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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디토리얼] 공터에서
이달에는 오랜만에 본문 기사 한 편을 쓰게 되었다. 올해 8월 통권 400호 출간을 기념해 편집부 에디터들과 편집위원들이 돌아가며 지난 39년간의 『환경과조경』 전권을 리뷰하는 기획물의 세 번째 순서를 떠맡게 된 것. 등 떠밀려 다시 읽은 옛 잡지는 통권 101호부터 150호까지, 1996년 9월호부터 2000년 10월호까지 쉰 권이다. 뽀얗게 먼지 쌓인 잡지에 파묻혀 때아닌 추억과 향수를 곱씹다 데드라인을 한참 넘기고 말았다. 게다가 요즘은 원고지 10매 안팎의 짧은 칼럼에 길들어 있어서 모처럼 50매 넘는 글쓰기 모드로 전환하기가 쉽지 않았다.
이 에디토리얼만 백지로 비어 있고 모든 지면의 최종 교정과 디지털 작업까지 끝난 지금, 심장 쫄깃한 마감의 스릴을 애써 즐기며 다른 꼭지들의 편집과 레이아웃을 한 번 더 간섭하는 호기를 부리고 있다. 김모아 기자와 윤정훈 기자의 속이 까맣게 타들어 간다.
이달에는 편집부의 보배 김 기자와 윤 기자가 꽤 오랫동안 심혈을 기울여 찾고 모으고 고른어린이 놀이터 프로젝트 13개를 싣는다. 서울의 초등학교 신상 놀이터부터 저 멀리 터키 이스탄불과 스웨덴 스톡홀름의 어린이공원에 이르기까지, 3월호 지면을 넘기다 보면 틀에 박힌 놀이터 디자인의 전형을 깨는 갖가지 신박한 아이디어를 만날 수 있다. 어린이 놀이터 디자인은 참 쉽지 않은 숙제지만, 결국 핵심은 마음껏 뛰놀게 해주는 바탕 아니겠는가. 지면에 배치된 열세 곳 놀이터를 꼼꼼히 살펴보면서 ‘바람직한 어린이 놀이 환경이란 무엇인가’와 같은 거룩한 질문을 던져야 마땅하겠지만, 그만 어릴 적 놀이터의 추억들을 소환하기에 이른다. 김 기자를 빨리 안심시키려면 어쩔 수 없다. 비록 꼰대 소리 듣더라도 이번 에디토리얼은 ‘라떼 이즈 홀스(나 때는 말이야)’로 가는 수밖에.
‘라떼는’ 빈 땅이면 다 놀이터였다. 대도시에도 어디나 널린 게 빈 땅이었다. 김훈의 『공터에서』가 나왔을 때, 소설 내용과 상관없이 가슴이 얼마나 쿵쾅거렸는지 모른다. 까마득히 잊고 지내던 단어 ‘공터’를 다시 만난 것이다. 그래, 그땐 그랬지. 공터라고 불렀었다. 도시 여기저기에 방치되고 유기된 ‘지도 바깥의 땅’, 공터는 아이들의 천국이었다. 주택가 곳곳에도, 등하굣길에도 공터들이 있었다. 아이들 키보다 한참 더 높이 자란 잡초더미 공터도 있었고, 돌밭이 드넓게 펼쳐진 공터도 있었다. 누군가는 메뚜기를 잡거나 잠자리채를 휘두르며 오후를 보냈고, 누군가는 땅거미 내려앉을 때까지 고무줄놀이, 비석 치기, ‘오징어가이상’을 하고 놀았다. 모험을 즐기는 아이들은 화약놀이나 불장난을 즐겼지만, 나에게 공터는 야구장이었다.
다른 스포츠 경기장과 구별되는 야구장의 매력은 규격이 제각각이라는 점이다. 베이스 간 거리,홈에서 투수판까지의 거리, 타석의 크기를 비롯한 내야의 여러 규격은 격자형 도시의 블록 크기처럼 일정하지만, 외야의 넓이, 펜스 높이와 재질, 파울 지역의 크기는 야생의 자연처럼 제멋대로다. 『볼파크(Ballpark)』(2019)의 저자 폴 골드버거(Paul Goldberger)는 야구장이란 “도시(내야)와 자연(외야)이 만나는 변증법적 공간”이라고 잔뜩 힘준 정의를 내리기도 한다. ‘라떼의’ 놀이터 공터야말로 도시와 자연이 제대로 뒤엉킨 매력적인 야구장이었다. 돌과 자갈이 널린 내야는 어디로 튈지 모르는 바운드로 우리를 즐겁게 했고, 잡초더미 외야로 타구를 보내기만 하면 무조건 홈런이 될 수밖에 없었다.
