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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경과조경 202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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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매거진 가격 10,000
잡지 가격 1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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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디토리얼] 공간 문해력
생태 문해력, 미학적 문해력이라는 표현까지 있듯 요즘 다양한 분야에서 ‘문해력(literacy)’이라는 용어가 쓰인다. 디지털 리터러시나 메디컬 리터러시처럼 번역하지 않고 그냥 리터러시로 쓰는 경우도 많다. 사전은 문해력을 ‘텍스트를 읽고 이해하는 능력’ 정도로 간략하게 정의하지만, 그 의미와 용례는 매우 다양해지고 있다. 사용 매체와 소통 방식, 사회 참여 등을 결정하는 데 관여하는 기본 소양이나 문화적 기술을 뜻하기도 한다. 텍스트의 해독을 넘어 그것을 생성하고 수용하는 모든 능력을 뜻하는 말로 확장되고 있기도 하다. 나도 어느 유튜브 강의에서 ‘공간 문해력’을 말한 적이 있다. 대략 이런 내용이었다. “어떤 공간이나 장소에 호감을 느끼는 사람에게 뭐가 왜 좋은지 물으면, 답변에 등장하는 표현이 정말 제한적이에요. 멋있다, 예쁘다, 대박이다 정도죠. 사용하는 어휘가 그것뿐이라는 건 곧 공간 문해력이 낮다는 거죠. 도시의 일상생활에서 좋은 공간을 구별하고 잘 경험할 줄 아는 능력, 즉 공간 문해력이 중요하다고 강조하고 싶습니다. 좋은 공간은 도시의 일상을 풍요롭게 합니다. 하지만 정부나 공공이 다 해주지 않습니다. 우리 스스로 공간을 둘러싼 이슈에 개입하고 참여해야 합니다. 공간 문해력이 필요한 이유입니다. 나는 이 도시를 어떻게 경험하고 감각하는가, 그 장소가 왜 좋은가, 저 경관의 어떤 면이 아름다운가, 그런 환경이 우리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는가. 어렵더라도 자주 생각해보고 구체적으로 표현해보면 공간 문해력을 기를 수 있습니다.” 설익은 의미로 공간 문해력 개념을 말했는데, 뜻밖에 많은 피드백이 왔다. 누군가는 “세상을 더 아름답게 살아가게 해주는 능력”이라는 댓글을 달았다. 누군가는 구체적인 의미와 사례를 묻는 이메일을 보내왔다. “‘좋은 공간을 구별하고 경험하는 소양’이라는 뜻 정도로 쓴 말인데, 깊이 있는 연구와 토론을 거친 학술적 개념은 아니”라고 답할 수밖에 없었다. 공간 문해력은 공간이라는 텍스트를 잘 이해하고 해석하는 공간 수용자/경험자의 능력이지만, 그러한 힘은 텍스트의 독해자―즉 공간 수용자/경험자―뿐만 아니라 텍스트 자체―즉 공간 자체―에서도 나온다는 말을 덧붙이고 싶었으나 짐작에 가까운 거친 논리라 숙제로 남기기로 했다. 1차 리노베이션을 마친 목동 ‘오목공원’을 개장 첫날 둘러봤다. 설계공모 당선작 ‘도시의 공공 라운지’(디자인 스튜디오 loci)와 똑같이 완공된 점이 무엇보다 반가웠다. 옛 공원의 바탕 위에 산뜻하고 날렵하게 삽입된 ‘회랑 라운지’. 회랑의 넓은 그늘과 넉넉한 의자가 모두를 환대한다. 회랑 위 공중 산책로에 오르면 풍성한 숲과 도시 경관을 조망할 수 있다. 오래된 숲에 간결하게 삽입된 ‘숲 라운지’는 공원의 시간감을 두텁게 한다. 빈 의자를 찾기 어려웠다. 스스로 의자를 옮겨 자신의 라운지를 디자인하고 오래 머물며 가을을 즐기는 사람들. 그들의 이야기를 엿들으며 공원을 산책하다 여러 번 놀랐다. 공원 디자인과 경관을 품평하는 이들이 곳곳에 있는 것 아닌가. 한 노인은 “공원이 현대식이라 사람들이 공원을 다르게 쓴다”고 말한다. 어느 커플은 “회랑 위 산책로 덕분에 공간이 두꺼워졌다”는 평을 나누며 걷는다. 중학생 몇몇은 “예전 공원도 좋았는데 왜 새로 만들어야 했는지” 토론한다. 이날따라 공간 문해력 출중한 사람들만 모였을 리 없다. 평범한 이용자들이 전문가 못지않은 평가를 하며 공원에 머무는 상황, 뭐라고 해석할 수 있을까. 텍스트(공간)의 구성과 형태가 수용자/경험자의 문해력을 높인 게 아닐까. 언젠가 『환경과조경』 지면에서 공간 문해력을 다뤄보기로 마음먹으며 오목공원을 빠져나왔다. 그간 서울과 수도권뿐 아니라 다양한 지역 도시의 조경 문화를 지면에 담아달라는 의견이 적지 않았다. 편집위원들과 독자들의 이런 의견을 조금이나마 반영해보고자 이번 호 대구 특집을 기획했다. 특집 ‘대구의 도시 문법, 조경 문화로 읽다’는 대구의 도시 맥락과 경관 특성을 다각적 시선으로 독해한다. 정태영(경북대 교수)은 대구의 공원을, 최이규(계명대 교수)는 골목을, 양진오(대구대 교수)는 원도심을 읽는다. 편집자들이 꾸린 기사 두 편도 함께 엮었다. ‘편집부가 꽂은 대구 책갈피’는 1982년부터 2020년까지 『환경과조경』에 실은 대구 관련 기사를 요약, 소개한다. ‘대구 도시 공간 10선’은 유서 깊은 공원부터 새롭게 떠오르는 복합문화공간까지 주목할 만한 대구의 공간들을 살핀다. 이번 대구 특집을 계기로 본지는 1년에 한두 차례 지역 도시의 공간과 문화, 일상을 탐사하는 지면을 마련해볼 참이다.
[풍경 감각] 조각 하늘
빨간 벽돌 다세대주택과 그 사이로 뻗은 전깃줄이 하늘을 여러 조각으로 나누고 있었다. 그곳은 대학교 2학년, 틈새 정원 설계 수업의 대상지였고, 내가 살던 동네였다. 이름은 청량했지만, 시원하게 트인 하늘을 볼 수 없었던 곳. 나무를 심는 대신 전봇대보다 높은 곳에 닿는 공중 계단을 놓아보았다. 손바닥 정도의 공간은 예쁜 것도 없이 빙빙 도는 계단으로 가득 차버렸지만, 그곳에 오르면 하늘을 통째로 볼 수 있을 것 같았다. 잠이 오지 않는 밤이면 빨간 벽돌 속 작은 방에서 나와 골목골목을 돌아 학교 옥상에 올랐다. 시선 저 끝까지 고만고만한 집들이 밀물처럼 들어와 있다. 그 위로 크고 작은 산이 섬처럼 떠 있고, 하늘은 까만 도자기같이 매끄러웠다. 먼 곳의 가로등 불빛은 공기에 일렁거렸는데, 별이 빛나는 것처럼 보이기도 했다. 괜찮아졌다 싶을 때까지 이 풍경을 보고 돌아오곤 했는데, 사실 뭐가 어떻게 괜찮은지는 몰랐다. 귀가 먹먹해지는 걸 모르는 호텔 엘리베이터는 침을 삼키지도 않고 층을 오른다. 모르는 사람들과 루프탑에서 내린다. 맥주를 계산하고 자리에 앉으니, 뜻밖에도 귀뚜라미가 운다. 21층 꼭대기에서 산딸나무와 억새가 살랑인다. 사람들은 작업실 보증금보다 무거운 가방을 끼고 있다. 작업실의 한 달보다 비싼 호텔의 하루를 보내는 사람들일까. 밤하늘을 보며 이상하게도 오래전의 공중 계단을 계속 빙빙 돌고 있다는 생각을 한다.
대구의 도시 문법, 조경 문화로 읽다
대구는 산으로 둘러싸인 도시다. 분지이자 대부분 평지로 이루어진 지형적 특성으로 인해 여름이면 기온이 높게 치솟는다. 이 무더위를 식히기 위해 대구는 1996년부터 ‘푸른 대구 가꾸기’ 사업을 진행해왔다. 수천 그루 나무가 식재됐고, 도심 한복판에 두류공원, 팔공산자연공원 같은 굵직한 공원이 조성되었다. 쓰레기 매립장과 고수부지 주변의 방치된 땅은 생활의 숲으로 바뀌었다. 두세 줄로 풍성하게 심긴 키 큰 가로수와 곳곳에서 찾아볼 수 있는 널찍한 띠 녹지 역시 대구의 특징적 도시 경관이다. 같은 해 시작된 ‘담장허물기 운동’ 역시 도심에 더 많은 녹지 공간을 만들어냈고 마을공동체 문화를 형성시키는 효과를 냈다. 대구는 국내 대도시 중 보기 드문 단핵 도시이기도 하다. 대구에서 가장 번성한 거리인 동성로가 중심에 있고 방사형으로 외곽 시가지가 펼쳐진다. 주요 도로 역시 중심가를 둘러싼 여덟 개의 고리형 순환도로로 구성되어 있다. 시가지에서 가지처럼 뻗은 원도심의 촘촘한 길들은 도시화 과정을 거치고도 살아남았고, 켜켜이 쌓인 오래된 이야기를 들려주는 특색 있는 골목으로 주목받고 있다. 대구는 문화라는 키워드 아래 큰 변화를 준비하고 있다. 2022년 문화체육관광부의 ‘법정 문화도시’로 선정된 달성군은 ‘누구에게나 호혜로운 문화도시’로 변모를 꾀하는 중이다. 2023년 7월에는 군위군이 대구로 통합되며, 특‧광역시 중 가장 큰 도시로 발돋움하게 됐다. 군위군을 상징하는 삼국유사의 고장을 비롯해 풍부한 자연자원이 더해져 문화‧예술적 시너지 효과를 낼 것으로 기대된다. 변화를 앞둔 대구의 도시 문법을 공원, 골목, 원도심을 통해 들여다보고자 한다. 도시를 구성하는 여러 요소를 조경의 관점에서 풀이함으로써 도시 대구의 가치를 재발견하고, 대구에서 진행된 다양한 도시재생 사업의 면모를 살펴본다. 이번 특집이 도시의 구조와 특색이라는 맥락에서 조경 문화의 의미를 살피는 계기가 되기를 기대한다. 진행 김모아, 금민수, 이수민 디자인 팽선민 ------------------------------------------------ 대구 도시공원 르네상스를 위하여 _ 정태열 대구 골목길에 대한 인상 비평 _ 최이규 대구 원도심을 말할 때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 _ 양진오 편집부가 꽂은 대구 책갈피 _ 김모아 대구 도시 공간 10선 _ 금민수
[대구의 도시 문법, 조경 문화로 읽다] 대구 도시공원 르네상스를 위하여
1960년대부터 1990년대까지의 내용은 이정연과 정태열의 논문 “대구 도시공원의 변천에 나타난 사회적 의미 해석”1에서 발췌했고, 2000년대 이후는 대구시 자료를 참조했다. 도시공원 계획‧개원 과정의 특징을 시대별로 분석하고, 이를 시대적 상황과 연관 지어 고찰함으로써 도시공원의 변천에 나타난 사회적 의미를 알아보고자 했다. 향후 대구 도시공원 르네상스에 도움이 되기를 기대한다. 대구 도시공원 태동기 1960년대 이전은 일제강점기와 해방, 한국전쟁과 복구기 등을 거치면서 정치적, 사회적으로 혼란했던 시기였기 때문에 체계적인 공원 계획이 이루어지지 못했다. 1960년대 이후 급격한 산업화와 도시화를 겪으면서 도시민의 건전한 휴식 공간 확보 및 자연 경관 보전의 필요성이 대두됐다. 1967년 공원법이 제정되면서 공원‧녹지 관련 정책은 일대 전환기를 맞게 됐으나 대부분 공원 지정에만 그쳤다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달성공원은 대구의 유일한 공원이었다. 달성공원은 고대 달구벌 부족국가의 성터로, 대구에 있는 도시공원 중 역사가 가장 오래된 곳이다. 1905년(고종 38년) 처음 공원으로 조성된 이래 일제강점기에는 신사가 건립되는 등 각종 성역화 사업이 추진됐고, 한국전쟁을 겪으면서 군사 시설 주둔지로 활용됐다. 1964년 국유 재산인 달성공원이 대구시에 무상으로 양여된 후 재정비가 본격적으로 진행됐다. 먼저 대구시는 공원의 운영 및 시설에 대한 자문 기관으로 시민 대표와 권위자들로 구성된 공원조성위원회를 만들고, 막대한 예산 확보를 위해 시비와 국비를 최대한 할애하고, 시민과 대구 출신 재벌들의 후원을 얻는 등 공원 재정비 계획의 대략적 원칙을 세우고 조성 사업을 시작했다. 공원 설계는 당시 경북대학교에서 조원학을 강의하던 임순문 교수에게 의뢰했고, 1964년 7월 윤곽이 드러나게 된다. 하지만 소요 예산 부족 등의 이유로 실현되지 못했다. 1966년 8월 공원 내 신사 건물 철거를 계기로 공원 재정비를 계획했으나 자금난으로 3년 만인 1969년 8월에 개원했다. 당초 계획했던 어린이 놀이터, 도서관, 분수 시설, 연못 등은 예산 부족으로 손대지 못하고 시민의 여론에 쫓겨 미완성인 채로 문을 열었다. 당시 공원 입장료는 어른 20원, 어린이 10원이었다. 1960년대에 계획‧개원된 또 하나의 공원은 중앙공원(현 경상감영공원)이다. 중앙공원은 조선시대 감영監營이 있던 장소로, 해방 이후에는 경북도청, 공무원교육원 등으로 사용되기도 한 곳이다. 당시 대구에는 달성공원 외에 변변한 공원이 하나도 없었던 상황이었으므로 시민들은 이 부지가 공원이 되는 것을 열망했다. 이를 받아들여 대구시는 1965년 2월 건설부고시로 공원(당시 포정공원)으로 지정했다. 그러나 공원을 조성하겠다는 대구시의 결정과 달리 1966년 5월 경상북도는 이 부지에 관광호텔과 백화점을 건설한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대구시와 경상북도의 의견이 첨예하게 대립하게 된다. 당시 건설부가 시민들의 여론과 결정‧고시 후 1년 밖에 지나지 않은 점 등을 들어 부지의 공원화가 당연하다는 입장을 밝히면서 사건은 일단락됐으나, 공원을 원하는 시민들의 여론에도 불구하고 예산 부족 등의 이유로 공원 조성은 실현되지 못하고 계속 방치됐다. 그러다 1970년 1월에 포정공원 조성계획을 확정하고 10월에 개원했다. 당시 입장료는 어른 30원, 어린이 10원이었다. 1960년대는 국가적으로 경제적 빈곤이 문제시 되던 시기로, 시민은 물론 일부 정책 결정자들조차도 도시공원에 대한 인식이 매우 미흡한 상태였으나, 시민들의 공원을 열망하는 여론이나 기부 문화는 싹트고 있었다. 그러나 이러한 당시 사회적 상황을 종합해보면 시 외곽이나 도심부의 새로운 장소에 도시공원을 조성한다는 것은 재정적 면에서 불가능했으므로 시민의 접근이 용이하고 공원 조성 비용도 절감할 수 있는 도심지 내 역사 유원지의 공원화가 우선적으로 이루어진 것은 당연했다. 대구 도시공원 준비기 1970년대 들어서면서 백만 명을 넘어선 대구 시민이 이용하기에는 공원이 너무 부족한 상태였고, 계속되는 인구 증가와 도시화로 공원의 중요성은 부각됐다. 1965년 2월 공원으로 지정된 앞산공원은 별다른 계획 없이 방치되고 있었다. 대구시는 앞산공원을 자연공원 성격을 띤 대규모 공원으로 개발하고자 1970년부터 개발 사업에 착수했고 1971년 공원조성계획을 수립했다. 계획 당시, 앞산공원은 규모가 커 조성 비용이 많이 소요되어 전체 개발은 불가능했다. 계곡별로 성격이 다른 다섯개 지구로 분류해 1년에 한 지구씩 1975년까지 연차적으로 개발한다는 계획을 세웠다. 그러나 앞산공원 역시 민간 자본 유치 저조와 대구시의 재정난 등의 이유로 개발이 늦어지게 된다. 1975년 12월 앞산순환도로가 준공되면서 다시 조성에 탄력을 받게 된다. 비록 준공 시기를 여러 번 넘기긴 했으나 제2지구는 각종 놀이공원을 갖춘 유기장으로 1979년 4월에 완공됐다. 대구 도심에서 서쪽으로 약 3km 떨어진 서구 내당동과 서당동 일원에 위치한 두류산이 두류공원으로 개발되기 시작했다. 두류공원은 1965년 2월 공원(건설부고시 제1387호)으로 결정‧고시되면서 조성 계획이 마련됐다. 1966년 2월에 발표된 두류공원 종합계획을 보면, 박물관, 대도서관, 야외 음악당, 드라이브 인 극장, 실내체육관, 풀장, 종합경기장, 어린이 놀이터, 식물원, 동물원, 양어장 등과 함께 케이블카와 두류산 정상에 높이 300m의 대구 타워 설치 계획도 포함되어 있었다. 재원 확보 방안을 고려하지 않은 계획이여서 두류공원은 종합대공원이란 이름으로 설계만 된 상태로 방치됐다. 1970년대에 들어서면서 공원 조성이 본격적으로 추진되었고 1974년 두류공원 기본계획이 확정된다. 그러나 공원 전체 면적의 92%가 사유지로 부지 매립 문제와 앞산공원 개발과 병행으로 실시에 따른 대구시의 재정난으로 인해 공원 조성은 지지부진한 상태를 면치 못하다가 1977년 5월 시설을 제대로 갖추지 못한 채 개원됐다. 1970년대에 수립된 도시공원 조성계획은 주로 자연 경관이 수려한 풍경지와 명승지에 구상됐고, 복합적인 성격을 지닌 대규모 공원으로 계획됐다는 점이 특징이다. 인구 증가와 도시화 등으로 도시가 거대화됨에 따라 도시의 기초 기반 시설이라고 할 수 있는 도시공원 또한 보다 발전적 방향으로 계획되는 점은 당연한 현상이다. 그러나 당시의 공원조성계획은 시대적 상황과 재정적 문제를 제대로 고려하지 않고 과도하게 수립되어 결국 재정적 문제 등으로 공원 조성은 계획 기간 내 완공하지 못하게 됐다. *환경과조경426호(2023년 10월호)수록본 일부 각주 1. 이정연, 정태열, “대구 도시공원의 변천에 나타난 사회적 의미 해석”, 『한국조경학회지』 41(3), 2013, pp.72~82. 정태열은 경북대학교 조경학과를 졸업하고 도쿄랜드스케이프연구소(TLA)에서 11년간 다양한 일을 경험하면서 도쿄공업대학에서 공학박사(경관공학)를 취득했다. 이후 서울에서 소울랜드스케이프(SLA)를 창립해 일하다가 2012년부터 경북대학교 조경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사람들이 좋아하는 공간을 역사적 공간에서 찾는 중이며, 풍경을 어떻게 하면 팔 수 있을지 자문하고 있다.
