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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RODUCT] 공간의 흐름을 바꾸는 전동형 시스템 퍼걸러, ARES
탁 트인 하늘을 감상할 수 있는 자동화 루프 시스템
퍼걸러의 기능은 다양하다. 때론 우리에게 그늘을 만들어 주고, 비를 피할 수 있으며, 잠시나마 전망을 즐기며 쉴 수 있는 휴게 공간이기도 하다. 이러한 퍼걸러에서 전망뿐만 아니라 탁 트인 하늘을 바라볼 수 있다면 어떨까. 휴게 시설물 브랜드 ‘엠페오MFEO’는 사람과 공간이 서로 관계를 맺으며 함께하는 삶에 주목하며 하늘을 감상할 수 있는 자동화 루프 시스템 등을 적용해 열린 공간을 디자인한다.
자동화 루프 시스템이 적용된 전동형 시스템 퍼걸러 ‘ARES’는 공간에 새로운 개방감을 더한다. 리모컨과 앱, 벽면 스위치 등으로 통제가 가능한 퍼걸러 루프는 최대 80%까지 개폐가 가능하다. 덕분에 공간 안에서 방해 요소 없이 언제든 탁 트인 하늘을 감상할 수 있다. 견고하고 간결한 디자인도 특징이다. 외부로 보이는 나사와 고정 장치가 없는 깔끔한 디자인을 선보인다. 우수 배수와 바람 저항에 강한 구조와 아웃도어 소재를 사용하여 악천후 등 다양한 기후 환경에 대처할 수 있다. 루프의 루버에서 기둥으로 빗물이 쉽게 배수되도록 했으며, 꼼꼼하고 세밀한 마감으로 하부 공간에 빗물이 새지 않게 했다.
전동형 시스템 퍼걸러는 야경과 조화를 이루는 퍼걸러로 주목받고 있으며, 아파트 단지 특화 디자인으로 활용되며 휴게 시설물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제시하고 있다. 앞으로 ARES의 자동화 루프 시스템은 단절된 휴게 시설물이 가진 폐쇄성을 감소시키고, 나아가 열린 공간의 흐름을 만들어 내는 마중물이 될 것이다.
TEL. 02-2659-1772 WEB. www.mfe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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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수변 랜드마크와 복합문화공간으로 탄생할 제2세종문화회관
여의도공원 제2세종문화회관 건립 기획 디자인 국제공모 당선작
서울시는 8월 21일, ‘여의도공원 (가칭)제2세종문화회관 건립 기획 디자인 국제공모’ 당선작을 발표했다. 제2세종문화회관은 한강 수변 랜드마크이자 대중문화 콘텐츠의 중심인 복합문화공간으로 탄생할 예정이다. 55개 작품이 접수됐으며 심사를 통해 다섯 작품을 당선작으로 선정했다. 당선작은 범건축종합건축사사무소+밀라케 아티니시(Melike Altinisk)+얼라이브어스의 ‘더 스파크(The Spark)’, 종합건축사사무소 디자인캠프 문박 디엠피+바이런의 ‘스카이 포이어(Sky Foyer)’, 희림종합건축사사무소의 ‘제2세종퍼포밍아트센터(The 2nd Sejong Performing Art Center)’, 자하 하디드 아키텍츠(Zaha Hadid Architects)+ULD조경설계사무소의 ‘에코우즈 오브 서울(Echoes of Seoul)’, DÜRIG AG+신평엔지니어링종합건축사사무소의 ‘더 센터 포 퍼포밍 아트(The Center for Performing Arts)’다.
심사는 대공연장, 중극장, 연습실, 전시장, 교육 시설을 갖춘 문화 시설, 시민과 서울항 이용객을 위한 다양한 집객 시설, 이용자 편의를 위한 지하 주차장 등의 충족 여부, 서울을 대표하는 랜드마크로 건립할 수 있는지에 대한 디자인 실현성을 중점으로 진행됐다. 심사위원회는 당선작들이 대체로 수변과 공원을 연결하는 동선을 자연스럽게 풀어냈고, 공연 구조와 기능을 통합적으로 해석했으며, 여의도공원의 상징성을 갖춘 설계안을 제시한 점을 높게 평가했다.
아울러 서울시는 9월 8일, 서울시청에서 당선작을 시민들에게 선보이기 위해 ‘제2세종문화회관 디자인공모 대시민 포럼’을 개최했다. 당선작 설계자가 포럼을 통해 직접 디자인 계획안을 발표하고 해당 설계에 대한 시민들의 의견을 청취하는 시간을 가졌다. 시는 선정된 다섯 팀을 대상으로 2025년에 지명 설계 공모를 실시해 설계용역을 수행할 대상자를 선정할 계획이다. 서울의 새로운 랜드마크로 자리 잡을 제2세종문화회관의 모습을 미리 엿보고자 당선작 다섯 작품을 소개한다.
범건축종합건축사사무소+밀라케 아티니시+얼라이브어스, ‘더 스파크’
수변과 공원을 타원형의 고리 모양으로 설계해 주변 환경과 조화를 이루는 친환경 단지로 조성했다. 방문객들이 여러 진입 지점에서 다양한 문화 경관에 접근할 수 있도록 설계했다. 외부와의 통로와 공중 광장을 통해 서로 떨어진 건축물을 여러 방향에서 접근할 수 있다. 한강과 여의도공원을 타원형 다리로 연결한 새로운 형태의 공공 광장으로 역할할 것이다.
