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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에디토리얼] 마감 날 읽은 식물 책 세 권
    원래는 이달 특집에 참여한 조경가 필자들과 똑같이 ‘나의 식물에게’를 주제로 에디토리얼을 써볼 생각이었다. 공간을 만드는 조경가에게 식물은 어떤 존재일까. 그들에게 던진 이 질문에 조경계의 소문난 ‘식물맹’인 나도 한번 응답해보리라. 그러나 진심과 고심을 담아 눌러쓴 그들의 이야기를 밑줄 쳐가며 곱씹다 보니 마감이 눈앞이다. 예컨대 허대영 소장(조경설계 힘)의 이런 문장들. “식물은, 특히 나무는 살아갈 자리를 정한 설계자보다도 이 땅에 더 오래 살아남을 존재이기도 하다.” “조경설계는 식물의 삶과 죽음, 그리고 공감하는 사람의 마음까지 염두에 두어야 하며, 이렇게 아름다움의 영역을 확장하는 것이 조경 일의 속 깊은 본질”이다. 금요일 퇴근 시간, 마침내 김모아 기자의 메시지가 왔다. ‘월요일 오전까지 주시면 됩니다.’ 정확하게 번역하면 이런 뜻이다. ‘아무리 늦어도 월요일 아침에는 제가 꼭 볼 수 있게 보내주셔야 해요. 주말에 파이팅!’ 급하거나 불안해지면 책에 기대는 버릇이 발동한다. 책장 구석구석을 침착하게 뒤져 나름 정성껏 식물 책 세 권을 골라 주말을 보냈다. 먼저 펼친 책은 파란색 무광 표지가 매혹적인 고다 아야(幸田文)의 『나무』(달팽이출판, 2017). 말년의 노작가가 십 년 넘게 일본 열도의 북쪽 홋카이도에서 남쪽 야쿠시마까지 전국의 나무를 찾아다니며 체험하고 성찰한 기록을 엮은 유작이다. 첫 장 ‘가문비나무의 생사윤회’를 쓴 때는 1971년 1월이고, 마지막 장 ‘포플러’는 1984년 6월의 글이다. 우리는 나무의 무엇을 알고 있을까. 나무를 안다는 건 과연 무슨 의미일까. 저자는 쓰러져 죽은 가문비나무 위에 새로운 가문비나무가 자라나는 현장을 목격하며 “생사의 경계, 윤회의 무참함”을 사유한다. 도심 한복판에 홀로 선 거목을 보며 나무가 거쳐 온 삶의 순간들을 읽어낸다. 나무를 만나 살피고 듣고 느끼며 빚어낸 진솔한 문장들이 나무를 안다는 건 나무의 삶을 나무의 관점에서 바라보는 것임을 깨닫게 해준다. 따뜻한 책 『나무』에 이어 고른 『오산천 자연도감』(디자인 스튜디오 loci, 2022)은 온기뿐만 아니라 현장성과 생동감이 느껴지는 책이다. 아모레퍼시픽이 지원하고 박승진 소장의 디자인 스튜디오 loci가 진행한 프로젝트의 성과물인 이 책은, 경기도 오산천에 서식하는 식물 112종과 조류, 어류, 곤충류, 포유류 등 동물 31종을 섬세하게 조사하고 관찰해 정성스레 담아낸 도감이다. 책 앞부분에는 서해에서 배가 올라오던 옛 오산천이 오염으로 몸살을 앓게 된 사연, 그리고 생명을 품은 건강한 하천으로 거듭난 이야기도 담겨 있다. 본지에 ‘풍경 감각’ 꼭지를 연재하고 있는 조현진 일러스트레이터가 생태 조사와 해설 글, 식물과 동물 도감의 세밀화를 맡았다. 오산천의 숨겨진 가치를 쉽게 전달해주는 세 장의 그림 지도도 흥미로운데, ‘오산천 자연 탐사 지도’에는 천변을 산책하며 비인간 생명체들을 관찰할 수 있는 28개 지점이 꼼꼼히 표현되어 있다. ‘오산천 정원 지도’는 2015년부터 2021년까지 시민들이 참여해 조성한 120개 정원의 위치를 보여준다. 1년 넘는 식생 조사를 바탕으로 작성한 ‘오산천 식생 지도’는 버드나무류와 물억새 군락지를 비롯해 관심을 더 기울여야 할 식물들의 위치를 알려준다. 마지막 책은 조금 어렵다. ‘식물 존재에 관한 두 철학자의 대화’라는 부제를 단 『식물의 사유』(알렙, 2020)는 식물성에 대한 사유에 기반해 인간과 식물의 창조적 만남을 확장하는 시도를 펼친다. 32편의 서신 교환으로 구성한 이 책에서 루스 이리가레(Luce Irigary)와 마이클 마더(Michael Marder)는 ‘식물 존재’를 통해 자연과 문화, 물질과 정신, 감각성과 초월성, 주체와 타자, 여성과 남성, 비인간과 인간 등 서구 근대 정신을 지배해온 이분법과 동일성의 교의를 넘어서고자 한다. 그들은 왜 자연과 생명이 처한 위기 진단과 대안 모색의 중심에 식물을 위치시키는 것일까. 인간 중심주의가 지구 행성의 존속 가능성을 위협하는 생태계 위기의 원인이라는 반성이 일면서 동물과 동물권에 대한 관심이 동시대 담론의 뜨거운 주제로 떠올랐지만, 식물(과 인간의 관계)에 대한 논의는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식물은 의지와 주체성을 지니지 못한 가장 미발달된 생명체이며 생산의 원자재나 바이오 연료 정도로 치부되어왔을 뿐, 인간이 그 일부를 이루는 생명의 토대로 이해되지 못했기 때문이다. 나의 식물을 호명하지 못하고 식물 책들에 기대 지면을 채운 데 대한 변명 삼아, 마이클 마더가 전하는 나무 이야기 한 부분을 옮긴다. “한 그루 나무가 다양한 성장의 총체를 이루고 있었습니다. 여럿으로 갈라지면서 얽히는 나무의 몸통, 가지를 덮고 있는 이끼와 담쟁이, 가지 위를 기어오르는 다람쥐, 가지 위에 집을 짓고 있는 새들, 뿌리와 뿌리 근처에 살고 있는 미생물 등등 하나의 성장의 공동체로서 나무는 식물적일 뿐 아니라 원소들과 식물 형태들과 종들이 만나는 장소이자 생물의 왕국입니다. 나무는 그 위아래에 살고 있는 모든 존재들과 함께, 또 그것이 살고 있는 장소와 함께 자기 자신을 우리의 시각과 사유에 건네줍니다. 또한 나무는 분류를 알지 못하는 자연의 낯선 영역으로 열린 창문이 될 수 있습니다”(『식물의 사유』, 231쪽). 그가 뉴욕의 좁고 누추한 아파트 뒷마당에서 만난 한 그루 나무는 “더불어 자라는 공동체의 표상”이었다.
  • [풍경 감각] 정원 계획
    갑작스레 알보 몬스테라가 생겼다. 평소 관심을 두었던 식물이기에 길러보겠냐는 친구의 말에 가벼운 마음으로 좋다고 했다. 그런데 작업실에 나타난 친구의 손에는 길이가 1m는 족히 넘는, 친구네 정원 한 켠을 몇 년간 지키던 녀석이 들려 있었다. 요즘 무척 바빠진 탓에 잘 보살펴주지 못한다며 내가 길러주면 좋겠다고 했다. 몬스테라는 줄기 한 마디를 심어 새 포기로 키워낼 수 있으니 다시 여력이 될 때 조금 잘라 달라고만 부탁했다. 친구가 돌아간 뒤 뜻밖의 새 식구를 살펴보았다. 흰 물감이 튄 것 같은 불규칙한 무늬와 시원하게 갈라지고 구멍 뚫린 잎사귀. 친구는 꽤 어렵게 이 몬스테라를 데려왔다. 무늬가 좋은 새싹을 골라 심고 잎 한 장, 뿌리 한 가닥 나올 때마다 SNS에 사진을 올렸다. 돌돌 말려 올라온 뒤 하루하루 조금씩 펼쳐지는 새 잎을 기다리고, 잎사귀마다 뚫린 구멍과 찢어진 갈래를 헤아렸다. 시들할 땐 식물 카페에 도움을 구했고, 잎 끝에 맺힌 물방울마저 기록하곤 했다. 아쉽지만 작업실 공간이 넉넉하지 않아 친구의 몬스테라를 여러 마디로 나누었다. 모종이 필요하지 않을 땐 잘라낸 것들을 그냥 버리지만, 친구의 몬스테라는 모두 모아 물병에 꽂아 두었다. 뿌리가 내리고 싹이 트면 내가 기를 것 하나와 친구에게 돌려줄 것 하나를 골라야지. 그리고 다른 것들은 잎사귀 한 장 한 장 헤아려줄 사람을 찾아 건네야겠다. 우리 집 정원에는 당분간 어린 몬스테라가 가득할 것이다.