[대구의 도시 문법, 조경 문화로 읽다] 대구 골목길에 대한 인상 비평
석류나무, 콩국 냄새, 오페라, 고요하고 바람이 정체된 밤공기. 대구의 골목길 인상들이다. 사뭇 소박하다. 대구란 도시는 한 쪽으로 치우치는 정치색을 제외하고는 딱히 뭐라 연상 작용이 없는 곳이다. 본인들 외에는 아무도 신경 쓰지 않는 도시랄까. 어지간해서는 좀처럼 올 일이 생기지 않는 도시. 부산, 제주, 속초처럼 누구나 가고 싶어 하는 라이프스타일 도시 근처도 못가는 무척 심심한 도시다. 대도시지만, 그 흔한 호텔 체인도 없다. 노보텔이 있다 없어지고, 최근에 매리어트가 하나 생겼다. 아마 한국에서 재미없는 도시 뽑기 경기를 한다면 1, 2위를 다툴 만한 라이벌은 대전 정도 외에는 없을 것이다. 그래서 대구에 와서 할 만한 유일한 소일거리는 구도심의 골목길을 걸어보는 것이다. 그 골목길에 특별한 무언가가 있냐 묻는다면, 그런 건 기대하지 말고 그냥 잠자코 걸어볼 수는 있다고 하겠다. 대구는 무채색의 도시다. 약간 거무스름한 회색이랄까. 아무 것도 하지 않으니,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도시. 대구에 처음 왔을 때 느꼈던 고요함이 아직 뇌리에 남아있다. 늦여름이었고, 머물던 게스트하우스 근처 골목을 돌아다녔다. 마치 도시만 남겨두고 모든 사람들이 휴거해 버린 분위기는 적막함 이상의 정체된 흐름이었다. 분지라 그런가. 고요함에도 색이 있다면 아마 검회색일 것이다. 일전에 대구의 어바니스트이자 대한민국 최초로 근대골목지도라는 걸 만든 역사 연구가인 권상구에게 외지인으로서 느끼는 대구의 도시색에 대한 질문을 받았다. 한동안 대구시가 공식적으로 내세웠던 도시 브랜드가 ‘컬러풀 대구’였는데, 나는 이 말이 더없이 이질적으로 느껴진다고 대답했다. 정치적 쏠림에 대한 시니컬한 농담인지, 아니면 지루한 도시에 대한 반어법적 표현인지, 다양성에 대한 뜬금없는 강조라니. 목표와 현실이 이렇게 수만 광년 떨어져 있어도 되는 것인가. 대구는 채도가 낮은 도시고, 굳이 그걸 감출 필요가 없다. 단단한 무채색은 세련되고 깊다. 요즘 대구에서 오픈하는 새로운 상업 공간들은 꽤나 감각적이고, 그건 블랙으로 요약된다. Green is the new black(초록이 새로운 표준이 되다)이라고 하지만, 여기서는 나무조차도 회녹색이다. 조용히 골목을 걸으면서 메뉴가 적당하고 디자인이 괜찮은 카페에서 공간과 시간을 즐기는 것. 내가 추천할 수 있는 유일한 팁이다. 낮에는 더위 탓에, 어느 정도 어두워진 밤거리를 걷는 것을 권한다. 습기에 눅진해진 공기 사이를 헤쳐 나가는 경험을 할 수 있을 것이다. 예전에 대구는 천만그루 나무 심기 등 나름 도시 녹화에 신경을 썼다고 하는데, 생활자로서 특별히 무성한 도시라는 느낌은 받지 못한다. 오히려 나에게 대구의 일반적인 골목은 가끔 촘촘히 박혀있는 붉은 석류열매와 함께 연상된다. 예전에는 사과가 유명했다고 하지만, 이제 대구와 사과를 연관 짓는 사람은 아무도 없겠지. 주택가를 걷다보면 종종 만나는 주렁주렁 열린 과일이 석류다. 붉게 익은 석류와 땅에 떨어져 벌어진 틈으로 보이는 과육은 아마 다른 도시에서는 보기 힘든 장면이다. 그 아래에서 평상을 짓고 옹기종기 모여앉아 쉬고 있는 노인들을 볼 수 있다. 석류는 이란 근처의 중동이 고향이니, 한반도에서는 무조건 남부 수종이고 사방이 산으로 둘러싸여 바람이 적은 대구에서 잘 적응했다. 팔공산과 비슬산 줄기에 둘러싸인 분지라는 지형적 특성은 기후 외에도 독특한 역사적 궤적을 만들었다. 대구 시내는 한국의 대도시 중 거의 유일하게 한국전쟁의 직접적 피해를 겪지 않은 곳이다. 미8군 사령부의 제공권 덕에 폭격이 덜하기도 했고, 육상 전투가 낙동강 전선에 한정되었기에 연합군이 지켜낸 마지막 요충지였다. 부산의 경우에 수많은 피난민들이 자리 잡으면서 일종의 난개발이 진행된 것과 달리 대구는 일제가 계획한 도시 구조를 이어받으면서 안정적으로 성장할 수 있었다. 1960~1970년대, 섬유가 주축이 된 공업화와 국가산업단지 조성 또한 성서와 서대구 지역에서 꽤나 체계적으로 진행되었다. 초량 일대에 남아있던 적산가옥이 빠르게 소실된 부산과는 대조적으로, 대구는 군산과 함께 상당량의 일식 가옥을 보유한 도시이기도 하다. 북성로 일대는 일본식 상점가인 마치야에서 해방 후 소규모 공업사 골목으로, 최근에는 다시 예전 가옥의 복원을 통한 재생의 흐름을 볼 수 있는 곳이다. 일본인들이 철수하자 미군 부대에서 흘러나온 물자를 재활용하여 금속과 전기, 공구 등을 취급하는 제조업이 사뭇 어울리지 않는 목조 적산가옥에 자리 잡게 되었다. 100년 가까이 된 건물 안, 온갖 기계의 굉음과 기름때가 거뭇거뭇한 설비 사이에서 작업 중인 수작업 장인들, 일명 브리콜레르bricoleur. 이들의 존재가 부각된 것은 소위 국가적으로 창조경제를 외치던 때였다. 개인이 가진 아이디어를 시험하고 시제품을 만들기 위해 소규모 공업사의 존재는 필수적이기 때문이다. 북성로는 일찍부터 일종의 하드웨어 액셀러레이터로 기능해 온 셈이다. 머릿속에 있는 그림을 그려 가면 물어물어 그걸 제작해 줄 수 있는 사람을 북성로 어디에선가 찾을 수 있다. 발명이나 디자인, 혹은 그저 만들기에 취미를 가진 사람에게 이곳은 영감을 주는 곳이다. 서울로 치면, 을지로나 성수동, 부산의 신암로 같은 곳이랄까. 하지만 막상 북성로에서 뭘 만들기는 쉽지 않다. 업주들이 고령화되어 현장에서 통용되는 은어와 그들만의 용어를 알아듣기가 쉽지 않을 뿐만 아니라 체계화된 검색 도구가 없어 온종일 발품을 팔아도 허탕을 칠 때가 많다. 권상구는 현장에서 쓰이는 단어들을 수집하여 요즘 우리가 알아들 을 수 있는 말로 풀어낸 책을내기도 했다. 하지만 이러한 노력들이 단지 지나간 시절에 대한 노스탤지어나 단순히 지적 취미에 그치지 않으려면 기술자와 기술을 데이터베이스화 하여 손쉽게 검색할 수 있는 시스템이 필요할 것이다. 또한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명맥이 끊어질 손기술들이 다음 세대로 전달될 수 있도록 후계자들에 대한 교육을 지원하고 양성하는 일이다. 적산가옥이라는 과거의 유물보다 거기서 쌓인 경험과 노하우가 훨씬 값지기 때문이다. 북성로 서쪽 끝 지점은 유서 깊은 달성공원이다. 대구의 종가집이라 할 달성 서씨들이 모여 살던 곳으로 일제가 신사와 동물원으로 바꾸었다. 한강 이남의 창경궁 정도가 되겠다. 지금은 이용자의 대다수가 노인들이라 탑골공원의 분위기를 풍기는데, 역시나 매일 새벽에는 도로변과 인근 골목에서 장터가 열린다. 오전 4시부터 상인들이 좌판을 펼치기 시작하는데 어둑어둑한 길에서 생선이나 채소를 파는 모습이 이채롭다. 차량 통제가 있는 건 아니지만, 도로는 사람들로 붐벼 널찍한 프롬나드를 방불케 한다. 이런 곳을 돌아다니는 전문 상인들이 대부분이지만, 가끔 텃밭에서 기른 채소를 작은 소쿠리에 담아 파는 할머니들도 볼 수 있다. 뱀파이어처럼 새벽 시장은 해가 뜨면 파장 분위기가 된다. 주변 상권에는 아침부터 노인들이 삼삼오오 모여 소주를 들이키곤 한다. *환경과조경426호(2023년 10월호)수록본 일부 최이규는 서울대학교에서 인류학과 환경관리학을 전공하고 캐나다 토론토대학교에서 조경학 석사학위를 취득했다. 국내외 설계사에 근무했으며, 현재 계명대학교 공과대학 생태조경학전공 교수로 재직하면서 식물벤처기업 에어리 대표를 맡고 있다.
[대구의 도시 문법, 조경 문화로 읽다] 대구 원도심을 말할 때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
먼저 말하고 싶은 것 먼저 말하고 싶은 것은 이것이다. 그래서 원도심은 재생되었을까? 막대한 예산이 집행된 도시재생 사업의 결과와 효과가 ‘참으로’ 궁금하다. 이렇게 질문하니 원도심이 사업 방식으로 재생될 수 있는지 의문스럽다. 원도심 재생이라는 표현은 어쩌면 관료, 공무원, 지식인 그룹의 상상속에서 존재하는 판타지적 기호가 아닐까. 과연 원도심은 재생될 수 있을까? 다른 지자체 사정은 어떨까? 대구 외의 여타 지역은 이전 정부가 야심 차게 추진한 도시재생 사업의 효과를 톡톡히 누리고 있는지 궁금하다. 결론을 말하자면, 대구 원도심은 재생되지 않았다. 아니 재생될 수 없었다. 애초에 원도심 재생을 기대한 게 무리였다. 이제는 말할 수 있겠다. 원도심은 재생될 수 없다고 말이다. 사람이 재생될 수 없는 것처럼. 원도심은 사업 방식으로 인위적으로 재생되는 게 아니다. 원도심은 진화한다. 원도심은 단지 오래된 거리, 골목, 집 그리고 원주민을 뜻하지 않는다. 원도심은 오래된 거리, 골목, 집, 원주민을 포함하여 유입자, 사회적 기업과 협동조합 커뮤니티가 종횡으로 엮인 복잡 생태계다. 또한 원도심은 과거‘들’과 현재‘들’의 서로 다른 시간이 교차하는 복잡 생태계다. 놀라운 사실은 이 복잡 생태계가 진화한다는 것이다. 물론 그 진화의 표정은 한 가지로 그려지지 않는다. 대구의 대표적인 원도심인 북성로. 북성로 거리에는 여전히 공구 가게가 성업 중이다. 도시재생 사업을 계기로 더 주목받은 북성로 공구 가게. 이 가게들의 몰락을 예고한 리뷰와 언론이 적지 않았다. 실제로 문닫은 가게도 없지 않다. 그러나 아직 이 거리의 주인공은 공구 가게들이다. 북성로 거리와 달성공원의 교차 지점 도로에는 여전히 새벽마다 번개 장터가 열린다. 토요일, 일요일 번개 장터는 인파로 가득하다. 향촌동 골목 콜라텍에는 어르신들이 출입하고 있다. 변하지 않는 원도심의 풍경이다. 달라진 풍경도 있다. 북성로 입구에 고층 주상복합건물이 여러 동 신축되고 있다. 올해 내로 입주 예정이라고 한다. 달라진 풍경이 더 있다. 청년 사장이 영업하는 레트로 카페들이 원도심에 입점하고 있다. 더 놀라운 풍경도 있다. 대구 교동시장과 인근은 지역의 ‘힙’한 청년들이 즐겨찾는 거리로 탈바꿈했다. 정리하면 이렇다. 2023년 가을의 대구 원도심은 불변과 가변이 뒤섞인 진화의 풍경을 연출한다. 말하고 싶은 것은 이렇다. 불변과 가변이 혼재된 대구 원도심의 진화는 도시재생 사업과는 무관하게 전개된 풍경이거나 일상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이 풍경과 일상은 그 자체로 선이거나 악이 아니라는 것이다. 이 풍경과 일상은 대구 원도심의 풍경과 일상이며 우리는 이 풍경과 일상을 선입견 없이 대해야 한다는 것이다. 나는 원도심을 재생 대상으로 간주한 원도심 초보자였다. 수제화 골목에 ‘스토리텔링 공방 북성로대학’을 만들 정도로 원도심 마니아를 자처하며 도시재생 사업의 예산을 지원받아 이런저런 일을 주도하거나 관여했다. 아마도 그때의 나는 원도심은 재생될 수 있다는 믿음이 있었을 게다. 그러나 그게 아니었다. 원도심은 재생되는 어떤 대상이 아니었다. 원도심은 사업 대상이 아니라는 반성과 원도심은 스스로 진화하는 생태계라는 성찰을 하기까지 적지 않은 시행착오가 있었다. 시행착오를 거듭하며 원도심은 사업 대상이 아니라 사랑의 대상임을 깨달았다. 원도심 진화의 풍경을 조망하고 인정하는 너른 사랑이 내게는 부족했다. 정말 말하고 싶은 건 대구에 교동시장이 있다. 교동시장은 대구역 정문에서 그리 멀지 않다. 교동시장의 교동은 고유명사가 아니다. 향교가 문을 연 마을은 대개 교동으로 불린다. 교동마을이 전국에 산재한 이유이다. 대구도 그렇다. 본래 교동시장 인근에 대구 향교가 있었다. 현재 대구 향교는 남산동에 있다. 1932년 일제 총독부는 대성전, 명륜당 등을 남산동으로 이전한다. 이리하여 대구 향교의 역사가 남산동에서 새로이 시작한다. 향교는 이전했으나 마을 이름은 바뀌지 않는다. 도깨비시장으로 불리던 교동시장은 한국전쟁기에 탄생한다. 교동시장의 인기 품목은 미군 PX 군수품이었다. 이렇게 문을 연 교동시장은 여타의 재래시장과는 성격이 다르다. 다른 재래시장에서 찾기 어려운 구제 의류, 일제 상품, 전자 제품, 시계 가게 등이 교동시장에는 흔하다. 그런데 교동시장이 언제나 호황을 누릴 수는 없었다. 교동시장은 손님들의 발길이 뜸해지자 도시재생 사업의 대상으로 지목된다. 그런데 교동시장을 청년들의 레트로 거리로 바꿔낸 주역들은 아이러니하게도 지역 청년들이다. 도시재생 사업의 결과가 아니다. 교동시장과 인근의 오래된 집과 건물, 거리, 골목은 전형적인 원도심의 표상을 연출한다. 그런데 이 거리가 ‘힙’한 청년들의 아지트로 변모하고 있다. 교동의 변모는 인근 동성로와는 비교될 만한 현상이다. 대구 대표 상권 동성로는 터주 역할을 하던 대구백화점이 문을 닫으며 부진을 겪고 있다. 교동은 그렇지 않다. 교동시장과 그 인근에는 터주 역할을 하는 고급 브랜드가 없다. 고층 건물도 없다. 높아야 2층, 3층 게다가 구축이다. 골목은 미로 같다. 임대료는 교동이 동성로보다 저렴하다. 그런데 이런 원도심의 여건이 교동을 살린다. 교동이 대구 레트로의 성지로 변모하고 있다. 교동의 진화는 누가 의도한 게 아니다. 정책 당국자들은 더욱이나 아니다. 누가 의도하였다 하여 이렇게 교동이 바뀔 일이 아니다. 지자체마다 앞다퉈 개업한 청년몰이 실패할 수밖에 없는 이유가 있다. 그 주된 이유가 거리 생태계와 무관한 청년몰의 개업이다. 반면에 교동은 그렇지 않다. 교동은 진화의 여건이 충분하다. 시장, 구축 건물, 거리, 골목이 교동을 청년들의 레트로 거리로 바꿀 진화 토대다. 교동의 예기치 않은 진화를 반기는 마음이 컸다. 그리고 그와 함께 원도심의 진화를 초래하는 청년들의 더 많은 관여와 상상력을 응원하는 마음이 컸다. 원도심의 인문학적 가치도 그렇다. 원도심의 인문학적 가치도 진화할 수 있고 진화해야 한다. 원도심이 진화할 수 있는 생태계라면 원도심의 인문학적 가치도 그럴 수 있을 것으로 생각된다. 원도심의 인문학적 가치가 선험적으로 존재하는 어떤 이론이거나 주제가 아니라는 말이다. 원도심의 인문학적 가치 역시 충분히 진화할 수 있으며 어쩌면 더 진화해야 한다는 얘기다. 원도심의 인문학적 가치는 박제화된 담론이지 않아야 한다. 만약 원도심의 인문학적 가치가 박제화된 담론처럼 이야기된다면 청년 세대들에게 환영받기 어렵다. 아니 청년 세대만이 아니라 지역 주민들에게 환영받기 어렵다. 이는 대구 원도심도 해당한다. 대구 원도심의 인문학적 가치는 재발견, 재해석될 수 있다. 그리고 재구성될 수 있다. 대구 원도심이 식민지 근대를 경험하며 탄생한 배경을 고려하면 더욱 그렇다. 한 예로 대구 원도심에는 ‘희움일본군위안부역사관’이 있다. 대구를 포함한 경상도 지역에 위안부 강제 연행을 겪은 어른들이 있는 까닭이다. 물론 위안부 강제 연행이 비단 대구와 경상도에 한정하여 일어난 것은 아니다. 그런데 위안부 할머니를 기억하는 역사 관은 지역에 인권과 평화라는 인문학적 가치를 파급한다는 점에서 위안부 문제를 인권 문제로 현재화하는 효과가 있다. 이 또한 인문학적 가치의 진화이다. 대구 원도심의 인문학적 가치를 둘러싼 다양한 논의는 필요하다. 그런데 이 논의 과정에서 청년 세대의 참여가 긴요하다. 그런데 청년 세대 의 참여는 언어적 이론으로 피력될 이유는 없다. 청년 세대의 참여는 놀 이와 퍼포먼스, 축제의 방식으로 얼마든지 가능하다. 매년 5월이면 대구 중구 일대에서 거리 페스티벌이 열린다. 이름하여 ‘파워풀대구페스티벌’. 적어도 페스티벌이 열리는 날은 거리의 주인공이 시민이다. 차로를 막고 개최된 여러 행사 중에 유독 돋보였던 것은 K-POP 커버 댄스 경 연이었다. 그렇게 기분이 좋을 수가 없었다. 청년들이 저렇게 신나게 춤을 추는 한, 이 나라에 희망이 있구나 싶었다. 저 청년들의 춤이 저 세대들의 언어이구나 싶었다. 그들은 그들의 언어로 원도심 거리에서 자기를 표현했다. 인문학적 가치라는 게 뭘까? 인문학에서의 ‘문’을 나는 꼭 글로 해석하지 않는다. 나는 ‘문’을 ‘무늬’로 더 해석한다. 인문학의 ‘인문’은 ‘사람 의 무늬’라는 말이다. 그 무늬는 우리들의 노래일 수도 율동일 수도 호흡 일 수도 있다. 지역 원도심에서 노래를 부르고 춤을 추고 기록하는 청년 들을 인문학의 새로운 주체로 보고 싶은 마음이 각별하다. 또 다른 예를 들고 싶다. 해마다 10월이면 대구 향촌동 골목에서 독 립출판작가들의 북페어가 열린다. 2022년 10월 22일부터 23일, 이렇 게 이틀 ‘아마도 생산적 활동’이라는 슬로건으로 북페어가 열렸는데, 8회를 맞이해 대구의 대표적인 독립출판서점 더폴락과 인근의 어울리커피클럽에서 진행됐다. 이 북페어가 열리는 장소는 향촌동 골목이다. 향촌동은 ‘향기로운 마을’이라는 뜻을 가졌다. 향촌동의 유래는 식민지 대구로까지 소급된다. 대구에서 향촌동 골목은 한국전쟁 전시 문화의 본산으로 기억된다. 그럴 이유가 있다. 한국전쟁 때 대구는 경향 각지 피난민들의 집결지였다. 서울에 이어 대전을 잃은 한국군은 대구에 사령부를 차린다. 대구가 반격의 거점이었다. 서울의 내로라하는 시인, 소설가, 음악가, 화가들이 대구로 피난 왔다. 그들은 향촌동 골목에서 우정과 돌봄의 후일담을 남겼으니 그 주역이 구상 시인이다. 독립출판작가들의 북페어는 향촌동 골목에 또 다른 기억을 입히는 작업이다. 과거의 전시 기억만이 아니라 독립출판작가들의 현재의 기억 이 입혀진 향촌동 골목. 골목은 이처럼 여러 기억을 보유할 때 빛나는 인문학의 자산으로 탄생한다. 그래서 이 북페어가 좋았다. 대구 독립출 판작가들의 북페어는 향촌동 골목을 청년들의 골목으로 바꿔내는 놀이 였고 축제였고 사건이었다. 향촌동 골목이 전시 문화의 본산으로 기억되는 것을 반대하지 않는다. 그러나 향촌동 골목이 전시 문화의 본산으 로‘만’ 기억되기를 바라지는 않는다. 향촌동 골목이든 원도심의 어떤 골 목이든 기억의 중첩을 거듭하며 원도심의 인문학적 가치를 갱신해야 한다. 독립출판작가? 서울과 부산에 비하자면 그 수가 많지 않다. 그리고 독립출판서점도 서울과 부산에 비하면 그 수가 많은 게 아니다. 그러나 대구에서도 어느새 ‘아마도 생산적 활동’이라는 이름으로 북페어가 열리고 있다.북페어 참여 작가들과 대화를 나누는 게 즐거웠다. 그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책을 몇 권 샀다. 그러는 사이에 졸업한 제자를 북페어 현장에서 반갑게 만났다. 나는 그날 책을 산 게 아니다. 나는 그날 청년들이 새롭게 일궈낸 대구 원도심의 인문학적 가치를 산 것이다. 정말 말하고 싶은 것은 이렇다. 대구의 인문학적 가치, 좀 젊게 가자는 말이다. 그래야 대구 원도심이 인문학적 자산으로 진화할 수 있다는 말이다. 대구 원도심이 특정 시기의 기억만을 보유하지 않게 하자는 말이다. 대구 원도심의 인문학적 가치가 과거 회귀나 회고에 머물지는 않아야 한다. 다시 말하고 싶은 건 대구 원도심 진화의 풍경은 다양하다. 교동은 청년들의 레트로 거리로 진화하고 있다. 식민지 대구의 표상인 북성로 입구에는 고층 주상복합 건물이 우람하게 세워지고 있다. 어르신들은 콜라텍 출입을 계속하실 것이다. 청년 사장이 개업한 카페는 더 늘어날 추세다. 또 다른 한편으 로는 북성로 도시재생 사업은 이렇다 할 성과 없이 마무리될 상황이다. 어떤 풍경은 반가움으로, 어떤 풍경은 우려로, 또 어떤 풍경은 아쉬움으 로 나에게 남는다. 그런데 반가운 풍경, 우려의 풍경, 아쉬움의 풍경 모두 원도심 진화의 풍경이다. 대구 원도심의 인문학적 가치도 그럴 것이다. 대구 원도심의 인문학적 가치도 다양하게 진화할 수 있다. 원도심을 지배하는 권위적이고 절 대적인 인문학적 가치는 애초부터 없다. 또한 최고의 가치도 없다. 진화 하는 원도심의 풍경처럼 원도심의 인문학적 가치도 진화할 수 있다. 예 를 들면 이렇다. 틈틈이 들르는 극장이 있다. 대구 오오극장이다. 정확 한 명칭은 ‘대구경북영화영상사회적협동조합’ 오오극장이다. 오오극장 은 대구 원도심의 인문학적 가치를 견인하는 독립영화 전용관이다. 시 설은 롯데시네마나 CGV와 같은 멀티플렉스를 따라갈 수 없다. 그렇더 라도 나는 틈틈이 오오극장에 들른다. 8월의 대구는 ‘덥다’라는 말이 무색하다. 습기까지 더해져 8월의 대구는 사람을 완전히 지치게 한다. 8월 대구에서 오오극장 중심으로 ‘대구단편영화제’가 열린다. 올해로 24회째다. 국내 독립영화계를 대표하는 유일한 전국 규모의 경쟁영 화제가 바로 ‘대구단편영화제’다. 그런데 이 영화제를 아는 대구 시민들이 많지 않다. 전주와 부산만 영화제가 있는 게 아니다. 대구 원도심에서도 개성적인 영화제가 열린다. 이 영화제에서 재현되는 대구는 어른 들이 경험한 대구와는 또 다른 대구다. 이 대구에는 지역 청년들의 삶이 다양하게 재현된다. 그들은 영상으로 그들의 대구를 이야기하고 있었 다. ‘대구단편영화제’ 때문에 8월의 대구가 뜨거웠다고 나는 말하고 싶다. 다시 말하고 싶은 것은 이렇다. 대구 원도심의 인문학적 가치가 고여 있지 않게 하자는 것이다. 이상화, 현진건만 말할 게 아니다. 국채보상운 동의 의의만을 말할 게 아니다. 지금 여기, 특히 청년들이 만들어 내는 인문학적 가치도 이야기하자는 말이다. 대구 원도심의 장소를 밀어내고 신축 아파트는 완공되고 있다. 원도심의 오래된 거리와 골목, 집들은 사라지거나 철거되고 있다. 이러는 사이에 교동은 청년들의 레트로 거리로 탈바꿈했다. 대구 오오극장은 ‘대구단편영화제’를 거행했다. ‘아마도 생산적 활동’이라는 이 름의 북페어는 올해에도 개최되리라. 롤러커피처럼 대구를 전국적인 커피 명소로 이끌 청년 커피 장인들은 계속 등장할 것이다. 골목 책방들은 폐업과 개업을 반복하리라. 그리고 청년들은 계성중학교에서 춤을 춘 뉴진스처럼 어딘가에서 춤을 추고 있을 것이다. 이들의 활약이 대구 원도심의 인문학적 가치를 견인하는 몸짓이 아 닐까? 대구 원도심의 인문학적 가치가 원도심 골목과 거리에서 영화를 찍고 글을 쓰고 춤을 추는 청년들에 의해 진화하기를 응원한다. 그럴 수 있고 그렇게 가야 한다. 느리더라도 꾸준히 그렇게 가야 한다. 그래야 원도심의 인문학적 가치가 죽지 않고 지역도 소멸의 오명을 피할 것이다. 양진오는 서강대학교 국어국문학과에서 공부했다. 현재는 대구대학교 문화예술학부에서 학생들에게 지역 문화, 스토리텔링 창작을 강의하고 있다. 대구 수제화 골목에 스토리텔링 공방 북성로대학을 만들어 마을 인문학 활동을 병행하고 있다.
