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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디토리얼] 서울판 하이라인, 서두르지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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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월호 마감이 한창이던 9월 중순, 미안하게도 편집부 식구들을 나 몰라라 한 채 포르투갈 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포르투Porto라는 역사 도시에서 열린 유럽조경학교협의회ECLAS 콘퍼런스에 참석하기 위해서였다. “이곳에서 육지가 끝나고, 이곳에서 바다가 시작된다”는 말로 유명한 이 항구 도시는 15, 16세기 대항해시대의 화려한 전진 기지였다. 대항해시대가 저물고 유럽의 경제 중심지가 이동하며 포르투의 발전은 정체되기 시작했고, 근대기에는 개발의 손길이 거의 미치지 못하면서 도시의 구조와 형태가 고스란히 남아 후대에 전해지게 되었다. 도시의 역사 지구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고, 최근에는 옛 모습을 간직한 관광지로 각광받으며 찾는 사람이 늘고 있다. 세월의 먼지가 켜켜이 쌓인 이 오래된 도시에서 일주일 가까이 머물며 ‘유산’이라는 것의 현재적 가치에 대해 다시 묻지 않을 수 없었다. 관광객의 셀카봉 배경으로 전락한 문화 유산과 그곳 시민의 곤궁한 삶이 지금까지도 오버랩된다.

포르투의 콘퍼런스 일정 중, 한 시대를 풍미했던 조경 이론가 마크 트라이브Marc Treib와 긴 대화를 나누는 즐거움을 누렸다. 마침 9월 21일에 뉴욕 하이라인의 3구역이 공식 개장한 터라 산업 유산으로서 하이라인의 공공적 가치에 대해 의견을 주고 받았다. 그는 하이라인의 대중적 성공은 도시적 콘텍스트와 역사적 스토리에 힘입은 바 크지만 하이라인의 “귀여운” 변신으로 인한 주변 부동산 가치의 상승이 하이라인의 미래에 어떤 결과를 가져올지 아직은 판단할 수 없다며 유보적 태도를 보였다. 또한 『론리 플래닛』 같은 관광 책자를 장식하는 관광지가 된 하이라인의 명소적 가치가 “머니 스펀지”라고 비판받는 고비용의 문제를 상쇄할 수 있다고 보기는 어렵다고 진단했다. 몸은 대서양의 일몰 앞에 있지만 마음은 파주 편집실에 있는 법. 그런 내용을 담아 『환경과조경』 11월호의 하이라인 특집원고 중 한 편을 써달라고 몇 차례 졸랐다. 그는 하이라인 만드는 데 10년이 걸렸듯 그것에 대한 평가에도 적어도 10년은 필요하다며 애타는 이 에디터의 청을 피해갔다.

비슷한 시간, 박원순 서울시장은 뉴욕의 하이라인을 시찰하며 기자들을 모아놓고 서울역 고가를 서울판 하이라인으로 만들겠다는 야심찬 계획을 공식화했다. 박 시장은 “서울역 고가는 도시 인프라이상의 역사적 가치와 의미를 갖는 산업화 시대의 유산”이므로 “원형을 보전하면서 … 하이라인 파크를 뛰어넘는 녹색 공간으로 재생시켜 시민에게 돌려드리겠다”는 구상을 밝혔다. 뿐만 아니라 “서울역 고가가 관광 명소가 되면 침체에 빠진 남대문시장을 비롯해 지역 경제도 활성화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동시에 나온 서울시의 보도 자료는 서울역 고가는 “4층 높이에서 한 눈에 서울 도심이 조망 가능한 장소이자 KTX를 통해 전국에서 사람들이 모이는 장소”이므로 “도심 속 쉼터이자 대표적 관광 명소로 발전시키는 것이 목표”라는 내용을 담고 있다. 이러한 서울시의 구상은 도시 공간에 대한 뉴스로는 유례없이 다양한 쟁점을 생산하며 대중 매체를 달구고 있다.