  • 더샵갤러리 The Sharp Gallery
    상품으로서 조경 ‘아파트는 상품이다’라는 말이 세속적으로 느껴지지만 부정하기 어렵다. 우리에게 집은 자산으로 사는(living) 곳이 아니라 사는(buying) 것이라는 풍조가 만연하기 때문이다. 아이러니하게도 이런 이유로 지난 20년간 아파트 조경이 급속도로 발전해 왔다. 아파트 공화국에서 조경은 새로운 시대를 맞이하며 단순히 많은 양의 녹지를 만드는 것을 넘어 새로운 경험과 자극을 줄 수 있는 상품으로 각광받고 있다. 한국에서 대부분의 아파트는 선분양 방식으로 판매된다. 그래서 모델하우스는 아파트 분양을 위한 필요조건이다. 과거의 모델하우스가 분양할 아파트의 평면과 인테리어, 모형을 보여주는 공간 중심으로 구성됐다면, 현재의 모델하우스는 브랜드 가치를 보여주는 데 집중하고 있다. 다시 말해 단순히 전시장으로서의 공간이 아닌 경험을 통해 브랜드 가치를 느낄 수 있게 복합문화공간으로 만드는 추세다. 서울 강남구 자곡로에 위치한 포스코이앤씨의 모델하우스 ‘더샵갤러리’도 이런 흐름과 함께하며, 포스코이앤씨의 전문성과 최신 건축 기술을 결합해 분양 상담 및 체험 공간, 전시 및 문화 프로그램, 카페 등 다양한 서비스를 제공한다. 또한 그린 라이프를 표방하며, 실내외 공간에 오감을 자극하는 자연 요소들을 공격적으로 도입했다. 연속된 자연의 풍경 조경의 가장 큰 가치는 식물에 있다. 이를 증명하듯 아파트 조경에 대한 한 연구를 보면 식재 요소가 다른 요소들보다 입주민들에게 상대적으로 높은 가치를 인정 받았다. 또한 업계에서 최근 유행처럼 번지고 있는 바이오필릭 디자인 또는 ESG 디자인 경영 전략의 주요 대상이기도 하다. 카페, 쇼핑몰, 백화점 등 일상 속 생활 공간에서도 식물 위주의 정원과 플랜테리어 공간을 쉽게 접할 수 있다. 결국 자연 중심의 공간 계획은 매우 경쟁력 있는 상품이다. 더샵갤러리는 그린 라이프를 표방하며 실내외 모든 장소에 녹색을 더했다. 그리고 식물 중심의 디자인을 추구했다. 가장 다양한 식물군이 자리 잡은 옥상정원은 20cm 깊이의 인공 지반이라서 식재를 위한 플랜터가 불가피했다. 북측 대모산 자락의 숲과 롯데월드타워를 향한 조망 공간을 제외하고 3면으로 화강석 플랜터를 둘러 위요감 있는 공간을 조성했다. 플랜터의 평면 선형은 주변 경관에 따라 직선과 곡선을 오가며 1.5m에서부터 6.5m까지 다양한 폭원의 녹지대로 디자인했다. 플랜터 상단에는 마가목, 산딸나무, 당단풍나무, 배롱나무, 전나무, 자작나무, 물푸레나무 등 여러 수종의 중간 키 나무를 배치하고, 교목 사이에 낙상홍, 수수꽃다리, 산수국, 사철나무, 꽃댕강나무, 생강나무, 조팝나무 등 을 식재해 입체적 볼륨감을 연출했다. 그리고 약 50여 종의 지피초화류를 주변으로 식재했다. 정원 중심에는 다양한 이벤트와 전시를 위한 110m2의 잔디마당이 있다. 이곳 역시 토심 때문에 15cm 정도 단이 생겨났다. 잔디마당과 플랜터 사이에는 2~4m 폭원의 드라이가든을 만들어 암석을 배치하고 왕마사를 깔았다. 그리고 플랜터 내 식재 밀도보다 넉넉하게 초본류를 배치했다. 드라이가든의 초본이 0.6m의 화강석 플랜터와 수경 시설의 하부 수조를 자연스럽게 가려준다. 남서쪽 코너 플랜터의 일부 구간은 간격을 두고, 플랜터의 지형이 자연스럽게 드라이가든으로 흘러들어오게 만들었다. 수직·수평적으로 층위를 만들어 녹시율을 높이는 동시에 다양한 녹지 유형을 한 곳에서 경험할 수 있는 장점을 가지고 있다. 이는 대모산 자락의 다양한 자연 경관을 모티브로 한 식재 기법으로, 포스코이앤씨가 추구하는 자연형 식재 스타일에 부합된다. 4층은 실내 카페 공간과 외부 테라스로 구성했다. 두 개의 공간은 유리 커튼월로 나뉘는데, 인테리어의 디자인 선형을 반영해 하나의 공간처럼 이어지도록 했다. 실내외 공간은 테이블과 의자가 놓인 플랫폼과 그 주위를 둘러싼 녹지대로 구성했다. 실내는 모두 인공 식물을 사용했고 실외는 다년생 지피초화류를 식재했다. 하나로 연결된 선형 녹지 디자인으로 인해, 인공 식물과 살아있는 초화류가 유리 커튼월을 넘어 연속된 녹색 풍경을 연출한다. 그리고 테라스 너머 대모산 자락의 숲까지 시야가 확장된다. 외부 테라스 녹지에는 지름 2.8m 원형 콘크리트 플랫폼이 살짝 띄워져 놓여있다. 초장이 높은 식물들이 플랫폼을 둘러싸며, 아늑한 분위기를 연출한다. 1층 웰컴정원 녹지에는 소나무를 심었는데, 수종을 선택하는 데 고민이 많았다. 개인적으로 활엽수를 심고 싶었지만, 발주처의 다양한 의견을 고려해 소나무로 선정했다. 7m 높이의 건축물 입구를 고려한 수고 6m 조형 소나무를 인근 농장에서 수급했다. 가로 녹지에는 보행자를 위한 초화류 정원을 만들었는데, 건축물 입면 재료에 맞춰 유리 커튼월 구간에는 중간키 나무들을 함께 심어 내부 라운지에서 바라보는 경관을 고려했다. 물의 여정 물은 공간 전체를 관통하며, 누구나 기억할 수 있는 통일된 메시지를 전달한다. 이는 이정화 부장(포스코이앤씨)의 아이디어로, 실내 공간과 외부 공간을 순환하는 방문객의 동선을 따라 물의 요소를 배치해 더샵이 추구하는 친환경 가치를 은유적으로 표현한 것이다. 1층 웰컴정원에는 굴곡진 수형의 소나무와 미러폰드가 있는 작은 화단이 있다. 고요한 물은 소나무를 비춘다. 실내로 들어오면 수직 이동을 위한 승강기와 원형 계단이 웰컴정원에 면해 있다. 원형 계단은 4층까지 이어지는데 계단 중앙 천장에 연결된 비닐 와이어를 따라 물줄기들이 떨어진다. 떨어지는 물을 받는 폰드 안에는 3개의 자연석이 섬처럼 놓여 있고, 떨어지는 물방울이 수면 위에 끊임없이 잔물결을 만든다. 계단을 오르며 위를 올려다보면 가느다랗게 떨어지는 물줄기가 조명에 반사되어 마치 빛이 떨어지는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4층 테라스를 지나 옥상으로 올라가면 철재 루버와 자작나무를 배경으로 독특한 수경 시설이 위치한다. 수경 시설의 각기 다른 높이의 워터채널에서 떨어지는 물줄기들이 청량한 소리를 만들며, 다양한 식물과 함께 포스코 고유의 친환경 정원 풍경을 자아낸다. 고요하게 시작된 물의 여정은 빛의 물줄기를 따라 층별 다채로운 프로그램과 공간을 제공하며, 하늘로 열린 옥상정원에서 맑고 서늘한 물소리로 마무리된다. 철의 정원 철은 포스코를 상징한다. 소재만으로 브랜드를 떠올리게 하는 건 엄청난 강점이다. 그래서 건축은 오목한 곡면의 철재 외장재를 미디어 파사드로 외피에 둘렀다. 빛과 시각에 따라 변화하는 건물은 철의 유연함을 강조하며 자곡사거리에 명확한 포스코이앤씨의 브랜드 이미지를 구축한다. 더샵갤러리의 철재 갑옷이 도시 스케일에서 강한 인상을 전달한다면, 옥상정원의 철재 루버와 수경 시설은 휴먼 스케일에서 세련된 공간 경험을 제공한다. 철재 루버는 옥상 서측 편에 놓인 실외기들을 차폐하는 목적으로 설치했다. 그리고 루버와 실외기 사이에 녹지대를 조성했다. 높이가 다른 두 단의 플랜터를 만들어 자작나무와 산수국, 다양한 지피초화류를 식재했다. 정원에서부터 실외기까지 3.5m 남짓한 좁은 녹지지만, 입체적 식재 기법과 루버의 적절한 가림 효과로 4m 높이 실외기 외벽이 전혀 드러나지 않는다. 루버 디테일은 디자인의 통일성과 비용 절감을 고려해 건축 외장재를 그대로 활용했다. 문제는 뒷부분의 각관 구조물들이 루버 간격과 각도에 따라 노출될 우려가 있었다. 여러 시뮬레이션을 거쳐 보는 시점에 따라 변화감이 느껴지면서도 배면의 각관이 노출되지 않는 최적의 각도를 찾았다. 따라서 승강기나 계단을 통해 옥상에 들어서면 마치 건축 입면과 같은 솔리드 한 루버 풍경을 맞이하게 된다. 그러나 잔디마당으로 걸어가면서부터 서서히 루버 사이의 틈이 보이게 되는데, 정원 안쪽 콘크리트 벤치에서 틈이 가장 많이 열린다. 그 틈 사이로 다양한 녹색 식물이 차가운 철재 루버와 함께 포스코만의 정원 풍경을 연출한다. 루버 뒤편으로 심은 물철쭉 가지들이 루버 틈 사이로 나오도록 연출하기 위해 시공 현장에서 현장 소장과 함께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이 루버 사이로 약 6m 길이의 워터채널이 돌출된다. 워터채널은 V자 모양으로 접힌 5개의 스틸 플레이트로 만들어 서로 다른 길이와 높이로 설치했다. 물은 V자 홈을 따라 하부 6개의 수반 위로 떨어지며 경쾌한 물소리를 만든다. 그리고 각각의 수반에 떨어진 물을 받는 타원형 수반을 하나 더 설치했다. 이 물이 모여 워터채널이 시작되는 각각의 물홈통으로 순환 공급된다. 물홈통은 자작나무 식재 플랜터 뒤 실외기 외벽 아래에 위치해 외부에 노출되지 않는다. 방문객은 물의 시작점을 볼 수가 없기 때문에 마치 자작나무 숲 사이에서 물이 흘러나오는 착각을 하게 된다. 시공 과정에서 워터채널로부터 떨어지는 물줄기의 두께와 물의 세기에 따라 물을 받는 하부 수반의 위치가 달라져야 한다는 점을 발견했다. 