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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통정원] 일본의 명원23 에도 시대 말기의 정원(1)
  • 에코스케이프 2016년 0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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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원각 2층 응접실에서 내려다 본 정원

 

 

개요 

칸세이寛政 원년(1789)부터 케이오慶応 4년(1868)까지를 에도 시대 말기로 편년한다. 에도 시대 중기부터 부농富農, 호상豪商, 촌장村長 등을 중심으로 정원 문화가 형성되던 분위기는, 에도 시대 말기가 되면 더욱 두드러져 서민층에 이르기까지 정원 문화가 대유행을 하게 된다. 그야말로 에도 시대 말기는 일본 정원사에서 정원 문화가 가장 극성을 보였던 시대로 기록될 수 있을 것이다. 


에도 시대 말기의 정원은 중기의 정원과 마찬가지로, 석조石組의 규모가 작아지고 식재를 중심으로 하는 정원이 지속적으로 유행한다. 그러나 역으로 특별히 석조가 중심이 되는 호화로운 정원이 조성되는 특별한 경우가 나타나기도 한다. 특히 지방에 조성된 정원 가운데에서 아주 뛰어난 석조조형과 공간의 구성이 우아한 정원을 볼 수 있는데, 이러한 현상은 정원에 대한 관심이 대중적으로 더욱 확장되었음을 보여주는 증거라고 할 수 있겠다. 


또한 에도 시대 말기에 들어서면서 작정비전서의 편집이 더욱 활발히 이루어지고, 편집된 작정서의 보급이 한층 더 늘어나는 현상이 나타나게 된다. 그중에서 아키사토 리토秋里籬嵨는 칸세이 11년(1799)에 『都林泉名勝図会(도림천명승도회)』를, 분세이文政 11년(1828)에는 『築山庭造伝後編(축산정조전후편)』을 출판해 전국적으로 유포했다. 전자는 140장 이상의 삽화가 실려 있고, 소개된 정원만 해도 약 90여 개에 달하는데, 료안지龍安寺 정원과 로쿠온지鹿苑寺 정원 등 유명한 정원을 대체로 망라해 소개하고 있다. 후자는 정원을 우선 축산築山과 평정平庭으로 구분하고 그것을 각각 진·행·초로 분류했으며, 여기에 다정茶庭, 즉 노지露地 정원을 포함해 상세히 도해하고 있다. 이러한 책들이 정원을 만드는 안내서로 광범위하게 출판·보급되었기 때문에 그 시대의 정원 문화는 보다 융성하게 발전할 수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아키사토 리토는 분세이文政 10년(1827)에 『石組園生八重垣伝(석조원생팔중원전)』도 저술했는데, 이 책에서는 정원에 도입되는 각종 시설물을 상세히 설명하고 있다. 이처럼 리토는 작정서의 저술에 주력함으로써 에도 시대 말기에 작정기술의 보급을 위해 커다란 공적을 쌓은 인물로 평가되고 있다(西桂, 2005). 


이 시대에 들어와 기존에 있었던 다이묘의 정원에 대한 대대적인 수리가 많았던 것도 또 하나의 특징이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에도의 작정가들이 지방에 내려와 특색있는 유파를 형성하는 경우도 적지 않았는데, 대표적인 사례로 센다이仙台의 시미즈 도칸淸水道竿, 아이즈会津의 메구로 죠죠目黒浄定, 타지마但馬의 이와사키 키요미츠岩崎淸光, 이즈모出雲의 사와 겐탄沢玄丹, 분고豊後의 이시타쓰石龍 등을 들 수 있다. 한편 이 시대의 대표적인 작정 사례를 보면, 치란후모토知覧麓 정원군(가고시마현), 고모이케안古茂池庵 정원(효고현), 도카이안東海庵 정원(교토시), 요스이엔養翠園(와카야마시), 곤고린지金剛輪寺 정원(시가현), 미토 가이라쿠엔水户偕楽園(이바라키현 미토시), 칸쇼우지観正寺 정원(효고현 도요오카시) 등이 있다(西桂, 2005). 


정원 문화의 융성기를 맞이한 에도 시대 말기에 특히 주목되는 지역이 있다. 바로 류큐琉球 지방인데, 이곳에 만들어진 정원은 일본의 정원 양식과는 또 다른 류큐의 독자적인 양식을 보인다. 과거 류큐 지방에 해당되는 오키나와현沖縄県에는 현재 국가지정명승 또는 특별명승으로 지정된 정원이 4건이나 있다. 특별명승으로 지정된 정원은 나하시那覇市의 시키나엔識名園이며, 명승으로 지정된 정원은 나하시의 이에돈치伊江殿內 정원, 이시가키시石垣市의 이시가키 씨石垣氏 정원과 미야라돈치宮良殿內 정원이다. 이 정원들은 하나같이 류큐산호석회암琉球珊瑚石灰岩을 사용하고 있어 특별한 경관을 보이며, 에도 시대의 일반적인 정원들과는 작법에서 많은 차이를 보인다. 