중심성과 확산성을 포함하는 동심원 배열: 한강 북동쪽에 위치한 서울항에 도착한 방문객들은 경관 조형물을 자연스럽게 따라가며 더 스파크에 다다르게 된다. IFC몰과 더현대 서울을 오고 갈 수 있는 지하 연결 보행로를 계획해 더 스파크로 향하는 보행 접근성을 개선했다.
시민과 소통하는 도시 랜드마크: 공연, 전시, 박물관, 축제, 콘서트 등 다양한 문화 체험을 제공하는 활기찬 허브로 구상했다. 새로운 세종문화회관은 서울을 상징할 뿐 아니라 공공 공간에 대한 주인 의식을 부여한다. 통로, 공중 광장, 전망 보행교에 역동적이면서 눈에 띄는 요소를 추가했고, 복합문화시설의 중심 랜드마크로서 더 스파크의 역할을 부각시켰다.
자연과 적극적으로 소통하는 친환경 문화 공간: 에너지 효율, 물 절약, 친환경 자재 사용 등을 극대화하는 동시에 방문객의 쾌적함과 웰빙을 고려한 지속가능성의 개념을 적용했다. 지속가능성을 위해 가장 고려한 점은 건물과 환경 간의 관계다. 건물의 매스, 위치, 방향에 관한 결정은 일사량 제어, 주광 및 자연 환기에 중점을 두고 이루어졌다. 건축물 표면에 미치는 태양광과 바람을 활용해 에너지 효율을 극대화하고, 인공 조명 및 기계 환기 시스템의 의존도를 최소화했다. 기후
조건을 고려해 재료와 식재를 선택하고, 나무 군락을 활용해 그늘을 만들어 미기후 효과를 도입했다. 이는 미적 가치를 향상시킬 뿐 아니라 도시 열섬 효과를 줄이고 생물 다양성의 증진에도 기여한다.
*환경과조경426호(2023년 10월호)수록본 일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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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현동의 기억을 되찾는 실험
열린송현녹지광장, 서울도시건축비엔날레 현장프로젝트
9월 1일, 제4회 서울도시건축비엔날레가 ‘땅의 건축, 땅의 도시’를 주제로 개최됐다. 이번 비엔날레는 서울도시건축관, 서울시청 시민청, 그리고 열린송현녹지광장(이하 송현광장)에서 열린다. 경복궁 인근에 있는 송현광장은 지난 110년간 도시의 외딴섬처럼 닫혀 있던 공간이다. 일제식민지기에는 조선식산은행 사택, 광복 후에는 주한 미국 대사관 직원 숙소로 사용되다가 2022년 10월이 되어서야 꽃과 식물이 심긴 너른 녹지로 개방되었다.
현장프로젝트는 도시적, 역사적, 지리적으로 함의하는 바가 다층적으로 쌓인 송현광장의 공간적 가능성을 실험한다. 도시적 맥락에서 시민과의 직접적인 상호작용을 꾀할 뿐 아니라 야외에서만 벌일 수 있는 특수한 방식의 전시를 시도하고, 날씨 변화에 따른 다각적 경험을 의도했다. 현장프로젝트를 기획한 김사라 큐레이터는 “다양한 파빌리온과 연계 행사를 통해 기억이 없는 땅, 송현동의 장소성을 되찾는 뜻 깊은 자리가 되기를 기대한다”고 말했다.
주축이 되는 작품은 주제전의 일부인 ‘하늘 소’와 ‘땅 소’다. 하늘 소는 주변 산세와 송현동 부지의 관계, 한양의 배치가 어떻게 만들어졌는지를 이해할 수 있도록 제안된 구조물이다. 계단에 오르면 북한산, 북악산, 경복궁의 배치 관계를 엿볼 수 있으며 익숙한 도심을 색다른 시선으로 바라볼 수 있다. 그와 반대로 땅 소는 몸을 낮추어 낮은 곳에서 송현동 부지와 그 주변의 땅의 기운을 느끼기를 유도한다. 주변의 산세를 본떠 작게 만든 것 같은 굴곡진 언덕은 하늘 소와는 다른 높이의 감각을 선사하고, 중앙의 못에는 주변의 풍경이 담긴다.
곳곳에 설치된 다양한 유형의 파빌리온은 2년간 시민에게 개방되는 송현광장이 한시적 장소로써 어떠한 역할을 할 수 있는지 질문을 던진다. 일반적으로 파빌리온이나 폴리가 이벤트 장소나 건축적·예술적 설치물 역할을 한다면, 송현광장의 파빌리온은 도시와 송현동이 관계하는 여러 방식을 제안하며 동선을 안내하고, 독립적인 공간으로서 체험적 노드로 기능한다.
*환경과조경426호(2023년 10월호)수록본 일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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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마이 노을
한강노을즐김터 설계공모 당선작과 수상작
지난 9월 4일, 서울시는 한강노을즐김터 설계공모 당선작으로 안마당더랩(이범수, 오정은, 강현이)의 ‘서울 마이노을(Seoul My Noeul)’을 선정했다. 이번 공모는 서울시가 추진하는 ‘그레이트 한강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한강변 노을 특화 공간 조성을 위해 진행됐다. 아름답고 다채로운 한강 노을을 활용해 도시와 한강이 어우러지는 국제적인 감성 조망 명소를 조성하고, 일상 오픈스페이스로 기능하는 동시에 주변의 한강변 보행 네트워크를 활성화시키는 것이 설계 목표였다. 나아가 감성적 스토리텔링을 통해 시민의 공감대를 형성할 수 있어야 했다.