서울 서북부 변두리 주택가에서 강 건너 잠실의 아파트 단지로 순간 이주한 아이는 공터계의 신세계를 만난다. 아파트 단지에는 정성껏 만든 놀이터와 단정한 놀이 기구가 있었지만, 그때나 지금이나 아파트 놀이터란 태생적으로 인기 없는 공간이다. 그러나 1970년대 중후반의 아파트 주차장은 언제나 텅 비어 있지 않았던가. 훨씬 넓으면서도 평평하고 반듯해 놀기 좋은 공터, 주차장은 아이들의 새로운 천국이었다. 주차 라인을 요모조모 활용하면 공터가 다목적 다기능 놀이터로 변신했다. 돌밭과 잡초더미 공터보다 주차장 공터는 다방구를 하기에도, 얼음땡을 하는 데도 편리했다. 야구는 두말할 나위 없다. 아스팔트 바닥이라 슬라이딩 캐치는 어려웠지만, 불규칙 바운드를 두려워하지 않고 내야 땅볼을 처리할 수 있었다. 심지어 주차 라인을 잘만 이용하고 분필로 금을 조금만 더 그으면 ‘파울’이냐 ‘인’이냐를 두고 패싸움을 벌이지 않아도 됐다.
향수, 노스탤지어란 모름지기 너무 깊이 빠져들지만 않는다면 효용이 있는 법이다. 재미있고신나는 이번 호 지면의 놀이터 작품들을 즐겁게 보다가 급기야 ‘라떼의’ 공터 향수에 빠져 의식의 흐름대로 허우적거리다 보니 텅 빈 지면이 이럭저럭 찼다. 이제 김모아 기자가 안도의 한숨을 내쉴 차례다. 김 기자, 빨리 앉히고 한 번만 교정 봐서 바로 인쇄 넘깁시다!
이번 호부터 격월로 새 연재 ‘사람과 사람을 잇는 사람들’을 싣는다. 놀이터와 커뮤니티 디자인으로 이름난 ‘조경작업소 울’의 조성빈과 김연금이 여러 나라에서 다양한 방식으로 커뮤니티 만들기에 힘쓰고 있는 이들을 만나 대화하는 인터뷰 꼭지다. 연결은 도시를 변화시키는 힘이다. 도시와 사람, 사람과 도시의 새 연결고리를 발견하는 지면, 독자 여러분의 관심과 응원을 부탁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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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경 감각] 다이빙 수업
때론 길에서 만난 식물들이 숙제 같다. 그림으로 옮기면 딱일 것 같은. 절정의 순간을 맞은 꽃, 상처 하나 없이 깨끗한 잎사귀, 서리를 맞아 아름답게 오그라든 열매 같은 것들이 특히 그렇다. 정면과 측면에서 사진을 찍고, 잎 한 장, 열매 하나를 렌즈에 담으며 고민한다. 어떻게 그려야 할까? 가로 구도가 세로보다 나을까? 배치는 어쩌지…. 머리를 쥐어짜다 보면 마주친 순간에 느꼈던 즐거움은 어느새 휘발되어 버린다. …(중략)
조현진은 조경학을 전공한 일러스트레이터다. 2017년과2018년 서울정원박람회,국립수목원 연구 간행물『고택과 어우러진 삶이 담긴 정원』,정동극장 공연‘궁:장녹수전’등의 일러스트를 작업했고,식물학 그림책『식물문답』을 출판했다.홍릉 근처 작은 방에서 식물을 키우고 그림을 그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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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경과조경』 400호 돌아보기] 세기말의 혼돈과 희망
내가 『환경과조경』을 처음 만난 건 대학에 합격하고 한 달쯤 지난 뒤였다. 천장 벽지의 패턴을 눈감고 그릴 수 있을 정도로 와식 생활을 즐기다 마침내 결심했다. 낯선 친구 조경과 이제 친해져 보자. 강남역 지하상가의 대형 서점 ‘동화서적’에서 1987년 1월호(통권 15호)를 사서 읽고 또 읽었다. 화가 이왈종의 그림을 표지에 쓴 파격이 근사했다. 판형은 지금보다 조금 길고 약간 좁다. 계간에서 격월간으로 바뀐 첫 호, 152쪽, 3,800원. 대학 구내식당 점심이 400원, 호프집 생맥주 한잔이 500원인 시절이었다. 특집 ‘전국대학 학생 조경작품’ 덕분에 조경학과에서 뭘 배우고 어떤 작업을 하는지 단숨에 눈치챌 수 있었다.
