폴더관리
폴더명
스크랩
  • [모던스케이프] 1960년대와 아동공원
    수년 전, 서울 남산공원의 기록물을 수집하면서 새삼 느낀 점은 사람들은 남산 자락에 무언가를 만들었다 부수기를 반복했다는 것이다. 그중 가장 드라마틱한 변화가 있던 지역은 숭례문 또는 서울역에서 도보로 접근 가능한 북서 사면의 회현자락이다. 남산의 예장자락이 일본인이 한성부에 합법적으로 거류하게 되면서 조선의 도시적 질서가 깨지기 시작한 지역이라면, 조선신궁이 있던 회현자락은 남산을 식민 통치의 폭력과 억압의 상징 경관으로 전복시킨 장소다. 조선신궁은 일본의 패망과 함께 모두 불타버리고 그 터만 남게 되었고, 해방 직후 좌익과 우익의 각종 집회 장소로 쓰이면서 이데올로기 갈등이 첨예한 공간으로 전환된다. 국회의사당 조성을 위해 기공식까지 했지만 결국 취소하는 전무후무한 전력까지 세우게 되면서, 한동안은 여론몰이가 필요한 각종 집회의 장소로 이용됐다. 5.16 군사정변 이후 정권의 안정기에 접어들면서 서울시는 국회의사당 부지를 중심으로 종합미화계획을 수립한다. 그리고 1960년대 중반, 이곳은 비로소 ‘중앙광장’(최상단)과 ‘야외음악당’(2단), ‘아동공원’(1단)으로 대변신한다. 남산이 비로소 서울 시민의 이용 공간으로 전용된 것이다. 특히 대규모 공간을 할애한 아동공원은 이후 서울과 전국의 주요 도시에 제2, 제3의 아동공원을 조성하게 하는 전향적인 영향력을 끼쳤다. 1963년 4월 6일에 착공해 8월 10일에 준공, 8월 25일 개장한 남산의 어린이 놀이터를 두고 각종 신문 매체는 한국 최대 규모, 아동 낙원, 꿈의 낙원 등의 헤드라인을 뽑았다. 다소 과장된 것 같지만, 변변한 놀이 시설 없이 골목길을 전전하며 노는 것이 일상이던 시절에 한 번에 1,500명의 어린이를 수용할 수 있는 규모의 면적에 90여 종의 놀이 기구를 설치해 무료 이용하도록 했다는 점을 확인하면, 그러한 표현에 충분히 수긍이 된다. 남산 아동공원은 ‘남산공원 설계현상모집’(1962년 1~2월 진행)을 통해 구현됐다. 현상공모에 관한 서울시 공문 서류에 아동공원이 일절 등장하지 않는 것으로 봐서는 당선작의 아이디어를 수용한 결과로 보인다. 건축가 안병의(1927~2005)의 작품이 당선작으로 채택됐는데, 기하학의 패턴과 유연한 곡선을 절충해 건축과 녹지 공간을 적절히 결합한 것이 특징이다. 그는 최상단에 야외음악당과 시민 광장, 기념물을 두고 2단에는 미술관 건물을, 가장 낮은 1단에는 아동공원을 설치할 것을 제안했다. 결과적으로 야외음악당은 최상단에서 2단 부지로 이동하고 건물 형태도 곡선으로 바뀌는 등 대폭 조정됐지만, 그가 제안한 아동공원만큼은 그대로 수용됐다. 놀이 시설은 오히려 대폭 늘어서 회전 그네, 달팽이 미끄럼틀, 미궁(迷宮), 구름다리, 분수, 원형 철봉대, 여우굴 등각양각색의 놀이 시설을 콘크리트로 만들어 선보였다. *환경과조경423호(2023년 7월호)수록본 일부 참고문헌 이해수, “1960~1973년 동심의 낙원, 남산공원의 문화정치: 공간을 둘러싼 권력과 공간 이용자의 의미 생산을 중심으로”, 『미디어, 젠더&문화』 33(4), 2018, pp.5~53. 서울특별시, 남산공원설계현상모집, 서울기록원 소장(기록건 ID: 20150000081393), 1962. 서울특별시, 공원 기록 인프라 및 협력 네트워크 구축, 2020. “꿈의 낙원 남산에 어린이 놀이터”, 「조선일보」 1963년 1월 12일. “어린이 놀이터”, 「동아일보」 1963년 8월 17일. “한국 최대 규모의 아동낙원 서울 남산에 어린이 놀이터 마련”, 「동아일보」 1963년 8월 24일. “인왕산에 어린이공원”, 「매일경제」 1969년 8월 19일. 그림 출처 그림 2. e영상역사관
  • 한국과 스위스의 자연환경과 건축 문화를 교류하다 서울도시건축전시관, ‘산수인물의 도시’ 전
    ‘수교’란 나라와 나라 사이에 교제를 맺는다는 뜻이다. 한국은 많은 나라와 수교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조선시대 이전에도 중국, 일본과 같은 근접 국가와의 교류가 있었지만, 본격적으로 수교가 이루어진 것은 1948년 대한민국 정부 수립 이후다. 1960년대까지만 해도 한국의 수교국은 16개국에 불과했지만, 1960년대 이후 아시아와 아프리카에서 독립한 수많은 신생국들이 유엔 회원국이 되고, 국제 사회에서 정통성을 획득하기 위해 많은 나라와 수교 관계가 되면서 그 수가 늘어나기 시작했다. 1973년 평화 통일 외교 정책 선언을 하면서 할슈타인 원칙이 철회되고 수교 대상 국가가 확대됐다. 현재 한국은 192개국과 수교를 맺고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등 다양한 분야에서 상호 협력하고 있다. 한국전쟁의 영향으로 수교를 맺은 나라도 있다. 1963년 02월 11일, 한국은 스위스와 수교 관계가 됐다. 스위스는 중립국 지위로 한국 전쟁 종전 후 판문점의 중립국감독위원회(NNSC)에 대표를 보냈으며, 현재까지도 약 700여 명의 군인과 관료를 파견해 한반도의 평화 유지에 기여하고 있다. 