지난해 진행한 ‘한강 노을명소 찾기 시민 사진공모전’통해 발굴한 6개 권역(망원·난지, 강서, 한강대교 남북단, 반포·잠원, 서울숲·뚝섬, 잠실·광나루)의 노을 명소 20개소를 대상지로 선정했다. 해당 대상지는 시민이 직접 뽑은 노을 명소를 사진 촬영 수, 접근성, 경험 요소(랜드마크·전망), 주변과의 연계성 등 다각도로 분석해 선정됐다. 7월 5일부터 8월 22일까지 진행된 공모의 45개 출품작 중 심사를 거쳐 4개의 수상작을 선정했다. 심사위원회는 당선작이 한강노을즐김터의 장소성을 구현하고, 노을만이 아니라 시간과 계절에 따라 변화하는 한강의 자연성을 담아낸 점을 높이 평가했다. 한강노을즐김터는 기본 및 실시설계를 거쳐 2024년에는 한강의 아름다운 노을을 감성과 매력을 담은 공간으로 탈바꿈하게 된다.
당선작, 서울 마이 노을
안마당더랩(이범수, 오정은, 강현이)
서울의 한가운데에서 마주하는 노을과 달. 이들의 만남은 은은한 감성으로 어우러지는 광장을 탄생시킨다. 기존의 뚝섬수변무대를 활용한 서울 마이 노을은 노을을 중심으로 한 시민들의 다양한 활동을 담을 수 있는 특별한 공간이다. 노을과 달을 형상화하여 태양의 움직임에 따라 노을이 서서히 지고 달이 떠오르는 과정을 한순간의 예술로 표현하며, 그 시간을 중심으로 시민들이 펼치는 활동들이 흐르는 무대가 된다. 음악, 미술, 연극, 걷기, 쉬기 등 다양한 문화 활동이 이곳에서 만나 탄생하고, 도시의 소음에서 벗어나 조용한 감상의 시간을 누릴 수 있는 휴식처로 자리한다. 달의 광장은 조수간만의 변화에 따라 다양한 모습을 드러내는 특별한 경관을 만들어 낸다. 물이 차오르면 빛은 원형 광장에 반사돼 물 위를 비추는 노을의 아름다움을 더욱 극대화한다.
물의 움직임이 노을의 색상을 아름답게 반영하고, 시민들은 물과 노을이 어우러지는 환상적인 순간을 함께 누릴 수 있다. 이곳은 단순한 광장이 아닌 시간별로 변화하는 풍경을 통해 시민들에게 자연의 아름다움을 선사하는 장소가 된다. 저녁이 다가오면 시민들은 이곳으로 모여, 서로의 일상의 아름다움과 감동을 나누며 하루를 마무리하는 순간을 함께한다. 시민들에게 항상 영감과 위로를 선사하는 도시의 마음과 노을이 만나는 특별한 공간으로 꾸준히 빛나며 서울의 아름다움을 노래한다.
주변 환경과 조화롭게 어우러진 디자인을 통해 공원을 찾는 시민들에게 친숙한 느낌을 전달한다. 공간을 감싸고 있는 자연 호안의 녹지는 공간을 즐기는 시민들에게 안정감을 준다. 노을전망데크까지 이어지는 무장애 램프를 통해 편의성과 접근성을 높여 누구나 이곳의 노을을 감상할 수 있게 했다. 수면에 비친 노을의 아름다운 산란을 형상화한 스탠드는 이곳을 찾는 시민들의 다양한 활동을 포착하고, 노을의 빛을 담아내어 특별한 경관을 만들어 낸다. 기존 수변 산책로의 선형을 곡선으로 변경해 자전거의 속도를 줄이고 노을을 즐기는 시민들의 안전을 고려하는 동시에 잠시 페달을 멈추고 노을 감상하며 휴식을 취할 수 있게 한다.
*환경과조경426호(2023년 10월호)수록본 일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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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웃거리는 편집자] 대구에 가면
한두 시간 수다를 나누면 종종 듣는 질문이 있다. “서울 사람 아니죠?” 그렇다, 서울 사람이 아니다. 고향은 대구광역시로 경상도 사람이다. 일곱 살 때 가족과 함께 상경했고, 초‧중‧고등학교와 대학교를 서울에서 다녔다. 대구에서 산 세월보다 서울에서 보낸 시간이 더 길지만, 서울말을 쓰기 어렵다. 특히 부모님 두 분 다 경상도가 고향이고 그곳에서 나고 자랐기에 경상도 특유의 억양이 남아 있어 그 영향을 피할 수 없었다. 나름 서울말을 쓰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서울 토박이들과 대화를 하면 단번에 고향이 서울이 아니라는 걸 들키게 된다.
대구 사람인 걸 들키고 나면, “대구는 뭐가 유명해요”라는 질문을 받는다. 나름 답해 보지만 더 자세한 부분을 물어보면 더 이상 말을 이어나가기 어렵다. 강산이 변한다는 10년을 채우지 못하고 서울로 올라왔기에 대구는 오래 전 묻어둔 추억 상자 같은 지역이다. 내가 기억하고 있는 대구는 아파트 단지로 둘러싸인 대도시라기보단 다양한 모양의 주택과 구불구불한 골목으로 만들어진 정겨운 도시다.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나는 곳은 지금은 이(E)월드, 83타워로 명칭이 바뀐 우방랜드, 우방타워다. 우방타워는 나에겐 세상에서 가장 긴 타워였고, 우방랜드는 매일 가고 싶은 모험의 놀이공원이었다. 이번 호 특집 준비는 익숙하면서도 새로웠다. 알고 있던 곳의 숨겨진 면을 발견하기도 하고, 아예 몰랐던 곳을 새로 알게 되기도 했다.