그래서 우리는 현장에서 물의 강도와 두께를 고려한 연출을 여러 번 시행했고, 의도한 최적의 효과를 결정해 하부 수반의 위치를 조정했다. 그리고 그 지점에 정확히 물이 떨어질 수 있도록 V자 모양의 워터채널을 현장에서 잘라가며 위치를 맞췄다. 워터채널에서 떨어진 물이 수반에서 넘쳐흐르며 물막이를 형성하는데 그 모습이 꽤 괜찮았다. 예상치 못한 작은 수확이었다. 그래서 수막이 잘 형성될 수 있도록 수반의 한쪽 면을 기울이고 수반의 에지를 살짝 갈았다. 상품을 넘어 설계를 하며 포스코만의 조경 스타일에 대한 고민과 함께 이 정원이 기여할 수 있는 공익적 가치를 고민했다. 비록 작은 면적의 옥상정원이지만, 국지성 호우 시 빗물이 잠시 머물러 갈 수 있도록 서로 다른 투수율을 가진 녹지대의 하부를 연결한 드라이가든을 조성했다. 국립수목원과 기술 교류를 통해, 유용식물증식센터가 자체 개발한 여러 비비추 품종들을 최초로 도심 옥상 정원에 적용했다. 한반도 희귀종 및 특산식물 27종 및 산딸나무, 마가목, 전나무, 산수국, 단풍나무 등 한국의 산에서 볼 수 있는 다양한 수목과 약 80여 종 15,000본의 식물을 식재했다. 정원은 열악한 인공 지반 환경에서 새로운 품종의 비비추와 그밖에 많은 종류의 식물들이 얼마나 적응할 수 있을지에 대한 테스트 베드가 될 것이다. 진행금민수 디자인 팽선민 이정화·조용준·강인화·최재훈 인터뷰 모두의 공간을 위한하나의 목소리 도산공원에 위치했던 더샵갤러리를 자곡동으로 옮기면서 새롭게 개장했다. 이전의 더샵갤러리와 비교했을 때 어떤 점이 달라졌나. 이정화(이하 이) 공간 및 프로그램 구성은 대체로 비슷하다. 포스코의 브랜드 이미지를 보여줄 수 있도록 외장재를 철로 사용하고, 지역 주민을 위한 휴게 및 전시 공간을 마련하고, 모델하우스로 기능하는 분양관 등을 설치했다. 이전에는 도산공원을 조망할 수 있는 옥외 테라스를 두었는데 생각보다 이용률이 낮았다. 자곡동에서 새롭게 선보이는 더샵갤러리에서는 리모델링을 통해서 이러한 점을 보완해 시민들과 접점을 늘리고자 했다. 그래서 누구나 이용할 수 있는 옥상정원을 만들고, 그린이라는 키워드를 공간에 담았다. 바이오필릭 디자인을 적용해 1층 웰컴정원부터 5층의 옥상정원까지 이어지는 실내외 조경을 통해 자연을 몸소 느낄 수 있게 만들었다. 자곡동은 차량이 없으면 접근하기가 쉽지 않다. 접근성이 좋은 도심의 다른 복합문화공간에 비해 상대적으로 불리한 측면이 있는 것 같다. 이 낮은 접근성을 극복하기 위해 모퉁이 필지를 적극적으로 활용했다. 자곡 사거리에 위치한 기존 건물은 밤고개로 방향으로 입면이 있고, 나머지는 옆면으로 사용되는 어디서나 흔히 볼법한 건물이었다. 그래서 건물의 입면과 옆면을 모두 철재 곡면 외장 패널로 감싸고, 아트리움과 4, 5층 공간은 투명한 유리로 마감해 밝은 공간을 연출했다. 야간에는 입면을 활용해 미디어 파사드를 선보인다. 포스코를 상징하는 철재 입면과 투명한 공간 연출로 지나가는 시민들에게 공간에 대한 궁금증과 흥미를 유발하고자 했다. 조용준(이하 조) 대상지가 사거리에 있어서 유동 인구가 많다. 모퉁이 필지도 허투루 쓰지 않고 모두 끌어안는 전략으로 만든 독특한 입면이나 미디어 파사드 덕분에 사거리 어디에서 바라보든 이 공간이 눈에 띤다. 4층과 5층에 올라가면 대모산 자락이 훤히 보이는 입지적 조건은 큰 장점이다. 대모산 자락과 이어지는 4층과 5층의 녹지가 공간을 담고 있는 녹색 뚜껑처럼 느껴지는데, 이러한 점이 눈길을 끄는 요소로 작용한다. 갤러리 외부 공간 중 옥상을 정원으로 활용한 이유는 무엇인가. 이 도산공원 때보다 면적은 더 작아졌는데, 용적률을 최대한 높이다 보니 주어진 공간이 옥상밖에 없었다. 리모델링을 통해서 시민들에게 다양한 프로그램을 제공하고 싶었는데, 대모산과 롯데월드타워가 한눈에 보이는 옥상이 이를 위한 장소 중 하나라고 판단했다. 5층 옥상정원에 기능과 미학을 담고 싶었다. 최근 몇 년 사이 국지성 호우 등으로 비가 많이 내렸고, 대상지가 위치한 강남에서 비로 인해 침수가 일어나기도 했다. 이러한 현상을 접하면서 LID를 활용한 정원에 관심이 생겼고, LID를 활용하되 아름다움을 놓치고 싶지 않았다. 우수 등을 적절히 활용해 물을 머금고 있는 동시에 도심에서 자연의 아름다움을 선사할 수 있는 정원을 옥상에 만들고자 했다. 현실적 여건으로 모든 아이디어가 실현되지는 못했지만, 여러 시도를 해 볼 수 있어서 뜻깊었다. 옥상정원의 식재 설계는 대모산 자연 경관에서 영감을 얻었나. 조 작은 것들로부터 경험이 확장되어 입체적인 자연을 느낄 수 있는 소우주. 이 공간을 가장 잘 설명하는 문장이다. 공간은 작지만 입체적인 자연을 최대한 보여주고자 했다. 물과 식물이란 소재를 효과적으로 활용해 바이오필릭을 구현하고자 했다. 작지만 하나의 세계를 품고 있는 소우주처럼 작은 공간에서 물을 머금고 있는 자연을 있는 그대로 느낄 수 있게 만들고자 했다. 이를 위해 대모산 끝자락에 있는 대상지의 맥락을 고려했다. 주변을 감싸고 있는 대모산과 단절되는 것이 아니라 연속적으로 연결되는 또 하나의 숲 경관을 만들고자 했다. 식재의 밀도와 수종을 조절하고 수직과 수평으로 다양한 켜를 만들어 숲 경관을 입체적으로 감상할 수 있게 했다. 옥상정원의 플랜터와 잔디마당 사이의 자투리 공간을 포장하는 대신 드라이가든 같은 녹지로 구성해 조금이라도 자연을 느낄 수 있게 했다. 엘리베이터에서 내리면 바로 보이는 5층 진입 공간에는 국립수목원과 기술 교류를 통해 받은 비비추 등 한국 자생종을 심어 방문객을 환영한다. 이 전반적인 식재 연출은 포스코가 추구하는 자연형 식재의 결과 맞닿아 있다. 포스코는 아파트 단지 내 다층형 식재를 통해 입체적인 자연을 보여주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지피초화류와 관목, 교목으로 군락지를 만드는 것이 아니라 배치와 구도를 면밀히 살핀 후 시간이 지났을 때 어떤 숲을 보여줄 수 있을 것인지에 대해 고민하며 섬세한 식재를 추구한다. 또한 외래종보다는 월동이 쉬운 자생종을 최대한 활용하며, 다년생으로 관리가 용이한 자생종을 선호한다. 하지만 국내 시장에서 자생종을 구하기가 쉽지 않다. 그래서 자생종의 활성화를 바라며 국립수목원과 기술 교류를 통해 비비추 등을 옥상정원에 도입했다. 시민들에게 자생종의 매력을 널리 알리고 싶었다. 자생종의 매력을 알고, 관심 있게 지켜보는 이들이 많아져야 더 다양한 자생종을 현장에서 쓸 수 있다고 본다. 자생종 활용의 관점에서 보면 일종의 선순환을 만들기 위한 테스트 베드가 5층 옥상정원이다. 디자인 전략 중 하나로 물을 이용한 스토리텔링을 꼽았다. 진입부의 미러폰드부터 옥상정원의 워터채널까지 물을 중심으로 층마다 다른 수공간을 배치한 이유는 무엇인가 이 건축가와 조경가는 물에 대한 관점이 다르다. 조경가는 물을 활용한 연출을 시도하지만, 건축가는 물을 배수로만 인식하며 해결해야 할 문제로 다룬다. 하지만 정원이나 광장의 수공간은 매력적이다. 광화문광장만해도 수경 시설에 사람들이 많이 모여들지 않나. 그래서 물에 대한 인식을 바꾸고 싶었다. 물을 단순히 건축물의 안 보이는 곳에 선홈통을 연결해 빼버리는 존재로 만들고 싶지 않았다. 원형 계단에서 보이는 인공폭포도 그러한 관점에서 연출된 것이다. 빗물을 모아 사람들이 보이지 않는 곳에서 처리하는 것이 아니라, 방문객들이 공간 내부에서 물이 떨어지는 인공폭포를 직접 마주하며 물이란 존재가 주는 감각적 체험과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기를 바랐다. 원래 우수를 재활용한 인공폭포를 만들려고 계획했지만, 비용 문제 등 현실적인 제약으로 인해 실현하지 못했다. 조 1층의 미러폰드부터 5층 워터채널까지 이어지는 수공간은 방문객의 동선과 시선을 고려해서 계획했다. 재미있는 이야기는 다음이 늘 궁금한 법이다. 그래서 1층, 원형 계단, 5층의 수공간을 각각 다르게 구성해서 공간마다 흥미를 유발하고 다음 공간을 기대할 수 있게 만들었다. 사거리에서 보이는 옥상정원의 녹지를 보고 관심이 생긴 사람이 1층에 오면 굴곡진 수형이 아름다운 소나무와 주변 풍경을 반사하는 미러폰드가 흥미를 유발한다. 4층까지 이어지는 원형 계단을 오르며 인공폭포를 통해 떨어지는 물을 감각하고, 4층 전시 공간에서 나와 작은 정원을 감상하고 5층으로 올라와 시크릿 가든처럼 숨겨진 옥상정원에서 만나는 워터채널. 이러한 물의 여정을 통해 하나의 숲에서 계곡과 샘물을 마주하는 것 같은 경험을 선사하고자 했다. 강인화(이하 강) 물을 토대로 한 연결성에 초점을 맞췄던 것 같다. 상류부터 하류로 이어지는 강의 흐름처럼 물이라는 개념이 워터채널부터 1층의 미러폰드까지 하나로 이어지게 하려고 노력했다. 