올 8월의 통권 400호 출간을 기념해 지난 39년간의 잡지를 되돌아보는 기획의 세 번째 순서,내가 다시 읽을 옛 잡지는 통권 101호부터 150호까지, 1996년 9월호부터 2000년 10월호까지다. 1996년 가을에 나는 박사 논문 스트레스와 미래에 대한 불안감에 잔뜩 위축된 박사과정 4년 차였고, 2000년 가을에는 불안정한 박사 백수 신분으로 필라델피아의 유펜에서 밀레니엄을 맞아 꿈틀대던 미국 조경의 변화상을 곁눈질하고 있었다. ‘조경비평’과 ‘대안적 조경 잡지’라는 말을 입에 달고 다니던 나는, 조경진(서울시립대학교 교수, 이하 모두 당시 소속과 직책), 박승진(조경설계 서안 실장) 등 몇몇 선배들과 힘을 합쳐 무크지 『로커스Locus』 창간호(1998)와 2호(2000)를 만들고 『우리 시대의 조경 속으로』(1999)를 펴내느라 『환경과조경』을 펼쳐볼 겨를이 없었다. 아니, 애써 열어보지 않았던 것 같기도 하다.
세기말. 모두가, 사회 전체가 변화의 소용돌이를 겪던 시대였다. 지방자치제가 부활했고, 공원과 녹지가 민선 시장들의 공약 리스트에 단골로 올라가기 시작했다. 김영삼 정부 말기에 터진 IMF 외환위기는 한국 경제와 사회의 지형을 뒤흔들었다. 모뎀과 PC통신을 넘어 인터넷 세상이 열리기 시작했다. 1999년, 하나로통신이 최대 8Mbps 속도의 ADSL 서비스를 시작하면서 인터넷은 마침내 대중과 결속하기에 이른다. 이동 통신 시장이 무선 호출기에서 휴대 전화로 급격히 이동한 1998년 이후에는 일상의 라이프스타일이 급격히 바뀐다. 변화와 혼돈, 희망과 불안이 뒤섞인 세기말의 풍경은 101호에서 150호까지 쉰 권의 『환경과조경』 지면에도 고스란히 투영되어 있다.
‘올인원’ 잡지
설 연휴 첫날, 1996년 9월호(101호) 표지의 뽀얀 먼지를 조심스레 닦아내며 시간 여행을 시작했다. 뒤표지에 찍힌 정가는 6,300원이다. 200쪽에 달하는 분량, 광고 지면이 2021년보다 두 배 이상인 걸로 보아 잡지사 재정 상태가 지금보다 나았으리라. 편집부 데스크는 김인숙(편집부장대우)이고, 기자는 김찬주, 김진오, 정종일 셋이다. 한글 제호는 ‘환경과조경’, 영문 제호는 ‘The Korean Landscape Architecture’다. ‘환경 & 조경’에서 ‘환경과조경’으로 제호를 바꾼 45호(1992년 1월호) 이후 한글 타이포그래피의 크기는 몇 차례 미세하게 변했지만 글꼴 자체는 계속 유지되었다.
파란 가을 하늘을 배경에 두고 분홍 코스모스를 클로즈업한 풍경 사진을 쓴 표지는 25년 전의 평균적 미감을 고려하더라도 올드한 느낌이다. 식자로 조판한 뒤 인쇄한 필름을 투명한 대지에 오려 붙이는 옛날 방식이 아니라 애플의 쿽Quark 프로그램을 써서 본문 편집 디자인을 한 것으로 추측되는데, 정갈한 멋이 있었던 1980년대 『환경과조경』보다 오히려 어수선해 보인다.