특집을 준비하면서, 가보지 않은, 처음 알게 된 공간을 가보고 싶다는 생각을 가지게 됐다. 마침 대구에 갈 일이 생겨 이 생각을 실행해 볼 수 있었다(사실 이 지면에 쓸 만한 소재를 찾기 위함도 있다). 어디로 갈지 고민하던 중 “대구에 와서 할 만한 유일한 소일거리는 구도심의 골목길을 걸어보는 것”이라는 최이규 교수의 글(26쪽)을 보고 골목길로 행선지를 정했다. 갈 만한 골목길을 조사하던 중 발견한 근대골목. 대구 중구청에서 진행하는 근대골목 투어의 코스를 참고해 동선을 계획했다. 나의 코스는 김광석 다시 그리기 길-계산성당-3.1만세운동길. 자동차가 아닌 두 발로 직접 걸으며 느꼈던 근대골목의 풍경을 짧게 적어본다.
김광석 다시 그리기 길(67쪽)에는 고 김광석의 기타 치는 모습의 동상으로 시작을 알린다. 곳곳에설치된 스피커에서는 김광석 노래가 흘러나오고 김광석 일생을 담은 벽화를 따라 걷는다. 그곳에서 다시 들은 노래는 마음을 싱숭생숭하게 만들었다. 벤치에 한동안 앉아 노래를 들으며 예전에는 공감하지 못했던 가사에 귀를 기울였다. 골목에는 뽑기 게임기가 줄지어 있었다. 지갑에 있던 꾸겨진 지폐를 동전으로 바꾸고 오백원을 게임기에 넣어 뭐가 나올지 기대하며 손잡이를 돌렸다. 나온 건 맥주 모양의 사탕, 사탕을 입에 물고 계산성당으로 향하는 버스에 몸을 실었다. 계산성당은 청라언덕에 있어 짧은 등산(?)이 필요하다. 원래 목조 십자형 건물이었는데 화재로 인해 불에 타 고딕 양식을 활용해 재건축했으며 대구에서 가장 오래된 성당이다. 유럽에서 볼 법한 고딕 양식의 성당이라 그런지 그 위용은 거대했다. 사진을 잘 찍으면 외국에 온 듯 한 연출이 가능하다. 신성한 분위기를 느끼며 내려오는 길에 만난 3.1만세운동길. 이 길은 드라마 ‘김비서가 왜 그럴까’(2018) 남녀 주인공이 데이트하던 장소로도 유명하다. 90개의 계단 옆으로 태극기가 휘날리고 벽에는 3.1만세운동 당시 사진이 걸려있다. 바람에 펄럭이는 태극기와 사진을 보며 치열했던 그날의 함성을 간접적으로 경험할 수 있었다.
짧은 일정으로 많은 곳을 둘러보진 못했지만, 잠깐이나마 본 근대골목은 대구의 새로운 면을 발견하기엔 충분했다. 이 글을 쓰면서 ‘○○에 가면’이란 노래가 떠올랐다. 누군가 ○○에 한 지역을 말하면 거기에 있는 볼거리, 먹거리 등으로 이어 달리기하듯 순서대로 노래를 부른다. 대구에 가면이라고 선창하면 얼마나 이어 부를 수 있지 생각해봤을 때, 많은 단어가 떠오르지 않았다. 너무 어렸을 때의 기억이라서, 대구에 살던 기간이 길지 않아서라는 핑계를 삼으며 대구를 멀리 했던 것 같다. 그래서 더 다양한 곳을 조사하고 지면에 실으려고 노력했다. 이번 특집의 목표 중 하나는 대구를 한 번쯤 가보고 싶어지게 만들고 여행의 큰 틀을 잡을 수 있도록 돕는 것이다. 이 지면도 그 길잡이가 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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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가 만난 문장들] 빈틈이 있어서 그 부분을 제 상상으로 채워 넣을 수도 있어요
건물이 모두 사라진 도시는 어떤 모양일까. 디스토피아 영화 속 다 허물어져가는 건물조차 사라진 도시의 모습이 궁금해질 때가 있다. 동네 풍경 하면 떠오르는 건 주로 건물들이다. 통유리를 두른 오피스텔, 붉은 벽돌 다세대주택, 시멘트 담을 세운 단독주택, 전단지가 붙은 전봇대와 줄지어 선 불법 주차 차량, 길고양이를 위한 밥그릇들.
나의 동네는 “이름은 청량했지만, 시원하게 트인 하늘을 볼 수 없었던 곳”(14쪽)과 아주 가깝고 환경이 비슷하다. 그래서 나도 조각난 하늘을 보고 산다. 슈퍼문을 보기 위해 옥상에 오르면 아파트에 달이 가려지지 않은 곳을 찾아 이리저리 몸을 기울여야 한다. 이따금 내가 서 있는 곳이 어디인지 생각하면 아득해진다. 동네는 어떻게 생겼나. 오르막과 내리막이 어디에 붙어 있는지는 알지만 그것이 이어져 어떤 선을 그리는지는 좀처럼 상상이 되지 않는다.