물로 이어지는 각 공간을 어떤 식으로 연출할지 고민했고, 특히 방문객 동선의 끝이라고 할 수 있는 옥상정원에서 가장 특별한 경험을 선사하는 워터채널을 만들기 위해 노력을 많이했다. 근원을 알 수 없는 곳에서 흘러나오는 샘물에서 모티브를 얻어 워터채널의 물홈통을 보이지 않게 연출해 물이 어디서 흘러나오는지 알 수 없게 했다. 이를 통해 공간에 대한 호기심을 이끌어 내고자 했다. 5층 옥상정원 계획 시 원안의 복층 구조를 없애는 대신 워터채널과 계단식 벽천 중에서 고민한 것 같다. 이 복층 구조로 하면 건물 구조 상 토심 확보가 어려웠고, 전체적으로 공사비가 증가해서 완성도가 다소 떨어질 수 있었다. 복층 구조를 없애는 대신 완성도에 집중했다. 흔히 사용하는 계단식 벽천은 안전한 선택지 중 하나였지만, 협의 과정에서 새롭고 특별한 경험을 연출할 수 있는 수공간의 필요성을 느껴 워터채널을 계획하게 됐다. 자칫 공사장 펜스처럼 보일 수 있는 철재 구조물의 미관과 강풍 등에 의한 위험성에 대한 우려가 있었고, 현실적으로 이러한 구조물을 다룰 수 있는 시설물 업체를 찾는 게 쉽지 않았다. 우려와 달리 설치됐을 때 내부 반응이 좋았다. 개인적으로 시간에 따라 바뀌는 빛에 의해서 색감과 느낌이 달라지는 게 맘에 든다. 아침에는 철재 루버에 샴페인 골드 빛이 드리우는데 저녁에는 약간 오렌지 빛이 드리우는 걸 보면서 참 뿌듯했다. 최재훈(이하 최) 물을 이용한 연출이다 보니, 워터채널에 흐르는 물의 유량부터 시작해서 수반에 담겨 떨어지는 모습까지 도면만 보고 시공하기엔 설계자의 의도를 제대로 담아내기 어려운 디테일이 많았다. 설계와 시공의 감도를 높이기 위해서, 조용준 소장, 이정화 부장과 함께 현장에서 논의하며 워터채널을 현장에서 재단하고, 수반의 위치, 기울임 정도를 수정했다. 이런 과정 속에서 수반을 앞쪽으로 기울여 워터커튼을 만드는 연출로 변경되기도 했다. 철재 루버로 실외기 외벽을 가리고 루버와 실외기 외벽 사이에 녹지를 마련했다. 자작나무 등 수종 선택 시 고려한 사항이 있다면 무엇인가. 조 녹지에 상록수는 쓰지 않으려 했다. 루버 뒷공간에 상록수처럼 가지와 잎의 밀도가 높은 나무를 사용하면 하나의 면처럼 보이기 때문에 특유의 깊이감이 사라진다. 루버와 식재가 어울리며 만들어 내는 빛과 그림자를 머릿속에 떠올렸다. 멀리서도 잘 보일 수 있도록 수고가 높고 하늘하늘 거리며 잎이 밝은 수종을 찾다가 발견한 게 자작나무였다. 자작나무는 많이 심어도 잎의 밀도가 높지 않아서 루버 틈과 틈 사이로 녹지를 보여줄 수 있다. 루버 뒷 공간에 상록수를 심으면 면과 면처럼 느껴지는 반면 자작나무는 면과 선의 대비가 분명하게 느껴져 공간의 깊이감을 만들 수 있다. 물철쭉 가지들이 루버 틈으로 보이게 연출하는 등 보는 각도에 따라 보이는 경관이 달라지는 루버의 특징을 활용해 한 폭의 그림처럼 보일 수 있게 식재를 했다. 4층과 5층의 공간 구성이 다채롭다. 녹지 위에 원형 콘크리트 플랫폼을 배치하거나 층마다 플랜터의 소재를 다르게 연출했다. 이 한 공간 안에서도 다채로운 경험을 제공하고 싶었다. 분양관, 전시 공간, 카페 공간 등 복합문화공간으로서 다양한 공간이 층마다 배치되어 있기 때문에 공간마다 특성에 맞춰 다른 분위기를 연출하고자 했다. 가령 4층은 실내 정원 및 인테리어부터 외부 테라스까지 단절되지 않고 이어지며 따스한 분위기를 연출하고, 5층은 옥상정원을 중심으로 싱그러운 자연의 느낌을 담아내려 했다. 이러한 이유로 4층과 5층의 플랜터 소재를 각각 철과 화강암으로 다르게 활용했다. 조 가장 처음 생각했던 건 4층과 5층에서 디자인적 통일성을 만드는 거였다. 그래서 4층과 5층의 플랜터 소재를 포스코를 상징하는 철재로 통일시키는 방향으로 접근했고, 그 안에서도 역동적 표면을 만들어 디테일의 완성도를 높이려 했다. 원형 콘크리트 플랫폼의 경우 녹지와 공간이 분리된 느낌을 준다. 경복궁 근정전의 월대처럼 단차를 두어 격을 높이는 효과를 연출했다. 이런 연출을 통해 모든 방문객을 귀한 손님처럼 모시고 싶었다. 궁극적으로 녹지와 단차가 있는 콘크리트 플랫폼 위 휴게 공간을 통해 나만의 아늑한 정원을 소유하는 느낌을 만들어 주고 싶었다. 4층 실내 정원이 실내 전시 및 휴게 공간과 조화를 이루기 위해서 어떤 연출을 시도했나. 최 4층 공간은 높은 층고와 실내외의 경계에 있는 통창으로 이뤄진다. 이런 특징들은 햇빛과 같은 외부 자연환경을 내부로 끌어들이고 공간을 밝고 개방적으로 만든다. 이러한 점을 극대화하기 위해 지면과 실내 정원의 레벨이 같게 만들어 외부의 자연이 건물 내부로 흐르는 느낌을 연출하고, 실외까지 시야와 공간감이 확장되면서 이용자가 실내에서 외부 정원으로 자연스럽게 이동하게 만들고자 했다. 또한 4층은 누구나 쉽게 접근할 수 있도록 고객들에게 개방된 공간으로, 더샵이 추구하는 그린라이프를 경험할 수 있는 프로그램과 전시가 진행된다. 진입했을 때 공간의 의도를 한눈에 드러내기보다 숲이라는 첫인상을 전달하고 싶었다. 공간의 높은 층고를 활용하여 수고가 높은 인조목을 최대한 많이 배치하고 벽면의 미러월을 통해 깊이감을 만들었다. 숲 사이사이에 공간이 배치되고, 그 안에서 프로그램과 전시물을 경험하는 동안에도 고객들은 손만 뻗어도 되는 거리에 자연이 항상 있게 된다. 중앙에 배치된 유선형의 대나무 조형물을 통해 자연 속 둥지의 곡선적인 형태와 유기적인 구조를 표현해 자연 속에서 찾은 주거의 가치를 담아냈다. 이처럼 물리적 환경 구축과 동시에 브랜드를 효과적으로 전달하는 방법을 많이 고민했다. 이 내부 공간의 토심 부족과 생육 환경을 고려해 인공 식물을 쓸 수밖에 없었지만, 실내외 풍경이 최대한 자연스럽게 이어지게 했다. 그래서 실내 공간과 외부 테라스의 식재 톤을 맞췄다. 인공 식물로 연출할 때 필로 덴드론 등과 같이 흔히 실내 조경에서 쓰는 열대지방 식물을 지양하고, 한국의 산에서 볼 수 있을법한 수종으로 연출하려고 노력했다. 실내 조경하면 식물원을 대개 떠올리는데, 그런 전형적 인식에서 벗어나 실내 정원에서도 충분히 한국적 자연 경관을 선보일 수 있다 는 걸 보여주고 싶었다. 외부공간디자인 더숲은 다양한 유형의 실내외 조경을 해온 것으로 알고 있다. 상업 공간에 실내 정원을 만들 때 원칙이 있나. 최 상업 공간을 설계할 때 방문객들에게 어떠한 경험을 제공할지 고민을 많이 한다. 이를 토대로 단순히 아름다운 디자인에 그치지 않고 브랜드와 소비자의 정서적 연결을 만들어 내고자 한다. 결국 방문객들에게 오랫동안 좋은 기억을 남기는 공간이 오래 간다. 그래서 클라이언트와 소통을 많이 하며, 때로는 역으로 공간 브랜딩을 위해 제안하기도 한다. 한 카페 프로젝트의 식재 디자인을 맡았는데 특색이 없던 공간의 주목도를 높이기 위해 식재와 더불어 외관 디자인 변경을 새로 제안함으로써 공간의 전체적인 톤을 바꾼 경우가 있었다. 우리의 역제안을 흔쾌히 수락해 준 클라이언트 덕분에 공간의 분위기가 달라지는 효과를 거둘 수 있었다. 프로젝트를 진행하며 디자인 언어를 만들어 가는 과정에서 조경에 그치지 않고, 전체적인 공간 브랜딩을 보려고 한다. 이를 토대로 상업 공간을 상업적으로 흥행할 수 있는 공간, 나아가 브랜드를 고객들에게 오롯이 잘 전달하는 공간으로 만들기 위해 노력한다. 이번 프로젝트는 KT 디지코 가든과 비슷한 유형이라고 할 수 있다. 조 업으로 조경을 선택한 이유는 조경을 통해 공공의 가치를 담고 싶었기 때문이다. KT 디지코 가든과 이 프로젝트 모두 민간 프로젝트였지만 조경이 가진 공공적 가치와 역할을 충분히 담아내고자 노력했다. 다만 그때와 다른 건 브랜드 이미지를 좀 더 드러내려고 노력했다. 포스코라는 브랜드의 상징성을 보여주기 위해 철재를 적극적으로 활용했다. 이와 동시에 식재로 다양한 켜를 만들어 내고, 국지성 호우를 대비한 드라이가든 등을 조성함으로써 물을 머금은 자연 경관을 입체적으로 구현하기 위해 많이 고민했다. 또한 실내외가 연속된 녹색 풍경으로 이어지는 통합 디자인을 구현하고자 노력했다. 이처럼 건축, 인테리어, 조경이 공간 브랜딩이라는 하나의 목적을 위해서 하나의 목소리를 낼 수 있어서 뜻깊었다. 최근 공간 브랜딩을 통해 브랜드의 가치를 높이려는 곳이 많아졌다. 공간 브랜딩이 정말로 소비자들에게 유의미한 효과가 있다고 보나. 최 우리가 공간에서 연출하고 의도했던 바를 방문객들이 100% 알아봐 주면 정말 감사한 일이다. 하지만 공간을 유심히 살피는 고객들은 소수에 불과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건축, 인테리어, 조경이 공간 브랜딩을 위해서 한 목소리를 내는 게 중요하다. 통합된 디자인을 통해서 하나의 목소리를 내고 있는 공간의 톤은 확실히 다른 곳과 차별점을 만든다. 방문객이 디자인 의도를 명확히 알아차리지 못해도, 한목소리를 내는 공간의 정돈된 톤은 일정 부분 사람들에게 긍정적 영향을 미치고, 나아가 가보고 싶은 공간이란 생각이 들게 한다고 본다. 