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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경과조경 2021년 3월

정보
출간일
이매거진 가격 9,000
잡지 가격 10,000

기사리스트

[에디토리얼] 공터에서
이달에는 오랜만에 본문 기사 한 편을 쓰게 되었다. 올해 8월 통권 400호 출간을 기념해 편집부 에디터들과 편집위원들이 돌아가며 지난 39년간의 『환경과조경』 전권을 리뷰하는 기획물의 세 번째 순서를 떠맡게 된 것. 등 떠밀려 다시 읽은 옛 잡지는 통권 101호부터 150호까지, 1996년 9월호부터 2000년 10월호까지 쉰 권이다. 뽀얗게 먼지 쌓인 잡지에 파묻혀 때아닌 추억과 향수를 곱씹다 데드라인을 한참 넘기고 말았다. 게다가 요즘은 원고지 10매 안팎의 짧은 칼럼에 길들어 있어서 모처럼 50매 넘는 글쓰기 모드로 전환하기가 쉽지 않았다. 이 에디토리얼만 백지로 비어 있고 모든 지면의 최종 교정과 디지털 작업까지 끝난 지금, 심장 쫄깃한 마감의 스릴을 애써 즐기며 다른 꼭지들의 편집과 레이아웃을 한 번 더 간섭하는 호기를 부리고 있다. 김모아 기자와 윤정훈 기자의 속이 까맣게 타들어 간다. 이달에는 편집부의 보배 김 기자와 윤 기자가 꽤 오랫동안 심혈을 기울여 찾고 모으고 고른어린이 놀이터 프로젝트 13개를 싣는다. 서울의 초등학교 신상 놀이터부터 저 멀리 터키 이스탄불과 스웨덴 스톡홀름의 어린이공원에 이르기까지, 3월호 지면을 넘기다 보면 틀에 박힌 놀이터 디자인의 전형을 깨는 갖가지 신박한 아이디어를 만날 수 있다. 어린이 놀이터 디자인은 참 쉽지 않은 숙제지만, 결국 핵심은 마음껏 뛰놀게 해주는 바탕 아니겠는가. 지면에 배치된 열세 곳 놀이터를 꼼꼼히 살펴보면서 ‘바람직한 어린이 놀이 환경이란 무엇인가’와 같은 거룩한 질문을 던져야 마땅하겠지만, 그만 어릴 적 놀이터의 추억들을 소환하기에 이른다. 김 기자를 빨리 안심시키려면 어쩔 수 없다. 비록 꼰대 소리 듣더라도 이번 에디토리얼은 ‘라떼 이즈 홀스(나 때는 말이야)’로 가는 수밖에. ‘라떼는’ 빈 땅이면 다 놀이터였다. 대도시에도 어디나 널린 게 빈 땅이었다. 김훈의 『공터에서』가 나왔을 때, 소설 내용과 상관없이 가슴이 얼마나 쿵쾅거렸는지 모른다. 까마득히 잊고 지내던 단어 ‘공터’를 다시 만난 것이다. 그래, 그땐 그랬지. 공터라고 불렀었다. 도시 여기저기에 방치되고 유기된 ‘지도 바깥의 땅’, 공터는 아이들의 천국이었다. 주택가 곳곳에도, 등하굣길에도 공터들이 있었다. 아이들 키보다 한참 더 높이 자란 잡초더미 공터도 있었고, 돌밭이 드넓게 펼쳐진 공터도 있었다. 누군가는 메뚜기를 잡거나 잠자리채를 휘두르며 오후를 보냈고, 누군가는 땅거미 내려앉을 때까지 고무줄놀이, 비석 치기, ‘오징어가이상’을 하고 놀았다. 모험을 즐기는 아이들은 화약놀이나 불장난을 즐겼지만, 나에게 공터는 야구장이었다. 다른 스포츠 경기장과 구별되는 야구장의 매력은 규격이 제각각이라는 점이다. 베이스 간 거리,홈에서 투수판까지의 거리, 타석의 크기를 비롯한 내야의 여러 규격은 격자형 도시의 블록 크기처럼 일정하지만, 외야의 넓이, 펜스 높이와 재질, 파울 지역의 크기는 야생의 자연처럼 제멋대로다. 『볼파크(Ballpark)』(2019)의 저자 폴 골드버거(Paul Goldberger)는 야구장이란 “도시(내야)와 자연(외야)이 만나는 변증법적 공간”이라고 잔뜩 힘준 정의를 내리기도 한다. ‘라떼의’ 놀이터 공터야말로 도시와 자연이 제대로 뒤엉킨 매력적인 야구장이었다. 돌과 자갈이 널린 내야는 어디로 튈지 모르는 바운드로 우리를 즐겁게 했고, 잡초더미 외야로 타구를 보내기만 하면 무조건 홈런이 될 수밖에 없었다. 서울 서북부 변두리 주택가에서 강 건너 잠실의 아파트 단지로 순간 이주한 아이는 공터계의 신세계를 만난다. 아파트 단지에는 정성껏 만든 놀이터와 단정한 놀이 기구가 있었지만, 그때나 지금이나 아파트 놀이터란 태생적으로 인기 없는 공간이다. 그러나 1970년대 중후반의 아파트 주차장은 언제나 텅 비어 있지 않았던가. 훨씬 넓으면서도 평평하고 반듯해 놀기 좋은 공터, 주차장은 아이들의 새로운 천국이었다. 주차 라인을 요모조모 활용하면 공터가 다목적 다기능 놀이터로 변신했다. 돌밭과 잡초더미 공터보다 주차장 공터는 다방구를 하기에도, 얼음땡을 하는 데도 편리했다. 야구는 두말할 나위 없다. 아스팔트 바닥이라 슬라이딩 캐치는 어려웠지만, 불규칙 바운드를 두려워하지 않고 내야 땅볼을 처리할 수 있었다. 심지어 주차 라인을 잘만 이용하고 분필로 금을 조금만 더 그으면 ‘파울’이냐 ‘인’이냐를 두고 패싸움을 벌이지 않아도 됐다. 향수, 노스탤지어란 모름지기 너무 깊이 빠져들지만 않는다면 효용이 있는 법이다. 재미있고신나는 이번 호 지면의 놀이터 작품들을 즐겁게 보다가 급기야 ‘라떼의’ 공터 향수에 빠져 의식의 흐름대로 허우적거리다 보니 텅 빈 지면이 이럭저럭 찼다. 이제 김모아 기자가 안도의 한숨을 내쉴 차례다. 김 기자, 빨리 앉히고 한 번만 교정 봐서 바로 인쇄 넘깁시다! 이번 호부터 격월로 새 연재 ‘사람과 사람을 잇는 사람들’을 싣는다. 놀이터와 커뮤니티 디자인으로 이름난 ‘조경작업소 울’의 조성빈과 김연금이 여러 나라에서 다양한 방식으로 커뮤니티 만들기에 힘쓰고 있는 이들을 만나 대화하는 인터뷰 꼭지다. 연결은 도시를 변화시키는 힘이다. 도시와 사람, 사람과 도시의 새 연결고리를 발견하는 지면, 독자 여러분의 관심과 응원을 부탁드린다.
[풍경 감각] 다이빙 수업
때론 길에서 만난 식물들이 숙제 같다. 그림으로 옮기면 딱일 것 같은. 절정의 순간을 맞은 꽃, 상처 하나 없이 깨끗한 잎사귀, 서리를 맞아 아름답게 오그라든 열매 같은 것들이 특히 그렇다. 정면과 측면에서 사진을 찍고, 잎 한 장, 열매 하나를 렌즈에 담으며 고민한다. 어떻게 그려야 할까? 가로 구도가 세로보다 나을까? 배치는 어쩌지…. 머리를 쥐어짜다 보면 마주친 순간에 느꼈던 즐거움은 어느새 휘발되어 버린다. …(중략) 조현진은 조경학을 전공한 일러스트레이터다. 2017년과2018년 서울정원박람회,국립수목원 연구 간행물『고택과 어우러진 삶이 담긴 정원』,정동극장 공연‘궁:장녹수전’등의 일러스트를 작업했고,식물학 그림책『식물문답』을 출판했다.홍릉 근처 작은 방에서 식물을 키우고 그림을 그린다.
