이 보다 진정성 있는 공간을 만들기 위한 다각도의 검증방식이었다고 하면 너무 허무한 일반화일까?많은 조경설계가 그 뻔한 결론을 잘 실천하고 있지 못한 데에서 오는 무기력증에 너무 쉽게 적응해버린 것은 아닐까. 설계의 결과물이 실제로 만들어지는 경관과 공간과의 끊임없는 관계성을 고민하지 않는다면 종이 혹은 모니터 위의 덧없는 시각적 유희에 그칠 수밖에 없음이 우리를 조바심나게 한다. 엄청난 가속도로 양적 팽창하는 우리 조경설계의 상황이 양질전화의 중요한 순간을 맞이하기 위한 실제적인 점검과 준비와 실행이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