이 시절의 『환경과조경』은 실로 다양한 내용을 담았다. 통권 101호의 꼭지들을 지면 순서 그대로 나열해 보자. 함께 생각해 봅시다, 뉴스, 내일을 위하여, 특별기획(생물다양성 확보를 위한 습지 보전), 초점(건설산업기본법 제정에 관한 조경 분야 토론회), 조경계 동서남북, 동아리탐방, 만나보고 싶은 사람, 신정보소개, 실무자코너, 특별기획시리즈(한국 전통의 도시공원), 기획시리즈(조경설계.시공시 고려해야 할 재료별 특성), 리포트, 해외석학에게 듣는다, 유학생활기, 수상작, 그리운 내 고향, 시가 있는 환경, 신간안내, 해외레이다, 인터넷정보, 편집자에게, 만평, 카메라포커스, 문화가소식, 편집후기.
올인원(all-in-one). 정말 모든 게 잡지 한 권에 다 있다. 지식의 전달, 기술과 실무 정보의 제공, 완공작 소개, 최근 소식을 총망라한 구성이 ‘조경 백화점’을 연상시킨다. 특별히 이채로운 꼭지는 93호(1996년 1월호)부터 139호(1999년 11월호)까지 이어간 ‘그리운 내 고향’인데, 조경환(105호), 임현식(106호), 전유성(107호), 최백호(125호) 같은 연예인부터 이해찬(93호), 이한동(112호) 같은 정치인까지 각계의 명사들이 등장한다. 심지어 114호(1997년 10월호) 지면에서는 대선을 목전에 둔 새정치국민회의 김대중 총재의 ‘그리운 내 고향’을 만날 수 있다. 기사 타이틀은 “어린왕자가 되어 자연과 대화하는 것이 유일한 휴식이자 오락”이다. 해외 설계사무소들의 홈페이지를 통해 따끈따끈한 근작과 새 정보를 실시간으로 접하는 게 가능해진 1990년대 말, 젊은 세대 조경인들과 조경학과 학생들은 안타깝게도 ‘올인원’ 『환경과조경』으로부터 점점 더 멀어져갔다.
*환경과조경395호(2021년3월호)수록본 일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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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미개봉작 상영기] 구 서울역사 폐쇄 램프 정원 프리퀄
때는 작년 5월 중순, 잠실한강공원 자연형 물놀이장 설계공모 준비가 한창이었다. 함께 작업하던 김영민 교수(서울시립대학교)가 조심스럽게 말을 꺼냈다. “저기, 상의할 일이 있는데, 이게 좀 급한 일이긴 한데, 설계비도 얼마 안 될 텐데….” 운을 떼는 그의 눈빛을 보고 재미있지만 험난하고 고된 행군이 될 여정을 직감할 수 있었다. 내용인즉슨 바이런이 설계를 맡고 있는 구 서울역사 옥상 정원 바로 옆에 새로운 정원을 조성하는 것이었다. 서울정원박람회 초청 작가 정원과 연계해 공개할 사업이기도 했다.
대상지는 1989년 준공된 서울역 민자역사의 일부 시설로, 옥상 주차장과 지상을 연결하는 나선형 램프다. 오랫동안 방치되어 폐쇄됐지만 설계가의 가슴을 뛰게 하는 묘한 매력이 있었다. 서울시는 서울로 7017과 서울역 옥상을 연결하는 보행교 설치를 추진하면서 연결 지점에 위치한 폐쇄 램프의 리뉴얼을 진행했다. 우리는 폐쇄 램프의 삭막하고 험상궂은 인상을 탈바꿈시켜 새로운 명소를 기획하고, 시공을 위한 설계 도서를 작성해야 했다. 오랫동안 서울시의 다양한 프로젝트를 하며 겪은 익숙한 프로세스가 되풀이되고 있었다. 건축가와 토목 전문가 위주로 진행된 프로젝트의 준공이 얼마 남지 않은 시점, 막상 대중에게 공개하려니 공간이 무미건조해 보여 조경가가 소방수로 투입되었고, 급한 불을 끄고 보기 좋게 치장해야 하는 상황인 것이다.