[『환경과조경』 400호 돌아보기] 세기말의 혼돈과 희망
내가 『환경과조경』을 처음 만난 건 대학에 합격하고 한 달쯤 지난 뒤였다. 천장 벽지의 패턴을 눈감고 그릴 수 있을 정도로 와식 생활을 즐기다 마침내 결심했다. 낯선 친구 조경과 이제 친해져 보자. 강남역 지하상가의 대형 서점 ‘동화서적’에서 1987년 1월호(통권 15호)를 사서 읽고 또 읽었다. 화가 이왈종의 그림을 표지에 쓴 파격이 근사했다. 판형은 지금보다 조금 길고 약간 좁다. 계간에서 격월간으로 바뀐 첫 호, 152쪽, 3,800원. 대학 구내식당 점심이 400원, 호프집 생맥주 한잔이 500원인 시절이었다. 특집 ‘전국대학 학생 조경작품’ 덕분에 조경학과에서 뭘 배우고 어떤 작업을 하는지 단숨에 눈치챌 수 있었다. 올 8월의 통권 400호 출간을 기념해 지난 39년간의 잡지를 되돌아보는 기획의 세 번째 순서,내가 다시 읽을 옛 잡지는 통권 101호부터 150호까지, 1996년 9월호부터 2000년 10월호까지다. 1996년 가을에 나는 박사 논문 스트레스와 미래에 대한 불안감에 잔뜩 위축된 박사과정 4년 차였고, 2000년 가을에는 불안정한 박사 백수 신분으로 필라델피아의 유펜에서 밀레니엄을 맞아 꿈틀대던 미국 조경의 변화상을 곁눈질하고 있었다. ‘조경비평’과 ‘대안적 조경 잡지’라는 말을 입에 달고 다니던 나는, 조경진(서울시립대학교 교수, 이하 모두 당시 소속과 직책), 박승진(조경설계 서안 실장) 등 몇몇 선배들과 힘을 합쳐 무크지 『로커스Locus』 창간호(1998)와 2호(2000)를 만들고 『우리 시대의 조경 속으로』(1999)를 펴내느라 『환경과조경』을 펼쳐볼 겨를이 없었다. 아니, 애써 열어보지 않았던 것 같기도 하다. 세기말. 모두가, 사회 전체가 변화의 소용돌이를 겪던 시대였다. 지방자치제가 부활했고, 공원과 녹지가 민선 시장들의 공약 리스트에 단골로 올라가기 시작했다. 김영삼 정부 말기에 터진 IMF 외환위기는 한국 경제와 사회의 지형을 뒤흔들었다. 모뎀과 PC통신을 넘어 인터넷 세상이 열리기 시작했다. 1999년, 하나로통신이 최대 8Mbps 속도의 ADSL 서비스를 시작하면서 인터넷은 마침내 대중과 결속하기에 이른다. 이동 통신 시장이 무선 호출기에서 휴대 전화로 급격히 이동한 1998년 이후에는 일상의 라이프스타일이 급격히 바뀐다. 변화와 혼돈, 희망과 불안이 뒤섞인 세기말의 풍경은 101호에서 150호까지 쉰 권의 『환경과조경』 지면에도 고스란히 투영되어 있다. ‘올인원’ 잡지 설 연휴 첫날, 1996년 9월호(101호) 표지의 뽀얀 먼지를 조심스레 닦아내며 시간 여행을 시작했다. 뒤표지에 찍힌 정가는 6,300원이다. 200쪽에 달하는 분량, 광고 지면이 2021년보다 두 배 이상인 걸로 보아 잡지사 재정 상태가 지금보다 나았으리라. 편집부 데스크는 김인숙(편집부장대우)이고, 기자는 김찬주, 김진오, 정종일 셋이다. 한글 제호는 ‘환경과조경’, 영문 제호는 ‘The Korean Landscape Architecture’다. ‘환경 & 조경’에서 ‘환경과조경’으로 제호를 바꾼 45호(1992년 1월호) 이후 한글 타이포그래피의 크기는 몇 차례 미세하게 변했지만 글꼴 자체는 계속 유지되었다. 파란 가을 하늘을 배경에 두고 분홍 코스모스를 클로즈업한 풍경 사진을 쓴 표지는 25년 전의 평균적 미감을 고려하더라도 올드한 느낌이다. 식자로 조판한 뒤 인쇄한 필름을 투명한 대지에 오려 붙이는 옛날 방식이 아니라 애플의 쿽Quark 프로그램을 써서 본문 편집 디자인을 한 것으로 추측되는데, 정갈한 멋이 있었던 1980년대 『환경과조경』보다 오히려 어수선해 보인다. 이 시절의 『환경과조경』은 실로 다양한 내용을 담았다. 통권 101호의 꼭지들을 지면 순서 그대로 나열해 보자. 함께 생각해 봅시다, 뉴스, 내일을 위하여, 특별기획(생물다양성 확보를 위한 습지 보전), 초점(건설산업기본법 제정에 관한 조경 분야 토론회), 조경계 동서남북, 동아리탐방, 만나보고 싶은 사람, 신정보소개, 실무자코너, 특별기획시리즈(한국 전통의 도시공원), 기획시리즈(조경설계.시공시 고려해야 할 재료별 특성), 리포트, 해외석학에게 듣는다, 유학생활기, 수상작, 그리운 내 고향, 시가 있는 환경, 신간안내, 해외레이다, 인터넷정보, 편집자에게, 만평, 카메라포커스, 문화가소식, 편집후기. 올인원(all-in-one). 정말 모든 게 잡지 한 권에 다 있다. 지식의 전달, 기술과 실무 정보의 제공, 완공작 소개, 최근 소식을 총망라한 구성이 ‘조경 백화점’을 연상시킨다. 특별히 이채로운 꼭지는 93호(1996년 1월호)부터 139호(1999년 11월호)까지 이어간 ‘그리운 내 고향’인데, 조경환(105호), 임현식(106호), 전유성(107호), 최백호(125호) 같은 연예인부터 이해찬(93호), 이한동(112호) 같은 정치인까지 각계의 명사들이 등장한다. 심지어 114호(1997년 10월호) 지면에서는 대선을 목전에 둔 새정치국민회의 김대중 총재의 ‘그리운 내 고향’을 만날 수 있다. 기사 타이틀은 “어린왕자가 되어 자연과 대화하는 것이 유일한 휴식이자 오락”이다. 해외 설계사무소들의 홈페이지를 통해 따끈따끈한 근작과 새 정보를 실시간으로 접하는 게 가능해진 1990년대 말, 젊은 세대 조경인들과 조경학과 학생들은 안타깝게도 ‘올인원’ 『환경과조경』으로부터 점점 더 멀어져갔다. *환경과조경395호(2021년3월호)수록본 일부
서울문교초등학교 언덕 놀이터
아이들을 위한 푸른 요새 6월의 어느 날, 차를 타고도 오르기 힘든 오르막길을 굽이굽이 올라간다. 이런 곳에 학교가 있을까 싶을 때쯤 높은 옹벽이 눈앞에 나타난다. 옹벽 위에 선 학교. 구릉의 중턱을 계단처럼 깎아 학교 부지를 만들다 보니, 자연스레 학교 앞뒤로 높은 옹벽이 들어섰다. 학교는 작은 요새 같다. 앞으로 탁 트인 시내를 전망할 수 있고 뒤로 나지막한 산을 마주하고 있다. 마주한 산을 따라 10m쯤 되어 보이는 옹벽이 운동장을 두르고 서 있다. 옹벽 자체는 부담스러운 감이 없지 않지만, 옹벽 너머의 숲이 부드러운 푸른빛으로 학교를 감싸고 있다. 숲으로 둘러싸인 아이들을 위한 요새. 문교초등학교를 처음 방문한 날의 기억이다. 옹벽의 재발견 아이들뿐 아니라 교사와 학부모들의 다양한 아이디어를 모았다. 총천연색의 생각을 한데 모아 추리기를 반복하는 과정에서 아이들의 이야기를 최대한 많이 담고자 했지만, 공간적 한계와 예산의 제약에 따라 반영하지 못하는 것들도 있었다. 결과적으로 비용 절감을 위해 기존 놀이터를 리모델링하는 방향보다 놀이터가 될 가능성이 있는 새로운 장소를 찾고, 시설물보다 자연 요소가 주가 되는 놀이터를 조성하기로 했다. 선정한 공간은 옹벽 앞 화단 주변으로, 이따금 주차장으로 쓰이는 교내 자투리 공간이었다. 부담스러운 옹벽의 넓은 노출면을 적절히 가리면서 문교초등학교의 특징을 살린 놀이터를 만들기로 했다. 단점이었던 높은 옹벽이 오히려 공간적 장점으로 전환되는 드라마가 연출됐다. 완성된 놀이터는 옹벽에 반쯤 기대어 있는 물결치는 놀이 언덕의 모습을 하게 됐다. 다른 곳이라면 훨씬 큰 면적이 요구되는 설계안이었지만, 높은 옹벽을 활용해 비교적 작은 공간에 구현할 수 있었다. …(중략) 설계 오픈니스 스튜디오(최재혁, 장찬희) 워크숍 에이치이에이, 오픈니스 스튜디오 시공 산미조경 발주 문교초등학교, 서울시교육청 꿈을 담은 놀이터 위치 서울시 금천구 독산로 54길 102 면적275m2 완공2020. 4. 사진 오픈니스 스튜디오 최재혁은 오픈니스 스튜디오(Openness Studio)의 대표 디자이너이며, 자연감각의 소장이다. 서울대학교 조경학과를 졸업하고 동대학원에서 조경학 석사 학위를 받은 뒤 KnL환경디자인스튜디오에서 정원과 조경설계 실무를 익혔다. 제3회 대한민국 신진조경가 설계공모전 대상, 2017 코리아가든쇼 대상을 수상했으며, 참여 전시로는 한강예술공원 ‘흐름’(2017), 2017 서울도시건축 비엔날레 ‘첼로(Cello)’, 국립현대미술관 ‘예술가의 밭’(2020) 등이 있다. 생태적 관점을 바탕으로 정원, 공공 예술 분야에서 폭넓게 활동하고 있다. 장찬희는 서울시립대학교 조경학과를 졸업하고 오픈니스 스튜디오에서 디자이너로 근무하고 있다. 문교초등학교 언덕 놀이터의 초기 구상부터 실시설계까지 업무 전반을 담당했다. 자연과 사람의 관계에 대해 깊은 관심을 갖고 있으며, 디자인부터 빌드까지 아우르는 전문가가 되는 것을 목표로 나아가고 있다.
서울영도초등학교 트리하우스
서울영도초등학교 트리하우스는 서울시교육청이 진행하는 ‘2019 꿈을 담은 놀이터 만들기 사업’의 일환으로 조성됐다. 꿈을 담은 놀이터(이하 꿈담터)는 “학생들이 직접 참여해 만드는 참여형 놀이터로, 학생 스스로 도전과 실험이 가능하도록 건강한 위험이 살아있는 새로운 관점의 창의적인 놀이터”를 의미한다(‘2019 꿈을 담은 놀이터 만들기 사업안내서’ 참조). 2017년 2개 초등학교를 시작으로 2018년 4개 초등학교로 확대됐으며, 2019년에는 31개 학교가 대상지로 선정되어 새로운 놀이 공간을 조성할 수 있는 기회를 얻었다. 학교당 지원되는 예산은 1.5억 원으로, 참여 설계를 위한 퍼실리테이터(facilitator)컨설팅비, 설계 용역비, 시설 공사비를 모두 포함한 금액이다. 서울시교육청은 참여 설계사를 대상으로 한 사업 설명회, 학교별 예산 교부, 설계사와 학교의 매칭 주선 등 행정을 주로 담당했으며, 꿈담터를 설계하고 시공하는 과정은 선정된 학교의 추진위원회와 설계사가 협의해 이끌어나갔다. 꿈담터의 지향점은 학생, 교사, 학부모 등 교육 공동체가 함께 놀이 공간을 고민하게 만드는 것이다. 학교 측과 교육 공동체 모두가 목소리를 낼 수 있는 구조가 중요하다는 데 공감대를 형성하고 디자인 워크숍 내용과 방식, 참여 인원에 대해 논의했다. 이 결과 4~6학년 학생 20명, 교사 3명, 학부모 2명으로 워크숍 참여팀이 구성됐다. 학교 측은 미술 시간을 이용해 워크숍이 수용하지 못하는 저학년 학생들의 의견을 수렴해 설계팀에게 전달하기로 했다. 2019년 6월 중순, 영도초등학교 학생들을 처음 만났다. 아이들은 학년에 상관없이 금방 친해졌다. 각자 자기소개를 한 뒤 운동장으로 나가 학교 이곳저곳을 거닐며 학생들이 주로 모여 노는 곳은 어딘지, 어떤 놀이 활동을 하는지에 대해 들었다. 그리고 학교 측이 제안한 대상지를 함께 둘러보았다. 교실로 돌아와 각자 원하는 놀이 활동과 공간에 대해 적고 그려보는 시간을 가졌다. 학생들이 아이디어를 내는 과정을 관망하기도, 또 그 과정에 개입하기도 하는 소통 과정을 통해 그들의 생각을 좀 더 깊이 있게 이해하고자 했다. …(중략) 설계 및 감리 최혜영, 허비영 워크숍 최혜영 실시설계 및 감리 기술사사무소 이수 놀이 시설 실시설계 토인디자인 발주 서울시교육청 꿈을 담은 놀이터 위치 서울시 양천구 목동중앙로 70 면적 약 350m2 완공2020. 8. 최혜영은 서울대학교 조경학과 학사, 펜실베이니아 대학교 조경학 석사를 마치고 뉴욕의 에이컴(AECOM)과 West 8에서 실무 경험을 쌓았다. 이후 한국으로 돌아와 서울대학교 환경대학원에서 박사 학위를 받았으며, 성균관대학교 건설환경공학부 조교수로 재직 중이다. 다수의 공모전 수상 경력이 있다. 허비영은 인하대학교 건축공학과 학사, 펜실베이니아 대학교 조경학 석사를 마치고, 제임스 코너 필드 오퍼레이션즈(JCFO)에서 시니어 어소시에이트로 일하고 있다. 미국공인조경가(RLA)이며 미국조경가협회(ASLA) 정회원이다. 유럽 조경 비엔날레, 뉴욕 한국 문화원 등 다수의 전시에 참여한 바 있다.