한국은 스위스와 1971년 투자보장협정 체결 이후 2005년 EFTA 자유무역협정, 2008년 과학기술협력협정 등 다수의 협정을 체결했다. 2014년에는 직업 교육, 기초 과학, 정밀 기술, IT 기반 등 양측 간 비교우위 분야를 중심으로 11건의 양해 각서(MOU)를 체결하면서 양국 관계는 더욱 강화됐다. 2023년은 한국과 스위스 수교 60주년의 해다. 이를 기념하고자 두 나라에서 많은 행사가 개최됐다. 4월에는 서울 마포구 경의선 책거리에서 스위스정부관광청이 주최한 ‘스위스 봄거리 축제(Swiss Spring Street Festival)’가 열렸다. 한국인에게 인기 있는 스위스 주요 지역의 풍경을 재현해 스위스의 문화, 역사, 자연의 아름다움을 체험할 수 있었다. 두 나라 간 문화 교류의 의미를 되새기는 전시도 열렸다. 주한 스위스대사관과 서울시가 기획한 ‘산수인물山水人物의 도시’ 전이다. 전시는 산수인물화에서 출발한다. 깊은 자연 속에 홀로 유유자적하는 풍류인의 모습, 유토피아적 회화는 전형적인 산수인물화의 한 장면이다. 자연은 인간을 품었고, 인간은 인공물로 자신의 흔적을 남긴다. 자연은 최초의 건축이고, 건축은 자연을 궁극적 모델로 삼는다. 전시는 ‘첩첩산중’과 ‘아케스트’ 두 구역으로 나눠 인간을 둘러싼 지구적 스케일의 자연환경과 건축적 스케일의 실내 환경을 동시에 다룬다. *환경과조경423호(2023년 7월호)수록본 일부
  • 조경사 제도와 조경학 교육인증제 추진에 나서다 한국조경협회·한국조경학회·한국조경가협회 주최, ‘조경사 제도 도입을 위한 세미나’ 개최
    2022년 5월 13일 국토교통부는 ‘제2차 조경진흥기본계획’을 고시하면서 ‘조경설계 자격 및 면허 제도’를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조경사 제도(가칭) 추진을 위한 연구 및 조경사 제도의 효과적 운영 관리와 자문을 위한 체계를 마련하고, 조경사 법령 제정에 따라 건설산업 및 설계업 등록 관련 제도에 대한 제도 개선 협의를 병행하며, 기존 조경기술사 개편안을 검토할 예정이다. 조경설계 자격 및 면허 제도의 추진과 기존 조경기술사 개편안의 검토 소식이 들려온 지 1년이 지난 현 시점에도 제도 성립의 명확한 길을 찾기 위한 노력이 지속되고 있다. 지난 5월 26일 한국과학기술회관에서 ‘조경사 제도 도입을 위한 세미나’가 개최됐다. 세미나는 이해인 소장(HLD), 이윤주 소장(LPSCAPE), 이남진 소장(VIRON), 배정한 교수(서울대학교 조경·지역시스템공학부)의 발제와 김아연 교수(서울시립대학교 조경학과)가 좌장을 맡고 박명권 대표(그룹한어소시에이트), 염철호 부원장(건축공간연구원), 최원만 대표(신화컨설팅)가 참여한 토론이 진행됐다. 조경사 제도와 조경학 교육인증제의 필요성 이해인 소장은 ‘현행 조경설계 자격제도, 무엇이 문제인가’란 주제로 현행 자격제도의 문제점을 지적했다. 현재 조경 교육을 받지 않았거나 실무 경험이 없어 조경 실무에 필요한 지식, 기술, 능력을 입증 받지 않은 사람들이 조경설계 및 계획을 진행하고 있다. 조경 자격제도가 유명무실해짐에 따라 조경 발전의 동력과 기반을 잃고 있다. 조경기술사, 조경기사 등의 자격은 조경 전문가가 조경을 수행하는 면허로 작동되지 않고 있다. 이런 상황은 조경 전문가의 일거리를 줄이고, 일거리가 하도급으로 되어가는 불리한 조건을 조성한다. 또한 조경 전문가의 필요성과 수요에 대한 인식을 악화시킨다. 이 소장은 이러한 문제를 탈피하기 위해 “조경설계·계획을 할 수 있는 전문적인 지식, 기술, 능력을 갖춘 조경 전문가들을 인증해 주는 조경사 제도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이윤주 소장은 『환경과조경』(2022년 8월호)에 소개한 인터뷰를 언급하며 ‘해외 조경설계 자격제도와의 비교’에 대해 발표했다. 이 소장은 인터뷰에서 영국과 독일의 조경사에게 조경사 자격 취득의 이점과 각 나라의 자격증 취득 과정에 대해 물었다. 두 사람은 이 시험을 준비한 여정이 자신에게 전문적으로 도움이 되었고 앞으로 어떠한 방향으로 공간을 만들어 나갈지에 대해 심사관들에게 많은 조언을 받을 수 있는 귀중한 시간이었다고 답했다. “이처럼 해외에서는 자격제도 취득에 관한 교육과 실질적 능력을 중요시 한다. 한국 조경사 제도 역시 자격증 취득이 목적이 아닌 취득 과정이 보다 업무에 도움이 되는 방향으로 만들어지길 바란다.” 이남진 소장은 작년 5월 고시된 제2차 조경진흥기본계획에 적힌 조경설계 면허 및 자격 제도의 추진 배경을 말하며 ‘조경사 자격제도의 신설 제안’을 위해 필요한 사항에 대해 설명했다. 아직까지 조경설계사무소는 건축사무소로부터 하도급 형태로 프로젝트를 받고 있는 실정이며, 건축사무소는 전문 조경가가 아닌 사람에게 아르바이트 형태로 조경설계 도면을 그리게 하고 있는 상황이다. 젊고 경쟁력 있는 신진 조경설계 전문가가 책임 기술자로서 직접 설계에 참여하기 어려워 자격을 대여하는 불법 및 편법의 방법으로 하청 받아 진행되는 사업도 많다. 이 소장은 이러한 문제점을 없애기 위해 ‘조경사법’을 제정하고 ‘조경진흥법’을 개정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더불어 국토교통부 장관이 시행하는 자격시험에 합격한 사람만이 대지안의 조경, 도시공원 및 녹지의 설계와 공사감리 등의 업무를 수행할 수 있도록 정의하고, 이를 수행할 수 있는 사람을 ‘조경사 또는 조경사사무소에 소속된 조경사’로 제한하는 방안을 제안했다. 