시공을 포함해 주어진 시간은 약 네 달이었다. 디자인 구상, 여러 단계의 의사 결정, 실시 설계, 공사 발주, 감리와 시공까지 고려하면 무척 촉박한 일정이었지만 담당 부서의 행정 지원과 빠른 결단으로 곧장 설계를 진행했다. 수개월 전부터 진행 중이던 건축 설계팀의 계획을 반영해 2.4m 간격 모듈 프레임을 기본으로 하는 아이디어를 도출해야 했다. 대상지의 수직 구조와 폐쇄 램프 중앙의 깊은 빈 공간, 서울로 7017에서의 경관적 시인성 등을 고려해 입체적 정원을 계획하는 방향을 잡았다. 현장 답사와 초기 아이디어 회의를 거친 후 바이런 사무실 중앙에 있는 탁구대에 김영민 교수가 일필휘지로 그린 스케치가 펼쳐졌다.
우리의 제안은 가칭 ‘신단수(神壇樹)프로젝트’로 명명한 수직 정원이었다. 바닥으로부터 상부 프레임 정상부까지 높이 24m에 이르는 대형 구조물을 만드는 것이었는데, 선행 계획에 제시된 2.4m 간격의 건축 프레임에 적용 가능한 60×60cm 박스를 켜켜이 쌓고 매달기로 했다. 짧은 일정을 고려해 공장에서 별도 제작이 가능한 수준의 모듈 프레임을 주 재료로 삼고, 현장에서 도면에 따라 조립할 수 있는 시공 방식도 제시했다. 프레임 구조를 활용해 최소한의 식물 생육 기반을 조성하여 전체가 하나의 거대한 나무처럼 보이는, 방치된 도시 공간에 생명력을 불어넣는 신성한 나무를 만든다는 의도였다. …(중략)
*환경과조경395호(2021년 3월호)수록본 일부
이남진은 서울대학교 산림자원학과와 환경대학원 환경조경학과를 졸업하고,동심원조경에서 실무 경험을 쌓았다.현재 조경기술사사무소 바이런(VIRON)을 이끌고 있으며,좋은 설계는 좋은 회사에서 나온다는 생각으로 설계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함께 성장하는 환경을 만들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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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과 사람을 잇는 사람들] 기회를 틈타는 도시 기획자
‘사람과 사람을 잇는 사람들’은 여러 나라에서 다양한 방식으로 ‘커뮤니티 빌딩’에 애쓰고 있는 이들을 만난다. 조경은 사람과 자연뿐만 아니라 사람과 사람을 연결하는 역할도 한다. 많은 사람이 익명으로 생활하는 도시에서 공공 공간을 만드는 일은 어떠한 지향 속에서, 어떻게 사람들을 연결할지 묻는 작업이기도 하다. 어떤 연결은 도시를 변화시키는 힘으로 이어진다. 아니, 그렇게 믿는 사람들이 있다. 각자도생이 받아들여야 하는 흐름인지, 극복해야 할 대상인지 모호한 시대, 그들은 왜 연결을 낙관하고 애쓰는지 살펴보려 한다. 첫 번째 주자는 지진으로 많은 것이 무화된 백지 같은 도시에서 새로운 연결고리를 만들어나가는 갭필러(Gap Filler)다.
갭 필러는 예술, 건축, 연극 등 다양한 배경을 가진 사람들의 조합이다. 2010년 뉴질랜드에서 발생한 지진 이후, 크라이스트처치(Christchurch)라는 도시에서 무너진 장소성을 새롭게 회복하기 위해 다양한 시도를 이어나가고 있다. 그들은 스스로를 “창의적 도시 재생을 주도하는 단체(creative urban regeneration initiative)”로 소개한다. 지난 2016년 최이규 교수(계명대학교, 당시 그룹한 소장)가 갭 필러의 코랄리 윈Coralie Winn과 재난 이후 도시의 재건에 초점을 맞추어 인터뷰를 진행했다(『환경과조경』 2016년 6월호). 이 지면에서는 갭 필러가 설립된 지 10년이 지나 도시가 많이 복원된 현재 시점에서 갭 필러의 지향과 활동에 있어서 달라진 점은 무엇인지에 집중했다. 갭 필러의 공동창립자인 라이언 레이놀즈(Ryan Reynolds)와 이메일로 대화를 나누었다.
갭 필러는 도시나 건축, 조경뿐 아니라 다양한 전문적 배경을 가진 이들이 모인 도시재생 단체다. 멤버들이 어떤 배경을 가지고 있는지, 이런 조합을 어떻게 이루게 되었는지 궁금하다.