조 그간 공간 브랜딩에서 건축이나 인테리어의 역할이 부각됐는데, 이제는 조경도 같이 브랜딩을 이끌어갈 수 있는 정도가 됐다. 이전까지 공간 브랜딩에서 아예 신경 쓰지 않는 요소 중 하나가 조경이었다면, 이제는 건축, 인테리어와 함께 공간의 이상적인 상을 같이 그려나갈 수 있게 된 것이다. 그래서 이제부터가 시작이라고 본다. 단순히 상품으로 끝나는 조경이 아니라, 상품 이상의 가치를 구현할 수 있는 조경의 역할이 필요하다. 공공성을 띤 조경이 무엇을 할 수 있을지 조경가 로서 늘 고민할 필요가 있다. 궁극적으로 이 공간이 방문객들에게 어떤 공간으로 기억되기를 바라나. 이 포스코의 조경을 담당하며 철이란 차가운 소재 안에 조경이라는 따뜻함을 불어넣기 위해서 많은 고민과 노력을 하고 있다. 이 프로젝트에도 그러한 고민이 많이 담겼다. 세대를 불문하고 이곳을 지나가는 누구나 옥상의 작은 숲을 보고 한번쯤 들러서, 물소리도 듣고 작은 정원에서 쉬다가 갔으면 좋겠다. 작은 자연 속에서 아늑한 쉼을 이곳에서 즐기면 좋을 것 같다. 최 브랜드와 소비자들의 연결 고리 역할을 하는 입장에서 더샵의 좋은 공간을 경험하는 것을 넘어서서 좋은 공간을 만들고자 하는 더샵을 경험할 수 있는 공간으로 기억했으면 좋겠다. 강 설계 과정에서 포스코의 브랜드 이미지를 드러내는 철과 자연의 뚜렷한 대비가 잘 드러나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오늘 현장에 와서 보니 철재 루버와 루버 사이로 보이는 잎이 떨어진 나뭇가지의 대비가 강한 직선과 곡선의 대비처럼 느껴져 아름다워 보였다. 이러한 곡선과 직선의 대비가 이 공간을 더 아름답게 만들어 주는 것 같다. 이러한 공간을 많은 사람들이 이용한다면 기업도 공공의 아름다움을 추구할 수 있다는 걸 보여줄 수 있지 않을까. 조 조경가로서 완성도 높은 디자인을 통해 좋은 상품적 가치를 만드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나의 의도를 알아봐 주고 귀하게 여겨주는 것도 좋지만, 내가 만든 공간에서 세대와 상관없이 모두가 행복하게 쉴 수 있다면 그보다 더 좋은 일은 없다. 공공적 가치를 위해서 조경을 선택했던 처음의 마음처럼 조경가로서 늘 조경의 아름다움을 모두가 누릴 수 있는 공간을 만들고 싶다. 이곳 역시도 인근 지역 주민 모두가 즐길 수 있는 동네의 대표적인 복합문화공간으로 거듭나기를 바라본다. 디자인 팽선민 글 조용준 CA조경기술사사무소 소장 조경 설계 총괄 CA조경기술사사무소(조용준) 조경 설계 진행 CA조경기술사사무소(조용준, 강인화, 김병철,서유진, 이지현, 김성일, 허지선) 조경 디자인 감리 CA조경기술사사무소(조용준, 강인화) 조경 시공 외부공간디자인 더숲 건축 설계 포스코에이앤씨, 가아건축사사무소 인테리어 설계 이웨이(EWAI), 동일인테리어 발주 포스코이앤씨 위치 서울시 강남구 자곡로 210 면적 2,555.3m2 완공 2023. 9. 사진 외부공간디자인 더숲, 조용준 2004년 설립된 CA조경기술사사무소는 작은 공간의 설계부터 도시 스케일의 계획에 이르는 국내외 다양한 프로젝트를 수행해왔다. 창의적인 생각으로 새로운 가치를 추구하며, 공공을 위한 의미 있는 장소를 만들고자 한다. www.cadesign.co.kr 이정화는 일리노이주립대학교에서 건축학을 전공하고, 펜실베이니아대학교에서 건축학과 조경학 석사학위를 받았다. 북미 조경사 자격증을 소지한 미국 공인 조경가로서 SOM, Brightview, HOK에서 도시 개발 계획, 주거, 학교, 병원 및 기업 사옥 시설 부대 조경설계를 담당했다. 현재 포스코이앤씨(전 포스코건설)에서 조경 상품 기획, 개발 및 외부 환경 디자인 마스터로 근무하고 있다. 자연 친화적인 주거 브랜드 상품으로 단지 내 식물원 플랜트리움, 스타라이트로드, 바이오필릭 주차장 등을 개발했다. 조용준은 서울시립대학교와 펜실베이니아대학교에서 조경을 공부했다. CA조경기술사사무소 소장으로 ‘새로운 광화문광장 기본 및 실시설계’를 이끌고, ‘워커힐 더글라스 정원 기본 및 실시설계’, ‘이스탄불 하천 회복 프로젝트’, ‘종로구 통합청사 설계공모’ 등 다양한 프로젝트를 수행했다. 개인 자격으로 즉흥적인 기획, 전시하지 않는 그래픽 작업 등을 즐기기도 한다. 강인화는 서울시립대학교에서 조경을 전공했으며 CA조경기술사사무소에서 ‘새로운 광화문광장 기본 및 실시설계’ 실무를 담당했다. 현재 ‘서울광장숲 조성사업’, ‘도심공원 기본계획 및 개방형녹지 등 지침마련‘ 등 다수의 프로젝트를 수행하고 있다. 최재훈은 강원대학교에서 조경을 공부했다. 외부공간디자인 더숲의 책임으로 ‘롯데아울렛 동부산/김해점 리뉴얼 계획’, ‘더샵갤러리 2.0 실내조경 현상설계’ 외 다양한 하이엔드 정원 프로젝트를 진행했다. 다분화된 소비자 취향의 최전방에서 공간을 제안하고 있다.
    • 조용준
  • 나의 식물에게
    조경의 특징 중 하나는 살아 있는 재료, 식물을 다룬다는 점입니다. 식물은 참 재미있는 소재입니다. 자라나 잎을 틔우고 꽃을 피우고 다시 지며 공간에 변화를 만들어내고 시간의 흐름을 느끼게 합니다. 굵어지는 줄기와 점점 높아지는 수목의 캐노피는 세월의 적층을 보여줍니다. 누군가는 식재가 조경설계의 핵심이라고 이야기하고, 어떤 이는 식물은 설계에 더해지는 요소일 뿐 전부가 되어서는 안 된다고 이야기 합니다. “공간을 만드는 조경가에게 식물은 어떤 존재일까요?” 이 물음을 토대로 식물에 대한 다양한 이야기를 나누고자 합니다. 내게 영감을 주는 식물, 좋은 나무를 고르는 법, 모두가 말리겠지만 꼭 한 번 써보고 싶은 수종, 식재 과정에서 겪었던 웃지 못 할 에피소드, 잘못된 식재 사례 바로잡기, 조경에서 식물은 꼭 필요한 것인지에 대한 고민 등 식물과 얽힌 다채로운 글감을 여덟 명의 조경가에게 건넸습니다. 식물에 대한 조경가들의 지극히 사적인 이야기가 독자들에게 신선하게 가 닿기를 기대합니다. 진행 김모아, 금민수, 이수민 디자인 팽선민 --- 식물의 가치를 설계 언어로 번역하다 _ 조혜령 불가피한 난제, 불가능한 애도 _ 허대영 식물의 감 _ 최재혁 아름다운 공간을 지키기 위한 고민 _ 박경탁 조경가, 식물을 얼마나 잘 알아야 할까 _ 이해인 나의 디자인 중심 _ 김태경 조경가와 식물, 조경가의 식물 _ 박주현 식물의 가치를 만드는 법 _ 김수린
  • [나의 식물에게] 식물의 가치를 설계 언어로 번역하다
    이성과 감성 사이 조경가에게 식물은 어떤 의미인가. 순간 제인 오스틴의 소설을 영화화한 ‘이성과 감성(sense and sensibility)’이 생각났다. 두 주인공 가운데 언니 엘리너는 침착하고 바른 판단을 중시하는 ‘이성’을 대표하는 인물이고, 동생 메리앤은 열정에 자신을 맡기는 ‘감성’을 대변한다. 이들은 각기 힘든 연애를 겪으며 자신에게 부족한 일면을 보완할 기회를 만들어가고 결국엔 좋은 배우자를 만나게 된다. 이성과 감성 사이에서 식물을 다루는 조경가의 역할과 입장은 어때야 할까. 식물의 이름과 특징 등 개체적 탐구로부터 확장해(각주 1) 첨단 소프트웨어와 장비로 대상지의 자연(식물의 집단)을 분석하고 데이터를 도출한다. 하지만 조경계획과 설계라는 직무 특성상 이를 바탕으로 이용자의 미적 경험을 상상하는 작업은 식물을 다루는 조경가의 기초이자 목표다. 조경을 과학과 예술이 융합된 실천적 종합 예술이라고 하지 않던가. 조경가는 이성과 감성 사이를 넘나들며 식물의 가치를 설계 언어로 번역하는 일을 한다. 조경 디자인 매체로서 식물 조경가에게 식물은 지형이나 바위, 물과 같은 자연 요소 중 하나다. 살아 있는 자연의 재료를 다룬다는 의미는 유사 분야의 직무와 구별되는 지점이기도 하지만 낮과 밤, 날씨와 계절, 지형과 고도, 곤충과 동물 등 식물과 관계되는 모든 현상의 시공간적 함수가 추가된다. 단순히 식물이라는 재료를 나열하는 행위는 지양해야 한다. 적합한 식물을 선택하고 조합해 이용자들의 감각과 감정을 유발하는 재구성의 작업이 필요하다. 이때 식물은 비로소 조경 디자인의 요소가 아닌 매체가 된다.(각주 2) 디자이너로서 조경가는 식물학의 본질을 이해해야 하며 생태학의 기본에 친숙해야 한다. 원예학이나 농업학, 임업학으로부터 적절한 기술을 활용할 줄 알며 무엇보다 형태, 질감에 대한 안목과 화가의 기술이나 문학의 표현에 특별한 감수성을 지녀야 한다.(각주 3) 이처럼 식물은 조경 디자인의 매체가 되어 설계자와 이용자 간의 커뮤니케이션을 매개한다. 매체는 때론 정원, 공원, 초지, 숲 등의 ‘서식처 재현’의 형태로 해석되기도 하고 ‘문화적 메시지’로 안내되기도 한다. 필자는 영화나 소설, 시 구문에서 식물에 대한 문화적 콘텐츠 발굴을 즐긴다. 문학가들이 표현하는 식물은 어느 조경가의 수려한 식재 디자인 못지않는 경관을 선사한다. 