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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디토리얼] 서울역 고가, 다시 토론할 때다
  • 환경과조경 2017년 7월

빛의 속도로 완공된 ‘서울로 7017’, 서울시 보도 자료에 따르면 개장 한 달 만에 203만 명이 방문했고 연말까지 1,000만 명을 돌파할 전망이다. 박원순 시장이 뉴욕의 하이라인에 올라 서울역 고가를 서울판 하이라인으로 만들겠다고 선언한 2014년 9월 이후, 『환경과조경』은 여러 호에 걸쳐 이 사업의 중간 지점을 포착해 왔다. 특히 2015년 7월호에는 ‘서울역 고가 기본계획 국제지명 현상설계’ 당선작은 물론 출품작 전체에 대한 리뷰와 비평에 많은 지면을 할애해 토론의 장을 열기도 했다. 이번 호에서는 당선작 선정 2년 만에 개장한 ‘서울로 7017’을 다시 특집으로 올린다. 지난 겨울부터 기획을 시작한 편집부는 서울시 담당자, 설계사의 핵심 관계자, 시민 단체 리더, 자문위원, 관련 전문가들을 여러 차례 취재했지만, 아직 물음표를 거두기 쉽지 않은 부분이 남아 있다. 특집에 담은 MVRDV의 글과 인터뷰, 이경훈 교수와 서예례 교수의 비평, 김정은 편집팀장의 취재기와 인터뷰는 어딘가 서로 어긋나 있다. 당위성, 지향점, 과정, 효과 등 여러 지점에서 갈팡질팡해 온 이 프로젝트의 민낯일 수도 있겠다. 

편집부가 내린 잠정적 결론은 서울역 고가가 그야말로 ‘열린 결말’을 향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다시 서울역 고가의 미래를 긴 호흡으로 토론할 필요가 있다. 몇 달간 편집부에서 오고간 많은 대화 뭉치 중 한 토막을 옮긴다.

 

E. 중간에 자문회의에 참여했던 사람들 만나보면 MVRDV가 지나치게 고집을 피웠다, 불합리한 부분까지 너무 지켰다고 말하는 경우가 많아요.

H. 주로 당선작의 가나다 식재와 콘크리트 화분 길이 실제로 구현됐다는 점에 대한 비판인거죠? 그런데 ‘고집을 피웠다’고 보는 시각은 적절하지 않아요. 설계대로 시공하는 건 원칙 중의 원칙입니다. 자문이 그 역할을 넘어서 설계안을 좌지우지하는 건 오히려 고쳐야 할 고질병 중 하나죠. 이번 프로젝트에서 유일하게 돋보이는 건 공모 당선작이 거의 원래대로 실현됐다는 점이에요.

E. 문제는 ‘설계대로’에서 그 ‘설계’가 과연 무엇인가에요. 설계공모 당선작이 바로 그 ‘설계’로 확정돼야 하는 건 아니니까요.

H. 맞아요. 설계공모란 건 적합한 설계자와 설계안의 밑그림을 공정하게 선정하는 절차죠. 따라서 당선작을 그 ‘설계’로 발전시키고 토론하고 합의하는 합리적 과정이 뒤따라야 해요. 

E. 하지만 서울역 고가는 누구나 알듯이 대선용 프로젝트였어요. 과 정에 충실할 시간? 꿈같은 얘기죠.

H. 소통과 과정과 참여의 대명사인 박원순 시장답지 않은, 전형적인 ‘시장표’ 전시 사업이죠. 초기 구상 때부터 이미 불변의 목표 완공 시점이 정해져 있으니 무리한 속도전을 벌일 수밖에 없고 당선작을 그 ‘설계’로 확정하는 과정이 실종되거나 소홀할 수밖에 없었어요.

E. 서울로 7017 덕분에 모처럼 일간지와 방송에서도 조경·도시설계 프로젝트를 다루는 기사와 칼럼이 넘쳐나고 있어요. 내로라하는 논객과 SNS 스타들도 한마디씩은 거들고 있고요.

H. 공론의 장에서 조경과 도시설계가 이렇게 토론된다는 것, 당연히 환영이죠. 그런데 메뉴로 올라오는 걸 보면 못생긴 콘크리트 화분 길, 난데없는 가나다 식재, 삭막한 콘크리트 포장, 옹색한 육교, 그늘이 없다, 걷기에 좁고 복잡하다 등 디자인에 관한 것들인데, 이제야 디자인으로 토론한다는 게 참 아쉬워요. 2년 전 당선작이 발표됐을 때 더 활발하게 갑론을박했어야 할 주제.