배정한 교수는 ‘조경학 교육인증제의 필요성과 방향’을 주제로 조경학 교육인증제가 왜 필요한지 설명했다. “교육인증제는 조경사 제도와 관계가 깊다. 조경사 제도의 자격 및 면허 응시의 필요조건은 조경학 교육 인증을 받은 조경학과의 졸업이다. 의대를 나와 의사가 되는 것처럼 교육인증제는 전문학위와 자격제도를 통해 조경(학)의 체계를 명확하게 확립할 수 있다”며 교육인증제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이를 위해 한국조경학회와 한국조경협회가 조경학 교육인증제 추진위원회를 구성하고, 교육 현황 조사와 국내외 사례 연구, 인증 기준 등의 연구를 진행하고, 2025년에는 공론화 및 심화 연구 진행을, 2026년에는 제도화를 실행할 계획을 밝혔다. *환경과조경423호(2023년 7월호)수록본 일부
  • [기웃거리는 편집자] 따릉이를 타며
    좋은 문장이란 뭘까. 웅숭깊은 사유를 드러내는 문장? 적절한 재치와 비유를 담고 리듬감이 있는 문장? 아 마도 개인의 취향에 따라서 좋은 문장에 대한 정의나 선호가 달라질 것이다. 내 기준에 서 좋은 문장이란 마음을 동하게 하거나 몸을 움직이게 만드는 생생한 문장이다. 최근 나를 움직이게 했던 문장 하나를 꼽자면 소설가 김훈이 쓴 『자전거여행』의 첫 문장이다. ‘자전거를 타고 저어갈 때 세상의 길들은 몸속으로 흘러들어온다.’ 길 위에서 한번쯤 자전거 페달을 밟아본 이라면 무릎을 탁 치고 공감할 수밖에 없는 문장에 놀라며, 담백한 어조로 본질에 가닿는 그의 문장력이 부러웠다. 어느 시인이 질투는 나의 힘이라고 했던가. 김훈의 문장은 진짜로 나를 움직이게 했다. 그의 문장력은 훔칠 수 없지만, 자전거라도 열심히 타다 보면 어떤 영감이 깃들지 않을까 싶어 매일 자전거로 퇴근한다. 사실 그의 문장이 계기가 된 건 맞지만 비단 그 이유 때문만은 아니다. 점점 몸에서 기습적으로 세력을 불리고(?) 있는 내장 지방과의 결별을 위한 것이 가장 큰 이유다. 헤어질 결심을 실천하기 위해 찾은 운동이 바로 따릉이 타기였다. 큰 무리 없이 할 수 있고, 회사에서 집까지 도착하는 데 걸리는 1시간 남짓의 시간은 운동 시간으로 아주 적당했다. 정기권을 구매하면 교통비도 아낄 수 있었다. 무엇보다 한강의 수변을 따라 탁 트인 전망을 감상하며 누빌 수 있는 것이 좋았다. 물론 운동의 측면에서 보면 헬스장에서 하는 쇠질에 비할 바는 안 되지만, 아예 안 하는 것보다는 낫겠다는 심정으로 시작했다. 공교롭게도 회사에서 집까지 가려면 한강변보행네트워크(2022년 12월호, 이하 보행네트워크)의 일부 구간을 반드시 거쳐야만 했다. 첨엔 이를 둘러볼 여유보다는 페달 밟기에 급급했다. 아무리 베테랑 운전자라도 초행길엔 긴장하는 것처럼 15년 차에 접어든 베테랑(?) 자전거 운전자인 나도 “지나가겠습니다”라는 말과 함께 쏜살 같이 지나가는 MTB 자전거 무리에게 길을 내주느라 바빴다. 괜히 앞을 지나가는 외제차를 보면 박을까 봐 덜컥 겁부터 나는 운전자의 심정이라고 할까. 어느 정도 적응이 된 후 미처 실현되지 못했던 설계안, 수해 입은 이야기 등 잡지에 실렸던 내용을 다시금 떠올리며 보행네트워크의 각 구간별 공간을 천천히 둘러봤다. 고요히 흘러가는 한강을 보며 물멍을 때리거나 벤치에 누워 하늘멍을 때리는 이들을 종종 볼 수 있었다. 공간의 틈마다 뿌리 내린 야생화가 조화롭게 어우러진 공간을 보며 시간이 갈수록 빛을 발하는 빈티지 물건처럼 자연스럽게 멋이 들어가는 공간이 무엇인지 어렴풋이 알 수 있었다. 또한 다양한 높이에 조성된 공간 덕분에 한강을 다채로운 각도에서 즐길 수 있었다. 실개천을 유유자적 떠도는 오리부터 다리와 도로가 교차하는 한강 수면 위에 스며드는 노을과 반짝이는 윤슬, 저멀리 보이는 남산타워까지 한강을 둘러싼 풍경을 가까이서 또는 멀리서 구경할 수 있었다. 이따금 날씨가 좋은 날엔 따릉이를 세워두고 잠시나마 공간에 앉아 멍을 때리며 오랫동안 여유를 즐기기도 했다. 각 공간을 둘러보는 재미도 있었지만, 어쩌면 조금 지루할 수도 있는 따릉이 퇴근을 매일 지속할 수 있었던 건 강바람의 역할도 컸다. 특히 페달을 밟으며 힘겹게 가파른 언덕을 오른 후 내리막을 달릴 때 두피 사이를 시원하게 가로지르는 강바람은 가파른 오르막이 주는 허벅지 고통을 잊게 하는 고마운 존재였다. 생색내지 않고 조용히 무거운 짐을 기꺼이 덜어주려고 노력하는 사람처럼. 어느 건축가는 도시의 길을 걸을 때 비로소 삶과 도시를 이해할 수 있다고 했다. 소설가 김훈은 전국 방방곡곡을 자전거로 누비며 안장 위에서 바라본 삶과 도시를 기행문에 담아냈고, 바람 부는 해안 도시를 거닐던 프랑스 시인 폴 발레리는 생의 의지를 환기시키는 “바람이 분다. 살아야지”라는 문장을 시에 남겼다. 그들 모두 삶과 도시를 이해하기 위해서 기웃거렸던 플라뢰느(Flâneur)였다. 나 역시 플라뇌느로서 한 가지 소망이 있다면 무릎 관절이 허락하는 동안 따릉이를 타며 한강의 수변이 품은 고유한 아름다움을 잘 간직하고 싶다. 오늘도 안장 위에서 무거운 몸을 움직이며 이런 소박한 의지를 다진다. “바람이 분다. 다이어트 해야지.”