서울배봉초등학교 놀이키움
서울시 동대문구에 자리 잡은 배봉초등학교는 배봉산에 둘러싸여 있음에도 불구하고 자연과의 연결성 없이 공간이 평면적으로 구성되어 있다. 학생들은 매일 높은 언덕과 계단을 힘겹게 오르내리며 학교를 다닌다. 프로젝트의 목적은 사용자 참여 설계를 통해 학생들이 매일 지루하게 경험하는 공간을 지역성을 담은 건강한 장소로 바꾸고, 획일적인 놀이터가 아닌 특별한 기억을 담을 수 있는 놀이 풍경을 만들어 학교 공간이 가진 장점을 되살리는 데 있다. 2019년 10월부터 세 차례에 걸쳐 20여명의 배봉초 학생과 함께 디자인 워크숍을 진행했다. 대부분의 학생이 본관 뒤 필로티에서 친구들과 시간을 보내는 것을 좋아했는데, 놀이 방법은 걷기, 달리기, 더 빠르게 달리기 등 단조로운 행위에 머물러 있었다. 설계 팀은 학교가 가진 지역적 특징인 언덕에 주목해보기로 했다. 두 번째 워크숍에서 입체를 주제로 평면적인 놀이 방법을 입체화하는 디자인 워크숍을 진행했다. 그 결과 웅크리기, 미끄러지기, 기대기, 올라타기 등 다양한 언어를 가진 놀이 풍경이 탄생했다. 마지막 워크숍에서 이렇게 만든 공간을 서로 연결해봄으로써 필로티 사이에만 머무르던 놀이 공간이 학교 전체, 공간과 공간 사이의 놀이 경험으로 확대될 수 있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중략) *환경과조경395호(2021년3월호)수록본 일부 설계 이유에스플러스건축(서민우, 지정우, 고건수, 이소림, 박다혜) 시공 가이아글로벌 발주 서울시교육청 꿈을 담은 놀이터 위치 서울시 동대문구 사가정로 193 면적114m2 완공 2020. 9. 사진 이유에스플러스건축 서민우와 지정우가 이끄는 이유에스플러스건축(EUS+ Architects)은 좋은(eu) 이야기(story)를 더한다(+)는 자세로 다양한 건축의 영역에서 좋은 이야기를 만들어가는 활동을 한다. 학교, 도서관, 놀이터, 뮤지엄, 주택 등 어린이와 청소년을 포함한 다음 세대를 위한 다양한 공간을 구축하는 데 사용자 참여 설계 방식을 적극적으로 활용한다. 건축 교육에도 힘쓰고 있으며, 서울애니메이션센터 설계공모, 서울로2단계 아이디어 공모에 당선됐다. 대한민국 공공건축상 최우수상(2020). 대한민국 공간문화대상 대상(2020), 김수근 건축상 프리뷰상(2014)을 수상했다.
서울원효초등학교 놀이지붕
용산에 위치한 원효초등학교는 서울 시내의 초등학교 중에서 가장 가파른 곳에 자리한다. 높은 지대의 운동장에 올라서 바라본 동네의 모습은 색다르다. 고층 아파트의 중간층부터 옥상을 아이들의 눈높이에서 마주할 수 있으며, 멀리 있는 남산도 한눈에 들어온다. 등굣길에 긴 계단을 올라 학교 운동장에 진입하는 경험은 학교 내 장소에 대한 아이들의 인식과 기억에 영향을 미친다. 원효초등학교 학생들은 등굣길에서 높이라는 물리적 요소를 일상적으로 경험하고 있었다. 수평선을 강조한 본관 입면, 수직선들이 인상적인 강당의 필로티, 학교 진입로의 경사가 넓은 운동장을 둘러싸고 있는 점도 특징적이다. 이러한 환경적, 물리적 조건을 재료로새로운 놀이 풍경을 구축해 학창 시절을 좀 더 즐거운 경험으로 채워주고자 했다. 물리적 맥락뿐 아니라 모두에게 열려 있는 교장실, 친근하고 열정적인 교사들, 정기적인 특별 건축 수업 등으로 다져진 돈독한 학교 커뮤니티도 원효초등학교만의 특징이었다. 이러한 환경에서 배우고 자란 아이들은 아동 참여 설계 워크숍에 더욱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모습을 보였다. 아이들의 눈을 통해 학교 공간의 잠재성을 발견하고, 이를 활용해 물리적 환경의 한계를 극복하고 새로운 이야기를 만들 수 있었다. 3차원 공간 바구니를 나누어주고 그 안과 위, 그리고 바구니 자체를 이용해 새로운 놀이 공간을 구성하도록 했다. 아이들은 몇 가지 기본 요소만으로도 다양한 입체성이 발현되는 공간들을 만들었고, 그것들을 실내 강당에 모아 집합적인 풍경을 만드는 경험을 했다. …(중략) *환경과조경395호(2021년3월호)수록본 일부 설계 이유에스플러스건축(서민우, 지정우, 고건수, 이소림, 박다혜) 시공 보화종합건설 발주 서울시교육청 꿈을 담은 놀이터 위치 서울시 용산구 효창원로13길 38 면적54m2 완공2020. 5. 사진 이유에스플러스건축 서민우와 지정우가 이끄는 이유에스플러스건축(EUS+ Architects)은 좋은(eu) 이야기(story)를 더한다(+)는 자세로 다양한 건축의 영역에서 좋은 이야기를 만들어가는 활동을 한다. 학교, 도서관, 놀이터, 뮤지엄, 주택 등 어린이와 청소년을 포함한 다음 세대를 위한 다양한 공간을 구축하는 데 사용자 참여 설계 방식을 적극적으로 활용한다. 건축 교육에도 힘쓰고 있으며, 서울애니메이션센터 설계공모, 서울로2단계 아이디어 공모에 당선됐다. 대한민국 공공건축상 최우수상(2020). 대한민국 공간문화대상 대상(2020), 김수근 건축상 프리뷰상(2014)을 수상했다.
어린이꿈공원
놀이의 순환이 지연되는, 땅에 발을 딛지 않는 놀이터 도시의 모든 공간이 그렇듯 놀이터도 도시를 반영한다. 밀도가 높은 도시에서는 놀이터 시설 구성의 밀도도 높아지게 된다. 어린이 놀이 연구자 고든 스터록(Gordon Sturrock)과 페리 엘스(Perry Else)가 1998년 발표한 ‘콜로라도 페이퍼(The Colorado Paper)’에 따르면, 어린이들이 놀겠다는 신호를 발신했을 때 돌아온 회신이 즐거우면 회신과 발신이 반복되며 변주되는 흐름이 형성된다. 밀도 높은 서울에서 놀이터를 설계하는 일은 어떻게 하면 좁은 공간에서 놀이 흐름이 빨리 끝나지 않고 지연되게 할 것인지 고민하는 일이기도 하다. 또 중력을 거스르며 놀고자 하는 어린이의 욕구를 어떻게 받아줄 것인가의 문제이기도 하다. 어린이꿈공원은 이 같은 설계가의 고민과 어린이들의 바람이 결합된 산물이다. 접착제는 소통이다. 어린이꿈공원은 성동구 소월아트홀(성동문화회관) 앞 광장에 조성되었다. 소월아트홀은 지역 주민에게 다양한 문화 예술 프로그램과 구민 대학을 통해 문화 강좌를 제공하는 시설이다. 대상지 주변으로 왕십리역, 아파트 단지와 대형 마트, 성동구립도서관과 성동구청 같은 공공 기관, 다양한 상업 시설이 혼재되어 있다. 놀이터가 들어서기 전 광장은 주로 보행자들의 이동 통로나 노인 쉼터로 이용됐고, 간혹 자전거를 타는 어린이들이 있었다. 답사 첫날 느낀 대상지의 이미지는 쓸쓸함이었다. 너른 광장은 황량하게 비어 있었고, 노인들이 모여 한쪽에서 장기를 두거나 곳곳에 놓인 의자에 앉아 행인들을 관찰했다. 직접 보진 못했지만 음주나 흡연을하는 노인들이 있어 지나다니기 불편하고 이로 인한 민원이 많다는 말을 주민들에게서 들었다. 서울행당초등학교 4학년생 21명과의 첫 워크숍에서 어린이들은 광장에 술과 담배를 하는 할아버지가 많아 가기 싫고, 어떤 분은 욕도 한다며 불편해했다. 그러나 어린이들은 노인들을 몰아내기보다 함께 해야 한다고 인식하고 있었다. …(중략) * 환경과조경 395호(2021년 3월호) 수록본 일부 설계 조경작업소 울 놀이 시설물 디자인 협력 스페이스 톡 시공 숲드림조경건설 발주 성동구청 위치 서울시 성동구 행당동 143-3 면적5,313m2 완공2020. 6. 기아미는 단국대학교 환경조경학과를 졸업했다. LEED환경연구원을 거쳐 2013년부터 조경작업소 울에서 많은 어린이와 주민을 만나며 조경 공간을 설계하고 있다. 일곱 살 딸아이를 키우는 엄마이자 설계자로서 안전과 모험 사이에서 모든 어린이가 즐겁게 노는 놀이터를 만들고자 고군분투하고 있다. 김연금은 약수동에서 커뮤니티 디자인을 지향하는 조경작업소 울을 운영하고 있다. 처음에는 커뮤니티 공간으로서 어린이공원에 관심을 가졌으나, 조금씩 놀이, 어린이, 장애인으로 관심의 초점이 옮겨지고 있다. 어린이, 장애인 공간은 결국 인권의 문제임을 매일매일 깨닫고 있다.