[대구의 도시 문법, 조경 문화로 읽다] 편집부가 꽂은 대구 책갈피
이번 특집 의도 중 하나는 한 권의 잡지를 후루룩 훑어보는 것만으로 대구를 궁금하게 하는 것이다. 대구라는 도시의 역사와 특징을 완벽하게 읽어내지는 못하더라도, 한 번쯤 가보고 싶어지게 만들고 여행의 큰 틀을 잡을 수 있도록 돕는 지면을 꾸리고자 했다. ‘편집부가 꽂은 대구 책갈피’는 『환경과조경』에 실렸던 대구와 관련한 기사를 정리해 소개한다(1982년~2020년). 모든 장면을 포착했다고 할 수는 없겠지만 대구의 조경사에서 중요한 지점 몇몇을 이어 변화의 궤적을 그려볼 수 있을 것이다. 글쓴이, 글의 제목, 발행년월을 표기해 언제든 궁금해지면 책갈피가 꽂힌 책장을 열어볼 수 있도록 했다. 참고로 환경과조경은 2014년 이전에 발행한 잡지를 홈페이지에서 무료로 공개하고 있다. 단, 가입은 필수. 지방도시의 녹지행정: 대구직할시의 녹지 행정 이재환, 1989년 3월호 산업화의 여파로 자연이 점점 사라지고 지방자치제가 활성화되는 시기에 지방 도시의 바람직한 녹지 정책이 어떻게 이루어져야 하는지 살피는 특집을 기획했다. 서울특별시와 당시 직할시였던 대구, 인천, 광주를 다뤘다. 당시 대구직할시 도시계획국 녹지과장 이재환이 글을 썼다. 대구시 녹지 공간의 현황 및 이용 실태, 대구 공원 정책의 기조 및 공급 지표, 개발 계획의 문제점 및 개원방향, 녹지 공간 창출에 대한 의견이 주요 내용이다. 당시 대구는 급격한 인구 증가에 따라 도시의 과밀화를 겪고 있었다. 더불어 소득 증대에 따른 여가 선용 기회가 확대되며 시민들은 공원, 녹지 공간의 확충과 시설의 수준 향상을 필요로 하게 되었다. 이에 부응해 대구는 1982년 ‘제1차 5개년 공원, 유원지 개발계획’(1982~1986)을 수립해 두류공원과 범어공원을 비롯해 8개소의 도시공원을 개발 조성했다. 이어 ‘2차 5개년 공원, 유원지 개발 계획’(1987~1991)을 수립해 팔공산 자연공원을 활용해 개발 광역관광권을 형성하는 데 힘쓰고 있었다. 녹지 공간이 집중적으로 개발되었지만, 절대적인 녹지 공간이 부족해 유지·관리에 많은 어려움이 뒤따르고 그 비용이 막대하게 들고 있다는 사실을 문제점으로 지적했다. 캠퍼스 조경: 경북대학교 김용수, 1990년 11월호 전국 대학교의 캠퍼스 조경을 살펴보는 연재 꼭지에 경북대학교를 소개했다. 당시 경북대 조경학과 교수 김용수가 글을 썼다. 경북대학교는 1946년 대구사범대학, 대구의과대학, 대구농과대학을 모체로 문리과대학과 법정대학을 신설해 1952년 국립종합대학교로 개편됐다. 당시에는 25만평 규모의 부지에 12개 단과대학 87개 학과와 6개 대학원의 154개 학과를 갖추고 있었다. 경북대학교 캠퍼스는 본래 산격동과 북현동 일대의 야산이었고, 지반 대부분은 청석으로 이루어져 있었다. 게다가 극한 극서로 유명한 대구의 기후 특성으로 인해 식생 생육의 기반이 좋지 못했다. 교육 기능의 역할을 초월해 더 큰 스케일의 단지 혹은 도시로서의 질을 겸비한 활기 있는 장소를 만들고자 했다. 부적절한 식생 기반과 기후 악조건을 고려해 쾌적한 환경 조성에 역점을 두었다. 이를 통해 국내 최초 꽃시계를 비롯해 일청담, 지도못, 야외 박물관, 교시탑과 시계탑, 야외 공연장, 장미원, 운동 공간, 학생회 관할 광장, 다목적 강당 앞 광장, 본관 앞 광장 등이 조성됐다. 태창철강 성서공장 1992년 12월호 1992년 도시환경문화상 조경부문 수상작 중 하나로, 설계·감리는 녹지환경연구소가 맡았다. 일반적으로 공장 조경은 공장의 본래 기능인 생산 기능에 치중하기 마련이다. 그러나 태창철강 성서공장의 경우 토지이용계획단계에서부터 인공적이고 딱딱한 공장의 이미지를 부드럽게 하는 데 중점을 두었다. 나아가 종업원의 후생 복지, 지역 사회에서의 봉사 등 여러 측면에서 조경에 보다 많은 역할을 부여해 정원의 위치와 면적을 결정했다. 공장은 부지 안쪽으로 배치하고 길이 120m, 폭 40m의 정원을 과감하게 대로변에 접하도록 조성했다. 대로를 따라 높이 3m 정도로 계획했던 옹벽은 1m 이하로 낮춰 경사면으로 처리했다. 더불어 투시형 담장을 설치함으로써 외부에서도 감상할 수 있는 개방된 정원을 전개시킨 것이 핵심이다. 대구광역권 녹색플랜과 환경보전전략 이석희, 1996년 5월호 특집 ‘지방자치단체 녹색플랜과 환경보전’의 두 번째 시리즈에 수록된 글이다. 당시 대구경북개발연구원 지역개발실장 이석희가 글을 썼다. 주요 내용은 대구의 입지 특성과 개발 여건, 환경 오염 실태, 녹지자연도, 환경 보전과 지방자치단체의 역할 등이 다. 당시 대구는 ‘지방의제 21’의 제정과 환경도시 선포를 앞두고 있었다. 이에 대기, 수질, 생활환경의 오염을 적극 예방하고, 기존에 실시하고 있는 각종 환경 사업과 연계해 ‘푸른 대구 가꾸기 사업’(1차, 1996~2006)을 진행했다. 11년간 천만 그루의 나무 심기를 목표로 추진해 1,093만 그루를 심었으며, 그 성과로 한국조경학회가 주관하는 2001년 제1회 한국조경대상에서 최우수 기관으로 선정되어 대통령 표창을 수상했 다. 전국 광역자치단체, 기초단체, 연구 기관 등에서 110회에 걸쳐 벤치마킹을 하기도 했다. 2차 사업(2007~2011)은 담장 없는 열린 문화 실현, 일상생활에서 즐길 수 있는 생활권 녹지 및 공원 확대 조성, 시민과 함께하는 쾌적한 숲의 도시 실현을 목표로, 3차 사업(2012~2016)은 양적 목표 달성을 넘어서 디자인 질을 높이는 녹화 사업으로 추진됐다. 2017년부터는 미세 먼지 절감과 도시 열섬 현상 완화를 목표로 4차 사업이 진행 중이다. 실험적 도시가로 테마공원: 들샘공원 1999년 2월호 대구시 북구 동북로 229에 위치한 공원으로, 박찬용 교수(영남대학교 조경학과)와 디멘션 조경설계사무소가 설계했다. 대상지는 예부터 맑은 샘물이 솟아나 농사가 잘 되었다고 해서 ‘물새미’라 불리던 곳이다. 북구의 ‘휴먼도시 북구 창조’ 발전 계획에 따라 테니스장으로 활용되고 있던 부지를 도시가로형 테마공원으로 새롭게 바꾸었다. 공원법상으로는 어린이 공원에 해당하지만, 지역의 상징성을 지녔으며 접근성이 좋다는 점을 고려해 어린이 이용 중심의 단편적인 기능을 위주로 하기보다 지역 주민의 정서와 문화 행사를 담는 복합 용도의 공동 휴식 공간으로 활용하고자 했다. 공간감과 인지성을 높인 주진입광장, 중앙수변광장, 휴게광장, 조형벽체, 놀이 공간과 가로 공간으로 구성된다. 한국도로공사 경북지역본부 사옥 1999년 9월호 한국도로공사 경북지역본부 사옥의 조경은 조경과 박수미가 설계하고 감독했다. 토목 공사 일정이 늦어지며 식재 공사 물량의 80%를 식재 부적기인 혹서기(6~7월)에 시공하게 되었는데, 여러 노력을 기울여 하자 발생률을 최소화한 과정을 담은 기사다. 이를 통해 얻은 교훈을 다섯 가지로 정리했다. 첫째, 생육 기반 조성 공종을 조경 공사 설계 단계부터 적극 반영해야 한다. 둘째, 조경용 보조 약품의 국산화 및 사용 기준의 명확한 설정이 필요하다. 셋째, 수목의 대형 용기(컨테이너) 재배가 정착되어야 한다. 넷째, 식재 공사에 유지·관리비를 적극 반영해 철저한 사후 관리를 꾀한다. 다섯째, 부적기 시공의 경우, 적기 시공과 시공 단가의 차별화가 필요하다. 현장감독 박수미와 함께 확장 구간을 감독한 이흡 과장(한국도로공사 경북지역본부 조경과)은 “조경 관리는 사후 관리만이 아닌 공사의 시작 단계부터 고려되어야 하며 공사의 엄연한 과정이라는 인식이 확산되어야 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운암지 수변공원 1999년 10월호 대구시 북구 구암동 349에 위치한 공원으로, 박찬용 교수(영남대학교 조경학과)와 디멘션 조경설계사무소가 설계했다. 당시 대구의 여러 저수지는 도시개발로 인한 농지 감소에 따라 무차별적으로 사라지고 있었다. 대상지 역시 농지가 택지로 개발되는 과정에서 매립될 저수지였으나, 조경가의 강력한 권유와 지자체의 적극적 지원으로 수변공원으로 재탄생할 수 있었다. 완성된 공원에 많은 시민이 찾아와 대구 경실련이 실시하는 도시환경문화상에서 대상에 선정되기도 했다. 설계 주안점은 자연성과 현대적 감각의 조화였다. 기존 저수지 보존을 원칙으로 하되, 저수지 동쪽 일부 밭으로 이용되고 있는 평지를 집약적으로 개발하는 것을 기본 방향으로 삼았다. 이에 따라 동쪽에 전망데크, 계류, 놀이 시설, 체력 단련 시설을 설치했다. 전망데크 주변에 무대 개념을 도입해 친수 공간의 이용성을 함께 도모했다. 반면 자연학습장으로의 기능을 위해 수변에는 목재 데크를 조성해 저수지와 사람의 관계를 더욱 밀착시켰다. 국채보상운동기념공원 1단계 완공 1999년 10월호 국채보상운동기념공원의 1단계 구역이 완성됐다. 대구시는 국채보상운동의 발원지인 대구에 나라 사랑 정신을 기리고자 49억 원의 예산을 들여 국채보상운동기념공원을 계획했다. 1만3천여 평 중 1단계 구역에 해당하는 2천 7백여 평에 종각과 광장, 진입로, 조형 분수, 산책로 등이 조성됐다. 광장에는 달구벌대종이 설치된 종각이 들어섰는데, 종각 후면부에 조성될 잔디밭과 함께 대규모의 행사장으로 쓰이도록 계획했다. 광장의 바닥 포장에는 종의 울림을 상징하는 곡선을 반영했다. 진입부에서 시작하는 산책로에는 단풍나무를 열식하고, 그 아래 아이비와 옥잠화, 맥문동, 원추리를 군식해 숲과 같은 분위기를 연출했다. 공원의 일부를 완성해 개장했음에도 하루 1천여 명 이상의 인파가 몰릴 정도로 호응이 좋았고, 특히 동성로와 가까워 젊은 층의 유입이 활발했다. *환경과조경426호(2023년 10월호)수록본 일부
[대구의 도시 문법, 조경 문화로 읽다] 대구 도시 공간 10선
편집부는 이번 특집을 위해서 주목할 만한 대구 도시 공간 10곳을 선정해 안내한다. 대구라는 도시가 궁금해서 방문했는데, 막상 어디로 가야할지 감이 안 잡히는 이들을 위해서 준비했다. 유서 깊은 공원부터 새롭게 떠오르는 복합문화공간까지 다채로운 공간을 잡지로 미리 둘러보며 대구가 가진 매력을 살펴보자. 두류공원 대구광역시 달서구 공원순환로 36 대구의 중심에 위치한 도시공원. 산자락에 조성된 공원을 가로지르는 두류공원로를 중심으로 두류산 권역과 금봉산 권역으로 나뉜다. 두류산 권역에는 대구의 대표 랜드마크 83타워, 이월드 등이 있어 다채로운 볼거리를 제공한다. 금봉산 권역에는 성당못 수변길, 분수대 등 자연 친화적인 경관을 감상할 수 있다. 최근 기존의 두류야구장을 리모델링해 시민광장으로 조성했다. 시민광장에는 넓은 잔디광장, 피크닉 공간, 전망대 등 시민들이 다양한 여가를 즐길 수 있는 오픈스페이스를 마련했다. 사유원 대구광역시 군위군 부계면 치산효령로 1150 태창철강 유재성 회장이 그동안 수집하고 가꾸었던 바위, 소나무, 배롱나무, 모과나무 등을 활용해 팔공산 자락에 조성한 수목원. 축구장 4개에 달하는 면적에 알바로 시자, 웨이량, 정영선, 승효상 등 세계적 건축가, 조경가, 서예가 등이 조성한 공간과 산책길이 펼쳐진다. 팔공산을 조망할 수 있는 소대, 한국 전통정원을 구현한 유원, 108그루의 모과나무로 조성한 정원인 풍설기천년 등 계곡과 능선을 가로지르는 산책길에서 마주할 수 있는 다양한 공간은 사색과 명상의 시간을 제공한다. 금호꽃섬 대구광역시 북구 노곡동 665 금호꽃섬은 대구시 북구 팔달교와 노곡교 사이에 위치한 금호강 하중도로 퇴적물이 쌓여 만들어진 섬이다. 강변 안에 있는 들이라는 뜻으로 ‘갱부내들’로 불린다. 원래 농가에서 버린 폐비닐과 쓰레기로 인해 악취가 나던 버려진 땅이었는데, 테마공원 등이 조성되면서 많은 시민이 찾는 관광 명소로 거듭났다. 봄에는 유채꽃과 보리, 가을에는 코스모스와 메밀을 심어 계절별로 아름다운 경관을 연출한다. 하류에는 물억새를 심어 하천 정화를 꾀했다. 금호강을 따라 조성된 산책길과 자전거길이 있어 대구 나들이 명소로 손꼽힌다. 대구 삼성 창조캠퍼스 대구광역시 북구 호암로 51 대구 삼성 창조 캠퍼스는 도시재생의 일환으로 제일모직 부지에 조성된 복합문화공간이다. 창업을 지원하기 위한 벤처창업존, 문화 체험을 위한 문화벤처융합존, 삼성의 역사를 담은 삼성존, 그리고 주민생활편익존 등으로 구성된다. 부지 내 기존 수목과 기숙사 외벽 담쟁이를 보존해 부지의 역사성을 반영한 특색 있는 공간을 조성했다. 대상지 앞 호암로 특화설계를 통해 대형 수목 식재 및 조형 가벽을 조성해 도시 경관 개선을 꾀했다. 특히 넓은 잔디광장에 야외무대, 바닥분수 등 지역 주민이 다양한 여가를 즐길 수 있는 커뮤니티 공간을 만들었다. 디아크 대구광역시 달성군 다사읍 강정본길 57 디아크는 낙동강과 금호강 합수 지점에 위치한 강 문화관으로 물을 주제로 한 다양한 전시를 선보인다. 건축가 하니 라시드(Hani Rashid)가 설계했는데, 물고기가 물 위로 뛰어오르는 순간과 물수제비가 물 표면에 닿는 순간의 파장을 건축물의 형상으로 표현해 조형미와 예술성이 뛰어나다는 평가를 받는다. 3층 규모로 갤러리, 전망데크 등은 시민들의 휴식과 다양한 문화 행사를 위한 공간으로 활용되고 있다. 특히 3층 전망데크에서 바라보는 아름다운 노을과 수시로 변하는 디아크의 조명은 대구 야경의 새로운 랜드마크로 떠오르고 있다. 국채보상운동기념공원 대구광역시 중구 국채보상로 670 1907년 대구에서 비롯된 국채보상운동 정신을 기리며 조성한 공원이다. 넓은 잔디광 장과 주위에 심은 1,000여 그루의 수목과 곳곳에 벤치를 배치해 여가와 휴식을 즐길 수 있는 도심의 오픈스페이스로 기능한다. 여름에는 시원한 그늘을 제공하고, 겨울에 는 공원 주변 곳곳의 루미나리에, 은하수 길을 통해 시민들에게 아름다운 야경을 선 사한다. 22.5톤의 달구벌대종이 있어 해마다 제야의 종 타종식을 거행하며, 대구 시 민의 도심 내 휴식 공간으로 각종 전시회와 공연장으로 활용된다. mrnw(미래농원) 대구광역시 북구 호국로 300-22 소나무 농원 부지에 조성한 복합문화공간으로, 카페, 전시 등 다양한 문화 활동을 즐 길 수 있어 MZ세대에게 인기 있는 장소로 거듭났다. 건축물 앞 기존의 소나무 밭을 가로지르는 메탈 브리지는 숲속에 온 듯한 느낌을 자아내며 입체적 보행 경험을 선 사한다. 크기와 형태뿐 아니라 모든 식재 수종이 동일하게 구성된 쌍둥이 중정은 건 물에 들어온 이용자들로 하여금 순간적으로 방향 감각을 잃게 함으로써 건물 내부가 거친 숲 한가운데 놓여 있다는 착각을 들게 만든다. 건축설계는 SoA, 조경설계는 디 자인 스튜디오 loci가 맡았다. 더 상세한 내용은 본지 415호(2022년 11월호)에서 볼 수 있다. 동성로 대구광역시 중구 용덕동 12 대구를 대표하는 상징 거리로 편리한 교통, 백화점, 쇼핑센터, 학원가, 공원 등 모든 분야를 아우르는 문화와 쇼핑의 중심지다. 2007년부터 시작된 ‘동성로 공공디자인 사업’은 동성로 거리 정비는 물론 역사, 문화를 복원하기 위해 상인, 시민, 지자체, 전 문가 등과 함께 대대적으로 진행됐다. 길 한복판을 가로질러 설치됐던 배전반을 땅에 묻고, 붉은 점토 블록의 보행자 전용 도로를 만들어 걷기 좋은 거리를 조성했다. 거리 구간마다 벤치를 설치하고 목백합과 대왕참나무 40여 그루를 심어 자연 친화적 경관을 만들었다. 김광석 다시 그리기 길 대구광역시 중구 대봉동 6-11 대구 출신 가수 고 김광석을 기리며 조성된 길. 명칭은 김광석의 앨범 ‘다시 부르기’에 서 아이디어를 얻었으며, 그를 그리워(miss)하면서 그리다(draw)라는 중의적 의미가 담겼다. 2010년 쇠락해 가던 방천시장을 되살리기 위한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탄생했다. 수성교부터 송죽미용실까지 이어지는 구간에 김광석의 모습을 담은 조형물, 벽화 등 을 조성했는데, 전국적 명소로 거듭나면서 방천시장에 활기를 불어넣었다. 현재는 버스킹, 벼룩시장, 공방 등 다양한 문화 예술 활동이 활발히 일어나고 있다. 아양기찻길 대구광역시 동구 해동로 82 2013년 금호강 위를 지나던 ‘아양철교’를 리모델링해 산책로, 전망대, 카페 등을 갖 춘 도심 속 여가 공간으로 재탄생시켰다. 아양철교는 2008년 2월 대구선이 폐선되기 전까지 70여 년 동안 대구시의 산업을 이어주는 역할을 했다. 근대 산업문화유산으로 가치가 있는 아양철교의 원형을 최대한 보존하기 위해 일부 구간의 바닥을 유리 로 마감해 이전까지 사용했던 철길과 그 아래로 흐르는 금호강을 감상할 수 있게 했다. 동촌유원지 등 주변의 관광 명소들과 인접해 있어 접근성이 좋고, 중앙 유리 구조물 안의 카페와 전망대 등에서 금호강을 한눈에 조망할 수 있다.