  • [편집자가 만난 문장들] 비록 잘 세팅된 편안함을 빌리는 형식일지라도, 복잡한 도시 생활로부터 이격된 약간의 여유가 우리 모두에게 필요할지 모른다.
    혼자는 좋은데 외롭고 싶지 않고, 아늑해야 하지만 답답한 건 싫다. 뭘 어쩌라는 건지 싶지만 원래 마음은 그런 거다. 일단 혼자가 되려면 집을 떠나야 했다. 동생과 방을 함께 쓰고 있고, 거실은 묘하게 엄마의 공간이니깐. 카페나 도서관, 공원의 벤치도 좋지만 맘 편히 눕고 싶다는 욕구가 치밀 때는 곤란했다. 내 마음대로 음악을 듣고, 내킬 때 밥먹고, 원할 때 일어나서 졸리면 잠드는 며칠의 시간이 필요하다 느낄 때도 있었다. 그렇게 앞뒤가 바뀐 계획을 세우게 된 거다. 그러니까, 어딘가를 보고 느끼고 싶어서가 아니라 혼자 머무를 공간과 시간이 필요해서 여행을 가기도 한다는 얘기다. 작년부터 여러 스테이를 묶어 소개하고 싶었었다. 스테이는 조경에 관심 없는 사람들도 가깝게 느끼는 시설이니까 더. 기획이라는 게 일찍 시작한다고 해서 일찍 마무리되지 않는다. 시간이 넉넉하면 곧장 가면 될 길을 굳이 뱅뱅 돌아가는 일을 벌이기도 한다. 원고 몇 편을 곁들인 특집이 좋을까, 여러 프로젝트를 소개하는 데서 만족하는 게 나을까, 스테이 프로젝트를 많이 해본 조경가의 인터뷰를 함께 실어볼까. 답이 나오지 않아 결국 하고 싶은 게 뭔지 적어 내려가기 시작했다. 일기를 쓰다보면 어지러운 마음이 정돈되던 걸 떠올리며. “여행을 계획할 때 가장 먼저 결정하는 게 여행지라면 그 다음이 숙소일 것이다. 숙소의 시작은 낯선 곳에서 몸을 누이고 다음 날을 위해 재충전을 하는 장소였다. 하지만 이제 숙소는 목적지 그자체의 의미를 획득하고 있다. 여행지보다 호텔의 부대시설에서 휴가를 보내는 즐기는 호캉스(호텔+바캉스)를 택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긴 시간을 머무르며 또 다른 삶을 즐길 요량으로 한 달 정도 머물 집을 찾는 사람도 있다. 휴가에서 ‘머묾’이 갖는 역할이 커지고, 소비 방향이 소유보다 ‘경험’으로 바뀌며 숙소의 역할도 바뀌어 가고 있다. 외부 공간도 당연히 그에 따라 다르게 변화하고 있다. 안락하고 편안하지만 일상과는 조금 다른 색다름을 느낄 수 있는 스테이의 조경은 어때야 할까.” 그간 찾아둔 프로젝트 목록을 다시 뒤지고 나니 결심이 섰다. 조경을 장식 요소를 넘어 머무름과 경험의 공간으로 여기는 스테이가 많지 않았다. 몇 해 뒤에는 스테이 특집을 꾸릴 수 있기를 기대하며 다시 편집계획서를 매만졌다. 교정지를 들여다보며 나의 여행은 어떠했는지 기억을 더듬었다. “맨몸으로 이슬을 맞는 노숙은 자발적이고 적절한 안전을 보장받을 수만 있다면 누구나 한 번쯤 실행해 보고 싶은 로망”(74쪽)이라는 말에 고개를 갸웃거렸지만 자연과 멀어지는 게 싫다고는 할 수 없었다. 여러 번 부산에 다녀왔지만 부산에 가면 꼭 바다를 들렀으니까. 호텔 창으로 화려한 야경이나 해변, 뒷산의 풍경이 보이면 기분이 좋았다. 그런데 도심의 야경도 나쁘지 않았다. 이 마음은 뭘까, 곰곰이 생각해보니 그건 내가 어디에 있는지 감각하고자 하는 욕망이었다. 그리고 그 힌트는 늘 실내가 아닌 바깥에 있었다. 여행객들이 발을 디디고 선 곳을 깨닫게 하려는 설계들이 눈에 띄었다. “마을 경관과 지역 자생종의 기준에 맞는 수종을 선정하고”, “둥근 길의 오른쪽 부분에 논 경관의 연장 요소로서 진퍼리새와 솔새를 식재”한 호지는 점차 힘의 질서에 따라 자연의 모습으로 바뀌어 갈 것이다. 30세를 훌쩍 넘은 목련을 중심으로 설계된 하도문 속초의 “툇마루에 걸터앉아 남쪽을 바라보면 열십자 목구조 사이로 시원하게 펼쳐진 마을 풍경이 한눈에 들어온다.” 와온에는 “제주 곶자왈 숲의 식생을 형상화” 한 곶자왈정원과 “제주의 초지와 그리스 경관을 경험할 수 있도록” 만든 컴포트하우스 후정이 있고, 퍼즈 글램핑장의 “침실에서는 먼 산의 풍광을 마음껏 조망할 수 있으면서 인접 동에서의 불편한 시선은 적절히 차단”된다. 롯데호텔 부산은 빌딩숲으로 둘러싸여 있어 공간 내부의 경험에 집중해 설계됐지만, 김태경은 “가급적 호텔과 리조트는 그 지역만의 이야기가 담긴 공간이어야 한다”고 말한다. 잠자리와 욕실의 청결을 중요시하는 내게 여전히 캠핑은 내키는 여행 방식이 아니다. 하지만 박승진이 미국 스카우트 캠프장에서 두 달간 스태프로 일하며 겪은 낭만을 며칠의 여행으로 훔쳐올 수 있다면, 견딜 만할지도 모르겠다. “비록 잘 세팅된 편안함을 빌리는 형식일지라도.”(77쪽)