홍박공원 통합놀이터
통합놀이터의 시작 2015년 장애물없는생활환경시민연대, 걷고싶은도시만들기시민연대, 부천대학교 도시공간재생연구소, 경기대학교 대학원 커뮤니티디자인연구실, 조경작업소 울 등 여러 분야의 기관이 모여 통합놀이터만들기네트워크(이하 통합네트워크)를 꾸렸다. 국내 첫 번째 통합놀이터로 서울어린이대공원 내 오즈의 마법사 놀이터를 ‘꿈틀꿈틀 놀이터’로 리모델링했다. 장애 유무와 상관없이 어린이의 놀 권리가 실현되는 통합놀이터를 구현하고자 휠체어가 오를 수 있는 조합 놀이대와 회전무대, 몸을 가누기 어려운 어린이를 위한 안전벨트그네와 바구니그네, 컵 모양의 흔들놀이기구, 휠체어에 탄 채 즐길 수 있는 모래놀이테이블 등을 설치했다. 이후 통합놀이터를 향한 사회적 관심이 커져 여러 지방 정부와 기관에서 통합놀이터를 조성했지만 꿈틀꿈틀 놀이터를 모방하는 수준에 머물렀다. 이에 통합네트워크는 다양한 통합놀이터가 조성되도록 통합놀이터 디자인 가이드라인(2018)을 만들었으며, 또 하나의 좋은 사례를 만든다는 마음으로 홍박공원 통합놀이터 설계에 임했다. 모든 어린이들을 위한 놀이터 대상지는 서대문구 홍은동의 홍박공원이다. 지역 내 장애 어린이를 둔 부모, 근방 초등학교 학생과 주민, 서대문구청 등 여러 주체와 소통하며 디자인을 발전시켰다. 초등학생들과 다섯 번의 워크숍을 진행해 통합놀이터에 대한 이해를 높이고 어린이들이 원하는 놀이터의 모습을 도출하고자 했다. 장애 어린이 어머니를 비롯해 지역 주민들과는 세 번의 워크숍을 진행했다. 어머니들은 통합놀이터에 대한 기대가 높아 틈만 나면 휴대폰에 빼곡히 저장된 여러 나라의 통합놀이터를 보여주었다. 우리도 많은 사례를 안다고 자부했는데 그들보다 정보가 부족했다. 논의 과정이 평탄치만은 않았다. ‘장애 어린이만을 위한 놀이터가 아니라 모든 어린이를 위한 놀이터’를 만든다는 말에 장애 어린이 어머니들이 항의를 하기도 했다. 깊은 배제의 경험에서 비롯된 예민함이었다. 지체장애 어린이의 어머니들과 발달장애 어린이 어머니들 간 의견 차이도 있었다. 자녀가 휠체어를 이용하는 어머니들은 휠체어 이용자의 이동과 시설물 이용을 강조했지만, 발달장애 어린이의 어머니들은 휠체어 이동을 위한 경사로나 장치가 공간을 많이 차지할까 우려했다. 오랜 시간 쌓아온 이웃 간 신뢰로 큰 갈등이 있지는 않았다. …(중략) *환경과조경395호(2021년3월호)수록본 일부 설계 조경작업소 울 놀이 시설물 디자인 협력 스페이스 톡 시공 에코밸리 발주 서대문구청 위치 서울시 서대문구 홍은중앙로 125 면적2,679m2 완공2019. 12. 기아미는 단국대학교 환경조경학과를 졸업했다. LEED환경연구원을 거쳐 2013년부터 조경작업소 울에서 많은 어린이와 주민을 만나며 조경 공간을 설계하고 있다. 일곱 살 딸아이를 키우는 엄마이자 설계자로서 안전과 모험 사이에서 모든 어린이가 즐겁게 노는 놀이터를 만들고자 고군분투하고 있다. 김연금은 약수동에서 커뮤니티 디자인을 지향하는 조경작업소 울을 운영하고 있다. 처음에는 커뮤니티 공간으로서 어린이공원에 관심을 가졌으나, 조금씩 놀이, 어린이, 장애인으로 관심의 초점이 옮겨지고 있다. 어린이, 장애인 공간은 결국 인권의 문제임을 매일매일 깨닫고 있다.
하늘바다놀이터
세이브더칠드런은 아이들의 놀 권리를 보호하고 놀이 공간을 확충하기 위해 ‘놀이터를 지켜라’ 캠페인을 진행하고 있다. 그 일환으로 새로운 유형의 놀이터를 만들어 지역 사회에 활기를 불어넣고 있는데, 지난 2019년 경상북도와의 업무 협약을 통해 울진엑스포공원 내 소나무숲 부지를 10개월에 걸쳐 놀이 공간으로 탈바꿈시키는 작업을 시작했다. 우리는 이 프로젝트의 사업자로 선정되어 놀이터 디자인, 워크숍, 실시설계, 감리 등의 전 과정을 맡아 진행했다. 우리는 놀이터를 통해, 그리고 푸르른 숲을 보며 무엇을 꿈꿨을까? 놀이터를 꿈꾸는 일은 아이들의 희망을 이야기하는 것이다. 자연 속 놀이터는 아이들이 세상을 자신만의 방식으로 꿈꿀 수 있는 희망과 가능성의 장소다. 그래서 아이들이 놀이의 즐거움을 서로 나눌 수 있고, 밝고 건강한 희망을 키울 수 있는 가능성을 놀이터에 담고자 했다. 아이들이 원하는 놀이터를 그들과 함께 만들고 싶었다. 대상지는 특별한 소나무숲과 바다 옆에 있다. 아이들의 눈높이에 맞는 놀이와 자연 그대로를 품는 것에 초점을 맞추어 세 가지 원칙으로 놀이터를 기획, 설계, 시공하고자 했다. 첫째, 놀이터를 통해 아이들의 놀 권리를 회복하자. 둘째, 아이들이 꿈꾸는 놀이터를 그들과 함께 만들자. 셋째, 소나무숲의 나무와 자연을 훼손하지 않는 장소를 제공하자. …(중략) *환경과조경395호(2021년3월호)수록본 일부 설계 및 감리 건축사사무소 유니트유에이 설계 감리 책임: 최정우, 이승윤, 김영주 설계 감리 담당: 우재민 발주 경상북도청, 울진엑스포공원, 세이브더칠드런 동부지부 시공 지엘에이 위치 경상북도 울진군 근남면 수산리 354, 엑스포광장 부근 대지면적1,024.88m2 시설면적330.5m2 완공 2020. 7. 사진건축사사무소 유니트유에이 건축사사무소 유니트유에이(Units UA)는 건축이 단순히 눈에 보이는 대상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눈에 보이지 않는 여러 관계를 조절하는 일이라고 믿는다. 좋은 디자인이란 창조의 영역이 아니라 일상적 삶을 가치 있게 만드는 합리적이고 논리적인 기술이라는 생각을 바탕으로 작업한다. 따라서 작업 범위는 삶의 도구인 가구에서부터 삶의 배경인 지역 사회까지 포괄한다.
부산 새들원 놀이터
엄마의 마음이 편한 세상 엄마의 마음이 불편한 세상이다. 한국의 합계출산율이 2017년 1.05명을 마지막으로 0명대로 접어들었으며, 2020년 출생아 수는 30만을 간신히 넘을 것으로 추정된다. 이 시대를 살아가는 현대인들은 물질적으로 문화적으로 부족함이 없어 보이지만, 일반적으로 육아의 부담과 책임을 온전히 감당하고 있는 ‘엄마’라는 존재에게만은 예외다. 매년 100만 명이 넘는 신생아가 태어나던 시기가 있었다. ‘응답하라 1988’ 세대인 필자의 형제도 세 명이지만, 당시에는 제발 둘만 낳아 잘 키우라는 캠페인이 당연했다. 말 그대로 마을이 아이들을 키우던 시대, 아무것도 없던 공터와 골목이, 좁은 마당과 방구석이 아이들의 놀이터였고 많은 것이 부족하지만 마음만큼은 편한 세상이었다. 맘편한 놀이터 국영수가 모든 것을 결정하는 학교 교육에서도 음악, 미술, 체육 수업이 명맥을 유지하는 이유가 있다. 학원과 스마트폰이 인생의 전부인 것 같은 아이들에게 신체 활동을 동반하는 놀이도 마찬가지다. 마을이 더 이상 아이들을 돌보지 않는 시대의 놀이터는 아이들을 위한 해방구이며, 적어도 놀이터에 있는 동안만큼은 마음이 편해야 한다. 아이들도 엄마도. 이러한 인식의 확산은 2000년대 들어 정부 부처와 지자체가 놀이터 환경 개선에 힘쓰게 만들었다. 급기야 앞다퉈 유니세프 아동친화도시를 선포하는 등 양적, 질적 성과를 이루며 민간에서도 공동 주택을 중심으로 어린이놀이터를 획기적으로 발전시키는 계기가 되었다. 그러나 공공이든 민간이든 우선순위에서 밀리고 공리적 관심으로부터 소외되는 지역은 항상 있다. 맘mom편한 놀이터는 2017년 부산 새들원을 시작으로 소외된 지역에 꾸준히 놀이터를 조성해, 말 그대로 아이들 웃음소리에 엄마들 마음이 편해지는 세상을 추구해오고 있다(맘편한 놀이터의 ‘맘’은 마음의 준말이자 엄마를 뜻하는 영단어를 아울러 이르는 말이다). …(중략) *환경과조경395호(2021년3월호)수록본 일부 설계 가이아글로벌 발주 초록우산어린이재단 협력 사회복지공동모금회 후원 롯데그룹 위치 부산시 동래구 온천동 산75-3 면적 약 300m2 완공2017. 8. 송영탁은 서울대학교 조경학과에서 학사, 석사를 마쳤다. 그룹한 어소시에이트에서 조경설계 실무를 익히고, 2013년부터 계열사인 가이아글로벌로 자리를 옮겨 놀이터와 관련한 다양한 경험을 쌓고 있다. 2014 환경부 생태놀이터 조성 가이드라인 자문위원, 2015 서울시 어린이 조경학교 강사, 2018~2020 부평구 참여 놀이터 자문위원, 2020~2021 서울시교육청 꿈을 담은 놀이터 자문위원으로 활동하고, 초록우산어린이재단, 세이브더칠드런과 같은 아동 권리 옹호 단체와의 협업 및 사회 공헌 프로젝트에 지속적으로 참여하고 있다.
에어 마운틴
에어 마운틴(Air Mountain)은 2019년 개최된 OCT 피닉스 플라워 카니발(OCT Phoenix Flower Carnival)행사장에 설치한 다목적 파빌리온이다. 2019년 5월 3일부터 12일까지 파빌리온은 콘서트, 연극, 포럼, 워크숍 등이 열리는 장소로 쓰였다. 자연과 예술을 주제로 다양한 이벤트가 열리는 축제인 점을 고려해 세 가지 콘셉트를 토대로 설계를 진행했다. 미시 생태학적 기하학 구조: 환경적 측면과 이벤트에 대한 수요를 모두 고려해 파빌리온의 형태를 결정했다. 별다른 자재를 사용하지 않고 공기층을 파빌리온의 구조로 활용해 방음 및 단열 효과를 냈다. 돔 위쪽에 구멍을 내 뜨거운 공기가 바깥으로 빠져나갈 수 있는 통로를 만들고, 측면의 구멍을 통해 환기를 유도했다. …(중략) *환경과조경395호(2021년3월호)수록본 일부 Design Aether Architects Architect Huang Zelin Structural Design Huang Zelin, Guangzhou Hongwan Inflatable Electromechanical Design Shenzhen Bizarre Unit Construction Guangzhou Hongwan Inflatable Structure Double membrane inflatable structure Area Site: 1,000m2 Gross Floor: 520m2 Location OCT Ecological Square, Shenzhen, China Design 2019. 3. ~ 2019. 4. Completion 2019. 5. Photographs Zhang Chao 중국 선전의 이더 아키텍츠(Aether Architects)는 건축과 미술에 기반을 둔 황쩌린(Huang Zelin)이 2015년 설립한 건축설계사무소다. 대지와 어우러지며 사람들에게서 다양한 행위를 이끌어내는 독특한 형태의 파빌리온을 선보여 왔으며, 철학과 물리학, 건축 사이를 오가며 인간과 자연을 연결하는 건축물을 만들고자 노력한다.