그런데 열린송현녹지광장(이하 송현광장)에서는 어렴풋하게 발을 딛고 선 도시의 모양을 짐작할 수 있다. 오랜 시간 빈 터를 감추고 있던 4m 높이의 벽을 1.2m로 낮추고 잔디와 야생화로 단장한 송현광장은 주변을 360도로 돌아볼 수 있는 기회를 준다. 건물 사이에 있을 때와는 사뭇 다른 느낌으로 도시를 감각하게 된다. 축구장의 약 5배에 달하는 넓은 녹지는 서울의 배경이라는 산들이 도시와 어느 정도 멀리 떨어져 있는지, 4차선 도로가 얼마큼 넓은지, 다른 지역으로 이어지는 골목길이 얼마나 고불고불한지 새삼 느끼게 한다.
최근 이곳은 서울도시건축비엔날레의 현장프로젝트 장소로 사용되는 중이다. 취재를 하러 가며, 휴관일이 언제인지 문은 언제 닫는지 확인하지 않은 게 아주 오랜만이었다. 물론 ‘하늘 소’에 오르거나 특정 파빌리온에 들어갈 수 있는 시간은 정해져 있지만, 그 외 대부분의 전시 구조물은 언제든 볼 수 있다. ‘하늘 소’에 오르면 주변 산세와 송현동의 전경을 넓게 볼 수 있지만, 그보다는 ‘땅 소’에 더 마음이 갔다. 도시에서 흔하게 볼 수 없는 언덕의 굴곡이 흥미롭게 느껴지고, 아주 높지도 않고 낮지도 않은 그 높이가 좋았다. 언덕 위에 뉘여 놓은 나무줄기 모양의 벤치에 앉으면, 어릴 적 초등학교 운동장에 있던 정글짐에 오른 기분이 든다. 마음먹으면 쉽게 올라 적당한 넓이의 땅을 내려다볼 수 있는 다정한 높이. 벤치는 도심 풍경이 담기도록 파놓은 작은 연못을 향해 놓여있지만 자꾸 뒤를 돌아보게 된다. 연못 앞에는 차도와 높다란 빌딩이 있지만, 뒤쪽으로는 넉넉한 녹지가 있고 옹기종기 자란 건물 사이로 국립현대미술관과 서울공예박물관의 끄트머리를 슬쩍 엿볼 수 있는 까닭이다.
송현광장을 떠나며 한 번 더 이곳에 오고 싶다고 느끼게 한 또 다른 매력은 말끔하지 않은 녹지다. 정리되지 않은 듯이 마구잡이로 자란 풀이 허리 높이까지 올라왔다가 바닥으로 축 가라앉기도 한다. 사이사이의 꽃은 심긴 것이 아니라 정말 그곳에서 피어난 것처럼 자연스럽다. 과장을 보태, 꼭 인간이 만든 인공 구조물이 다 스러지고 몇 천 년이 지난 후의 땅을 보는 것 같다. 녹지 사이의 길도 돌이나 데크로 포장하는 대신 야자매트로 덮는 정도로 정돈했다. 비가 오면 물이 고이고 가끔 몸이 휘청거리기도 하지만 걷기에 나쁘지 않다. 벤치도 그냥 툭툭 놓여 있다. 도심 한복판에서 이런 야생의 녹지를 맛볼 수 있는 곳이 얼마나 될까.
이 모든 것들은 공원이 아닌 광장이라는 단어와 잘 어울린다. 광장이 광장다울 수 있던 이유는 서울시가 임시 개방인 만큼 인위적 시설을 설치하기보다 최소한의 시설물만 배치한 덕분이다. 2024년 말 이후에는 ‘송현문화공원’으로 다시 태어나기 위해 땅이 다시 닫힌다. 같은 녹지이지만 공원의 단정하게 정리된 화단, 수목, 깔끔하게 포장된 길은 지금과는 조금 다른 분위기를 풍기게 될 테다. “글은 좀 더 날 것의 느낌이 나고, 빈틈이 있어서 그 부분을 제 상상으로 채워 넣을 수도 있어요.”(100쪽) 박영석의 말이 떠올라 아쉬워졌다. 공원과 광장이 다르다는 걸 다시 느꼈다. 이 틈새를 가능성의 땅으로 좀 더 오래 두어도 좋을 것 같다. 가능하다면 이번 서울도시건축비엔날레에서 ‘누구나’에 포함되지 못한, 계단과 가파른 언덕을 오를 수 없는 이들도 모두 편히 오갈 수 있는 공간으로. 엘리베이터 같은 간단하고 낭만 없는 해결책보다는, 더 완만하고 비스듬한 경사를 놓는 따뜻한 형태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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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과 도시를 숨 쉬게 하는 친환경 점토벽돌
천연 흙으로 만든 고강도 벽돌
열대화 시대를 앞둔 지금, 건강하고 쾌적한 도시 환경에 대한 관심이 커지면서 지속가능한 보행 환경 조성을 위한 노력이 이어지고 있다. 벽돌 전문 기업 ‘삼한씨원’은 완성도 높은 디자인과 자연 친화적인 제품을 통해서 건강한 도시 환경을 구축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특히 점토벽돌은 산업 폐기물 대신 황토, 점토 등 천연 흙으로 만든 친환경 벽돌이다. K마크 인증을 받은 제품으로 7대 유해 물질이 검출되지 않을 만큼 친환경적이다.