  • [COMPANY] 일진글로벌 순천만국제정원박람회 국가정원권역을 수놓다
    지난 4월 1일, 2023 순천만국제정원박람회(이하 순천만박람회)가 개최됐다. 순천만박람회의 시작은 10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2013 순천만박람회는 아름다운 식물을 전시하고 정원 관련 용품을 소개하는 것이 아닌, 생태계의 보존을 꾀하고 정원을 국민의 복지를 위한 녹지로 인식하게 만드는 박람회로서 큰 의미를 가졌다. 일진글로벌 역시 정원 문화에 익숙하지 않은 한국에서 정원을 바라보는 새로운 시각을 제시한 순천만박람회에 주목했다. 2013 순천만국제정원박람회장 화훼 연출 부분에 대한 제안 공고를 마주했을 때는 설렘과 열정으로 가슴이 뛰었다고 한다. 일진글로벌은 “전 세계인의 쾌적하고 더 나은 삶을 위해 기획부터 설계, 제작, 시공이 이르는 조경 토털 솔루션을 제안하자”는 목표로 공모에 임했다. 최선을 다했지만 아쉽게 2등이라는 결과를 받았다. 공을 들인 만큼 아쉬움도 컸지만, 이 경험을 발판 삼아 변화하는 환경에 적합한 정원은 무엇인지, 사람들이 필요로 하는 정원은 무엇인지 탐구하며 새로운 화훼 연출 방법을 연구해왔다. 2023 순천만박람회 개최 소식은 10년 동안 쌓아온 노하우와 기술력을 선보일 기회였다. ‘2023 순천만국제정원박람회 순천만국가정원 화훼연출 용역’에 도전했고, 그 결과 계약 업체로 선정되는 기쁨을 누릴 수 있었다. 2023 순천만박람회장은 자연을 지향하는 순천만습지권역, 정원 문화 확산을 꿈꾸는 도심권역, 순천만습지를 보호하고 도심 팽창을 완화하는 국가정원권역으로 나뉜다. 국가정원권역에는 세계정원, 테마정원, 참여정원 등이 조성됐다. 그리고 길과 길을 연결하는 길목, 호수를 내다볼 수 있는 데크, 너른 녹지 등 박람회장 곳곳에 일진글로벌이 만든 정원들이 자리하고 있다. 정원이 어떤 내용을 담고 있는지, 누가 만들었는지 알려주는 표시판 하나 없지만 사람들은 자연스럽게 다양한 꽃이 조화롭게 핀 이 정원에 모여들고, 함께 사진을 찍으며 순천만박람회에 다녀간 기록을 남기고 있다. 국가정원권역에 일진글로벌이 조성한 정원은 총 다섯 개다. 각기 특징은 다르지만, 모두 너른 녹지 위에 펼쳐진 화려한 초화를 즐길 수 있는 장소로 조성됐다. 박람회장의 탁 트인 자연 풍경을 방해하지 않으면서도 조화롭고 다채롭게 식물을 식재해 화려함을 더했다. 더불어 모든 정원의 이름을 순수 한국어로 지어 ‘한국성’을 강조했다. ‘라온 정원’은 국가정원권역의 초입에 위치한다. 나뭇잎을 형상화한 녹지 패턴 속에 ‘즐겁다’라는 의미를 담을 수 있도록 패턴정원, 향기정원, 과실정원, 락가든, 그라스정원을 조성했다. 정원을 감상하는 사람들은 나무의 잎맥에 해당하는 공간을 거닐게 되는데, 이 잎맥을 잔디로 포장해 자연 속을 산책하는 기분을 느끼게 했다. 순천만호수 인근에 조성된 ‘나르샤 정원’은 본래 거대한 흑두루미 꽃 조형물이 있던 곳이다. 시야를 가리고 있는 조형물을 철거하고, 순천호수정원과 봉화언덕을 향해 탁트인 풍경을 함께 즐길 수 있는 정원으로 재탄생시켰다. 다섯 개 정원 중 유일하게 조형물이 설치된 곳이기도 한데, 세월의 흐름에 따라 멋스러워지는 코르텐 스틸로 만든 흑두루미가 파란 하늘, 맑은 호수와 어우러져 장관을 이룬다. ‘꽃보라 정원’은 네덜란드정원을 리뉴얼한 정원이다. 문화, 건축, 미술 등 다양한 콘셉트의 포토존형 정원을 튤립 모양의 패턴을 즐길 수 있는 정원으로 재조성했다. 덕분에 튤립이 피어나지 않는 계절에도 다양한 꽃으로 그린 튤립 패턴을 통해 네덜란드의 정취를 느낄 수 있다. 동천에서 정원드림호(보트)를 타고 내리면 가장 먼저 마주하게 되는 수문 출입구에 ‘윤슬 정원’이 조성되어 있다. 정원 이름처럼 햇빛이나 달빛에 반짝이는 호수의 잔물결을 볼 수 있는 공간으로, 꽃과 데크를 이용해 배 모양의 전망대를 연출했다. 이때 배는 순천시민이 순천만박람회장으로 들어올 때 이용하는 교통수단, 즉 연결고리라는 점에서 순천만박람회의 목표 중 하나인 삶의 공간과 정원의 연결을 상징하기도 한다. ‘천국의 꽃계단 정원(드림 정원)’은 다섯 개 정원 중 조성이 가장 까다로웠던 공간이다. 평평한 땅 위에 만든 다른 정원과 달리 계단식의 지형을 다지고 조성해야 했다. 동선을 어떻게 계획할지, 하나의 단을 어느 정도 높이로 쌓아 올려야 할지, 사람들이 안정감을 느끼며 꽃을 감상하기에 좋은 화초의 높이는 어느 정도인지 끊임없이 테스트했다. 60% 이상의 수종을 대품종으로 선정해, 지면에서 올려다보았을 때 관람객의 다리가 가려지도록 연출했다. 