디스커버리 슬라이드
주얼 창이 공항(Jewel Changi Airport)은 싱가포르 창이 공항의 터미널을 연결하는 환승 센터다. 우거진 열대 우림을 연상케 하는 이곳은 공항에서의 경험을 한층 다채롭게 만든다. 가장 높은 층에 위치한 캐노피파크(Canopy Park)에는 쇼핑몰, 놀이공원, 이색적인 테마 정원과 야자수를 포함한 1,400여 그루의 나무가 어우러져 있는데, 이곳에 보석을 닮은 유선형의 놀이 기구를 조성했다. 디스커버리 슬라이드(Discovery Slides)는 숲 속에 놓인 보석처럼 은은히 빛나며 멀리서부터 사람들의 이목을 끈다. 가로 18m, 길이 16.7m, 최고 높이 7.5m 규모의 구조물은 형태와 구조가 매우 독특하고 복잡하다. 세계 각지의 세 장소에서 부품을 생산해 조립했으며 설계부터 시공까지 2년 이상이 소요됐다. …(중략) *환경과조경395호(2021년3월호)수록본 일부 Design and Build Carve, Playpoint Design, Engineering, Supervision: Carve Project Management, Fabrication, Installation: Playpoint Design Team Elger Blitz, Lucas Beukers, Mark van der Eng,Jasper van der Schaaf, Hannah Schubert, Thomas TielGroenestege, Marleen Beek, Elke Krausmann, Henry Roberts,Gaia Glereani Client Jewel Changi Airport Group Location Canopy Park at Jewel Changi International Airport,Singapore, level 5 Size 18×16.7×7.5m Design 2015~2019 Completion 2019 Photographs Playpoint 카브(Carve)는 1997년 엘허르 블릿(Elger Blitz)과 마르크 판데르엥(Mark van der Eng)이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에 설립한 놀이터 설계사무소다. 산업 디자인부터 조경에 이르는 여러 분야의 전문가가 모여 다양한 그룹과 연령대의 이용자들을 위한 놀이 공간을 설계한다. 아이들의 행위를 지나치게 제한하거나 규정하는 놀이 시설보다는 일상 속 사물을 닮은 친숙한 형태의 시설이나 즐길 만한 풍경을 조성하며, 아이들이 주도적으로 즐길 수 있는 도전적이면서 안전한 놀이 공간을 만들고자 한다.
구름 놀이터
구름 놀이터(Cloud Playground)는 이스탄불 바키르쾨이(Bakirkoy)지구의 마르마라 포룸(Marmara Forum)쇼핑 센터에 조성된 놀이터다. 쇼핑 센터는 기존의 옥상 정원과 푸드 코트를 새롭게 단장하면서 옥상에 사람들의 이목을 끄는 놀이터를 설계해줄 것을 요구했다. 상업 건물 옥상의 놀이 공간에는 여러 제약이 따른다. 날씨가 따뜻하고 화창할 땐 적절한 그늘을 제공해야 하고, 아이들이 비를 피할 수 있는 보호막 또한 갖춰야 한다. 또한 혼잡한 시간대에는 좁은 공간에 많은 어린이가 한꺼번에 몰릴 수 있다. 따라서 크고 높으며 내부에서도 마음껏 뛰어놀 수 있는 구조물을 설계했다. 하늘에 떠 있는 구름의 형상을 본뜬 구조물을 디자인해 구름을 만지고 그 속에 있는 듯한 경험을 주고자 했다. 물방울이 모여 구름이 만들어진다는 점에 착안해 구조물 표면에는 물방울 패턴의 창을 여러 개 냈다. 창문에는 빛의 각도에 따라 다양한 색감을 연출하는 다이크로익dichroic 필름을 입혀 마법처럼 다채롭게 변화하는 경관을 연출했다. …(중략) *환경과조경395호(2021년3월호)수록본 일부 Design and Build Carve, Playdium Design, Engineering, Supervision: Carve Fabrication, Installation: Playdium Design Team Elger Blitz, Mark van de Eng, LucasBeukers, Annelies Bloemendaal, Gaia Glereani, DimitraTsagkalidou, Wilco Spruijt Main Client Multi Corporation Area 400m2 Location Istanbul, Turkey Design 2019 Completion 2020 Photographs Asli Dayioglu 카브(Carve)는 1997년 엘허르 블릿(Elger Blitz)과 마르크 판데르엥(Mark van der Eng)이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에 설립한 놀이터 설계사무소다. 산업 디자인부터 조경에 이르는 여러 분야의 전문가가 모여 다양한 그룹과 연령대의 이용자들을 위한 놀이 공간을 설계한다. 아이들의 행위를 지나치게 제한하거나 규정하는 놀이 시설보다는 일상 속 사물을 닮은 친숙한 형태의 시설이나 즐길 만한 풍경을 조성하며, 아이들이 주도적으로 즐길 수 있는 도전적이면서 안전한 놀이 공간을 만들고자 한다.
빅뱅
뉴번드(New Bund)는 상하이 푸동(Pudong)지역에서 새롭게 떠오르고 있는 국제 업무 센터다. 센터를 활성화하고자 옥상에 창의적 놀이 시설 빅뱅(Big Bang)을 설치했다. 다양한 엔터테인먼트와 방문객 사이의 상호 작용을 촉진하고, 어린이와 청소년뿐 아니라 성인들에게도 매력적인 공간을 제공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대상지인 2층 건물의 옥상은 언제나 일반 대중에게 열려 있는 공용 공간으로, 인근 도로와 실내 상업 시설에서 바로 오르내릴 수 있다. 이곳을 사회적 소통을 유도하는 야외 공공 플랫폼으로 조성하고자 했다. 일종의 ‘색을 입힌 경관’을 만들고 휴게 시설을 갖춘 그늘 구조물과 놀이, 공연, 학습 공간 등 다양한 연령층을 위한 활동의 장을 마련했다. …(중략) *환경과조경395호(2021년3월호)수록본 일부 Design 100 Architects Design Team Marcial Jesus, Javier Gonzalez, Lara Broglio,Monica Paez, Keith Gong, Evgenia Likhachova, MarieAnseaume Production Hong Yang Advertising Client Tishman Speyer Properties Location Pingjiaqiao Road 36, Pudong, Shanghai, China Area 410m2 Completion 2019. 9. Photographs Amey Kandalgaonkar 100 아키텍츠(100 Architects)는 건물을 세워 올리는 전통적인 방식의 건축 스튜디오를 지향하지 않는다. 휴식과 레크리에이션, 오락을 위한 공공 영역, 공공 공간을 만드는 데 주목해 활동하고 있다. 상하이에 본부를 두고 있으며 장소 만들기, 거리 예술, 조경, 도시 개입에 관심 있는 15명의 젊은 건축가와 디자이너가 함께한다.
브레뎅 공원
스웨덴 브레뎅(Bredang)교외 지역에 사는 여자아이로 구성된 포커스 그룹(focus group)과의 협업을 통해 춤, 놀이, 무료 스포츠를 즐길 수 있는 새로운 공원 모델을 개발했다. 최근의 연구에 따르면 스웨덴의 어린이와 청소년 대다수가 매일 충분한 신체 활동을 하지 않는 것으로 나타난다. 특히 이 문제는 10대 소녀들 사이에서 가장 두드러진다. 이를 염두에 두고 사회의 관심을 불러일으킬 수 있는, 신체 활동을 위한 좀 더 새롭고 폭넓은 기회를 제공하는 방법을 모색하기 시작했다. 브레뎅 공원은 주로 남자를 위한 조직적 스포츠 행사에 사용되는 축구 경기장이 대상지를 지배하고 있다는 현상에 대한 대응이라 할 수 있다. 포커스 그룹은 친구, 형제자매, 나아가 부모와 친척이 함께 시간을 보낼 수 있는, 모두를 위한 안전하고 활기찬 공간을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일련의 워크숍을 통해 자발적인 신체 활동을 좀 더 광범위하게 자극할 수 있는 계획안을 도출했다. …(중략) *환경과조경395호(2021년3월호)수록본 일부 Design Team Stina Hellqvist, Stina Naslund, Asa Drougge Client Skarholmen City District Administration Location Bredang, Stockholm, Sweden Completion 2020 Photographs Robin Hayes 니보 란스캅사르키텍투르(Niva landskapsarkitektur)는 스웨덴 스톡홀름에 기반을 둔 조경사무소로 2000년에 설립됐다. 도시의 공공 공간에 관심이 많으며 공원, 광장, 거리, 도시계획에 이르기까지 폭넓은 작업을 펼치고 있다. 도시 공간과 지역 사회의 문화를 바탕으로 시적이고 유희적인 요소를 사용해 장소 특정적 공간을 만들기 위해 노력한다. 사람을 위한 지속 가능한 환경을 만드는 것이 목표다.
