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작하면서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정원에서 물은 빼놓을 수 없는 요소였다. 기원전 2500여년경의 고대 이집트 정원에서 물은 더위를 식히는 기능성과 아름다움을 선사하는 심미성을 가진 존재였으며, 르네상스시대의 이태리나 프랑스 정원에서 만날 수 있는 물은 인간이 물을 사용할 수 있는 상상력이 어디까지 확장될 수 있는지를 보여준 경이로운 대상이었다. 동양의 경우에도 물은 고대로부터 정원에 도입되었으며, 중요하게 취급되어왔다. 특히 중국과 한국, 일본의 경우에는 물이 경관적 개념뿐만이 아니라 풍수적 개념으로도 설명되었으며, 물이라는 것이 신비로운 기운을 가진 존재로 생각되었다. 즉, 물이라는 것은 길흉화복을 초래하는 원인을 제공하는 것이어서 장소에 따라서는 함부로 써서는 안 되는 대상으로 보았던 것이다. 이것을 보면 서양과는 달리 동양에서는 물을 정신적인 차원에서 생각하고 있으며, 물의 사용이 정적이고 소극적이었음을 알 수 있다.
이렇게 물이 정원에서 중요하게 취급되었던 것은 어떤 이유일까? 우선 물은 경관적으로 아름다움을 만드는 요소가 된다. 물은 액체이기 때문에 용기의 형태에 따라서 조형성이 결정된다. 또한 물은 유동성이 있어 상태에 따라 고여 있거나 흐르거나 솟아오르거나 떨어지거나 하여 시각적으로 만족감을 주게 된다. 더욱이 물은 움직이거나 다른 물체와 부딪치게 되면 다양한 소리를 내게 된다. 물이 만드는 이러한 음향성은 시각적 효과와 더불어 보다 의미 있는 경관을 만들게 되며 사람들을 만족시키게 된다. 그리고 물은 주변의 그림자를 비치게 하여 또 다른 경관을 만들어내는 반영성을 지니고 있다. 그 외에도 물은 수평적 경관요소로 작용할 수 있는 수평성이 있으며, 투명성이 있어 맑고 깨끗한 이미지를 부여하기도 하고, 온도에 따라 액체, 고체, 기체의 상태로 다양한 변신을 하게 되는 변화성을 가지는 등 매우 다양한 경관적 효과를 지니고 있다(우경국, 1985:292/합본, 민경현, 1991:197-198, 김경윤, 1991:58-59).
다음으로 물은 사람들에게 도움을 주는 여러 가지 기능성을 지니고 있다. 물이 있음으로 해서 미기후를 조절하게 되어 더위를 식혀주거나, 습도를 보완하는 등과 같은 효과는 물이 가진 중요한 기능성이라고 할 수 있겠다. 이상에서 언급한 것과 같은 심미성과 기능성이야말로 인간이 정원에 물을 도입하고 중요하게 다루었던 주된 원인이 되는 것이다.
우리나라의 경우에도 다른 나라들과 마찬가지로 오래 전부터 인간의 정주환경에 물을 도입하여 왔다. 한국의 정원에서 물이 나타나는 것은 삼국시대부터인데, 이는 문헌자료나 남아있는 유적을 통해서 살필 수 있다. 삼국시대에 만들어진 수경관을 보면, 고구려시대에 만들어진 평안남도 중화군에 있는 동명왕릉 주변의 진주지, 평양 안학궁의 지원, 백제시대에 만들어진 부여의 궁남지와 정림사지 남문 앞에 조성된 쌍지, 익산의 미륵사지 전면의 남지, 신라시대에 만들어진 경주의 안압지와 같은 것들이 대표적이다. 그 후 통일신라시대와 고려시대, 조선시대를 거치면서 한국의 정원에는 많은 수경관들이 조성되었는데, 형식적 측면에서 보면 대체적으로 지당이 많이 나타나고 있음을 알 수 있으며, 폭포, 수로, 샘, 수조 등과 같은 것들도 보이고 있다.
최근 들어 정원이나 공원과 같은 조경공간에서 나타나고 있는 물의 사용을 보면 질적인 측면이나 양적인 측면 모두 놀라울 정도이다. 이렇게 도시공간에서 수경관 조성이 많아지는 것은 물이라는 것이 도시생활에 염증을 느끼는 도시민들에게 자연을 느끼게 할 수 있는 대상이 되기 때문이며, 한편으로는 수경관조성기법이나 기술이 이전에 비해 월등한 수준으로 발전하여 물의 도입이 보다 용이하게 되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현대조경공간에 도입되고 있는 물은 서구적인 형식이 대부분으로 정작 한국적 경관성을 보이는 수경관에 대한 도입은 인색한 것이 사실이다. 이렇게 한국적 수경관 조성이 이루어지지 못하고 있는 것은 우리가 서양문화에 무비판적으로 물들어 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한국적 수경관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 것도 원인으로 지적될 수 있다. 따라서 한국의 전통수경관에 대한 개념, 기능, 조성기법, 축조기술 등에 대한 보다 구체적인 이해는 현대조경에서 한국적 수경관을 조성하는데 일익을 담당할 수 있을 것으로 본다.