점토벽돌은 디자인 요소로 활용할 수 있다. 이 벽돌은 천연 원료 배합만으로 150여 종의 자연스러운 색상을 표현할 수 있다. 다채로운 색상의 벽돌을 공간에 활용하면 경쾌한 분위기를 연출할 수 있다. 대규모 공간에는 벽돌 자체에 무늬가 새겨진 SH6005 토미버디칼플러스보도를 활용하면 단조로운 디자인에서 벗어난 연출이 가능하다.
점토벽돌의 특징 중 하나는 높은 내구성이다. 삼한씨원의 점토벽돌은 업계 단체 표준보다 높은 압축 강도를 기준으로 제작된 고강도 벽돌이다. 겨울철 동결 융해 저항성이 뛰어나며, 여러 충격에도 잘 깨지지 않아 100년 이상 장기적으로 사용할 수 있는 것이 장점이다. 열을 받아도 표면 온도가 높게 오르지 않아 도시 열섬 현상을 완화하는 동시에 쾌적한 보행 환경을 조성한다.
TEL. 1599-9989 WEB. www.ebric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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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넥티드 필드
광교 중심광장 국제설계공모 당선작과 수상작
지난 8월 1일, 경기주택도시공사GH는 광교 중심광장 국제설계공모 당선작으로 시아플랜건축사사무소 컨소시엄(시아플랜건축사사무소+청운이엔씨+HEA)의 ‘커넥티드 필드(Connected Field)’를 선정했다고 밝혔다.
수원시 영통구 이의동 광교택지개발지구 공공공지에 조성되는 광교 중심광장은 광장, 지하부 문화 시설(테마형 체험 시설, 전시장), 실내정원으로 구성된다. 광장을 통해 새로 마련되는 보행 브리지(공중 보행로)는 도청사가 입지한 북쪽 경기융합타운과 연결되고, 지하보행로·지하차도는 남쪽 수원컨벤션센터와 이어진다. 광장, 보행 브리지, 지하보차도 건립을 통해 지역 규모의 보행축을 완성하고, 지역 주민과 관광객을 위한 복합 문화 공간을 조성하는 것이 목표다.
8개 컨소시엄이 공모안을 제출했고, 7월 25일부터 이틀간 2단계로 심사를 진행했다. 심사위원은 당선작이 캐노피 구조로 독특한 장소성을 구현했고, 수직·수평적 동선 구성이 우수하다고 평가했다. 심사위원장인 니얼 커크우드(Niall Kirkwood, 하버드대학교 교수)는 “입체적 가변형 캐노피로 도시 맥락 속 유연한 대처가 돋보이는 작품”이라고 말했다.
광교 중심광장은 기본 및 실시설계를 거쳐 2025년 착공해, 지하 2층, 지상 1층, 연면적 12,655m2 규모의 입체적 장소로 조성될 예정이다. 그 모습을 엿볼 수 있도록 당선작과 수상작을 간략히 소개한다.
당선작, 커넥티드 필드
시아플랜건축사사무소+청운이엔씨+HEA
커넥티드 필드는 도시의 핵심 행정 시설과 주변 상업지역을 보다 강력하게 연결하고 활성화하기 위한 촉매제로서 인근 호수공원과 경기정원의 자연 흐름을 적극적으로 수용한다. 이로써 탄생한 풍경은 랜드마크가 될 뿐 아니라 그 자체로 도시 보행 네트워크로 기능하고, 도시가 공유하는 모든 종류의 활동을 펼칠 수 있는 장이 된다.
도시의 흐름을 잇는 입체적 필드: 도시의 평면적 흐름을 수직적으로 변화시켜 입체적인 도시 지형의 흐름을 만든다. 입체적 필드는 문화·근생시설과 더불어 다양한 이벤트가 가능한 그라운드 레벨의 필드, 공중의 또 다른 캐노피 필드로 구성된다. 상부 캐노피 필드는 단순 회랑이 아닌, 보행로와 생태적 자연 공간으로 구성된 사람들의 커뮤니티를 지원하는 공간이다. 곳곳에 위치한 포켓 공간은 휴식 및 소규모 모임, 이벤트를 열 수 있는 다양한 형태와 규모를 갖추고 있다. 포켓 공간은 캐노피 루버 시스템과 더불어 지상 광장과 교류하는 입체적 필드를 경험하게 한다.
도시 일상과의 조화: 커넥티드 필드는 광교 시민의 다양한 일상 풍경을 담아내는 곳이다. 경기정원에서 이어지는 공중 보행로는 입체 공중 정원으로서 도시적 풍경의 가드닝 공간 속에서 쉴 수 있는 쉼터를 제공한다. 보행로에서 하부 오픈스페이스에서 일어나는 이벤트를 관람할 수도 있다. 그라운드 레벨에서는 경기정원과연계된 수공간이 사람들을 맞이하며 끌어들인다. 아케이드의 상가 이용객들은 캐노피 하부의 그늘에 모이고 거닐며 휴식을 즐긴다. 지하보차도를 통해 컨벤션센터를 지나 호수광장을 향해 걷고 뛰며 도심 속 산책을 즐길 수도 있다. 사계절 내내 식물이 가득한 실내정원, 지하에 위치한 운동 시설과 전시 시설을 자연스럽게 마주하며 더욱 풍성한 일상을 만들어갈 수 있다.