[나의 미개봉작 상영기] 구 서울역사 폐쇄 램프 정원 프리퀄
때는 작년 5월 중순, 잠실한강공원 자연형 물놀이장 설계공모 준비가 한창이었다. 함께 작업하던 김영민 교수(서울시립대학교)가 조심스럽게 말을 꺼냈다. “저기, 상의할 일이 있는데, 이게 좀 급한 일이긴 한데, 설계비도 얼마 안 될 텐데….” 운을 떼는 그의 눈빛을 보고 재미있지만 험난하고 고된 행군이 될 여정을 직감할 수 있었다. 내용인즉슨 바이런이 설계를 맡고 있는 구 서울역사 옥상 정원 바로 옆에 새로운 정원을 조성하는 것이었다. 서울정원박람회 초청 작가 정원과 연계해 공개할 사업이기도 했다. 대상지는 1989년 준공된 서울역 민자역사의 일부 시설로, 옥상 주차장과 지상을 연결하는 나선형 램프다. 오랫동안 방치되어 폐쇄됐지만 설계가의 가슴을 뛰게 하는 묘한 매력이 있었다. 서울시는 서울로 7017과 서울역 옥상을 연결하는 보행교 설치를 추진하면서 연결 지점에 위치한 폐쇄 램프의 리뉴얼을 진행했다. 우리는 폐쇄 램프의 삭막하고 험상궂은 인상을 탈바꿈시켜 새로운 명소를 기획하고, 시공을 위한 설계 도서를 작성해야 했다. 오랫동안 서울시의 다양한 프로젝트를 하며 겪은 익숙한 프로세스가 되풀이되고 있었다. 건축가와 토목 전문가 위주로 진행된 프로젝트의 준공이 얼마 남지 않은 시점, 막상 대중에게 공개하려니 공간이 무미건조해 보여 조경가가 소방수로 투입되었고, 급한 불을 끄고 보기 좋게 치장해야 하는 상황인 것이다. 시공을 포함해 주어진 시간은 약 네 달이었다. 디자인 구상, 여러 단계의 의사 결정, 실시 설계, 공사 발주, 감리와 시공까지 고려하면 무척 촉박한 일정이었지만 담당 부서의 행정 지원과 빠른 결단으로 곧장 설계를 진행했다. 수개월 전부터 진행 중이던 건축 설계팀의 계획을 반영해 2.4m 간격 모듈 프레임을 기본으로 하는 아이디어를 도출해야 했다. 대상지의 수직 구조와 폐쇄 램프 중앙의 깊은 빈 공간, 서울로 7017에서의 경관적 시인성 등을 고려해 입체적 정원을 계획하는 방향을 잡았다. 현장 답사와 초기 아이디어 회의를 거친 후 바이런 사무실 중앙에 있는 탁구대에 김영민 교수가 일필휘지로 그린 스케치가 펼쳐졌다. 우리의 제안은 가칭 ‘신단수(神壇樹)프로젝트’로 명명한 수직 정원이었다. 바닥으로부터 상부 프레임 정상부까지 높이 24m에 이르는 대형 구조물을 만드는 것이었는데, 선행 계획에 제시된 2.4m 간격의 건축 프레임에 적용 가능한 60×60cm 박스를 켜켜이 쌓고 매달기로 했다. 짧은 일정을 고려해 공장에서 별도 제작이 가능한 수준의 모듈 프레임을 주 재료로 삼고, 현장에서 도면에 따라 조립할 수 있는 시공 방식도 제시했다. 프레임 구조를 활용해 최소한의 식물 생육 기반을 조성하여 전체가 하나의 거대한 나무처럼 보이는, 방치된 도시 공간에 생명력을 불어넣는 신성한 나무를 만든다는 의도였다. …(중략) *환경과조경395호(2021년 3월호)수록본 일부 이남진은 서울대학교 산림자원학과와 환경대학원 환경조경학과를 졸업하고,동심원조경에서 실무 경험을 쌓았다.현재 조경기술사사무소 바이런(VIRON)을 이끌고 있으며,좋은 설계는 좋은 회사에서 나온다는 생각으로 설계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함께 성장하는 환경을 만들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사람과 사람을 잇는 사람들] 기회를 틈타는 도시 기획자
‘사람과 사람을 잇는 사람들’은 여러 나라에서 다양한 방식으로 ‘커뮤니티 빌딩’에 애쓰고 있는 이들을 만난다. 조경은 사람과 자연뿐만 아니라 사람과 사람을 연결하는 역할도 한다. 많은 사람이 익명으로 생활하는 도시에서 공공 공간을 만드는 일은 어떠한 지향 속에서, 어떻게 사람들을 연결할지 묻는 작업이기도 하다. 어떤 연결은 도시를 변화시키는 힘으로 이어진다. 아니, 그렇게 믿는 사람들이 있다. 각자도생이 받아들여야 하는 흐름인지, 극복해야 할 대상인지 모호한 시대, 그들은 왜 연결을 낙관하고 애쓰는지 살펴보려 한다. 첫 번째 주자는 지진으로 많은 것이 무화된 백지 같은 도시에서 새로운 연결고리를 만들어나가는 갭필러(Gap Filler)다. 갭 필러는 예술, 건축, 연극 등 다양한 배경을 가진 사람들의 조합이다. 2010년 뉴질랜드에서 발생한 지진 이후, 크라이스트처치(Christchurch)라는 도시에서 무너진 장소성을 새롭게 회복하기 위해 다양한 시도를 이어나가고 있다. 그들은 스스로를 “창의적 도시 재생을 주도하는 단체(creative urban regeneration initiative)”로 소개한다. 지난 2016년 최이규 교수(계명대학교, 당시 그룹한 소장)가 갭 필러의 코랄리 윈Coralie Winn과 재난 이후 도시의 재건에 초점을 맞추어 인터뷰를 진행했다(『환경과조경』 2016년 6월호). 이 지면에서는 갭 필러가 설립된 지 10년이 지나 도시가 많이 복원된 현재 시점에서 갭 필러의 지향과 활동에 있어서 달라진 점은 무엇인지에 집중했다. 갭 필러의 공동창립자인 라이언 레이놀즈(Ryan Reynolds)와 이메일로 대화를 나누었다. 갭 필러는 도시나 건축, 조경뿐 아니라 다양한 전문적 배경을 가진 이들이 모인 도시재생 단체다. 멤버들이 어떤 배경을 가지고 있는지, 이런 조합을 어떻게 이루게 되었는지 궁금하다. 공동창립자 셋 중 나를 포함한 두 명은 연극을 전공했고, 다른 한 명은 건축과 도시계획을 기반으로 활동했었다. 우리는 연극 분야에서 사용하는 퍼포먼스 연구의 관점에서 도시를 다루는데, 이 관점에서는 인간의 모든 행위를 각자의 사회적 역할의 수행으로 본다. 즉, 어떤 사회적 맥락이 주어질 때 개인이 어떤 행위나 역할을 창조하는지 살펴보는 연구라고 볼 수 있다. 이를 물리적, 도시적 맥락으로 가져와 설계 언어에 따라, 일례로 보행로의 폭이나 경계석 단차에 따라, 개인의 행태가 어떻게 변화하는지 실험하는 데 사용해볼 수 있다. 이러한 개념들을 녹여 갭 필러는 새로운 접근법을 만들어냈다. 사람들의 다양한 행태를 끌어내는 배우 역할을 할 물리적 장치를 공간에 삽입해 공간의 분위기와 방문한 사람들의 태도를 바꿔나가는 작업을 하고 있다. 지난 10년간 다양한 배경을 가진 사람들이 우리와 함께했다. 프로젝트 매니저 중 한 명인 데미안(Damian)은 대규모 익스트림 스포츠 대회와 행사를 기획하는 회사에 근무했었다. 주로 기획을 담당했었지만, 스케이트 점프나 하이파이프를 위한 구조물 제작같이 아이디어가 공간으로 구현되는 과정에도 참여한 경험이 있었다. 독특한 배경 덕분인지 갭 필러가 도시 공간을 대하는 접근법은 전통적인 방식과 많이 다르다. 예를 들어, ‘팰릿 파빌리온(Pallet Pavilion)’ 프로젝트에는 요즘 도시계획에서 종종 사용되는 택티컬 어바니즘(tactical urbanism)접근을 활용한 것으로 보인다. 갭 필러가 도시재생을 이끄는 방법에 대해 알고 싶다. 엄밀히 말해 우리의 접근법은 택티컬 어바니즘이라고 할 수 없다. 택티컬 어바니즘의 통상적 의미는 실제 공간에 구상한 시설을 하루나 일주일같이 짧은 기간에 저예산으로 구현해서 해당 공간의 영구적 변화를 어떻게 이루어나갈지 확인하는 작업이다. 이런 접근법은 굉장히 직접적이고 직설적이다. 그리고 주로 도로나 주차장, 광장에서 이루어진다. 예를 들어, 4차선 도로 중 하나를 자전거 도로로 표시한 후, 시민들이 일정 기간 어떻게 활용하는지 관찰해 자전거 도로 조성에 필요한 당위성을 만들기도 한다. 갭 필러의 접근 방식은 조금 더 포괄적이고 예술적이다. 장기적으로 영향을 미치는 범위를 특정 공간의 구성에 그치지 않고 정체성의 변화와 장소성 그 자체까지 염두에 두고 있다. 그 결과 예상외로 크라이스트처치 시의 장소성에 많은 영향을 미칠 수 있었다. 또한 우리는 크라이스트처치에 산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지, 이 도시의 정신ethos of the city은 무엇인지와 같은 질문을 던지지만, 어떤 공간에 특정 구조물을 설치해 해당 공간 개발에 대한 직설적 해답을 내지는 않는다. …(중략) * 환경과조경 395호(2021년 3월호) 수록본 일부 조성빈은 유년 시절을 미국과 한국의 다양한 도시에서 보냈고, 공간과 도시에 매료되어 한국과 노르웨이에서 건축과 조경을 공부했다. 늘 경계에 있는 사람으로 살아와 깊이는 부족해도 본질에 관심이 많고, 관계에서든 공간에서든 진정성을 추구한다. 조경설계 서안을 거쳐 조경작업소 울에서 놀이터와 커뮤니티 디자인을 하고 있다. 김연금은 서울 옥수동에서 태어나 살고 있고, 2009년부터 옥수동 옆 약수동에서 조경작업소 울을 운영하고 있다. 『텍스트로 만나는 조경』, 『커뮤니티디자인을 하다』, 『소통으로 장소만들기』, 『우연한 풍경은 없다』 등 다양한 집필 작업을 해왔다. 2020년에는 서울시립대학교 명예교수인 이규목 교수를 비롯해 여덟 명의 조경가의 글을 엮어 『이어 쓰는 조경학개론』을 펴냈다.
