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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티칸 ; 지상에 세운 하느님의 천국
  • 환경과조경 2000년 2월
 가톨릭(Catholic)의 총 본산으로 세계에서 가장 작은 나라인 바티칸(Vatican)은 ‘성 베드로성당(BasilicaSan Pietro)’과 ‘바티칸박물관(MuseiVaticani)’을 비롯한 여러 건물들과 ‘성 베드로광장(Piazza San Pietro)’등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옛날 이 지역은 에트루리아인(Etruscan)들이‘바티쿠스(Vaticus)’라 불렀던 지역이다. 당시 이 지역에는 점성가들이 주로 살고 있었는데, ‘바티쿠스’즉 현재의 ‘바티칸(Vatican)’이라는 명칭은 예언자를 뜻하는 ‘바티(Vati)’에서 유래된 것이다. 로마가 고대 로마제국의 수도로 출발했을 무렵에 여러 종교가 로마에 전래되었는데, 동방의 팔레스타인(Palestine)에 기원을 둔 그리스도(Christ)교 즉 기독교(基督敎)도 이런 여러 종교중의 하나였다. 오로지 하느님만을 믿어 로마황제에 대한숭배를 거부했던 기독교는 초기에 네로(Nero) 황제를 비롯한 여러 황제들에 의해 상당한 탄압과 박해를 받았으나, ‘카타콤베(Catacombe)’ 라는 지하묘소를 중심으로 집회를 여는 등 그들만의 신앙을 굳건히 지켜왔다. 세월이 흘러 313년에 밀라노(Milano)칙령으로 콘스탄티누스(Constantinus) 황제에 의해 기독교가 공인되고 392년에는 테오도시우스(Theodosius)황제에 의해 국교로 정해지자, 로마는 기독교와 분리해서는 생각할 수 없는 기독교문화의 중심으로 자리잡았다. 이러한 로마가 다시 번영의 길을 걷기 시작한 것은 15세기 중반이다. 당시의 교황으로 문화예술을 숭상했던 인문주의자 니콜라스(Nicolas) 5세는 교황의 주거지로서 손색이 없도록 로마를 아름답게 꾸미기를 열망했다. 그중에서 가장 야심적인 계획이 성 베드로성당을 재건하는 것이었지만, 교황은 그 열망을 펼치지 못한 채 죽고 만다. 1471년 교황에 취임한 식스투스(Sixtus)4세는 교회국가를 강화시키기 위한 강경책을 펼쳤다. 이로 인해 이탈리아반도 전체가전란에 휩싸였지만, 로마를 수도로 한 교회국가가 당시의 밀라노(Milano)·베네치아(Venezia)·피렌체(Firenze)·나폴리(Napoli) 등의 여러 도시국가들과 어깨를나란히 겨루는 강대국으로 확립된 계기가되었다. 강력한 교회국가로서의 지위와 함께 식스투스 4세는 여러 건축물들을 축조하였는데, 미켈란젤로(Michelangelo)가 그렸다는 ‘천지창조’와 ‘최후의 심판’으로 널리알려진 ‘시스틴(Sistine)예배당’의 이름이 바로 교황의 이름에서 유래된 것이다.
 절대군주로서의 지위를 더욱 공고히 했던 알렉산더(Alexander) 6세의 뒤를 이어1503년 교황에 취임한 율리우스(Julius) 2세는, 미켈란젤로와 라파엘로(Raphael)를 비롯한 르네상스(Renaissance)시대의 위대한 예술가들을 로마로 초청하는 등, 꽃의 도시 피렌체에서 개화했던 르네상스의 중심을 로마로 옮긴 역사적인 인물이다. 
 

※ 키워드: 바티칸, 기독교, 종교
※ 페이지 120 ~ 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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