더 늦기 전에 “서울역 고가는 산업 유산이므로 원형을 보전하고 하이라인을 모델로 한 녹색 공간으로 재생시켜 관광 명소가 되게 하여 지역 경제를 활성화시키겠다”는 박원순 시장의 단순 논리를 검토해볼 필요가 있다. 서울역 고가가 과연 원형을 그대로 보전해야 하는 산업 유산인가. 교통 수요에 대한 임기응변식 대처의 산물인 이 고가도로를 유산으로 평가할 수 있을지에 대한 토론이 있어야 한다. 무엇을 재생하는 것인가. 도시의 재생은 쇠퇴를 전제로 한다. 수명을 다하고 황폐화된 하이라인으로 인해 그 주변은 오랫동안 쇠퇴의 굴레를 벗어날 수 없었다. 서울역 고가는 무엇을 어떻게 쇠퇴시켰는지 냉철한 점검이 있어야 재생의 향방이 잡힐 것이다. 의도적인 계획만으로는 관광 명소가 쉽게 만들어지지 않고 주변 상권이 활성화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우리는 많은 선례를 통해 경험해 왔다. 물론 현재의 구상이 신의 한 수가 될 수도 있다. 중국 관광객이 1km에 달하는 고가에 가득 찰 것이다. 청계천처럼 한번은 가봐야 할 촌로들의 방문지가 될 것이다. 한번쯤은 유모차를 끌고 걸어야 할 것 같은 부모로서의 의무감도 불러일으킬 것이다. 모처럼 도심을 어슬렁거리며 서울의 낯선 경관을 즐길 수 있는 데이트 코스가 될 수도 있을 것이다. 많은 전문가가 우려하는 교통 문제도 어떻게든 해결할 수 있을 것이다. 지역 경제를 고사시킬 것이라는 남대문 상인들의 반대도 무마될 것이다. 노숙자 대책, 추락 사고나 투신 자살 문제, 여름의 혹서나 겨울의 혹한 같은 어려움도 기술적으로 극복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렇다 하더라도, 왜 지금, 이렇게 서둘러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동의하기 어렵다. 10월 중에 국제설계공모를 시작하고 연말까지 당선작을 선정하며 내년 8월까지 설계를 완성하여 2016년 내에 완공하겠다는 계획은 누가 보더라도 속전속결식의 전형적인 시장표 전시 사업이다. 

빛의 속도로 완성될 서울판 하이라인의 수혜자는 과연 누구일까.

우리는 ‘도시 정치’의 과정과 결과를 수차례 경험해왔다. 이번 일도 예정된 일정대로 직진할 가능성이 크다. 현재 진행 중인 아이디어 공모나 지난 10월 12일의 시민 개방 행사 ‘서울역 고가 첫 만남: 꽃길, 거닐다’처럼 시민을 앞세운 형식치레가 몇 번 더 추가되겠지만, 큰 틀에서는 그대로 강행할 것 같다. 하기로 했으니까. 『환경과조경』은 적어도 국제설계공모만은 따질 것 따져가며 천천히, 제대로 하자고 제안한다. 지명 공모가 아니라 공개 공모로 하자고 제안한다. 고가 구조를 그대로 보전하는 것 만을 설계 원칙으로 못 박지 말자고 제안한다. 그 자리의 지면에 선을 그어 기억할 수도 있고, 구조와 재료의 일부를 살려 전망대로 쓸 수도 있고, 완전히 철거하여 서울의 하늘을 다시 온전히 만나게 할 수도 있다. 다양한 해법에 문을 열어놓자. 서울도 이제 벤치마킹의 짝퉁 도시를 벗어날 때가 되었다. 여러 전문가들이 이야기하듯, 지금, 여기,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무엇을 만드는가가 아니라 어떻게 만드는가”다.

이번 호는 특집뿐만 아니라 여러 지면이 하이라인 일색이다. 쉽게 짐작하시겠지만, 하이라인을 촘촘히 살펴서 서울역 고가 프로젝트의 가쁜 숨을 가다듬어 보자는 의도다. 독자 여러분뿐만 아니라 박원순 시장과 서울시의 담당 공무원들이 제임스 코너James Corner와 조슈아 데이비드Joshua David의 인터뷰를, 윤희연 교수와 황주영 박사의 원고를 정독해주시길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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