[북 스케이프] 19세기의 리틀 포레스트, 부바르와 페퀴셰
친구들과 이런저런 잡담을 나누다 보면 꼭 누군가 로또 이야기를 꺼낸다. 일확천금하면 그 많은 돈을 어디다 쓸 건가로 대화 주제가 바뀐다. 누군가의 계획은 굉장히 구체적이다. 당장 회사를 그만두고 공기 맑고 조용한 시골에서 평화롭게 작은 규모로 농사지으며 살겠단다. 드라마 ‘전원일기’를 보고 자란 세대는 커서 영화 ‘리틀 포레스트’나 ‘인생 후르츠’, TV 예능 ‘삼시세끼’처럼 소박하게 자급자족하는, 이른바 킨포크(kinfolk)라이프를 꿈꾼다. 안온한 시골 생활에 대한 꿈은 사실 고대부터 동서양의 수많은 시인이 노래해 왔다. 어찌나 많은지 아예 전원시라는 장르가 생겨났을 정도다. 하지만 그것은 도시인들의 판타지일 뿐, 실제 시골 생활은 많이 다르다(고 한다). 무엇보다 앞서 이야기한 사례에서는 벌레가 안 나온다. 이 전원생활의 꿈을 앞서 이룬 이들이 있으니, 19세기 프랑스의 소설가 플로베르(Gustave Flaubert)의 유작 『부바르와 페퀴셰(Bouvard et Pecuchet)』의 두 주인공이다.1 소설은 부바르와 페퀴셰가 만나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어느 여름날 일요일 오후, 파리 시내 길거리 벤치에 두 사람이 우연히 합석한다. 가벼운 대화를 하다 보니 모자 안쪽에 이름을 적어두는 습관, 47세의 나이, 독신이라는 점, 필경사라는 직업도 같다. 퀴어 코드는 없지만 첫눈에 반한 두 사람의 마음은 어떤 연인보다도 절절하다. 그날부터 이들은 거의 매일 저녁 식사를 함께하고 수많은 이야기를 나누고 여기저기 같이 다니며 지적 호기심을 채운다. 서로를 만나기 전까지는 남의 글을 옮겨 적는 필경사 생활에 만족했지만, 아는 것이 많아질수록 더 많은 지식을 갈망하게 된다. 앎에 대한 욕망뿐 아니라 시골 생활에 대한 욕구도 공유한다. 피곤한 도시도, 소란한 선술집 때문에 견디기 힘든 교외도 아닌, 평화로운 시골말이다. 이들은 시골을 동경하여 일요일이면 교외로 산책을 간다. 포도밭을 산책하고 풀밭 위에서 낮잠을 잔다. 우유는 신선하고 밭이랑에 난 개양귀비꽃도 어여쁘다. 이런 산책을 다녀온 뒤에는 도시 생활이 더욱 견디기 힘들어진다. 그런데 아침 드라마 같은 일이 일어난다. 부바르가 삼촌인 줄 알았던 분이 사실은 친부였고 그에게 상당한 유산을 남겼다. 유산을 상속받고 부바르가 페퀴셰에게 한 첫마디는 “우리 시골로 은퇴하자!”였다. 둘은 정착할 ‘진정한 시골’을 찾고 시골 생활에 필요할 것 같은 물건을 잔뜩 구입한다. 여행은 계획할 때 제일 좋듯 귀농 생활도 상상할 때가 가장 감미롭다. 시골로 이주해 사는 소설가 마루야마 겐지丸山 健二도 말하지 않았는가. “시골은 그런 것이 아니다.”2 …(중략) **각주 정리 1. 귀스타브 플로베르, 진인혜 역, 『부바르와 페퀴셰 1, 2』, 책세상, 2006. 2. 마루야마 겐지, 고재운 역, 『시골은 그런 것이 아니다』, 바다출판사, 2014. *환경과조경395호(2021년 3월호)수록본 일부 황주영은 서울대학교 협동과정 조경학전공에서 19세기 후반 도시 공원의 모더니티에 대한 연구로 박사 학위를 받은 뒤 파리 라빌레트 국립건축학교에서 박사후 연수를 마쳤다. 미술과 조경의 경계를 넘나들며 문화사적 관점에서 정원과 공원, 도시를 보는 일에 관심이 많으며, 이와 관련된 강의와 집필, 번역을 한다. 그러는 동안 수많은 책을 사거나 빌렸고, 그중 아주 일부를 읽었다.
예술, 자연, 놀이의 공존
참여하는 미술관, 지붕 없는 미술관 서울대공원 안에 있는 국립현대미술관 과천관(이하 과천관)은 고즈넉한 자연에 둘러싸여 있다. 미술관 앞쪽으로는 대공원의 너른 녹지와 과천저수지가 펼쳐지고, 배경에는 청계산자락의 풍성한 녹음이 가득하다. 지난해 10월 14일 개최된 ‘MMCA 예술놀이마당’은 이 같은 과천관의 입지적 장점을 더욱 부각하는 프로젝트다. 미술관 앞마당과 건물 옥상에 예술, 자연, 놀이를 주제로 한 자연 속 예술 놀이 공간을 조성하고 연계 프로그램을 마련했다. 예술의 장소이자 공공의 장소인 미술관 앞마당을 생태적 공간으로서, 관조가 아닌 참여하고 경험할 수 있는 미술관으로 변모시킴으로써 ‘참여하는 미술관, 지붕 없는 미술관’을 실현하는 데 기여하고자 했다. 자연 속 예술 놀이 공간 ‘MMCA 예술놀이마당’은 예술가의 밭, 예술마루, 솔내음길, 하늘지붕으로 구성된다. 예술가의 밭은 자연의 성장과 변화를 다루는 공간으로, 예술과 자연, 예술과 생태를 성찰하고자 농사, 재배라는 특성에 주목한다. 김도희는 자연이 스스로를 만들고 가꾸어가는 과정을 보여주는 매개체로 산고랑길을 택했다. 과천의 흙, 경상남도 하동의 적황토, 충청남도 보령의 황토, 경상북도 낙동강의 모래, 밭의 흙이 ‘예술가의 밭.산고랑길’의 재료다. 흙은 다채로운 자연의 색을 보여주고 환경에 따라 시시각각 변화하며 생명력과 대지의 힘을 느끼게 한다. 일렁이는 파도를 닮은 이랑의 구조는 자연의 특성인 순환과 연결을 드러내는 요소이기도 하다. 최재혁(오픈니스 스튜디오 대표)은 산고랑길을 따라 자연과 식물이 머무는 공간과 경작의 공간을 조성했다. 갈대를 따라 이어진 길을 거닐며 자연의 예술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되새기고, 경작지에서는 도시에서 보기 어려운 작물의 재배와 수확의 과정을 관찰할 수 있다. 예술가의 밭 옆으로 이어지는 예술마루는 커다란 느티나무가 그늘을 드리우는 일종의 예술적 쉼터다. 이곳에서 식물을 관찰하며 수집한 자연 재료로 다양한 놀이 활동을 즐기고, 자연 속 다양한 조형 요소와 원리를 발견할 수 있다. 예술마루 한복판에 놓인 ‘세 개의 기둥’은 쉼터이자 놀이 공간으로 인식되는 장소 특정적 설치 작품이다. 김주현은 프랙털fractal, 카오스, 복잡성과 같은 현대 과학의 사유를 조각으로 가시화해온 작가다. 이번 전시에서는 위상 수학의 기본 개념인 도넛 모양의 토러스torus를 응용해 세 개의 기둥이 유기적으로 엉켜 있는 듯한 파빌리온을 만들었다. …(중략)
빛과 알고리즘으로 만든 세계
“자연이 주는 축복과 위협도, 문명이 가져오는 혜택과 위기도, 모든 것은 끊임없이 연결되어 있습니다. 어딘가에 절대적인 악의가 있는 것이 아니지만 그저 순응하기에는 지나치게 가혹하기도 합니다. 이러한 관계나 감정은 간단히 이해되거나 정의될 수 없습니다. 하지만 어떠한 상황에 놓여도 우리는 반드시 살아갈 것입니다. 생명은 아름답습니다.” 동대문디자인플라자DDP 배움터에서 열리고 있는 ‘팀랩teamLab: 라이프’는 생명의 아름다움을 주제로 다채로운 인터랙티브 미디어 아트 작품을 선보이는 전시다. 팀랩은 예술가, 프로그래머, 엔지니어, CG 애니메이터, 수학자, 건축가, 디자이너 등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로 구성된 예술 단체로, 예술과 과학 기술의 교차점을 모색하며 자연과 독특한 방식으로 관계 맺는 법을 제시한다. 높고 널찍한 전시장의 벽과 바닥, 천장 한가득 화려한 영상이 투사되고 있다. 사람들은 공간을 자유롭게 배회하며 몽환적인 분위기에 한껏 몰입하게 된다. 거대한 색색의 꽃에 둘러싸여 작은 곤충이 된 듯한 느낌을 받기도 하고, 수많은 꽃잎으로 이루어진 코끼리를 보며 머나먼 행성 어딘가에 놓인 기분에 빠져들기도 한다. 꽃과 나비, 물, 대지 등의 자연 요소를 담은 영상들은 컴퓨터 프로그램에 의해 실시간으로 그려져 지금이 아니면 다시 보지 못할 찰나의 풍경을 선사한다. 초현실적인 형태로 재구성된 동식물들은 관객의 작은 움직임에도 크게 반응한다. 가까이 다가가거나 손을 가져다 대면 꽃잎이 후드득 떨어지고, 나비 떼가 홀연히 사라진다. 사자와 새를 만지면 울음소리를 내고, 거대한 폭포수 앞에 서면 물줄기가 사람을 바위로 인식해 비켜 흐른다. 작품은 환상적인 디지털 자연 세계를 오감으로 느끼게 할 뿐만 아니라, 강한 생명력을 지니고 있지만 작은 자극만으로도 스러질 수 있는 자연의 연약함 또한 보여준다. 계절의 변화를 따라 나뭇가지에서 다양한 꽃이 피고지는 ‘생명은 생명의 힘으로 살아 있다’는 공존에 대한 메시지를 담고 있다. 이리저리 굽은 나뭇가지는 한자生날생을 공서空書(허공에 쓰는 붓글씨)로 표현한 것이다. 먹물을 머금은 붓의 궤적이 지닌 깊이와 속도, 힘의 강약 등을 새롭게 해석해 공간 속에 입체적으로 재구축하고, 이를 다시 평면에 전시해 결과적으로 평면과 입체 사이를 끊임없이 오가는 형태를 띠게 했다. 이 같은 양면성은 나라는 존재와 그 바깥의 환경이 서로 다른 둘이 아니라 처음부터 하나라는 메시지를 전달한다. 전시는 강력한 시각적 경험과 함께 자연과 생명에 대한 깊은 성찰의 기회를 제공한다. 어디서도 볼 수 없던 광경이 진한 여운을 남기지만 깊은 몰입의 경험 뒤 왠지 모를 허전함이 남기도 한다. 마냥 아름답고 무해하게 가공된 자연이 주는 비현실적인 느낌 때문일까.