제20회 환경조경대전
네이처(The) Nature 주최 한국조경학회, 한국조경협회, 한국조경가협회 주관 대한민국 환경조경대전 운영위원회, 환경과조경 후원 늘푸른 심사위원장 박명권 그룹한 어소시에이트 대표 심사위원 김준연 STOSS 디렉터 박소현 코네티컷대학교 교수 오화식 사람과나무 대표 이영주 국토교통부 녹색도시과 사무관 정홍가 쌈지조경 대표 최혜영 성균관대학교 교수 대상 에이비언 엑소더스 앳Avian Exodus at GMP_김아윤·김도연(경희대학교 환경조경디자인학과) 금상 타이들스케이프Tidalscape: 대지의 주름, 자연에 의해 만들어지는 경관_최준영·신재호·백지웅(경희대학교 환경조경디자인학과) 은상 티핑Tipping –3℃_신아영·권가령·양찬희(동아대학교 조경학과) 둠벙_김현우·김한빈·박초현·안민지·김지응(청주대학교 조경도시학과) 동상 시간의 메타포: 세 개의 숲_민세린·박나리·정인주(경희대학교 환경조경디자인학과) 브레이킹 더 월Breaking The Wall_Ke Fangni(서울대학교 대학원 협동과정 조경학 박사과정), Mai Haotian 성균관대학교 일반대학원 조경학과 석박통합과정 탈바꿈: 경사지를 복원하다Metamorphosis: Restore a Slope_이희수·이민서·권용조·최민 배재대학교 조경학과
[제20회 환경조경대전] 공모 경과와 심사평
지난 9월 13일, 수원시 대유평공원에 위치한 복합문화공간 111CM 라운지에서 ‘제20회 대한민국 환경조경대전’의 시상식이 개최됐다. 공모에는 104개 팀이 접수했다. 공모 주제인 네이처라는 큰 키워드 아래, 자연에 대한 다양한 해석과 이해 그리고 응용을 통해 어떤 해법을 제시했는지에 주안점을 두고 심사가 진행됐다. 그 결과 본상 수상작 7작품과 장려상 및 입선 수상작 15작품이 선정됐다. 전시는 시상식이 개최된 111CM 라운지에서 9월 17일까지 열렸다. 공모전 주제와 심사 총평을 수록하고, 대상부터 동상까지의 수상작을 소개한다. 주제: 네이처 네이처(The) Nature는 일반적으로 ‘자연’을 의미하고 더불어 ‘본질’이라는 뜻을 함께 가지고 있다. 조경은 자연으로부터 시작하여 급속한 현대 문명의 발전 속에서 상실되어가는 자연성을 지켜주고 이어주는 중요한 균형자 역할을 해 왔다. 최근의 급격한 환경 파괴는 더 이상 지구와 인류가 버티기 힘든 지경에 이르렀고, 자연 스스로 치유하거나 유지하기에는 어려운 상황이 되었다. 조경은 이러한 위태로운 상황과 문제를 대면하며 자연 속에 숨겨진 수많은 지혜를 찾아 창의적이고 혁신적인 해법을 제시해 줄 필요가 있다. 더불어 이는 과거 익숙하게 여겨왔던 자연의 보전과 이용이라는 행위와 관계에 대한 근본적인 물음을 던질 수 있으며 그 속에서 새로운 조경과 자연에 대한 관계와 접근법을 고민할 수 있다. 자연과 조경에 대한 관계를 되돌아봄과 동시에, 조경은 현대 사회가 직면한 다양한 경제적 양극화, 고령화, 공동체 해체, 도시 소멸, 탄소 중립, 재난 재해 등의 문제를 해결해주는 역할을 해왔다. 문제에 대한 표피적 해결책을 제시하기 이전에 대상의 본질을 보다 섬세하게 가독하는 참가자들의 시선 또한 엿보고자 한다. 조경의 시작점이었던 자연성을 다시 돌아보고 그 속에 숨겨진 지혜와 관계를 재발견해 보고자 한다. 더불어 다양한 사회 문제에 대한 본질적 가치를 살핌으로써 참가자들의 독특하고 창의적인 상상력을 함께 공유하고자 한다. *환경과조경426호(2023년 10월호)수록본 일부
[제20회 환경조경대전] 대상: 에이비언 엑소더스 앳 GMP
공항의 여러 노력에도 불구하고 버드스트라이크 발생률은 크게 줄지 않고 있다. 오히려 지구 온난화로 인해 새들이 한국에서 머무는 기간이 길어지고 항공기 운항률이 높아지며 증가하는 추세다. 버드스트라이크는 비행기 조종사가 가장 기피하는 사고이며 피해액도 전세계적으로 연간 약 1조억 원에 달한다. 사고의 경중에 상관없이 버드스트라이크가 일어나면 비행기는 회항해야 하며, 최악의 경우 엔진으로 빨려 들어간 조류로 인해 비행기가 추락하는 대참사를 불러일으키기도 한다. 김포공항은 국내 공항 중 버드스트라이크 발생률이 가장 높다. 한강 하류와 굴포천, 아라뱃길 같은 수계공간과 새들의 좋은 먹이원이 많은 대장동 농경지 사이에 있기 때문이다. 사고를 예방하기 위해 공항은 24시간 새들을 모니터링해 연간 비행 경로와 이동 패턴을 빅데이터로 구축하고 있다. 하지만 신도시 개발로 인해 새들의 취식지인 대장동 농경지가 사라질 경우, 혼란을 겪은 새들이 흩어지고 예측 불가능한 동선으로 움직이며 버드스트라이크가 증가할 것이라는 전문가들의 우려가 커지고 있다. 목표 동물의 시각에서 자연을 설계하고자 했다. 대장동 농경지를 개발하기 전, 새들에게 미리 한강 근처에 안전한 서식처 환경을 제공함으로써 버드스트라이크 발생 위험을 효과적으로 예방한다. 밤섬에서 모티브를 가져와 하중도를 설계했다. 새들이 선호하는 하중도의 특징을 고려해 섬의 형성 과정을 계획하고, 빠르게 형성될 수 있도록 소형 테트라포드를 사용했다. 목표종 분석 큰기러기와 흰뺨검둥오리의 경우, 취식지인 대장동 농경지에서 휴식지인 한강 본류와 굴포천으로 이동하는 도중 활주로 14 지역 상공에서 비행기와 충돌할 위험이 높다. 여름 철새인 황로와 왜가리는 공항 근처 산에서 번식한다. 번식처와 취식지, 한강을 오가다 비행기와 마주할 확률이 높다. 설치류를 먹는 황조롱이는 농경지와 한강을, 중부리도요는 장항습지를 많이 오가며 비행기와 맞닥뜨리게 된다. *환경과조경426호(2023년 10월호)수록본 일부
[제20회 환경조경대전] 금상: 타이들스케이프(Tidalscape): 대지의 주름, 자연에 의해 만들어지는 경관
인천시 연수구 옥련동 일대는 8,000년에 달하는 긴 시간에 걸쳐 형성된 송도 갯벌이 있던 곳이다. 풍부한 해안 생태계가 형성된 생명의 터였지만, 행락지가 개발되며 32헥타르의 갯벌이 간척되었고 송도유원지가 조성됐다. 송도 해상 신도시 개발이 시작된 후 기존 갯벌의 절반 이상이 간척되었고, 대상지의 일부도 콘크리트로 매립됐다. 그 과정에서 도시 한가운데 위치하게 된 송도유원지로 향하는 시민들의 발길이 줄어들었고, 결국 폐장되어 현재는 중고차 수출단지로 이용 중 이다. 2020년부터 도시공원 일몰제로 인해 유원지 용도 구역이 해제되었고, 난개발이 우려되어 2023년까지 개발행위허가제한구역으로 지정된 상황이다. 도시와 자연 난개발이 우려되는 상황에서 과연 보편적인 도시 개발을 진행하는 것이 옳은 방향일까. 대상지가 속한 연수구가 대도시로 성장함에 따라 기존의 개발 논리보다 더 고양된 방향성이 필요하다. 송도 갯벌의 원형 경관 복원과 해안 서식처의 회복은 중요한 과제다. 다만 도시 개발의 속도는 자연적 회복을 기대하기에는 너무 빠르다. 자연이 온전히 자리 잡기 위해서는 오랜 시간과 자연의 섭리 속에서 기다리는 것이 중요하다. 앞으로 연수구는 문명의 혜택을 누린 시간만큼 자연에 책임감을 가져야 한다. 공동의 기억과 도시의 성숙 구 송도유원지 일대는 도시의 문화적 장소였지만, 콘크리트 복개로 인해 장소성이 소멸하고 그 기억의 흐름도 끊어졌다. 옛 기억과 공동이 만들어 가는 기억으로 도시는 점차 성숙해간다. 기억의 흐름을 다시 연결하면 대상지는 사람들의 기억과 개성, 자부심 있는 연수구 시민들을 키워낼 것이다. 갯벌, 송도유원지, 그리고 새롭게 만들어지는 기억이 중첩되며 대상지는 함께 배우고 만들어가는 원도심과 송도 국제도시의 화합의 장이 된다. *환경과조경426호(2023년 10월호)수록본 일부
[제20회 환경조경대전] 은상: 티핑(Tipping) –3℃
감전동 사상공업단지는 토지구획정리사업을 통해 공업 지역으로 성장했다. 조립 금속 등 제조업 비중이 큰 산업 단지였지만, 1990년대 이후 단지의 전통적 주력 사업이 쇠퇴했다. 이후 방치된 노후 건물이 늘어나고, 각종 소음과 악취가 발생하는 지역으로 전락했다. 그 중 대상지가 위치한 학장동은 공업 지역으로 인근 상업 지역과 주거 지역에 비해 대기 중금속 농도가 각각 7.3배, 5.6배 정도 높았다. 대상지 반경 2km 이내에 산과 수변이 있어 생태적 이점이 있지만 충분히 활용하지 못하고 있으며, 부산시 녹지 부족 지역으로 선정될 정도로 그린 인프라가 몹시 부족하다. 바람길 도시의 공업화는 다양한 문제를 발생시킨다. 공업화로 인해 뜨거운 공기가 도시 안에 갇히는 문제가 발생하면서 그린 인프라 단절, 찬 공기 유입 차단, 폭염 지속 등의 문제가 발생하고 있다. 이외에도 빌딩 숲, 자동차 매연, 산업 단지 등으로 인한 열섬 현상을 줄이기 위해서는 도시 내 오염 물질의 분산이 필요하다. 다양한 형태의 숲을 통해 도심과 외곽 녹지를 연결하는 바람길에 주목했다. 바람길은 도시 외곽 산림과 도심 속 숲을 연결해 차가운 공기를 도심으로 끌어들인다. 이를 통해 공기 순환을 촉진하고, 미세 먼지 등 대기 오염 물질과 뜨거운 열기를 도시 외부로 배출한다. 티핑포인트 대상지 일대에 다양한 숲을 조성해 그린 인프라를 구축하고, 바람을 끌어들여 공기의 순환으로 온도를 낮추고자 한다. 흔히 티핑포인트(tipping point)는 작은 변화들이 기간을 두고 쌓여, 더 큰 영향을 초래할 수 있는 상태가 되도록 하는 단계를 일컫는다. 우리는 공단에 일종의 티핑포인트를 만들고자 했다. 공단 내의 온도 3도 감소를 목표로 점·선·면적 녹지로 바람길을 계획했다. 3도라는 변환점을 통해 공단에 새로운 바람을 일으키고, 장기적으로 바람이 불어올 수 있는 환경을 구상했다. *환경과조경426호(2023년 10월호)수록본 일부
[제20회 환경조경대전] 은상: 둠벙
선조들의 지혜, 둠벙 기후변화로 인해 세계 각국의 수많은 사람이 고통을 겪는다. 전라남도 신안군 암태도에 위치한 신기마을은 매년 극심한 가뭄으로 생업을 위협받고 있다. 과거의 연평균 강수량을 고려해 만든 관개 시설은 현재 적합하지 않을 뿐더러 직렬로 연결되어 있어 교체가 어렵다. 누수가 일어나거나 부식되어 파이프가 터져야만 수리가 진행되는 상황이다. 상수도 의존도가 높은 오늘날 이러한 문제는 여러 경제적 손실을 불러오고, 지역 주민의 일상생활 영위를 힘들게 하고 있다. 비교적 연 강수량이 낮고 지형 특성상 대규모의 댐을 만들 수 없는 남부 지역, 그중에서도 특히 규모가 작고 갯수마저 적은 댐에 의존해 사는 섬 지역 주민은 장마철 전봄에 극심한 가뭄을 겪는다. 이러한 문제를 자연적이고 본질적인 방법으로 해결하고자 선조들의 지혜를 빌렸다. 한국은 오래전부터 주로 벼농사를 지어왔다. 비와 지하수에 의존했던 과거에 선조는 물을 저장할 수 있는 둠벙이라는 수리 시설을 고안해 이용했다. 이러한 둠벙을 색다른 방식으로 재탄생시켜 농작물 관개 방식을 향상시키고, 각종 생물의 보금자리를 만들어주고자 한다. 정화하고 모아주는 방지턱 둠벙 암태도의 신기마을은 지반이 암석으로 이루어진 척박한 환경에 자리 잡고 있다. 가파른 경사의 산에 둘러싸여 있고, 일직선 형태의 물길은 우수를 그저 흘려보낼 뿐 토양에 제대로 침투시키지 못한 채 바다로 보낸다. 이 때문에 저수지 아래로 흘러가버린 물을 다시 펌프로 퍼 올려 저수지에 저장해 사용하고 있다. 여러 방면에서 비효율적인 방법이다. 방지턱 둠벙은 강수 시 빠르게 유실되는 물의 유속을 낮추어 지하수를 모아주는 동시에 방지턱을 통해 물을 정화해 주는 둠벙이다. 덕분에 집수한 물을 농업용수뿐 아니라 생활용수와 식수로도 사용할 수 있다. 방지턱 둠벙에 물이 모이며 형성되는 둠벙은 다양한 생물의 삶의 터전이 되어, 가뭄을 겪고 있는 동물에게도 해갈을 선사한다. *환경과조경426호(2023년 10월호)수록본 일부
[제20회 환경조경대전] 동상: 시간의 메타포: 세 개의 숲
골프장이었던 부지에서 점차 파괴되고 있는 자연을 지키기 위한 생태 공원을 조성하고자 한다. 이를 통해 조경과 자연의 근본적 관계에 대한 물음을 던진다. 느린 시간의 흐름과 변화의 과정을 담은 산물 그 자체인 자연을 감상하고 존중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들고자 한다. 이 공원은 과거의 흔적을 그대로 보존한 ‘기존의 자연’과 인위적 관리를 최소화해 자연 자체 속도로 변화하는 ‘느린 시간의 자연’, 두 요소의 조화로운 공존을 꾀한 ‘미래의 자연’으로 구성된다. 기존의 자연이란 옛 골프장의 모습을 그대로 보존하고 자연의 변화를 최소화해 원래의 풍경과 생태계를 유지하는 것이다. 느린 시간의 자연은 인위적 관리를 최소화하고 자연의 느린 시간이 흐르는 공간을, 미래의 자연은 인간의 역할과 자연의 자생적인 성장이 조화롭게 공존하는 공간을 의미한다. 세 요소는 관람객들이 자연의 본질과 가치를 깨닫고, 자연의 보존과 이용에 대한 새로운 가치를 느끼게 해준다. 디자인 전략 패턴을 활용한 공간 분류: 골프 홀 패턴을 활용해 허브(hub), 노드(node), 루트(route) 구역을 구성했다. 허브 구역은 공원의 핵심 구역이자 자연과 인간과의 관계를 엿볼 수 있는 곳이다. 노드 구역에서는 천이로 자연의 변화를 감상할 수 있고, 루트 구역은 자연과 인간의 관계를 재형성한다. 성격 부여: 일시정지 공간은 골프장 모습을 보존해 자연이 멈춘 상태를 지속하는 장소다. 재생 공간은 인간의 영향을 최소화해 숲으로 만들고, 빨리 감기 공간은 자연과 인간 사이 균형 있는 미래를 체험할 수 있도록 공간으로 조성한다. *환경과조경426호(2023년 10월호)수록본 일부
[제20회 환경조경대전] 동상: 브레이킹 더 월