특히 박완서 소설에서는 식물의 특징을 인물에 대입시켜 생명력을 불어넣는 묘사 글을 심심치 않게 발견할 수 있어 흥미롭다. 실제로 그는 경기도 구리시 아치울 마을 노란 집에 거주하며 마당 가꾸기에 정성을 쏟을 만큼 식물을 사랑했다고 전해진다. 봄이면 딱딱한 나무줄기 가장귀에서 꽃자루도 없이 선명한 홍자색 꽃을 터뜨리는 박태기나무의 특징을 복희의 첫사랑에 요동치던 떨림으로 묘사하는가 하면, 여름철 강렬한 주황색의 능소화는 팜 파탈 현금을 묘사하는 식물로 등장한다. 그밖에 싱아, 파드득나물, 며느리밥풀꽃 등 수십 종의 식물들은 그녀의 자전적 소설 또는 수필 구석구석에서 추억과 심경을 대리하며 독자와의 공감을 시도한다. 조선 최고 학자이자 개혁가인 다산 정약용은 어떠한가. 다산은 좌뇌와 우뇌, 이성과 감성을 두루 갖춘 정원가임이 틀림없다. 특히 다산의 풍부한 식물학적 지식은 정원에서 식물을 실용적으로 활용할 뿐 아니라 감각적으로 감상하는 태도도 제시한다. 국화의 아름다움을 남긴 여유당전서 1집 13권 『국영시서』에는 가을 밤 흰 벽 앞에 국화 화분을 세워 놓고는 촛불을 멀고 가깝게 비춰가며 벽 위에 어리는 국화 그림자를 감상하는 몽환적인 연출 방식이 잘 묘사되어 있다. “먹을 수 있어야만 실용이 아니라 정신을 기쁘게 해서 뜻을 길러주는 것도 가치가 있다.”(각주 4) 캐스팅과 연출 몇 년 전 건설사와 함께 주택 전시관 작업을 할 기회가 있었다. 최근 많은 브랜드가 팝업 형태의 체험 공간을 만들고 브랜드의 가치와 이미지를 담는 매체로 정원을 적극적으로 활용하고 있다. ‘드림 하우스’란 이름으로 부산에 오픈한 견본 주택 전시관은 팬데믹 시대 새로운 트렌드를 반영한 단지 조경 콘셉트와 주거 문화를 전시하는 공간으로 활용됐다. 좁고 높은 입면의 정원 속에는 구불구불한 산책로와 시적인 교목의 캐스팅이 중요했다. 키는 8m, 수관 폭은 3.5m 내외, 2.5m 정도의 지하고가 확보된 나무가 필요했다. 3층 홀 복도에서 계단실로 내려가는 공간에서 감상할 수 있는 수관고의 볼륨이 온전히 시선에 담겨져야 했으며 무엇보다 전체 공간에서 초점이 되는 구조로서 지배하는 힘도 필요했다. 수없이 많은 종류와 규격(미세하지만 다른 캐노피 형태)의 교목을 찾아다녔고 시뮬레이션했다. 주인공 나무가 결정된 후 빈 공간에도 몇 개 없는 테마 질서를 설정했다. 산책로의 시작은 향기가 은은한 은목서로, 수관 하부 주변은 온전히 비워둬 굽은 길과 빈 공간의 담백함을 살리고자 했고, 뾰족한 모서리 공간은 몇 개의 층위를 가진 식재 레이어를 두어 깊이감을 줬다. 정원의 채광은 유리를 커튼월 재료로 사용해 자연광을 충분히 들게 했지만, 자연 환기를 할 수 있는 폴딩도어 설치, 내부 덕트의 위치 등은 식물 유지·관리에 아쉬움을 줬다. 결과적으로 3년의 유지·관리 끝에 이 프로젝트는 건설사의 결정으로 철거 중이다. 나에게는 대형목 식재와 관리가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깨닫게 해준 케이스다. 관리 도중에 중견 조경가에게 자문을 구하기도 했다. “대형 교목을 심는 일은 마치 집을 떠서 옮기는 일과 같다”며 일침을 줬다. 윤리와 서명 몇몇 조경 현장은 관리를 통해 가까이서 두고 보고 있다. 내가 선택한 식물들이 어떻게 적응하고 변화하는지, 다음 작업에는 어떤 자세로 임해야 하는지가 시공과 관리 과정에서 깨달음을 준다. 그래서 반기지 않더라도 때로는 그곳을 암행해 식물을 살피기도 하고 비가 억수같이 쏟고 난 다음에는 집 주인에게 정원의 안녕을 묻곤 한다. 매번 나갈 수 없다는 핑계로 10년 가까이 내가 설계한 정원을 돌봐주는 고마운 한 시민 정원사가 있다. 그는 전문가다운 복장을 하고 식물이 심겨진 화단에 꿇어앉아서 시든 잎을 정리하고 진드기가 들끓으면 일일이 손으로 잎과 줄기를 훑어가며 박멸한다(F&B 시설 내부는 농약 살포를 되도록 지양한다). 지상부 식물을 육안으로 관찰하고 뿌리에 이상이 없다 싶으면 흙을 뒤집어 손으로 점검한 다음 내게 사진을 보낸다. 워터 컴퓨터를 다시 세팅하거나 일정 기간 잠가두라는 지시를 내린다. 때로는 그를 통해 쓰지 말아야 하는 수종과 토양 배합의 지침을 가르침 받기도 하고, 가지치기를 통해 살려 새롭게 형성되는 공간의 형태와 미(완벽한 타이밍의 전지를 통해 보여줄 수 있는 끊이지 않는 개화와 착과 능력)를 제공하며 나에게 깨달음을 준다. 죽거나 병에 걸린 상처 입은 식물도 적절한 가드닝 스킬을 통해 정원의 건강성을 향상시킨다. 비로소 정원의 식물은 디자이너와 가드너가 함께 가꾸는 과정에서 재발견되는 것이라고 해야 할까. 그동안 잘못 심어서 그리고 운영한 나무들에게 고백한다. 앞으로 도면에 허식을 보이거나 콘셉트를 온갖 미사여구로 포장할 고민보다 앞으로 나의 식물에게는 생명력이 넘치는 부식토와 양토를 처방하고 너희들을 더 이해하리라. 땅을 더욱 진심으로 읽고 해석할 수 있도록 노력하리라. **각주 정리 1. 『식물의 종(Species Plantarum)』(1753)을 집필한 스웨덴 식물학자 칼 린네는 “이름 없이는 영원한 지식은 존재할 수 없다”고 주장한다. 식물의 이름을 아는 것은 곧 조경의 대상인 자연의 시스템을 이해하는 첫걸음 아닐까. 2. 김아연 외 26명, 『한국 조경의 새로운 지평』, 도서출판 한숲, 2021, pp.212~223. 3. 닉 로빈슨, 『식재 디자인 핸드북』, 도서출판 한숲, 2018, p.44. 4. 성종상, 『인생정원』, 스노우폭스북스, 2023, p.68. 조혜령은 경희대학교, 그라니치대학, 서울대학교에서 원예와 조경을 공부했다. 정원이 갖는 문화적·사회적 가치를 믿으며 이론과 실무의 경계를 탐색하는 조경가로 현재는 조경하다열음의 연구소장으로 재직하고 있다.
    • 조혜령
  • [나의 식물에게] 불가피한 난제, 불가능한 애도
    특별한 설계자 1990년 조경학과에 입학했고, 고향의 시골 어르신들은 “대체 조경이 뭐냐”며 물었다. 동네에서 그래도 세상 물정 꿰고 있다는 어르신이 먼저 나서서 “조경은 나무 심는 게지”라고 답하곤 했다. 당시에는 조경을 한낱 나무 심는 일로 잘못 알고 있다고 억울해하면서, 전체 배치도도 그리며 포장과 시설물을 섬세히 디자인하는 일도 조경이라고 애써 항변하기도 했다. 이제 생각이 완전히 다르다. 식물만을 다루는 건 분명 아니지만, 우리는 ‘식물’이라는 ‘특별한’ 재료에 대해서 고민해야 하는 ‘특별한’ 설계자들이다. 식물 재료는 탄생과 성장과 쇠퇴라는 삶의 여러 단계를 지나 죽음에 이르기까지 끊임없이 변화한다. 개체가 처한 환경에 따라 미묘하게 다른 모습을 지니므로 그 개별 형태는 실로 무한하다. 게다가 적절히 관리해서 무리 없이 자란다면, 식물은, 특히 나무는 살아갈 자리를 정한 설계자보다도 이 땅에 더 오래 살아남을 존재이기도 하다. 이 재료에는 내구 연한이 없다. 여기까지 생각이 미치면 식물을 대하는 마음이 한없이 숙연해진다. 발췌한 마음, 난제 고백하자면, 천변만화하는 식물 재료에 대한 내 지식은 체계적인 공부와는 거리가 멀고 관심도 변변치 않아서, 설계사무소에서 함께 고생한 고수들이나 협의에서 만난 발주처 조경 담당들로부터 귀동냥으로 주워섬긴 게 대부분이다. “석류나 노각은 겨울 바람에 약해서 담으로 막힌 데 모아 심어라”, “산사, 마가목은 도시에서 잘 살지 못하니 다른 나무로 바꾸라”는 식으로 실제 식재 공사와 식물 성장, 유지·관리 과정을 지켜본 경험 많은 실무자들을 통해서 배운 것이다. 그래서 수종, 초종의 식물 리스트를 만들 때 언제나 조심스러운데, 그러다가도 읽던 책에서 불현듯 영감을 받기도 한다. 이를테면, 징그러운 묘사들이 있어 ‘호더(hoarder)’와 ‘호러’를 오가는 김인숙 작가의 소설 『자작나무 숲』의 도입부한 대목. “하얗게 서 있는 나무들의 숲이었다. 하얗고, 곧게. 그리고 빛을 뿜어내는 숲이었다.”(각주 1) 눈앞에 희부연 밤 풍경이 펼쳐지는데 껍질이 찬연한 이 나무들을 외면할 재간이 있겠는가. 하자 걱정일랑 잊어버리고 빛을 쏘아 올리기 위해서 식재 평면도의 표를 늘려서 자작나무를 넣고 무리 지어 심는다. 기본이 탄탄치 못한 잡지식과 뜬금없는 충동도 문제지만, 설계한 식물들을 현장에서 눈으로 직접 확인하고 실수와 오류를 보완하는 피드백 과정을 거치지 못한다는 게 무엇보다 뼈아프다. “초보들이 식재 도면을 그리나 봐요”(천만에, 초안은 내가 한 거야), “좁은 땅에 식물들이 자잘하게 뒤섞여서 너무 조잡해요”(맙소사, 또 빌어먹을 스케일 감이 문제로군), “중요한 공간이니까 소장님이 직접 신경 써주세요”(알았다고 이 양반아, 내가 그렸다니까). 별나게도 식물에 밝으시나 심사는 까탈스러운 자문위원이나 발주처 담당자를 만나게 되면, 볼 빨간 얼굴과 너덜너덜해진 심정을 애써 감추고 다스리면서 사무실로 돌아온다. 뭐가 문제인가, 괜찮아. 