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물과 땅을 귀중히 여겨야
필자는 <하늘 아래 도시 땅 위의 건축>과 <일본을 걷는다>에 영국 요크의 사례, 일본 가루이자와(輕井澤)의 사례를 적었다. 매우 부러웠기 때문이었다.
1984년 그곳을 여행하면서 내셔널 트러스트 운동에 대해 처음 들었다. 100여년 전 영국에서 시작된 내셔널 트러스트 운동은 3명의소시민이 시작했다. 뜻 있는 사람이 모여 시간과 돈을 축낸 운동이었다.
우리는 무엇을 하고 있는가. 자문자답해 보았다.
1980년대 우리는 한창 개발논리가 지배할때였다. 도심의 고층화, 농촌의 근대화는 국민의 환상이었다. 환경 파괴, 오염 따위의 걱정은 누구의 안중에도 없었다. 땅과 집 짓는 것을 해서 먹고사는 사람들이 오히려 더했다. 건설회사, 아파트 업자가 모두 한 통속이었다. 땅은 오직 평당가격이고 집 값은 치지도 않았다. 개울의 귀중함을 모르는 그들은 그 위를콘크리트로 덮는데 급급했다. 거리의 나무는 이발소 그림 값보다 값어치가 없었다. 행동 개
시했던 그들은 지금 모두 잘산다. 부하도 각방면에 쫙 깔려 있다. 그들은 부끄러워 하지도 않고 지금 회고랍시고 자랑을 늘어놓고 있다. 지금 그들로부터 배운 우리들도 선조로부터 물려받은 자연유산과 문화유적을 개발 또는
생존권 유지라는 이름으로 무차별하게 파괴시켜 나가고 있다. 그 결과로 우리들 주변에는 자랑으로 여길만한 아름다운 자연이나 역사적 건조물을 찾아보기가 어렵게 되었다. 역사적건물과 땅을 귀히 여기고 잘 지켜 나가는 지혜는 어디가도 찾아볼 수가 없는 것이다. 어떤 면에서 1960년대 이후 개발기에 맨 처음 풍비박산이 난 것이 아마 이 시대의 건물들이었을 것이다.
언제나 똑같은 패턴이다. 사정은 다 있을 것이다. 새 건물을 짓기 위한 재원 염출이어려워 이 땅을 부동산 시장에 내 놓는 것이다. 물론 땅 소유주들만의 희생을 강요할 수는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부에서는 관련법령이미비한 데다 한정된 재원 때문에 별도리가 없다고 수수방관하는 태도로 일관하고 있다. 당국에서 대물 환토를 해 주고 이곳을 지키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일 것이다. 주변 이용자의 의식 전환도 중요하다. 이제 민간 차원에서의 자구 노력이 절실한 때인 것이다. 어쨌든 영국과 일본인들은 우리보다 먼저깨달은 것이었다. 죄없는 시민들이 기부금을 모아 토지·건축물을 매입하거나 기증받아 보존·관리·공개하는 운동을 시작한 것이다.
그러나 그들 역시 정부 사람, 도시계획 학자,조경업자, 아파트 업자들은 아니었다. 힘없는 시민들이었다.
정부개발이나 도시화 물결 속에 귀중한 자연과 역사적 환경이 파괴되어 나가자 이를 막겠다는 취지 아래 그들이 나섰던 것이다. 가진자가 버려 놓은 것을 시민들이 뒤치닥꺼리한 것이다.
우리도 이를 모델로 하여 우리 실정에 적합한 내셔널 트러스트 운동을 추진하고자 했던 것이다. 그것이 ‘오시모 운동’이었던 것이다. 힘있는 사람은 우리 주변에 끼지를 않았다. 그들은 지금도 배불리 잘 먹고 잘 살고 있기 때
문에 아쉬운 것이 없었다. 아름다운 산하, 예쁜 건축물은 안중에도 없는 것이다.
그러나 모든 것이 부정적일 수만은 없다. 많은 시민들이 우리의 일에 호응해 주었다. 언론 매체에서도 끊임없이 지원해 주었다. 우리는 그 힘을 바탕으로 당사자들의 중재를 통해 서로에게 양보를 받는 ‘윈-윈 게임’을 했다. 모두가 피해자가 되지 않도록 조심스럽게 일을 해 나갔던 것이다. 우리와 세 당사자 간의 7개월 간의 노력에 의해 1999년 12월 초순 ‘인돈학술원 일대의 교육환경의 훼손과 자연 파괴를 방지하겠다’는 공통된 의견이 모아 졌다. 3천1백21평의 수십억원대의 땅은 한남대학교에서 매입, 영구보존하기로 결정되었다. 이 공간은 이제 ‘문화지구’ 지정을 추진, 아파트가 들어서지 않고 시민들을 위한 문화공간으로 제공될 수 있게 된 것이다. 누구나 걸어들어 갈 수 있고 도심의 한 쉼터를 내 것 같이 즐길 수 있게 된 것이다.
※ 키워드 : 땅, 건물, 오시모 운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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