덕분에 마치 꽃의 품속에서 사람들이 거니는 듯한 풍경이 펼쳐지고 있다. 일진글로벌은 가장 힘들었던 점으로 날씨 변화와 기온 변화에 따른 식물의 생육 관리를 뽑았다. “박람회 개최가 4월 1일인데, 기온이 낮은 3월 중순에 식재할 수 있는 화훼 수종이 다양하지 않았다. 풍성하고 다양한 봄꽃의 향연을 느끼기엔 턱없이 종류가 부족했다. 그래서 4월 중순부터 5월 사이에 개화하는 다양한 식물을 난방이 이루어지는 하우스에서 빨리 생육할 수 있도록 재배했다. 다소 단조로운 수종으로 조성하는 패턴정원과 다르게, 계절마다 다른 매력을 가진 입체감 있는 정원으로 만들고자 봄에만 120가지 수종을 식재했다.” 정원 조성이 끝난 후에도, 이를 관리하는 일이 이어졌다. “식물이 끊임없이 바뀌는 환경에 적응할 수 있도록 날씨와 기온을 고려해 식재했 지만, 박람회장 개장 직전까지 눈이 내리고 꽃샘추위와 서리가 찾아들었다. 고민 끝에 아름다운 상태를 유지할 수 있도록 꽃을 여러 번 교체했다.” 순천만박람회는 많은 이에게 회사의 기술력을 선보일 수 있는 기회이기도 하다. 하지만 일진글로벌은 기업의 색채를 또렷하게 드러내기보다 순천만박람회의 지향점에 어우러지는 정원을 조성하는 것을 택했다. 순천만박람회에 참여한 다양한 이들의 노력이 하나의 방향을 향할 때 더 큰 결과를 얻을 수 있으며, 주변과 자연스럽게 어우러지지만 완성도 높은 정원으로 사람들의 이목을 끌 수 있다는 자신감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앞으로 어떠한 형태로 조경 산업이 발전할지 알 수 없지만 일진글로벌은 색다른 시도를 계속할 예정이다. 탄탄한 경험으로 다진 새로운 기술력을 바탕으로, 10년 뒤 순천만박람회에 또 다시 도전을 해보고 싶다는 포부를 전했다. 글 김모아 사진 일진글로벌 TEL. 032-566-6611 WEB. www.iljinglobal.co.kr
  • [PRODUCT] 상상력을 키우는 ‘안녕! 보노보노 조합 놀이대’ 만화 속 주인공들과 함께 뛰어놀다
    어린이 놀이터는 인지 및 언어능력 향상에 도움을 주고, 사회 정서 및 신체 발달을 위한 다양한 경험을 제공하는 커뮤니티 공간이다. 그래서 놀이터는 어린이가 맘껏 상상력을 펼칠 수 있는 공간으로 디자인될 필요가 있다. 조경 시설물 브랜드 ‘미소’는 기존 놀이터 디자인에서 탈피해 친근하고 창의적인 어린이 놀이터를 만들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특히 어른들에게는 동심을 불러일으키고, 아이들에게는 친근하게 다가갈 수 있도록 인기 있는 애니메이션 캐릭터를 기반으로 한 창의적인 놀이 시설물을 선보이고 있다. 미소의 ‘안녕! 보노보노 조합 놀이대’는 애니메이션 ‘보노보노’에서 모티프를 얻었다. 해당 애니메이션 주인공 보노보노가 사는 숲을 놀이터로 재현했다. 커다란 트리하우스와 자연 소재를 활용한 놀이 시설물 등은 보노보노가 사는 숲에 들어온 것 같은 느낌을 자아낸다. 곳곳에 애니메이션에 등장하는 캐릭터를 조형물로 설치해 찾아내는 재미를 제공하고, 캐릭터 조형물과 함께 사진도 찍을 수 있어 일종의 포토존 역할을 한다. 트리하우스 안 반원형 곡선의 계단은 아이들이 자유롭게 오르내릴 수 있어 어린이의 신체 능력 향상과 더불어 인지 발달에 도움을 준다. 2층에는 원통형 슬라이드를 설치해, 슬라이드를 타고 내려오며 짜릿한 스릴을 맛볼 수 있게 했다. 또한 주요 놀이 공간인 트리하우스 내부에 아이들이 여름철의 뜨거운 햇빛을 피해 휴식할 수 있도록 놀이 테이블 세트를 설치했다. TEL. 070-7797-8344 E-MAIL. [email protected]
  • [에디토리얼] 나의 서울숲 사용법
    편집부 김모아, 금민수, 이수민 기자가 유청오 전속 사진 작가와 함께 이틀간 2023 순천만국제정원박람회 취재를 다녀왔다. 순천행 기차에 슬쩍 동승하고 싶은 강한 유혹을 느꼈다. 지난 4월 순천에서 열린 한국조경학회 학술대회 때 박람회장을 잠깐 둘러보긴 했지만, 발 디딜 틈 없는 인파에 치여 정작 기억에 남은 건 총천연색 등산복의 물결뿐이라는 아쉬움 때문. 게다가 박람회장보다 더 호평받고 있다는 오천그린광장과 어싱길, 도심 도로를 잔디밭으로 바꾼 그린아일랜드를 답사하지 못한 아쉬움도 취재에 동행하고픈 생각을 부추겼다. 하지만 편집주간의 동행을 기자들이 반길 리 없을 터. 철없는 충동을 간신히 억누른 나는 기자들이 순천에 도착할 무렵 소박하게(?) 서울숲으로 걸음을 옮겼다. 