하지만 그런 날 밤이면 비평에 관한 책을 절로 떠올리고 남몰래 뒤적인다. 이를테면, 꾹 눌러 밑줄 친 이런 부분. “비평가들이란 하렘의 환관과 같다. 매일 밤 그곳에 있으면서 매일 밤 그 짓을 지켜본다. 매일 밤 어떻게 해야 하는지는 알고 있지만, 그 자신은 그걸 할 수가 없다.”(브랜던 비언)(각주 2) 물론 품위 있는 오십 대 쿨가이로서 맹세컨대 이렇게 야멸차고 한편으로는 애잔한 문장들을 즐기지 않는다. 다만 검토와 지적, 비판과 비평을 당하는 비슷한 처지에 공감한 나머지 그저 음험한 미소가 지어질 뿐이다, 라고만 해두겠다. 발췌한 마음, 애도 최근 몇 년 사이에는 초·중·고교의 신축보다는 증·개축 사업들이 대폭 늘어나서 사무실 프로젝트 중에서 비중이 꽤 커졌다. 교사동의 증축, 개축은 수업에 지장을 주지 않는 게 무엇보다 앞서는 전제라서, 새 건축물을 운동장이나 녹지가 있던 자리에 짓고 원래 건물을 철거해서 운동장으로 만드는 경우가 많다. 달리 말하면, 식물을 새로 심는 일에 앞서서 원래 있던 나무와 풀들을 옮기거나 제거하는 일을 도맡아야 한다는 뜻이다.(각주 3) 우리가 설계한 대학 캠퍼스 강의동 신축 공사를 사례로 보면, 건축물 한 동을 짓기 위해서 평균 5,000~6,000m2 면적의 숲과 그곳에서 살던 교목 약 700~800그루를 거의 전량 제거하며, 여기서 임목 폐기물은 땅 위 줄기, 가지와 지하의 뿌리를 모두 합쳐서 적어도 100톤 이상 나온다. 도시지역 초·중·고교들도 증·개축 사업을 하면 학교 한 곳마다 교목은 평균 100~200주, 임목 폐기물 60~70톤을 처리해야 한다. 대지 전체를 파헤치니까 가식할 장소가 마땅치 않고 옮겨 심자고 해도 공사비가 빠듯해서 이식 수목의 유지·관리는 뒷전이다. 이런 프로젝트들의 설계 초반에 존치와 이식, 제거 여부를 결정하기 위해서 현장 조사를 다니다 보면 흔치 않은 나무들을 만나기도 한다. 작년 춘천의 학교에서는 이름만 들으면 왠지 별똥별 같은 위성류渭城柳(Tamarix chinensis)를 난생처음 봤다. 그다지 말쑥하지는 않지만 키 10m, 흉고직경 45cm로 우람하게 서 있는 유별난 모습. 화석으로만 남았던 메타세쿼이아가 1943년 7월 말 중국의 깊은 산속에서 무려 35m 높이의 커다란 나무로 살아있음을 기적처럼 목격한 학자의 충격에 비하면 새 발의 피가 되겠으나, 잎이 나질 않아서 처음 본 2월에는 그냥 버들일까 했던 그 나무가 바로 위성류임을 구글 렌즈와 수목 도감으로 거듭 확인하고 올려다보는 마음이 묘했다. 2023년 7월 말의 작열하는 여름 볕을 잠시나마 잊을 정도로. 하지만 이 나무도 갑작스레 죽음을 맞을 것이다. 위성류는 불운하게도 운동장으로 바뀔 건물 중정 귀퉁이에 서 있고, 이식해서 살리기에는 덩치가 너무 큰 나무다.(각주 4) 애도하며 반성한다. 시인 이성복의 아포리즘을 모은 『네 고통은 나뭇잎 하나 푸르게 하지 못한다』의 제목 자체를 즐겨 인용하며, 그래도 내역 작업으로 고통스럽게 야근하면서 유기질 비료를 무수히 잡아줬기 때문에 “나는 예외다”라고 너스레를 떨어왔건만, 이제는 푸른 잎은커녕 나무를 통째로 없애는 일에 가담하는 처지니 말이다. 정작 식물을 사랑해야 할 사람은 놓치고 사는데 소설가 김연수가 일깨우는, 이를테면 이런 장면. “나무는 저마다 다른 나무인데 하나의 이름으로만 부르니까 이런 일이 일어나는 게 아닐까요? 오늘 우리는 은행나무니 향나무니 하는 이름 말고 그 나무만의 이름을 찾아주기 위해 여기 모였습니다.”(각주 5) 아파트 단지 철거를 앞두고 그곳에서 삼십여 년을 함께 살아온 나무들을 떠나보내야 하는 주민들이 스무 명 남짓 모여서 치르는 의식은 나무마다 각자 고유의 이름을 붙여서 함께 불러보는 것이다. 소설 속 주인공은 무지개다리를 건너간 반려견 ‘궁금이’를 추억하며, 어느 칠엽수에게 ‘궁금이와 함께 웃는 나무’라는 이름을 지어준다. 식물들이 개별화된 자신에 대해서 말할 수 없으니, 순전히 우리가 세심하게 지켜보고 알아듣고 불러주어야 하는 일이다. 나에게 별다른 기억이 없는 개체, 개별적이지 못한 개체에 대한 애도가 어떻게 가능하겠는가. 일하다 보면 식물을 아끼고 보호하는 사람이 여전히 많다. 이들이 식물과 나눈 교감을 찬찬히 새겨듣고, 커다란 나무는 공사 범위에 대해 설득하고 고쳐가면서 최대한 존치하며 작은 나무는 가식장을 잘 골라서 한 그루라도 더 옮기고 살려야 할 것이다. 학교 나무인 목백합 주변의 잘 가꾼 나무들까지 함께 동산으로 만들어 달라고 신신당부하던 교무부장, 원래 나무는 잘 몰랐는데 재산 대장 처리를 하느라 나무들을 이리저리 살펴보다가 정이 들어서 마냥 이렇게 보내서는 안 된다던 학교 행정실장, 캠퍼스 나무를 하나라도 건드리려면 반드시 허락을 받아야 한다고 소문이 난 교수. 모두 식물과 함께 한 추억들을 온전히 지켜내고자 설계자를 바르게 인도하는 든든한 후원자다. 나이가 들면서 야속하게도 자신에게 고통을 주는 일에만 유독 예민해진다. 그러니 “네 이웃을 네 몸처럼 사랑하라”는 명령은 날이 갈수록 점점 더 지키기 힘들 것이다. 어디까지가 이웃한 생명이며, 어떻게 이웃의 고통을 지겨워하지 않고 그 삶을 도울 수 있을지 고민한다. 조경설계는 식물의 삶과 죽음, 그리고 공감하는 사람의 마음까지 염두에 두어야 하며, 이렇게 아름다움의 영역을 확장하는 것이 조경 일의 속 깊은 본질이라고 믿는다. **각주 정리 1. 김인숙, “자작나무 숲”, 『이효석문학상 수상작품집 2023』, 북다, 2023, p.177. 2. 빌 헨더슨·앙드레 버나드, 최재봉 역, 『악평: 퇴짜 맞은 명저들』, 열린책들, 2011,pp.154~155. 참고로 브랜던 비언(1923~1964)은 아일랜드의 작가. 3. 전에는 주로 산림에 적용하는 ‘벌목’과 ‘뿌리뽑기’만 있었는데, 올해 『2024년 건설공사 표준품셈』은 유지·관리 부문에 ‘가로수 제거(1-2-20, 24년 신설)’를 추가했다. 도시에서도 가로수나 도시림 등 수목을 제거하는 공사가 많아졌다는 하나의 방증일 것이다. 4. 한국도로공사에서 이식한 약 2만 그루의 자생 수목을 대상으로 성공한 비율을 정리한 논문에 따르면, 근원직경이 커질수록 이식 성공률은 감소하며 예측 회귀 모형은 “Y=-0.811X+88.627(X=근원직경, Y=이식성공률)”이었다. 이 식에 따르면 흉고직경 45cm(근원직경 54cm)의 위성류를 이식해서 성공할 확률은 45%에 불과하며, 가식 후 다시 옮겨서 정식한다면 20%까지 생존율이 줄어들 것이다. 이상철 외 2인, “자생수목 이식 성공률에 관한 연구”, 『한국조경학회지』 43(2), 2015, pp.23~29. 5. 김연수, “나 혼자만 웃는 사람일 수는 없어서”, 『너무나 많은 여름이』, 레제, 2023, pp.25~26. 허대영은 서울대학교 조경학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에서 석사학위를 받았다.1999년 이후 사반세기에 걸쳐 설계사무소에서 일하고 있으며, 조경설계 힘(studio HYMH) 소장이다.
  • [나의 식물에게] 식물의 감(感)
    공간을 만드는 조경가에게 식물은 어떤 존재일까. 질문에 내포된 의미가 다양하게 해석될 수 있기 때문에, 즉답이 망설여진다. 이 질문은 ‘조경가라면 꼭 식물을 다루어야 하는가’와 같은 직업 정체성에 대한 원론적인 물음이 담길 수도 있고, ‘조경가는 식물을 어떻게 다루어야 하는가’와 같은 태도나 방법론에 대한 물음이 담길 수도 있다. 광범위한 주제를 펼칠 수 있겠지만, 이 글에서는 원론적 주제를 다루기보다 조경가로서 일상에서 식물을 어떻게 감각하는지를 소개하며 나의 미적 경험을 공유하고자 한다. 조경가에게 식물은 그 어느 것으로도 대체할 수 없는 특별한 공간 연출 소재다. 시시각각 변화하고 살아 있는 생명은 그 자체로 우리에게 특별한 감흥을 전달한다. 식물의 어떤 측면이 사람들에게 어떤 심상을 불러일으키는지, 또한 왜 그렇게 작용하는지에 대해 세심하게 살피고 섬세하게 감각하는 것은 조경가에게 매우 중요하다. 왜냐하면 조경가는 그런 과정을 통해 식물을 하나의 미적 대상으로서 탐구하며 인식하기 시작하고, 주관적인 해석과 분류의 과정을 통해 종국에는 자신이 다룰 수 있는 미적 재료로 주관화하기 때문이다. 식물이 전달하는 무수한 감각이 있겠지만 그중 네 가지 식물에서 느낀 양감, 색감, 질감, 형태감을 소개한다. 단편적인 미적 경험으로 주관적 관점에서 서술했음을 미리 밝힌다. 이를 통해 조경가가 식물을 바라보는 시선을 간접적으로 경험할 수 있을 것이다. *환경과조경430호(2024년 2월호)수록본 일부 최재혁은 서울대학교 조경학과 졸업, 동대학원에서 조경학으로 석사 학위를 받은 뒤, KnL 환경디자인 스튜디오에서 정원과 조경설계 실무를 익혔다. 2017년 오픈니스 스튜디오(Openness Studio)를 창업해 생태적 관점을 바탕으로 정원, 공공예술 분야에서 폭넓은 활동을 하고 있다.