E. 2년 전에 충분히 공론화됐어야 할 문제가 뒤늦게 다뤄지고 있다는 말인 거죠?

H. 사실 그때도 조경, 건축, 도시설계 전문가 사회에서는 핫 이슈였죠. 우리 잡지도 기여를 했고. 그러나 시민들은 몰랐던 겁니다. 당선작의 조감도와 이미지 컷들을 아무리 지하철역마다 걸어놓았어도 그저 그런가 보다 한 거예요. 그때 그림 그대로인데도 막상 완공된 공간이 생경한 거죠. 공공 프로젝트는 내 집 앞마당을 내 맘대로 꾸미는 거랑 전혀 달라요. 시민 모두가 클라이언트인 셈이죠. 시민 모두가 동의하지는 않더라도 적어도 다수의 시민이 MVRDV의 당선작에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관심만큼은 가지고 대화의 소재가 될 수 있어야 최소한의 사회적 합의인 거죠. ‘세상에서 가장 긴 화분’이 우리 앞에 등장한다는 걸 시민의 다수가 알고 관심을 가지고 상의하는 과정이 있었어야 해요. 몰랐고 또 기회가 없었으니 시민들은 이제야 뒷북을 두드릴 수밖에.

E. 클라이언트이자 사용자인 시민에게도 설계안에 대한 의견을 낼 권리가 있죠. 마음에 드는지 들지 않는지 보고 알고 이야기할 과정이 있어야 했다, 동감입니다.

H. 개장 후 한 달간 가장 놀라웠던 건 한 일간지에 실린, 전 서울시 총괄건축가의 칼럼이었어요. 런던의 “‘가든 브리지’가 수년 동안 논란만 무성한 채 착공조차 하지 못한 것과 비교하며 불과 2년 만에 완성한 서울의 실천을 부러워하며 조명한다”고 영국 「가디언」의 보도를 인용한 부분 있잖아요. 사회적 합의라는 지난한 과정을 거치고 있는 ‘가든 브리지’가 정상 아닐까요? 토건 시대도 아니고, 속전속결이 자랑거리는 아니죠.

E. 며칠 전 시의회에서 시장은 다른 나라에서 10년이 걸린다고 우리도 꼭 그래야 할 필요는 없다, 비록 2년이지만 강력한 추진력으로 런던이 해내지 못한 걸 이뤘고 충분한 소통의 과정을 거쳤다고 자평하던데, 솔직히 ‘내로남불’처럼 들렸어요.

H. 서울역 고가에 대한 비평은 정치적일 수밖에 없어요. 사업의 구상과 목표 자체가 정치적이기 때문에 정치적 콘텍스트를 괄호 안에 묶어둔 채 순수하게 디자인 자체만을 비평하는 건 핵심을 벗어나거나 의미 없는 푸념에 그칠 가능성이 커요. 무슨 공원 바닥이 콘크리트냐, 화분 속 식물이 불쌍하다, 가나다가 웬 말이냐 같은 이슈는 다른 공원이나 가로에서는 중요하겠지만 서울역 고가의 핵심은 아니죠.

E. 결국 다수의 공간이므로 어떤 설계안이든 충분한 시간을 갖고 충분히 토론하면서 다수의 동의를 얻는 과정이 중요한 거죠.

H. 실은 초기의 공론화 과정이 더 중요하죠. 왜 하는가, 정확히 무엇을 하는가에 대한 공론화, 지금 다시 그 이야기를 들춰서 특집에 담는 건 정말 뒷북이겠죠?

E. 이번 기획에선 다루지 않더라도 여전히 생명력 있는 쟁점인 건 분명해요. 광화문광장 개선과 같은 또 다른 도시 정치 프로젝트가 대기 중이니까요. 무엇을 만드느냐 못지않게 중요한 게 어떻게 만드는가라는 점, 서울역 고가의 교훈. 오늘은 이 정도로 맺을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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