공동창립자 셋 중 나를 포함한 두 명은 연극을 전공했고, 다른 한 명은 건축과 도시계획을 기반으로 활동했었다. 우리는 연극 분야에서 사용하는 퍼포먼스 연구의 관점에서 도시를 다루는데, 이 관점에서는 인간의 모든 행위를 각자의 사회적 역할의 수행으로 본다. 즉, 어떤 사회적 맥락이 주어질 때 개인이 어떤 행위나 역할을 창조하는지 살펴보는 연구라고 볼 수 있다. 이를 물리적, 도시적 맥락으로 가져와 설계 언어에 따라, 일례로 보행로의 폭이나 경계석 단차에 따라, 개인의 행태가 어떻게 변화하는지 실험하는 데 사용해볼 수 있다. 이러한 개념들을 녹여 갭 필러는 새로운 접근법을 만들어냈다. 사람들의 다양한 행태를 끌어내는 배우 역할을 할 물리적 장치를 공간에 삽입해 공간의 분위기와 방문한 사람들의 태도를 바꿔나가는 작업을 하고 있다.
지난 10년간 다양한 배경을 가진 사람들이 우리와 함께했다. 프로젝트 매니저 중 한 명인 데미안(Damian)은 대규모 익스트림 스포츠 대회와 행사를 기획하는 회사에 근무했었다. 주로 기획을 담당했었지만, 스케이트 점프나 하이파이프를 위한 구조물 제작같이 아이디어가 공간으로 구현되는 과정에도 참여한 경험이 있었다.
독특한 배경 덕분인지 갭 필러가 도시 공간을 대하는 접근법은 전통적인 방식과 많이 다르다. 예를 들어, ‘팰릿 파빌리온(Pallet Pavilion)’ 프로젝트에는 요즘 도시계획에서 종종 사용되는 택티컬 어바니즘(tactical urbanism)접근을 활용한 것으로 보인다. 갭 필러가 도시재생을 이끄는 방법에 대해 알고 싶다.
엄밀히 말해 우리의 접근법은 택티컬 어바니즘이라고 할 수 없다. 택티컬 어바니즘의 통상적 의미는 실제 공간에 구상한 시설을 하루나 일주일같이 짧은 기간에 저예산으로 구현해서 해당 공간의 영구적 변화를 어떻게 이루어나갈지 확인하는 작업이다. 이런 접근법은 굉장히 직접적이고 직설적이다. 그리고 주로 도로나 주차장, 광장에서 이루어진다. 예를 들어, 4차선 도로 중 하나를 자전거 도로로 표시한 후, 시민들이 일정 기간 어떻게 활용하는지 관찰해 자전거 도로 조성에 필요한 당위성을 만들기도 한다.
갭 필러의 접근 방식은 조금 더 포괄적이고 예술적이다. 장기적으로 영향을 미치는 범위를 특정 공간의 구성에 그치지 않고 정체성의 변화와 장소성 그 자체까지 염두에 두고 있다. 그 결과 예상외로 크라이스트처치 시의 장소성에 많은 영향을 미칠 수 있었다. 또한 우리는 크라이스트처치에 산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지, 이 도시의 정신ethos of the city은 무엇인지와 같은 질문을 던지지만, 어떤 공간에 특정 구조물을 설치해 해당 공간 개발에 대한 직설적 해답을 내지는 않는다. …(중략)
* 환경과조경 395호(2021년 3월호) 수록본 일부
조성빈은 유년 시절을 미국과 한국의 다양한 도시에서 보냈고, 공간과 도시에 매료되어 한국과 노르웨이에서 건축과 조경을 공부했다. 늘 경계에 있는 사람으로 살아와 깊이는 부족해도 본질에 관심이 많고, 관계에서든 공간에서든 진정성을 추구한다. 조경설계 서안을 거쳐 조경작업소 울에서 놀이터와 커뮤니티 디자인을 하고 있다.
