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 곳곳에 점점이 퍼져 있는 고밀 복합체 도시에는 세계 인구의 절반 이상이 거주하고 있지만, 도시는 여전히 가난과 불결과 위험의 대명사이자 고립과 불평등의 온실이며 반反자연의 상징이다. 그 어느 때보다 풍요로운 경제, 편리한 정보 기술, 풍성한 문화를 누리게 된 도시들도 갖가지 위기 담론으로부터 자유롭지 않다. 기후 변화와 환경 위기, 인구 고령화와 1인 가구 급증, 빈부 격차와 양극화, 경기 침체와 도시 쇠퇴가 뒤엉킨 난맥의 도시, 더 이상 계획가의 지혜와 엔지니어의 기술만으로는 해법을 찾을 수 없다. 20세기 후반을 기점으로 도시의 공간과 장소가 사회과학계 전반의 연구 대상으로 떠오르고 있다. 생산과 소비, 노동과 문화를 비롯한 모든 인간 행동과 그것이 낳는 정치·사회적 문제는 도시 공간에서 구성된다는 점이 새롭게 인식되고 있는 것이다. 지리학과 인류학은 물론 경제학과 사회학의 시선이 도시를 향하고 있다. 지난 연말에는 당대를 대표하는 도시사회학자 리처드 세넷(Richard Sennett)과 에릭 클라이넨버그(Eric Klinenberg)의 최근 저작이 잇따라 번역 출간되었다.
리처드 세넷의『 짓기와 거주하기』(김영사, 2019)는 삶을 향상시키는 기술의 가치를 다룬『 장인』과 타인과 함께 살아가는 사회적 협력 방식을 도모한 『투게더』를 잇는, 그의 ‘호모 파베르’ 프로젝트 3부작의 완결판이다. 철학과 사회학뿐 아니라 건축, 조경, 도시계획, 문학, 예술을 겹겹이 넘나드는 이 책의 키워드를 단 하나로 간추리자면 아마도 ‘열린’일 것이다. 세넷이 지향하는 열린 도시는 구성원들이 서로를 배제하지 않고 포용하고 배려하며 정보의 소통과 교류가 이뤄지는 윤리적 도시다.
열린 도시는 이상한 것, 궁금한 것, 미지의 것을 수용하는 도시이며, 이런 도시에 참여해 여럿 중의 한 사람으로 살아가면 “의미의 명료함보다는 의미의 풍부함”을 누릴 수 있다. 책 제목이 암시하듯, 세넷이 말하는 도시의 열린 관계는 짓기(building)와 거주하기(dwelling)가 균형을 찾을 때 가능하다. 짓기와 거주하기의 차이를 설명하기 위해 그는 프랑스어 빌(ville)과 시테(cite)를 빌려온다. 빌은 “물리적 장소로서의 도시”이고, 시테는 “지각, 행동, 신념으로 편집된 정신적 도시”다. 세넷은 도시를 짓는 방식(빌)과 도시에서 거주하는 방식(시테)이 불일치하는 것은 도시의 본질적 속성임을 파악하고, 빌과 시테의 접점을 찾아 나가는 전문가와 거주자의 노력들을 탐사한다.
세넷은 “우리를 바보로 만들” “닫힌 스마트 시티”의 전형으로 인천의 송도 신도시를 꼽는다. 그는 송도가 르코르뷔지에의 “부아쟁 계획에 무성한 나무와 부드러운 곡선을 추가한 버전”에 불과하며 스마트 시티를 내세워 데이터의 중앙 통제를 이룩한 “무미건조하고 무기력한 유령 도시”라고 비판한다. 세넷은 책 곳곳에서 공원이 빌과 시테를 연결하는 매개체일 수 있음을 내비친다. 이를테면 옴스테드의 센트럴 파크를 “사회적 포용이 물리적으로 설계될 수도 있다”는 믿음에서 비롯된 제안이라고 평가한다. 그러나 빌에 치우친 옴스테드의 공원 비전에는 “시테를 이루는 특징적인 재료, 즉 군중에 대한 성찰”이 빠져 있다며 공원의 잠재력을 전폭 지지하지는 않는다.
세넷에 비해 에릭 클라이넨버그는 도시의 고립과 불평등을 넘어서는 연결망으로서 공원의 가능성에 더 큰 기대를 건다. 전작『 폭염사회』를 통해 700명의 목숨을 앗아간 시카고 폭염 사태를 자연재해가 아닌 사회 비극의 측면에서 해석함으로써 찬사를 받은 클라이넨버그는, 신간『도시는 어떻게 삶을 바꾸는가』(웅진지식하우스, 2019)를 통해 도시에서의 고립과 양극화, 불평등과 분열은 사람의 문제가 아니라 도시를 어떻게 계획하느냐에 달린 문제라고 주장한다. 그가 전 세계의 다양한 도시와 지역 사회를 연구한 결과에 따르면, 도시의 위기와 재난을 극복하는 힘은 공동의 장소, 즉 필수적인 관계와 소통이 형성되는 장소를 만드는 데 달려 있다. 찾아가고 머물며 집단과 계급의 경계를 넘어 관계를 맺고 공동체를 강화하는 공간, 즉 “사회적 인프라스트럭처”를 구축하는 게 중요하다는 것이다.
클라이넨버그가 말하는 사회적 인프라스트럭처는 “사람들이 교류하는 방식을 결정짓는 물리적 공간 및 조직”이며 “사회적 자본이 발달할 수 있는지 없는지를 결정하는 물리적 환경”이다. 도서관과 서점, 학교와 놀이터, 수영장과 체육 시설은 물론 공원이야말로 도시의 건전한 유대 관계를 형성하는 사회적 인프라다. 공원처럼 모든 계층의 사람들이 꾸준하게 모여 즐거운 활동을 할 수 있는 장소를 만드는 것, 그것이 곧 위기의 도시를 회복시켜 열린 도시의 연결 사회를 지향하는 희망의 전략이다.
허리케인 샌디가 남긴 재난을 교훈 삼아 회복탄력적 인프라를 구축하기 위해 진행된 국제 설계공모전 ‘리빌드 바이 디자인(Rebuild By Design)’(본지 2014년 8월호 참조)의 책임 연구자이기도 했던 클라이넨버그는, 이 선제적 프로젝트뿐만 아니라 세계 여러 도시의 사례들을 통해 다목적 다기능의 공원이 도시의 “사회적 접착제(social glue)”로 작동할 수 있음을 밝힌다. 책의 원제 “모든 이들을 위한 궁전(Palaces for the People)”에 생략된 주어는 단연코 공원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