봄의 절정, 공원은 여느 때처럼 북적였고 그 활력에 내 마음도 생동했다. 35만 평에 달하는 서울숲은 서울에서 올림픽공원 다음으로 큰 공원이다. 문화예술공원, 체험학습원, 생태숲, 습지생태원 등 크기만큼이나 다채로운 성격의 여러 공간으로 구성된 대형 복합체 공원. 게다가 한강과 바로 직접 맞닿아 있는 점은 서울숲 매력을 배가시킨다. 다양한 얼굴을 가진 만큼 갈 때마다 다른 구역을 경험해보는 재미가 쏠쏠하다. 마치 단골 식당처럼 자주 가는 자신만의 공원 속 아지트를 정해 두면 더 즐겁다. 나의 서울숲 사용법은 세 가지 정도다. 많은 사람이 서울숲 하면 떠올리는 그 시그니처 풍경에서 도시의 자유를 느끼는 게 아주 평범하지만 소중한, 나의 첫 번째 사용법이다. 지하철 수인분당선을 타고 서울숲역에 내린 뒤 3번 출구로 나와 컨테이너 박스 100여 개로 지은 언더스탠드 에비뉴를 통과하면 서울숲의 정문 격인 공원 2번 출입구가 나온다. 옛 경마장의 장소 기억을 소환하는 역동적인 군마상을 지나면 바닥분수와 거울연못으로 유명한 문화예술공원 구역이다. 넓은 잔디밭 위로 펼쳐진 하늘과 응봉산 원경에 숨통이 확 트인다.시원한 풍광을 즐기며 잠시 해찰하다 보면 자연스레 자유라는 단어가 떠오른다. 30분이면 충분히 자유를 만끽할 수 있다. 시간이 조금 더 있다면 은행나무길 아래 벤치를 차지하고 빽빽한 수직선들의 밀도감에 압도당하기를 자처한다. 더 적극적으로 일상에서 탈주하고 싶은 날엔 생태숲 구역을 선택한다. 생태숲 위를 지나 강변북로를 건너 한강변으로 뻗어나가는 보행교를 걷는다는 게 더 정확한 표현일 것이다. 사슴들이 출몰하는 생태숲은 직접 내려갈 수 없고 다리 위에서 내려다볼 수만 있어서 오히려 더 매력적이다. 어느덧 야생에 가까워진 숲의 머리 위를 횡단하는 날카로우면서도 경쾌한 직선의 다리를 걸으며 스치듯 숲을 통과하는 기분, 걸어본 사람만 안다. 조금 더 걸으면 강변북로를 쉴 새 없이 달리는 자동차 행렬이 한눈에 잡힌다. 아찔한 속도와 소음이 불쾌하지 않고 두렵지도 않다. 광폭의 한강이 뿜어내는 힘과 아파트 경관의 질량감, 성수대교의 육중한 구조미와 이리저리 휘감기는 강변도로 램프들의 곡선이 한데 뒤섞인 콜라주. 보행교 끝에서 강가로 내려오면 멀리 보이던 한강이 바로 발 앞에서 흐른다. 세 번째는 공원 바깥 카페의 창으로 서울숲의 짙은 계절감을 즐기는 사용법이다. 성수동에서 약속 잡을 일이 있으면 인더스트리얼 인테리어로 무장한 성수이로와 연무장길 쪽의 힙한 카페들보다는 공원 4번 출입구 바로 옆의 한 카페를 택한다. 성수동 특유의 붉은 벽돌 이층집을 검박하게 개조한 카페 2층에 앉으면, 가로로 긴 창을 통해 서울숲의 가장 일상적인 풍경이 눈앞에 펼쳐진다. 겨울이면 텅 빈 공원의 스산함이, 봄이면 공원을 새로 채워나가는 햇살의 나른함이, 여름이면 짙다 못해 무거운 초록의 냄새가, 가을이면 갖가지 나뭇잎이 조합해내는 단풍의 향연이 카페 창을 넘어 달려든다. 조금 더 부지런하고 싶은 날엔 카페에서 나와 습지생태원까지 간다. 공원 외곽의 습지생태원에는 사람이 거의 없다. 습지 위에 그물처럼 놓인 목교를 걷거나 투박한 의자에 몸을 기대면 공원 전체를 전세 낸 기분을 누릴 수 있다. 도시의 고요를 경험할 수 있는 아주 쉬운 방법이다.
  • [풍경 감각] 쉬운 단점
    “칭찬만 너무 많이 하시는 것 아니에요?” 식물 드로잉 수업을 할 때마다 수강생에게 듣는 말이다. 삐뚤빼뚤한 형태, 어색한 색채, 그리고 미처 정리하지 못한 구도……. 수강생들은 스스로 부족한 점을 나열하지만, 외려 나는 사랑스럽다, 따뜻하고 달콤하다, 혹은 과감하다는 평을 하니 말이다. 그림을 그리는 건 어쩌면 쉬운 일인 지도 모른다. 종이를 꺼내고 마음에 드는 화구를 골라 쓱쓱 채워 넣으면 되니까. 그러나 그 과정에서 부족한 점을 끝없이 마주친다. 아무래도 선을 잘못 그은 것 같아. 다른 작가는 색을 참 잘 쓰던데 나는 왜 그게 안 될까. 애초에 구도를 잘못 잡았나 봐, 처음부터 다시 그려야지……. 이렇게 단점을 메우는 데 집중하면, 어느새 그림은 하기 싫고 어려운 일이 된다. 지우고 다시 그려야 한다고 생각했던 부분이야말로 개성과 장점이 잘 드러나는 지점이 되기도 한다. 그림 그리는 일이 즐거움으로 가득 차길, 기쁨과 기대가 손을 이끌어 주길 바란다. 이번엔 새로운 색을 써 볼까? 그리고 싶은 게 생각났어! 크게 그려 보면 멋질 거야. 이렇게 되뇌며 자꾸 그리다 보면 손끝에서 좋은 그림이 나오는 순간이 분명히 온다. 단점을 고치겠다는 쉬운 생각을 버리자. 그리고 좋은 점을 찾아 성실히 칭찬해 보자.
