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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료와 디테일] 그림자
  • 환경과조경 201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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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복잡한 요소가 모습을 감추고 남은 것들의 순수한 실루엣만 보인다. 그래서 더 아름답게 느껴질 때도 있다. ⓒ이대영

 

그림자는 빛이 지닌 속성인 직진성에서 연유한다. 절대적이며 원초적인 속성을 지닌 빛이 가던 길을 마저 가지 못하고 부딪쳐 그림자라는 감각적인 현상학적 물체를 만들어낸다. 무릇 존재하는 것은 모두 그림자를 가지고 있다. 존재의 이유를 막론하고 세상에 태어나면 생명의 상징을 갖게 되는데, 그림자도 그 중 하나라고 할 수 있다. 그림자에 대한 여러 이야기는 신화에서 과학에 이르기까지 실로 다양하다. 종교적 상징, 심리학, 문화, 예술 등 말하고자 하는 것은 각기 다르지만, 그림자의 생명성에 대한 이야기를 심심치 않게 찾을 수 있다. 살아있지 않지만 생명을 가지고 있는 존재, 참으로 기이하면서 신비롭다.

설계 도면을 그리다 마지막에 수목과 시설물의 그림자를 넣고 나면 무언가 꽉 채웠다는 안도감을 느낀다. 일상 속에서 그림자가 가장 고맙게 느껴지는 순간이 이때다. 설계가 조금 덜 됐다고 생각되지만, 그림자를 넣고 나면 도면이 꽉 차 보이니 눈속임을 할 수 있다. 그림이 살아 움직이는 것 같은 착각에 빠지기도 한다. 뿌듯하게 집으로 향할 수 있다. 그렇지만 막상 협의를 하러 가서 본질을 꿰뚫어 보는 이라도 마주하게 되면 여지없이 처참하게 당하고 만다. 그림자가 장식으로 쓰였기 때문일 것이다.

요즘 같은 삼복더위에 바깥에서 마주하는 나무 그림자는 에어컨의 시원함에 비견할 바가 아니다. 태양의 고도에 따라 그늘의 방향이 변하니, 그 위치를 예측해 설계하는 것은 기본 중의 기본이다. 그렇지만 단 한 번도 우리를 위해 뜨거운 태양과 격렬하게 마주하고 있는 나무란 존재에 대해 깊이 생각해 본 적이 없다. 그림자에게 약간의 고마움을 느낄 뿐.

시설물을 설계할 때면 형태를 만들고 색을 입히고 재료를 덮고 난 후, 그 모양에 혹해 빠져들 때가 있다. 나름대로 비례도 좋고 깔도 좋아서 명품이 될 것 같은 예감에 설레기도 한다. 그렇지만 막상 바깥에 나가면 예상치 못한 변수를 만나게 된다. 빛이다. 빛이 움직이기 때문이다. 빛은 태양 고도에 따라 변하기에 하루 또는 일년 내내 같은 모습으로 있을 수 없다. 

 

 

이대영은 여기저기 살피고 유심히 바라보기 좋아하는 사람으로 살아가려 노력하고 있다. 만드는 것에 관심이 많으며, 작고 검소하며 평범한 조경설계를 추구하고 있다. 영남대학교에서 공부했고 우대기술단과 씨토포스(CTOPOS)에서 조경의 기초를 배웠다. 조경설계사무소 스튜디오 엘(STUDIO L)을 시작하고 작은 작업들을 하고 있다. www.studio89.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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