원시 사회에서 인간은 자연의 한 부분이었다. 동굴에 살면서도 식량 확보와 주거를 위해 자연 형태를 변화시키지 않았다. 인간과 자연의 경계선은 불분명했다. 농경 사회에 접어들며 사람들은 고정된 생활 환경을 구축하기 위해 자연에서 재료를 획득했고, 이 재료는 자연으로부터 인간을 고립시키며 마을이나 도시의 원형을 형성했다. 인간의 거주지는 원시적 재료로 건설된 ‘섬’과 같았고, 생산 활동은 여전히 자연에서 이루어졌다. 산업 시대에 도로와 해안가는 ‘직선’으로 굳어졌으며 ‘섬’을 서로 연결해 ‘면’을 형성했고, 인간과 자연 사이에 명확한 ‘분할선’이 만들어졌다. 인간 사회가 자연으로부터 고립된 것이다. 오늘날 인간의 삶은 자연에서 완전히 유리되어 있으며, 인간과 자연의 관계는 서로 적대적이다. 인류세라는 시대적 배경과 기후변화라는 과제 앞에서 인간과 자연의 관계를 다시 고민해봐야 한다. 새만금 지역의 과제 1991년 한국 정부는 신규 도심 지역 개발, 농업 생산 증대 등 수많은 목표 달성을 위해 새만금 지역 간척사업을 발표했다. 생태적, 경제적, 생계의 이유로 학계, 지역 주민, 각계 단체에서 반대 의견을 개진했지만 프로젝트는 계속해서 진행되었다. 간척 사업이 진척됨에 따라 제방 내부의 수위는 지속적으로 내려갔다. 방조제로 인해 안쪽 해수의 순환이 외부 바다와 단절되면서 원래의 생태적 기능들이 상당 부분 훼손되었다. 사업은 생태적 문제를 초래했을 뿐 아니라 토착 생물의 서식지 상실, 어장 피해, 높은 유지·관리 비용, 지역의 전통 문화 파괴와 같은 여러 논란을 불러 일으켰다. 콘셉트 ‘벽’은 새만금 사업으로 건설된 공간의 안과 바깥을 가로막고 있는 방파제를 가리킨다. 동시에 안정화, 순환, 성장을 향한 자연의 지향성과 생존, 개발, 수요에 대한 인간의 욕구 사이의 모순을 상징한다. 둘 사이에 존재하는 좁힐 수 없는 모순을 해소하고자 ‘벽을 허문다’는 콘셉트를 세웠다. 자연과 인간을 갈라놓고 있는 벽을 개방하고 두 관계의 조화를 추구한다. *환경과조경426호(2023년 10월호)수록본 일부
[제20회 환경조경대전] 동상: 탈바꿈: 경사지를 복원하다
한국의 알프스 한국의 고도 성장 이면에는 무분별한 산지 이용과 개발이 있었다. 기후변화로 인한 잦은 산불과 산사태 역시 산림을 훼손시켰다. 이러한 문제에도 불구하고 지구의 자정 작용 덕분에 생물 다양성이 유지됐지만, 급격한 환경 파괴로 더 이상 제 기능을 하지 못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특히 1984년부터 2006년까지 스키장으로 사용된 강원도 고성시 알프스 스키장의 경우 문제가 심각하다. 스키장 슬로프가 침식되며 많은 양의 토양이 유실되었고, 스키장 운영 후 남아 있는 인공 눈의 화학 물질이 토양을 오염시키고 있다. 관리가 이루어지지 않은 땅에는 외래 식물이 침입해 그 영역을 넓히고 있다. 이 산림의 지형을 조작하고 공간을 재해석함으로써 훼손된 생태계와 잃어버린 산림의 자정 능력을 되찾아주고자 한다. 전략 토양 보존: 이끼 포자 배양 기술을 활용해 이끼를 발생시켜 사막화된 땅을 비옥하게 만든다. 이끼 포양 배양 키트의 경우, 포자 배양액과 성장을 돕는 영약액, 잘 퍼지게 하는 호르몬 액으로 구성한다. 활착한 이끼는 토양 내 질소와 인을 고정해 다른 수목의 뿌리 생장과 번식에 필수적인 매개체가 되어 산림 환경 복원을 가속화하는 기반을 마련한다. 대기의 질, 토양 오염도, 산림 영양 상태, 환경 건강도를 확인할 수 있는 지표로 사용할 수 있어 재난 복구를 위한 데이터 수집 효과도 있다. 새로운 구조 이식: 알프스 스키장의 지형을 목적에 맞게 흙을 채워 새로운 공간으로 재탄생시킨다. 리조트 건물을 철거하며 나온 건설 폐기물과 흙으로 순환 골재를 만들어 계단식 녹지의 벽을 세운다. 계단식 녹지는 훼손 이전의 산림 기능을 되찾아줄 뿐 아니라 토양 침식과 유출을 막아 산사태를 방지한다. 이곳에 숲을 조성할 경우, 지하에 관정을 설치해 수목 생장에 필요한 물을 지하수를 통해 제공받고 가뭄에 대비할 수 있다. 계단식 녹지는 한국 고유의 문화적 경관을 형성해 지역 활성화 프로그램으로 활용할 수도 있다. 식생 복원: 잠정적종자이동구역(Seed Transfer Zone)을 통해 식생을 복원한다. 잠정적종자이동구역이란 외래종과 토착 식물이 교잡하게 되어 유전적 교란을 일으키는 것을 방지하는 구역이다. 기후대, 습도, 토양 상태 등 지형과 환경적 특징을 기준으로 복원용 종자 서식지를 규정하고, 이를 통해 산림 복원의 성공률을 향상시킨다. 복원 과정을 살펴볼 수 있도록 곳곳에 토착 식물 종자 자료판을 설치해 방문자의 학습을 돕는다. 공간 활용: 산림학교와 산림연구시설을 설치한다. 산림학교는 방문자에게 산림 복원의 중요성을 알리며 자연과 환경을 배우는 기회를 제공하는 곳이다. 교육과 휴양을 동시에 할 수 있도록 복원된 산림 속에 교육 휴양 시설을 구축한다. 이 시설은 지역 사회와 연결되어 지역 경제를 활성화시키는 랜드마크가 될 것이다. 산림연구시설은 생물 다양성을 지속적으로 관리해 산림 생태계를 보전한다. 식물 생장에 방해가 되는 해충과 질병, 백두대간 내 멸종 위기에 처한 식물종에 대한 연구를 통해 식물 활용 및 보전에 기여한다. *환경과조경426호(2023년 10월호)수록본 일부
[어제의 대화, 오늘의 재구성] 공간과 사람 사이의 이야기를 풀어내다 박영석
신출내기 에디터에게는 특집 ‘설계사무소를 시작한다는 것’(2016년 5월호)에 등장한 사람들이 멀고 신기했다. 나와 그렇게 나이 차이가 크지 않은데, 모두들 이미 많은 것을 이루었고, 먹고 살기 바쁜 나와 달리 목표를 향해 달리고 있고, 무엇보다 굉장히 열정적이었다. 박영석도 그중 한 명이었다. 그는 늘 사람들에게 둘러싸여 있었다. 정확히 말하자면 사람들을 모이게 만들어 놓고 물러나 있었다. 가끔 자신이 필요하다고 생각되면 개입해 농담이나 웃음으로 사람들이 이야기를 털어놓도록 유도했다. 몇 달 뒤 용산공원 라운드테이블 1.0을 이끌게 된 박영석을 인터뷰했다. 주요 골자는 용산공원을 만들기 위해 청년 활동가를 모아 다양한 활동을 벌이겠다는 것이었지만, 내 머릿속에 남은 건 ‘사람’이라는 키워드였다. 그의 말과 목소리에서 사람을 정말 좋아한다는 느낌을 받았다. 좋은 공간이 필요한 이유도, 좋은 기획을 하려는 이유도, 모두 사람 때문인 것 같았다. 그래서 박영석이 ‘유엘씨 프레스’라는 새로운 플랫폼을 열었을 때에도 필진 소개란부터 뒤적였다. 사람을 좋아하는 발행인은 어떤 사람과 책을 펴낼지 궁금했다. 발행인인 그를 에디터로서 인터뷰하러 갈 때 가장 궁금했던 건 “계속해서 사람을 만나는 일이 지치진 않나요?”였다. 스스로 반성을 좀 할 필요가 있어 던진 질문이었는데 오히려 위로를 받았다. “지치죠. 하루에 몇시간씩 워크숍 진행하고 나면, 그날 회식 자리에서 말 한 마디 안할 때도 있어요. 사람 만나는 걸 좋아해도 업으로 삼으니 힘들 때가 있더라고요. 누군가를 만나 이야기를 듣다 내가 집중하지 못하고 있다고 느낄 때면, 일부러 장난을 치기도 하고 농담을 하기도 해요.” 인터넷에 떠도는 다정은 노력에서 비롯된다는 말이 떠올랐다. 어제는 뭐했나요? 질문지를 처음 받자마자 육아라고 메모했어요. 어제도 어김없이 육아를 했습니다. 요새는 삶이 제가 하는 일보다는 육아에 방점이 찍혀 흘러가는 거 같아요. 아이를 돌보는 일뿐 아니라 그에 관련한 공동체, 공동 육아를 지지하기 위한 활동을 하고 있어요. 늘 기획자 역할을 하다가 이번엔 참여자가 되었네요. 구체적으로 어떤 활동을 하나요? 공동 육아를 하는 엄마, 아빠들을 줄여서 ‘아마’라고 해요. 현재 26가구의 아마가 있는 공동체에서 활동하고 있습니다. 참 많은 시민 참여 프로그램을 기획하고 수행했는데, 제가 참여 워크숍에서 활동하는 모습은 생경하더라고요. 기획자일 때는 가장 좋은 이상적인 안, 현실적인 안, 경제적인 안, 합리적인 안을 도출하고, 사람들의 의견을 수렴해 대안을 만드는 프로세스를 너무 중시했던 것 같아요. 실제로 안을 실천하는 건 해당 커뮤니티에 속한 참여자로서 플레이어인데, 그간 프로세스나 솔루션 그 자체에 더 공을 들인 건 아니었나 하는 생각을 하곤 합니다. 워낙 다양한 일을 하고 있어서 어떤 질문으로 시작하면 좋을지 고민했어요. 오래 전 이야기부터 해볼까 해요. 석사과정을마친 후 독일 뮌헨에서 도시 공간과 미디어 테크놀로지의 접점을 탐구하려 했다고 들었어요. 일반적으로 택하는 유학 코스가 아니기도 하고, 연구 주제도 독특해요. 학부 때 독일에서 공부하고 온 은사님을 많이 만났어요. 고정희 대표님(써드스페이스 베를린), 정기호 교수님(당시 성균관대학교), 황재선 박사님, 이재문 박사님을 비롯해 일하면서 만난 분 중에도 독일에서 유학한 분이 많았는데 하나같이 비슷한 결이 느껴졌었어요. 독일은 코스워크 없이 스스로 연구하고 탐구하는 식으로 공부를 한다는 게 멋있기도 했고요. 그래서 석사과정을 마치고 더 공부를 한다면 독일로 가야겠다고 마음먹었고, 독일을 중심으로 유럽 지역으로 알아보다가 뮌헨 공대에 있는 교수님과 연락이 닿아 비행기에 올랐죠. 연구 주제는 석사과정의 연장선이었어요. 석사 때 장소성 재생을 위한 미디어 공간 설계를 모바일 미디어를 중심으로 탐구했거든요. 이미 미디어 아트를 많은 곳에서 접할 수 있는 상황이었지만 모바일 미디어가 급격하게 대중화되고 보급되면 개인이 어떤 장소에서 느끼는 감각과 그 방식이 달라질 것이라 생각했어요. 사진과 영상 콘텐츠를 더 쉽게 만들어낼 수 있고 공간이나 시간 제약 없이 인터넷에 접속할 수도 있을 테니까요. 그래서 스마트폰은 신체 감각의 확장기, 도시의 광역적 이해 증진, 인간과 공간의 유희적 인터페이스-새로운 아카이빙 수단이라는 결론을 내렸죠. 어떤 지역이나 공간을 더 광역적으로 이해하는 데 큰 영향을 미칠 것이라 생각했어요. 어찌 보면 평이한 결론인데 그때는 제가 노벨상을 탈 줄 알았어요(웃음). 2011년 무렵, 아이폰이 국내에 처음 출시됐어요. 스마트폰으로 인해 미디어 테크놀로지가 일상에 빠르고 깊게 침투할 거라고 생각했죠. 당시 독일 스마트폰 보급률은 유럽에서 가장 빨리 늘어나고 있었고 관련 기술도 발달해 있어서, 이 기술을 통해 공공 공간을 어떻게 바라볼 수 있을지 기대했는데 제 예상이 빗나갔죠. 지금 되돌아보니 스마트폰이라는 게 결국 일상생활을 조금 더 편리하게 만들어주고 감각을 확장시켜주는 건 맞지만, 우리의 일상을 완전히 다르게 정의할 만큼 침투하기에는 조금 더 시간이 필요한 것 같아요. 그래서였는지 연구계획서가 수차례 바뀌었어요. 그 과정에서 다루고자 한 연구 내용도 조금씩 달라졌죠. 연구 주제를 새롭게 바꾸어야 하나 고민하는 찰나 한국에서 ‘노들꿈섬 운영구상 1차 공모’에 함께 참여해보지 않겠냐는 연락이 왔죠. 그때가 큰 전환점이 아닌가 싶어요. ‘설계사무소를 시작한다는 것’ 특집에 노들꿈섬 공모 당시 이야기가 실렸더라고요.준비하며 여러 사람을 만났고 “이때의 만남과 대화는 조경가로서 도시를 공간적인 행위만으로 접근하려던 관점에 큰 변화를 가져왔다”고 했었죠. 그 변화가 무엇인지 늘 궁금했어요. 관점은 여전히 유효한가요? 당시에도 참여라는 키워드가 중요했고, 도시계획과 공간 계획 측면에서 이용자의 의견이 설계에 반영되는 게 큰 흐름이었어요. 오픈스페이스처럼 공공성이 대두되는 곳은 더욱 더 중요했죠. 노들꿈섬 공모 준비를 함께한 김연금 소장님(조경작업소 울, 이하 모두 당시 소속), 문정석 소장님(소셜디자인랩), 박혜리 소장님(KCAP)에게 많이 배우고 영향을 받았죠. 사람을 만나는 일과 여러 부수적인 일을 도맡아 하게 되었는데, 그 과정에서 책이나 논문에서 읽은 것을 토론하는 게 아니라 현장에서 진짜 사람들을 만나 도시에 대해 대화하고 함께 호흡한다고 느꼈어요. 그 과정에서 깨달은 점을 세 가지로 정리할 수 있을 것 같아요. 하나는, 소수의 엘리트가 설계하고 시공하고 관리하는 시대가 저물고 다수의 시민이 함께 이니셔티브를 구축하고 그 과정을 꾸리며 다 같이 무언가를 경험한다는 것이 더 중요해졌다는 거예요. 둘째는 결과적으로 실패할 수 있지만 과정은 결코 실패하지 않는다는 점이에요. 과정은 실패로 남지 않고 경험이 되더라고요. 지난 번에는 파란색을 많이 써서 이런 결과가 도출되었으니 이번에는 빨간색을 많이 써보자 하는 식으로, 과정 자체가 새로운 이슈에 대한 해결책을 제시해주거나 전략이 되어줄 수 있더라고요. 마지막으로, 깊은 고민이나 오랜 연구도 중요하지만 우선 시작하는 것이 제일 중요하다는 점이에요. 생각은 크게 해야 하지만 작은 실천이 있어야 변화가 시작되죠. 노들꿈섬 공모 팀 이름이자 법인명인 ‘빅바이스몰(Big by Small)’이 그 의미를 잘 보여주죠. 이 관점은 지금도 견지하고 있습니다. 박영석이 하는 일의 핵심은 사람과 사람의 연결인 것 같아요. 특히 사람들의 이야기를 잘 듣고, 이를 풀어내는 일이요. “조 경가로서 공공 공간을 대하는 태도와 접근 가능한 전략을 바 탕으로 도시와 지역, 공간과 장소, 개인과 공동체, 기억과 표 현에 관한 모든 작업에 명함을 내밀기 시작했다”(『환경과조경』 2016년 5월호)고 말한 적도 있죠. 언뜻 쉬워 보이지만 다양한 목 소리를 담고 풀어낼 때 경계해야 할 점들이 있을 것 같아요. 저 스스로를 제일 경계해요. 약속을 잡고 누군가를 만나러 갈 때, 오늘 상대가 풀어내는 거 한 판 다 듣고 오자하고 마음을 다잡죠. 되도록 이야기 중간에 끼어들지 않고요. 사람들은 대부분하고 싶은 이야기를 마음에 가득 품고 살더라고요. 내성적이고 말이 없는 것 같은 사람도 어떤 물꼬만 트여주면 술술 이야기를 풀어놔요. 모든 이야기가 영양가가 있는 건 아니지만, 충분히 하고 싶은 말을 다하고 나면 중요한 알맹이들이 나오기 시작해요. 우리 모두 바쁘게 살다보니 짧은 시간에 콤팩트하게 필요한 것을 뽑아내려 할 때가 많잖아요. 필요한 답변만 취하려 하면 결국 중요한 내용을 놓치게 되더라고요. ‘용산공원 라운드테이블 1.0’ 활동을 흥미롭게 봤어요. 그중 에서도 ‘공원산책’(2017)이 참 좋았는데, 공원을 조경가 혹은 전문가의 시선으로 바라보지 않는 대중의 관심과 공감은 저 렇게 끌어내는 거구나 싶었거든요. 기획 배경이 궁금해요. 참고한 사례가 있다면요? 2016년에 김연금 소장님과 함께 서울시에서 공원산책이라는 프로그램 을 진행한 적이 있어요. 서울의 대형 공원 다섯 군데를 선정하고, 공원 을 설계한 조경가와 함께 걸으면 이야기를 나눴죠. 반응이 열렬했어요. 신청 페이지를 열자마자 30시간도 안되어서 모든 회차가 매진됐죠. 그 동안 왜 사람들을 공원에서 만나 이야기할 생각을 못했나 싶더라고요. 산책을 가기 전 시민들이 공원을 더 깊숙이 여행할 수 있도록 돕는 작업 도 진행했어요. 조경을 잘 모르는 일반 대중은 공원이 어떤 이유로 설계 되었는지, 벤치는 왜 이곳에 설치되었는지, 동선이 왜 이렇게 뻗어있는 지, 바닥 소재는 왜 돌인지 등 공원 설계의 디테일에 대해 알지 못하잖 아요. 공원이라는 공간이 전문성을 갖고 체계적으로 설계되고, 그에 따 른 이론이 있다는 것 자체를 모르는 사람이 더 많아요. 조경가 역시 자신의 설계 의도를 말할 수 있는 기회가 많이 없었고요. 그래서 공원을 설계한 조경가를 먼저 인터뷰하고 그 내용을 정리해 워크북으로 만들었어요. 그 질문과 답을 바탕으로 현장에서 시민들에게 공원에 대해 설명하도록 했죠. 