  • [나의 식물에게] 아름다운 공간을 지키기 위한 고민
    사람의 활동과 관계하는 공간이 세상에 태어나기 위해서는 사람들이 필요로 하는 기능이 그 공간에 담겨야만 한다. 하지만 단지 태어났다고 계속 실재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그 공간이 오래도록 세상 속에서 지켜지고, 살아갈 수 있게 되는 이유는 그 공간이 사람들에게 사랑받는 곳이 되었기 때문이다. 사람들에게 사랑받는 공간을 이루는 데에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는 요소는 보이는 것부터 보이지 않는 것까지 꽤 다양하며 식물은 그러한 요소 중 하나다. 조경가로서 다루어야 하는 대상지를 만날 때 계획의 꽤 이른 단계부터 식물을 포함한 포괄적인 공간의 이미지를 구상하곤 한다. 어쩌면 식재에 관한 이야기는 다른 어떤 조경 요소보다도 다양한 관점과 의견이 있을 수 있는 이야기 꾸러미일지도 모른다. 돌아보면 나는 많은 프로젝트에서 ‘어떤 식물을 어떻게 식재할까’ 고민했었고 지금까지도 고민해 오고 있다. 하지만 다양한 프로젝트를 경험하면서 ‘어떻게 식재를 할까’가 아닌 ‘식재를 해야 할까 아니면 하지 말아야 할까’를 고민하는 순간도 많아졌다. 이 글 첫머리에서의 표현처럼 세상에 태어날 필요가 있는 공간이 사람들의 관심을 받고, 오래도록 사랑받게 하기 위해서는 때로는 최소한의 식재만이, 때로는 그것조차 없어야 할 필요가 있다. 최소의 식재 작은 가게들이 모여 있는 꽃 시장을 가면 이 집 저 집 비슷해 보인다. 가게마다 분명 서로 다른 식물이 있지만 방문객이 특별한 목적이나 관심이 없다면 대동소이해 보일 것이다. 만약 단일 수종을 통일성 있게 진열해 놓은 가게나, 빈 공간에 하나의 아름다운 식물만 진열한 가게가 있다면 분명 꽃시장 안에서 상대적으로 그 존재가 잘 드러날 것이다. 정원박람회에서도 비슷한 스케일인 다수의 작가정원이 인접해서 위치하게 되면, 작품 간의 차별성이 희미해질 수밖에 없다. 복잡한 박람회 속에서 작가가 전하려는 이야기나 경험의 순간을 잘 전달하기 위해서는 얼마 되지 않는 공간에 이용/가용 면적과 식재 면적을 모두 움켜잡고 있는 것보다 단순하고 과감한 방법으로 선택과 집중을 하는 것이 더 잘 부합할 수 있다. 아무리 작은 스케일의 정원이라지만 하나의 공간을 계획할 때 주변 환경과의 관계는 결정적인 고려 사항이며, 그 관계는 상대적이기 때문이다. 큰 스케일의 공간에서도 마찬가지다. 극단적으로 미로와 같이 수많은 경험의 연속을 모두 담을 수도 있겠지만, 반대의 극단으로 큰 스케일 전체를 하나의 경험으로 극대화할 수도 있다. 끝없이 펼쳐진 논밭 가운데 있는 큰 땅과 복잡한 도심 속이나 도시의 끝단 클라이맥스에 위치한 큰 땅에서 같은 방법은 서로 다르게 작동한다. 이러한 생각은 2017년부터 7년간 이끌어온 인스파이어 복합 카지노리조트(Inspire Entertainment Resort) 프로젝트에도 담겨 있다. 선택과 집중, 최소의 식재를 통해 사업비에 대한 한계를 극복하면서 대상지가 가진 스케일과 주변의 자연환경을 최대한 활용했다. 최소의 비용을 수반하는 최소의 식재 그리고 최대의 효과로 작동하는 공간을 만들 수 있다면 어느 발주처나 품고 싶은 아이가 될 것이다. *환경과조경430호(2024년 2월호)수록본 일부 박경탁은 사이트닷(SITEDOT)의 공동 대표로, 서울시립대학교와 하버드 GSD에서 조경을 공부했다. 민우건축사사무소, O3SCOPE, SWA 샌프란시스코 오피스 등에서 설계 실무를 했다. 2022년까지 동심원조경기술사사무소의 소장으로 팀을 이끌다 2023년 사이트닷에 합류했다. 현재 인스파이어 복합 카지노리조트, 하인즈 퀀텀 랜드마크 타워, 힐링 네이처랜드, 용산파크웨이 등의 조경설계를 진행하고 있다.
    • 박경탁
  • [나의 식물에게] 조경가, 식물을 얼마나 잘 알아야 할까
    조경이 식물만을 다루는 것이 아니고, 조경에 식물이 필수적인 것도 아니다. 조경가가 다루는 공간이 자연을 배제하는 경우가 거의 없다 보니 으레 자연의 한 요소로 식물을 다루게 되는 것인데, 조경가를 식물 전문가로 바라보는 시선이 종종 갑갑하다. 한편으로는, 식물을 다룬다는 점이 그래도 여러 공간 설계 분야 중 조경을 특별하게 만드는 게 사실이기에 많은 조경가가 식물을 잘 모른다는 점을 종종 불안해한다. 식물에 대한 식견이 부족한 사람으로서 나의 식물이라는 주제로 글을 쓰려니 식물 지식, 식재 설계에 대한 노하우를 감히 내놓을 재간은 없어 개인적으로 인상 깊었던 몇 가지 식물에 대한 기억을 소소하게 적어본다. 객관적이지 못하고 개인적 선호가 드러나는 점은 양해를 구한다. 찔레 찔레는 꽤 어렸을 때부터 정확하게 이름을 알고 있던 식물이다. 원래 자연에 관심이 많아 농업대에 가고 싶었다는 아버지는 관찰력이 좋아서 (과장된 기억이겠지만) 운전하고 지나가면서도 “저기 대벌레가 숨어 있다”고 알려주었다. 먹을 것이 넉넉하지 않던 시절에는 이런 것도 먹었다고 설명하며 찔레 껍질을 벗겨 그 속살을 먹어보기도 했다. 목으로 넘길 수는 있다고 하는 게 더 맞을 정도로 맛은 없다. 어쨌든, 먹어본 기억 탓에 이 식물이 꽃이 있든 없든 찔레인 것은 늘 알아봤다. 가시가 없는 민찔레도 있다. 탐조하는 사람들에게는 각자 ‘새 관찰에 대한 열정을 불꽃처럼 일으키는 종’을 뜻하는 스파크 버드(spark bird)가 있는데, 조경하는 나에게는 이 식물이 나의 ‘스파크 버드’다. 쇠뜨기 모두가 말리겠지만 써보고 싶은 식물이다. 뱀밥이라고 불리는 생식 줄기가 올라올 때는 조금 징그럽게 생겼는데, 녹색의 영양 줄기는 질감이 부드럽고 균일해서 들판에 쫙 펼쳐져 있을 때 햇빛을 받으면 꽤 예쁘다. 어릴 때 지나다니면서 보이면 쉽게 끊어지는 게 재미있어서 뚝뚝 끊고 다녔던 풀이다. 잘 퍼져서인지 대부분 잡초 취급을 받는다. 들판이라 쇠뜨기를 심으면 어떻겠냐고 제안해 본 적이 있는데 비웃음만 사고 심지 못했다. 이 식물을 검색해보면 어떻게 없애는지에 관한 내용만 나온다. 붉나무 이름처럼 단풍이 많이 붉다. 사실 붉나무를 한국에서 설계에 써본 적은 없지만, 뉴욕 하이라인에 있는 붉나무의 사촌 격인 대가지붉나무의 특성을 좋아해 대체목으로 생각해두고 있는 식물이다. 너무 붉어서 투명한 느낌이 날 정도로 짙은 단풍이 들기까지 노란색과 주황색을 거치기도 해서 가을 풍경을 다채롭게 해준다. 대가지붉나무만큼 색이 붉을지는 모르겠지만, 정돈되지 않은 듯 거친 야생 느낌의 식물이 필요할 때 붉나무를 활용해 볼 계획이다. 수양버들 탄천을 따라 자전거로 하천변만 달려 출근할 수 있는 운 좋은 사람이다. 출근길 구간에 수양버들 커튼이 드리우는 곳이 몇 군데 있다. 아침 해를 받아 투명해진 수양버들 커튼 뒤 탄천에 꽂혀 있는 한 배수구 끝 돌무더기에 앉은 민물가마우지를 찍는 게 일상이 됐다. 봄에 호흡기 질환을 일으킨다고 해서 수양버들을 점점 쓰기 꺼리는 추세라 물가 근처가 아니면 잘 안 보인다. 하지만 도심 한가운데 엉뚱하게 있는 수양버들을 발견하기도 한다. 크기가 좀 크다면 더운 지방의 후추나무 같은 느낌도 난다. 가로수나 정원수로 쓰이는 이 나무의 다양성이 적어서인지 이런 엉뚱함이 도시 경관을 다채롭게 하는 것 같다. *환경과조경430호(2024년 2월호)수록본 일부 이해인은 조경설계사무소 HLD 소장이다. 디자인을 통한 주장과 혁신이라는 철학 아래, 공간적 문제와 도전 과제에 대한 핵심적 개입 제공을 목표로 한다.
  • [나의 식물에게] 나의 디자인 중심
    내게 식물이란 석재, 목재, 철재, 콘크리트 등과 더불어 조경 디자이너로서 활용할 수 있는 수많은 소재 중 하나다. 다른 모든 소재가 질감, 무게감, 형상 등이 매우 다양한 옵션을 제공하듯이, 식물도 마찬가지로 땅에서부터 줄기가 하나 혹은 여러 개가 뻗어 올라가고 그 가지들을 따라 수많은 녹색의 잎이 붙어 있고, 그 형상, 크기, 질감, 색상 등이 다양한 소재일 뿐이다. 포장과 시설물로서의 식재 포장 설계, 시설물 설계는 소재에 의한 분류가 아니라 공간의 구성 요소로서의 분류 체계다. 하지만 식재 설계는 소재에 의해 분류된 설계 단계다. 실시설계 도면 작성을 위한 과정과 시공성을 고려한다면 식재 설계가 분류된 방식을 이해하겠지만, 디자인 단계에서 식재 설계를 별도의 단계로 분류하고 접근하는 방식이 유효한가라는 의문이 생긴다. 잔디는 석재, 콘크리트, 벽돌 등과 함께 바닥을 표현할 수 있는 포장재가 되기도 한다. 나무 9주가 만들어내는 공간과 퍼걸러의 캐노피가 만드는 공간 모두 위요된 쉼터를 형성하듯이 나무는 때때로 퍼걸러와 견줄 수 있다. 다만 포장 및 시설물의 기능과 표현하고자 하는 분위기에 따라 어느 소재를 선정하는 것이 설계에 적합한가를 고려하게 되며, 이에 따라 콘크리트 포장과 철재 캐노피를 만들기도 하고 혹은 잔디와 나무를 심기도 한다. 따라서 식물이 조경설계의 필수는 아니라고 본다. 대학원 시절 조경가 마사 슈워츠(Martha Schwartz)의 설계 수업을 수강했는데, 그 수업의 주제가 ‘도시의 인프라스트럭처 설계를 통한 도심 재생’이었고 전제 조건은 식물을 사용하지 않는 것이었다. 처음에는 “굳이?”라는 마음으로 시작했고, 수업을 들으며 식물을 배제한다는 것이 과감한 시도라 모종의 의구심을 가졌지만 그 수업은 조경가로서의 관점을 결정짓게 만들어준 인생 터닝 포인트와 같은 시간이었다. 글로는 어떻게 설명해야 당시의 내 감상을 정확하게 전달할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식물이 나의 손에서 없어지고 나니 주어진 대상지 본연의 가치와 사용자의 경험에 대해 더 많은 스터디를 하게 됐으며, 내게 조경이라는 분야가 예술이라는 분야와 더 가까워지게 되는 계기가 됐다. *환경과조경430호(2024년 2월호)수록본 일부 김태경은 고려대학교에서 생태공학을, 하버드에서 조경학을 전공했다. 미국과 한국의 실무 경험을 바탕으로 2017년부터 얼라이브어스를 운영하고 있다. 디테일과 식재에 대한 관심을 바탕으로 섬세하게 다듬어진 공간의 미감에 주목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