류큐의 정원문화는 15세기에 시작한 것으로 보는 것이 일반적이다. 그것은 류큐 지방에서 15세기 이전의 유구가 확인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류큐 지방에 현존하는 최고最古의 정원유구는 15세기 말에 창건된 엔카쿠지円覚寺 앞의 원감지円鑑池 유구이다. 그 후 칸세이 10년(1798) 류큐의 쇼온왕尙溫王이 시키나엔을 조영하였고, 분세이 2년(1819)경에는 이시가키 섬의 이시가키 저택과 미야라돈치에 정원이 만들어진다(西桂, 2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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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도로 내려가는 길에서 조망한 청원각과 정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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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도로 내려가는 길에서 조망한 청원각과 정원

 

혼마 씨 별저정원

혼마가本間家는 데와出羽에서 으뜸가는 부농으로 전후 농지해방 당시 논밭이 1600여 정보에 이를 정도로 부자였다고 한다. 겐로쿠元禄 2년(1689) 분가해 니가타야新潟屋라는 상호를 가진 잡화상을 경영한 혼마 모토미쓰本間原光는 분가한 혼마가의 초대 당주로 재력에 조금이라도 여유가 있으면, 분수에 맞게 그리고 바른 도리를 가지고 사회에 그것을 환원하라는 유훈을 남긴 사람으로 알려져 있다. 초대 당주의 유훈을 지키고자 혼마가는 대를 이어 흉년이 들거나 홍수로 피해를 입은 곤궁한 시절에 번과 농민들을 위해 사재를 털어 헌금을 봉납했다고 한다. 특히 3대 미쓰오카光丘는 사카이酒井 번이 어려운 상황에 처해있을 때, 이를 넘길 수 있도록 여러 차례 후원을 아끼지 않았고, 번 재정의 입직立直으로 참여하기도 했다. 그는 상인이면서 500석을 받는 무사이기도 하였고, 쇼군將軍의 직속 무사에게나 주어졌던 2000석 규모의 대저택을 지닐 수 있도록 묵인되었다고 하니, 당시 사카이 번에서 혼마가의 입지가 어떠하였는지를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大橋治三·齊藤忠一, 1998). 


혼마가에서는 4대 고도(光道, 1757~1826) 대인 분카文化 10년(1813)에 하마하타浜畑에 별장을 짓는다. 고도는 이 별저에 속한 정원을 만들면서 일부러 겨울철에 조성했다고 하는데, 이것은 일종의 실업대책으로 선대의 유훈을 생각한 처사였다. 이때 조성한 정원은 5대 고키光暉대인 분세이文政 10년(1827)에 지금과 같은 지천회유 양식으로 개조된다. 그는 분큐文久 3년(1863)에 별장에 은거하여 차를 벗하며 여생을 보냈다고 한다(大橋治三·齊藤忠一, 1998). 


정원은 한 가운데 섬을 둔 굴곡이 심한 못을 중심으로 사방에 축산을 한 지천회유 양식을 보인다. 정원의 구성은 멀리 동북 방향에 자리 잡고 있는 초카이산鳥海山이 중심에 들어오도록 의도했다. 못 서측에 지은 청원각淸遠閣 역시 초카이산을 차경할 수 있도록 건물의 남북축을 동쪽으로 30도 정도 틀어놓아, 방에서 응시할 때 동북쪽에 있는 초카이산이 정면에 들어오도록 했다. 지금도 날씨가 좋으면 건물의 중심이 되는 응접실에서 푸른 산과 만년설에 덮인 흰 산봉우리가 잘 보인다. 이 건물의 이름을 청원각이라고 한 것은 멀리에 있는 초카이산의 맑은 기운을 받고자 하는 염원 때문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정원은 곡지曲池를 중심으로 하는 디자인을 보인다. 못의 북측에는 마른 폭포가 깊은 계곡을 이루며 길게 못과 닿아 있고, 서측에는 못에 널다리板橋를 놓아 청원각 쪽으로 동선을 유도한다. 중문을 들어서서 축산에 조성한 좁은 길을 따라 내려가면 지그재그식 다리가 나타나 학이 내려와 춤을 춘다는 섬, 학무도鶴舞島로 인도하는데, 섬에서 주변을 살피며 서성거리다 보면, 위로 청원각 건물이 있어 자연스럽게 널다리를 건너 청원각으로 향하게 된다. 못의 동남쪽으로는 폭포에서 떨어진 물이 수로를 따라 못으로 들어오도록 되어 있으며, 이 수로에도 다리를 놓아 회유정원을 완성하고 있다. 


정원에는 북전선北前船으로 실어온 사도佐渡의 적옥석赤玉石과 이요伊子의 청석靑石같은 명석들이 이곳저곳에 배치돼 있어 특이한 암경岩景을 보여준다(大橋治三·齊藤忠一, 1998). 특히 중도에는 이러한 명석들이 집중적으로 배치돼 있으며, 다양한 의미를 전달하고 있어 에도 시대 정원으로서의 품격을 잘 보여주고 있다. 암경과 더불어 식생경관 또한 훌륭해 봄이 되면 초목에서 움트는 녹색의싹, 초여름 철쭉의 화려한 색, 가을철의 울긋불긋한 단풍, 겨울의 백설이 연출하는 경관은 외지에서 가져온 암석과 조화를 이루어 사계의 풍경으로 나타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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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도 끄트머리에 배치한 석등롱

 

 

홍광표는 동국대학교 조경학과, 서울대학교 환경대학원 환경조경학과를 거쳐 성균관대학교 대학원 조경학과에서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문화재청 문화재전문위원, 경기도 문화재위원, 경상북도 문화재위원을 지냈으며, 사찰 조경에 심취하여 다양한 연구와 설계를 진행해 왔다. 현재는 한국 전통 정원의 해외 조성에 뜻을 두고 연구하고 있다. 저서로 『한국의 전통조경』, 『한국의 전통수경관』, 『정원답사수첩』 등을 펴냈고, “한국 사찰에 현현된 극락정토” 등 다수의 논문을 발표하였다. 또 한국조경학회 부회장 및 편집위원장, 한국전통조경학회 회장을 역임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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