공원산책이 공원도 설계의 대상이라는 걸 알리는 데 효과가 있었다고 보나요. 결과적으로 큰 영향을 미치진 못했다고 생각해요. 또 굳이 몰라도 상관없다고 생각하기도 하고요. 20대에 겪었던 일인데, 친구를 만나러 가 다가 서울어린이대공원을 지나친 적이 있어요. 도로 한쪽에 차가 줄지 어 서있었는데, 알고 보니 그날이 어린이날이었어요. 그중 한 차에서 자녀와 어머니가 내리는데, 운전석에 앉은 아버지가 “가서 좋은 그늘 하 나 잡아놔”라고 말하더라고요. 그때 좀 놀랐어요. 사실 우리가 공원이 나 공공 공간을 여러 이론과 전략을 통해 설계하지만, 실제로 이용자에 게 중요한 건 설계 논리보다 자신에게 편안하고 이용하기 좋은 쓸 만한 그늘 하나잖아요. 형이상학적 가치나 공간에 담긴 메시지보다 그 장소 에서 일어난 사건들이 결국 사람의 기억에 남겠죠. 공원 설계에 대한 전문적인 내용보다는 어떤 노력과 과정을 거쳐 공원이 만들어졌는지에 더 관심을 갖게 되었으면 좋겠어요. 그러면 자신의 주변, 동네 공공 공간에 대한 관심이 생길 수 있을 테니까요. 도시와 공원 등 어떤 대상지를 이해할 때 다양한 차원에서 바라볼 수 있잖아요. 세세한 이야기를 듣기 위해 작은 골목 단위에서 시작하기도 하고, 도시 맥락 차원에서 어떤 역할을 차지하는 곳인지에 먼저 집중하기도 하고요. 어떤 순서로 대상지를 해석하고 분석하는 걸 좋아하나요? 앞서 답변한 공원의 그늘과 맥이 닿아 있는데, 결국 제게 와 닿은 건 장 소라는 개념이에요. 공간과 장소를 바라보는 관점이 굉장히 다양하지 만, 두리뭉실하게 정리해보면 공간은 물리적 경계의 끝이 있고 영역성이 확고하며 규격이 있는 곳이더라고요. 장소는 좀 더 인문학적 측면에 서 사람들이 서로 교류할 수 있거나, 형태가 없는데도 자신만의 감각으 로 인지되는 곳을 칭하기도 하고요. 졸업식을 알리는 현수막을 만들어 야 한다면, 장소와 일시라고 적지 공간과 일시라고 쓰지는 않잖아요. 어 떤 특별한 사건을 겪으며 공간이 나의 장소가 되는 거죠. 그 과정이 좋 아요. 그래서 어떤 공간이나 대상지에 갈 때, 이곳이 나에게 장소가 될 수 있을지 상상해보곤 해요. 반대로 컨설팅을 하러 갈 땐, 이곳을 누군 가에게 잘 팔리는 장소로 만들려면 무엇이 필요할까 고민하고요. 2019년 유엘씨 프레스ULC Press를 창간했죠. ‘창간’이라는 표 현이 적당한지 조금 고민했습니다. 처음 홈페이지가 공개되었 을 때는 웹을 기반으로 한 새로운 미디어 플랫폼을 지향한다 는 느낌을 받았거든요. 필진이나 큐레이션 방식도 남달랐고, 영상 콘텐츠도 많았고요. 처음에 구상했던 유엘씨 프레스는 어떤 모습인가요? 가장 먼저 떠올린 코너가 있다면요? 대학원에서 지리학과 이정만 교수님의 수업을 들으면서 유엘씨 프레스 라는 형태의 플랫폼을 구성하게 됐어요. 그 수업의 모토가 완벽한 발표 가 아니더라도 괜찮으니, 주제와 관련된 자료를 읽고 한 사람당 한 마디 씩은 하고 돌아가자였어요. 서른 명 남짓한 학생이 듣는 강의였는데, 보 통 대학원 수업이면 서로 이야기도 잘 안하고 자기 발표와 질문 답변에 만 집중하는 경향이 있거든요. 그런데 교수님이 계속 수다를 떨자며 분 위기를 편하게 만들어주니까 한두 명씩 이야기를 꺼내기 시작했죠. 잡 담처럼 꺼낸 이야기를 다음 사람이 받아주며 점점 두터워지고, 소위 말 하는 담론이 쌓이더라고요. 그 과정에서 새로운 아이템을 찾기도 하고 요. 엄청 흥미로웠어요. 다 같이 모여 대화를 나누는 것만으로 많은 정보와 의견이 축적되고 새로운 방향으로 나아갈 수도 있었죠. 이후에 같은 연구실에서 공부하던 임한솔 박사와 신명진 박사에게 ‘유엘씨 프레 스’라는 일을 벌여보지 않겠냐고 꾀었어요. 유엘씨 매거진에 꼭 들어가는 꼭지가 라운드 테이블이에요. 필진, 편 집진 모두가 모여 다 같이 대화하는 내용인데, 이 라운드 테이블이 유엘 씨 프레스의 모티브에요. 유엘씨는 어반 랜드스케이프 카탈로그(Urban Landscape Catalog)의 약자인데, 카탈로그에 나름 의미를 두었어요. 물건 을 팔기 위해 제작하는 게 카탈로그인 것처럼, 시민들을 소비자라고 상 정했을 때 도시에서 아직 팔리지 않았거나 또는 잘 팔리고 있는 상품으로서 공공 공간과 경관을 소개하는 잡지를 만들어보자는 의미를 담았죠. 많은 실험을 거치는 중이에요. 요새 잡지 에디터로서 공간을 보여주는 방식에 대해 고민을 많이 하고 있어요. 해외 조경설계사무소에서 프레스 키트에 동영상을 포함해 보내는 경우가 많아졌거든요. 유엘씨 프레 스가 최종적으로 만들어내는 결과물 역시 ‘잡지’라는 형태의 인쇄 매체에요. 이야기를 전하는 다양한 방법이 있겠지만 글과 사진을 포함한 인쇄물의 형태를 선택한 이유가 있나요? 소위 영상 우점의 시대잖아요. 이미 영상 콘텐츠가 많은 상태에서 굳이 비슷한 콘텐츠를 제공하는 플랫폼을 만들 필요는 느끼지 못했어요. 미디어 종 다양성을 편협하게 만드는 일이기도 하고요. 그리고 영상이 대세가 된다하더라도 저는 텍스트가 더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연극놀이에 프리텍스트pretext라는 개념이 있어요. 예를 들어, 테이블 위에 놓인 종 이컵이 해적의 망원경이 되기도 하고 인류에 마지막 남은 물을 담은 컵이 되기도 해요. 즉, 무언가를 상상하게 하거나 이야기를 시작하게 만드는 최초의 물리적 소재를 뜻하는 말인데, 어미에 텍스트가 붙어있듯 이 용자가 개입할 여지를 준다는 점이 글의 성질과 비슷해요. 반면에 영상 이나 사진은 처음부터 끝까지 완결된 형태를 제시하죠. 크리에이터가 원하는 곳만을 가장 예쁘게 다듬어서 보여줄 수도 있죠. 글은 좀 더 날 것의 느낌이 나고, 빈틈이 있어서 그 부분을 제 상상으로 채워 넣을 수도 있어요. 또 영상이 아무리 득세를 하더라도 리터러시literacy 측면에서, 공간을 이해하는 문화의 관점에서 텍스트가 더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공간을 소개할 때 사진이나 영상으로 호도하는 경우도 있거든요. 근데 텍스트는 좀 더 건조하고 단순하기도 해서 오히려 사람들을 더 기대하게 만들고 덜 실망시키는 면도 있어요. 예쁜 사진과 영상으로 공간을 더 빠르 게 팔 수 있지만, 반대로 말하면 이는 그 공간의 가치와 의미, 재미를 더 빨리 소진시킨다는 의미이기도 해요. 편견일지도 모르겠지만, 잡지를 만드는 만큼 인쇄 매체를 읽는 것을 좋아하나요? 좋아하는 잡지나 책이 있다면 소개해주 세요. 『론리플래닛Lonely Planet』이라는 여행 가이드북이 있어요. 한 권에 하나 의 나라나 도시를 다루는데, 독특하게도 사진을 거의 사용하지 않고 소 개해요. 대부분의 필진이 여행 작가들인데, 지도에 밥 먹을 곳, 놀 곳 등을 표시해놓고 간단한 설명을 달아놓아요. “이 도시에 와서 이 바에 가지 않으면 이 도시에 오지 않은 것과 같다.” “이 나라에서 이곳만큼 맛 이 뛰어난 핫도그는 없을 것이다.” 이런 문장을 읽고 있으면 자연스럽게 그 공간을 떠올리게 되고 당장 가보고 싶어져요. 막상 가서 보니 설명과 다른 경우도 있었지만, 그게 실망이 아닌 경험의 증폭으로 느껴지더라고요. 도시와 지역, 공간 구조를 상상하게 만들고 걸어보고 싶게 만드는 힘이 있어서 좋아하는 책이에요. 잡지의 경우는 당연히 『환경과조경』을 좋아하고(웃음), 최근에는 공동 육아와 관련된 책을 많이 봐요. 필자와 배경이 다양해서 흥미로워요. 사실 공원이나 정원을 다루는 특집을 꾸리면, 걸어온 길이 비슷한 필자들을 섭외하게 되잖아요. 그런데 공동 육아는 가정을 꾸려 아이를 낳아본 누구나 이야기할 수 있는 주제에요. 그렇다보니 다양한 관점과 삶의 이야기가 다루어져 재미있어요. 필진 섭외는 어떻게 하나요? 편집위원들과의 회의에서 나온 의견을 적극적으로 수용합니다. 누구의 글이 좋더라, 이번 포럼에서 발제한 누구의 발표 내용이 흥미롭더라, 하 는 얘기가 들리면 바로 연락을 해봅니다. 아는 사람을 건너 건너면서 필진 풀을 넓히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꼭 조경 분야에 국한하지 않고, 분야를 넓게 보며 새로운 글쓴이를 발굴하려고 노력하고 있어요. 아티클 분류 기준이 숏, 톨, 그란데에요. 커피 사이즈처럼 글 분량에 따라 구분을 했는데 이유가 있나요? 분량에 상관없이 다양한 글을 싣기 위해 나눈 카테고리에요. 숏은 특히 짧은 글도 상관없으니 사람들이 많이 투고해주길 바라며 만든 분류이기도 하고요. 저는 사실 짧은데 울림을 주는 글을 좋아해서 숏 카테고리를 아끼는 편입니다. 기획, 편집, 발간까지 어떤 사이클을 통해 매거진을 만들고 있나요? 분기별로 발행되는 만큼 주제 선정에 공을 들여야 할 것 같아요. 트렌드나 사람들의 이목을 끌 수 있지만, 잡지가 완성될 때까지 그 관심이 계속되어야 하잖아요. 유엘씨 프레스 발간 주기가 좀 복잡해요. 봄과 가을에 발간되는 정규호에는 숫자가 붙어 나와요. 단행본처럼 기획되어 발간되는 특별호에는 알파벳이 붙어 나오는데 겨울에 내려고 노력하고 있죠. 발간은 짧게는 한 달 길게는 세 달 전부터 준비하는데, 텀블벅이라는 클라우드 펀딩에 기반을 두고 발행하다보니 최소한 한 달 전에는 구성이 확정되어야 하 더라고요. 주제 선정의 경우, 월간지도 시기적인 이슈를 다루지 못하는 상황이 잖아요. 화제가 되는 이야기도 시시각각 빠르게 바뀌고요. 그래서 저희 도 목차를 구성해놓고 계속해서 바꿔요. 처음에는 고정된 섹션을 만들고 유지해볼까 하다가, 4호를 기획하며 조경 분야의 사람 이야기를 담아보자고 마음먹었죠. 그렇게 4호 ‘나의 조경 연구기’에는 조경 연구자 들의 이야기를, 5호 ‘조경 설계가의 하루’에는 조경 설계사무소를 다니는 사람들의 일상을, 6호 ‘조경 시공의 최전선’에서는 조경 시공자가 공간을 만들어가는 과정을 담아 일종의 조경 트릴로지를 만들었어요. 창 간준비호, 정규호, 특별호를 포함해 지금까지 발간한 책이 딱 열 권이더 라고요. 이 시점에서 스스로를 돌아볼 필요가 있어서 가을방학을 갖기 로 했어요. 그 성찰한 내용을 겨울에 나오는 특별호 ULC D에 담을 예 정입니다. 현재는 큰 틀에서 구성을 조정해나가고 있습니다. 무언가를 만드는 사람에게 리뷰만큼 기쁜 일이 없어요. 독자 에게 받은 리뷰 중 기억나는 말은 없나요? “조경을 전공하지 않아 공원에 대해 잘 몰랐는데 알게 되어 유익했다”, “공원과 정원이 이렇게 전문적 지식을 바탕으로 만들어지는지 몰랐다”, “조경이 예술 등 여러 학문과 교점이 있어 보인다”라는 말을 들었을 때 짜릿했습니다. 미디어 매체가 다변화되는 시대에 살고 있지만 반드시 지키고 자 하는 유엘씨 프레스만의 기조가 있다면요? 만들어가는 중이에요. 아직 뚜렷한 색이 있다기보다는 실험을 거듭하고 있어요. 이 실험이 언제 끝날지도 모르고, 어쩌면 안 끝날지도 모르죠. 실험의 중간 결과물을 통해 새로운 실험을 하거나 결과값을 보정하는 일을 계속하려 합니다. 유엘씨 프레스에 쓴 글을 읽으면서, 무언가를 기록하는 일을 굉장히 좋아한다는 느낌을 받았어요. 특히 기억이 베어든 장소와 그곳에서 느낀 감상이요. 한 서평에서 “평범하고 익숙한 일상을 특별하게 바라보기 시작하는 것은 우리 삶을 두텁게 만드는 새로운 보물창고를 여는 것과 같다”(서평: 일상연습-당신의 일상은 익숙한가?)라는 문장을 읽고 나니 더욱 더요. 이런 성향이 언제부터 발현되었는지 궁금합니다. 어릴 적부터 메모광이었어요. 중학생 시절에는 힙합에 빠져서 가사를 쓰기 시작했는데, 일상에서 툭툭 튀어나오는 좋은 표현을 잊어버리면 안 되니까 늘 주머니에 종이와 펜을 넣어 다니면서 기록하고 꺼내보곤 했어요. 시도 때도 없이 메모를 하니까 함께 성당에 다녔던 동생이 미사 시간에 뭘 그렇게 적냐고 물어보기도 했고요. 요새는 주로 스마트폰에 메모를 하거나, 어느 종이에든 적은 메모를 사진으로 찍어 자료화하는 식으로 기록을 남기고 있어요. 박영석이라는 이름 뒤에 붙일 수 있는 직함의 종류가 굉장히 다양해요. 대표, 소장, 기획자, 퍼실리테이터, 발행인. 그중 자신을 가장 잘 표현하는 직함이 뭐라고 생각하나요? 예시로 들지 않은 어떤 단어를 말해주셔도 좋습니다. 다양한 이름으로 활동해왔는데요. 종국에는 ‘커뮤니케이션 디렉터’로 불리기를 바랍니다. 공간과 사람 사이 반드시 필요한 이야기, 또는 풀어 낼 대화들이 있다고 믿고 있거든요. 특히 공공 공간은 조성하고 나면 많은 사람이 이용하고, 그 쓰임은 늘어나는 데 반해 그간의 과정이나 이후의 방향에 대한 소통이 늘 부족하더라고요. 그래서 공간과 사람 사이 대화의 물꼬를 트고 잘 흐를 수 있는 커뮤니케이션을 설계하고 싶어요. 앞으로의 계획이나 목표가 궁금합니다. 좋은 선배 같은 아빠가 되고 싶어요. 아이와 친구처럼 지내는 건 어 려울 것 같지만, 진심 어린 조언을 해주고 맛있는 음식을 사주는, 먼 훗날에는 술을 함께 마실 수 있는 선배 같은 아빠가 되고 싶어요. 아이뿐만 아니라 누군가에게 좋은 선배가 되고 싶은 마음도 커요. 주변의 좋은 선배에게 도움을 받아왔기 때문에 저 또한 베풀고 싶어요. 요즘 드는 생각 하나를 덧붙이고 싶어요. 가령 예전에는 백 명을 위 한 집을 지었고, 천 명의 끼니를 책임지는 식당이 있고, 일만 명이 오 갈 수 있는 공원을 만들었다면, 최근에는 오십 명 정도의 사람이 이백 끼 정도의 식사를 하고 공원에는 천 명 정도가 다녀가는 것 같아요. 다 시 말해 도시 경관의 이용성이나 유용성, 경험의 결과 폭이 대폭 축소 된 것 같아요. 코로나19 팬데믹의 여파일 수도 있지만, 생활 방식과 사 람들의 소통 방식이 달라졌어요. 그래서 대동대이(大同大異)라는 말을 열심 히 쓰고 있어요. 도시의 물리적 환경과 일상 공간은 외형적으로 비슷하 지만, 사회적 상황과 대중의 의식은 크게 변한 현상을 빗대어 지어냈어 요. 내 아이가 한창 도시와 동네를 쏘다닐 무렵에는 대동대이 사회가 한 결 성숙해져서 나름의 재미와 흥미로 가득한 도시가 되었으면 좋겠어요. 막연하지만 제가 벌일 수 있는 흥미로운 일들이 무엇이 있을까 고민 하고 있습니다. 이 역시 좋은 선배 같은 아빠가 되기 위한 노력 중 하나 일 거예요. 박영석은 성균관대학교와 서울대학교에서 조경을 공부했다. 공공 공간 공론화 설계, 놀이 환경 연구, 도시 문화 콘텐츠 기획, 정원 컨설팅 및 소재 연구를 하며 유엘씨 프레스(ULC Press)를 발행하고 있다. 빅바이스몰(Big by Small) 공동대표이자 플레이스온(Place_On) 소장이기도 하다.