*환경과조경425호(2023년 9월호)수록본 일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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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웃거리는 편집자] 커피와 도서관
소소한 일상이 한 편의 영화가 된다면 어떨까. 짐자무쉬의 영화 ‘커피와 담배’(2006)는 커피와 담배를 즐기는 이들의 일상을 11개의 단편으로 담아낸다. 사촌 간의 미묘한 질투와 손님에게 오지랖을 부리는 종업원, 속물근성을 드러내는 배우 등 다양한 인간 군상이 커피 앞에서 담배를 피우며 이야기를 들려준다. 혹자는 커피와 담배가 어지럽게 놓인 지저분한 테이블이 자꾸 나와서 금연 욕구를 불러일으킨다고 하고, 또 누군가는 지루해서 다 보기가 힘들다고 하고, 어느 사람은 자꾸만 보면 담배가 당긴다고 하더라. 비흡연자라 담배 피우고 싶은 마음은 들지 않지만, 커피와 담배를 두고 다양한 인간 군상의 꾸밈 없는 일상을 보는 소소한 재미가 들었다. 농담과 수다, 오지랖과 질투 등이 교묘하게 뒤섞인 관찰 예능이라고 할까.
내가 만약 영화감독이 된다면 이러한 소소한 일상을 다룬 영화를 한 편 만들고 싶다. 제목은 ‘커피와 도서관’. 짐 자무쉬에 대한 오마주라고 하기엔 다소 민망하지만, 대개 영화감독이나 소설가들의 데뷔작이 자전적 이야기에서 출발하지 않나. 그래서 내 첫 영화도 자전적 이야기에서 시작하고자 한다. 개봉 가능성은 아주 희박하겠지만 영화의 얼개가 되어줄 나의 이야기를 전한다.
커피와 도서관에 얽힌 첫 에피소드는 사실 상습적 연체와 관련이 있다. 학창 시절, 공부하러 도서관은 가는데 막상 가면 하기는 싫어서 교과서 대신 도서관 책을 잔뜩 빌려놓고 맨날 반납일을 까먹거나 덜 읽어서 늦게 반납하기 일쑤였다. 그래서 늘 연체료를 내고 남은 동전들로 주머니가 가득했고, 짤랑거리는 동전을 처리하려고 도서관 자판기 밀크커피를 연신 뽑아 먹었다. 미어캣처럼 도서관을 괜히 어슬렁거리는 동지(?)가 눈에 보이면 괜히 한 턱 쏘는 척하면서 자판기 앞으로 데려가서 같이 밀크커피를 마셨다. 한약방 벤치에 앉아서 근황 나누는 할머니들처럼 소소한 농담을 곁들이면서.
그때 공부를 좀 할 걸 그랬나 하며 후회하던 시절도 있었다. 백수라 쓰고 취준생이라고 읽던 그 시절, 집에서 빈둥거리기 싫어서 동네 근처의 정독도서관에 매일 같이 출석 도장을 찍었다. 시간이 많으니 책이나 원 없이 읽자는 마음도 있었지만, 구내식당 밥맛이 꽤 내 입에 맞았고, 점심 먹고 매점에 들러 캔커피 하나 들고 도서관 앞마당을 산책하곤 했다. 재잘거리며 서로를 앵글에 담는 연인들, 점심시간 잠시 틈을 내 등나무 퍼걸러 아래에 앉아서 책을 읽는 직장인, 천진난만하게 팔을 휘두르며 뛰어노는 꼬맹이들을 보며 괜히 왠지 모르게 공간의 ‘활기’가 내게도 전해지는 것 같아 기분이 좋았다.
요새 회사와 집을 오가는 반복된 일상에서 벗어나 종종 일부러 짬을 내서 또 도서관에 간다. 한 재단이 유료로 운영하는 회원제 도서관인데, 약 2만여 권의 문학 도서를 구비하고 있다. 술자리 두어번 안 가고 아낀 돈으로 가입하면 1년 간 이용이 가능하다. 공간을 둘러보면 예술적 취향이 대단한 장서가의 서재를 구경하는 기분이 난다. 국내외의 다양한 예술과 문학, 철학 서적은 물론 작가별로 책을 구분해 둬서 장르 구분 없이 작가의 전작을 모두 구경할 수 있다.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피천득 선생님의 전작도 읽을 수 있고, 칸막이가 있는 1인용 소파에 누워서 책을 읽을 수 있는 소소한 재미도 있다. 또 입구의 카페에 들러서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사서 들어가면 금상첨화라고 할까. 저녁에는 카페에서 칵테일도 판다고 하더라. 아직 시도해보지 않았지만 칵테일과 도서관도 꽤 좋은 조합일것 같다. 물론 두 발로 갔다가 네 발로 나오는 불상사가 있으면 안되겠지만.
생각해 보면 커피를 마시며 즐겼던 도서관이 내게 일종의 케렌시아(Querencia)였는지도 모른다. 투우에 출전하는 소가 결전을 앞두고 케렌시아란 장소에서 잠시 숨을 고르며 결전을 준비했던 것처럼 지루한 일상에서 벗어나 도서관에서 커피를 한 잔 마시면서 잠시나마 여유를 가질 수 있었던 것 같다. 밀크커피로 시작해서 아이스 아메리카노로 오기까지 꽤 세월이 흘렀지만, 언제나 늘 함께 해준 도서관(?)에게 감사의 인사를 전한다. 앞으로도 잘 부탁해! 너의 영원한 동지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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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가 만난 문장들] 슬픔을 보이는 것으로 만들려고
뭘 써야 하는지 또렷해지지 않는 이유는 대체로 머릿속이 복잡해서다. 그럴 때면 어떻게든 주제를 하나로 모으기 위해 문장 사냥을 나간다. 억지로 영화를 보고 책을 읽고 노래를 듣고 전시를 보러 간다. 그래도 해결되지 않으면 유튜브 프리미엄 회원의 혜택도 벗어던지고 영상 앞뒤에 붙는 광고를 들여다보기까지 한다. 그런데 이번 달에는 영 의욕이 나질 않았다. 그래서 괜히 지난 30일을 되돌아보기나 했다.