  • 2023 순천만국제정원박람회
    2023 순천만국제정원박람회 주 제 정원에 삽니다 부주제 나만의 정원 위 치 전라남도 순천시 순천만국가정원(국가정원1호길 47), 순천만습지(순천만길 513-25), 도심권역 일 시 2023. 4. 1. ~ 10. 31. 주 최 산림청, 전라남도, 순천시 주 관 순천만국제정원박람회 조직위원회 규 모 순천만국가정원+순천만습지+도심권역: 193ha / 경관정원: 355ha 2023년 4월 1일, 2023 순천만국제정원박람회가 개최됐다. 2013 순천만국제정원박람회(이하 순천만박람회)가 열린 지 10년만의 일이다. 한국 최초의 국제정원박람회인 2013 순천만박람회는 순천만의 생태 환경을 보존하려는 노력에서 비롯됐다. 순천만은 세계 5대 연안습지 중 하나로 풍부한 자연 갈대 군락과 다양한 갯벌 생물이 살아가는 온전한 갯벌 생태계를 갖춘 곳이다. 2000년대는 그 가치를 인정받아 매년 순천만을 찾는 방문객의 수가 늘어나던 때였다. 연간 방문자가 300만명으로 늘어나자 좀 더 긴 관점에서 순천만의 미래를 고민해야 할 필요가 생겼다. 순천만에서 불과 5km여 떨어진 순천 도심이 개발되고 점차 확장된다면 순천만의 자연 생태 환경이 훼손될 우려가 있었다. 이 문제의 해결책으로 떠오른 것이 순천만박람회였다. 정원으로 가득한 박람회장이 도심과 순천만 사이에 자리 잡게 되면 일종의 에코벨트가 형성되고, 순천 시민에게는 시민공원이라는 형태의 복지를 제공할 수 있으니 일석이조의 해법이었다. 2008년 1월, 노관규 순천시장은 순천을 ‘대한민국 생태수도’로 선포하며 순천만 습지 보존을 위해 순천만박람회를 유치하겠다는 계획을 밝혔고, 2009년 4월 17일 정부부처인 산림청의 심의를 거쳐 기획재정부의 사업 승인을 얻었다. 4월 24일 개최지 결정권을 가진 AIPH국제원예생산자협회의 실사단이 순천시를 방문해 실사를 했고, 9월 16일 스페인 사라고사에서 열린 제61차 AIPH 정기총회에서 2013 순천만박람회 개최가 확정됐다. 2009년 12월에는 ‘2013 순천만 국제정원박람회장 마스터플랜 공모전’의 결과가 발표되었는데, 10개의 참가작 중 가원조경기술사사무소(당시 명칭)+성호엔지니어링+동호+김아연의 ‘웰컴 투 정원골’이 최우수작으로 선정되어 “순천만의 지역적 독특한 특성을 담아냈다”는 평을 받았다. 2013 순천만박람회는 ‘지구의 정원, 순 천만’을 주제로 2013년 4월 20일부터 10월 20일까지 열렸다. 111만 2,000m2에 달하는 녹지에 세계정원, 참여정원, 테마정원, 23개국의 83개 정원을 조성하고, 순천만의 생태 가치와 중요성을 알리는 순천만국제습지센터를 마련했다. 강익중의 꿈의 다리와 찰스 젱스의 호수정원은 2013 순천만박람회의 상징적 풍경이 되었다. 박람회의 의의는 개최 기간이 끝난 후 더욱 커졌다. 보기 좋은 꽃과 나무, 정원 관련 용품 및 시설을 전시하는 일반 산업 박람회와 달리, 행사가 끝난 후에도 조성한 정원을 철거하지 않고 보존해 숲과 정원으로 관리함으로써 지속가능성을 꾀했기 때문이다. 순천시는 2014년 순천만정원을 영구 개장했고, 순천만정원은 한국에는 없던 정원이라는 개념을 법률적으로 정리하는 계기를 만들게 되었다. 생활 속 정원 문화를 확산하고 정원 산업의 패러다임을 제시하기 위해 국가가 조성하고 운영하는 ‘국가정원’의 필요성이 대두된 것. 2014년 2월 ‘수목원 조성 및 진흥에 관한 법률’ 개정안이 발의됐고, 2015년 9월 5일 순천만국가정원이 대한민국 제1호 국가정원으로 선포됐다. 국가가 지정·관리하는 자연 유산의 범위가 정원으로까지 확장되는 순간이었다. 2023 순천만박람회는 2021년 7월 23일 국회 본회의를 통과한 ‘2023 순천만국제정원박람회 지원 및 사후 활용에 관한 특별법’의 도움을 받아 개최됐다. 덕분에 박람회 개최에 필요한 정부 지원을 받고, 도심 곳곳을 박람회장으로 활용할 수 있는 제도적 기반을 마련할 수 있었다. 2013 순천만박람회가 생태계의 보존에 집중했다면, 2023 순천만박람회는 분절된 섬처럼 느껴질 수 있는 박람회장을 도심 속 녹지, 즉 하나의 녹색 인프라로 녹여내는 데 집중했다. 시민이 일상 속에서 휴식과 사색할 수 있는 공간을 만날 수 있도록 박람회장을 도심권역으로 확장했다. 여러 콘텐츠와 볼거리로 북적이는 국가정원 및 순천만 습지 권역과 달리 도심권역은 탁 트인 녹지에서 펼쳐지는 시민들의 한적한 일상을 보여준다. 차량 대신 자전거를 탄 사람들이 오가고, 오천그린광장의 잔디밭에서 반려견이 주인과 함께 달리기를 즐긴다. 두 개의 언덕 뒤에는 1.2km 길이의 마로니에길이 조성됐는데, 칠엽수의 그늘 아래 피크닉을 하러 나온 시민들이 돗자리를 펴고 앉아 있다. 도심권역에서 시작되는 국가정원 뱃길, 그린아일랜드, 어싱길은 각각의 콘텐츠인 동시에 도시와 박람회장을 자연스럽게 잇는 선형의 자연이기도 하다. 특히 그린아일랜드는 본래 도심정원과 국가정원을 단절시켜온 아스팔트 도로에 잔디를 입혀 연결로로 바꾼 상징적인 공간이다. 기획 단계에서 차량 정체를 걱정한 주민의 반발이 있었지만, 순천시가 우회도로를 확보하고 버스 노선을 추가 확보해 완성할 수 있었다. 도심에서 쉽게 발견할 수 없는 너른 잔디밭을 걸으며 그대로 남아 있는 도로의 신호등, 가로등, 도로 안내 표지판을 발견하는 재미가 쏠쏠하다. 시민들의 긍정적인 반응도 일고 있어 박람회 이후 순천시는 여론 수렴 과정을 거쳐 그린아일랜드의 존치 여부를 결정할 계획이다. 정원에서 하룻밤을 보낼 수 있는 가든스테이 프로그램과 더불어 국가정원에 새롭게 조성된 노을정원, 키즈가든, 개울길광장은 정원을 눈요기하며 바삐 지나치는 공간이 아닌 긴 시간 머물며 날씨, 시간, 계절에 따른 변화를 체험하는 공간이라는 걸 깨닫게 하고, 박람회장을 하나의 연속된 녹지로 체험하도록 돕는다. 이번 호에는 2023 순천만박람회를 다양한 주제의 정원에 초점을 맞춰 소개하는 지면을 마련했다. 이미 박람회장을 다녀온 독자는 정원의 의미를 되새기는 기회를 만나고, 방문을 앞두고 있는 독자에겐 각자의 방식으로 정원을 탐색할 수 있도록 돕는 길잡이가 되기를 기대한다. 진행 김모아, 금민수, 이수민 디자인 팽선민 사진 유청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