[어떤 디자인 오피스] 디멘션 조경설계사무소
뜻밖의 선물 근 30년의 세월 속에서 우리가 추구했던 설계 철학을 작업으로 정리해 보았다. 1995년, 우리가 개업할 무렵 대구엔 변변한 전문 조경설계사무소가 없었다. 건축설계사무소도 조경설계에 대한 인식이 거의 없었다. 시공사나 건설사의 조경 부문에서 시공용의 식재 계획도 등을 컴퓨터가 아닌 수작업으로 그려서 시공하던 시절이라 캐드로 설계하는 것이 획기적인 일이었다. 처음엔 두 소장의 이전 회사 근무 인연 덕분에 건설사의 아파트 설계 전문 건축사무소와 연결돼 주로 아파트 조경설계를 하면서 직원도 늘어나고 차츰 자리를 잡았다. 구·군청과 같은 관광서 프로젝트를 맡아서 수행하기도 했고, 특히 박찬용 교수(영남대학교 조경학과)와 협력해 북구청 관내의 미개발되거나 노후한 공원들을 설계하면서 본격적으로 조경설계사무소의 위상을 높였다. 1998년으로 기억되는 ‘해바라기공원’과 ‘운암지 수변공원’의 기본설계 및 실시설계는 그 당시 이명규 북구청장의 적극적인 뒷받침과 배려로 완공 다음 해(1999년) 대구 경실련 주최 제1회 도시환경문화상 대상을 공동 수상하는 영광을 얻었다. 그 당시의 공원으로는 획기적인 디자인과 시설들로 주목을 받았다. 지금 그 공원들은 다시금 리모델링을 거쳐 많은 주민에게 인기 있는 공간으로 거듭났다. 밀레니엄과 함께 다가온 기회 새천년의 빛과 정신을 담은 해맞이광장 새천년을 맞이하며 전국적으로 여러 지역에서 밀레니엄 행사가 열렸다. 국가 차원의 새천년 해맞이 행사지로 포항의 호미곶 일원이 지정됐다. 경상북도와 박찬용 교수가 함께 ‘새천년 기념공원 조성 기본 구상도’를 수립했다. 우리는 그 안을 골격으로 2000년 1월 1일 개최되는 ‘한민족 새천년의 해맞이’ 축전을 수용할 수 있는 ‘2000년 해맞이광장’을 설계하는 행운을 얻었다. 해맞이광장은 밀레니엄의 기념성, 2000년 첫 해맞이 행사, 파도, 만남, 화해와 통일 염원 등 다양한 의미와 공간 요구를 충족하면서 바다와 해돋이 장면의 직접적인 조망이 가능토록 동·서 방향 폭 50m, 길이 320m 규모의 직사각형의 장방형 중심축을 설정했다. 이 동서축 공간을 해상 및 해변 해맞이 공간, 기념 조형 공간, 공연 및 관람 공간, 서비스 공간으로 분절했다. 분절된 각 공간의 중심에 상징적인 조형 작품 등을 배치해 시각적 지표성과 상징성을 강조했다. 특히 해상과 광장에 설치된 조형 작품 ‘상생의 두 손’은 김승국 교수(영남대학교 디자인미술대학)의 작품으로, 해맞이광장의 가장 상징적인 오브제로서의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다. 현재 조성 당시와 다르게 많은 시설이 새로 설치되면서 조금은 어수선한 분위기지만 이 공간이 주는 역동성과 상징성은 새천년의 기념 정신을 잘 대변하고 있는 듯하다. 행운처럼 찾아온 기념광장 설계 대구가톨릭대학교 100주년 기념광장 조성사업 실시설계 개교 100주년 기념 공간을 대구가톨릭대학교 캠퍼스 내 대강당 전면 주차장에 조성하는 프로젝트로 엄붕훈 교수(대구가톨릭대학교 조경학과)의 기본 구상안에 우리 사무소의 정성 어린 보완과 수정 작업을 거친 끝에 모두가 만족하는 100주년 기념광장을 완성했다. 대강당 건물 주변에 차도를 두고 광장 북측엔 주차장과 이벤트 마당, 조형 안개 분수와 녹음 군집 식재를 배치해 남측 광장의 빈 공간을 보완했다. 주출입 동선의 남측 광장에 설치한 100주년 기념 원형 문주와 가운데 바닥분수는 상징적인 랜드마크가 됐다. 또한 전체적으로 화강석과 잔디 포장의 격자형 바닥 패턴을 통한 미니멀한 경관을 연출해 기념광장의 상징 이미지를 만들어 냈다. 주차장 입구 모퉁이 공간에 100주년 기념 조형 작품을 배치해 광장의 시각적 인지성과 상징성을 배가했다. 북측 주차 공간은 기존 녹음수를 최대한 존치하면서 경계 식재를 연출했다. 조형 안개 분수 주변은 대왕 참나무 군집을 식재하고, 기념 원형 문주 광장의 동·서측 가장자리엔 메타세쿼이아를 열식해 광장에 위요감을 불어넣었다. 남측 경사지는 계단식 화계를 조성해 경관성을 도모했다. 공동주택 조경설계 남산그린타운 이 아파트는 대구도시개발공사(이하 대구도시공사)가 발주한 프로젝트였다. 협력사인 환경건축이 수주한 프로젝트로 우리는 하도급 설계를 맡았다. 당시 대구도시공사의 조경 부문 담당자가 비교적 우리의 설계 의도와 공간 디자인에 대한 배려를 많이 해준 덕분에 나름대로 열정적으로 임했던 기억이 있다. 당시 타 아파트에 비해 지상 주차장을 최소화하여 지상 공간에 대부분 광장, 놀이터, 조경 녹지와 산책로, 운동 공간 등을 배치했다. 덕분에 남측 공간이 다소 높았던 2단의 공간에 역동성과 활력을 불어넣을 수 있었다. 더구나 남·북의 두 광장에 조형성이 높은 게이트형 구조물과 어우러진 분수 시설을 배치해 공간의 상징성과 풍부한 경관성을 부각하면서 원형 및 격자형 포장 등을 적절히 도입하여 독창적인 공간감을 부여했다. 놀이 시설도 그 당시 각광을 받았던 다양한 색상과 기능미, 조형미가 뛰어난 테마형 조합 놀이대를 선정해 어린이들의 모험심과 상상력을 자극시킬 수 있었다. 결과적으로 2005년 대구시 조경상 우수상을 받아 대구도시공사로부터도 인정받은 프로젝트였다. 캐슬골드파크 캐슬골드파크는 지금까지도 대구 최대의 재건축사업으로 꼽히는 황금주공아파트 재건축을 통해 탄생했다. 당시 4,256세대의 거대한 클러스터를 연상시키는 대규모 사업으로 당초 인·허가 설계를 무시하고 우리는 조경 특화설계를 맡게 되어 상당한 부담과 책임감으로 임했다. 물소리·바람소리 어우러지는 정겨운 마을마당, 보행축을 따라 숲이 그려지는 싱그러운 초록 마을이라는 개념 아래 전체 5개 단지별 특징적 공간과 시설물, 식재 기법을 도입하여 차별성을 부여했다. 도시공원 요소를 도입한 열린 가로 공원을 조성하고 단지 주요 공간에 조형 작품을 설치해 생활 속의 예술 공간을 마련했다. 결절 지점에 소광장 및 휴게 공간을 만들었다. 입구의 상징성을 위한 문주 및 조형물, 수경 시설을 배치하고, 지형 극복을 위한 화계 조형 옹벽, 계류, 돌담 등을 조성했다. 다양한 색감의 포장 재료와 패턴으로 시각적, 경관적 흥미를 더하는 화려한 단지 공간을 연출하고자 했다. 공원 리모델링 상록어린이공원 대구시 달서구 두류동에 위치한 상록어린이공원은 주변의 저층 아파트와 주거 지역으로 둘러싸인 공간으로 유아부터 노인까지 다양한 주민들이 자주 이용하는 동네 공원이다. 노후화된 공원을 현 실정에 맞도록 새롭게 재정비해 주민들에게 쾌적하고 편리한 환경을 제공하고자 했다. 공원을 둘러보며 걸을 수 있는 산책로와 체력 단련 시설, 모험성과 유지 관리성이 우수한 놀이 시설물과 적절한 휴게 시설을 배치하여 통합된 공원의 역할을 부여했다. 기존의 대형 수목을 최대한 보존하고, 하부에 지피류와 화관목을 대량 식재하는 등 다층 식재 구조를 통해 풍부한 식생 경관을 만들고자 했다. 학산공원 대구시 달서구 월성동에 위치한 학산공원은 10층 규모의 아파트 단지와 초등학교, 유치원이 있는 오래된 택지개발지구 내의 공원으로 상당히 노후화되어 재정비가 시급했다. 공원 내 기존의 화장실이 얼마 전 리모델링됐고, 오랜 시간 정리가 되지 않았던 기존 수목들은 다소 무질서하게 자란 상태였다. 다만 일부 낙엽수들은 좋은 수형을 가지고 있어 그 자리에 그대로 보전하기로 했다. 공원 외곽에 시설과 수목 사이를 지나는 순환 산책로를 새롭게 만들고, 진·출입 동선은 지형적 한계로 기존의 출입구를 유지하면서 폭과 형태를 보완했다. 진입 동선은 중앙광장과 놀이 공간으로 집중되도록 조정하면서 곳곳에 정자 등 휴게 시설을 배치했다. 음수대도 기존 위치에 새로운 형태로 재설치하여 편의성을 도모했다. 아이들의 놀이 행태를 고려한 산책로, 남측에 모래 놀이터와 놀이 시설은 이곳만의 시그니처가 됐다. 채정공원 대구시 달서구 상인동에 위치한 채정공원은 시장, 어린이집과 저층 주거지로 둘러싸인 전형적인 주택가의 마을 공원으로서 오래된 택지개발지구의 공원 중 하나다. 도시재생 부서의 마을재생 프로젝트공모에 선정되어 재정비 사업을 추진하게 됐다. ‘보름달에 꽃비가 내리는 마을마당’의 개념 아래 다음 두 가지를 설계의 기본 방향으로 설정했다. 첫째, 하늘의 보름달처럼 환하고 축복처럼 꽃비가 내려 마을마당이 꽃동산으로 물든다. 둘째, 달빛이 비추는 분수에서 풍요의 결실이 샘솟아 넘쳐흐르고, 채정 마을의 번영과 안녕을 기원한다. 여러 안을 협의하면서 수경 시설 제안과 동선이나 시설물의 위치와 사양들도 여러 번의 수정·보완을 거친 후 결정되는 등 우여곡절 끝에 설계안을 완성할 수 있었다. 특히 공원 중앙의 테마형 조합 놀이 시설은 안개 분수를 갖추고 있으며, 조형 분수대는 달빛을 연상하는 조명과 커튼처럼 낙하하는 분수가 야간 조명과 어우러져 환상적인 분위기를 연출한다. 기존의 양호한 큰 수목들은 존치하면서 계절감과 향기, 질감 등을 잘 나타내는 화관목과 지피류를 집중적으로 도입하여 사계절의 변화감과 풍성한 경관을 느낄 수 있게 식재했다. 아름다운 경관을 꿈꾸며 요즈음 조경업계가 위기에 처해 있다고 한다. 발주처의 터무니없는 갑질, 회사 운영을 위한 박리다매 수주, 권위주의적이고 일방적인 각종 위원회와 트집 잡기 문화, 타 분야에서의 영역 침범, 좋은 인력을 뽑지 못해 발버둥치는 소규모 회사들과 공공 부문과 대기업만 선호하는 전공 졸업생, 현재의 어려운 경제 상황 등 이런 모든 것들이 어우러져 조경계 전체를 어렵게 만들고 있다. 그러나 여전히 조경의 본질은 새로운 경관, 인간을 위한 공간을 꿈꾸는 것에서 시작된다고 믿는다. 우리들의 보람은 이 꿈과 이상을 현실로 바꾸는 힘과 과정에 있다. 좋은 공간, 아름다운 경관에 대한 상상(꿈, 염원)은 새로운 경관을 만드는 조경 행위를 발생시키는 원동력이다. 더 나은 세상, 더 좋은 삶에 대한 집단적 상상력과 실천 의지가 그 어느 때보다 필요한 시대에 살고 있다. 현장에 대한 치열한 탐구와 더 좋은 것에 대한 꿈과 비전을 위해 우리는 끊임없이 노력해야 한다. 그것이 좋은 결실을 맺으면 전문가의 역할과 능력에 대한 확신과 믿음에 따른 배려와 대우가 따라주지 않을까. 1995년, 디멘션조경설계사무소는 이동화 소장이 영남대학교 조경학과 1년 후배 김맹곤 소장과 의기투합해 대구에서 거의 처음으로 연 조경설계사무소다. 20여 년간 이어오다 김 소장이 시공사 대표로 독립한 뒤 지금까지 이동화 대표가 이끌고 있다. 좋은 공간, 아름다운 경관에 대한 상상(꿈, 염원)은 사람과 자연이 어우러지는 원동력이라 믿는다. 서두르지 않는 세심한 디자인으로 모두가 원하는 조경 공간을 만들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모던스케이프] 전원에서 도시로, 한강의 근대 풍경
지금의 한강은 서울 중심을 동서로 관통하는 대표 경관이지만, 20세기 초만 하더라도 도성에서 족히 4~5km는 걸어 나와야 만날 수 있는 곳이었다. 사람이 많아 복잡하고 정신없는 성안과는 달리, 한강 일대는 강 하류 특유의 한적하고 유유자적함이 있었다. 강 하구인 탓에 유속은 느리고 강폭도 약 1km나 됐고 백사장 풍경은 아름다웠다. 도성과도 가까워 예로부터 시인 묵객과 화인 가객이 즐겨 찾았는데, 조선을 방문한 중국 사신들에게도 한강은 꼭 한번은 들러볼 만한 명소였다. 1539년 명나라 사신 화찰(華察, 1497~1574)은 조선을 방문하던 중, 통역사의 권유로 한강을 유람할 기회가 있었는데, 현장의 느낌을 『유한강기(游漢江記)』로 남겼다. “내가 장막을 들어 올리고 보니 남산이 눈앞에 보이고 북악산이 뒤에 있으며 용산과 필운대가 좌우로 어리어 비치고 잠두봉을 비롯한 여러 봉우리가 천태만상으로 들쭉날쭉하여 완연히 그림과 같았다(予搴帷視之, 則見南山在前, 北嶽在後, 龍山弼雲, 映帶左右, 蠶頭諸峰, 起伏萬狀, 宛然如畫).” 양화나루까지 가려던 배가 갑자스러운 바람에 움직이지 못했지만, 그 덕분에 한강의 기가 막힌 풍경을 마주할 수 있었다. 풍경에 감동한 화찰은 바로 양화나루행을 취소하고 그 자리에서 연회를 열고 뱃놀이를 즐겼다. 진경산수화의 종주이기도 한 겸재 정선(謙齋 鄭歚, 1676~1759)은 1741년부터 1759년까지 서울 근교의 명승을 그린 그림들을 모아 『경교명승첩(京郊名勝帖)』를 엮었는데, 수록된 33점의 그림 중 무려 20여 점이 한강이 주제가 되는 것이었다. 이것은 1740년부터 1745년까지 양천현령으로 있었던 그의 경력과 무관하지 않다. 남한강과 북한강이 머리를 맞대고 있는 양수리의 전경을 그린 ‘독백탄(獨栢灘)’과 상암 월드컵경기장과 월드컵공원이 들어선 난지도 일대를 묘사한 ‘금성평사(錦成平沙)’, 해 지는 안산(鞍山)(무악산)과 한강의 모습을 담은 ‘안현석봉(鞍峴夕奉)’ 등, 겸재는 한강의 진면목을 알 수 있는 경점(景點)들을 우리에게 전승해주었다. 지금의 우리가 한강의 옛 풍경을 감히 상상해 볼 수 있게 된 것도 모두 그가 남긴 그림 덕분이다. 한강의 이러한 심미적 가치는 서울의 근대화와 함께 사라지거나 변질됐는데, 그 첫 시작은 한강철교의 건설이다. 1876년 강화도 조약(조일수호조규) 체결 이후 제물포(인천)의 존재감이 급부상했고 급기야 서울과 인천을 잇는 경인선 건설까지 견인했다. 이 철도 건설에는 한강의 이남과 이북을 이어야 하는 난제가 포함되어 있었는데, 이것이 한강철교의 건설 배경이다. 나룻배가 유일한 교통수단이었던 한강에 대규모 철교가 들어서게 된 전례 없는 광경은 보는 이들에게 경이로움과 두려움을 동시에 안겨주었다. 지금의 한강철교는 총 네 개의 교량으로, 철도와 수도권 전철의 복선으로 운영되고 있다. 하지만 처음부터 이런 모습은 아니었다. 한강철교 건설을 처음 추진했던 대한제국 정부는 선박이 지나갈 수 있는 도개교로 하고 사람들이 보행할 수 있는 보도까지 설치할 것을 생각했었다. 하지만 철도와 교량 부설권이 일본에 넘어가면서 계획은 변경됐고, 1900년 7월 철교 하나를 완공하면서 마무리됐다. 대신 1917년에 인도교 하나를 별도로 가설하는데, 그것이 오늘날의 한강대교다. 한강철교와 인도교는 단순히 한강의 풍경을 근대화하는 데 그치지 않았다. 철교 남단의 영등포 일대를 자족의 공업도시로 개발했으며 서울의 행정구역 경계를 확장하는 데까지 이어졌다. *환경과조경426호(2023년 10월호)수록본 일부 참고문헌 京城府, 『大正乙丑の水災』, 1925 김종근, “일제하 京城의 홍수에 대한 식민정부의 대응 양상 분석: 정치생태학적 관점에서”,『한국사연구』 157, 2012, pp.291~327. 이국진, “명나라 사신들의 한강 유람과 문학적 형상화”, 『한문고전연구』 25, 2012, pp.7~42. 이영민, “개항 이후 경인지역의 역사지리적 변화와 경인선 철도의 역할”, 『지리교육논집』 49, 2005,pp.285~299. 그림 출처 그림 1. 위키피디아
새로운 수변 랜드마크와 복합문화공간으로 탄생할 제2세종문화회관
서울시는 8월 21일, ‘여의도공원 (가칭)제2세종문화회관 건립 기획 디자인 국제공모’ 당선작을 발표했다. 제2세종문화회관은 한강 수변 랜드마크이자 대중문화 콘텐츠의 중심인 복합문화공간으로 탄생할 예정이다. 55개 작품이 접수됐으며 심사를 통해 다섯 작품을 당선작으로 선정했다. 당선작은 범건축종합건축사사무소+밀라케 아티니시(Melike Altinisk)+얼라이브어스의 ‘더 스파크(The Spark)’, 종합건축사사무소 디자인캠프 문박 디엠피+바이런의 ‘스카이 포이어(Sky Foyer)’, 희림종합건축사사무소의 ‘제2세종퍼포밍아트센터(The 2nd Sejong Performing Art Center)’, 자하 하디드 아키텍츠(Zaha Hadid Architects)+ULD조경설계사무소의 ‘에코우즈 오브 서울(Echoes of Seoul)’, DÜRIG AG+신평엔지니어링종합건축사사무소의 ‘더 센터 포 퍼포밍 아트(The Center for Performing Arts)’다. 심사는 대공연장, 중극장, 연습실, 전시장, 교육 시설을 갖춘 문화 시설, 시민과 서울항 이용객을 위한 다양한 집객 시설, 이용자 편의를 위한 지하 주차장 등의 충족 여부, 서울을 대표하는 랜드마크로 건립할 수 있는지에 대한 디자인 실현성을 중점으로 진행됐다. 심사위원회는 당선작들이 대체로 수변과 공원을 연결하는 동선을 자연스럽게 풀어냈고, 공연 구조와 기능을 통합적으로 해석했으며, 여의도공원의 상징성을 갖춘 설계안을 제시한 점을 높게 평가했다. 아울러 서울시는 9월 8일, 서울시청에서 당선작을 시민들에게 선보이기 위해 ‘제2세종문화회관 디자인공모 대시민 포럼’을 개최했다. 당선작 설계자가 포럼을 통해 직접 디자인 계획안을 발표하고 해당 설계에 대한 시민들의 의견을 청취하는 시간을 가졌다. 시는 선정된 다섯 팀을 대상으로 2025년에 지명 설계 공모를 실시해 설계용역을 수행할 대상자를 선정할 계획이다. 서울의 새로운 랜드마크로 자리 잡을 제2세종문화회관의 모습을 미리 엿보고자 당선작 다섯 작품을 소개한다. 범건축종합건축사사무소+밀라케 아티니시+얼라이브어스, ‘더 스파크’ 수변과 공원을 타원형의 고리 모양으로 설계해 주변 환경과 조화를 이루는 친환경 단지로 조성했다. 방문객들이 여러 진입 지점에서 다양한 문화 경관에 접근할 수 있도록 설계했다. 외부와의 통로와 공중 광장을 통해 서로 떨어진 건축물을 여러 방향에서 접근할 수 있다. 한강과 여의도공원을 타원형 다리로 연결한 새로운 형태의 공공 광장으로 역할할 것이다. 중심성과 확산성을 포함하는 동심원 배열: 한강 북동쪽에 위치한 서울항에 도착한 방문객들은 경관 조형물을 자연스럽게 따라가며 더 스파크에 다다르게 된다. IFC몰과 더현대 서울을 오고 갈 수 있는 지하 연결 보행로를 계획해 더 스파크로 향하는 보행 접근성을 개선했다. 시민과 소통하는 도시 랜드마크: 공연, 전시, 박물관, 축제, 콘서트 등 다양한 문화 체험을 제공하는 활기찬 허브로 구상했다. 새로운 세종문화회관은 서울을 상징할 뿐 아니라 공공 공간에 대한 주인 의식을 부여한다. 통로, 공중 광장, 전망 보행교에 역동적이면서 눈에 띄는 요소를 추가했고, 복합문화시설의 중심 랜드마크로서 더 스파크의 역할을 부각시켰다. 자연과 적극적으로 소통하는 친환경 문화 공간: 에너지 효율, 물 절약, 친환경 자재 사용 등을 극대화하는 동시에 방문객의 쾌적함과 웰빙을 고려한 지속가능성의 개념을 적용했다. 지속가능성을 위해 가장 고려한 점은 건물과 환경 간의 관계다. 건물의 매스, 위치, 방향에 관한 결정은 일사량 제어, 주광 및 자연 환기에 중점을 두고 이루어졌다. 건축물 표면에 미치는 태양광과 바람을 활용해 에너지 효율을 극대화하고, 인공 조명 및 기계 환기 시스템의 의존도를 최소화했다. 기후 조건을 고려해 재료와 식재를 선택하고, 나무 군락을 활용해 그늘을 만들어 미기후 효과를 도입했다. 이는 미적 가치를 향상시킬 뿐 아니라 도시 열섬 효과를 줄이고 생물 다양성의 증진에도 기여한다. *환경과조경426호(2023년 10월호)수록본 일부