한때 영원히 기억되는 장소를 만드는 방법은 이야기 속에 공간을 넣는 것이라 믿었다. 영화나 드라마 속 장면에 공간을 녹여버리는 것이다. 그래서 대학 시절, 남들은 어떻게든 듣지 않으려 하는 1교시 수업을 골라 신청하고 남는 시간에 곧잘 영화관에 다녀왔다. 인물 관계의 촘촘함이나 서사, 대사도 중요했지만 마음을 사로잡는 분위기의 배경이 있으면 그걸 한참 들여다보곤 했다. 귀신이 출몰한다 해도 ‘장화, 홍련’(2003)의 목조 건물에 하루정도 머물며 아름다운 벽지를 낱낱이 뜯어보고 싶었다. 졸업작품으로 회현시민아파트의 골조를 남겨 수직 공원을 만드는 계획을 세웠었는데, ‘지금 만나러 갑니다’(2005)에서 죽은 아내 미오가 돌연 나타난 숲 속 폐공장의 이미지를 자주 떠올렸었다.
힘있게 마구 번성한 자연이 부셔져 가는 콘크리트 골조를 삼키는 듯한 모양이 좋았다. 물론 이제 영화 속 배경 대부분은 온전한 장소가 아니라 카메라 시점에 따라 조각을 낸 세트라는 걸 안다. 그래도 여전히 길을 걷다 영화의 한 장면 같은 공간을 만나면 심장이 뛴다. 기차역, 특히 이제는 열차가 니지 않는 폐역도 그중 하나다. 진주에 가는 KTX는 띄엄띄엄 있었다. 가는 데만 서너 시간을 잡아먹으니 새벽 열차에 올라야 했다. 돌아오는 기차가 빨리 끊기는 터라 출발 전부터 마음이 급했다. 틈틈이 서울로 올라갈 수 있는 교통편을 찾아보며 「한겨레」의 ‘서울 말고’ 연재를 떠올렸다. 언제든 원하는 곳에 한두 시간이면 갈 수 있어야 한다고 당연하게 생각하는 태도가 꽤 재수 없게 느껴졌다. 도착한 철도문화공원은 기대한 것만큼 고즈넉하고 단정했다. 계획안으로 보았을 때는 뜬금없다고 생각했던 맹꽁이 서식처에서 느껴지는 야생적인 자연의 분위기가 마음에 들었다.
버려진 선로가 무성한 풀에 덮여 있어 꼭 자연이 인간이 만들어낸 산물을 잠식해버리는 듯한 풍경을 기대하기도 했지만, 사람들의 이용과 유지‧관리를 고려하지 않은 공간은 장소가 아닌 이미지로 남아버린다는 것도 이제 안다. 하얀 구름을 돋보이게 해주는 청명한 하늘은 좋았는데, 예상보다 강렬한 햇빛이 문제였다. 숨을 쉬는 건지 뜨거운 증기를 마시는 건지 구분할 수 없었다. 나무 그늘에 숨어 드론을 날릴 때마다 그 열기를 해치고 나가는 작은 비행체에 미안할 지경이었다. 틈이 날 때마다 카페에 들어가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들이부어야 했다. 지구가 따뜻해지는 시기를 넘어 끓기 시작했다는 지구 열대화를 실감하는 순간이었다.
얼마 전 부산에 사는 친구 L은 홀로 해운대를 다녀왔다. 아무래도 다시 만날 수 없을지도 모르는 바다와 작별을 해야겠다고, 아침 일찍부터 모래사장 위에 깐 돗자리에서 튜브를 불고 있는 사진을 보내왔다. 그날 점심시간에는 휴대폰 갤러리에서 올해 다녀온 부산 바닷가의 사진을 뒤적이며 아쉬워했다. 인간들이란, 하고 중얼거리며 회피하다가 오후에 교정을 보던 ‘새책’ 지면에 얻어맞았다. “환경운동의 여러 방향 중 인간 혐오라는 극약처방은 내 옆의 가난한 이웃보다 북극곰에게 더 공감하기 쉽게 했을 뿐 아니라…….”(125쪽)
요즘 나는 날 오롯한 개인으로 느끼지 못한다. 나는 서울에 사는 사람이며, 여성이고, 자연 파괴에 일조하는 인간이라는 종에 속해 있으며, 노동자 계급이고, 대중교통을 이용하며, 비장애인이다. 그래서 내가 죽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일 년에도 몇번씩 죽어가는 느낌을 받는다. 손가락이나 다리 하나가 사라진 것 같다는 말도 안 되는 생각에 빠졌다가 친구들과 시시콜콜한 농담을 하면서 다시 신체의 감각이 돌아오는 걸 느낀다. 해결할 방법 없는 슬픔이 무력감을 가져올 수 있다는 걸 알면서도, 가끔은 이 슬픔을 보이는 것으로 만들고 싶어진다. 자신과 비슷한 감정을 가진 누군가가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위로를 얻기도 하니까.각주 1.안희연의 시 ‘소동’의 첫 문단 일부. 첫 문단은 다음과 같다. 밀가루를 뒤집어쓰고 거리로 나왔다 / 슬픔을 보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