[기웃거리는 편집자] 우리들
출퇴근길 지하철 계단 오르기가 유일한 운동인 내게도 한창 뛰놀던 시절이 있었다. 친구들과 인라인 스케이트를 타고 시도 때도 없이 동네를 쏘다니던 무적의 ‘초딩’ 시절. 토요일이면 4교시가 끝나기 무섭게 근처 시장으로 뛰어가 ‘방방’을 탔고, 학원 수업 전후 친구들과 모여 인근 아파트 단지에서 경찰과 도둑, 얼음땡 같은 추격전을 벌였다. 주차장, 복도와 계단, 놀이터… 놀이는 장소를 가리지 않았다. 그때의 나는 어디서든 신날 준비가 되어 있었다. 다만 학교 운동장만큼은 내게 그다지 유쾌한 장소가 아니었다. 종종 굴욕감을 마주해야 했기 때문이다. 단지 키가 크다는 이유로 등 떠밀려 이어달리기 주자가 됐다가 역전을 당한 쓰라린(?) 기억이 있고, 무엇보다 나는 공 앞에서 몸이 자동으로 굳는 아이였다. 문제는 당시 초딩들 사이에서 피구가 엄청나게 유행해서 반 애들은 체육 시간만 되면 피구를 하겠다고 선생님을 졸라댔다는 점이다. 공에 맞는 것은 물론 누군가를 공으로 맞추기는 더 싫었지만, 단체 생활이 중요했던 그땐 조용히 흰 라인 안으로 들어갈 수밖에 없었다. 영화 ‘우리들’(2016)을 보자마자 내 안의 스위치 같은 게 켜진 건 당연한 반응이었다. 운동장을 배경으로 아이들의 소리가 울려 퍼진다. 마음껏 뛰어놀 수 있는 그곳에서 초등학교 4학년 선은 어색한 웃음을 지으며 경직된 채로 서 있다. 피구 경기가 열리는 체육 시간, 두 사람이 가위바위보를 해서 한 명씩 팀원을 고르는 편 가르기에서 선은 마지막에 남는 한 명이다. 공을 능숙하게 다루는 데도 날렵하게 몸을 피하는 데도 재주가 없어서 경기가 시작되기 무섭게 가장 먼저 공을 맞고 아웃된다. 운이 좋아 공에 맞지 않아도 “금 밟았다”는 지적을 받아 라인 밖으로 쫓겨난다. 선은 바쁜 엄마를 대신해 동생을 야무지게 돌보는 싹싹한 딸이지만 반에서는 늘 변두리를 맴돈다. 반면 공부도 잘하고 인기도 많은 보라는 반에서 선을 적당히 배제하며 자신의 영역을 공고히 다진다. 영화는 선이 소외되는 이유를 분명히 짚어내진 않는다. 부모의 경제력으로 아이들 간 계급이 나뉘는 상황이 연출되기도 하지만, 사실 따돌림에는 특별한 이유가 없다. 여름방학 첫날, 선은 같은 반으로 전학 온 지아를 우연히 만나 각별한 사이가 된다. 하지만 보라가 학원에서 지아를 만나면서 관계에 균열이 생기기 시작한다. 지아와 다시 친해지기 위해 선은 갖은 노력을 기울이지만 (틀어진 관계를 바로잡는 일이 으레 그렇듯) 어정쩡한 제스처는 더 큰 갈등과 오해를 불러온다. 부모라는 호칭이 더 어울리는 나이가 된 마당에 나는 선과 지아에 거의 일체화되다시피 해 이야기에 빠져들었다. 내게도 새 학기를 앞두고 친한 친구와 다른 반이 될까 마음 졸였던 기억, 좋아하는 친구에게 특별한 존재가 되고 싶어 노력했던 순간들이 분명히 있었다. 극 중 아이들은 일상을 뒤흔드는 위기에도 쉽게 울음을 터뜨리거나 선생이나 부모에게 도움을 요청하지 않는다. 대신 내가 할 수 있는 방식으로 어떻게든 문제를 해결하려고 안간힘을 쓰는데, 그 모습이 안쓰럽고 대견하면서도 무섭도록 사실적이다. 어른들에겐 어른들의 문제가 있고 아이들에겐 아이들의 문제가 있듯, 두 세계는 전혀 다른 문법이 적용되는 생태계임을 아이들은 이미 잘 알고 있다. ‘우리들’이 ‘Us우리들’이 아닌 ‘The World of Us우리들의 세계’로 번역된 점은 자연스러운 해석이다. 윤가은 감독은 한 인터뷰에서 “왜 어린이만 주인공으로 하느냐”는 질문에 “왜 어른만 주인공으로 찍어야 하느냐”고 반문하며 이렇게 이야기했다. “아이들도 삶의 주체인데요. 오히려 아이들이 주인공인 영화는 흔하지 않아서 귀하죠. 전 어제 일보다 20년 전 일이 더 생생히 생각납니다. 어쩌면 현재의 일은 어린 시절 겪은 일들의 반복과 변주에 불과할지 몰라요.”1 영화의 마지막 장면, 카메라 앵글은 다시 운동장의 아이들을 비춘다. 극적인 화해는 없다. 다만 한 아이가 낼 수 있는 최선의 용기를 보여줄 뿐이다. 학교 혹은 동네 어딘가에 있던 열한 살의 나, 그리고 지금 그곳에 있을 열한 살들을 생각하니 아득해졌다. 그때의 나만 알 수 있는 우리들의 이야기가 있다. 어른이 된 나는 오늘을 보내는 아이들의 이야기를 영영 알 수 없을 것이다. 각주 1.백승찬, “윤가은 감독의 첫 장편영화 ‘우리들’…위선 따위 없어 더 사실적인 아이들의 정글”, 「경향신문」 2016년 6월 13일.
[편집자가 만난 문장들] 그냥 계단만 올라오시면 돼요
정보 수집, 취재, 기획, 편집, 교정, 마감. 쉼표로 생략된 이야기가 많지만 에디터는 대강 이 정도의 사이클을 반복하며 일 년을 보낸다. 첫 과제인 정보 수집은 귀동냥, 제보, 대화 등 다양한 경로를 통해 이루어지지만 그중에서도 검색은 얄팍한 정보를 재빠르게 수집하기에 제격이다. 이따금 키보드와 모니터를 통해 세계 곳곳을 탐방한다. 이번 호 지면을 가득 채운 놀이터도 그 대상 중 하나다. 마스크 없이 랜선에 올라타기만 하면 되는 여행은 보통 두 단계로 진행된다. 검색어는 ‘놀이터’. 이 여정은 그리 오래 걸리지 않는다. 많아야 스무 개 남짓, 그나마도 ‘MZ세대를 위한 놀이터’, ‘새들의 놀이터’처럼 각종 캐치프레이즈 때문에 검색된 기사를 제외하면 영양가 있는 정보가 얼마 남지 않는다. 검색어를 ‘playground’로 바꾼다. 훨씬 다채로운 결과가 쏟아지기 시작한다. 색색의 옷을 입은 독특한 형태의 조합 놀이대가 대부분을 차지하지만, 공원이나 광장에 가까워 보이는 곳도 많다. 파빌리온이나 실험적 예술 작품도 거리낌 없이 놀이터라 부르고, 아이들과 어른들이 한 공간에 얽혀 저마다의 놀이를 즐기고 있다. 단어가 품는 범위뿐만 아니라 물리적 면적 자체도 월등히 크다. 놀이터는 제법 여러 번 다룬 소재다. 특집으로 소개한 적도 있고, 참고할 만한 놀이터 전문 서적이 없던 시절에는 독일의 『Kinderspielplatze mit hohem Spielwert(놀이 가치가 높은 어린이 놀이터)』를 번역해 실었다. 113호(1997년 9월)에는 전통 놀이 공간을 이르는 ‘전승놀이터’라는 개념이 등장하는데, 심우경 교수(당시 고려대학교 원예과학과)는 과거 “우리의 놀이는 주로 아름다운 산천에서 행해졌으며 고정된 시설이 아니고 빈터(마당)만 있으면 철에 따라서 남녀노소가 따로 함께 놀았”다고 말한다. 즉 산과 들을 비롯해 자유롭게 몸을 움직일 수 있는 모든 장소를 놀이의 터로 삼았단 이야기다. 그렇다면 미끄럼틀과 그네가 놓인, 우리가 익숙하게 봐 온 놀이터는 언제 등장했을까. 김성문 대표(판타지 코리아)는 4호(1983년 10월호) 특별기획 지면에서 놀이터가 탄생한 이유를 “산업화의 영향에 의해 도시가 구조적 변화를 가져왔기 때문”이라고 진단한다. 도시에 인구가 집중되며 “어린이들이 뛰어 놀 수 있는 공간이 고층 건물과 주차장, 도로 등의 시설로 점령”되었고, 어린이를 보호하고 그들의 활동 욕구를 충족시키기 위해 ‘놀이터’라는 별도의 공간이 필요해졌다는 것이다. 함께 수록된 삽화가 인상적인데, 자동차 사이에 낀 그네를 바라보는 아이들의 뒷모습이 쓸쓸해 보인다. “도시의 모든 공간이 그렇듯 놀이터도 도시를 반영한다. 밀도가 높은 도시에서는 놀이터 시설 구성의 밀도도 높아지게 된다.”(기아미+김연금, 50쪽) 땅에서 한계를 맞닥트린 놀이터는 자연스럽게 하늘을 향해 솟는다. 트리하우스는 나무 주변을 감싸 오르고(영도초등학교 트리하우스, 부산 새들원), 둘레길을 닮은 데크는 지면에서 서서히 떠오르며 다이내믹한 등굣길과 놀이 공간을 선사한다.(배봉초등학교 놀이키움). 좁은 공간에서 놀이 흐름이 끊기지 않게 할 방법을 끊임없이 고민해야 한다(어린이꿈공원). 이러한 입체적 시설은 중력을 거스르며 놀고 싶은 어린이의 욕구를 해소시키고 주변을 색다른 높이에서 바라보는 생경한 경험을 주지만(하늘바다놀이터), 사실 공간을 조금이라도 더 다채롭게 활용하기 위한 방책이기도 하다. 밧줄과 암벽을 타고 공중에 매달린 그물 위를 쏘다니며 모험심을 키울 수 있게 되었지만, 내키는 만큼 달리고 실컷 공놀이를 할 수 있는, “멀쩡한 놀이터를 놔두고…스탠드 기둥에 찰싹 붙으며 도망 다니는, 매미 놀이”(문교초등학교 언덕 놀이터)를 할 수 있는 너른 터는 턱없이 부족해 보인다. 바벨탑에서 시작해 세계 곳곳에 우뚝 선 마천루까지, 수직을 향한 인류의 욕망은 오래전부터 이어져 왔다. 위로 오르는 행위를 신분 상승에 비유한 영화 ‘기생충’에서 기우는 어둑한 지하를 향해 말한다. “아버지는 그냥 계단만 올라오시면 돼요.”놀이터에는 계단 따위는 없을수록 좋다. 도전 정신을 키울 수 있는 사다리도 좋지만, 휠체어와 유모차도 오를 수 있는 나지막한 경사가 더 좋다. 모두가 수직 도시를 꿈꾸는 이 시대에 놀이터는 평평하고 널찍한 수평을 바라는 몇 안 되는 공간이다. 더불어 궁금해졌다. 더 높은 구조물을 짓고, 더 깊숙이 땅을 파는 방법을 고민하는 이 시대에 결국 땅에는 무엇이 남게 될까. 또 무엇을 남겨야 할까.
[PRODUCT] 거리의 공기를 정화하는 ‘미스트에어타워’
아이디플러스IDPLUS의 ‘미스트에어타워Mist Air Tower’는 안개 분사기와 전기 집진기를 이용한 미세먼지와 기온 저감 기능은 물론, 향균 및 공기 정화 시스템까지 갖춘 복합 환경 시설물이다. 하층부에 달린 환풍기로 주변 공기를 빨아들여 타워 내부에 장착된 전기 집진기에서 폐렴균, 황색포도상구균, 초미세먼지 등의 유해 물질을 걸러내 깨끗한 공기로 다시 배출하는 원리다. 전기 집진기에는 플라즈마 장치, 집진 필터가 내장되어 미세먼지와 악취를 효과적으로 제거할 수 있다. 기존의 안개 분사 시스템이 수도관을 통해 끌어온 물을 미세한 입자의 안개로 분사해 온도를 낮추고 미세먼지를 저감했다면, 미스트에어타워는 안개 분사 기능에 주변 공기를 정화하는 시스템을 더해 폭염이나 대기 오염 등의 문제에 더욱 적극적으로 대응한다. 미스트에어타워는 조형물을 연상케 하는 역삼각형 타워, 나무를 닮은 타워, 단순함이 돋보이는 일자형 타워 등 다양한 옥외 공간에 어울리는 여러 디자인으로 설계되었다. 깨끗한 공기가 필요한 버스 정류장, 유동 인구가 많은 길거리, 공연장, 놀이터 등에 설치하면 손쉽게 쾌적한 환경을 조성할 수 있다. TEL. 02-3661-2040 WEB. www.id-plu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