김연금은 서울 옥수동에서 태어나 살고 있고, 2009년부터 옥수동 옆 약수동에서 조경작업소 울을 운영하고 있다. 『텍스트로 만나는 조경』, 『커뮤니티디자인을 하다』, 『소통으로 장소만들기』, 『우연한 풍경은 없다』 등 다양한 집필 작업을 해왔다. 2020년에는 서울시립대학교 명예교수인 이규목 교수를 비롯해 여덟 명의 조경가의 글을 엮어 『이어 쓰는 조경학개론』을 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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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 스케이프] 19세기의 리틀 포레스트, 부바르와 페퀴셰
친구들과 이런저런 잡담을 나누다 보면 꼭 누군가 로또 이야기를 꺼낸다. 일확천금하면 그 많은 돈을 어디다 쓸 건가로 대화 주제가 바뀐다. 누군가의 계획은 굉장히 구체적이다. 당장 회사를 그만두고 공기 맑고 조용한 시골에서 평화롭게 작은 규모로 농사지으며 살겠단다. 드라마 ‘전원일기’를 보고 자란 세대는 커서 영화 ‘리틀 포레스트’나 ‘인생 후르츠’, TV 예능 ‘삼시세끼’처럼 소박하게 자급자족하는, 이른바 킨포크(kinfolk)라이프를 꿈꾼다. 안온한 시골 생활에 대한 꿈은 사실 고대부터 동서양의 수많은 시인이 노래해 왔다. 어찌나 많은지 아예 전원시라는 장르가 생겨났을 정도다. 하지만 그것은 도시인들의 판타지일 뿐, 실제 시골 생활은 많이 다르다(고 한다). 무엇보다 앞서 이야기한 사례에서는 벌레가 안 나온다.
이 전원생활의 꿈을 앞서 이룬 이들이 있으니, 19세기 프랑스의 소설가 플로베르(Gustave Flaubert)의 유작 『부바르와 페퀴셰(Bouvard et Pecuchet)』의 두 주인공이다.1 소설은 부바르와 페퀴셰가 만나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어느 여름날 일요일 오후, 파리 시내 길거리 벤치에 두 사람이 우연히 합석한다. 가벼운 대화를 하다 보니 모자 안쪽에 이름을 적어두는 습관, 47세의 나이, 독신이라는 점, 필경사라는 직업도 같다. 퀴어 코드는 없지만 첫눈에 반한 두 사람의 마음은 어떤 연인보다도 절절하다. 그날부터 이들은 거의 매일 저녁 식사를 함께하고 수많은 이야기를 나누고 여기저기 같이 다니며 지적 호기심을 채운다. 서로를 만나기 전까지는 남의 글을 옮겨 적는 필경사 생활에 만족했지만, 아는 것이 많아질수록 더 많은 지식을 갈망하게 된다.
앎에 대한 욕망뿐 아니라 시골 생활에 대한 욕구도 공유한다. 피곤한 도시도, 소란한 선술집 때문에 견디기 힘든 교외도 아닌, 평화로운 시골말이다. 이들은 시골을 동경하여 일요일이면 교외로 산책을 간다. 포도밭을 산책하고 풀밭 위에서 낮잠을 잔다. 우유는 신선하고 밭이랑에 난 개양귀비꽃도 어여쁘다. 이런 산책을 다녀온 뒤에는 도시 생활이 더욱 견디기 힘들어진다.
그런데 아침 드라마 같은 일이 일어난다. 부바르가 삼촌인 줄 알았던 분이 사실은 친부였고 그에게 상당한 유산을 남겼다. 유산을 상속받고 부바르가 페퀴셰에게 한 첫마디는 “우리 시골로 은퇴하자!”였다. 둘은 정착할 ‘진정한 시골’을 찾고 시골 생활에 필요할 것 같은 물건을 잔뜩 구입한다. 여행은 계획할 때 제일 좋듯 귀농 생활도 상상할 때가 가장 감미롭다. 시골로 이주해 사는 소설가 마루야마 겐지丸山 健二도 말하지 않았는가. “시골은 그런 것이 아니다.”2 …(중략)
**각주 정리
1. 귀스타브 플로베르, 진인혜 역, 『부바르와 페퀴셰 1, 2』, 책세상, 2006.
2. 마루야마 겐지, 고재운 역, 『시골은 그런 것이 아니다』, 바다출판사, 2014.
*환경과조경395호(2021년 3월호)수록본 일부
황주영은 서울대학교 협동과정 조경학전공에서 19세기 후반 도시 공원의 모더니티에 대한 연구로 박사 학위를 받은 뒤 파리 라빌레트 국립건축학교에서 박사후 연수를 마쳤다. 미술과 조경의 경계를 넘나들며 문화사적 관점에서 정원과 공원, 도시를 보는 일에 관심이 많으며, 이와 관련된 강의와 집필, 번역을 한다. 그러는 동안 수많은 책을 사거나 빌렸고, 그중 아주 일부를 읽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