송현동의 기억을 되찾는 실험
9월 1일, 제4회 서울도시건축비엔날레가 ‘땅의 건축, 땅의 도시’를 주제로 개최됐다. 이번 비엔날레는 서울도시건축관, 서울시청 시민청, 그리고 열린송현녹지광장(이하 송현광장)에서 열린다. 경복궁 인근에 있는 송현광장은 지난 110년간 도시의 외딴섬처럼 닫혀 있던 공간이다. 일제식민지기에는 조선식산은행 사택, 광복 후에는 주한 미국 대사관 직원 숙소로 사용되다가 2022년 10월이 되어서야 꽃과 식물이 심긴 너른 녹지로 개방되었다. 현장프로젝트는 도시적, 역사적, 지리적으로 함의하는 바가 다층적으로 쌓인 송현광장의 공간적 가능성을 실험한다. 도시적 맥락에서 시민과의 직접적인 상호작용을 꾀할 뿐 아니라 야외에서만 벌일 수 있는 특수한 방식의 전시를 시도하고, 날씨 변화에 따른 다각적 경험을 의도했다. 현장프로젝트를 기획한 김사라 큐레이터는 “다양한 파빌리온과 연계 행사를 통해 기억이 없는 땅, 송현동의 장소성을 되찾는 뜻 깊은 자리가 되기를 기대한다”고 말했다. 주축이 되는 작품은 주제전의 일부인 ‘하늘 소’와 ‘땅 소’다. 하늘 소는 주변 산세와 송현동 부지의 관계, 한양의 배치가 어떻게 만들어졌는지를 이해할 수 있도록 제안된 구조물이다. 계단에 오르면 북한산, 북악산, 경복궁의 배치 관계를 엿볼 수 있으며 익숙한 도심을 색다른 시선으로 바라볼 수 있다. 그와 반대로 땅 소는 몸을 낮추어 낮은 곳에서 송현동 부지와 그 주변의 땅의 기운을 느끼기를 유도한다. 주변의 산세를 본떠 작게 만든 것 같은 굴곡진 언덕은 하늘 소와는 다른 높이의 감각을 선사하고, 중앙의 못에는 주변의 풍경이 담긴다. 곳곳에 설치된 다양한 유형의 파빌리온은 2년간 시민에게 개방되는 송현광장이 한시적 장소로써 어떠한 역할을 할 수 있는지 질문을 던진다. 일반적으로 파빌리온이나 폴리가 이벤트 장소나 건축적·예술적 설치물 역할을 한다면, 송현광장의 파빌리온은 도시와 송현동이 관계하는 여러 방식을 제안하며 동선을 안내하고, 독립적인 공간으로서 체험적 노드로 기능한다. *환경과조경426호(2023년 10월호)수록본 일부
서울 마이 노을
지난 9월 4일, 서울시는 한강노을즐김터 설계공모 당선작으로 안마당더랩(이범수, 오정은, 강현이)의 ‘서울 마이노을(Seoul My Noeul)’을 선정했다. 이번 공모는 서울시가 추진하는 ‘그레이트 한강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한강변 노을 특화 공간 조성을 위해 진행됐다. 아름답고 다채로운 한강 노을을 활용해 도시와 한강이 어우러지는 국제적인 감성 조망 명소를 조성하고, 일상 오픈스페이스로 기능하는 동시에 주변의 한강변 보행 네트워크를 활성화시키는 것이 설계 목표였다. 나아가 감성적 스토리텔링을 통해 시민의 공감대를 형성할 수 있어야 했다. 지난해 진행한 ‘한강 노을명소 찾기 시민 사진공모전’통해 발굴한 6개 권역(망원·난지, 강서, 한강대교 남북단, 반포·잠원, 서울숲·뚝섬, 잠실·광나루)의 노을 명소 20개소를 대상지로 선정했다. 해당 대상지는 시민이 직접 뽑은 노을 명소를 사진 촬영 수, 접근성, 경험 요소(랜드마크·전망), 주변과의 연계성 등 다각도로 분석해 선정됐다. 7월 5일부터 8월 22일까지 진행된 공모의 45개 출품작 중 심사를 거쳐 4개의 수상작을 선정했다. 심사위원회는 당선작이 한강노을즐김터의 장소성을 구현하고, 노을만이 아니라 시간과 계절에 따라 변화하는 한강의 자연성을 담아낸 점을 높이 평가했다. 한강노을즐김터는 기본 및 실시설계를 거쳐 2024년에는 한강의 아름다운 노을을 감성과 매력을 담은 공간으로 탈바꿈하게 된다. 당선작, 서울 마이 노을 안마당더랩(이범수, 오정은, 강현이) 서울의 한가운데에서 마주하는 노을과 달. 이들의 만남은 은은한 감성으로 어우러지는 광장을 탄생시킨다. 기존의 뚝섬수변무대를 활용한 서울 마이 노을은 노을을 중심으로 한 시민들의 다양한 활동을 담을 수 있는 특별한 공간이다. 노을과 달을 형상화하여 태양의 움직임에 따라 노을이 서서히 지고 달이 떠오르는 과정을 한순간의 예술로 표현하며, 그 시간을 중심으로 시민들이 펼치는 활동들이 흐르는 무대가 된다. 음악, 미술, 연극, 걷기, 쉬기 등 다양한 문화 활동이 이곳에서 만나 탄생하고, 도시의 소음에서 벗어나 조용한 감상의 시간을 누릴 수 있는 휴식처로 자리한다. 달의 광장은 조수간만의 변화에 따라 다양한 모습을 드러내는 특별한 경관을 만들어 낸다. 물이 차오르면 빛은 원형 광장에 반사돼 물 위를 비추는 노을의 아름다움을 더욱 극대화한다. 물의 움직임이 노을의 색상을 아름답게 반영하고, 시민들은 물과 노을이 어우러지는 환상적인 순간을 함께 누릴 수 있다. 이곳은 단순한 광장이 아닌 시간별로 변화하는 풍경을 통해 시민들에게 자연의 아름다움을 선사하는 장소가 된다. 저녁이 다가오면 시민들은 이곳으로 모여, 서로의 일상의 아름다움과 감동을 나누며 하루를 마무리하는 순간을 함께한다. 시민들에게 항상 영감과 위로를 선사하는 도시의 마음과 노을이 만나는 특별한 공간으로 꾸준히 빛나며 서울의 아름다움을 노래한다. 주변 환경과 조화롭게 어우러진 디자인을 통해 공원을 찾는 시민들에게 친숙한 느낌을 전달한다. 공간을 감싸고 있는 자연 호안의 녹지는 공간을 즐기는 시민들에게 안정감을 준다. 노을전망데크까지 이어지는 무장애 램프를 통해 편의성과 접근성을 높여 누구나 이곳의 노을을 감상할 수 있게 했다. 수면에 비친 노을의 아름다운 산란을 형상화한 스탠드는 이곳을 찾는 시민들의 다양한 활동을 포착하고, 노을의 빛을 담아내어 특별한 경관을 만들어 낸다. 기존 수변 산책로의 선형을 곡선으로 변경해 자전거의 속도를 줄이고 노을을 즐기는 시민들의 안전을 고려하는 동시에 잠시 페달을 멈추고 노을 감상하며 휴식을 취할 수 있게 한다. *환경과조경426호(2023년 10월호)수록본 일부
[기웃거리는 편집자] 대구에 가면
한두 시간 수다를 나누면 종종 듣는 질문이 있다. “서울 사람 아니죠?” 그렇다, 서울 사람이 아니다. 고향은 대구광역시로 경상도 사람이다. 일곱 살 때 가족과 함께 상경했고, 초‧중‧고등학교와 대학교를 서울에서 다녔다. 대구에서 산 세월보다 서울에서 보낸 시간이 더 길지만, 서울말을 쓰기 어렵다. 특히 부모님 두 분 다 경상도가 고향이고 그곳에서 나고 자랐기에 경상도 특유의 억양이 남아 있어 그 영향을 피할 수 없었다. 나름 서울말을 쓰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서울 토박이들과 대화를 하면 단번에 고향이 서울이 아니라는 걸 들키게 된다. 대구 사람인 걸 들키고 나면, “대구는 뭐가 유명해요”라는 질문을 받는다. 나름 답해 보지만 더 자세한 부분을 물어보면 더 이상 말을 이어나가기 어렵다. 강산이 변한다는 10년을 채우지 못하고 서울로 올라왔기에 대구는 오래 전 묻어둔 추억 상자 같은 지역이다. 내가 기억하고 있는 대구는 아파트 단지로 둘러싸인 대도시라기보단 다양한 모양의 주택과 구불구불한 골목으로 만들어진 정겨운 도시다.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나는 곳은 지금은 이(E)월드, 83타워로 명칭이 바뀐 우방랜드, 우방타워다. 우방타워는 나에겐 세상에서 가장 긴 타워였고, 우방랜드는 매일 가고 싶은 모험의 놀이공원이었다. 이번 호 특집 준비는 익숙하면서도 새로웠다. 알고 있던 곳의 숨겨진 면을 발견하기도 하고, 아예 몰랐던 곳을 새로 알게 되기도 했다. 특집을 준비하면서, 가보지 않은, 처음 알게 된 공간을 가보고 싶다는 생각을 가지게 됐다. 마침 대구에 갈 일이 생겨 이 생각을 실행해 볼 수 있었다(사실 이 지면에 쓸 만한 소재를 찾기 위함도 있다). 어디로 갈지 고민하던 중 “대구에 와서 할 만한 유일한 소일거리는 구도심의 골목길을 걸어보는 것”이라는 최이규 교수의 글(26쪽)을 보고 골목길로 행선지를 정했다. 갈 만한 골목길을 조사하던 중 발견한 근대골목. 대구 중구청에서 진행하는 근대골목 투어의 코스를 참고해 동선을 계획했다. 나의 코스는 김광석 다시 그리기 길-계산성당-3.1만세운동길. 자동차가 아닌 두 발로 직접 걸으며 느꼈던 근대골목의 풍경을 짧게 적어본다. 김광석 다시 그리기 길(67쪽)에는 고 김광석의 기타 치는 모습의 동상으로 시작을 알린다. 곳곳에설치된 스피커에서는 김광석 노래가 흘러나오고 김광석 일생을 담은 벽화를 따라 걷는다. 그곳에서 다시 들은 노래는 마음을 싱숭생숭하게 만들었다. 벤치에 한동안 앉아 노래를 들으며 예전에는 공감하지 못했던 가사에 귀를 기울였다. 골목에는 뽑기 게임기가 줄지어 있었다. 지갑에 있던 꾸겨진 지폐를 동전으로 바꾸고 오백원을 게임기에 넣어 뭐가 나올지 기대하며 손잡이를 돌렸다. 나온 건 맥주 모양의 사탕, 사탕을 입에 물고 계산성당으로 향하는 버스에 몸을 실었다. 계산성당은 청라언덕에 있어 짧은 등산(?)이 필요하다. 원래 목조 십자형 건물이었는데 화재로 인해 불에 타 고딕 양식을 활용해 재건축했으며 대구에서 가장 오래된 성당이다. 유럽에서 볼 법한 고딕 양식의 성당이라 그런지 그 위용은 거대했다. 사진을 잘 찍으면 외국에 온 듯 한 연출이 가능하다. 신성한 분위기를 느끼며 내려오는 길에 만난 3.1만세운동길. 이 길은 드라마 ‘김비서가 왜 그럴까’(2018) 남녀 주인공이 데이트하던 장소로도 유명하다. 90개의 계단 옆으로 태극기가 휘날리고 벽에는 3.1만세운동 당시 사진이 걸려있다. 바람에 펄럭이는 태극기와 사진을 보며 치열했던 그날의 함성을 간접적으로 경험할 수 있었다. 짧은 일정으로 많은 곳을 둘러보진 못했지만, 잠깐이나마 본 근대골목은 대구의 새로운 면을 발견하기엔 충분했다. 이 글을 쓰면서 ‘○○에 가면’이란 노래가 떠올랐다. 누군가 ○○에 한 지역을 말하면 거기에 있는 볼거리, 먹거리 등으로 이어 달리기하듯 순서대로 노래를 부른다. 대구에 가면이라고 선창하면 얼마나 이어 부를 수 있지 생각해봤을 때, 많은 단어가 떠오르지 않았다. 너무 어렸을 때의 기억이라서, 대구에 살던 기간이 길지 않아서라는 핑계를 삼으며 대구를 멀리 했던 것 같다. 그래서 더 다양한 곳을 조사하고 지면에 실으려고 노력했다. 이번 특집의 목표 중 하나는 대구를 한 번쯤 가보고 싶어지게 만들고 여행의 큰 틀을 잡을 수 있도록 돕는 것이다. 이 지면도 그 길잡이가 되기를.
[편집자가 만난 문장들] 빈틈이 있어서 그 부분을 제 상상으로 채워 넣을 수도 있어요
건물이 모두 사라진 도시는 어떤 모양일까. 디스토피아 영화 속 다 허물어져가는 건물조차 사라진 도시의 모습이 궁금해질 때가 있다. 동네 풍경 하면 떠오르는 건 주로 건물들이다. 통유리를 두른 오피스텔, 붉은 벽돌 다세대주택, 시멘트 담을 세운 단독주택, 전단지가 붙은 전봇대와 줄지어 선 불법 주차 차량, 길고양이를 위한 밥그릇들. 나의 동네는 “이름은 청량했지만, 시원하게 트인 하늘을 볼 수 없었던 곳”(14쪽)과 아주 가깝고 환경이 비슷하다. 그래서 나도 조각난 하늘을 보고 산다. 슈퍼문을 보기 위해 옥상에 오르면 아파트에 달이 가려지지 않은 곳을 찾아 이리저리 몸을 기울여야 한다. 이따금 내가 서 있는 곳이 어디인지 생각하면 아득해진다. 동네는 어떻게 생겼나. 오르막과 내리막이 어디에 붙어 있는지는 알지만 그것이 이어져 어떤 선을 그리는지는 좀처럼 상상이 되지 않는다. 그런데 열린송현녹지광장(이하 송현광장)에서는 어렴풋하게 발을 딛고 선 도시의 모양을 짐작할 수 있다. 오랜 시간 빈 터를 감추고 있던 4m 높이의 벽을 1.2m로 낮추고 잔디와 야생화로 단장한 송현광장은 주변을 360도로 돌아볼 수 있는 기회를 준다. 건물 사이에 있을 때와는 사뭇 다른 느낌으로 도시를 감각하게 된다. 축구장의 약 5배에 달하는 넓은 녹지는 서울의 배경이라는 산들이 도시와 어느 정도 멀리 떨어져 있는지, 4차선 도로가 얼마큼 넓은지, 다른 지역으로 이어지는 골목길이 얼마나 고불고불한지 새삼 느끼게 한다. 최근 이곳은 서울도시건축비엔날레의 현장프로젝트 장소로 사용되는 중이다. 취재를 하러 가며, 휴관일이 언제인지 문은 언제 닫는지 확인하지 않은 게 아주 오랜만이었다. 물론 ‘하늘 소’에 오르거나 특정 파빌리온에 들어갈 수 있는 시간은 정해져 있지만, 그 외 대부분의 전시 구조물은 언제든 볼 수 있다. ‘하늘 소’에 오르면 주변 산세와 송현동의 전경을 넓게 볼 수 있지만, 그보다는 ‘땅 소’에 더 마음이 갔다. 도시에서 흔하게 볼 수 없는 언덕의 굴곡이 흥미롭게 느껴지고, 아주 높지도 않고 낮지도 않은 그 높이가 좋았다. 언덕 위에 뉘여 놓은 나무줄기 모양의 벤치에 앉으면, 어릴 적 초등학교 운동장에 있던 정글짐에 오른 기분이 든다. 마음먹으면 쉽게 올라 적당한 넓이의 땅을 내려다볼 수 있는 다정한 높이. 벤치는 도심 풍경이 담기도록 파놓은 작은 연못을 향해 놓여있지만 자꾸 뒤를 돌아보게 된다. 연못 앞에는 차도와 높다란 빌딩이 있지만, 뒤쪽으로는 넉넉한 녹지가 있고 옹기종기 자란 건물 사이로 국립현대미술관과 서울공예박물관의 끄트머리를 슬쩍 엿볼 수 있는 까닭이다. 송현광장을 떠나며 한 번 더 이곳에 오고 싶다고 느끼게 한 또 다른 매력은 말끔하지 않은 녹지다. 정리되지 않은 듯이 마구잡이로 자란 풀이 허리 높이까지 올라왔다가 바닥으로 축 가라앉기도 한다. 사이사이의 꽃은 심긴 것이 아니라 정말 그곳에서 피어난 것처럼 자연스럽다. 과장을 보태, 꼭 인간이 만든 인공 구조물이 다 스러지고 몇 천 년이 지난 후의 땅을 보는 것 같다. 녹지 사이의 길도 돌이나 데크로 포장하는 대신 야자매트로 덮는 정도로 정돈했다. 비가 오면 물이 고이고 가끔 몸이 휘청거리기도 하지만 걷기에 나쁘지 않다. 벤치도 그냥 툭툭 놓여 있다. 도심 한복판에서 이런 야생의 녹지를 맛볼 수 있는 곳이 얼마나 될까. 이 모든 것들은 공원이 아닌 광장이라는 단어와 잘 어울린다. 광장이 광장다울 수 있던 이유는 서울시가 임시 개방인 만큼 인위적 시설을 설치하기보다 최소한의 시설물만 배치한 덕분이다. 2024년 말 이후에는 ‘송현문화공원’으로 다시 태어나기 위해 땅이 다시 닫힌다. 같은 녹지이지만 공원의 단정하게 정리된 화단, 수목, 깔끔하게 포장된 길은 지금과는 조금 다른 분위기를 풍기게 될 테다. “글은 좀 더 날 것의 느낌이 나고, 빈틈이 있어서 그 부분을 제 상상으로 채워 넣을 수도 있어요.”(100쪽) 박영석의 말이 떠올라 아쉬워졌다. 공원과 광장이 다르다는 걸 다시 느꼈다. 이 틈새를 가능성의 땅으로 좀 더 오래 두어도 좋을 것 같다. 가능하다면 이번 서울도시건축비엔날레에서 ‘누구나’에 포함되지 못한, 계단과 가파른 언덕을 오를 수 없는 이들도 모두 편히 오갈 수 있는 공간으로. 엘리베이터 같은 간단하고 낭만 없는 해결책보다는, 더 완만하고 비스듬한 경사를 놓는 따뜻한 형태로.
사람과 도시를 숨 쉬게 하는 친환경 점토벽돌
열대화 시대를 앞둔 지금, 건강하고 쾌적한 도시 환경에 대한 관심이 커지면서 지속가능한 보행 환경 조성을 위한 노력이 이어지고 있다. 벽돌 전문 기업 ‘삼한씨원’은 완성도 높은 디자인과 자연 친화적인 제품을 통해서 건강한 도시 환경을 구축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특히 점토벽돌은 산업 폐기물 대신 황토, 점토 등 천연 흙으로 만든 친환경 벽돌이다. K마크 인증을 받은 제품으로 7대 유해 물질이 검출되지 않을 만큼 친환경적이다. 점토벽돌은 디자인 요소로 활용할 수 있다. 이 벽돌은 천연 원료 배합만으로 150여 종의 자연스러운 색상을 표현할 수 있다. 다채로운 색상의 벽돌을 공간에 활용하면 경쾌한 분위기를 연출할 수 있다. 대규모 공간에는 벽돌 자체에 무늬가 새겨진 SH6005 토미버디칼플러스보도를 활용하면 단조로운 디자인에서 벗어난 연출이 가능하다. 점토벽돌의 특징 중 하나는 높은 내구성이다. 삼한씨원의 점토벽돌은 업계 단체 표준보다 높은 압축 강도를 기준으로 제작된 고강도 벽돌이다. 겨울철 동결 융해 저항성이 뛰어나며, 여러 충격에도 잘 깨지지 않아 100년 이상 장기적으로 사용할 수 있는 것이 장점이다. 열을 받아도 표면 온도가 높게 오르지 않아 도시 열섬 현상을 완화하는 동시에 쾌적한 보행 환경을 조성한다. TEL. 1599-9989 WEB. www.ebric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